임제록(臨濟錄)

임제록주해16

通達無我法者 2007. 8. 21. 09:58

勘辨(감변)


〈15-1〉

≪주해≫

* 1) 인입주차(因入廚次) : 인()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시하는 선어록 특유의 표현.〈2〉를 참조하라. 차() 는「어느 때」,「시(時)」라는 뜻.

* 2) 반두(飯頭) : 선원(禪院)에서 전좌(典座)의 지도를 받으면서 식사를 준비하는 소임을 맡은 스님. 백장(百丈)의 선문규식(禪門規式 ;《전등록》6)에 보인다. 후에는《환주청규(幻住淸規)》에서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다.《동산어록(洞山語錄)》에도 이 일단과 비슷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 3) 연중승미(揀衆僧米) : 선원의 여러 스님들이 먹을 쌀에 섞인 작은 돌이나 티를 골라 냄.

* 4) 유공소재(猶恐少在) :「오히려 적지 않겠습니까?」라는 반문. 재(在)는 강한 단정(斷定)을 나타내는 구말(句末)의 조사(助詞).〈10-7〉을 보라.

* 5) 황벽편타(黃壁便打) : 밥〔飯〕은 수행자의 생명의 양식. 본래구족한 참성품〔眞性〕은 어떤 부족함도 없다는 것.

* 6) 거사(擧似) : 고(告)하다. 사(似)는 조사(助詞).〈14-44〉에 나오는 설사(說似)의 사(似)와 같다.

* 7) 재도시립차(纔到侍立次) :「바로 황벽에게 가서 곁에 모시고 서자마자.」시립(侍立)은 곁에 모시고 서는 것.

* 8) 청화상대일전어(請和尙代一轉語) : 반두를 대신해서 일전어(一轉語)를 청함. 일전어란 상황을 일거에 변화시키는 포인트가 되는 말. 이전(二轉), 삼전(三轉)도 계속될 수 있다.

* 9) 내일갱끽일돈(來日更喫一頓) : 내일로 넘길 것이 아니라 지금 즉시. 일돈(一頓) 은 일회(一回). 식사, 휴식, 때리는 것(打) 등의 선행위(禪行爲) 동작의 횟수를 나타내는 양사(量詞). 이  자

* 10) 저풍전한(這風顚漢) 운운  :「이 미치광이가 무서운 줄 모르고 호랑이 수염을 잡아당기다니.」이 말은 임제의 역량을 인정하는 황벽의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오(吳)의 손권(孫權)과 주환(朱桓)의 고사에 있는 이야기. 행록〈39-3〉참조.


〈15-2〉

≪주해≫

* 1) 위산(潙山) : 담주(潭州) 위산의 동경사(同慶寺)에 주석한 영우(靈祐 771~853). 백장회해(百丈懷海)에게 참학(參學)했으며, 임제의 스승 황벽과는 동문(同門)이다. 대원 선사(大圓禪師)라고 칭한다. 그의 전기는 정우(鄭愚)의 대원선사비명(大圓禪師碑銘 ;《전당문》820)에 상세하며《조당집》16,《송고전》11,《전등록》9,《위앙어록》(《五家語錄》)에 실려 있다.

* 2) 앙산(仰山) : 위산영우의 제자. 원주(袁州) 앙산에 주석한 혜적 선사(惠寂禪師 807~883). 통지 대사(通智大師)라고 칭한다. 그는 예언(豫言)의 명인(名人)이었으며, 중국의 소석가(小釋迦)로 불리었다. 위산과 함께 위앙종(潙仰宗)의 개조로 추앙받고 있으며, 사제간 친밀한 가풍(家風)으로 해서 위앙 부자(潙仰父子)라고 불렸다. 전기는 육희성(陸希聲)의 앙산통지대사탑명(仰山通智大師塔銘 :《전당문》813),《조당집》18,《송고전》12,《전등록》11,《위앙어록》에 상세하다. 본서의 감변(勘辨)과 행록(行錄)은 위앙 부자의 대화가 많이 첨부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미 당시 일가(一家)를 이룩한 위앙종의 권위를 빌어서 확립되어 가던 임제종의, 일가로서의 권위를 확립하고 황벽임제의 법계를 확립하려는 편자(編者)의 의도를 보여 준다.

* 3) 양자방지부자(養子方知父慈) : 자신이 아들을 낳아서 길러 보아야 아버지의 심정을 알 수 있다는 당시의 속담. 여기서는 황벽의 스승 백장과 자은(慈恩)에 대한 황벽의 심정을 위산이 나타낸 것.

* 이상은 임제의현이 아직 황벽의 회하(會下)에 있었을 때 일어난 이야기다. 이하의 감변(勘辨)은 모두 임제원 주석 이후에 일어난 일에 속하지만 이 일단의 이야기는 이례적인 것이다. 편자는 이것을 전형적인 임제어록의 감변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일단의 문제는 임제가 반두(飯頭)를 대신하여 황벽에게 일전어(一轉語)를 구한 것에 있다. 하나의 사건을 다른 사람들이 공통의 화제로서 비평을 가하고 새로운 문답이 오고갈 때 선의 세계는 앞의 대어(代語)보다 더욱 깊어지고 보다 풍부해지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어에 대한 2차적인 문답은 항상 당초(當初)의 그것을 밟으면서도 문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다루어지고 독자(獨自)의 총괄(總括)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최초의 테마는 없어져 버리고 전혀 다른 형태로 변화되는 것이다. 가장 구체적인 일상에서도 독자의 논리를 전개하는 선문답은 이와 같은 감변에 의해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경우, 최초의 반두의 말은 임제와 황벽, 그리고 위산과 앙산에 의해서 계속 이어져서 하루의 가장 일상적인 사실인 밥을 먹는 행위와 같은 가장 구체적인 문제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갖는 의미로 전화(轉化)되어 감으로써, 선에서의 진리란 가장 일상적인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앙산이 최후에 말한,「도적놈을 집에 두었다가 집을 절단 내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는 화엄(華嚴)의 성기설(性起說), 훗날 송학(宋學)의 전체대용(全體大用)의 사상으로 연결되는 원리를 전제로 한다.


〈16〉

≪주해≫

* 1) 마처래(什麽處來) 운운 : 상대방의 정체를 묻는 선문답의 전형. 남악회양(南岳懷讓)도 처음에 육조(六祖)를 만났을 때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여기서 유명한「설사일물즉부중(說似一物卽不中)」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 2) 사편읍좌(師便揖坐) : 임제 스님이 문득 읍()하고 스스로 앉은 것이 아니라, 임제 스님이 깍지를 끼어 손을 상하로 움직이면서 인사하여 승을 앉으라고 권한 것이다.

* 3) 사견승래(師見僧來) 운운 : 승이 오는데 불자(拂子)를 세운 것. 앞에서의 승과는 다른 사람. 불자를 세운 것은 선승(禪僧)의 인사 방법. 환영을 뜻한다.

* 4) 우견승래(又見僧來) 운운 : 제삼(第三)의 승().

* 이상은 임제원에 주석한 후의 일. 앞에서 나온〈5-1〉과 동일한 취지이다. 이 감변은 이 밖에도《전등록》27의 제방념미대별어(諸方拈微代別語)의 조(條).《조당집》18에도 전해지고 있다. 임제의 기연(機緣)으로 부터 유명한 것.


〈17-1〉

* 1) 보화(普化) : 마조하(下) 삼세. 반산보적(盤山寶積)의 제자. 풍광(風狂)의 선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화종(허무승)의 종조로서 추앙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전기는 알 수 없다. 보화라는 인물은 임제와의 교류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다. 《임제록》에서는 임제를 출세시켜 주는 조력자로 등장하고 있지만, 여기 일단에서는 임제를 바보로 취급하고 있음을 알수 있고 임제를 안목없는 놈(瞎漢)이라고 비판한 유일한 선승이다. 보화가 임제를 도와 줄 것이라는 앙산의 예언은 《임제록》〈46-2〉에 전하고 있다.

* 2) 좌찬(佐贊) : 협력하다 . 도와주다

* 3) 치(褫) : 옷 벗을 치. 빼앗다. 올바른 것은 성취하게 하고, 그릇된 것은 빼앗는다.

* 4) 극부(克符) : 임제의 법사로서 《전등록》12의 紙衣화상, 《천성광등록》제13권의 克符道者 등에 그의 전기를 간략히 전하고 있지만 자세히 알수 없다. 그는 평생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紙衣道者라고 불렀다.

* 5) 문신(問訊) :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 선어록에서 많이 보인다. 합장인사



〈17-2〉

≪주해≫

* 1) 보화(普化) : 마조하(下) 삼세. 반산보적(盤山寶積)의 제자. 이상한 행동으로 이름나 있으며, 보화종(普化宗, 虛無僧)의 개조. 상세한 전기는 불명(不明).《조당집》17,《송고전》20,《전등록》10에 보이는 이야기는 대부분 본록(本錄)에 실린 것을 전재(轉載)한 것이다.

* 2) 시주가재(施主家齋) : 신자가 스님을 집에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것.

* 3) 모탄거해(毛呑巨海) 운운 : 대소(大小), 광협(廣狹)의 차별을 초월한 세계. 《유마경》부사의품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말. 재가신자의 공양을 받으면서 재가의 거사 유마가 문수를 비롯한 불제자(佛弟子)를 한방에 초대한《유마경》의 고사를 상기시킨 것.

* 4) 위시신통묘용(爲是神通妙用) 운운 : 불가사의한 신통력의 작용인가, 원래 자명한 도리인가를 묻는 말. 위시(爲是)는 위당(爲當), 위부(爲復)와 같이 두 개의 문제를 놓고 물을 때의 용어.

* 5) 답도반상(踏倒飯牀) : 식탁을 발로 차서 쓰러뜨림.

* 6) 태추생(太麤生) : 매우 거친 모양. 생()은 형용사의 접미사.

* 7) 저리시십마소재(這裏是什麽所在) 운운 :「여기에 무슨 거칠고 세밀함의 차별이 있는가?」저리(這裏)는 불법의 진리, 그것은 오직 현재, 시주가의 식탁에 살아 있는 것일 뿐이라는 표현. 마치 유마의 방장에서는 모든 대소(大小), 추세(鹿細)의 차별을 초월하는 것과 같.


〈17-3〉

≪주해≫

* 1) 금일공양 하사작일(今日供養何似昨日) :「오늘 대접은 어제에 비해서 어떠하오?」하사(何似)의 사는〈14-44〉의 설사(說似)를 참조.

* 2) 득즉득(得卽得) : 옳기는 하지만.

* 3) 사내토설(師乃吐舌) : 놀란 모습. 기가 질러서 두 손 다 들었다는 표현.

* 보화의 등장은 본서가 갖는 매력의 하나이다. 보화, 그 사람의 전기는 임제와의 관계 때문에 알려진 것이다.《임제》과《전등록》에는 임제가 주연(主演), 보화(普化)가 조연이다. 임제를 돋보이기 위한 부득이한 정리였다면 그것뿐이지만 보화전(普化傳)에 관한 한《조당집》쪽이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천연(天然)의 선승으로서 모습은 보화 쪽이 압도적으로 나타난다.《임제록》에 의하면 임제가 황벽 곁을 떠나서 진주에 도착했을 때 보화는 이미 이 지방에서 그 특유한 풍광(風狂)을 연출하고 있다. 모두 임제의 친구 앙산(仰山)의 예언대로였다.《임제록》은 앙산의 예언을 끌어냄으로써 주연으로서의 임제의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

  보화, 이 사람의 언행은 평상인(平常人)의 의표를 참으로 잘 찌른다. 그는 임제와 함께 어느 신자 집에 공양 초청을 받고 간다.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앞에 놓고 어제의 공양과 오늘의 공양의 대비가 문제되었을 때, 보화는 갑자기 식탁을 차버린다. 임제가,「신자의 집에서 너무 거칠지 않느냐」고 주의를 주자 보화는 도리어「불법에 무슨 세밀함과 거친 것이 느냐」고 큰소리를 친다. 평생 거칠기로 유명했던 임제도 이때만은 두 손을 들고 만다. 원래 불법의 본질은 기성의 노후된 가치나 차별적인 규준을 깨버리는 근원적인 자유에 있다. 보화의 매력은 그런 불법 본래의 생활방식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현실 속에서 꾸려가는 데 있다. 그의 삶은 너무도 자유로웠기 때문에 진주의 작은 승단을 이끌고 있던 임제 쪽이 자칫 상식에 빠진 것이다.

  신통묘용(神通妙用)에의 관심은 위진육조(魏晋六朝) 불교의 특색이다. 보화는 그러한 신이(神異)를 일상의 다반사 속에서 해소하는 동시에 거꾸로 일상의 다반사로 이어지는 평범한 생활을 불가사의한 신이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사람이다. 보화의 주변에는 항상 신이가 끊이지 않는다. 임제의 언행을 묘하게 윤색시키고 있는 사람도 바로 이 천연의 풍광(風狂) 보화이다.


〈18〉

≪주해≫

* 1) 하양목탑장로(河陽木塔長老) : 이 두 사람의 전기는 분명하지 않다.《전등록》과《종문통요속집(宗門統要續集)》6, 보화(普化)의 장(章)에도 이야기 속에 실려 있는 것이 보일 뿐이다.

* 2) 지로(地爐) : 승당(僧堂) 안에 땅을 파서 설치한 난로.경

* 3) 체풍체전(掣風掣顚) : 미치광이 같은 짓을 나타냄. 상식을 벗어난 행동.

* 4) 지타시범시성(知他是凡是聖) :「범부(凡夫)인가, 성인인가?」「바보인가, 위인(偉人)인가?」지타(知他)는 반어(反語)로서 모르겠다는 뜻.「시(是)……시(是)」는 ……인가……인가」의 선택적 의문의 구문(構文). 타(他)는 어조(語助).《벽암록》76칙의「지타시황시록(知他是黃是錄)」의 예와 같다.

* 5) 보화입래(普化入來) : 유포본(流布本)에는 입중래(入衆)로 되어 있다.

* 6) 신부자(新婦子) :〈14-6〉을 보라.

* 7) 노파선(老婆禪) : 손자에게 친절한 할머니와 같은 선.

* 8) 소시아(小厮兒) : 작은 꼬마. 시()는 주로 나무를 하거나 말을 기르는 꼬마 노예. 비천한 신분의 소년.

* 9) 각구일척안(却具一隻眼) : 견지가 높다는 말. 두 눈 말고도 특별한 눈을 하나 더 가졌다는 표현. 여기서 일척안(一隻眼)은 한 개의 눈, 애꾸눈을 가리키지만 각()자에 의해 의미가 상기(上記)와 같이 달라진다.

* 보화가 임제를 평하여,「그래도 한 쪽 눈을 갖추었구나〔却具一隻眼〕」라는 한 것이,《조당집》17 보화의 장(章)에서는,「네놈은 단지 한쪽 눈밖에 없다〔林際斷兒只具一隻眼〕」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전등록》과《임제록》에서는 이 아홉 글자를「臨濟小厮兒却具一隻眼」으로 고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내용도 완전히 달라진다. 지(只)와 각()의 한 글자 차이로 의미가 반대로 되는 것이다. 이것은 보화를 통해 임제를 끌어올리려는 편자의 수단이다. 보화 쪽에서 본다면 임제는 담판한(擔板漢)이다. 즉,「판자를 지고 있어서 한 쪽밖에 볼 수 없는 녀석」인 것이다. 래디컬(radical)하지만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앞의 단(段)에서 보화가 식탁을 발로 차  넘어뜨린 것도 임제의 상식을 깨는 행위이다.


〈19〉

≪주해≫

1) 생채(生菜) : 익히지 않은 야채.

2) 저적(這賊) 운운 : 도둑은 상대방의 물건을 훔친다. 미혹(迷惑)에 빠져 있는 자에게는 그 미혹을 훔치고, 깨달음에 집착해 있는 자에게는 그 법집(法執)을 훔치는 것이다.


〈20〉

≪주해≫

* 1) 명두래명두타(明頭來明頭打) 운운 : 이 구절은 난해하다. 종래에는 명두래(明頭來)하면 명두타(明頭打) 운운(云云)으로 읽었는데〈14-7〉에서와 같이 명두(明頭)를 차별, 암두(暗頭)를 평등으로 보아서 동산오위(同山五位)의 정(正)과 편(徧)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명암(明暗)을 글자의 뜻 그대로 아침과 밤의 뜻으로 보아서《조당집》17 보화의 장에 실린 바와 같이,「보화는 매일 해가 지면 묘지에서 자고 아침이 되면 거리로 나갔다. 방울을 흔들면서 밝은 것이 와도 친다, 어두운 것이 와도 친다」라는, 어둠과 빛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신회(神會) 화상의 단어(壇語)에도 다음과 같이 법어가 있다.「그대들에게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의 의미를 설법해 주리라. 허공의 예를 들면, 허공은 원래 동(動)도 정(靜)도 없지만 밝은 아침에는 밝은 하늘, 어두운 밤에는 어두운 하늘이 된다. 어두운 하늘은 밝은 하늘과 다름이 없다. 명암이 제멋대로 왔다갔다 할 뿐으로 허공은 처음부터 동정(動靜)이 없다. 번뇌와 보리에 대해서도 그 관계는 마찬가지이다. 미(迷)와 오(悟)는 확실히 다르지만 보리(菩提)의 본성은 처음부터 다름이 없다.」이 설법에서와 같이 허공과 명암은 항상 관련이 있는 언어이다.

* 2) 선풍타(旋風打) : 회오리바람과 같이 어떠한 경계도 자유롭게 초월함. 타()는 탈(奪), 살(殺)의 뜻.

* 3) 연가타(連架打) : 계속 치는 반복 행위. 연가(連架)는 곡식을 탈각(脫殼)할 때 쓰는 도리깨.

* 4) 총불여마래시(總不與麽來時) : 명암(明暗). 사방팔면으로 오지 않을 때. 종래에는「총()히 불여마(不與麽)로 올 때는」이라고 읽었으나 불여마는 숙어가 아니다.

* 5) 내일대비원리유재(來日大悲院裏有齋) :「내일 대비원래 대진무(大振舞)가 있다 」는 뜻. 대비원은 당시 진주에 있던 작은 절.

* 6) 아종래의착저한(我從來疑著這漢) :「내가 평소부터 이자를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뜻.

* 보화에 관한 이야기로는 이 일단(一段)이 마지막 천화(遷化)의 장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명두(明頭)와 암두(暗頭)의 이야기는 허공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데, 아마도 아침과 밤의 뜻이라고 본다. 두(頭)는 여기서는 첫 번째를 표시하는 것으로서, 명두란 빛이 밝아 오는 조짐을 가리킨다. 이 두(頭)자의 용법은《전등록》11의 앙산의 장에서 앙산이 스승 위산을 따라 개간(開墾)할 때의 이야기로서,「저기(遮頭)는 저렇게 얕고 여기(那頭)는 이렇게 높습니다〔遮頭得恁麽低. 那頭得恁麽高〕」라는 것과 같이 쓰이고 있다.

  《조당집》은 보화의 일상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보화는 매일 해가 지면 묘지에서 자고 아침이 되면 거리에 나갔다. 방울을 흔들면서 그는 외쳤다.〈밝은 것이 와도 치고 어두운 것이 와도 친다.〉임제는 시자를 보내어 묻게 했다. 상좌가 와서 물었다.〈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것은 어떻게 하느냐?〉〈내일은 대비원에서 공양이 있다.〉상좌의 이야기를 듣고 난 임제는 기뻤다.〈어떻게 하든지 그를 만나고 싶다.〉얼마 후 보화가 임원에 왔다. 임제는 곧 특별히 공양을 준비해 준다. 보화가 반찬만 다 먹어 버리자 임제는 말했다.〈그대가 먹는 것은 마치 당나귀 같다.〉보화는 물러나서 두 손을 땅에 짚고 당나귀처럼〈에헤엥〉울었다. 임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화가 말했다.〈마굿간지기 소년이여. 너는 외눈밖에 없구나!〉」

  마치 한 폭의 그림, 한 편의 시를 보는 것 같다, 사람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죽어가는 것일까? 아무도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확한 것은 우리가 지금 현재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선(禪)의 풍광(風狂)은 그 일만을 확인하기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보화(普化)는 매일 묘지에서 나와 묘지로 돌아간다. 밤과 낮이 그의 주변을 오고갈 뿐이다.「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것」이라고 묻는 임제는 이미 일종의 추상에 빠져 있다. 명암(明暗)은 현(賢)과 우(愚), 안과 밖, 음과 양, 어떻게든 나누어지지만 대립이 있는 것은 모두 명암이다. 거기서부터 윤회(輪廻)가 시작된다. 그러나 보화에게는 낮과 밤이란 가장 구체적인 감각만이 있었다.

  임제는 아마도 앞에서 인용한 신회(神會)의,「명암은 스스로 오고 갈 뿐 허공은 동요함이 없다」는 근원적인 진실을 보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허공과 명암을 둘로 나누는 교지(狡智)가 숨어 있다. 오고가는 어둠과 빛 이외에 허공은 없다.「내일 대비원에서 공양이 있다」라는 보화의 말을 임제의 좁은 구석을 찌르는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것은 비판한다는 분별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이므로 이 비판은 더욱 엄격한 것이다. 날이 밝으면 거리로 나가고 어두우면 묘지로 돌아가는 보화에게 있어서 내일의 대비원은 가장 확실한 현재이다. 보화가「내일 대비원에 공양이 있다」고 대답했을 때, 거기에는 아무런 꾸밈도 없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이 오고가는 허공 자체의 대범한 움직임이었을 뿐이다.


〈21-1〉

≪주해≫

* 1) 유일노숙(有一老宿) : 어느 연배(年配)의 승(僧).

* 2) 호개초적(好箇草賊) : 백성(百姓). 일반. 호개(好箇)는「적당한」, 개()는 조사(助辭).


〈21-2〉

≪주해≫

* 1) 환유과야무(還有過也無) :「허물이 있느냐?」야무(也無)는 구절의 끝에 쓰이는 의문사. 여기서의 야()는 단정(斷定)의 뜻을 나타내는 조사.

* 2) 빈가유과(賓家有過) 운운 :「객에게 허물이 있느냐, 주인에게 허물이 있느냐?」

* 3) 남전(南泉) : 지주(池州) 남전산(南泉山)에 주석했던 보원(普願). 마조(馬祖)를 사법(嗣法)한 사람이며 백장(百丈)과는 동문(同門)이다. 각별한 교학적(敎學的) 소양을 함께 갖춘 중국선의 대표적 선사들 중의 한 사람.《조당집》16,《송고승전》11,《전등록》8,〈남전어요(南泉語要)〉(《古尊宿語錄》12)에 전기가 실려 있다. 임제보다 조금 빠른 시대의 인물로서 본문의 이 이야기는 맞지 않는 것 같다.


〈22〉

≪주해≫

* 1) 입군영부재(入軍營赴齋) : 군영(軍營)의 초청을 받고 감. 하북(河北)의 신흥무인사회(新興武人社會)가 발흥하는 난세(亂世)에 법을 설한 임제는 자주 진중(陣中)의 초청을 받았다.

* 2) 원료(員僚) : 장군 휘하의 장교.

* 3) 직요도득(直饒道得) 운운 : 무엇이라고 대답해도 나무토막과 다르지 않음. 노주에 의지해서 원료를 비평한 것.

* 노주(露柱)는 풍우(風雨)를 견디며 묵묵히 서 있는 나무기둥이다. 병마(兵馬)가 분주한 진주 군영(鎭州軍營)의 노주는 종일토록 다망(多忙)하다. 임제는 노주를 향하여 말한다.「피곤한가.」병영 문 앞에서 임제를 맞이한 원료(員僚)도 노주와 같은 인생이었다. 임제도 역시 노주와 같은 인이었다.《조당집》4,《전등록》14 석두(石頭)의 장에 다음과 같은 좋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승(僧)이 물었다.〈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선 오신 뜻입니까?〉선사께서 대답했다.〈노주에게 물어 보라.〉〈잘 모르겠습니다.〉〈나도 몰라.〉」


〈23〉

≪주해≫

* 1) 원주(院主) : 절의 살림을 맡아보는 스님.

* 2) 주중조황미거래(州中糶黃米去來) : 주()는 진주(鎭州)의 수부(首府). 황미는 쌀의 한 종류. 묵은 쌀이 아니다. 조()는 당대(唐代)의 농정(農政) 용어로, 미곡 수확이 풍부할 때 정부에서 쌀을 사서 한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쌀이 귀해지고 쌀값이 올라갈 때 적정 가격으로 다시 방출하는 제도. 당시 임제가 주석하고 있던 임제원도 자급자족하는 선원(禪院)으로서의 기틀을 갖추고 있었다. 임제는 방금 쌀을 팔고 돌아온 원주와 전좌의 수완(手腕)을 시험해 본다. 이들은 모두 일원(一院)의 경계를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항상 농작(農作)의 풍년과 흉년, 쌀값이 오르고 내리는 현실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임제는 자신의 본분을 이 원주와 전좌에게 비추어 보인다.

* 3) 환조득저개마(還糶得這箇麽) : 저개(這箇)란 임제가 지팡이로 그은 한 일(一)자. 팔 수 있는 값이 없다. 값이 없는 진성(眞性)을 가리킨다.《전등록》5에서 한 승이 청원행사(靑原行思)에게,「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大意)입니까?」라고 묻자 청원은,「노릉(盧陵) 지방의 쌀값은 어떤가?」라고 되받았다. 쌀값을 불성에 비유한 예는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24-1〉

≪주해≫

* 1) 상간(相看) : 서로 만나봄. 면접(面接). 다음의「사문 좌주강하경론(師問座主講何經論)」의 경론을 대정장경본(大正藏經本)에서는 경설(經說)로 오기(誤記)하고 있다.

* 2) 모갑황허(某甲荒) 운운 :「저는 부족하지만 유식(唯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 여기서의 모갑은 신분이 얕은 사람이 자신을 의식하고 말하는 일인칭 대명사. 황허는「거칠고 비었으나」라는, 비하(卑下)의 표현이다.《백법론(百法論)》은 법상종의 중요 전적. 인도의 세친(世親)의 저작으로 현장(玄奘)이 중국어로 번역한 유식(唯識)의 논서이다.

* 3) 명득즉동(明得卽同) 운운 : 확실히 판단하면 같고 확실히 판단하지 않으면 다르다는 뜻. 명득(得)은 학문(學問), 명부득(明不得)은 절학(絶學)의 뜻.


〈24-2〉

≪주해≫

* 1) 낙보(樂普) : 풍주(灃州) 낙보산(樂普山) 또는 소계산(蘇溪山)에 주석한 원안(元安 834~898) 선사. 후에 협산선회(夾山善會)의 법사(法嗣)가 됨.《조당집》9, 《송고승전》12,《전등록》16에 전기가 실려 있다.

* 2) 시자(侍者) : 스승의 신변에서 일상의 잡무를 도와 주는 승려.

* 불교학자 좌주에 관한 것은〈1-4〉에서도 보인다. 좌주는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의 전문가이다. 전문가는 항상 연구대상을 한정해 놓는 대신, 그 한정된 영역에서는 불분명한 것을 남겨 놓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다른 전문가의 영역을 존중한다. 이 좌주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이다. 전문이랄 게 없는 선자(禪者)는 오히려 전문이 없는 전문가로 떨어지고 만다. 후반에 시자 낙보가 좌주의 한계를 지적하지만 동시에 낙보는 스스로 전문가의 한계에 떨어지고 만다. 그것은 다만 전문가화(專門家化)한 것일 뿐이다.

'임제록(臨濟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제록주해18  (0) 2007.08.21
임제록주해17  (0) 2007.08.21
임제록주해15  (0) 2007.08.21
임제록주해14  (0) 2007.08.21
임제록주해13  (0) 2007.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