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43 |
14-21 보고 듣는 이가 누구인가 道流야 大丈夫漢이 更疑箇什麽며 目前用處가 更是阿誰오 把得便用하야 莫著名字를 號爲玄旨니 與麽見得하면 勿嫌底法이니라 古人云, 心隨萬境轉이나 轉處實能幽라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하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대장부가 또 무엇을 의심하는가? 눈앞에서 작용하는 이가 다시 또 누구인가? 잡히는 대로 쓰며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심오한 뜻이다. 이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싫어할 것이 없는 도리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 흘러가지만 흘러가는 그곳이 참으로 그윽하여라. 마음이 흘러가는 그곳을 따라 성품을 깨달으니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도다.’라고 하였다.”
강의 ; 사람들의 마음은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매우 심오하고 불가사의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높이 그 넓이에 미칠 수가 없다. 그 헤아릴 수 없는 작용은 신묘불측(神妙不測)이다. 그래서 언어로써 표현할 길이 없고 생각으로 따를 수 없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이 순간 보아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보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들으며 작용하고 있는 그것이다. 그러한 이치를 잘 알아서 추호의 의심도 없고 양변에 떨어지거나 편견이 없으면 대장부다. 옛 인도의 23조(祖)인 학륵나 존자가 아직 법을 깨닫기 전에 학의 무리들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래서 22조 마라나 존자를 만나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대가 옛날 제자들을 데리고 용궁에 가서 공양을 받았는데 그 제자들이 박복하여 학의 몸을 받은지 5겁이나 되었다. 바로 그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이 해탈할 수 있는 길을 물으니 위와 같은 게송을 설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유명한 게송이다. ‘마음이 흘러가는 그곳을 따라 성품을 깨닫는다.’는 말은 수처작주(隨處作主), 즉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상황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텅 빈 마음자리를 잘 누리어 남이 나를 어떻게 취급하든 나는 나의 자리를 잃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이 나를 때렸다. 남이 나를 욕했다. 모함했다. 비방했다. 손해를 입혔다. 망신을 주었다. 내 것을 빼앗아 갔다. 등등에 흔들리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온갖 몹쓸 병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몸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세월이 나를 늙게 한다. 는 등등에도 소요자재(逍遙自在)하고 여여무심(如如無心)하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으리라. 본래로 그런 것이 없는 텅 빈 마음의 세계에서 자유자재하게 노닐 뿐이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고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이 금쪽같은 구절은 반드시 외워야 한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잘 이해하면 평생의 좋은 양식이 될 것이다. |
'임제록(臨濟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제록강설/시중45/무비스님 (0) | 2007.09.03 |
---|---|
임제록강설/시중44/무비스님 (0) | 2007.09.03 |
임제록강설/시중42/무비스님 (0) | 2007.09.03 |
임제록강설/시중41/무비스님 (0) | 2007.09.03 |
임제록강설/시중40/무비스님 (0) | 2007.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