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16. 천자의 생일에 돈에 매수당한 선객을 물리치다 / 죽장 암(竹莊岩)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7:57
 

 

 

16. 천자의 생일에 돈에 매수당한 선객을 물리치다 / 죽장 암(竹莊岩)스님


죽장 암(竹莊岩)스님은 태주(台州) 도솔사(兜率寺)의 주지다. 태어나면서부터 큰 기개와 도량이 있어 선배 스님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으므로 그를 미워하는 자가 많았다. 전조(前朝)에서는 천수절(天壽節:천자의 생신)에 반드시 각 고을마다 여러 사찰 주지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설법을 청하였다. 때마침 죽장스님이 그 일을 맡게 되자 그를 미워하던 자들이 많은 선객을 돈으로 매수하고 화두를 물어 기봉(機鋒)을 꺾어놓으려고 하였다. 이 일을 주관하는 자가 그 사실을 알고 모두 전해주었으나 죽장스님은, 집안 일은 맡은 자가 할 일이고 법좌에 올라 설법하는 일은 주지의 임무이니, 그대는 허튼 말을 지껄이지 말라고 하였다.

그 이튿날 천령사(天寧寺)에 이르러 방장실의 객석에 좌정하여 여러 사찰의 주지들과 태연스럽게 담소하다가 북소리가 울리자 가마를 타고 법당에 갔다. 많은 관리들과 공손히 합장을 하고 법좌에 올라 축향(祝香)을 끝낸 뒤 옷깃을 여미고 자리에 앉으니, 화두를 묻는 선승들이 끝이 없었으나 죽장스님은 물 흐르듯 막힘없이 답했을 뿐 아니라 그 말로 되물으니, 그들 스스로 물러나 패배를 자인하게 되었다. 이처럼 너덧 사람을 꺾는 동안 관리들은 오래 서 있는 데 싫증을 느낀 나머지 화두를 물으러 나오지 못하도록 중지시켰다. 드디어 스님은, 마치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우레가 진동하듯, 번갯불이 번쩍이고 별똥이 튀듯 종지와 화두를 들어 설법하니 사람들은 모두 기가 질렸으나 그만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설령 그를 미워하던 자에게 천만 개의 혓바닥이 있었다 하여도 스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이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장수를 누리지 못했으니, 총림에 복되는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