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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1

通達無我法者 2007. 1. 21. 16:42
 

<아함경 이야기>

1. 책의 구성

  아함경은 가장 초기 경전으로서 붓다의 행적과 깨달음에 대해 가장 원래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아함경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문제와 고민 때문에 출가한 붓다가 7년 동안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과정과 그가 깨달은 연기(緣起)에 대해 불교신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학문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2. focus

① 출가 동기

  다른 경전이나 삶들의 이야기에서는 붓다가 '중생 구제'를 위해 출가했다고 나오는 것에 대해 많은 의심이 생겼었다.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중생의 구제를 위해 설법을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를 보고서 출가 동기마저도 그렇게 확대해 버리면 붓다가 인간이라는 것과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것에 의심이 가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붓다의 인간성을 강조하면서 출가 동기를 '붓다 자신의 문제와 고민'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신화적인 관점보다는 붓다의 인간성을 나타내는 데에는 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② 깨달음이란

  불자의 최대 목표는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 그 깨달음의 경지는 어떤 것인가? 옛날 이야기의 신선들처럼 미래를 예견하고 도술을 부리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나는 여러 불교 서적을 접하면서 혼란을 겪었다.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갈등을 느끼는 모습, 병에 걸려 누워 있는 모습, 제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 등은 내 머리 속에 있던 깨달은 자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범인(凡人)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깨달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어렴풋이 나마 그것의 참모습을 알게 되었다. '깨달음'이란, 인간의 육체적인 제약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 세상을 바르게 보고 그 본 것을 바르게 생각하여 바른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더불어, 깨달았다고 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붓다가 강조한 '불방일(不放逸)'에 힘 쓸 때에만 그 깨달음이 온전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③ '인생은 고(苦)이다'의 해석

  평소 나는 '인생은 즐겁다'라는 생각을 어려울 때마다 상기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곤 했다. 그런데 붓다는 '인생은 고이다'라고 말했고, 즐겁다고 잘못 알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또 혼란이 왔다. 그러나, 그 혼란은 책을 읽어감에 따라 저절로 사라졌다. 욕망 자체는 무기(無記)일 뿐이며, 그의 작용에 따라 처음으로 선악(善惡)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쾌락에 빠져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인생은 즐겁다'라고 외치면 그것은 '낙전도(樂顚倒)'가 되지만,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했을 때나 남을 도와주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은 선한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서지사항: 마쓰다니 후미오, 아함경 이야기, 현암사, 1976

아함경



1. 석가족

2. 정각

3. 보리수 밑에서의 생각

4. 첫 설법

5. 네 가지 진리

6. 전도(傳道)

7. 전도(傳道)

8. 눈 있는 이는 보라

9.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것

10. 내재하는 방해물

11. 연기(緣起)

12. 이는 고(苦)이다

13. 이는 고(苦)의 멸(滅)이다

14. 나도 밭을 간다

15. 열반(涅槃).


   아함경 -사상-


16. 불방일(不放逸)

17. 문답식

18. 착한 벗


   아함경 -실천-


19. 정사(精舍)

20. 포살(布薩)

21. 법좌(法座)

22. 삼보(三寶)

23. 이타행(利他行)

24. 불해(不害)

25. 자비(慈悲)








1. 석가족.


대왕이시여, 저 히마반트(雪山)의 기슭

예전부터 코사라 국에 속하는 땅에

재물과 용맹을 아울러 갖춘

한 단정한 부족(部族)이 삽니다.


그들은 ꡐ태양의 후예ꡑ라 일컬어지고

내 생족(生族)의 이름은 사캬,

대왕이시여, 나는 그 집에서 나와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온갖 욕망을 좇고자 했음이 아니라.

(「經集)3:1出家經)


기원전5세기경, 히말라야 기슭의 고원 지대, 오늘날의 네팔의 타라이 지방에 카피라바투(Kapilavatthu)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도시가 있었다.


중국의 역경자들이 ꡐ가비라위(迦毘羅衛)ꡑ라고 번역한 고장이다. 붓다는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살던 사캬족의 크샤트리아(Ksatriya) 집안에서 태어났다.


즉 왕족 계급이었으며, 고타마(Gotama)가 그 이름이었다. 그러기에 경전은 자주 ꡐ사캬족의 아들 고타마(Gotama Sakya-putta)ꡐ라고 붓다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스물 아홉 살쯤 되었을 때, 집을 나와서 사문(沙門)이 되었다. 그는 곧 갠지스 강(恒河)을 건너 남방에 있는 마가다(Magadha)국으로 갔다.


마가다 국은 당시 신흥 국가여서 모든 면에 활발한 생기가 돌았으며, 그 수도 라자가하(王舍城,Raja-gaha)에는 자연히 새로운 사상가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도 또한 그곳에 가서 새로운 사상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한 것이겠다. 한 경(「경집)3:1출가경)은 그 무렵 어느 날의 붓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붓다는 성도(成道)하시기 전

마가다 국의 산에 에워 싸인 서울로 가셨다.

참으로 아리따운 상호(相好)에 빛나시며

탁발(托鉢)을 위해 라자가하의 거리로 드셨다.


▶ ※상호:용모․형상. ꡐ상ꡑ은 드러나게 잘 생긴 부분. ꡐ호ꡑ는 그 세부적인 것. 붓다는 32상․80종호를 갖추었다 한다.


▶ ※탁발:집집마다 다니면서 먹을 것을 얻는 것.


사문이란 팔리 어의 사마나(Samana), 또는 산수크리트의 슈라마나(Sramana)의 음사(音寫)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그 무렵의 새 사상가와 수도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은 모두 집에서 나와 전통적인 사회의 구속을 벗어난 다음, 자유로이 행동하고 사색하면서 하루하루의 생활은 전적으로 탁발과 공양(供養, 음식이나 옷 같은 것을 붓다나 수도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것.)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 날이 ꡐ사캬족의 아들 고타마ꡑ도 역시 사문의 이런 관행에 따라 라자가하의 거리에 나타나서 탁발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모습을 눈 여겨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 나라의 왕인 빔비사라(Bimbisara)였다.


왕은 높은 다락에서 넋을 잃은 듯 바라보다가, 이윽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경전은 그 전문을 게(偈, 불교의 이치를 나타낸 운문.)로 기록하고 있거니와, 그것을 산문으로 바꾸어 놓으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ꡒ모두들 저 사람을 똑똑히 보아라. 의젓하지 않은가! 그 용모와 행동거지로 볼 때, 아마 천한 출신은 아닌 것 같구나. 곧 누가 가서 저 사람 있는 곳을 알아 가지고 오너라.ꡒ


명을 받은 사신은 그 뒤를 밝았다. 그 사람은 탁발을 마치자, 교외에 있는 ꡐ판다라ꡑ라는 산의 동굴로 돌아갔다. 그 산은 라자가하를 에워싼 다섯 산 중의 하나이다.


그런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까닭에 ꡐ산에 에워 싸인 서울(Giribbaja)ꡐ이라고 하는 것이다. ꡒ대왕이시여, 그 사문은 판다바의 전면에 있는 암굴 속에 호랑이처럼 소처럼 사자처럼 앉아 있더이다.ꡒ


이 말을 들은 왕은 직접 동굴로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마주앉아ꡐ즐거운 인사ꡑ를 나눈 다음, 이렇게 말을 걸었다.


그대는 젊도다, 늙지 않았고

양양한 전도를 지니고 있도다.

꽃 같은 청춘이 그대 것이요

유서 있는 가문에 태어난 듯하도다.


나는 주리니 바라는 녹(祿)을.

그대여 오라 코끼리 떼 앞세운

내 막강한 군대에 참가하라.

나는 묻노니, 그대여 내력을 말하라.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붓다는 크샤트리아 출신이다. 어엿한 왕족․무사의 가문이다. 지금은 삭발하고 가사를 걸쳐 사문의 몸이 되어 있거니와, 타고난 의젓함은 아직도 그 몸에 넘치고 있었으리라. 왕은 벼슬하기를 권하며 그 내력을 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 앞에 인용한 두 절로 된 운문이다. 거기에는 사캬족 이야기가 나온다. 히마반트의 기슭에서 사는 한 부족이라고………. 히마반트란 눈으로 덮인 산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히말라야를 말한다.


그 고장은 또 예전부터 코사라 국에 속해 왔다고도 설명되고 있다. 여기서 ꡐ속하는ꡑ이라고 번역한 것은 팔리 어로는 niketa 라고 하여,ꡐ그 휘하에ꡑ라는 뜻이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사캬족의 정치적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거기에는 부족의 칭호로서ꡐ태양의후예ꡐ라는 말이 나와 있고, 생족의 이름은 ꡐ사캬ꡑ라고 한다는 것이 설명되어 있다.


아마도 사아캬(Sakiya)또는 사캬(Sakya)는 코리아(拘利, Koliya)족과 함께 ꡐ태양의 후예(Adicca-bandhu)ꡑ라고 불리는 부족에 속하는 포족(胞族, phratry)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사캬족이라는 이름은 붓다 - 사캬족의 아들 고타마 -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사람들은 붓다를 일컬어 ꡐ사캬족에서 나와 출가한 사문ꡐ이라고 하거나, ꡐ가캬 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ꡐ라고 했다.


우리 후세 사람들도 이 분을 우러러서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석가족에서 나온 성자)또는 석존(釋尊)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명칭에 의해 사캬족의 이름은 불교의 문헌뿐 아니라 널리 일반에게까지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캬족 자체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밖에는 알 수가 없다. 또 후세 사람들이 사캬족에 관해 기록한 것들은 그 진상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신빙성이 없다.


다행히도 여기에 붓다 자신에 의해 설해졌다는2절의 게가 전해 오므로, 이 성자를 낳은 부족에 대한 믿을만한 소식을 그나마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2. 정각.


일구 월심 사유하던 성자에게

모든 존재가 밝혀진 그 날,

그의 의혹은 씻은 듯 사라졌다.

연기(緣起)의 도리를 알았으므로.

(『自說經)1:1菩提品)


사캬족의 아들 고타마는 마가다 국에 머물면서7년 동안이나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 하고자 온갖 정성을 다 바쳤다.


그런 끝에 라자가하(王舍城)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루베라의 네란자라 강(尼連禪江)기슭에 있는 핍파라(pippala)나무 밑에서 마침내 그는 크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 나무를 보리수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보리수 밑의 정각(正覺)또는 대각 성취(大覺成就)라고 일컫는다.


그것은 그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와 아울러 불교의 모든 흐름이 그 순간에 결정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하여 이루어졌는가? 또 어떤 사상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가? 무릇 불교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이제 나는 새로운 시각에서 구명해 가고자 한다. 여기에서 내가 취택한 한 경전(「자설경))은 그 결정적 순간의 그의 모습과 생각을 묘사한 다음 앞에 든 운문으로써 끝을 맺고 있다.


나는 그 운문을 될 수 있는 대로 직역해 놓았거니와,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열심히 사유하는 성자에게 삼라 만상이 그 진상을 드러냈을 때 의혹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주의해서 읽어 보면, 여기에 불교의 진리에 대한 견해가 명료히 나타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ꡐ무명(無明)ꡑ이라는 말을 음미 해 보자.


이 말의 원어는avijja 이며, 그것은 무지 ․ 미망을 나타내는 말이거니와, 그것을 표현하는데 ꡐ무(蕪)ꡑ를 뜻하는 ꡐaꡑ와 ꡐ명(明)ꡑ을 뜻하는 ꡐvijjaꡑ를 연결했다는 것은 무지(無智)란 곧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후세의 불교 문헌들은 이런 생각을 ꡒ광명이 오면 어둠이 사라진다.ꡒ는 비유적 표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십이장경(四十二章輕)』의 일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ꡒ대저 도(道)를 봄은 마치 횃불을 가지고 어두운 방에 들어갈 때,그 어둠이 없어지고 광명만이 남는 것과 같으니라.ꡒ


또 후세의 선승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지관 타좌(只管打坐; 선종의 말. 오직 앉는 것 뿐이라는 뜻. 즉 좌선에 임해서 깨닫겠다든지 무엇을 해결하겠다든지 하는 노력을 떠나, 무심히 그저 앉아 있을 때 그것이 도리어 참된 경지가 된다는 뜻.)하여


신심 탈락(身心脫落;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떠나는 것.)할 때,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러서(도홍유록(桃紅柳綠)에서 나온 말;


진리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바로 진리라는 뜻. ꡐ색즉시공 공즉시색ꡑ과 같은 말.)삼라 만상은 그 진상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 보인다고 한다.


이런 것이 불교를 일관하는 진리관이다. 이것은 고독한 사색가가 그 머리 속에서 얽어 낸 종류와는 다르다. 또는 흥분한 예언자가 갑자기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은 것과도 다르다.


오직 사람이 아무것에도 가리어지지 않은 눈을 뜨게 될 때, 일체의 존재는 있는 그대로 그 진상을 우리의 눈앞에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법 실상(諸法實相;모든 존재의 진실한 모습.)이며, 이것이 불교의 진리관이거니와, 이런 진리의 관념은 결코 불교만의 것은 아니다.


그리스 사상가들이 말하는 진리의 관념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들은 진리를 ꡐ알레테이나(aletheia)ꡐ라는 말로 나타냈다. 그것은 ꡐ덮여 있는 것(letheia)ꡑ에부정의 접두사ꡐaꡑ를 붙인 것이어서,ꡐ덮여 있지 않은 것ꡑ을 뜻한다.


거기서도 역시 가려 있지 않은 존재의 진상이야말로 진리라고 생각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대체 사캬족의 아들 고타마는 어떻게 함으로써 가려지지 않은 눈을 얻었고, 어떻게 함으로써 존재의 진상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보리수 밑의 결정적인 순간에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7년에 걸친 긴 수행 기간을 별로 돌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이것을 구명해 보겠다고 하는 것은 마지막의 크나큰 해결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시 한 번 이 장기에 걸친 수행을 돌아보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긴 수행 기간은 내 관점에서 본다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는 출가의 단계이다. 오래 된 경전은 자주 ꡒ집에서 나와 집 없는 사문이 되었다.ꡓ는 말을 쓰고 있다. 그것은 가정 생활을 버리는 것과 함께 가사를 걸치고 사문으로서 살아감을 뜻하는바, 그 속에는 적어도 두 가지 포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 하나는 풍족한 가정 생활의 포기요, 또 하나는 고귀한 사회 생활의 포기이다. 고타마의 가정 생활은 부유하고 행복했으며, 그 사회적인 신분은 크샤트리아에 속해 있었다.


만약 마음만 있었다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을 자진하여 버렸다는 것은 쉽지 않은 포기였음이 분명하다.


유럽의 불교 학자가 고타마의 출가를 번역하면서, 자주 ꡐ크나큰포기(the great Renunciation)ꡐ라는 말을 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ꡐ크나큰포기ꡑ에 의해서 그는 우선 가정과 카스트 (caste ;사회 계급)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둘째 단계는 여러 도인들을 찾아 공부한 기간이다. 오래 된 경전에는 아라라 카라마(Alara - Kalama)와 웃다카 라마푸타(Uddaka - Rama putta)가 그의 스승이었다고 나와 있다.


그들은 두 사람 다 이른바 육사 외도(六師外道 ; 붓다 당시의 여섯 명의 사상가. 그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라 하여 불교 쪽에서 이렇게 부르는 것.)에는 들어 있지 않으나, 그들 또한 그 당시 마가다 국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새 사상가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낡은 사상의 계보에 속하는 바라문(ꡐ바라문ꡐ를 가르킴이니, 인도 고대의 정통적인 종교. 절대자인 브라만과자아인 아트만의 합치를 주장했다.)을 찾았다는 기록은 전혀 안 보이므로, 그가 어디까지나 새로운 사상의 조류 속에서 호흡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이나 사상의 세계에서는 스승도 또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제자가 언제까지나 ꡐ스승의 제자ꡑ로서 멈추어 있어서는 사상의 새로운 전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타마는 차례차례 어느 스승이나 버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혼자의 힘으로 길을 개척해 가고자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 또한 보리수 밑의 정각에 이르는 필연의 과정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정각을 향한 길이 곧바로 열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가로놓여 있었다. 스승의 곁을 떠난 고타마는 꽤 오랫동안 고행에 의해 목적을 달성해 보려 애썼다.


고행이란 육체를 약화시킴으로써 정신의 힘을 높일 수 있다는 사고 방식에서 나온 수행이다. 고대에는 어느 민족이나 이런 경향이 있었지만,그 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것이 인도인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고질이라 해도 좋을 것이어서, 현재도 이러한 병폐는 그들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는 여러 가지 고행을 했다. 또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것을 행했다. 그러나 뛰어난 경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손발은 겨릅처럼 바짝 야위어 갔다. 뱃가죽은 등에 닿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ꡐ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아마 다른 길이 있을지 모른다.ꡑ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고행이 정각에 이르는 정당한 방법일 수 없음을 간파(看破)했던 것이다. 그는 드디어 고행을 버리고 우유로 쑨 죽을 먹고 또 밥도 먹었다. 그것은 매우 중대한 단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행에 신비한 힘이 깃 들어 있다고 믿었던 고대 사회에서 그 불합리성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가 상상조차 못할 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껏 그에 대해 찬탄해 마지않던 사람들도 그가 고행을 중지한 것을 보고는, 타락했느니 사치해졌느니 하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 왔다.


그런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체력을 회복하여 마가다 국의 여기 저기를 순회한 다음, 우루베라의 네란자라 강 기슭에 이르러 그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앉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 자리에서 크나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후세의 불교인들은 그가 깔았던 풀을 ꡐ길상초(吉祥草)ꡑ라 부르고,그 않았던 자리를 ꡐ금강좌(金剛座)ꡑ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그가 여기에 앉은 다음부터 대각을 성취하기까지의 기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미망 즉 가려져 있던 것들은 이미 차례차례로 제거되고 말아, 그 자리에 앉은 사캬족의 아들 고타마의 눈을 가리는 것이라고는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이다.


오래 된 경전은 흔히 이사실을 ꡒ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겨ꡓ라고 표현하고 있거니와, 이리하여 가려진 것들이 제거됨으로써 활짝 열린 눈앞에 존재가 그 진상을 드러내 보일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보리수 밑에서의 정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저 결정적인 순간에만 넋을 빼앗겨서는 안 되리라.


오히려 눈을 돌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어떠한 장애물이 그의 눈으로부터 제거 되었는지를 고요히 생각해야 할 줄로 아는 바이다.





3. 보리수 밑에서의 생각.


고생 끝에 겨우겨우 얻은 이것을

어이 또 남들에게 설해야 되랴.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세상의 상식을 뒤엎은 그것

심심 미묘하니 어찌 알리오.


격정에 매이고 무명에 덮인 사람은

이 법(法)을 깨닫기 어려우리라.

(『相應部經典)6:1勸請)(상응부경전)(권청)


보리수 밑에서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도 붓다는 얼마 동안을 그 고장에 머물렀다. 그 기간은 아마 몇 주일에 지나지 않았으려니와, 그 동안 붓다의 가슴을 오고 간 생각 중에는 참으로 중대하고 흥미 진진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첫째 것은 깨달은 내용을 마음속에서 반복 음미하여 정리해 간 일이다. 그때 붓다의 가슴속을 한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ꡐ지혜의 즐거움ꡑ으로 꽉 차 있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사람으로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 중에서 최고의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역시 지혜에서 오는 즐거움일 터이다. 그것은 제한 없는 즐거움이요, 순수한 즐거움이요, 또 고요한 즐거움이다.


경전은 그 당시의 붓다에 대하여 처음으로 정각(正覺)을 성취하신 세존(世尊 ; 붓다를 일컫는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라는 뜻.)께서는


우루베라의 네란 자라 강 기슭에 있는 보리수 밑에서 결가부좌(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는 자세.)하신 채, 이레 동안 해탈의 즐거움을 맛 보시면서 앉아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고요한 즐거움은 이 담담한 표현의 행간에서도 배어 나오는 듯 느껴진다. 붓다 정각의 사상적인 내용은 앞에 든 『자설경』의 게에 의하건대 연기의 법칙(sahetu dhamma)이었다고 한다.


그 상세한 것은 뒤로 미루겠으나,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관계성의 법칙이요, 사의성(相依性)의 법칙이며, 원인 ․ 결과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렇게 법칙성의 것이라면 그것을 사실에 맞추어 보아서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검토해야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의 며칠 동안을 붓다는 이런 음미로 소일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일체의 존재는 남김없이 이 법칙에 의존하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다시 이것을 인간 존재에 적용시켰더니 그것 역시 환히 풀렸다. 이리하여 ꡐ지혜의 즐거움ꡑ은 마치샘물처럼 끝없이 솟구쳐 나왔던 것이겠다.


그러나 이런 어느 날 붓다의 가슴속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불안이 그림자를 나타냈다. 경전은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ꡒ참으로 존경할 데가 없이 사는 것은 괴롭다. 나는 어떤 사문이나 또는 바라문을 존경하고 의지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일까?ꡓ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다.


특히 후세의 불교인들의 상식에서 본다면, 정각을 성취한 붓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이 뜻하는 바는 존경하고 섬길 사람이 없는 생활은 괴롭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이 경(『상응부 경전)6:2공경. 한역 동본, 『잡아함경』44:11 존중)을 문제 삼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잘 음미해 보면 거기에는 중대하고 미묘한 계기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종래의 불교인들은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지는 못한다. 물질 면에서도 그러려니와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 ․ 동정 ․ 공명 ․ 이해,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사막처럼 쓸쓸해지고 말 것이다. 문학이니 예술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도 혼자서라면 처음부터 존재할 의미가 없어진다.


비록 어떤 기막힌 사상이 어느 사람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고 해도, 그것이 남에게 표현 ․ 전달되고 이해되지 않는다면, 마침내 그것은 무와 같은 것이 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표현에 의해 객관화 됨으로써 누군가에게 이해될 때 비로소 사상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과 인간의 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제 붓다는 가리는 것이 없는 눈으로 일체 만유의 진상을 꿰뚤어 보았다. 그것이 정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그 한 사람의 가슴속에 간직 되어 있을 뿐이다. 이른바 내증(內證 ; 내적 체험)이다.


그 내증을 가만히 맛보고 고요한 즐거움에 잠기면서도 그는 갑자기 이상한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만약 자기와 같은 사상을 지니고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에게 찾아가서 함께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무 데도 없는 것을 어쩌랴.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스스로 깨달은 법(진리)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하여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는 것, 그것만이 인간 고타마에게 남은 단 하나의 길이었다.


이에 전도의 문제, 즉 설법의 문제가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이 장(章)의 첫머리에서 소개한2절의 운문을 되새겨 주시기 바란다. 거기에는


고생 끝에 겨우겨우 얻은 이것을

어이 또 남들에게 설해야 되랴.


라는 구절이 있었다.


붓다는 설법의 문제를 앞에 놓고 우선 주저했음이 명백하다. 이것 또한 후세의 불교인들의 상식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리라. 왜냐하면 그들은 붓다가 중생 제도를 위해서 출가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기와 결과를 엇바꾸고 있음이 분명하다. 붓다가 출가를 감행했을 때, 그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 것은 분명히 자기의 문제, 자기의 고민이었다.


최근의 정밀한 연구로 밝혀진 것은 ꡒ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ꡓ라는 문구가, 바꾸어 말하면 중생제도를 목적으로 표방하는 말이 비로소 경전에 나타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라는 점이다.


최초의 설법이 베풀어지고 제자들도 이미 60명으로 불어나 전도를 위해 그들을 처음으로 떠나 보낼 때, 붓다의 말씀 속에 이 구절이 비로소 나타났던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출가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드디어 크나큰 해탈에 이르렀을 때에도 아직 이 문제는 상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그것이 갑자기 설법의 형태로서 문제가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니, 붓다의 마음이 먼저 부정 쪽으로 기울어졌던 것도 당연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그 게의 뜻이기도 하다.


같은 경에서는 또


그때 세존의 마음은 침묵으로 기울고 설법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고도 말하고 있다. 그 주저함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앞에 든 운문의 후반 부분의 내용이다.


만약 법을 설한다 해도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것은 붓다가 깨달은 사상의 내용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세상의 상식을 뒤엎은 그것,


심심(深甚)미묘 정세하니 어찌 알리오.


이렇게 어려운데도 세상 사람들은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히고 격정과 무명에 덮여 있다. 그렇다면 내가 기껏 설해 보았자 나만 지치고 말리라, 그것이 붓다의 심정이었던 것이다.


설법이 중요한 문제가 되면서도 이렇게 붓다의 마음은 쉽사리 그 쪽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그것을 뒤집어 마침내 설법의 결심으로까지 이끌고 간 소식을 이 경은 신화적인 수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른바 ꡐ범천 권청ꡑ의 설화가 그것이다.


범천(梵天)이란 만유의 근원이라는 범(梵), 즉 브라만(Brahman)을 신격화한 인도의 신이다.


그것이 불교에도 섞여 들어와서 교법 수호의 신으로서 자주 경전에도 나타나거니와, 지금도 붓다가 설법을 주저하고있음을 안 범천은 그래서는 세상이 망하리라고 걱정한 나머지 급히 붓다 앞에 나타나서 권해 마지않았다는 것이다.


ꡒ세존이시여, 원컨대 법을 설하시옵소서. 이 세상에는 눈이 티끌로 가려짐이 적은 사람도 있사옵느바, 그들도 법을 듣지 못한다면 망하지 않겠나이까? 그들은 법을 듣는다면 필시 깨달음에 이르오리다.ꡓ 그래서 붓다는 다시 한 번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때 붓다의 눈에 비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경전은 연꽃에 비유하여 아름답게 서술하고 있다. 못 속에는 온갖 빛깔의 연꽃이 핀다. 어떤 것은 아직도 흙탕물 속에 잠겨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수면 위에 고개를 들고 아름답게 피어 있다. 진흙 속에서 나왔으면서도 그것에 조금도 물들지 않은 채 아주 맑은 꽃을 피운다. 그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도 가지 각색임을 관찰한 붓다는 마침내 설법을 결심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 이제 감로(甘露)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이는 들으라, 낡은 믿음 버리고


붓다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만일 그 사실이 없다면 오늘의 불교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내용이 설법의 형식을 통해 객관화되었다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 없이는 불교가 성립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런 설법의 결심도 그 보리수 밑에서 차차 익어 갔음을 보았거니와, 붓다는 여전히 그 밑에 앉아서 움직이려고 들지 않았다.




4. 첫 설법.


ꡒ비구들아, 출가한 이는 두 극단에 달려가서는 안되나니, 그 둘이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함은 어리석고 추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며 또 무익하니라. 또 스스로 고행을 일삼음은 오직 괴로울 뿐이며, 역시 성스럽지 못하고 무익하니라.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섕기게 하며, 적정(寂靜 ; 마음에 번뇌가 끊어져 고요하고 편안한 모양.)과 증지(證智 ; 중도와 참다운 지혜를 체득하는 것.)와


등각(等覺 ; 붓다의 깨달음은 평등하다는 뜻. 또 붓다를 일컫는 이름.)과 열반(涅槃 ; 열반에 대해서는 앞으로 올릴 아함경 이야기의 - 2. 그 사상. 8.열반 - 에서 자세히 다루어 집니다.)을 돕느니라.


([相鷹部經典] 56:11. 漢譯同本, [雜阿含經] 15:17轉法論)(상응부경전)(한역동본)(잡아함경)(전법론)


보리수 밑에서의 명상은 계속되었다. 그러는 중에서 붓다가 다시 생각한 것은 주로 다음의 두 가지였다고 생각된다.


그 첫째는 저 내증(內證), 즉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내용을 표현하는 일, 더 적절히 말한다면 그것을 설법하기 위해 조직하고 체계화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경전의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깨달음의 사상적 내용인 ꡐ연기의 법칙ꡑ과 최초의 설법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던 ꡐ네 가지 진리(四諦)ꡑ를 비교할 때, 얼른 보아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붓다는 겨우 설법할 결심이 서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향해 법을 설했을 때, 자기의 깨달음의 내용을 결코 그대로 말한 것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그것은 주도한 배려에 의해 조직되고 체계화되어, 이른바 ꡐ네 가지 진리ꡑ로서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런 조직은 언제 이루어졌던가? 그것 또한 보리수 밑에서의 명상중에, 아마도 설법의 결의가 서고 난 다음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ꡐ연기의 법칙ꡑ과 ꡐ네 가지 진리ꡑ의 관계 즉 전자가 어떻게 조직 됨으로써 후자의 체계를 이룰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것은 바로 불교의 전 체계의 기초를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붓다의 가슴에서 오고 간 둘째 생각이란 어떤 것이었던가? 그것은 먼저 누구를 향해서 이 법(진리)을 설할 것이냐 하는 문제 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설법할 첫 대상자의 선택이다. 앞에서도 이미 나온 바와 같이 이 법은 심심 미묘하고 또 세상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기 때문에, 격정이나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이해되지않을 것이다.


그것이 걱정인 까닭에 붓다도 자주 설법을 주저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빨리 이해하여 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해야 할 것인가? 계속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리수 밑에서 붓다가 생각한 것은 이 문제였을 것이다.


첫 설법의 상대, 그 지명은 먼저 아라라 카라마 위에 떨어졌다. 그는 일찍이 붓다가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는 옛 스승이었다. 그 스승이라면 반드시 이해하여 주려니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알아보았더니 그 사람은 이미 죽고 난 뒤였다.


실망한 붓다는 역시 예전의 스승이던 윳다카 라마푸타를 생각했던 것이나, 그도 또한 죽었음이 판명되었다. 이리하여 옛 스승과의 재회는 끝내 실현되지 않았거니와, 그것은 당시의 붓다의 심경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먼저 설법의 상대로 옛 스승을 택했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따뜻한 이해를 기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자기가 깨달은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 받고자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 또한 후세의 불교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할는지도 모른다. 붓다의 확고한 신념은 이미 보리수 밑에서의 정각에서 확립된 것이라고 질타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함부의 여러 경전이 말하는 붓다의 인상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붓다는 결코 경솔하게 확신해 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령에 충만하여 포효하는 사람과도 성격이 달랐다.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확신을 가지고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붓다의 사람됨이었다. 더욱이 당시의 붓다는 아직 서른 다섯 살밖에 안 된 젊은이였음을 생각해야 한다.


비록 크나 큰 해결은 이미 이루어졌을 망정, 그것을 내세우면서 천하에 군림할 자신은 충분하게 서 있지 않았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확신과 절대적인 자신은 얼마 안 가서 확립되기에 이르니, 처음으로 한 설법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을 적이 그때였다. 그런 뜻에서 보면 최초의 설법이야 말로 붓다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붓다의 태도 또한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옛 스승 두 사람이 다 죽었다는 것을 안 붓다는 생각 끝에 친구들을 설법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경전은 언제나 그들을 가리켜서 ꡐ다섯 비구ꡑ라고 했거니와, 그들은 일찍이 붓다가 고행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여러 가지로 붓다를 도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붓다가 고행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는 경멸의 태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내면서 그의 곁을 떠나버린 사람들이기도 했다. 붓다는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그들이 지금 바라나시(波羅捺)의 교외 이시파타나 미가다야(鹿野苑)에 있다는 것을 알아 냈다.


붓다는 곧 보리수 밑을 떠나 바라나시로 갔다. 우루베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250킬로미터가 넘는다. 그야말로 천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오직 법을 설하기 위해 떠났던 것이니 붓다가 이 첫 설법에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이해가 간다.


얼마 가지 않아 붓다는 한 사문을 만났다. 경전은 그의 이름을 사명외도(邪命外道 ; 고사라가 시작한 종교. 모든 것은 운명이요,인간의 의지력은 아무 작용도 하지 못한다고 보았다.)인 우파카(Upaka)라 전하거니와, 그는 붓다의 얼굴을 보자 말을 걸어 왔다.


ꡒ존자여, 당신의 얼굴은 참으로 광명에 넘쳐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에 의해 출가했고,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 가르침을 받았습니까?ꡓ 그것은 붓다가 그 깨달은 바를 이야기할 예기치 않은 기회가 되었다. 경전은 여기에서도 붓다의 대답을 운문으로 기록해 놓았다.


나는 일체에 뛰어나고 일체를 아는 사람.


무엇에도 더럽혀짐 없는 사람.


모든 것 사리(捨離)하여


애욕을 끊고 해탈한 사람.


스스로 체득했거니


누구를 가리켜 스승이라 하랴.


나에게는 스승 없고, 같은 이 없으며


이 세상에 비길 이 없도다.


나는 곧 성자요 최고의 스승,


나 홀로 정각(正覺)이루어 고요롭도다.


이제 법을 설하려 카시(迦尸)로 가거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甘露)의 북을 울리리라.


아직 젊은 붓다가 자신 만만하게 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소리를 들은 우파카는 아연 실색하고 말아, ꡒ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ꡓ라는 아이러니한 말을 남긴 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가 버렸다고 한다.


모처럼의 첫 기회가 헛되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붓다는 다시 여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미가다야(鹿野苑)에 도착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명의 비구들은 붓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환영하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한문헌([율장대품])은 그때 그들이 한 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ꡒ보라! 저기에 나타난 이는 고타마이다.


그는 고행을 버리고 사치에 떨어진 사람이다.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나 마중도 하지 말고,의발(衣鉢)도 받아 주지 말아야 하리라. 그러나 자리만은 펴 주자. 앉고 싶거든 앉게는 해야지.ꡓ 그래도 막상 붓다가 다가오자 그들은 일어나서 맞아 주었다.


의발도 받아 주고 발을 씻을 물도 떠 다 주었다. 역시 친구로서의 우정이 남아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붓다가 그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려 하자 그들은 완고히 듣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앞서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것을 보고, 그가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훌륭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지 못했던 것이다. 옥신각신한 끝에 붓다가 말했다.


ꡒ그럼, 너희는 예전에 내 안색이 이렇게나 광명에 넘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ꡓ


안에 훌륭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그 안색도 빛나게 된다. 고대 인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많은 문헌이 그것을 증명하고있다.


다섯 명의 비구들도 그렇게 듣고 보니 고타마의 안색이 예사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면 어디 그가 말하는 것을 들으나 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하여 경전이 ꡐ여래소설(如來所說)ꡑ이라고 부르는 최초의 설법이 베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붓다가 45년에 걸쳐 행했던 설법의 수효는 몇 천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설법은 모두 ꡐ대기 설법(對機說法)ꡑ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기근(機根 ; 진리를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 ꡐ근기ꡑ라고도 함.)에 따라, 또 문제에 따라 거기에 어울리는 내용이 설해진 까닭이다.


그런 중에서 오직 한 번만 예외가 있었다. 그 예외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설법이다. 여기서는 먼저 설하고자 하는 가르침의 내용이 마련된 다음에 ꡒ이것을 빨리 깨닫는 이는 누구냐?ꡓ고 해서 설법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볼 때 붓다가 그 깨달은 내용을 가지고 자진해서 설한 것은 이 첫 설법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팔리 어 경전의 편찬자가 첫 설법의 내용을 전하는 경전에 ꡐ여래소설ꡑ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믿어진다.


또 한역의 [아함경]에서는 이 경을 ꡐ전법륜(轉法輪 ; 불법<佛法>의 ꡐ수레바퀴,를 굴린다는 것이니, 곧 붓다의 설법)이라고 불렀거니와, 그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붓다는 많은 것을 설하셨으나, 이야말로 여래가 설하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 경밖에는 없다고 본 것이리라. 그 정도로 이 설법이 갖는 뜻은 큰 것임이 확실하다.


그 설법 - 그것을 후세 사람들은 ꡐ초전법륜(初轉法輪)ꡑ이라는 엄숙한 표현으로 부른다 - 은 이제 미다가야에서 다섯 명의 비구를 상대로 하여 설해지게 되었다. 그 앞 부분의 내용이 이 장(章)의 첫머리에 인용한 일절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먼저 두 극단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그 하나는 쾌락주의의 입장, 즉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이다.


또 하나는 금욕주의의 입장, 즉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돌이켜 본다면 그것들은 모두 붓다 자신이 몸소 체험한 생활 방식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가정에 계셨을 때 온갖 욕망에 묻혀 있던 이가 바로 그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붓다는 출가 즉 ꡐ크나큰 포기ꡑ의 감행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출가한 그는 다시 고행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기서도 고행에 열중하던 붓다는 차츰 그 불합리성을 간파할 수가 있었다. 결국 두 극단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은 바로 그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새로이 택한 입장으로서의 중도(中道)와 그 위에서 전개된 사상 체계로서의 네 가지 진리(四諦)가 계속해서 설해지게 되었다.




5. 네 가지 진리


ꡒ여러분이여, 모든 동물의 발자취는 다 코끼리의 발자취 속에 들어온다. 코끼리의 발자취는 그 크기가 동물 중에 으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여, 모든 착한 진리는 다 네 가지 성제 안에 포섭된다. 그 네 가지란 고(苦)의 성제, 고의 발생의 성제, 고의 멸진(滅盡),의 성제,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ꡓ


([中部經典] 28象跡喩大經. 漢譯同本, [中阿含經] 30象跡喩經)(중부경전)(상적유대경)(한역동본)(중아함경)(상적유경)


여기에 든 ꡐ코끼리 발자취로 비유한 경ꡑ이라는 이상스러운 이름을 가진 경전이며, 이 경의 주인공은 붓다의 으뜸가는 제자라는 사리푸타(舍利弗,Sariputta)이다.


그가 자주 스승인 붓다를 대리하여 붓다의 젊은 제자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을 해설했던 일이 여러 경전에 나타나 있거니와, 여기서도 그는 스승이 설한 ꡐ네 가지 성제ꡑ를 설명하기위해 그 첫머리에 코끼리 발자취의 비유를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비유는 아마도 코끼리가 많은 인도 특유의 것이리라. 뭍에서 가장 큰 그 동물의 발자취는 물론 매우 커서, 다른 동물의 발자취는 모두 그 속에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그는 가장 포괄적인 것을 코끼리의 발자취에다 비유한 것이겠다.


그리고 사리푸타는 그것에 의해 붓다가 설한바 온갖 가르침 속에서 차지하는 ꡐ네 가지 성제ꡑ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경([中部經典] 63摩羅阿小經. 漢譯同本, [中阿含經] 221箭喩經)에 의하면 붓다는 마룬캬(Malunkya)라는 제자를 상대로 다음과 같이 설한 적도 있다.


ꡒ그러므로 마룬캬여, 내가 설하지 않은 일은 설하지 않은 채로 수지(受持 ;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지니는 것. 즉 받드는 것.)함이 좋고, 또 내가 설한 일은 설한 대로 수지함이 좋으니라.


그러면 마룬캬여, 내가 설한 것이란 무엇이던가? ꡐ이는 고(苦)이다.ꡑ라고 나는 설했다. ꡐ이는 고의 발생이다.ꡑ라고 나는 설했다. ꡐ이는 고의 멸진이다.ꡑ라고 나는 설했다. 또 ꡐ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ꡑ라고 나는 설했다.


마룬캬여, 왜 나는 그것들을 설했던가? 마룬캬여, 그것들은 정말 도움이 되며, 범행(梵行 ; 청정한 행위. 욕망을 끊는 것.)의 기초가 되며, 적정 , 증지 , 등각 , 열반에 이바지 하느니라. 그러기에 설했음을 알라.ꡓ


마룬캬라고 불리는 이 제자는 오늘날의 말로 하면 철학 청년이라고나할까? 이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인간은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못하는가, 또는 영혼과 육체는 동일한가 동일하지 않은가, 당시에 유행하던 이런 문제를 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전혀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 젊은이가 어느 날 붓다를 찾아와서 그 불만을 털어 놓았을 때, 그에게 ꡐ화살의 비유ꡑ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한 다음, 마지막에 가서 힘을 주어 한 말씀이 이것이었다.


거기에서 붓다는 ꡒ내가 설하지 않은 것은 설하지 않은 채 수지하라.ꡓ 또 ꡒ내가 설한 것은 설한대로 수지하라.ꡓ고 하여 매우 힘 있게 끊어서 말하고 있거니와, 그러면 대체 붓다가 설한 것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ꡐ네 가지 성제ꡑ였다고 붓다 자신이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ꡐ네 가지 성제ꡑ는 붓다의 가르침의 중심 골격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저 다섯 비구를 상대로 설해진 이후, 그 생애를 통해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지금은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중심 문제요, 그 사상을 설명하는 것은 주제가 아니나, 먼저 얼마라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 최초의 설법소식은 완전히 그 안목(眼目)을 잃고 말는지 모른다.


ꡐ네 가지 성제ꡑ(cattari ariyasaccani)는 흔히 줄여서 ꡐ사성제ꡑ 또는 ꡐ사제ꡑ라고 일컬어진다. ꡐ제ꡑ는sacca(Pali)혹은 satua(Skt.)의 역어로 ꡐ진리ꡑ를 뜻하는 말이거니와, 그것은 아울러 ꡐ엄숙한 단언ꡑ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오히려 ꡐ엄숙하게 진리를 말씀한 단언적명제ꡑ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그 뜻에 더 가까울 것으로 생각된다.


붓다는 아마도 그 생애를 통해 이것을 숱하게 되풀이해서 설했으려니와, 이제 여러 경에 나타난 바를 검토할 때, 가장 간명한 형식은 앞서 인용한 마룬캬에게 설명해 주던 그 양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ꡒ이는 고(苦)이다.ꡓ


ꡒ이는 고의 발생이다.ꡓ


ꡒ이는 고의 멸진(滅盡)이다.ꡓ


ꡒ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ꡓ


ꡐ여래소설(如來所說)ꡑ이라고 불리는 첫 설법에서는 이것이 더 상세하게 나온다. 아마도 처음으로 내세우는 것이라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ꡒ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생(生)은 고이다. 노(老)는 고이다. 병은 고이다. 죽음은 고이다.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은 고이다.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고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고이다. 욕심 나는 것을 얻지 못함은 고이다. 뭉뚱그려 말한다면 이 인생의 양상은 고 아닌 것이 없느니라.ꡓ


ꡒ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후유(後有 ; 과보(果報))를 일어나게 하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모든 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 ; 욕망에 빠지는 것.)가 그것이다.


그것에는 욕애(欲愛 ; 탐내는 생각을 일으켜 무엇을 욕구하는 것. 주로 성욕.)와 유애(有愛 ; 개체를 존속시키고자 하는 욕망.)와 무유에(無有愛 ; 명예,권세에 대한 욕망.)가 있느니라.ꡓ


ꡒ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이 갈애를 남김 없이 멸하고, 버리고, 떠나고, 벗어나 아무 집착도 없게 되기에 이르는 것이 그것이니라.ꡓ


ꡒ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다. 마땅히 들어라.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도(道)가 그것이니,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니라.ꡓ


여기에서 ꡒ마땅히 들어라.ꡓ 이하의 설명을 빼어 버리고 그 항목만을 열거하면 이렇게 된다.


1)고의 성제


2)고의 발생의 성제


3)고의 멸진의 성제


4)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


이전부터 불교인들은 이것을 간략히 하여 ꡐ고(苦), 집(集), 멸(滅),도(道)ꡑ의 사제(四蹄)라고 했다., 둘째 것을 ꡐ집ꡑ이라고 한 것은,한역(漢譯)에서는 예전에 ꡐ발생ꡑ을 ꡐ집기(集起)ꡑ라고 번역했던 까닭이다.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비로소 ꡐ네 가지 성제ꡑ라고 불리는 설법의 구조가 이해된다. 붓다는 먼저 네 개의 단언적인 명제를 내세우고 나서 그것들을 순차적으로 설명해 갔을 것이 틀림없다.


맨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ꡒ이는 고(苦)이다.ꡓ 또는 ꡒ이것은 고의 성제이다.ꡓ라는 명제였다. 이것은 과제의 제시이다. 인생의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는 생, 노, 병, 사, 즉 사고(四苦)가 모든 사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법구경]의 게(128)를 가지고 말한다면 이렇게 된다.


하늘 위에 오르고, 바다 밑에 잠기고


산골짜기 깊숙한 동굴 속에 숨는대도


죽음의 검은 손이 미치지 않는


그런 곳은 이 세상에 있음 없어라.


그것뿐이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과도 만나야 한다(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헤어질 때가 온다(愛別離苦)., 또 채워지지 않는 욕심도 허다하다(求不得苦). 우리의 일상 생활이란 괴로움으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붓다는 이런 현실에 갑자기 생각이 미쳤을 때,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저 크나큰 포기(출가)를 감행했던 것이다. 이런 현실 위에 ꡒ이는 고(苦)이다.ꡓ라는 제1명제가 세워지기에 이른 것이다.


두 번째로 제시된 명제는 ꡒ이는 고의 발생이다.ꡓ 또는 ꡒ이것은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ꡓ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인생의 현실을 통찰한 다음, 그 발생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일이다.


그것은 얼른 보기에 저항할 길 없는 운명인 듯이 생각된다. 그러나 만약 거기에서 멈추고 만다면 우리는 무력한 운명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대체 그것을 극복할 방법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붓다가 목숨을 걸고 추구했던 문제였다.


그리고 그의 크나큰 깨달음이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물음은 연기의 법칙, 즉 일체의 존재는 어떤 조건(인연)에 의해 이루어졌고, 따라서 자아(自我)니 실체(實體)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리에 의해 훌륭히 해결이 났던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깨달음의 경지에서 볼 때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이 갈애(渴愛,tanha), 즉 목마른 이가 물을 찾는 것에나 비겨야 할 불타는 욕망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제시된 것은 ꡒ이는 고의 멸진이다. ꡒ 또는 ꡒ이것은 고의 멸진의 성제이다.ꡓ라는 명제이다. 인생이 욕망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괴로운 것이 되고 말았다면 무엇으로 이런 우리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그것에는 오직 한 가지 방법, 불타는 욕망을 가라 앉히는 길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세 번째의 명제이다. [법구경]에서


모름지기 이 길을 걸어간다면


괴로움이 마침내 스러지리라.


욕망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깨달아 나는 이를 설함이로다.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인생을 고통으로 가득 차게 하는 원인이 갈애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철저히 뿌리 뽑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하여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에는 기적도 없고 신비도 없다. 그것을 서운하게 여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붓다란 그런 분이며 불교란 그런 종교인 것이다. 그것을 후세의 불교인들은 ꡒ불교에는 불가사의가 없다.ꡓ고 하였다.


하지만 붓다 이전에 이 당연한 이치에 눈뜬 사람이 있었던가?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위대한 평범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본래 진리란 그런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하는 것이 우리네 범부라면,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진리요 깨달음인 것이겠다.


네 번째로 제시된 것은 ꡒ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ꡓ 또는 ꡒ이것은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ꡓ라고 하는 명제다. 이것은 실천론이다.


제3의 명제에 의해 수립된 원칙에 입각하여 고(苦)를 없애기 위한 실천 방법을 보인 것이 제4의 성제이다.


그 내용은 이른바 성스러운 여덟 가지 정도(八正道, ariyo atthangiko maggo), 즉 정견(正見),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며,


이것들은 모두 전장(前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두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에 입각하는 실천, 곧 관찰(정견)과 행위(정사, 정어, 정업)와 생활(정명)과 수행(정정진, 정념, 정정)에 관한 여러 항목을 열거한 것이다.


미가다야(鹿野苑)의 나무 그늘에 앉아서 붓다가 다섯 비구에게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 ꡐ네 가지 성제ꡑ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붓다는 그 단언적인 명제들을 먼저 제시한 다음에 차례차례 설명을 덧붙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들이 결코 그들 다섯 비구에 의해 대번에 이해 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낡은 문헌(이를테면 [중부경전]26성구경)의 기록도 그런 사실을 명확히 보여 주고 있다.


ꡒ이리하여 두 명의 비구에게 설명 할 동안은 다른 셋이 나가서 탁발하여, 세 사람의 비구가 탁발해 온 것을 가지고 여섯 명이 살아갔다.


또 세 명의 비구에게 가르치고 있을 때는 두 사람의 비구가 탁발하여, 그들이 얻어 온 것으로 여섯이서 생활했다.ꡓ


이런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다섯 비구의 한 사람인 콘단냐(僑陣如Kondanna)가 그 사상 체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경전은 그것을 ꡒ콘단냐는 먼저 티 없는 청정한 법안(法眼 ; 바른 이치를 보는 눈)을 떴다.ꡓ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본인에게도 기뻤으려니와, 아마도 그 이상으로 좋아한 이는 붓다 그 사람이었을 것이다. ꡒ콘단냐는 깨달았다, 콘단냐는 깨달았다!ꡓ


그때의 붓다의 말씀을 경전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 말 가운데는 이제껏 혼자서 가슴속에 지니고 있었던 깨달음의 내용을 가까스로 남에게 이해 시킬 수 있었던 붓다의 무량한 감개가 함축되어 있는 듯이 느껴진다.


그로부터 콘단냐는 ꡐ안냐타 콘단냐(Annata Kondanna)ꡑ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ꡐ깨달은 콘단냐ꡑ라는 뜻이어서 ꡒ콘단냐는 깨달았다.ꡓ고 외친 붓다의 말씀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를 상상하게 해준다.


이윽고 나머지 네 명의 비구들도 마침내 붓다의 설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 이 세상에는 여섯 분의 성자가 계셨다고 경전은 말하고 있다.


또 그때 십천세계(十千世界 ; 소천세계 열이 모인 것. 매우 광활한 세계라는 뜻.)가 진동했으며 무한한 광명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대사(大事)의 성취를 표현하는 고대적인 수법 이거니와, 그 대사가 바로 불교의 성립을 뜻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는 일이겠다.




6. 전도(傳道)


ꡒ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 가르침)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약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세나니가마(將軍村)로 가리라.ꡓ


([相應部經典] 5:5係蹄(2). 漢譯同本, [雜阿含經] 39:16繩索)(상응부경전)(계제)(한역동본)(잡아함경)(승삭)


여기에 든 일절은 이른바 붓다의 ꡐ전도 선언ꡑ 이라고 불리는 대문이다. 그것은 붓다가 아직 미가다야(鹿野苑)에 머물고 있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붓다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가르침을 받은 끝에 출가하여 제자가 된 사람의 수효가 불어나서 60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붓다는 그들을 전도하러 떠나 보냄으로써 이 새로운 진리를 널리 세상에 펴고자 결심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을 모아 놓고 타이른 말씀이 이것이었다. 이 ꡐ전도 선언ꡑ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째 부분은 전도의 정신을 말씀한 대목이다. 거기에 처음으로 ꡒ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며.ꡓ라는 말씀이 나온다.


나는 앞에서 재래 불교도들의 상식을 뒤엎고, 붓다가 출가한 동기는 중생 구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붓다의 출가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셈이 되었던 것이며, 그 혜택은 멀리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있음이 사실이겠다.


그러나 이것을 근거로 하여 붓다가 출가한 동기가 중생 구제에 있었다고 한다는 것은 결과를 가져다가 동기로 삼는 것이어서, 붓다의 출가의 진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아함부의 경전들이 이점에 대해 얼마나 신중한 표현을 취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될 것이다.


거기에서는 출가에 대해서나 수행에 대해서나, 그리고 정각(正覺)이라든지 최초의 설법에 대해서까지도 중생 제도와 결부시키는 것 같은 표현은 전혀 쓰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이 전도의 선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ꡒ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ꡓ라는 말이 나오고, 또 ꡒ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이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ꡓ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인천이란 인간계와 천상계의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뜻이니, 많은 사람들이라는 말과 함께 중생(衆生), 즉 모든 생물을 가리킨다. 생각건대 붓다가 ꡒ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ꡓ라고 말씀하기까지의 거리는 매우 멀었다.


그러나 일단 확신을 가지고 전도를 떠나라고 말했을 때, 거기에 나타난 전도의 정신은 일체의 제한을 넘어서 모든 생물에게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붓다는 ꡒ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라.ꡓ고는 하지 않았다.


또 ꡒ사마리아 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ꡓ고는 하지 않았다. 오직 모든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가라고 타일렀다. 그것은 참으로 붓다 다운 전도의 선언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정신을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이 대목의 마지막 말씀 즉 ꡒ둘이 한길을 가지 말라.ꡓ는 구절이다. 내가 이 구절에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ꡐ전도선언ꡑ 때문이다.


그는 앞에서도 인용했듯이 ꡒ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ꡓ (마태복음 10 : 6)고 말했던 것이다.


또 다른 복음에는 열 두 제자를 불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마가복음6 : 7)라고 나와 있다. 나는 이것을 그것에 비교하여 하나를 높다 하고 다른 것을 못하다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이 둘을 비교함으로써 그 하나만 읽어 가지고는 좀처럼 밝혀지지 않던 뜻이 명확한 형태로 눈앞에 떠오름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예수는 그때 다음과 같은 말도 하고 있다.


ꡒ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ꡓ


ꡒ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公會)에 넘겨 주겠고, 저희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ꡓ


그러기에 전도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 ꡒ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ꡓ고도 가르쳐야 했다. 거기에는 도저히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 있었다.


ꡒ둘씩 둘씩 보내시며ꡓ라는 표현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겠다. 그리고 이런 것과 비교해 볼 때 ꡒ둘이서 한 길을 가지 말라.ꡓ는 붓다의 말씀의 뜻도 스스로 명백해진다.


여기에는 박해의 예상이란 조금도 없었음이 확실하다. 오직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가는 것이니까. 또 사람들이 그들을 공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도 생각되어 있지 않다.


오직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이 법은 설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런 전도의 정신은 붓다의 전 생애를 일관하여 실현되었을 뿐 아니라, 또 수천 년에 걸친 불교의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불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 전파 되었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 전도는 평화와 환영 속에 수행 되었고, 불교의 이름 밑에 피를 흘린 역사는 거의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두가 교조 붓다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붓다의 ꡐ전도 선언ꡑ에서 둘째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설법의 이상적인 양상이 제시된 대목이다. 거기에는 먼저 ꡒ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ꡓ라고 설해져 있다.


이것을 후세의 불교인들은 간략히 ꡐ초중종(初中終)의 선(善)ꡑ이라고 불렀다. 또 ꡒ조리와 표현을 갖추어서 법을 설하라.ꡓ고 되어 있기에, 이를 ꡐ의문 구족(義文具足)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밖에도 ꡒ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수행ꡓ을 설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예수가 열 두 제자를 떠나 보내면서 한 말에 비길 때 흥미 진진한 바가 있다.


ꡒ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이를 고치며, 죽은 이를 살리며, 문등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 내라.ꡓ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선교의 임무였다.


또 공회에 넘겨졌을 때는 ꡒ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ꡓ고 했다.


기독교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신령에 충만하여 신령의 말을 매개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붓다는 조리가 정연한 아리따운 변설을 요구하였다.


여기에서도 나는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할 뜻은 없으나, 두 성인의 설법에 대한 요구가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는 점에 깊은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버쳐(Butcher)의 저서 [그리스 정신의 여러 양상(Some Aspects of the Greek Genius)]이 그리스 인의 웅변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되새기게 된다.


그들이 토론을 좋아하고 웅변을 사랑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며, 또 그 웅변이 그들의 합리적인 정신과 예술적인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도 자주 이야기되어 왔다.


버처는 그런 사실들을 자세히 서술함과 아울러, 다시 그 청중과 변사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인 소식을 전해 주고 있다.


그 청중들은 마치 음악에라도 홀린 듯이 그 아름다운 말에 도취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그 매력 때문에 속는 일이 없기 위해 신중히 경계함을 잊지 않았다.


허점을 찔러 오는 논법에서 자기를 지키고, 궤변을 간파하려고 했다. 이같이 엄격한 청중에 대하여 변사는 십분 경의를 표하지않을 수 없었으니, 그것은 특히 연설의 끝에 가서 으레 있기 마련인 저 흥분 없는 고요한 어조에 의해 표시되었다.


그것은 근대인이라면 냉철함이라고 받아 들일지도 모르는, 겉으로 보기에 점차 나직해 가는 어조였거니와, 그 흥분 없는 고요함이야말로 웅변이 청중의 이성에 대해서 표시하는 일종의 경의임에 틀림없었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향해, 그는 마지막 호소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본고장인 그리스 인으로서 참으로 어울리는 웅변의 양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붓다가 생각한 이상적인 설법의 양상도 역시 마찬가지로 호모사피엔스의 입장을 취하는 그것이었다. 그것은 노호하고 절규하는 예언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또 신령에 충만하여 권위 있는 듯이 말하는 종교가의 그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격렬한 말을 내뱉어 청중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 연설 태도와도 전혀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리스 인의 웅변이 흥분 없는 고요한 어조로 끝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면, 여기에서도 또한 처음과 중간과 결말을 일관하여 잘 설해질 것이 요구되었고, 또 이론과 내용의 구비와 이성을 가지고 고요히 이성을 향해 호소할 것이 요청되었다.


거기에는 붓다의 사람됨과 그 사람의 성격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는 듯이 생각된다. 그것은 그렇다 하고, ꡐ전도 선언ꡑ의 셋째 부분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붓다가 금후의 예정을 말씀한 대목이다.


ꡒ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세나니가마로 가리라.ꡓ 그곳은 붓다가 진리를 깨달은 보리수 근처의 마을이다.


우루베라로부터 바라나시까지 왔던 붓다는 이번에는 다시 우루베라를 향해 돌아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건대 그 곳은 붓다로서는 가장 추억이 많은 고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거기에는 이 새로운 가르침의 씨가 아직 한 알도 뿌려지지 않았다. 먼저 그 마을로 돌아가자. 이렇게 생각 했을 붓다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7. 전도(傳道)


이에 세존은 그들 사캬족 사람들을 밤중까지 가르치고 인도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해준 다음, 존자 아난다(阿難)에게 이르셨다.


ꡒ아난다여, 너는 나를 대신하여 카피라바투(Kapila-vatthu)의 사캬족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도(道)를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법을 설해 주려무나. 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 겠다.ꡓ아난다는 ꡒ그렇게 하겠습니다.ꡓ하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세존은 옷을 넷으로 접어서 깔고, 발에 발을 포갠 다움, 정념(正念), 정지(正智)를 지니신 채 오른쪽 겨드랑이를 아래로 하고 누우셨다.


([中部經典] 53有學經. 漢譯同本, [雜阿含經] 43:13漏法)(중부경전)(유학경)(한역동본)(잡아함경)(루법)


이제 나는 붓다 고타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 문제를 앞에 놓고 매우 당돌한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저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가 그의 일기 속에서 한 말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신과 인간의 관계는 전혀 성질을 달리한다. 인간과 인간은 오래 함께 살아서 깊이 알게 되면 될수록 그 사이는 더욱더 가까워진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관계는 그와 전혀 반대이다.


인간이 신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신은 더욱 무한한 것이 되고, 인간은 더더욱 작은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신과 함께 장난하며 놀 수도 있을 듯이 생각했다.


자란 뒤, 내 열정을 바쳐 그를 사랑한다면 신과의 교섭도 실현되려니 꿈꾸었다. 그러나 다시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는 신이 얼마나 무한한 존재인지, 신과 인간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참으로 인상이 깊었다. 내가 이 대목을 읽은 것은 벌써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일절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불교도인 우리가 보기에는 사정은 아무래도 그 반대일 것만 같다.


붓다와 우리의 관계는 인간의 관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붓다에게 다가가서 그 분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붓다는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붓다는 전혀 딴 세계에 살고 계셔서 이따금 구름이라도 타고 이 세상에 나타나시는 분으로 여겼다. 그러던 그 분이 어느 사이엔가 점점 나에게 가까운, 그리고 아주 친한 사이처럼 느껴져 왔으니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의심할 나위 없이 붓다 또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던 까닭이다. 이 일과 관련해서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이 장(章)의 첫머리에 인용한 일절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의 일이다.


그 경은 붓다가 카피라바투의성 밖, 니그로다(Nygrodha)나무로 에워 싸인 정원에 계신 데서 시작된다. 마침 그 때 사캬족 사람들은 새 회당을 지은 참이라, 그 낙성식에 꼭 붓다가 오셔서 처음으로 입장하는 이가 되어 주십사고 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쁘게 응낙한 붓다께서는 낙성식에 참석하시고, 밤에는 그 회당에서 늦게까지 사캬족 사람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던 것이다.


그 다음이 앞에 인용한 대목이거니와, 붓다는 피곤했던 것일까. ꡒ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 하겠다.ꡓ고 말씀하고, 설법을 아난다에게 맡기신 다음 물러가 주무셨다는 것이다.


ꡒ나는 등이 아프다.ꡓ 붓다의 이 말씀은 애처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절을 읽었을 때, 나는 그 어떤 기쁨 같은 것을 느꼈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붓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 처럼 절실하게 느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붓다는 인간의 숙명이라고나 할 생로 병사를 두 어깨에 걸머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도 감행한 것이기는 하였다.


그것 역시 그가 인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님을 증명해 주는 것이겠다. 그러나 ꡐ생로 병사ꡑ라 할 때 그것은 어느 정도 추상화 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에 의해 느껴지는 붓다의 인간성 역시 추상성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붓다는 ꡒ나는 등이 아프다.ꡓ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은 매우 애처롭지만, 그것에 의해 나는 직접 붓다의 육신에 접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로서는 참으로 이상한 체험이었다.


그때까지 멀리 떨어져있던 붓다의 모습이, 이 일절에서의 감명 이래 나에게는 훨씬 친근한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붓다의 사상 또한 왜 그런지 아득한 저쪽에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붓다의 현신(現身 ; 육체를 지닌 현제의 몸.)에 관한 경의 서술이 이상한 매력으로 나의 관심을 자극해 왔다. 이를 테면 [상응부 경전]22:87에 보이는 바카리(跋迦梨)에 관한 대문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붓다가 라자가하(王舍城)의 교외에 있는 베루바나 정사(竹林精舍)에 머물고 계시던 때의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때 한 비구가 어느 옹기장이 집에서 앓고 있었다.


ꡐ바카리ꡑ가 그의 이름이었다. 그의 병은 매우 중해서 도저히 회유 될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간호해 주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ꡒ나는 이제 죽어야 할 몸이다. 만일 붓다를 다시 한 번 뵈옵고 인사 드릴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 그러나 이 몸으로는 정사까지 갈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베루바나에 가서 여기까지 행차해 주실 수는 없겠느냐고 붓다께 여쭈어 주었으면 고맙겠다.ꡓ


이 말을 전해 들은 붓다는 기꺼이 옹기장이네 집을 찾아갔다. 바카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려 들었다.


ꡒ바카리야, 고요히 누워 있어라. 일어날 필요는 없다.ꡓ붓다는 굳이 그를 눕게 하고 그 머리맡에 앉았다. 바카리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ꡒ붓다여, 저는 가망이 없나이다. 병이 악화되기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이오니, 얼굴을 우러러 뵈오면서 붓다의 발에 정례(頂禮 ; 이마를 땅에 대는 경례. 최대의 존경의 표시.)하도록 하여 주시기 바라나이다.ꡓ


그때 붓다는 힘을 주어 이렇게 말씀했다고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ꡒ그만두라, 바카리야. 이 썩을 몸을 보아서 무엇하겠다는 것이냐? 바카리야, 법(진리)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볼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리라.ꡓ


그것은 참으로 엄한 말씀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서 붓다는 자기에게 예배하겠다는 청을 물리치고, 오직 진리를 파악하려 힘쓰고, 진리만을 의지함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 불교의 본질이 엄존한다고 하여야 되리라.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ꡒ이 썩을 몸을 보아 무엇하겠다는 것이냐?ꡓ고 한 붓다의 말이 나에게는 이상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또 이를테면 장부 경전16이나 [대반열반경]은 노쇠한 붓다에 대해 이런 서술을 남기고 있다.


ꡒ아난다여, 나는 노쇠했다. 나이가 이미 팔순이 아니냐? 비유하자면 아난다여, 낡은 수레는 가죽 끈으로 얽어 맴으로써 겨우 움직일 수 있거니와 내 몸도 또한 가죽 끈으로 얽어 맨 수레 같으니라.ꡓ


이 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붓다의 마지막 전도 여행과 그 고요한 죽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한역에서는 [유행경(遊行經)]이라고 했고, 팔리 어의 동본에는 [대반열반경(Mahaparinibbana-suttanta)]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ꡐ크나큰 죽음의 경ꡑ이라는 정도의 뜻이다.


그것에 의하면 라자가하에서 마지막 여행 길을 떠난 붓다는 갠지스 강을 북으로 건너, 베사리 근방인 베루바나 마을(竹林村)에서 우안거(雨安居 ; 인도에서는 장마철이 길므로, 이 동안은 외출을 금하던 것. 4월16일부터7월15일까지 석달동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붓다는 장마와 습기 때문이었는지 무서운 병이 나서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붓다는 그 고통을 잘 견디어 냄으로써 가까스로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래간만에 집 밖으로 나가 응달 쪽에 앉아서 바깥공기를 즐기고 있던 참에, 아난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하신 말씀이 이일절이었다.


경전 속에는 곧잘 수레바퀴의 비유가 나온다. 설법하는 것을 ꡒ법의 수레바퀴를 돌린다.(轉法輪).ꡓ고 하고, 훌륭한 정치를 하는 이상적인 제왕을 ꡐ전륜 성왕(轉輪聖王)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낡아빠진 수레를 들어, 붓다는 자기의 몸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수레가 오래 되어서 못 쓰게 되면 그것을 가죽 끈으로 얽어 매어서 사용했던 모양이다.


노쇠한 붓다는 그런 수레와 똑 같다고 자기의 몸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애처롭게 들리지만, 나에게는 역시 잊을 수 없는 붓다의 말씀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상한 대목만을 열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등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붓다, 이 썩을 몸을 예배해서 무엇하겠느냐고 말하는 붓다,자기의 몸을 낡은 수레에 비유하는 붓다.


그러나 그것은 붓다의 인간성에 직접 접함으로써 친근감을 가지고 그 인격과 사상을 이해 해보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육신을 아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그 분의 인간성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함부의 여러 경전은 이런 붓다의 인간성을 조금의 가식도 없이 전해 주고 있는 점에서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8. 눈 있는 이는 보라


ꡒ위대하셔라 대덕(大德 ; 지혜와 덕망이 높은 중. 본래 봇다를 일컫던 말이나, 후세에서는 일반 승려의 존칭으로 쓰였다.)이시여, 위대하셔라 대덕이시여. 이를테면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 덮인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르치심과 같이,


또는 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 이는 보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이처럼 세존께서는 온갖 방편을 세우시어 법을 설하여 밝히셨나이다.


저는 이제 세존에 대해 귀의 하옵나이다. 또 그 법(가르침)과 승가(僧伽 ; 불교의 교단. 의역하면 ꡐ중(衆))에 대해 귀의 하옵나이다.


원컨대 오늘날로부터 시작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세존께 귀의 하옵는 신자로서 저를 받아들여 주시옵기 바라나이다.ꡓ


([相鷹部經典] 42:6西地人. 漢譯同本, [中阿含經] 17伽彌尼經)상응부경전 사지인 한역동본 중아함경 가미니경


이런 대문이 아함부 경전의 도처에서 보인다. 그것은 대개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귀의하게 된 사람들이 이른바 우파사카(優婆塞, upa-saka ; 재가 신자인 남자.)로서 그 신앙을 고백하는 말이다.


그것은 언제나 거의 같은 형식이므로, 어느 시기부터인가 귀의하는 신앙 고백 형태가 유형화되었던 것 같다. 그것을 여기에 인용한 것은 그것을 통해 붓다의 사상,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설법의 성격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최초의 설법만 제외하고는 45년에 걸친 붓다의 설법은 모두가 대기 설법이었다고 한다. 문제와 사람과 장소와 때에 따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가르쳤던 까닭이다.


어떤 때는 제자들과 함께 갠지스 강의 기슭에 서서 소떼를 이끌고 물을 건너가는 목동을 가리키면서, 현실의 이쪽 언덕(此岸)으로부터 이상의 저쪽 언덕(彼岸)에 이르기 위한 방법에 대해 말씀한 적도 있다. ꡐ차안, 피안ꡑ의 개념은 이렇게 하여 성립하였던 것이다.


또 하루는 물건을 훔쳐 도망친 여자를 찾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 ꡒ도망친 여인을 찾는 것과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일은 어느 쪽이 더 소중하냐?ꡓ고 말을 건 적도 있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들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아, 붓다의 가르침을 받드는 비구가 되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새로 입문한 제자들을 이끌고 가야시사(象頭山)에 올라간 붓다는 일망 무제하게 펼쳐진 세상의 풍경을 가리키면서, ꡒ보라, 모든 것은 타고 있다.ꡓ고 설했다.


그들은 불을 예배하는 이른바 사화 외도(事火外道)에서 불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ꡒ모든 것은 타고 있다.ꡓ고 말씀했던 것이다. ꡒ그러므로 그것을 꺼야 한다.ꡓ는 말이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가 있었다.


ꡐ불이 꺼진 상태ꡑ 즉 열반이 영원한 평화의 경지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하루는 브라만(婆蘿門)한 명이 나타나서 갖은 욕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그러나 붓다는 침착하게 말했다.


ꡒ브라만이여, 그대가 내주는 음식을 손님이 안 먹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ꡓ


그것은 물론 주인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욕설 또한 자기에게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임기 웅변! 자유 자재! 붓다의 대기 설법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붓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것들을 일관하는 뚜렷한 성격이 있었다. 입신자들의 고백문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ꡒ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ꡓ라는 말은 전도(顚倒)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ꡐ전도ꡑ란 어떤 판단을 할 때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오해하는 일이다.


작은 것을 크다고 하는 것도 그것이다. 추한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도 그것이다. 변화하는 것을 불변, 영원한 듯이 아는 태도도 그것이다. 후세의 불교인들은 ꡐ사전도ꡑ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상(常), 낙(樂),정(淨), 아(我)의 전도를 말한다.


첫째 상(常)전도는 이 무상한 세상이나 사람을 영원한 듯이 생각하는 일이며, 둘째 낙(樂)전도는 이 괴로운 인생을 즐겁다고 여기는 일이다.


셋째 정(淨)전도는 이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잘못 아는 일이며, 넷째 아(我)전도는 이 무아인 존재를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이다.


이런 착각을 없애고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중요한 일면이었다. ꡒ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ꡓ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ꡒ덮인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ꡓ는 앞에서도 언급한 불교의 진리관을 표현한 말이다. 어떤 경에서 붓다는 이런 비유를 설한 적이 있다.


ꡒ여기 통 안에 물이 있다 하자. 그 물이 불에 데워져 부글부글 끓고 있다든지, 또는 이끼나 풀로 덮여 있다든지, 바람이 쳐서 물결이 일고 있다든지 한다면, 그 통 안의 물은 사물의 모습을 여실히 비칠 수 있겠는가?ꡓ물론 비칠 수 없다고 대답하여야 한다.


여기서 붓다는 만약 우리의 마음이 탐욕이나 노여움으로 뒤덮여 있을 경우에는 여실히 대상을 지견(知見)할 수 없지 않느냐고 대답을 유도해 갔다. 이렇게 ꡐ여실 지견ꡑ을 방해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복(覆)이라고 한다.


그런 것이 제거되고 맑은 마음으로 객관을 대할 때, 일체의 존재는 그 진상을 드러낸다. 이것이 불교의 진리관이다. 그렇다면 ꡒ덮인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ꡓ라는 말은 이런 여실 지견으로 이끌고 가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ꡒ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심과 같이ꡓ라는 말은 현대식으로 표현한다면 합리주의를 주장한 것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합리주의라는 말 자체가 매우 애매한 점이 있다.


논리에 맞으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것인가, 결과가 그렇게 되는 것을 가지고 합리라고 보는 것인가? 붓다가 취한 태도는 아무래도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최초의 설법에서도 이런 붓다의 태도는 이미 나타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하나는 두 가지 극단, 즉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를 비판한 말 속에 나온 ꡒ무익하다ꡓ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들을 비판한 다음 중도(中道)를 주장하면서 ꡒ적정, 증지, 등각, 열반에 이바지한다ꡓ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붓다의 실용주의(Pragmatism)를 발견하는 것이다.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한 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ꡒ이를테면 물 속에 잠겨 있는 젖은 나무를 보고, 좋은 찬목(鑽木 ; 마찰하여 불을 일으키는 나무.)을 가지고 와서 ꡐ내가 불을 일으키리라, 빛을 내게 하리라.ꡑ고 말하는 것과 같다.ꡓ


(『中部經典)36薩遮迦大經)중부경전 살차가대경


젖은 나무라면 아무리 마찰 시켜도 불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고행을 해 보았자 그것으로는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고행을 포기하게 된 붓다의 합리주의적인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합리주의적인 정신이야말로 붓다의 생애를 일관했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나는 이 장의 첫머리에 소개한 대문을 [상응부 경전] 42:6 ꡐ서지인ꡑ이라는 제목의 경에서 인용했던 것이지만, 그 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붓다의 교화 태도도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붓다가 나란다 마을의 파바리캄바라는 숲 속에 머물렀던 때의 일이다. 이웃 마을의 촌장인 안반다카푸타(刀師子)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아마도 그는 붓다의 명성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어서, 우선 이런 것을 물었다.


ꡒ대덕이시여, 서쪽에서 온 브라만들은 물병을 높이 처 들든지, 화환을 달든지, 물에 들어가 목욕하든지, 화신(火神)에게 공양을 드리든지 함으로써, 죽은 사람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대덕께서도 역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ꡓ


지금도 종교에서 신비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거니와, 그도 그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붓다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반문했다.


ꡒ그러면 촌장에게 내가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다.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보라. 어떤 사람이 깊은 호수에 바위를 던졌다 하자. 그때 여러 사람들이 몰려와서 ꡐ바위야, 떠올라라. 바위야 떠올라라.ꡑ 하며 기도했다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 바위는 기도의 힘으로 떠오르겠는가?ꡓ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아니라고 할 수밖에는 없으리라. 여기서 붓다는 다시 물었다. ꡒ그렇다면 촌장이여, 이것을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여기에 남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따위 온갖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있다 치자.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ꡐ이 사람이 천상에 태어나게 해 주십소서.ꡑ 하며 합장하고 기도했다면 어떻겠는가. 그는 그 기도에 의해 천상 세계에 태어나게 되겠는가?ꡓ


이 문제에 대해서도 촌장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답하고 있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지 그를 가리고 있던 낡은 의식이 벗겨져 나가고, 그의 마음에는 한 가닥의 광명이 비쳐 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이 장의 첫머리에 인용한 말을 하면서 재가 신자가 될 것을 맹세했다는 것으로 이 경은 끝나고 있다.


ꡒ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 이는 보라고 말씀하심과 같이ꡓ라는 말은 이런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말해 두어야 할 것이 남아 있다.그것을 다음 장에서 서술 해 보고자 한다.




9.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것


ꡒ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나이다. 즉 이 법은 현실적으로 증험 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잘 열반에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ꡓ


([相應部經典] 55:1王. 漢譯同本, [雜阿含經] 30:7王)상응부경전 왕 한역동본 잡아함경 왕


이것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제자나 신자들이 그 귀의(歸依 ; 돌아가 의지함. 붓다, 법, 승가에 자기를 맡기는 것.)를 고백하는 말이다.


이 또한 여러 아함부 경전에 나오는 점으로 볼 때 이미 유행화 되었던 문구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붓다 재세시부터 지금까지 연면히 이어오는 ꡐ삼귀의ꡑ의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삼귀의라고 하면, 이 앞과 뒤에 붓다와 교단(僧)에 대한 신앙 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 삼귀의, 즉 불(佛), 법(法), 승(僧)에 대한 귀의는 불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불교가 성립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기에 인용한 것은 이런 삼귀의 중의 ꡐ법ꡑ에 대한 부분이거니와, 여기에는 붓다의 가르침이 지니는 기본적이 성격이 아주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것을 실마리로 하여 우리는 붓다가 설하신 사상의 성격을 구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여기서 좀 머뭇거리게 된다.


그것은 여기에 나타나 있는 붓다의 가르침의 성격이 세상의 그 많은 종교의 상식과는 꽤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종교란 내세(來世)에 관한 것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다.


특히 후세의 불교 중에는 얼른 보기에 사후의 일이나 내세의 운명 같은 것에만 관심을 쏟는 듯한 종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는 붓다가 설한 법이 ꡒ현실적으로 증험 되는 성질의 것ꡓ이며, ꡒ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성질의 것ꡓ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세상 일반의 종교적인 상식을 떠나 새로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앞서 명심해 두어야 할 일은 붓다의 제자들은 무엇보다도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다음에 귀의하게 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그것이 진리임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출가하여 사문이 되거나,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귀의의 심정은 이를테면 예수가 ꡒ나를 따르라.ꡓ고 하자 곧 예수를 따라 나섰던 열 두 제자들의 그것과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고 해야겠다.


또 후세의 정토종(淨土宗 ; 아미타불의 서방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종파. 혜원(慧遠)이 창시자.)신자들처럼 그 도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대로 불지(佛智)와 본원(本願 ; 붓다가 보살 적에 중생 구제를 위해 세운 서원.)의 불가사의함을 믿으려 들었던 태도와도 다르다고 아니할 수 없다.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를 따르게 된 동기는 결코 단순히 붓다의 인격적인 권위 앞에 머리를 숙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하물며 보지 않고 믿는다든지, 불합리한 까닭에 믿는 다든지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경전이 되풀이하여 말하고 있는 것에 의하면 그들은 ꡒ이미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을 깨닫고, 의혹을 풀어서ꡓ 이것 아니고는 내가갈 길이 없다고 확신함에 이르러 비로소 붓다를 따른 것이다.


즉 그들의 귀의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 납득, 확신 위에 입각한 귀의였다. 그러면 그 가르침은 어떤 성격을 띠고 있었던가? 이 장의 첫머리에 인용한 글은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열거하였다.


1)현실적으로 증험 되는 것.


2)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


3)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4)잘 열반에 인도할 수 있는 것.


5)지혜 있는 사람이면 각기 스스로 알 수 있는 것.


첫번째의 ꡒ현실적으로 증험 되는 것ꡓ이란 말은 흔히 ꡐ현견(現見)ꡑ이라고도 번역되듯이, ꡐ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것ꡑ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붓다의 가르침은 철두철미하게 이 현실에 입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붓다가 ꡒ이는 고이다.ꡓ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현실임에 틀림없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어라, 또는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는 따위의 말과는 다르다.


또 ꡒ이는 고의 멸진이다.ꡓ라고 말하고, ꡒ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ꡓ라고 할 때, 그것들은 모두 현실의 문제이니까 눈을 떠서 그 진상을 직시한다면 누구라도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볼 수 있고, 현실적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이겠다.


만약 붓다가 어떤 환상 속에서 말했던 것이라면,우리는 그것을 현실에서 보고 증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는 그 설하는 내용이 사후의 문제와 관련이 되고 미래의 일에 미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오직 ꡒ보지않고 믿을ꡓ 수밖에 없을 것이고, 혹은 ꡒ불합리 하므로 믿는다.ꡓ고 고백하여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붓다를 따르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보고 증험함으로써 그 가르침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붓다의 가르침이 지니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또 두 번째의 ꡒ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ꡓ이라는 표현은 흔히ꡐ즉시적(卽時的)ꡑ 혹은 ꡐ현생적(現生的)ꡑ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것은 과보 즉 성과가 나타나는 시기에 관한 문제이다.


만약 붓다가 설한 것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것이었다면, 그 성과는 그것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그것이 내세 왕생(往生 ;천상세계에 가서 태어남.)에 대한 가르침이었다면, 그 과보는 유명을 달리하는 날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때를 격하지 않고 바로 현재에 과보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행히 이에 관해서 언급한 경이 있다. [상응부 경전]에 ꡐ우파바나ꡑ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서 우파바나라는 제자가 그것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ꡒ대덕이시여, 현생적인 법, 현생적인 법 합니다만, 대체 어떤 것이 현생적인 법이겠습니까?ꡓ


이에 대해 붓다는 인간의 감각 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기는 집착을 보기로 들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ꡒ우파바나여, 여기에 한 사람의 비구가 있어서 눈을 들어 무엇을 보았다 하자. 또 그는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염심(染心 ; 악에 의해 더러워진 마음.)을 일으켰다고 치자.


그때 그는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ꡐ아, 내 속에 염심이 있구나.ꡑ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파바나여, 그것이 현생적인 법이니라. 우파바나여, 그런데 여기에 또 한 사람의 비구가 있어서 눈을 들어 무엇을 보았다 하자.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염심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치자. 그때 그는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ꡐ아 나에게는 염심이 없구나.ꡑ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파바나여, 이것이 현생적인 법이니라.ꡓ


붓다와 그 제자들의 관심사는 결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을 변화 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전환 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정신을 차려서 돌아보기만 한다면 자기의 상태를 똑똑히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집착을 안고있는 내 마음의 움직임과 집착을 떠난 내 마음의 편안함이 그대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미망으로 뒤덮여 있는 마음의 어둠이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에 의해 홀연히 개어 가는 모습도 알 수가 있다. 이런 모양을 ꡒ어둠 속에 불을 가져와ꡓ라고 설했던 것이겠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을 ꡐ현생적ꡑ, ꡐ즉시적ꡑ이라 하고, ꡒ때를 격하지 않고ꡓ라고 한 까닭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세 번째는 ꡒ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ꡓ이다. 이것을 직역하여 ꡐ내견적(來見的)ꡑ이라고도 하거니와, 그 뜻하는 바는 ꡐ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ꡑ, 더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ꡐ열려 있는 진리ꡑ라는 정도의 뜻이다.


ꡐ열려 있는 진리ꡑ에 대립하는 것은 ꡐ닫혀 있는 진리ꡑ이다. 세상에는 이미 그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종교도 많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아담의 신화를 믿는 이가 아니면 원죄 사상은 이해되지 않을 것이며, 무량수경에 보이는 법장 비구(法藏比丘 ; 아미타불이 보살행을 닦을 때의 이름.


그는 이 때48대원을 세워 수도한 결과, 서방 극락 정토를 건설하여 그 부처가 되었다고 함.)의 서원을 믿지 않는다면 염불 왕생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ꡐ열려있는 진리ꡑ이므로 합리적으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붓다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또 누구라도 실천함으로써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결코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든지, 신앙의 힘에 매달리지않으면 얻어질 수 없다든지, 또는 이방인에게는 베풀 수 없다든지 하는 그런 제한은 없었다.


허심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누구에게나 이해되는 내용이었으며, 편견을 떠나 눈을 들어 본다면 있는 그대로 인식되는 가르침이었다. 그러기에 ꡒ와서 보라.ꡓ고 이를 수 있는 것이며, 만인 앞에 ꡐ열려 있는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네 번째에는 ꡒ잘 열반에 인도하는 것ꡓ이라고 되어 있다. 더 원문대로 번역한다면 다만 ꡐ잘 인도하는 것ꡑ이 되지만, 어디에 인도하는 것이냐 할 때 열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반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붓다가 설정한 궁국의 목표요, 인간의 이상인 까닭이다.


인간은 대체 무엇이고자 원하고 있을까? 또는 무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있을 터이므로 그 생각하는 내용도 각기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현세에서의 번영을 이상으로 그리며 산다. 어떤 사람은 내세에 위안을 찾으려고 들기도 한다. 상천(上天)이니 왕생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 붓다가 가리키는 목표는 ꡐ열반ꡑ이라고 표현된다.


그것은 닙바나(nibbana, Pali)또는 니르바나(nirvana, SKt.)의 음사인바, 마음속에서 타고 있는 격정의 불꽃이 꺼진 상태를 뜻한다. 이 말로 붓다는 마음속에 어지러움이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경지를 가리킴으로써, 그것을 인간의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ꡒ잘 인도하는 것ꡓ이라는 구절은 붓다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인도하여 이런 이상을 실현 시킨다는 사실을 말하고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생각건대 만일 붓다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라는 것이, 다른 종교가들이 흔히 그러하듯 내세의 복지에 관한 것이었다고 하면, 그것은 도저히 ꡒ현실적으로 증험 되는 것ꡓ이라거나 ꡒ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ꡓ이라거나 또는 ꡒ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ꡓ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을 터이다.


불교의 긴 흐름을 돌이켜 볼 때, 그런 내세설이 주장된 일도 있었다고 해야겠지만, 붓다의 사상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나는 목소리를 높여 확언하고 싶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지적된 것은 ꡒ지혜 있는 사람이면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것ꡓ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자각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붓다와 우파바나의 문답에서도 나타나듯이 스스로 내심의 동향을 살펴본다면, 내 마음에 번뇌가 있다, 또는 내 마음에 번뇌가 없다고 자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또 내재하는 방해물이 나타나서 마음을 교란 시킨다면, 고요히 반성함으로써 그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또 붓다가 가르친 방법에 따라 그 방해물을 없앤다면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누구나 자각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적어도 붓다의 제자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던 사람들이었다.


ꡒ지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것ꡓ 이라는 말은 붓다의 가르침이 이런 것이었음을 나타낸다.


만약 모든 종교의 내용을 분류하여 자각의 길과 구제의 길로 나눈다면, 말할 것도 없이 붓다의 가르침은 자각의 길에 속하며 그 가장 전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 내재하는 방해물


ꡒ대덕이시여, 흔히들 ꡐ악마, 악마ꡑ합니다만, 악마란 무엇입니까?ꡓ ꡒ라다여, 만약 색(色)이 있다면 그것이 악마요 방해물이요 교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다여, 색을 악마라 관(觀 ; 깊이 있게 보는 것.)하고, 방해물이라 관하고, 교란하는 것이라 관하고, 병이라 관하고, 가시라 관하고, 고통이라고 관하라. 그렇게 관하는 것이 바른 관찰이니라. 라다여, 만약 수(受)가 있다면 그것이 악마요, 방해자요, 교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다여, 수를 악마라 관하고, 방해자라 관하고, 교란하는 것이라 관하고, 병이라 관하고, 가시라 관하고, 고통이라 관하라. 그렇게 관하는 것이 바른 관찰이니라.ꡓ


([相應部經典] 23:1魔. 漢譯同本, [雜阿含經] 6:10魔)상응부경전 마 한역동본 잡아함경 마


전장(前章)에서도 비슷한 무답 형식의 일절을 인용했다. 우파바나라는 제자가 ꡐ현생적인 법ꡑ에 대해 물었고, 붓다는 여러 보기를 들어가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여기서도 라다(羅陀)라는 제자가 비슷한 형식의 질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 제자는 매우 솔직한 젊은이였던 것 같아서, 어떤 기본적인 뻔한 사실에 대해서도 자기가 납득할 수 없는 경우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어김없이 물은 듯 보인다.


이를테면 흔히들 ꡐ무상, 무상ꡑ 하지만 무상이란 대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또 흔히 ꡐ고(苦)ꡑ를 말하지만 고란 무엇이냐 라든지, ꡐ무아, 무아ꡑ라고 하는 그 무아는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식이었다.


그런 문답이 [상응부 경전]속에서는 한 곳에 모아져 ꡐ라다 상응(相應)ꡑ이라는 일련의 경군(經群)을 이루고 있거니와, 그것은 우리에게 더 없이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이 솔직한 젊은이는 무릇 불교의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샅샅이 묻고 있을 뿐 아니라, 붓다는 붓다대로 매우 명쾌한 답변을 하고 있으므로, 오늘 우리가 붓다는 대체 어떤 뜻으로 무상이니, 고니, 무아니 하는 말을 썼는가를 알아보려고 할 때, 이 ꡐ라다 상응ꡑ의 여러 경이야말로 가장 명쾌한 대답을 제공해 주는 까닭이다.


나 역시 무엇인가 불교의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의문이 생겼을 경우에는 언제나 이 경전을 들추어 보고 있다.


그런데 앞에 인용한 부분은 그런 라다와 붓다의 문답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서 라다가 물은 것은 악마란 대체 무엇이냐는 문제이다.


그런 질문 자체가 이미 악마를 객체적인 존재로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아니나 다를까 붓다는 이른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작용이야말로 악마의 정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붓다는 인간을 관찰하고 인간을 논할 때면, 먼저 인간을 다섯 부분으로 분석하였다.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오온은 매우 어려운 말이거니와 결국은 다섯 부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다섯 부분이 바로 앞에 열거한 색, 수, 상, 행, 식이다.


이제 그 다섯 부분에 대해서 대강 설명을 한다면 색이라는 것은 인간의 육체, 즉 물리적인 요소를 가리키고, 수 이하의 네 가지는 그 정신적인 요소를 가리킨다. 즉 수는 감각이요, 상은 표상(表象)이요, 행은 의지요, 식은 판단 이성의 작용이다.


결국 붓다는 이 다섯 개의 개념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정체를 나타내는 것이라 보고, 이제 라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악마란 그런 요소들이 작용해서 생기는 내재적인 방해물이요, 내재적인 교란자요, 내재적인 불안이요, 내재적인 가시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없지 않다. 많은 고대 문헌에 자주 악마가 나오지만, 그런 경우 대개 악마를 비인간적인 존재로서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불교 문헌에서조차 후대의 것은 역시 그런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붓다와 그 제자들에게는 악마란 필경 단순한 비유에 불과하였다.


결국 악마라는 낡은 개념을 빌려 인간의 내적 방해물이나 불안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땅히 주의해 두어야 할 일로 생각된다. 또 다른 보기를 들어 보자면 [상응부경전] 22:63 ꡐ취(取)ꡑ라는 제목의 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와 있다.


ꡒ색(色)에 집착할 때는 악마에게 붙잡힌다. 집착하지 않는다면 악마로부터 풀려난다.ꡓ


그리고 여기서도 또한 수, 상, 행, 식의 넷에 대해서 같은 표현을 하고 있거니와, 그 말투로 보아 인간 밖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악마가 아니라, 인간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나쁜 생각을 가리킨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깨닫게 된 다음부터 나는 이제껏 별로 주의하지 않았던 아함부의 여러 경에 산재해 있는 악마 이야기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읽어갔다.


읽어 감에 따라 그것들이 실로 중대한 뜻을 지닌 문헌임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던 일을 뉘우치기조차 하였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 속에는 붓다와 그 제자들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의 중요한 실마리가 깃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응부 경전] 4 ꡐ악마 상응(相應)ꡑ이라 불리는 것은 악마 이야기를 다룬 스물 다섯 가지의 경을 수록하고 있거니와, 그 첫째 경인 ꡐ고업(苦業)ꡑ이라는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그것은 붓다가 정각을 성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아직도 네란자라 강 기슭의 어떤 보리수 밑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때의 일이다. 그때 붓다는 마음속으로 먼저 자기가 고행을 포기했던 일을 생각하고있었다.


그 순간 마라(악마)는 붓다의 심중을 눈치 채고 게(偈)를 가지고 도전해 왔다.


고행을 떠나지 않아야만이

사람의 마음은 청정해짐을

그대는 이것을 버린 주제에

청정한 양 자처함 우습구나야.


붓다는 그것이 마라의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도 또한 게를 가지고 대답했다.


불사(不死)위해 고행을 닦은 나머지

전혀 이익 없음을 깨달았노라.

육지에 놓여진 삿대와 같아

오직 무익한 줄을 마땅히 알라.


그러자 악마는 ꡒ세존은 나를 알고 있다. 내 정체를 간파하고 있다.ꡓ고 외치면서 허둥지둥 그림자를 감추었다고 한다.


대체 경전 편집자들은 이런 데에 왜 이런 이야기를 적어 넣었던 것일까? 생각건대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고행의 포기는 붓다로서도 매우 곤란하고 중대한 행위였음에 틀림없다.


정각 직후에 그가 아직도 그것에 대해 얼마쯤 불안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는 줄로 안다. 그런 내심의 불안이 악마 이야기의 형식으로 여기에 표현되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아무 무리도 없는 일이겠다.


더 명백하게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ꡐ악마 상응ꡑ의 스물 넷째 경(經)인 ꡐ칠년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것 또한 정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여전히 보리수 밑에서 명상하고 있던 붓다에게 갑자기 악마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불사, 안온(安穩)에 이르는 길을

네가 진정 깨달았다면

그 길을 너 홀로 감이 좋도다.

어이 남에게까지 설하려는가.


그것은 틀림없이 정각 직후, 붓다가 설법 여부를 문제삼고 있던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 문제에 대해 붓다의 마음은 한때 부정 쪽으로 기울었다. 왜냐하면 붓다는 그것에 대해 여러 가지 위구와 불안을 느낀 까닭이다.


이런 부정적 일면을 문학적으로 나타낸 것이 이 악마 이야기인 것이며, 그런 주저를 극복하고 마침내 설법을 결심하게 된 과정을 묘사한 것은 앞에 든 ꡐ범천 권청ꡑ의 이야기인 것이다.


즉 붓다의 심리적인 움직임이 두 측면에서 묘사됨으로써 하나는 악마 이야기가 되고, 하나는 범천 이야기가 되고 있으니, 그것들은 매우 흥미 있는 고대 문학의 표현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악마 이야기는 붓다가 최초의 설법에 성공하고 마침내 60명에 이르는 제자들을 전도 여행에 떠나 보낼 때 다시 나타나게 된다.


그들을 보냄에 즈음하여 붓다는 ꡒ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ꡓ라고 격려한 끝에 여러 가지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붓다의 ꡐ전도 선언ꡑ이라고 부른다.


그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상세히 언급한 바 있거니와, 그 ꡐ전도 선언ꡑ이 있은 직후, 마라(악마)의 소리는 다시 붓다에게 속삭였다. [상응부 경정] 4:5 ꡐ계제(係蹄)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스워라, 그대는 이 세상에서


악한 이의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도다.


그대는 악마의 사슬에 매였나니


사문이여, 그대는 자유를 잃었도다.


이에 붓다도 게를 설하여 대답했다.


나는 진정 이 세상에서


악한 이의 올가미를 벗어났도다.


나는 악마의 사슬을 풀어 버렸거니


파괴자여, 그대는 패하였도다.


생각건대 이제 설법을 결심했다는 것은 다시 또 자기 생애에 중대한 의무를 부과했다는 것이 된다.


모든 구속에서 가까스로 해탈한 지금,그것은 또 하나의 속박이 되지 않으랴. 이런 새로운 불안이 붓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으리라. 이 악마이야기는 이런 불안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승 불교가 전하는 악마 이야기(붓다와 관계되는)와 이 아함부에 나타난 악마 이야기는 그시기 설정이 매우 다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대승에서는 그것을 모두 붓다의 성도(成道)이전의 일이라고 기록했으며, 정각 이후의 붓다는 완전히 악마의 시련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붓다의 인간성이 아함부의 여러 경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붓다가 이미 인간보다 훨씬 높은 절대자로서 인식되어, 그 인간성은 아주 희박해진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기에 정각 이후의 붓다와 악마를 관련시킨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함부에 보이는 악마 이야기는 주로 정각 이후의 붓다에 관련되어 있다.


앞에 든 세 개의 설화가 다 그렇거니와, 그 밖의 것들도 예외가 거의 없다. 하기야 정각 이전의 붓다에게야 말로 더 많은 심중의 불안과 고민이 있었을 터이고, 따라서 악마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해야 될 많은 소재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함부의 여러 경전들은 주로 정각 이후의 언행과 사상에 초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함부의 이런 이야기는 바로 붓다 그분의 풍부한 인간성의 표현이 되므로, 우리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아니할 수 없는 바이다.


이런 악마 이야기를 통해서 보면 붓다도 때로는 식욕의 유혹을 받기도 했고, 어떤 때는 수면의 유혹과도 싸워야 했던 모양이다. 다쳐서 누워 계셨을 당시에는 - 붓다의 만년에 데바다타(提婆達多)가 반역했을 때 - 무엇인가 불안을 느낀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또는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법을 설하다가, 갑자기 이래서 될까 하는 불안을 느낀 적도 여러 번 있었던 모양이다. ꡐ악마 상응ꡑ의14 ꡐ적절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시절 세존께서는 코사라 국 에카사라(一葦)라는 바라문 마을에 계셨다. 거기서도 역시 세존께서는 많은 재가 신도들을 상대로 법을 설하셨다. 그때 악한 이 마라는 이렇게 생각했다.


ꡒ지금 사문 고타마는 대중에게 에워 싸여 설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디 내가 가서 여러 사람을 속여 줄까 ꡓ 그래서 악한 이 마라는 세존 앞에 나타나 게를 가지고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법을 설함은

현명한 그대의 할 일 아니니

그대여, 그 짓을 굳이 하여서

탐심과 노여움에 매이지 말라.

세존은 그것에 대답하셨다.

남의 이익과 동정을 위해

깨달은 사람은 가르치나니

탐심과 노여움을 여래는 진정

이미 모두모두 해탈했노라.


그때 악한 이 마라는 ꡒ세존은 나를 알고 있다. 나를 간파하고 있다.ꡓ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의기 소침해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이 경전이 전하는 붓다의 설법자로서의 태도를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악마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니까, 우리는 그 표현을 넘어서 붓다의 심중을 살필 필요가 있으려니와, 여기에서 발견되는 붓다의 설법태도는 다른 종교인들의 그것과는 썩 다른 면이 있는듯하다.


그것은 거칠게 부르짖는 예언자의 태도가 아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무반성 하게 엮어 세우는 설교 태도 또한 아니다.


자기는 과연 이 사람들에게 설법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것에 정말 어울리겠는가, 또는 탐심이나 노여움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겠는가,


이런 인간다운 불안이나 반성이 마음에 오고 간다는 것은 도리어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붓다야 말로 그런 설법자였음을 이 이야기가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11. 연기(緣起)


이것 있음에 말미암아(緣)저것이 있고

이것 생김에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

이것 없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 멸함에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

([相應部經典] 12:21:19)상응부경전


이제까지 나는 10장에 걸쳐 붓다라고 불리는 사람을 여러 측면에서 관찰하고, 또 사상의 성격에 대해서도 몇 개의 특징을 든 바 있거니와, 한 마디로 말하여 붓다는 여느 종교가의 유형과는 썩 다른 인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종교가라는 개념보다는 오히려 사상가 또는 철학자의 범주에 속했던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 인품을 말한대도 그렇지만 사상은 더욱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계시 따위와는 전혀 달라서 정연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기에 그 가르침을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는 그것이 지혜의 가르침인 점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상 체계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 이른바 ꡐ연기의 원리ꡑ이다. 그것은 이미 말했듯이 보리수 밑에서의 정각의 내용일시 분명하다.


정각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은 바로 이 연기의 원리를 파악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의 모든 사상적 전개는 최초의 설법의 내용이 된 ꡐ사제ꡑ의 가르침을 비롯해서 모두 이 원리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을 터이다.


따라서 붓다의 사상을 파악하고자 할 때, 먼저 이 연기 사상을 명확히 이해할 것이 요청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붓다의 사상을 파고드는 정공법인 것이다.


그러나 이 원리를 파악하기란 그리 수월치가 않다. 이미 언급했거니와 붓다가 이 법을 설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 하고 주저했던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었던 것이다.


[상응부 경전] 6:1 ꡐ권청ꡑ은 그것에 대해 이런 말을 기록해 놓고 있다. ꡒ내가 체득한 이 법은 심히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적연 미묘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초월하며, 심원하여 오직 지혜로운 이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지고, 욕망을 좋아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연기 즉 모든 존재는 원인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겼다는 이치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ꡓ


이것을 잘 살펴보건대 연기설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두 가지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심히 깊다든지, 적연 미묘하다든지, 또는 오직 지혜로운 이만이 능히 알 수 있다든지 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둘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지고 욕망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이제 이 두 가지 이유를 검토할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먼저 첫째 이유로 말한 ꡐ사상이 심히 깊다ꡑ함은 어떤 사실을 가리키는 것일까? 후대의 불교 문헌에서도 우리는 흔히 ꡐ심심(深甚)ꡑ이니 ꡐ미묘ꡑ니 ꡐ난견(難見)ꡑ이니 하는 어휘에 부닥치게 되거니와,


불교 사상이 미묘해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은 어떤 뜻에서 하는 말일까? 현대인들도 불교를 이해하려 들다가 그것이 너무 난해함을 탓하는 수가 많다.


그리고 그 난해한 이유는 대개 엄청난 술어 때문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정각 직후의 붓다에게는 아직 한 개의 술어도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ꡐ연기ꡑ라는 술어마저도 틀림없이 후일에 성립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난해하다고 한 것은 결국 그것이 추상적인 원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도인들이 추상적인 사고를 즐기던 민족임은 문헌을 통해서잘 알 수 있으나 아직 붓다 시대에는 추상적 사색이 발달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몇몇 사상가들이나 그들을 따르는 사람 중에는 충분히 그것을 감당해 내는 이도 있기는 하였으나, 여느 사람들에게까지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 연기의 원리는 아주 추상적 원리인 까닭에 도저히 여느 사람들의 이해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겠다.


ꡒ적연 미묘ꡓ하다든지 ꡒ사람들의 생각을 초월한 것ꡓ이라든지, 또는 ꡒ지혜로운 사람만이 능히 알 수 있다.ꡓ든지 한 것은 이런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먼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추상적인 사색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이 첫째 이유가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좋을 줄 안다.


그 둘째 이유로서는 세상 사람들의 생활 태도가 지적되어 있다. 사람이란 흔히 그 도리가 진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자기 비위에 맞지않는다는 이유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경의 다른 대목에서 ꡒ이는 세상의 조류에 역행하는 것ꡓ이라고 붓다가 말씀한 것도 이런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진다.


뒤에서 밝혀지겠지만 이 연기의 원리가 요구하는 실천이란 욕심을 떠나는 문제, 즉 고의 멸진을 실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욕망에 빠져 있을 때에는 아무리 연기의 도리를 설해 보았자 도저히 그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다고 하여야 될 것이다.


이리하여 ꡒ나는 오직 기진 맥진할 따름이리라.ꡓ는 이유가 붓다로 하여금 설법을 주저케 만들었던 것이다 . 이 점에서는 현대에 사는 우리라 해서 조금도 고대인 보다 나아진 것은 없을 터이다.


우리 또한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지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아니 고대인보다 훨씬 욕망에 민감한 것이 우리이며, 욕망 이외의 것은 알려고도 들지 않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태도를 그대로 지녀서는 아무리 불교를 알려고 애쓴다 하더라도 결국은 인연 없는 중생이 되고 말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실천 없는 불교란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나는 짐짓 연기 사상의 난해함을 강조하고 있는 듯이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하기야 붓다도 그리고 후세의 불교인들도 자주 그것의 난해함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내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은 이미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 나는 붓다가 열거한 난해의 이유를 나누어서 설명했던 것이다.


그 첫째 이유, 즉 심심 미묘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이미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아도 된다.


문제는 오히려 둘째 이유에 있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이다.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도리는 잘 알겠으나 자신은 그것에 의해 살아갈 뜻이 없다고 한다면, 결국 불교와는 인연이 끊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그 실마리가 될까 해서 나는 이 장(章)의 첫머리에 ꡐ연기의 공식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몇 구절을 인용해 놓았다.


그것은 붓다가 정각한 직후, 아직도 보리수 밑에서 명상하고 있을 때에 정리해 둔 것이다. 사실을 말한다면 나도 역시 붓다가 정각을 성취한 그 순간의 소식에서부터 해명해 가고 싶지만, 그것은 누구의 손으로도 불가능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것은 마치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 인력의 법칙을 깨달은 그 순간 같은 것이어서, 그때의 내적 체험의 경위는 아마 본인으로서도 밝힐 수가 없었으리라 믿어진다.


따라서 경전에도 그 순간의 내적 체험을 이야기한 붓다의 말씀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그런 체험에 입각하여 정리해 놓은 사상 체계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그것을 짐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겠다.


그런 뜻에서 우선 이 ꡐ연기의 공식ꡑ을 취택한 것이고 이것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ꡒ이것 있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이것 생김에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ꡓ는 부분이다.


붓다는 일체 존재의 발생을 이 공식으로써 풀어 간 것임에 틀림없다. 이를테면 그 보리수 밑에 있었을 때, 붓다는 자기의 과제와 대결하면서ꡒ무슨 까닭에 노사(老死)가 있는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노사가 있는가?ꡓ 하는 문제를 생각했다고 한다([상응부 경전]12:10). 이미 그런 사고방식이 연기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려니와,


여기에서는 존재의 발생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니 ꡒ말미암아(緣)생긴다.ꡓ는 말을 줄여서 ꡐ연생(緣生)의 공식ꡑ이라 해도 좋을 줄로 생각한다. 또 하나의 부분은 그 후반의 것으로 다음 같은 말로 되어 있다.


ꡒ이것 없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 멸함에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ꡓ


붓다 자신이 이 공식을 사용한 보기를 살피건대, 역시 보리수 밑의 명상에서 ꡒ무엇 없는 까닭에 노사(老死)가 없는가? 무엇이 멸함으로 말미암아 노사가 멸하는가?ꡓ를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 또한 연기설에 의한 사고 법이며, 여기서도 ꡒ말미암아(緣)멸한다.ꡓ는 말을 줄여서 ꡐ연멸(緣滅)의 공식ꡑ이라고 해도 좋을 것으로 안다.


이리하여 이 전반과 후반을 합친다면 ꡐ연생, 연멸의 공식ꡑ이 되겠으나, 그것을 다시 줄여서 나는 ꡐ연기의 공식ꡑ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연기의 공식이란 결국 이런 공식에 의해 모든 존재의 발생과 소멸을 생각해 가는 일임에 틀림없다.


여기에서 다시 한걸음 나아가, 더 직접적으로 연기의 원리가 붓다에 의해 어떻게 설해졌는지를 생각할 때,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상응부 경전] 12:20 ꡐ연(緣)ꡑ이라는 제목의 경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 없이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연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붓다가 직접 정면에서 이야기한 경전은 아함부의 여러 경 중에서도 이것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것은 붓다가 사바티(舍衛城)의 교외에 있는 제타(祇陀)숲의 정사 즉 기원 정사에 계시던 때의 일이거니와, 붓다는 자진해서 비구들에게 ꡒ오늘은 연생의 법에 대해 설하고자 한다.ꡓ고 말문을 떼었던 것이다.


비구들은 필시 긴장한 표정으로 붓다의 다음 말씀을 기다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 붓다가 설하신 말씀을 경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ꡒ비구들아, 연기란 무엇인가? 비구들아, 생(生)이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노사(老死)가 있느니라. 이 사실은 내가 세상에 나오든 안 나오든 법으로서 확정되어 있는 바이다. 그것은 상의성(相依性)이다.


나는 이를 깨닫고 이를 이해하였다. 이를 깨닫고 이를 이해하였기에 이를 가르치고, 선포하고, 설명하고, 나타내고, 명백히 하여, ꡐ너희는 마땅히 보라.ꡑ고 말하는 것이니라.ꡓ


이 설명 속에는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 하나는 연기의 성격에 대한 언급이다.


그것은 계시도 아니고 영감도 아니며, 더구나 붓다가 발명한 도리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붓다의 존재 여부와는 관계없이 예로부터 이제까지 엄연히 정해져 있는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 원리가 본래 존재 사실 자체임을 말하는 것이겠다. 그런 뜻을 다른 곳에서 붓다는 ꡐ오래 된 기(古道)ꡑ에 비유해서 그것이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적도 있다.([상응부 경전] 12:65 성읍)


그러면 그것에 대해서 붓다는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둘째 사항인바, 붓다는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가르치고,선포하고, 설명하는 구실을 맡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ꡐ오래 된 길ꡑ의 비유를 가지고 말한다면 붓다는 다만 그 오래 된 길을 발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길을 정비하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가게 할 뿐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그리고 셋째 것은 이 원리의 구조에 관한 사항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알고 싶은 당면 문제이거니와, 이에 대해 두 군데에서 언급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하나는 ꡒ생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노사가 있다.ꡓ는 구절이다. 이는 연기설의 구체적인 보기라고 해도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ꡒ그것은 상의성ꡓ이라고 한 구절이다. 극히 짧은 말이기는 하나, 그것이야말로 이 원리의 구조를 표현한 소중한 자료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ꡐ연기ꡑ라는 말이 ꡒ말미암아 일어난다.ꡓ는 뜻임은 이미 언급했다. 이것을 팔리 어의 원어에서 따져 보아도 역시 Paticcasamuppada, 즉 ꡐ조건에 말미암은 발생ꡑ이라는 뜻이 된다.


일체의 존재는 모두가 그럴 만한 조건이 있어서 생겨났다는 것, 홀연히 또는 우연히 또는 조건 없이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것이 연기 사상의 내용이다.


또 그것을 뒤집어서 말한다면 일체의 존재는 그것을 성립시킨 조건이 없어질 때 그 존재 또한 없어져 버린다는 것, 따라서 독립, 영원하여 불변하는 것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연기 사상이다.


그것을 하나의 원리로 추상화 시킨다면 ꡐ조건에 의한 발생ꡑ이요, 그것을 약간 현대식으로 말하면 ꡐ관계성ꡑ이 될 것이며, 과거의 불교인들은 흔히 이것을 ꡐ인과성ꡑ이라고 했거니와, 이제 붓다는 그것을 ꡐ상의성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고대인 중에는 그런 추상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붓다의 제자들도 그 예외는 아니었던지, 한 경전([상응부 경전] 12:67 노속)에 의하면 코티카라는 제자도 그것이 아무리 해도 이해되지 않아서 친구인 사리푸타에게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ꡒ사라푸타여, 그것은 대체 어떻게 이해하여야 되겠는가?ꡓ


그것에 대답하면서 사리푸타는 한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ꡒ친구여, 이를테면 여기에 갈대 단이 있다고 하자. 그 갈대 단은 서로 의지하고 있을 때는 서 있을 수가 있다. 그것과 같이 이것이 있음으로써 그것이 있는 것이며, 그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 단의 갈대에서 어느 하나를 치운다면 다른 갈대단도 역시 넘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는 것이며, 그것이 없고 보면 이것 또한 있지 못하는 것이다.ꡓ


현대인은 그들보다 훨씬 추상적인 이해에 뛰어나다고 보아야겠으나,그래도 연기의 원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분이 있다면 이 비유를 곰곰이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12. 이는 고(苦)이다.

ꡒ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성제(聖諦)이다. 마땅히 알라. 생(生)은고이다. 노(老)는 고이다. 병은 고이다. 죽음은 고이다. 미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고요, 욕심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고이다.


통틀어 말한다면 이 인생은 바로 고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 마땅히 알라. 후유(後有)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그것이다. 그것에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가 있다.ꡓ


([相應部經典] 56:11如來所說). 漢譯同本, [雜阿含經] 15:17轉法輪)상응부경전 여래소세 한역동본 잡아함경 전법륜


전장(前章)에서 나는 연기의 원리에 대해 누누이 설명한 바 있거니와, 아마도 무미 건조하게 느껴져서 그런 이야기가 인생을 더 나아지게 하는데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했던 분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붓다는 그 원리를 깨달은 순간 ꡐ이젠 됐다.ꡑ고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하기야 ꡐ이젠 됐다.ꡑ는 따위의 점잖지 못한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을 테지만,


붓다는 그것에 의해 인생의 모든 과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게 된 것이므로 매우 기뻐했을 것은 사실이겠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하여 연기의 원리가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어 헤치는 열쇠가 된다는 말인가?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ꡐ연생(緣生)의 법ꡐ이라는 말 속에 설명되어 있다.


ꡐ연생의 법ꡑ이란 조건이 있음으로써 발생한 것이라는 정도의 뜻이어서, 말하자면 실체(實體)로서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 있기 때문에 이것 또는 저것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영원, 불변하는 것이란 인정될 수 없다는 것,그리고 조건에 의해 존재하는 까닭에 그 조건의 소멸은 바로 그 존재의 소멸도 뜻하게 된다는 것, ꡐ연생의 법ꡑ이란 이런 이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붓다의 과제가 되었던 고(苦)니 생로 병사니 하는 것은 어찌 될까? 일체의 존재가 조건에 의해 성립되었다면, 그런 존재의 성질에 불과한 고나 생로 병사가 영원, 불변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바이다.


그러므로 붓다가 ꡒ고는 연생이다.ꡓ라고 할 때, 그것은 고의 고유성, 실재성의 부정이라고 보아야 되는 것이겠다. 고도, 생로 병사도 어떤 조건에 의해 생겼다면, 그 조건을 변경시킴으로써 그런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뜻이 ꡒ고는 연생이다.ꡓ라는 말씀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그 말씀은 인생 문제를 해결한 붓다의 개가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이 장(章)의 첫머리에 인용한 글은 이른바 ꡐ사제ꡑ에 관한 설법의 전반 부분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사제설은 바라나시 교외 이시파타나미가다야(鹿野苑)에서 행해진 첫 설법의 주제였고, 또 붓다의 일생을 통해서 그 사상의 골격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 사제 설법 중에서 먼저 그 전반의 두 절을 떼내어 검토할 때, 거기에는 극히 명쾌한 표현으로 먼저 문제를 제시하고 난 다음 조건이 설명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ꡒ비구들이여, 이것이 고(苦)의 성제이다.ꡓ


붓다는 아마도 미리 네 가지 항목을 세워 놓은 다음 차레차레 그것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 네 가지 항목이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고의 성제.

2)고의 발생의 성제.

3)고의 멸진의 성제.

4)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


또는 ꡐ제(諦)ꡑ라 함은 단언적 명제라는 뜻이므로, 그것은


1)ꡒ이는 고다.ꡓ

2)ꡒ이는 고의 발생이다.ꡓ

3)ꡒ이는 고의 멸진이다.ꡓ

4)ꡒ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ꡓ


라는 형식으로 제기되었던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사실 그런 표현도 붓다의 말씀이라 하여 자주 여러 경전 속에 나오고 있다.


어쨌든 붓다는 먼저 문제부터 제시했다. 그것은 원래 붓다가 출가 당시에 지니고 있던 자신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제는 붓다 개인의 과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기야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과제로 자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마땅히 만인의 과제가 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겠다. 이 당연한 것, 괴로움으로 자각하고, 인생을 있는 대로의 진상에서 파악한다는 것은 기실 불교의 기초임에 틀림없으리라.


이것 없이는 불교는 그 첫발 조차도 내 디딜 수 없는 까닭이다. 이 자각이야말로 붓다를 몰아 진리 탐구로 달려가게 한 동기였다면, 그것은 전인류에게도 인생을 대하는 기본 자세이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문제의 제시가 그대로 진리(성제)일 수 있는 것이겠다. 생(生)도 고, 노(老)도 고, 병도 고, 죽음도 고! 과거의 불교인들은 이것을 합쳐서 사고(四苦)라고 불렀다.


이것만으로는 괴로움을 몇 가지 열거한 것뿐이어서 특별한 뜻이 없어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인간의 유한성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교 용어로 말한다면 그것들은 모두가 ꡐ행고(行苦)ꡑ에 속한다. 즉 일체가 무상하여 변화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 할 때 비로소 노, 병, 사와 함께 생(生)까지도 고(苦)속에 넣은 뜻이 명료 해 진다.


이런 사고(四苦)에 이어서 열거된 것은 예로부터의 한역으로 말한다면 원증회고(怨憎會苦)요, 애별리고(愛別離苦)요, 구불득고(求不得苦)이다.


이런 것들은 사고에 비길 때 좀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의 유한성과 관련된 것도 아니고, 행고 속에 포함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구태여 그것들을 규정한다면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체험을 세 가지 사항으로 대표 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ꡒ이 인생은 고 그것이다.ꡓ라는 말은 인생 전반에 대한 단안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예로부터 불교인들은 사고와 나중에 나온 네 가지 항목을 합쳐서 흔히 ꡐ팔고ꡑ라고 일컬었으나, 이것은 항목만을 나열한 데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붓다가 먼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말하고, 그 다음으로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체험을 설함으로써, 결국 이 인생이란 고(苦)가 이니냐는 결론으로 이끌어 간 그 설득의 교묘함을 잘 맛보는 것이 좋으리라 믿는 바이다.


그 두 번째는 ꡒ이것이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ꡓ라고 되어 있다. 더 단적으로 말한다면 ꡒ이는 고의 발생이다.ꡓ라는 명제다.


이것에 대해 앞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제1명제에서 제2명제로 옮아가는 과정이다. 거기서는 ꡐ무엇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고가 있는 것일까?ꡑ라는 설문이 있어서 그 두 가지 명제를 연결시키고 있다.


ꡐ연기의 공식ꡑ의 전반이 질문의 형식으로 양자 사이에 개재됨으로써 그 둘을 결합시킨 것이다. 물론 사제 설법의 말씀에는 그것이 나타나 있지 않으나, 정각 이후에 붓다가 펼친 논리에는 언제나 이 공식이 자유 자재로 구사되고 있다.


그리고 이 설문에 대해 ꡒ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고가 있다.ꡓ고 대답하는 것이 이 제2명제인 것이다. 그러면 그런 고(苦)를 있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갈애라고 대답 되어 있다.


갈애(渴愛)라는 말의 원어는 팔리 어로 말한다면 tanha인데, 그것은 원래 ꡐ목마름ꡑ의 뜻이어서 목마른 이가 물을 바라 마지않듯이 사납게 타오르는 욕망의 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갈애란 그 원어의 뜻을 살리고자 매우 애쓴 역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여기서 붓다가 그 말에 부여하고 있는 뜻이다. 그것을 따져 볼 때 이 말은 불교를 이해하는 데 매우 미묘하고 중대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이제까지 좀 소홀하지 않았던가 싶다. 붓다가 욕망에 대해 언급할 경우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그대로 보아 넘긴 점이 없지 않다고 생각되는 까닭이다.


갈애라는 말의 쓰임새도 그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붓다는 결코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가 부정한 것은 그 지나치게 사나운 작용이었다.


나는 일찍이 불교가 욕망의 완전한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나 같은 것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으리라고 낙담한 일도 있다. 또는 이런 가르침은 완전히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적도 있다.


그러나 깨닫고 보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오해임이 밝혀졌다. 이리하여 나는 자신의 불민함을 부끄러워하면서 붓다가 사용한 욕망과 관계되는 술어를 주의 깊게 검토해 갔다.


그 결과로 나는 대략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로 욕망 자체는 ꡐ무기(無記)ꡑ라고 보는 것이 붓다의 입장이었다고 이해된다. 무기란 ꡐ선악을 구별하기 이전의 상태ꡑ라는 뜻이다.


붓다는 욕망 자체를 일괄해서 그것을 선이라든지 악이라든지 단정한 적은 없던 것이다. 만약 그렇게 단정했다면 그것은 도리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 되는 까닭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나 식욕이라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 식욕에 따라 음식을 먹게 된다. 그리하여 적당히 먹어서 몸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디로 보나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먹어 도리어 몸을 손상시킨다면 그것은 나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또는 자신의 식욕을 채우기 위하여 남의 것을 뺏어 먹는다고 할 때, 그것 또한 나쁜 행위라고 하여야 될 것이다. 그러기에 욕망 자체는 무기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그 작용에 따라 처음으로 선악의 판단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부 경전] ꡐ자설경(自設經)ꡑ 6:8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던 것이 생각난다.


ꡒ고행만이 청정한 행위라는 생각은 하나의 극단이다. 욕망에 아무 나쁜 점도 없다는 생각 역시 하나의 극단이다.ꡓ


금욕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욕망을 악이라고 보기 때문이려니와 붓다는 이 입장을 배격하였다. 고행을 포기한 것이 그 증거이다. 쾌락 주의에 빠지는 것은 욕망을 선이라고 보는 것이 겠으나 붓다는 이런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


출가의 단행이 무엇보다도 뚜렷한 그 증거이다. 이 두 가지 태도로 볼 때, 욕망에 대한 붓다의 견해는 ꡐ무기(無記)ꡑ 였다고 아니할 수 없는 바이다.


둘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욕망을 언급하며 그 지나친 작용을 경계 할 때 붓다는 언제나 신중하게 그 용어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탐욕이라는 용어가 그것이다.


이것은 원래 raga라는 원어를 번역한 것으로 ꡐ붉음(赤)ꡑ 또는 ꡐ연소ꡑ를 뜻하는 말이다. 그것을 붓다는 불꽃 처럼 타오르는 맹렬한 욕망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한역에서는 이것을 ꡐ탐(貪)ꡑ이라는 말로 바꾸어 놓았거니와, 그 원어의 뉘앙스는 일단 상실된 채로 그래도 아직 욕망의 지나친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


그리고 여기에서 갈애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도 또한 이런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붓다는 이런 괴로움을 있게 하는 조건으로 갈애를 지적하고, 그것에 대해 간명한 해설을 베풀어 갔다.


그 해설도 다시 두 부분으로 가를 수 있다. 갈애의 상황을 말한 것과 그 종류를 열거한 부분이 그것이다.


먼저 그 첫재 부분에 대해서는 ꡒ후유(後有)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한다.ꡓ고 설명했다. 이 중에서 ꡒ후유를 일으키고ꡓ라는 말은 현대인의 표현으로는 쉽게 나타내기 어려운 뜻을 내포하고 있다.


후유라는 말은 내생에서 윤회를 되풀이하는 존재라는 뜻이어서, 결국은 미망(迷妄)의 인생을 반복한다는 정도의 뜻이다. 그리고 그 씨(원인)가 되는 것이 다름 아닌 갈애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이것을 한역에서는 ꡒ희탐 구행(喜貪俱行)수처 환희(수處歡喜)ꡓ라고 했다.


그 대상을 가리지도 않고 욕심을 내어서 그칠 줄을 모르는 상태를 말한 것이라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 부분은 ꡒ그것에는 욕애와 유애와 무유애가 있다.ꡓ고 되어 있다. 이것은 갈애의 분류인바, 그 분류의 솜씨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하나는 성(性)에 관한 욕망(욕애), 둘째로 지적된 것은 개체 존속의 욕망(유애), 셋째 것은 명예, 권세에 대한 욕망(무유애)인바, 이 분류 방법은 오늘에서도 근본적으로는 정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


그것은 이를테면 홉즈(1588~1679)가 인간의 온갖 욕망을 세심히 검토한 끝에 그것들을 가장 소박한 형태로 환원시켜서 자기 보존의 욕망, 자기 연장의 욕망, 명예와 권세같이 남의 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 - 그는 그것을 허욕(vanity)이라고 했다. - 의 셋으로 나눈 것을 생각게 한다.


어쨌든 붓다는 여기에서 괴로움을 생기게 하는 조건을 발견하여 그것을 상세히 검토하였다. 그러면 그 조건이 되는 갈애를 어떻게 처리 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셋째와 넷째의 성제(聖諦)인 것이다.




13. 이는 고(苦)의 멸(滅)이다


ꡒ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滅盡)의 성제이다. 마땅히 알라. 이 갈애를 남김 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서, 더 이상 집착함이 없기에 이르는 일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 마땅히 알라.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길이니,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정정진, 정념, 정정이 그것이다.ꡓ


([相應部經典] 56:11如來所說. 漢譯同本, [雜阿含經] 15:17轉法輪)상응부경전 여래소세 한역동본 잡아함경 전법륜


이것이 사제 후반의 두 가지 성제에 대한 설법이다. 이제 전반의 두명제와 후반의 두 명제를 따로 나눈 것은 붓다가 그렇게 구분하여 설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로 볼 때 일단 그런 분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에 든 ꡐ연기의 공식ꡑ을 여기에 적용시켜 본다면 ꡒ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다.ꡓ 또는 ꡒ이것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ꡓ는 공식의 전반 부분이 쓰이고 있는 것은 사제 전반의 두 명제이다.


그리고 ꡒ이것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없다.ꡓ 또는 ꡒ이것이 멸함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ꡓ는 후반의 공식이 응용 된 것은 이 후반 부분인 멸, 도의 두 명제라고 할 수 있다.


또는 그 전반은 고의 발생에 관한 이론적인 부분, 그 후반은 고의 멸진에 대한 실천적인 부분이라고도 나눌 수 있겠다. 어쨌든 ꡒ이는 고이다.ꡓ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만드는 조건을 갈애라고 단정한 이상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ꡐ연기의 공식ꡑ의 후반 부분이 응용되어 ꡒ무엇을 멸함으로 말미암아 고를 멸할 수 있는가?ꡓ 라고 추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대답이 ꡒ이 갈애를 남김 없이 멸하여 더 이상 집착함이 없기에 이르는 일ꡓ 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갈애 때문에 생긴 괴로움이니까 이것을 제거하면 된다는 이론이다. 그것은 참으로 간단 명료한 답변이다.


너무 간단 명료하여 도리어 싱겁다고 할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인생의 괴로운 양상이란 천차 만별하고 다기 다양한 것이기에, 도저히 이처럼 간단하게 처리될 수는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다기 다양한 것을 쾌도로 난마를 베듯 풀어 버리는 것이 지혜라고 감히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나는 붓다의 정각을 말하면서 뉴턴이 만유 인력을 깨닫던 순간을 보기로 든 바 있거니와, 그 후 뉴턴에 의해 정리된 인력의 법칙은 간명 했을지는 몰라도 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어떤 멸 하나도 망라하지 못함이 없었던 것이니, 그것이 과학자의 지혜임에 틀림없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붓다에 의해 정비 된 사제의 명제 또한 간단 명료하면서도무릇 인생의 모든 양상에 적응해서 어느 하나라도 새어 나가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붓다가 설하신 것을 지헤의 가르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만 인생은 자연과 다르기에 그 법칙에 따라 실천하느냐 안 하느냐는 우리 인간에게 맡겨져 있다. 여기에서 실천의 문제가 중대한 의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넷째 명제는 ꡒ이것이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ꡓ 라고 되어있다. 나는 그렇게 번역했지만 더 원어에 가깝게 옮긴다면 ꡒ이것이 고의 멸(滅)에 따르는 길의 성제이다.ꡓ 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역에서 흔히 ꡒ순고멸도성제(順苦滅道聖諦)ꡓ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고의 멸(제3성제)에 따르는 실천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그렇게 번역하는 쪽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제3성제와 제4성제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제3성제에서 실천의 원리가 수립 되었다면, 제4성제에서는 그 원리에 따르는 실천 항목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항목이란 물론 ꡐ성스러운 팔지(八支)의 길ꡑ 즉 팔정도(八正道)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 사제는 연기의 원리에 입각해서 그것을 실천의 체계로까지 재 조직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이론이 전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중점은 실천 쪽에 놓여 있어서, 이론도 이런 실천을 뒷받침하기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실천이란 인간의 선택에 매인 문제이므로 그 길을 가느냐 안 가느냐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맡겨져 있다.


자연 과학의 영역은 필연의 세계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역은 자유의 세계이기에 이로부터 실천의 무거운 의의가 생겨나는 것이겠다.


붓다가 그 실천 항목으로 열거한 ꡐ성스러운 팔지의 길ꡑ은 다음과 같은 여덟 개의 정도(正道)로 이루어져 있다. 정견(正見), 정사(正思),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그것들이다.


제4성제는 다만 이런 항목들을 열거했을 뿐이지만, 나는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네 묶음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1)정견 --------------- 바르게 보는 것

2)정사, 정어, 정업 --- 바른 행위

3)정명 --------------- 바른 생활

4)정정진, 정념, 정정 - 바른 수행


이런 분류 방식은 붓다의 말씀에 근거한 것도 아니며, 후세의 불교인들에 의해 시도된 바도 아니나,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나누고 볼 때, 붓다가 지시한 실천이라는 것이 어떤 성질의 것이었는지 잘 나타나는 것 같다.


이것들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제1항목의 정견(正見)으로 보인다. 과거의 불교인들도 이것을 팔정도의 ꡐ기체(基體)ꡑ라고 불러 이것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ꡐ견ꡑ이란 관찰하고 선택한다는 뜻을 지닌 불교 옹어로서 결국 인간의 오성(悟性)의 작용이라고 하겠으나, 그것이 실천을 재촉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정견은 다른 일곱 가지 정도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부터 바른 행위가 흘러 나오고, 바른 생활 태도가 선택되며, 바른 수행이 선택되는 까닭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런 여덟 가지 실천이 모두 ꡐ정(正)ꡑ 이라는 형용사로 불리는 사실이다.


대체 ꡐ정ꡑ이란 무엇일까? 이 말을 우리는 당연히 알고 있는 것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ꡒ바르다ꡓ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조건을 구비하는 것이 ꡒ바르다ꡓ고 불리는가 하고 따지면, 정연한 이론으로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알기는 알고있으나 말하려 드니 말이 잘 안 나온다거나, 답변을 회피해야 될까? 그러나 이 말은 불교에서 매우 중대한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므로 어물어물 넘길 수는 없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말에 대해서도 불교 쪽에서는 정연한 대답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이다. ꡐ정ꡑ의 첫째 조건은 ꡒ망령됨을 떠나는 일ꡓ이라고 되어 있다. 망령됨(妄)이란 명석하지 않고 여실(如實)하지 않음을 이름이다.


이것을 ꡐ견(見)ꡑ에서 말한다면 허망한 관찰, 허망한 분별이 ꡐ망견(妄見)ꡑ이다. 또는 ꡐ어(語)ꡑ에 관련시켜 말한다면 진실에 어긋나고 명확하지 않은 발언이 ꡐ망어(妄語)ꡑ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런 망령됨이 생겨나는가? 앞에서도 인용했거니와 붓다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한 적이 있다.


ꡒ여기에 물통이 있어서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 하자. 그러나 만약 그 물이 불에 데워져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든지, 또는 이끼나 풀로 덮여 있다든지, 또는 바람이 쳐서 물결이 일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그 물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있는 모습 그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ꡓ


그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이 탐욕으로 어지러워진다든지, 노여움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든지, 또는 어리석음이나 의심으로 덮여있다든지 할 때에는 무엇이거나 여실히 명석하게 관찰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경에서 붓다가 설한 가르침이었다.


이것을 더 추상적으로 나타내면 객체와 주관 사이에 여러 잡스러운 요소가 개재함으로써ꡐ망령됨ꡑ이 생기는 것이어서, 그것을 불교에서는 복(覆;덮는 것)또는 애(碍;장애가 되는 것)라고 일컫는다.


이런 개재물을 남김없이 떨쳐 버리고 맑은 주관을 가지고 객체를 대하는 것, 그것이 ꡒ망령됨을 떠나는 일ꡓ 이며, 그 때 일체의 존재는 진상대로 주관에 의해 받아 들여지고,주관에 의해 선택, 분별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실 지견(如實知見)이요, 무애(無碍)의 정견(正見)이다 . 다시 말하면 이것이 언어로 표현될 때 ꡐ정어ꡑ가 되고, 행동으로 나타날 때 ꡐ정업ꡑ이 되는 것이다. ꡐ바른 것ꡑ의 둘째 조건은 ꡒ전도(顚倒)를 떠나는 일ꡓ이다.


여기서는 ꡐ정견ꡑ이 기초가 되므로 그것에 적용시켜 말한다면 ꡒ전도의 견(見)이 아닌 것을 정견이라 한다.ꡓ고 할 수 있다([승만경]). 전도란 관찰과 판단에 임해서 그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놓치는 일이다.


대(大)와 소(小)를 거꾸로 아는 것도 그것이요, 미와 추를 잘못 판단하는 것도 그것이다. 또 변화해 마지않는 것을 마치 영원 불변한 듯이 착각하는 것도 그것이다. 붓다는 일찍이 이런 게를 설한 일이 있다.


법에 의해 이익을 얻지 못함과

비법(非法)으로 이익을 얻는 그것은

어느 쪽이 낫다고 하여야 하랴.

법대로 행하여서 얻지 못함은

비법으로 얻음보다 훨씬 나아라.

깨달은 것 적으면서 높은 명성과

깨달은 것 많고도 낮은 명성은

어느 쪽이 낫다고 하여야 하랴.

지혜가 많고도 낮은 명성은

적고도 높음보다 훨씬 나아라.


그것이 바른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는 자칫하면 ꡒ비법으로 이익을 얻는 일ꡓ에 몰두하기 쉽고, ꡒ지혜가 적으면서 명성이 높기ꡓ를 바라기 일쑤이다.


그리하여 이런 전도된 사고 방식은 인생의 모든 영역을 채워 버려서 사람들을 미망과 죄악 속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ꡐ사전도ꡑ라고 한다. 이것은 불교의 입장에 서서 인간이 빠지기 쉬운 잘못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첫째, 상(常)전도 ----- 이 무상한 존재를 영원한 것인 양 잘못 생각 하는 것.

둘째, 낙(樂)전도 ----- 고(苦)라고 보아야 할 이 인생을 즐거운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

셋째, 정(淨)전도 ----- 이 부정한 인간 존재를 청정한 것인 듯 잘못 생각하는 것.

넷째, 아(我)전도 ----- 이 무아(無我)인 존재를 자아가 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런 전도가 생기는 이유를 추궁할 때, 결국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이런 장애물을 불식하여 이 전도에서 떠나지 못한다면, 마침내 ꡐ정(正)ꡑ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조건이 되는 것은 ꡒ극단을 떠나는 일ꡓ이라고 지적된다. 한역 경전의 표현을 따른다면 ꡒ가를 떠나 한가운데에 서는 일(離邊處中;이변처중)ꡓ이다.


앞에서 인용한 첫 설법에 ꡒ비구들이여, 출가한 사람은 두 극단을 피해야 하느니라.ꡓ 고 나와 있던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ꡐ극단ꡑ이라고 번역한 것은 팔리 어로 말한다면 anta(끝, 가)인바, 한역에서는 편(偏)또는 변(邊), 단(端)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ꡐ변ꡑ을 떠나 ꡐ중(中)ꡑ에 서는 곳에 ꡐ정ꡑ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가지고 ꡐ정(正)ꡑ을 규정한다는 것은 다른 데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매우 불교적인 사고 방법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붓다의 절실한 체험으로부터 이런 조건들이 생겨 났으리라고 생각된다. 그 체험이란 붓다가 정각을 이루기에 앞서 온 힘을 기울여서 고행에 매진하던 일을 말한다.


생각건대 극단으로 달린다는 것은 어딘가 인간의 깊은 데에 뿌리박고 있는 경향인 것 같다.


우리의 생각은 자칫하면 극단으로 달리기 쉽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자기가 위대해지기나 한 둣이 좋아하는 점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정치적인 견해만 하더라도, 좌냐 우냐 확실히 그 입장을 가르려고 드는 것이 우리이다.


그리하여 그 노선을 일단 택하고 나면 그것에 대해 미심쩍은 일이 있든 말든 그것을 끝까지 밀고 가려 든다.


우리의 처지에 알맞은 융통성 있는 입장이라는 것은 웬지 기회주의처럼 생각되어 비위에 맞지않는 것일까? 이렇게 어느 극단으로 달리는 것은 인간의 약함을 숨기려는 행동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붓다 조차도 한때는 이런 인간적인 약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붓다의 전기는 우리에게 똑똑히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고행에 열중하여 그것으로 길을 타개하려고 했던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이윽고 고행에 매달리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님을 자각하여 경연히 그것을 버렸던 것이지만, 그 체험이 이제 여기에 ꡐ정(正)ꡑ의 조건으로서 알려진 것은 아니겠는가.


한 경([잡아함경] 9:30:20 억이. 팔리 어 동본, [증지부경전] 6:55소나)은 이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 있는 문답을 전해 주고 있다.


붓다의 제자 중에 소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아주엄한 수행을 계속했건만 아무리 해도 깨달을 수가 없었다. 도리어 망상만이 일어나서 그를 괴롭혔다.


그것을 아신 붓다는 그를 찾아가서 물으셨다.


ꡒ너는 집에 있을 때, 무슨 일을 잘했느냐?ꡓ

ꡒ대덕이시여, 거문고를 좀 뜯을 줄 알았습니다.ꡓ

ꡒ그러면 소나야, 거문고 줄을 아주 팽팽하게 죄면 어떻더냐? 켜기에 좋더냐?ꡓ

ꡒ대덕이시여, 너무 팽팽하면 좋지 않습니다.ꡓ

ꡒ그렇다면 소나야, 아주 허술하게 하면 어떻더냐?ꡓ

ꡒ대덕이시여, 그리해도 안 되나이다.ꡓ


ꡒ소나야, 네 말대로다.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거나 너무 허술해서는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다. 도(道)의 실천도 그와 같으니라. 쾌락에 빠지는 일이나 고행을 일삼는 것은 다 바른 태도는 아니다.


또 지나치게 서둔다면 고요한 심경을 기대할 수 없고, 너무 긴장을 푼다면 게을러지기 쉽다. 너는 그 중간을 취하도록 하여라.ꡓ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에 설 때 바른 실천이 이루어진다는 것, 이것이 불교의 실천의 핵심이 되는 이른바 ꡐ중도ꡑ의 가르침이다.


이리하여 ꡐ팔정도ꡑ란 이런 여러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바르게 보는 태도(정견), 바른 행위(정사, 정어, 정업), 바른 생활(정명), 바른 수행(정정진, 정념, 정정)임을 알게 된다.




14. 나도 밭을 간다.


믿음은 내가 뿌리는 씨

지혜는 내가 밭 가는 모습.

나는 몸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나날이 악한 업(業)을 제어하나니

그는 내가 밭에서 김 매는 것.


내가 모는 소는 정진이니

가고 돌아섬 없고

행하여 슬퍼함 없이

나를 편안한 경지로 나르도다.


나는 이리 밭 갈고 이리 씨 뿌려

감로(甘露)의 열매를 거두노라.


([相應部經典] 7:11耕田. 漢譯同本, [雜阿含經] 4:11耕田)상응부경전 경전 한역동본 잡아함경 경전


▶ 업(karma);어떤 결과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행위 일체. 이것을 행위와 말과 생각으로 나누어 신(身), 구(口), 의(意)의 ꡐ삼업ꡑ이라 한다.


이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경 중의 하나이다. 그때 붓다는 마가다국의 시골인 에카사라(一葦)라는 마을에 있었다.


그 마을 이름은 다른 경에도 나오는데, 붓다가 여러 신자들을 상대하여 법을 설하고 있을 때 악마가 도전헤 왔다는 것도 그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것은 어쨌든, 붓다와 그 제자들은 어디에 살든지 간에 하루하루의 생활을 탁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어서, 이런 탁발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경이다.


그 아침에도 붓다는 어느 집 앞에 서서 탁발을 했다. 그것은 바라문의 집이었는데, 마침 씨 뿌리는 철이었으므로 그 집 주인인 바라문은 마을 사람들을 시켜서 그 준비를 서둘고 있는 참이었다.


바라문이란예전부터 내려오는 사제자(司祭者)여서 제사를 주관하는 것이 그 소임이었으나, 붓다 시대에는 아마도 바라문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지 농사를 짓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바라문은 붓다가 탁발 온 것을 보자 앞으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ꡒ사문이여, 나는 밭 갈고 씨를 뿌려서 내가 먹을 양식을 마련하고있소. 당신도 또한 스스로 밭 갈고 씨를 뿌려서 당신이 먹을 양식을 마련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이까?ꡓ


그것은 아마도 날카로운 어조의 도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생각건대 그 바라문은 종교인의 생활을 청산하고 농사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에게 새로운 인생관이 생겼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이런 생각이 그 말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이 도전에 대해 붓다는 어떻게 응수했던가?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기이한 인상을 주는 말씀으로 나타났다. ꡒ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간다. 나도 밭 갈고 씨 뿌려서 먹을 것을 얻고 있느니라.ꡓ


그것을 들은 바라문이 자기의 귀를 의심 하는 듯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아마 그는 얼마 동안 붓다의 얼굴만 멍하니 보고 있었으려니와, 이윽고 다시 물었다.


ꡒ사문이여, 우리는 누구 하나 당신이 밭 갈고 씨 뿌리는 모습을 본적이 없소. 대체 당신의 모습은 어디에 있소? 그리고 당신의 소는 어디에 있소? 당신이 밭을 간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지 나는 묻고 싶소.ꡓ


그때 붓다가 대답한 말씀이 앞에 든 게(偈)로 표현되어 전해 오는 것이다. 거기서 붓다는 내가 뿌리는 씨는 믿음(信仰)이요, 내 모습은 지헤가 그것이라고 했다.


또 나날이 악업(惡業)을 제어하는 것은 곧 김매는 작업이며, 내 소는 무엇이냐 하면 정진(精進)이 그것인바, 이 소는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나아가 물러섬이 없고, 또 그 행한 결과에 대해 뉘우쳐야 할 일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것이 내 농사요, 그 수확은 감로(amrta)의 열매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감로는 ꡐ불사(不死)ꡑ, ꡐ천주(天酒)ꡑ라고도 번역된다. 그것은 꿀같이 달고 향기가 높으며, 한번 먹으면 죽는 일이 없다는 전설이 있다.


고대 인도에서는 신(神)의 음식이라고 생각되었거니와, 불교에서는 이것으로써 그 궁극의 경지를 나타내는 일이 많다.


그런데 붓다가 ꡒ나도 밭을 간다.ꡓ고 대답한 것은 아마 그 순간에 떠오른 즉흥적인 말씀이었겠지만, 참으로 의미 심장한 바가 있다고 하겠다.


그 뜻을 해명하면 붓다의 가르침의 기본적인 성격도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된다고 여겨지므로, 이제 그것에 대해 얼마간 설명을 해 볼까 한다.


대체로 인도 게르만 어족 계통의 언어에서는 대지를 개발하는 것과 인간의 정신을 계발하는 것이 같은 낱말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영어에서 이것을 말할 때 cultivate가 그것이다. 또 문화와 농업이 어근을 같이하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즉 문화가 cultute인 데 대해,문화, 또는 인간 정신의 계발이 언어에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 양자는 기본 구조를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 문화를 논하는 학자 중에는 문화의 근본 원리가 경작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결코 근거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대지를 갈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 경작하고, 어떻게 수확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그것을 논할 만한 자격이 없으나, 구태여 말한다면 그 기본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사꾼에게 주어진 것은 거친 대지이며, 그것을 인간이 개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잡초와 잡목을 제거하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치워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보습을 대고 갈아야 할 것이며, 토양이 곡식의 성장에 적당치 못하다면 그 개량도 꾀해야 할 것이다.


또 물에서 떨어져 있을 때는 관개 시설도 서둘러야 하리라.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논밭이 이루어지고, 거기에 씨가 뿌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비와 햇볕과 김매기, 거름주기 같은 것이 있음으로써 겨우 수확까지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겠다.


그런데 문화니 교양이니 인간 정신의 계발이니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농사 짓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생긴 대로의 인간이란 자연의 대지와 비슷한 것이라고 하여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과 육체는 마치 잡초와 잡목에 뒤덮인 황무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 잡초와 잡목을 뽑고, 크고 작은 돌멩이를 치우며, 토양도 개량해야 한다. 그 때 거칠던 인간은 비로소 아름다운 논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씨가 뿌려지고 적절한 손질이 베풀어질 때, 인간은 아름다운 땅으로서 훌륭한 수확을 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붓다도 기실 이런 일을 하고 있기에 ꡒ나도 밭을 간다.ꡓ고 대답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인간 개간의 일을 하자면 먼저 지혜의 보습으로 갈아야 한다. 즉 인간의 무지 몽매함을 제거하는 일이다. 거기에는 미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고, 전도가 있다.


그리고 잔인성이 있고, 극단을 즐기는 버릇이 있다. 붓다의 설법이야말로 이런 황무지를 지혜의 모습으로 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경전([상응부 경전] 42:1포악. 한역 동본, [잡아함경] 32:6악성)은 붓다가 어떤 촌장을 교화한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 사나이는 마을에서도 매우 소문이 나쁜 사람이었으며, 그것을 스스로 걱정하여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왔던 것이다.


ꡒ대덕이시여, 사람들은 나를 ꡐ포악하다, 포악하다.ꡑ 말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까닭에 그리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세상에는 같은 인간이면서도 ꡐ얌전하다.ꡑ는 평을 듣는 사람도 있거니와, 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사람은 그런 말을 듣는 것이겠습니까?ꡓ


붓다는 거친 그 사람을 자비에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했다.


ꡒ촌장이여, 여기에 탐욕을 지닌 사람이 있다 하자. 그는 탐욕 때문에 남의 노여움을 사야 하며, 남이 노하는 것을 보면 그도 또한 노하게 되리라.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ꡐ포악하다ꡑ는 소리를 듣게 될 것 아니냐?


또 여기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증오심에 불타고 있다고 치자. 그는 증오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노여움을 살 것이며, 다른 사람이 노하는 것을 보면 그도 또한 노하리라.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ꡐ포악하다.ꡑ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 아니냐?


이런 논리의 전개는 붓다의 독특한 설명 방식이다. 간명하다고 하기보다는 좀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다. 분석적이어서 단계에 따라 끌어올리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명에 덮여 있는 눈을 뜨게 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ꡒ그러나 촌장이여, 탐심, 증오심, 우매함을 떠나 버린 사람이 여기에 있다 하자. 그는 그런 것들을 떠난 까닭에 누구의 노여움도 사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남의 노여움에 자극되어 자기가 성내는 일도 없으리라.


그 때에는 모두 그를 일컬어 ꡐ얌전한 사람ꡑ이라고 할 것이 아니냐?ꡓ 이것은 바로 인간의 개간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지 몽매에 덮여 있는 인간 정신의 황무지에서 탐욕을 갈아 엎고, 증오심을 베어 내며, 어리석음을 뽑아 내서, 거기에다 씨를 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거기에 씨가 뿌려진대도 그것으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대지를 경작하는 데에도 적당한 비와 적당한 햇볕과 때에 맞는 거름과 때에 맞는 제초 작업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인간 정신의 경작 또한 더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 중에서 앞에 나온 게(偈)가 들고 있는 것은 계율과 정진이다. 즉 나날이 신(身), 구(口), 의(意)의 삼업(三業)에서 악을 제어하는 일, 그것이 ꡒ내가 김매는 일ꡓ이라고 붓다는 말씀했다.


불교의 술어로 말한다면, 계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지를 경작할 때도 일단 개간한 땅이라고 하여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문제이다.


잠시라도 눈을 땅에서 뗀다면, 모처럼 자라던 곡식도 순식간에 잡초로 뒤덮여 버리리라.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도 어느 만큼 계발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리하다가는 악성의 잡초가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신, 구, 의 삼업에 걸쳐 철저한 제초 작업이 나날이 되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계(戒)라는 말은 우리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웬지 강요된 규제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까? 그러나 계를 강요된 규제 사항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받아들이는 태도에 잘못이 있는 것 같다.


이 말의 원어인 ꡐ시라(si-a)ꡑ라는 말은 습관, 성격의 뜻이다. 예로부터 불교인들은 흔히 이것을 설명하여 소극적으로는 ꡐ악을 막는 일(防非止惡)ꡑ, 적극적으로는 ꡐ선을 향상시키는 일(諸善增上)ꡑ이라고 했다.


그것은 결국 나쁜 버릇을 없애고 좋은 생활 습관을 기르는 일이며, 바꾸어 말하면 좋은 방향으로 성격을 개조해 가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행위(身)와 언어(口)와 생각(意)에서 나날이 악의 풀을 제거해 감으로써 뿌려진 진리의 씨를 잘 자라나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것이 계요, 성격을 개조해 가는 불교적인 방식인 것이다. 무릇 모든 종교에는 성격을 전화 시키는 그 나름의 방식이 준비되어있을 것이다.


ꡒ낡은 것은 이미 지나가고, 보라, 새롭게 되었도다!ꡓ


모든 종교인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불교에도 그런 방식이 있음을 우리는 보아 왔다. 그것은 하루 아침에 어떤 경지로 뛰어오름으로써 만사가 끝나 버리는 그런 방식은 결코 아니다.


나는 깨달았기에 이제부터는 수행할 필요도 없고, 계율을 지킬 필요도 없다는 그런 방식일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작의 방식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개간하고, 법의 씨를 뿌리는 것은 기실 그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끊임없는 제초 작업으로 항상 성격 향상의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ꡒ가고 돌아섬이 없고, 행하여 뉘우침이 없는ꡓ 정신의 지속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마침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그것에 대해 비유로 밖에 설해져 있지 않다. 감로, 즉 신들에게 바쳐지는 달콤한 술이라고. 이것은 이것대로 다른 항목에서 설명되어야 하겠다.




15. 열반(涅槃).


ꡒ사리푸타(舍利弗)여, ꡐ열반, 열반ꡑ 하고 말하지만, 대체 열반이란 무엇인가?ꡓ

ꡒ벗이여, 무릇 탐욕의 소멸, 노여움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이것을 일컬어 열반이라 한다.ꡓ

ꡒ그렇다면 벗이여, 그 열반을 실현할 방법이 있는가? 거기로 갈 길이 있는가?ꡓ

ꡒ벗이여, 이 성스러운 팔정도야말로 그 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즉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ꡓ


([相應部經典] 38:1浬槃)상응부경전 이반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실천하여 불교인이 기어이 실현코자 하는 이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열반(nibbana)이라 일컬어지는 경지이다. 이상의 경지는 사람과 종교에 따라 각기 다르다.


죽어서 천국에 태어난다든지, 제천(諸天: 여러 신)이 있는 곳에 왕생한다든지 하는 것을 이상으로 그리는 종교도 있다. 또 현세에서의 번영이나 행복을 궁극의 소망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중에서 열반을 인간의 이상으로 여기는 불교의 사고 방식은 반드시 그 유례가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시대의 인도에 그리 보편화되어 있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경([중부 경전] 72 파차구다화유경. 한역 동본, [잡아함경] 34:24견)에 의하면, 붓다는 바차(婆蹉)라는 외도의 방문을 받아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먼저 그 외도는 여러 가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 붓다의 소견을 물었고, 붓다는 그런 문제가 해탈, 열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견해 표명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차는 문제를 바꾸어 그 해탈, 열반에 대해 따지고 들었다.


ꡒ대덕이시여, 그러면 그 해탈한 사람은 어디에 가서 태어나는 것입니까?ꡓ

ꡒ바차여, 그것은 어디에 가서 태어난다는 그런 것이 아니다.ꡓ

ꡒ그렇다면 어디에도 안 간다는 것입니까?ꡓ

ꡒ가서 태어난다든지, 태어나지 않는다든지 하는 그런 것과는 다르다.ꡓ


그는 열반에 대해 물었던 것이지만, 그 착안점이 전혀 빗나가 있었기 때문에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붓다 쪽에서 그에게 질문을 던져 그의 생각을 유도해 갔다. 경전의 이런 서술로 보아도, 이 열반이라는 개념은 그 당시의 인도에서는 아직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개념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