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7. 오랜 세월을 모시다〔歷年執侍〕 당(唐)나라 초현 통(招賢通)스님은 젊어서 6관(六官: 당나라 後宮의 官名)의 태사(太使)가 되었다. 후에 조과(鳥窠)스님에게 나아가 출가할 뜻을 말씀드리니 스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분연히 출가할 뜻을 밝히니 마침내 머리를 깎아 주었다. 옆에서 시봉하면서 부지런히 애를 쓰고 게을..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3장) 6. 정침에 모시고 받들다〔迎居正寢〕 당(唐)나라 석상 경제(石霜慶諸: 807~888)스님은 도오(道吾:769~835)스님에게 법을 얻고 후에 유양(劉陽)땅 동산(洞山)에 은거하였다. 그 뒤로 유양에 고불(古佛)이 계시다는 말이 있었으며 많은 납자들이 그에게 의지하였다. 도오스님이 돌아가실 무렵에는 당신이 거느리던 대중을 떠나 경제스님에게 갔다...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3장) 5. 스승 떠났던 것을 스스로 책망하다〔離師自責〕 당(唐)나라 청강(淸江)스님은 어려서 세상이 허깨비나 물거품 같다는 것을 깨닫고, 담임율사(曇一律師)께 예의를 갖춰 스승으로 모셨다. 경법(經法)을 읽고 외움에 보는대로 훤히 알았으니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납자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준마로다." 라고 하였다. 하루는 스승과 약..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3장) 4. 눈이 무릎 위까지 쌓이도록 서 있다〔立雪過膝〕 위(魏)나라 신광(神光: 487~593)은 학문과 지혜가 세상에서 으뜸이었다. 달마스님이 서역으로부터 중국으로 오자 신광이 찾아가서 그를 스승으로 섬기려 하였으나 달마스님은 한 마디도 해 주지 않았다. 어느날 저녁, 큰 눈이 내리는데 신광은 뜰의 섬돌에 서 있었다. 새벽이 되니 눈이 그 무릎 위까지 쌓..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3장) 3. 스승을 위해 예불 참회하다〔爲師禮懺〕 진(晋)나라 법광(法光)스님은 하비(下邳) 사람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계모를 섬겼는데 효행으로 소문이 났었다. 그 후 출가하여 담인(曇印)스님에게 사사하였다. 한번은 담인스님이 병으로 위독하였는데, 법광은 이레를 밤낮으로 지성으로 기도하며 예불. 참회하였다. 칠일째 되는 날, 홀연..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3장) 2. 회초리를 받고 자신을 책망하다〔受杖自責〕 진(晋)나라 법우(法遇)스님은 도안(道安)법사를 스승으로 섬기다가 그 후 강릉 장사사(長沙寺)에 머물렀다. 여러 경전을 강설하였는데 배우는 사람들이 4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 때 한 스님이 술을 마신 것을 알고 법우스님이 벌을 주었으나 쫓아내지는 않았다. 도안법사가 그 일을 멀리서 듣고서는 대..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3장) 스승을 존중하는 행〔尊師之行〕-1. 밭에서 힘써 일하다〔力役田舍 진(晋)나라 도안(道安: 314~385)스님은 12살에 출가하였는데, 총명하였으나 모습이 형편없어 스승에게 중히 여겨지지 못하고 3년이나 밭일을 하였다. 그러나 힘써 일하면서도 조금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수년이 흐른 후에 비로소 스승에게 공부할 경전을 청하니 스승께서 「변의경(辯意經)」한 권을..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총 평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6화(六和)* 를 출가자〔僧〕라 하며, 그들은 인욕을 닦으므로 엄격함을 취할 필요는 없다." 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말하는 엄격함이 혹독한 엄격함이 아니라 바른 엄격함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엄격하고 바름으로써 마음을 다스림다면 심지(心地)가 단정해지고, 엄격하고..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2장)13. 세속 일을 담론하지 않다〔不談世事〕 송(宋)나라 광효 안(光孝安)스님이 청태사(淸泰寺)에 머물고 계실 때, 선정(禪定)에 들어간 상태에서 두 스님이 기둥에 기대어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천신(天神)이 호위하고 경청하더니, 한참 있다가는 뿔뿔이 흩어져 가버렸다. 다음에는 악한 귀신이 침을 뱉고 욕을 하더..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2장)12. 밤새도록 참선하다〔終夜拱手〕 송(宋)나라 원통 거눌(圓通居訥: 1010~1071)스님은 정(定)에 들 때마다, 처음에는 편안히 차수(叉手)하였다가 한밤중이 되면 점점 가슴까지 손이 올라갔다. 시자는 항상 새벽닭이 울때까지 그런 모습을 보곤 하였다.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