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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 識 學 槪 論

通達無我法者 2007. 1. 22. 14:39
 

Ⅰ. 총 론

Ⅱ. 유식교학의 형성배경

Ⅲ. 유식교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Ⅳ. 오위백법의 세계

 󰈂오위칠십오법

 󰈃오위백법의 해설

  1. 개 요

  2. 유위법

   󰊱 색법

   󰊲 심왕법

    (1) 개 요

    (2) 심왕법의 일반적인 정의

    (3) 현실의 관찰

    (4) 전5식(前五識)

    (5) 제6 의식(意識)

      󰇴 개 요

      󰇵 오심(五心)

      󰇶 삼분별설(三分別說)

      󰇷 삼량설(三量說)

    (6) 제7 말나식(末那識)

    (7)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

      󰇴 개 요

      󰇵 연원사상(淵源思想)

      󰇶 십문해석(十門解釋)

      󰇷 삼상문(三相門)

      󰇸 제8식과 구심(求心)의 여러 명칭

      󰇹 종자론(種子論)

      󰇺 무상유식론(無相唯識論)과 유상유식론(有相唯識論)

   󰊳 심소유법

    ⑴ 개요

    ⑵ 인식활동과 관련설

     󰇴 삼자성설(三自性說)

     󰇵 삼무자성설(三無自性說)

     󰇶 사분설(四分說)

     󰇷 삼류경설(三類境說)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3. 무위법

  4. 수행론

    󰇴 개요

    󰇵 수행의 단계

    󰇶 오성각별설(五姓各別說)

    󰇷 전식득지설(轉識得智說)

    󰇸 오중유식관(五重唯識觀)

    󰇹 오위설(五位說)

 <부록> 유식 삼십송과 그 해설






            Ⅰ. 총   론


  불교에 있어서 주요한 사상은 어디까지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는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하거나 “발원(發願)하는 종교”, “수행의 종교” 혹은 “지혜의 종교” 등으로 나눌 때도 있다.

  그리하여 이를 마음의 종교라고 정의할 때면,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인식론적인 접근이나 관념론적인 설명이 대두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이론적인 고찰을 불교에서는 특히 유식사상이라고 하여 대승불교 교학의 한 분야로서 일찍부터 다루어져 왔다.

  다시 말하면 이 유식사상은 불교사상 중에서도 우리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마음을 종교학적인 측면에서 자세하게 취급하고 있는 분야로서 일종의 불교 심리학과도 같은 것인데, 이는 마음의 구조와 그 심리작용 등을 잘 인식하고서 활동하면 궁극적인 목적인 성불(成佛)의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원리와 그 수행성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설된 이론적인 면과 실천수행적인 면을 간추려 보면,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는 세 가지의 성질[三種自性]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를 결과적으로 생성케 한 우리의 마음에 관한 자세한 정의(定義) 등이 그 주요한 사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이론적인 면이 강한 유식사상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교라는 한 종교를 표방한 사상이기 때문에 종교로서의 실천덕목인 유가행(瑜伽行)을 중점적으로 가미하여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가르침으로 그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식사상이 불교 교학적인 면에서 검토, 연구될 때에는 자연 소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 등의 미비점을 알 수 있게 하며, 이보다 앞서 유행했던「반야경」계통의 공(空)사상이 그 진의를 상실하고서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대승불교의 교의를 바로 알기 위해서도 유식사상이 흥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사상은 미륵(彌勒, Maitreya, 270~350)과 무착(無着, Asaṅga, 310~390) 그리고 세친(世親, Vasubandhu, 320~420) 등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며, 중요한 경론(經論)으로는「해심밀경(解深密經)」과「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섭대승론(攝大乘論)」,「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및「성유식론(成唯識論)」등을 들 수가 있다.

 

1. 유식설

 

    1) 유식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 원리를 관찰하여 보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마음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는 이 유심설(唯心說)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마음은 이 세계에 관한 개념은 물론이고 사상이나 감정 등을 모두 받아들인 결과라고 볼 수가 있는데, 정작 마음은 그 성질이 상주하여 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단 일어난 순간에 없어져서 다시 다음 순간의 그것과 교차되는 것으로서 마치 폭포수에서 물이 계속하여 흐르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생각이나 복합적인 사고가 형성되면, 그것을 유지해 줄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계속해서 한 흐름으로 유지되는데, 이러한 경우를 일컬어서 ‘마음의 흐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떠나서 모든 것이 그대로 의연하게 존재한다는 실재론(實在論)에 관한 인식 그 자체도 사실은 마음이 만들어낸 표상(表象)에 불과하며, 외계의 실재가 마음에 영사(映寫)되어 표상이 형성된 것이 아니고, 마음 스스로가 표상을 만들어낸 결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이 현상계를 성립시키고 있는 세 가지의 성질에 관하여 논할 때에도 이를 다분히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정의하고 있다. 즉 그 가운데의 첫째는 우리들이 평소 밝지 못한 견해 등으로 말미암아 실체가 없는 것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잘못 착각하여 아는 “가립적(假立的)인 존재형태의 것”[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인정하는데, 이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때에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편견과 선입견 등의 감정을 가지고 편벽되게 처리하여 결과적으로 괴로움을 유발하는 착각이나 환상과 같은 존재를 말하며, 두 번째는 이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독립적으로 항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 등이 인연이 되어서 생성된다는 이른바 “서로 다른 것에 의존하는 존재형태의 것”[의타기성(依他起性)]을 인정하며, 세 번째는 위와 같은 두 가지의 성질들을 모두 떠나서 진실한 것 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를 “원만한 존재형태의 것”[원성실성(圓成實性)] 등으로 그 성질을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성질의 관계를 예를 들어서 말하면, 투명한 수정(水晶)을 황색이나 녹색의 바탕 위에 올려 놓으면 이 색깔이 수정에 비쳐서 호박(琥珀)이나 벽옥(碧玉)으로 보이지만, 실제 거기에 있다고 생각되는 호박이나 벽옥은 사실 “가립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수정 그 자체도 또한 본래부터 있었던 불변의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의존하는 존재형태의 것”이며, 수정에서 호박이나 벽옥을 상상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를 “원만한 존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비유는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이 이 현상계를 관찰할 때에 이러한 세 가지의 성립조건이 항상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여 올바른 인생관을 확립할 때에 필연적인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반면에,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의 올바른 인식전환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들 존재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마음의 주체(主體)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ñāna)에 관한 내용이다. 이 아뢰야식은 인간 존재의 근저에 항상 상존해 있으면서도 변함이 없으며, 그 흐름은 일생 동안 끊어지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의 생존에까지 계속 영향을 미쳐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중생이 어떤 행위나 행동을 하는 한 그것은 대개 선업이거나 악업을 지어서 그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때에 아뢰야식이 업력의 귀의처로 사용되어 그 속에 심종자(心種子)가 잠재하고 있다가 그에 알맞는 환경이나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모든 것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서 현상계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어떤 창조주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며, 그것은 각 개인이 평소에 지은 선악업의 결과에 따라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들이 본래부터 업을 짓지 않아서 마음 속에 선악업의 종자를 함유하고 있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강조되지만, 중생들은 우선 집착과 무지 등으로 그 마음이 선점(先占)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업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 ― 업에 의하여 오염된 마음 ― 을 정화시켜 주는 종교적인 실천덕목인 수행이 필요한데 그것이 다름 아닌 유가(瑜伽, Yoga)행인 것이며, 이는 완전한 인격자로 나아가는 먼 길이자 바로 가까운 수행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2) 8식(八識)의 구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인간 인식의 궁극적인 실체인 아뢰야식의 오염 정도의 여부가 중생과 성인(聖人)으로 구별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아뢰야식은 그 성질과 구조에 있어서 어떠한 양상을 띠고 있는가. 이를 설명할 때에는 대개 다른 인식 주체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즉 우리 인간은 그 마음의 주체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층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상호관계를 아울러서 설명해야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8식설(八識說)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몸은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정신 등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에 해당되는 것을 불교에서는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이라고 하며, 이들이 중심이 되어 인식활동을 할 때에는 특별히 이를 안근(眼根)ㆍ이근(耳根) 내지는 신근(身根) 등으로 명칭한다. 더 나아가서 이들 인식기관들의 대상[境界]은 각각 물질[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 등으로서 오직 이것들만을 상대하여 인식활동을 하는데, 만약에 눈을 통하여 물질을 분별했을 때에는 이를 눈으로 인식했다고 하여 안식(眼識)이라고 하며, 내지는 몸의 감촉을 통하여 알았을 때는 이를 신식(身識)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 즉 5근(五根)과 이들 인식기관이 분별하여 아는 5식(五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 정신 부분에 해당되는 분야가 바로 의식(意識)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키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 의식은 우리의 신체 외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분야로서, 눈 등의 감각기관으로는 볼 수가 없고 만져 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이 아니고, 앞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저 깊은 곳에서 항상 동반하여 일어나거나 아니면 독단적으로 활동하는 정신적인 소산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식의 대상을 불교에서는 특별히 ‘법경’(法境)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법이란 일체제법(一切諸法)과 같은 존재로서 유형적인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무형적인 관념까지도 포함해서 말하는 그런 존재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다섯 가지의 근과 이들의 저류에 항상 흐르고 있는 의근 등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六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그 대상들인 여섯 가지의 경계[六境]를 합치면 십이처(十二處)가 되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일체’(一切)라는 술어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12처설’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른 사람 아닌 자기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귀로 들어서 분별할 수 있어야 하며, 내지는 몸의 촉감들을 통하여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외에 어떠한 기억력이나 상상력을 통해서라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지, 이들 모두를 통해서 도저히 감득할 수 없다면 설령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존재한다고 해도 인식 주체인 자기 자신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인식론적인 해석에서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식이 일어나는 데는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먼저 한 가지는 전오식(前五識)과 함께 일어나서 같은 대상을 인식하거나 아니면 5식과 함께 일어났지만 의식이 한눈을 팔아서 올바른 인식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 등 아무튼 전오식과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가 그것이고, 또 한 가지는 꿈을 꾸거나 망상, 공상 및 선정(禪定)에 들 때와 같이 의식이 독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 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소승불교 시대에서는 이와 같이 다방면에 걸쳐서 그 인식활동의 범위가 넓은 6식설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우리들의 인식활동의 원리를 대변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본존성(保存性)과 때에 따른 단속(斷續)의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대승불교 시대에 들어서는 인간의 궁극적인 실체로서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항상 변화하지 않고 상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상정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은 우리들이 잠을 잘 때나 심지어 죽어서 혼백(魂魄)이 떠돌아다닐 적에도, 내지는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 있을 때에도 그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으로서 6도(六途) 윤회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제8 아뢰야식을 일으킨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일부러 어떤 의도적인 행위,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전인수 격으로 끊임없이 아치(我癡)ㆍ아견(我見)ㆍ아만(我慢) 및 아애(我愛) 등 4종의 근본번뇌와 항상 같이하면서 업(業)을 일으킬 때에, 이들에 의한 인상(印象)이나 여운(餘韻) 등을 그대로 흡수하여 저장하는 장소로서 아뢰야식이 활용되는데,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정신은 제6 의식(意識) 보다는 깊고 제8 아뢰야식 보다는 얕은 제7 말나식(末那識, manas-vijñāna)이라는 의식이 상정됨으로 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7 말나식을 일컬어서 자아의식이라고도 하며, 이 식(識)에 의하여 업(業)을 지어서 우리 중생들이 결과적으로 세세생생 윤회케 되는 것이다.

  한편 제8 아뢰야식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 같이 항상 제7 말나식의 집착력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럴 경우 제8 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유루법(有漏法)이 현행하는 사이, 곧 아집(我執) 등이 활동하는 위치까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聖人位)에 오르면 이 식(識)의 이름은 자연히 없어지기 때문이다.



 3) 심성설(心性說)

 

  그러면 이와 같은 심층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마음은 그 성품에 있어서 어떠한 경향을 지니고 있는가. 이에 관해서는 일찍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활발한 연구와 관찰들이 있어서 합당한 이론과 일부 수긍이 가는 해석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이견(異見)들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는 흔히 외부와의 접촉에 의하여 감정을 느낄 적에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前五根]에 의한 것은 몸으로 직접 느끼고, 제6 의식의 분별에 의한 것은 마음으로 느끼지만, 제7 말나식이나 제8 아뢰야식 등에 의하여 얻어지는 감정은 사수(捨受)라고 하여 쾌감이나 불쾌감과는 상관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 있는 마음은 궁극적으로 어떤 감정을 산출해내는 발생지가 아니고, 항상 중립과 냉정을 잃지 않는 존재로서 고요한 바다[靜海]와 같은데, 이는 특히 제8 아뢰야식의 특성[無覆無記性]을 나타낸 것으로서 이 중에서 제7 말나식은 항상성(恒常性)은 있지만 그 번뇌적인 성질 때문[有覆無記性]에 고요하지 못하고 번잡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마음은 본래 그 자체에 생각이나 사고 등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 없지만, 그러나 무엇을 잘못 인식하여 자연히 심리적인 갈등이나 번민 등이 초래되었을 경우에 홀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선천적인 특성[本有種子說]도 일부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일부는 후천적으로 전혀 새롭게 자기 자신의 업에 의하여 살아가면서 형성되어 간다[新熏種子說]는 이른바 복합적인 성격[本新合生說]이 강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이 하여 형성된 우리들의 마음은 전7식(前七識)이 선악업을 지어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항상 이를 모두 수용하여 보존하는 것을 그 특질로 삼고 있는데, 아뢰야식의 이러한 성질을 무기성(無記性)이라고 한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업을 일으키는 원인은 선성(善性)이나 악성(惡性)의 분별력에 의하여 시작되지만, 그 결과가 아뢰야식 내에 수용될 때에는 중성(中性)의 상태, 곧 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도 아닌 무기성[非善非惡]의 것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특별하게 이 제8 아뢰야식을 또한 이숙무기성(異熟無記性)의 것이라고 일컫는다.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현명한 부모는 그 자식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과 같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식 가운데에는 모든 업의 세력들이 풍부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면 이것은 진여(眞如)나 법성(法性)과 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입장이다. 다시 말하면 이 아뢰야식이 만일에 진여와 같이 변치 않아서 무위법(無爲法)이 된다면, 이에는 본래 작용이 없고, 또한 오고감이 없으며, 변치 않는 진리와 같기 때문에 여기서는 현상계의 제법이 생성될 수가 없다[無爲無作用說 : 眞如凝然說]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성의 것은 반드시 현상계를 낳을 수 있는 유위법(有爲法)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대승불교 전반에서는 이러한 제8 아뢰야식에 진여성(眞如性)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하나의 잡념법(雜念法)으로 취급하고 이보다 더 깊은 불멸의 어떤 것을 상정하여 제9 아마라식(阿摩羅識, amala-vijñāna)을 세우는데, 이는 오염되지 않아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무구식(無垢識)이라고 하거나 혹은 백정식(白淨識)이라고 한 데서 그 진의를 찾을 수가 있다.

  한편으로 중국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유식학의 교의를 설정하면서 모든 대승불교의 사상을 포섭하고 천착했지만, 또 한 가지의 면에서는 대승불교의 이념과 개념을 달리하고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유의종자차별설(有爲種子差別說)에 입각한 오성각별설(五姓各別說)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세계를 자세하게 관찰하여 보면 일체 유정(有情)들은 모두가 다 평등치 않다는 견해로, 삼승(三乘)이 진실이고 일승(一乘)은 방편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선천적으로 5가지의 부류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각자의 아뢰야식 중에 간직되어 있는 지혜종자의 차이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보살종성(菩薩種姓)으로 태어난 사람은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독각(獨覺)이나 성문종성(聲聞種姓)의 이승(二乘)으로 태어난 사람은 각각 벽지불(辟支佛)과 아라한(阿羅漢)이 될 수 있고, 이상 3가지 경우의 어느 쪽도 아닌 불확실한 종성[不定種姓]의 사람도 노력의 여하에 따라서는 2승을 거쳐서 마침내 성불할 수 있지만, 문제는 처음부터 전혀 붓다가 될 성품이 없다는 이른바 무불성종성(無佛性種姓)인 것이다. 말 그대로 불성이 없기 때문에 도저히 성불할 수가 없다는 것은 대승불교의 알반적인 교의[一切衆生 悉有佛性]와도 어긋나는 독특한 사상인데, 이와 같은 무불성론자를 또한 일천제(一闡提, icchạntika)라고도 하여 (일)천제 무불성설을 주장하는 것은 오직 이 종파만의 교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방편으로서 현실의 세계를 직시하면 이와 같이 여러 부류의 중생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하나의 교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유식의 수행



  이 세계는 오직 한 마음의 조작에 불과하다고 많은 경전에서 설파하고 있는데, 이 마음을 마치 허공과 같이 두루하고 모든 중생들에게 내재하고 있는 밝게 빛나는 것으로 간주하면 여래장(如來藏)사상이 되지만, 이를 윤회의 기초인 아뢰야식으로 해석하면 유식(唯識)사상이 된다. 이와 같은 윤회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 번뇌의 세계를 그려내는 한편으로 이의 전환에 의해서 최고 실재인 지혜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이름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번뇌로 말미암아 오염된 허망한 인식들을 수행의 힘으로 정화하고 전환하여 지혜를 증득하는 과정이 유식사상도 종교의 한 덕목인 이상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1) 유식의 수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의 사물들을 눈여겨 관찰하여 보면, 거기에는 다 그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어서 서로 조화롭게 잘 정리되어 있으며, 초저녁이면 뒷동산에서 울어대는 소쩍새의 소리가 하도 서글퍼서 우리의 심금(心琴)을 애잔하게 울려 주는데, 이러한 자연적인 원리와 이치 및 우리들의 감정 등에 관하여 이를 지극한 마음으로 주의 깊게 성찰하는 것을 삼마타(三摩陁, śamatha)와 비발사나(毘鉢舍那, vipaśyanā), 즉 지심(止心)과 관찰(觀察)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개념은 여러 유가(瑜伽, Yoga)수행 중의 한 방법으로서 유가실천의 체험을 묘사하는 가운데 유식(唯識, Vijñapti-mātra)이라는 이론적인 술어가 처음으로 나타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말하자면 유가를 닦는 마음 속에 나타나는 갖가지의 영상은 다만 우리의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자각적인 체념이 유식설을 성립시킨 내면적인 동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유식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유가를 실천하는 사람”, 즉 유가사(瑜伽師, Yogācāra)라고 불렀으며, 이들 또한 유가행파(瑜伽行派)라고 이름했다.

  이 유가사들은 일찍이 초기 유부계통(有部系統) 뿐만이 아니고 부파불교의 내부에서도 여러 논사들과 함께 교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지만, 뒤에 유가행파를 형성한 사람들의 선조는 학설의 경향으로 미루어 볼 때 광의의 유부적인 토양 가운데서 출현되었다고 단정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전적으로 의지한 바는 유부의 교학보다는 자기들의 체험이었으며, 그 체험을 뒷받침한 것은 당시에 이미 확립되어 가고 있던 대승불교의 선관(禪觀), 즉 공관(空觀)을 받아들인 것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비로소 대승의 유가사가 탄생된 것이며, 이 유가사들의 독특한 관법이 바로 유식관으로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유식관에 관한 것을 알아보면 먼저 ‘지념(止念)’과 ‘관찰’에 관한 내용은 불교의 어느 유파에서나 흔히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수행방법이므로 유가행파의 특색을 지관법에서 찾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이를 골격으로 하여 대승보살도의 체계를 세워서 그것을 유가수행의 단계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이 학파만의 창안이다.

  즉「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에 설해진 내용을 보면,


   ① 진리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가르침을 듣는다.

   ② 들은 가르침에 대하여 근원적으로 사유한다.

   ③ 마음이 대상이나 자기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그 본래의 상태로 된다.

   ④ 있는 것은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은 없는 것으로 확실하게 관찰한다.

   ⑤ 자기 존재의 근거를 완전히 없애고, 진리의 세계에 융화해서 일체의 중생과        평등한 입장에 서서 오염을 벗어난다.


라는 것이 유가수행의 단계인데, 첫 번째의 진리의 세계에서 흘러나온 가르침이란 곧 붓다의 교설인 성전 등을 스승에게서 잘 듣고 이를 스스로 독송하거나 이해하는 최초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근원적인 사유란 진리의 세계로부터 유포된 가르침을 듣고서 그 내용을 지식수단에 의해 잘 검토하여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진리를 보다 철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추가적인 체험이 필요한데 바로 이런한 추가체험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이 2단계를 거치면 마음은 오염되지 않는 투명한 상태로 된다. 그러므로 번뇌의 근원은 여기에서 끊어지고 번뇌가 없는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보살은 그 마음에 실재를 있는 그대로 비추며, 주관에 의하여 가립(假立)되어진 대상이나 영상은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이렇게 근거의 전환에 의한 체험을 얻어서 자기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중생과 평등한 입장에 서서 오염된 번뇌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 보살이다.

  이러한 경지에 오른 보살은 번뇌로부터의 해탈이라는 점에서는 성문(聲聞)이나 독각(獨覺)과도 같지만, 자기 한 몸의 해탈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중생구제에 종사하여 세계를 정화하는 활동에 직접 뛰어든 점에서는 성문이나 독가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 그 자체이며, 오염을 제거하고 공덕을 쌓는 것이 그 자신에게는 어떠한 감소나 증대도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5가지의 단계를「장엄경론」에서는 차례로 용기(容器), 안치(安置), 경(鏡), 광(光) 및 근거(根據) 등의 개념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여기에서 용기란 여러 가르침을 배워서 이를 마음 가운데에 축적해 나가는 과정을 마치 물을 그릇에 채우는 것에 비유한 것이며, 근원적인 사유란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이 이러한 가르침을 바르게 깨달을 가능성을 마음 가운데에 안치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다음으로 어떤 대상이나 자기로부터 집착을 여읜 마음은 암울하지 않아서 마치 거울과 같다는 것이며,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 주는 마음은 밝은 빛과 같아서 마침내 번뇌를 가졌던 자기 존재가 없어지고, 진리 그 자체가 자기의 근거로 자각되는 최종적인 근거의 대전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심(止心)과 관찰을 골격으로 한 유가에 관한 수행법이 일찍부터 유가행파에 의하여 유행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러한 것을 유식관이라고 한다.


    

    2) 오위(五位)


  이러한 유가행 수습의 단계들이 발전하여 유식사상에서 소위 오위설(五位說)로 정착되었지만, 부파불교 시대부터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들이 설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구사론(俱舍論)」의 현성품(賢聖品)에 의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청문(聽聞)과 사유(思惟)로 말미암아 마음이 해탈의 방향으로 굳어지는 단계인 순해탈분(順解脫分 ; 3賢位)과 번뇌가 없어진 세계로 방향이 정해지는 단계인 순결택분(順決擇分 ; 4善根位)의 경지에 도달하고, 거기에서 다시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의 단계를 거친 다음에 마지막으로 아라한(阿羅漢, Arhan)이 되는 것이 소승의 성현들이 거치는 수습단계(修習段階)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보면 유가에서 지향하는 목표와 소승에서 바라는 이상이 비록 다를지라도 그 수습과정 자체는 완전히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이 유가의 5단계는 후에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에서 말하는 5위, 즉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및 구경위(究竟位)에 각각 해당되는데, 지심과 관찰은 가행위에서 근원적인 사유의 단계로 실수(實修)되고, 다시 견도위에서는 지심이, 수습위에서는 관찰이 진리의 체현이라는 궁극적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모든 인식활동으로 얻어진 번뇌를 정화하고, 이의 본성인 진여성을 깨달아 열반과 해탈을 증득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좀더 자세하게 알아보면, 첫째, 자량위는 수행의 첫걸음으로서 옛날에 먼 길을 가려면 노자(路資)와 식량(食糧)을 준비해 가듯이 진리인 붓다의 말씀을 깊이 신해(信解)하고서 대승의 순해탈분, 즉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등 삼십심(三十心)을 닦는 단계를 말한다. 이 위치에서 중요한 것은, ㉠ 좋은 벗[善友]을 만나는 것이고, ㉡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신의 굳은 의지[作意]가 필요하며, ㉢ 이러한 여건들을 충분히 갖추고[資糧] 출발하여, ㉣ 신해(信解)로서 부처님께서 보여 주신 가르침을 강한 정신으로 믿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단계에서는 지말적인 번뇌는 정화할 수 있어도 근본되는 번뇌는 아직도 정화되지 않아서 허망한 마음과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 번뇌의 뿌리인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별도의 지혜행(智慧行)과 복덕행(福德行)이 요구되는데, 지혜를 얻으려는 수행이란 말할 것도 없이 불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실천덕목인 것이며, 남을 위하는 복덕행도 이와 함께 닦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가행위(加行位)에서는 먼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어서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심식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능취와 소취라는 상대적인 개념을 없애고 진실한 견해를 일으켜서 번뇌가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 데 진력하는 대승불교에 있어서 순결택분을 닦는 단계를 말한다. 또한 이 단계에서부터는 근원적인 사유가 시작되는데, 진리의 세계로부터 유포된 가르침을 듣고 그 내용을 지식수단에 의해서 잘 검토하여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은 본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일이 필요한데, 근원적인 사유란 이 추가체험에 이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가적인 체험을 수행해 나가는 가운데서 자연히 신심(身心)은 경쾌해지고 여러 가지의 신통력도 일어나며, 난(煖), 정(頂), 인(忍),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는 4종의 선근(善根)도 차례로 생겨나는 것이다. ㉠ 난위에서는 대상에게 부여된 명칭은 단지 가립적인 것으로서 진실한 실체는 없다는 것을 알며, ㉡ 정위에서는 대상은 환영(幻影)과 같이 주관에 의하여 역시 가립되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단계를 말한다. 이어 ㉢ 인위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외계대상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여의어서, 그 결과로 ㉣ 대상을 받아들이는 심식도 또한 없다고 깨닫는 것이 마지막 세제일법의 단계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예를 들어 말하면, 불을 일으키기 위하여 나무와 나무를 서로 문지르면 불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그 마찰열에 의하여 주변이 따뜻해지는 것과 같이, 번뇌를 없애는 불이 생기기 전에 접촉된 선근을 이에 비유하여 난(煖)이라고 하며, 정(頂)이란 산꼭대기를 의미하는데, 이 선근은 그래도 불확실한 선근 가운데서는 최고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며, 인위에서는 선근이 확정되어서 가르침인 진리를 수용하는 위치를 말하며, 세제일법위에서는 아직도 번뇌의 세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 세계 가운데서는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부르는데, 이 다음의 단계는 성자(聖者)의 경지인 초지(初地)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셋째, 통달위(通達位)는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보살들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재의 성품과 형상을 통달하여 체득한 경지를 말한다. 이를테면 이 위치에 이르기 위하여 꾸준히 자량과 가행의 단계를 거치면서 수행한 결과 진리에 계합되는 안목 등이 생겨서 진여를 체달하고 달관하게 된 것을 일컫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체달한 경지이기 때문에 이를 또한 환희지(歡喜地)라고도 하며, 이는 보살의 초지(初地)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경지에서도 아직까지 인간이라는 궁극적인 존재는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기 깨문에 이와 함께 하는 번뇌는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몸에 침투된 번뇌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각종의 종자(種子)를 함장(含藏)하고 있는 아뢰야식은 변화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와 같은 번뇌들이 이 단계에서는 “혹 항복되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는 경우[或伏或起]”도 있기 때문에 근본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기 위해서는 수행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넷째, 수습위(修習位)에서는 통달위에서 아직도 정화하지 못한 부분을 더욱 정화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단계로서 긴 기간에 걸쳐서 끊임없는 수도와 그로 인하여 체득되는 무분별지의 발현에 의하여 아뢰야식중에 있는 번뇌와 주객체의 잠재력을 함께 단절하고, 의지할 바를 대전환하여 부처님의 경지를 직증(直證)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십지(十地)의 단계라고 하여 보살들이 오랜 기간[二大阿僧祗劫]에 걸쳐서 나머지 번뇌의 소멸을 위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라는 수행을 계속하는 단계를 말한다.

  다섯째, 구경위(究竟位)란 이렇게 보살들이 수 많은 기간에 걸쳐서 수행을 한 결과 마침내 마음이 최고의 이상적인 경지에 머무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중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신체적인 감각이나 의식 등의 주관적인 인식활동을 통하여 얻는 모든 알음알이들이 완전히 제거되어 다시는 번뇌나 망상과  같은 삿된 생각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Ⅱ. 유식교학의 형성 배경                 


  지금부터 2500여년 전에 인도의 붓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반짝이는 샛별을 보고 깨달으신 부처님은 그 깨달으신 진리를 혼자만이 간직한체 음미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펼 것을 맹서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당시 모든 사람들의 근기(根機)가 천박하여 눈 앞에 있는 것만을 믿고, 원리적이고 진실한 것은 인정치 않는 일반적인 풍조를 인식하고는 이에 동조하여 방편상으로 과거와 현재 및 미래 등 삼세(三世)는 존재하며, 따라서 모든 존재는 항상 실존한다는 이른바 “삼세실유”(三世實有)ㆍ“법체항유”(法体恒有)설을 폈던 것이다. 즉 그 교설의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삼세의 자성에 관하여 우매하여 말하기를 과거나 미래는 없고, 현    재도 이것이 무위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그의 잘못을 그치게 하고, 과거와 미래    는 진실로 존재하며, 현재도 이것이 유위법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과거나 미래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응당히 무엇이 이루어졌다든가    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든가 하는 것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이러한 사실들    이 일어났으니, 진실로 과거나 미래가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고 설파함으로서 삼세가 실유적인 것임을 증명하고 있으며, 만약에 이와 같이 확실하게 과거나 미래 및 현재가 실재한다면 그에 따라서 존재[法]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실존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체(法體)가 항유라는 원리도 증명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작용(作用)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약에 작용이 이미 가해졌으면 이것은 과거인 것이요, 지금 가해지고 있는 중이면 현재이며, 앞으로 가해질 경우를 상정하면 그것은 미래를 의미한다는 논리에 의거하여 역시 삼세실유사상을 펴고 있지만, 이들 실유사상은 어디까지나 교설의 초기에 일반인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교설한 것이지 본래 불교의 진수는 아니다.

  이렇게 당시의 사람들에게 자연적인 현상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한 뒤에, 이번에는 모든 것은 다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지 인식주체인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의해서 인식될 뿐이라는 유심(唯心)적인 내용을 설해서 마음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삼세의 실유설에 있어서도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다는 “과미무체”(過未無体)설을 주장함과 동시에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현재유체”(現在有体)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들을 논리적으로 체계성 있게 정리한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유식사상(唯識思想)으로서 대승불교사상의 한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사상도 마음이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은 연기법칙에 의하여 인연에 따라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필경에는 공성(空性)에 귀결된다는 중도(中道) 지향의 반야사상을 드러내기 위한 중간적인 단계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유식사상의 교의가 비록 모든 법의 성상(性相)을 망라하고 있지만 법성(法性) 보다는 주로 현상학적인 원리와 그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 법상학(法相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아무튼 불교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종교임과 동시에 철학적인 원리도 가미가 되어서 이론적이고도 논리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그것을 위한 설득을 펴고 있는데,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식교학은 우리들의 마음이 주체가 되어서 자기의 삶을 창조한다는 대승불교적인 학문으로서 마음의 상태와 작용 및 그 기능 등에 관하여 자세하게 해설해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또한 유식교학은 자아철학으로서 자아의 핵심체인 마음이 망녕되게 활동하면 예토(穢土)인 사바세계를 만들고, 만약에 진실하고 정당하게 활동하면 정토(淨土)인 부처님의 세계를 나툰다는 순수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유식사상의 성립배경을 교리발달사적인 측면에서 고찰하여 보면, 먼저 그 어의(語義)에 있어서 유식(唯識)의 원어인 Vijñapti-mātra에서 Vijñapti는 동사 Vi-jñā(안다)의 사역활용 어간을 원형으로 해서 만들어진 추상명사로서 표지ㆍ기호 등을 의미하지만, 유식학적인 술어로서는 마음에 비추어서 나타낸 표상(表象)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표상은 그것에 대응되는 것이 외계에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mātra는 ‘단지 … 뿐’이라는 의미로서 Vijñapti에 부가된 것은 표상 외에 표상되어진 것이 외계에 존재한다는 견해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식이란 단지 표상만이 있고 외계의 존재물은 없다는 사상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유식학파를 어느 면에서는 유가(瑜伽 ; Yoga)행파라고도 하는데, 이는 요가의 실천, 즉 유가행이 이 학파의 성격을 특징짓는 까닭에 이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이를테면 유가선정(瑜伽禪定)은 세계를 마음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관찰하지만, 그것은 결국 마음이 마음 자체를 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관해야 할 일체제법 중에는 심법(心法)이 포함되고, 이 심법이 일체제법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에 관에 관한 실수(實修)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유식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대두된 것이다. 즉 유식이란 마음이 제법을 관할 때에 그 제법은 바로 마음의 발로(發露)이며, 마음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식설은 일종의 인식론 혹은 심리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교학으로서 심리현상에 관한 갖가지 분석이 행해지고 있지만, 그것은 관찰되고 볼 수 있는 마음을 서술한 것이다. 볼 수 있는 마음에 반해서 보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여기서는 문제삼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보는 마음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유가선정의 마음이며, 참다운 주체로서 결코 대상화될 수 없는 절대적인 무(無)로서의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은 분석과 설명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유식설은 관(觀)의 대상으로서 마음을 분석적으로 고찰함과 아울러서 그와 같이 대상화된 마음을 초월하여 대상화되지 않은 참다운 주체인 마음에 도달하려는 실천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가행파의 유식이론은 무착(無着 ; Asaṅga)의 섭대승론(攝大乘論)에 의하여 비로소 체계화되었다. 무착은 여기에서 현상계를 성립시킨 성질에 따라서 일체법을 분류한 세 가지의 자성(自性) ―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의타기성(依他起性) 및 원성실성(圓成實性) ―과 아뢰야식(阿賴耶識 ; Ālaya-Vijñāna)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유식성에 몰입하는 실천, 즉 유가행에 이론적인 뒷받침을 함과 동시에 이 세 부분을 포함한 유식설을 가지고 대승 최고의 가르침으로 완성하여 모든 교설의 기초로 삼았던 것이다. 무착의 설은 그 동생인 세친(世親 ; Vasuban -dhu)에 의하여 계승되었으며, 특히 세친은 식(識)에 관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서 여기에서 유식설의 성립을 보게 된 것이다. 그의 학설의 기본은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에서 볼 수가 있다. 또한 세친 이후의 식이론은 인식론적인 면으로 그 정밀의 정도를 더하여 타학파와 논쟁하는 정황(情況)을 배경으로 인명학(因明學)의 발달함과 함께 독립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상의 원천이 이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아니다. 원시경전인 아함경류에 보면, “마음이 모든 존재의 근본이다”라든가, 아니면 “마음이 주인이 되어서 마음을 부린다”, “마음이 번뇌스러움으로 중생이 번뇌스럽고, 마음이 청정함으로 중생이 청정하다”는 등의 교설내용은 아직 구체적으로 유식학적인 논리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이와 같은 사상들이 후세에 유식교학의 근간(根幹)이 되었던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또한 장부경전(長部經典)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식(識)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네 가지 원소와 명칭과 형상에 따라서 구별되는 모든 개체 및 그것들에 갖춰져 있는 장(長)ㆍ단(短)ㆍ대(大)ㆍ소(小) 등의 각 성질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언어로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식(識)이야말로 모든 것을 존재케 하는 것이며, 이 식이 사라짐에 따라서 모든 것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중부경전(中部經典) 중의 다계경(多界經)에서도 인식기관[根]과 대상[境] 및 인식[識] 등을 각각 6종으로 나눈 18계(界)를 위시해서 여러 가지의 관점에서 제법을 분류한 계[要素]들을 들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6가지로 나눈 사상, 즉 지ㆍ수ㆍ화ㆍ풍의 4대 요소에다가 허공(虛空)과 식(識)을 더한 분류법이 있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예는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의 철학적인 부분에서도 잘 논술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보면 우리 인간을 필두로 한 현상계의 모든 것은 이렇게 6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나 세계의 바탕인 대지는 물 가운데 녹아서 없어지고, 물은 불로 없어지며, 불은 바람으로 인하여 꺼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바람은 허공으로, 허공은 사고력으로 말미암아서 헤아려지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사고력은 최고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보면 우리의 사고력은 모든 것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이며, 그것에서 인간존재의 당위성과 함께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제요소가 발생한다는 원리를 역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유식사상이 사상사적인 면에서 언제부터 일반인들에게 고취되고 성행되기 시작하였는가 하면, 그것은 대략 기원후 4~5세기경에 활동했던 무착과 세친에 의해서 드디어 한 학파를 형성하기에 이르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들이 한 학파를 성립시키게 된 까닭에는 그 펼연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첫째는 소승계통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이 실유(實有)사상을 주장하여 모든 것을 실재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부처님의 근본교설, 즉 삼법인(三法印) 중의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사상이 표방하는 내용들과 서로 상반된다고 하여,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일체개공(一切皆空)설과 팔부중도(八不中道)설을 불멸후(佛滅後) 600년경에 태어난 용수(龍樹 ; Nāgārjuna) 등이 주장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중관학파(中觀學派)들의 주장은 오도되고 있는 교의를 근본불교사상으로 환원하기 위한 일대 개혁의 취지에서 경주(傾注)된 결과였지만,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부정적인 논법으로서 일반인들에게는 허무주의에 가깝게 인식이 되었으며, 또한 후대에 올수록 그의 제자들은 파사(破邪)적인 내용에만 주력한 나머지 일체개공이 불교의 진실한 교의인양 편설(偏說)하여 악취공(惡取空)에 빠졌기 때문에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논법을 구사하는 유식사상의 대두가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초기불교시대에 그 맹아가 발생하여 부파와 소승불교시대에 와서 완성을 보게 된 불교의 윤리관인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의 내용을 한층 논리적으로 보완해 주고, 또한 업력(業力)의 소의처(所依處)로서 아뢰야식(阿賴耶識) 등을 상정함으로서 이 식(識)과 불과분의 관계인 유식사상이 흥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불교사에서 유식사상이 무착 등에 의하여 천양되었지만, 무착의 학설을 찾는다면 자연 미륵(彌勒 ; Maitreya)에까지 소급된다. 여기에 나오는 미륵이 역사적인 인물인지 아니면 신앙상의 보살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의 저작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유식관계의 논저에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대승장엄론(大乘莊嚴論), 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 및 변중변론(辯中辺論) 등이 있으며, 무착은 본래 미륵보살의 독실한 신자로서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 Ayodhyā)에서 좀 떨어진 한 가람에서 기거하고 있을 때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결과 미륵보살과 감응도교(感應道交)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서 밤이면 무착이 도솔천에 올라가서 교리상의 난문제들을 듣고 와서 이를 여러 대중들에게 강설했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섭대승론(攝大乘論)과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및 아비달마경론(阿毘達磨經論) 등의 저작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유가사지론도 무착의 저작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무착의 친동생인 세친은 설일체유부라는 소승불교의 부파에 일찍이 출가하여 소승의 교리를 연구하고 있었으나, 형인 무착의 권유에 의하여 대승불교에 귀의한 뒤에는 이를 또한 열심히 연찬하여 유명한 유식삼십송과 함께 유식이십론,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및 십지경론(十地經論) 등 수 많은 저술을 남겼기 때문에 세친을 가리켜서 천부(千部)의 논사로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식교학이 대승불교사상의 네 가지 큰 분야[四家大乘], 즉 삼론(三論 ; 中觀學)ㆍ법상(法相 ; 唯識學)ㆍ화엄(華嚴)ㆍ천태(天台) 가운데의 한 사상으로 정립 된 것은 여러 선각자들의 뛰어난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정각 그 교리의 발달은 인도에서 보다도 중국에서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즉 세친 이후 유식학에 대한 열기는 6~7세기 무렵에 인도의 비하루주 나란다(Nālandā)에 있던 대승원을 중심으로 하여 왕성하게 연구되었는데, 7세기경에 이 승원에서 유식삼십송을 주석한 저 유명한 10대논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호법(護法)논사 계통의 제자인 계현(戒賢)으로부터 이를 배운 당 나라의 현장(玄奘)이 귀국하면서부터 한층 그 열기가 중국에까지 고조되어서 마침내 한 종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6세기 초에 중국에 건너온 보리유지(菩提流支)와 늑나마제(勒那摩提)는 세친이 지은 십지경론을 각각 번역했었는데, 보리유지는 여기에서 인식작용의 근원을 아뢰야식이라고 여기는데 반하여 늑나마제는 이를 진여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또한 546년에 역시 중국에 온 진제(眞諦)는 후자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섭대승론 및 세친의 주석서를 번역할 때에 여래장(如來藏)설에 의거한 독자적인 견해를 짜넣었으며, 유가사지론 섭결택분(攝決擇分)의 일부 번역인 결정장론(決定藏論) 및 다른 논서 중에서도 오염된 인식의 근거인 아뢰야식의 부정에 의해서 청정한 무구식(無垢識 ; Amala-Vijñāna)이 얻어진다고 주장했었다. 이렇게 하여 이들의 각각 다른 이념들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보리유지의 십지경론에 관한 주석에 따라서 지론종(地論宗)이 성립되고, 진제의 섭대승론에 관한 주장에 따라서 섭론종(攝論宗)이 발흥했지만, 이들의 논쟁은 현장의 귀국과 그 영향력으로 말미암아서 마침내 종결되었던 것이다.

  특히 현장은 인도의 10대논사들 중에서도 호법과 안혜(安慧)의 사상이 근본적인 개념부터 상이하여 항상 논쟁꺼리가 되어 왔을 때에 ― 안혜계통은 아뢰야식을 궁극적으로 부정하면서 진여와 같은 아마라식을 세우고, 인식에 있어서도 주관과 객관이 모두 함께 허망하다는 이른바 경식구민(境識俱泯)설인 무상유식론(無相唯識論)을 펴는데 반하여, 호법계통은 아뢰야식을 실유의 식체(識体)로 인정하고, 절대지를 얻어도 아뢰야식 자체는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진여로부터 모든 현상계가 전개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른바 진여응연(眞如凝然)설인 유상유식론(有相唯識論)을 주장함 ― 계현의 가르침에 따라서 호법사상만을 인정하였고,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완성할 적에도 이러한 관점이 크게 작용하여 마침내 호법의 주석만을 인정하고 다른 논사들의 것은 폐기처분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이렇게 세친의 유식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던 삼십송에 관한 주석서의 결정판인 성유식론이 중국인의 손에 의하여 집록이 되고, 또한 이를 소의경전으로 하여 현장의 제자인 규기(窺基)가 법상종(法相宗)을 세우게 됨으로써 중국불교는 다시 한번 교학적으로나 교세적으로 부흥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유식교학을 그 중심이념으로 하는 법상종이 입교개종(立敎開宗)한 근본적인 전거(典據)는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초이삼(初二三) 혹은 유ㆍ공ㆍ중(有空中) 삼시(三時)의 교판(敎判)설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즉 이 삼시의 교판설은 법상종의 소의경전인 6경 11론 중의 하나인 해심밀경(解深密經)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 제5에서 모든 사물의 근본자리를 설명할 때에,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것에 의하여 생긴 것은 미정(迷情) 앞에 나타난 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므로 형상이 본래부터 없다는 상무자성(相無自性)설을 펴고, 의타기성(依他起性)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그 진실된 성품이 없기 때문에 본래부터 생성된 것이 아니라는 이른바 생무자성(生無自性)설을, 그리고 진실하고 원만한 것은 본래부터 어떠한 변화와 모양도 없다는 승의무자성(勝義無自性)설을 강설하여 일체제법은 모두 공하다는 원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설법을 청문한 승의보살(勝義菩薩)이 부처님께 향하여 묻기를,


    제가 보는 바에 의하면 부처님 일대의 설법은 대체로 삼시(三時)로 구별되는     것 같습니다. 즉 초시(初時)에는 녹야원에서 오직 성문승(聲聞乘)을 위하여 사성    제(四聖諦)의 법문을 설해서 인집(人執)은 파했으나 오히려 법집(法執)은 아직도    파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곧 인공법유(人空法有)의 초시의 유교(有敎)이오며, 그후    제2시에는 대승의 근기에 따라서 일체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그 스스로의 성품이 곧 열반이라고 설하신 제2시 반야공    교(般若空敎)입니다. 그리고 제3시에서는 널리 일체중생들을 위하사 유교인 삼종    자성(三種自性)설과 공교인 삼무자성(三無自性)설을 함께 설하사 중도의 이치를     나타내셨으니, 앞의 두 교설은 미료의교(未了義敎)요, 이제 제3시의 교설이 요의    교(了義敎)가 아닙니까?


라고 질문하니,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답하시기를,


   그것은 바로 네가 말한 바와 같느니라.


하시면서 승의보살의 말을 인가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삼시에 관한 교판론이기 때문에 법상종에서는 해심밀경에 설해진 이 내용을 그대로 취하여 자종의 교판론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후세에 정립된 교학이지만 그 성립될 내용과 전거는 경전상에 이미 설해져 있었던 것이며, 이를 미륵이나 무착, 세친 등이 개발하고 10대논사들이 연찬했으며, 진제와 현장 등에 의하여 중국에 전해져서 마침내 한 종파로까지 발전하여 종교로서 갖추어야 할 수행체계, 즉 유가행(瑜伽行)과 그 교학으로서 유식학(唯識學)이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Ⅲ. 유식교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불멸후 600년경에 태어난 용수(龍樹)에 의하여 종합 정리된 대승불교는 그 교리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경전의 요구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들 새로운 경전은 앞 시대에 수립된 공사상에 입각하면서도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문제로서 마음의 본질에 관하여 논의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마음은 한편으로 깨달음의 세계를 낳은 원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은 씨앗이 되기때문이다. 마음은 이와 같이 보리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전자는 바로 마음이 붓다라고 하는 이상적인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설(如來藏說)로서 여래장경, 승만경, 열반경 등이 이 계통의 경전이라면, 후자는 마음의 현실적인 역할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유식설(唯識說)로서 해심밀경과 화엄경 등이 대표적인 경전이다.

  유식사상은 마음이 일으키는 일체의 분별망상을 다루는 분야로서 인간의 의식 자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전환(轉換)을 통하여 지혜와 열반의 성취를 목적으로 한다. 이 사상은 불멸후 900년경에 출현한 무착(無着)과 그의 동생인 세친(世親)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일시하여 이 두 사상간의 융합을 모색하려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유식삼십론(唯識三十論) 등의 경론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새로운 경론이 제작되고 연구되는 시기를 중기의 대승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중기 대승불교의 이론은 아비다르마(Abhidharma ; 對法, 論)불교의 그것처럼 대단히 번쇄하고 어려워서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자연히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에 따라서 후기 대승불교라고 할 수 있는 밀교(密敎)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밀교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다라니(dhāranī ; 總持, 能持)나 진언(眞言 ; mantra), 만다라(maṇḍala ; 輪圓具足) 등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의례(儀禮)를 중심으로 한 신앙실천 중심의 불교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이는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통합되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원 등을 파괴함으로써 불교는 13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흥기와 역사를 지닌 유식교학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1.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의 네 가지 큰 분야[四家大乘 ; 三論學․唯識學․華嚴         學․天台學] 중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중관사상과 더불어 이 유       식사상이 대승불교의 2대 근본 사조(思潮)를 이루고 있다.

   2. 순수한 자아철학으로써 인격 주체의 핵심인 마음을 다루는데 있어서 만약         에 마음이 번뇌스러우면 사바세계(沙婆世界 : Sabhā ; 忍土, 忍界)나 예토(穢       土)를 이루고, 마음이 진실하면 극락(極樂 : Suhāmatī ; 安樂, 安穩)정토[自性       彌陀, 唯心淨土]를 드러내어서 새로운 자아를 창조한다는 것을 그 주안점으로       습득시키고 있다.[俱舍 8年, 唯識 3年]

   3. 초기의 대승불교로 일컬어지고 있는 공사상으로부터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문       제로서 마음의 본질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마음은 깨달음의 세       계를 낳는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음은 보리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       기도 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전자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이상적인        측면에서 고찰하는 여래장설로 발전했고, 후자는 마음에 관한 현실적인 기능       의 분석에서 출발한 유식설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4. 여러 가지 우주 인생의 철학적인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조직해서 서       술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대개 긍정적이고도 건설적인 논법을 사용하고 있는       중도(中道)지향의 학문이다. 

   5. 소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실유사상(實有思想)을 타파하고, 현상계의 모든 것은       한 가지도 우리들 각자의 심식(心識)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이론을 내       세운다. 

   6. 이 사상이 흥기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은 대승불교사상 이전의 교의였던 업감       연기설(業感緣起說)을 보완해 주고, 아울러서 업력(業力)의 의지처를 확실하게       밝히고자 하는 가운데 일어나게 되었다.

   7. 대승불교의 기초학문으로써 구사론(俱舍論) 등에서 물질 등 대상이 먼저 존재       하고 난 후에 우리들의 인식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색본심말(色本心末)설을 부       정하는 반면에, 마음이 먼저 있어서 인식이 가능하다는 심본색말(心本色末)설       을 주장하여,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가유(假有)가 아닌 것이 없다고 정의한        다. 

   8. 불교가 종교인 이상 그 실천덕목인 유가(瑜伽 : Yoga), 지관(止觀), 참선(參        禪) 및 염불(念佛) 등의 수행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데       있어서, 이 유식교학이 어느 분야보다도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       기 때문에 그에 일조(一助)할 것을 기대하고 방편상 교설된 내용[轉識得智, 轉       迷開悟]인데, 이를 도외시한체 학문적으로 이론만을 분별하는 자세는 본래의        목적과 부합되지 않으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Ⅳ. 오위백법(五位百法)의 세계
































   󰈂 오위칠십오법

































    󰈃 오위백법의 해설

                           

  1. 개 요


1) 유위법(有爲法)<94법>

     여러 가지의 인연법으로 말미암아 생성되어 생주이멸의 제현상을 반복하는       일시적인 존재들을 가리킨다.


  (1) 심왕법(心王法)<8법>

      마음과 인식의 주체를 말하는 법으로서 8가지가 있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                  (意識)․말라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


 (2) 심왕소유법(心王所有法)<51법>

       마음의 주체인 심왕법에 소유되어 활동하는 심리작용으로서 일종의 작은 마       음[細心]을 말한다. 이에는  6가지에 51법이 소속되어 있다.

         

   ① 변행심소(遍行心所)<5법>

       마음의 주체인 심왕법과 첫 생각[初念]에서 만나서 언제나 함께 활동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를테면 눈[眼]과 물질[色]이 인연하여 안식(眼識)을 일        으키는데, 이 때에 세 가지(眼․色․識)가 합친 것이 촉(觸)이다. 촉과 함께         수(受), 상(想), 사(思) 등도 생긴다.

                               -----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      

    ② 별경심소(別境心所)<5법>

       심왕법과 뒷 생각[次念]에서 상응하는 한편으로 그 속성에 따라서 각각 다       른 경계[別境]에서 일어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 욕(欲)․승해(勝解)․염(念)․정(定)․혜(慧)


    ③ 선심소(善心所)<11법>

       선량한 마음 즉 심왕이 선성(善性)을 일으키면 이에 상응해서 일어나는 심       소를 말한다.

                                    -----  (信)․참(慚)․괴(愧)․무탐(無貪) 등


    ④ 번뇌심소(煩惱心所)<6법>

       마음이 좋지 않는 생각을 일으키면 그에 따라서 함께 활동하는 근본번뇌         를 말한다.

                       -----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악견(惡見)

      

    ⑤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20법>

       근본번뇌가 일어날 때에 함께 따라서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 분(忿)․한(恨)․부(覆)․뇌(惱)․질(嫉) 등


    ⑥ 부정심소(不定心所)<4법>

       그 성품을 선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악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삼성(三性)의 어떤 심․심소와도 상응하여 삼성이 되므로 이를 부정(不定)이라       고 한다.

                                        ------  회(悔)․면(眠)․심(尋)․사(伺)


  (3) 색법(色法)<11법>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면서 서로 거리낌과 장애 됨이 있고 생멸변화하는 것       을 말한다.

      ①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5> -----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 등

      ②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대상<5> ----- 색경(色境)․성경(聲境) 등

      ③ 관념적인 존재[無表色]<1> -----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4)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24법>

       물질[色]과 마음[心] 및 그 작용[心所]상에 일시적으로 이름을 붙인 것으로써       물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도 아닌[非色非心] 존재를 말한다.

                          ----- 득(得)․명근(命根)․중동분(衆同分)․명(名)․구                                   (句)․생(生)․노(老) 등 


2) 무위법(無爲法)<6법>

       생멸변화하는 유위법을 여의고서 독립적으로 자존하거나 항존불변하는 진리       의 세계를 가리킨다.

                            ----- 허공(虛空)․택멸(擇滅)․비택멸(非擇滅)․부동                                     (不動)․상수멸(想受滅)․진여(眞如)


  이와 같은 제법들이 결과적으로 유식(唯識)의 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내용을 보면,

    심왕법은 식의 자상을 말하고, 심소유법은 식과 상응하는 존재이며, 색법은 이    두 가지가 변한 바의 것이고, 불상응행법은 이 심왕, 심소, 색법 등 세 가지의 분    위상의 가립적인 존재이며, 무위법은 이러한 것들의 진실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    든 것은 식을 여의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으므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유식이라고    이름한다[不離識故曰唯識].

는 것이다.

  (識自相故 識相應故 二所變故 三分位故 四實性故 如是諸法 皆不離識 總立識名 ;    成唯識論 권7 ; 大正藏 31․39․下)




2. 유위법


󰊱 색  법

  1. 일반적으로 불교교학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법’(法)에 관한 개념을 보면,

    (1) ‘진리’라는 말과 같이 쓰여질 경우가 있다[예 ; 불법(佛法), 삼법인(三法印)          등].

   (2) 원전의 또 다른 정의로서 법을 일컬어 “임지자성”(任持自性) “궤생물해”(軌         生物解)라고 하는데, 이는, “그 자신의 성품[예 ; 불 → 뜨겁다. 물 → 차다.         습하다]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이 궤범(軌範)이나 규칙 내지는 법칙이 되         어서 다른 것으로 하여금 일정한 요해(了解)를 낳게 하는 것”[예 ; 색법(色         法), 제법무아(諸法無我), 시무별체(時無別體) 의법이립(依法而立) 등]을 말한         다.

  2. 색법이란 이것[甲]과 저것[乙]이 서로 일정한 형상과 이념을 지녀서 공간을 차     지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가 되고 거리낌이 있는 것. 즉 질애성(質碍性)의 것과      생멸변화하여 서로 장애가 되는 법[질애고명위색(質碍故名爲色)]을 말한다.

    그 종류에는 총 11가지가 있다.

      (1) 주관을 대표하는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 ― 5근(根)

      (2) 객관을 대표하는 다섯 가지의 인식대상 ― 5경(境)[5진(塵)]

      (3) 무표색(無表色)이라고 하여 우리들의 의식 속[법처(法處)]에 간직되어 있          는 관념적인 존재는 그것이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          에 다른 사람에게 쉽게 표현할 수가 없는데, 이를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이라고 하여 하나의 색법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1법)


  (1) 5근(根)

    ① 우리의 마음[心王]과 심리작용[心所]은 무엇에 의지하여 일어나는가 하면, 그        것은 각각 근거할 바의 바탕[根]이 있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② 이러한 바탕이라는 것은 우리들 신체상의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을 말하는         것으로써 눈을 안근(眼根), 귀를 이근(耳根), 코를 비근(鼻根), 혀를 설근(舌         根) 그리고 몸을 신근(身根)이라고 이름한다[이들은 5식(識)의 소의처가 됨].

      여기서 안근(眼根) 내지 신근(身根) 등과 같이 감각기관의 명칭 다음에 ‘근’         (根)자를 붙인 것은 이것이 ‘뿌리’, ‘근본’, ‘바탕’ 등의 의미로서 인식활동이          이들을 뿌리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즉 각각의 근은 그에        따른 인식을 낳아서[出生] 그에게 뛰어난 활용[勝用]을 하게 하며, 힘 등을 증        가시켜서[增上] 어떤 물질을 일어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참고 ;         제6 의식과 제7 말라식 및 제8 아뢰야식 등의 세 가지 식의 근은 의근(意根)        등 심법(心法)이다]. 

    ③ 이들은 우리들이 인식활동을 할 때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며[예 ; 눈이 안 보        이는 사람은 그만큼 다른 사람에 비하여 물건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많은         지장을 초래함], 그 근본구조는 대개 물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색법으        로 한데 묶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근에는 두 종류가 있다.

    ① 부진근(扶塵根) ―  근을 부조(扶助), 즉 도와주는 기관으로서 안식(眼識) 내         〔부근(扶根)〕  지 신식(身識) 등 전오식(前五識)으로 하여금 경계(境界                            ; 인식대상)를 반연(攀緣)케 하기 위하여 승의근(勝義根)                           의 의지하는 바가 되며, 또한 이를 붙드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유형의 눈, 귀, 코 등의                             감각기관이 이에 속한다.

    ② 승의근(勝義根) ― 부진근에 의지하여 존재하며, 식을 내어서 대상을               〔(정근(正根)〕    취하게 하는[發識取境] 미묘한 기관을 말한다. 즉 안으로                            마음을 일으켜서 바깥 대상을 인식케 하는 오관(五官)                            의 신경(神經) 등이 이에 속한다.


               ☆반연(攀緣) ;  일반적으로 호박이나 칡의 덩굴이 나무나 풀의 줄                               기를 휘어잡고 올라가듯이, 마음도 이것이 일어날                                때에는 스스로의 힘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대상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원인                               을 도와서 결과를 맺게 하는 것]. 이럴 경우 마음은                               대상을 반연한다고 하며, 이렇기 때문에 반연은 일                               체 번뇌의 근본이 된다.

                                   


  (2) 5경(境)

   ① 5경(境)이라는 것은 5진(塵)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우리들의 진실한 성품을         더럽혀서 번뇌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므로 이와 같이 부른다.

   ② 이에는 안식(眼識)의 대상으로서 색경(色境), 이식(耳識)의 대상으로 성경(聲        境), 비식(鼻識)의 대상으로 향경(香境), 설식(舌識)의 대상으로 미경(味境)          및 신식(身識)의 대상인 촉경(觸境) 등 다섯 가지의 경계(境界)가 있다.

  ③ 이 5경과 5근(根) 및 5식(識)과의 관계를 보면, 색경은 오로지 안근(眼根)과         안식(眼識)의 대상이 될 뿐이고, 내지 촉경은 촉근(觸根)과 촉식(觸識)의 대         상이 될 뿐이지 다른 근(根)과 식(識)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다[참고 ; 제6         의식은 그 대상이 유위(有爲), 무위(無爲)의 일체제법이고, 제7 말라식은 그         대상이 제8 아뢰야식의 견분(見分 ; 주관심)이며, 제8 아뢰야식은 그 대상이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심종자(心種子)와 우리의 몸 및 현상계(現         象界)이다].



  (3)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① 여기서 법처(法處)란 제6 의식(意識)이 연하는 바의 경계를 총칭하는 것으로       서 이는 안식 내지 신식 등 전오식(前五識)의 대상이 아니고, 오직 의식만의        대상임을 말한다. 

   ② 우리 생각 속에 있는 관념상의 가립적인 존재로서 이들이 색법으로 취급되        는 것은 비록 형상 등은 없으나 어떤 개념이나 명칭 등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所言法者 謂衆生心]. 따라서 불교에서는 물질만이 물질이 아니라          기억이나 상상되어지는 것과 같이 무형적인 것까지도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에 속하는 것을 자세하게 분류하여 보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가 있다.

     󰇦 극략색(極略色) ― 소승의 유부종(有部宗) 등에서는 원자의 개념과 유사한                           극미(極微)를 세워서 이를 실유불멸(實有不滅)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에, 유식사상에서는 모든 것을 가립                           적인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극미를 관념상의 존재로                            여긴다.

              

    󰇧 극형색(極逈色) ―  모든 형상이 있는 물질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중에는 밝                           음, 어둠, 빛 및 그림자 등만이 있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공계(空界)의 색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공계의 색을 분                           석하여 극미에 이른 것을 극형색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안식의 대상이 아니고 의식의 대상이기 때문에 법처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한다.

              

    󰇨 수소인색(受所引色) ―  유부종에서 말하는 무표색과 같은 존재이지만 여기                               에서는 가립된 것으로 여기며, 일종의 세력이 있기                               는 하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잠                                재적인 것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율의(律儀), 불율                                의(不律儀) 및 비율의비불율의(非律儀非不律儀) 등                                의 율의를 어느 때나 아니면 일생 동안 지키려고                                 결심했다면, 이 생각은 찰나에 일어났다가 찰나에                                없어지지만 그 종자는 상속되어서 단절되지 않는                                 것이므로 종자가 이렇게 계속되는 기간 동안의 세력                               을 무표색이라고 하며, 이것을 또한 수소인색이라                                고 하는 것이다. 


    󰇩 정중소인색(定中所引色) ―  이를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혹은 정과색(定果                                   色)이라고도 하는 것으로써 보살이 중생을 교                                    화할 때에 자재한 정력(定力)으로 나무나 물고                                   기, 금 등으로 변작하여 다른 유정으로 하여금                                   이것을 수용케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정소인색이라고 한다.


    󰇪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  제6 의식 가운데의 독산의식[獨散意識 ; 전                                       (前)5식과 함께 일어나지 않고 홀로 활동하는                                    의식으로서 상상력(想像力)이나 망상(妄想) 등                                    과 같은 산란한 의식]이 거북이의 털, 토끼의                                     뿔, 아지랑이, 거울 속의 형상 등과 같이 실체                                    가 없는 것들을 인식 중에서 그리는 바의 색                                     을 말한다. 여기서 변계(遍計)라는 것은 주변                                     계탁(周遍計度)의 의미이다.




  󰊲 심왕법


    (1) 개 요                      


  불교는 본래 어떤 신비적인 체험이나 신앙적인 사례를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번뇌가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하여 그 대상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 관한 종교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가운데서도 마음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종교라고도 통칭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정의할 때면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인식론(認識論)적인 접근이나 관념론(觀念論)적인 사고방식이 대두하게 되는데, 이러한 고찰을 불교에서는 특히 유식사상(唯識思想)이라고 하여 대승불교교학의 한 분야로써 일찍부터 다루어져 왔다.

  다시 말하자면 이 유식사상은 불교사상 중에서도 우리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마음을 종교학적인 측면에서 자세하게 취급하고 있는 분야로써 불교의 심리학과도 같은 것인데, 이는 마음의 구조와 그 심리작용 등을 잘 인식하고서 활동하면 궁극적인 목표인 성불(成佛)의 단계에까지도 이를 수 있다는 원리와 그 수행에 관한 것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원리를 관찰하여 보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가 갖고 있는 자기 마음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마음은 이 세계에 대한 개념은 물론이고 사상이나 감정 등을 모두 받아들인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정작 마음은 그 성질이 상주하여 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단 일어난 순간에 없어졌다가 다시 다음 순간에 앞의 그것과 교차가 되는 것으로서 마치 폭포수에서 물이 계속해서 흐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생각이나 복합적인 사고가 형성되면, 그것을 유지해 줄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계속해서 한 흐름으로 유지가 되는데, 이러한 경우를 일컬어서 마음의 흐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떠나서 모든 것이 그대로 의연하게 존재한다는 실재론(實在論)에 관한 인식 그 자체도 사실은 마음이 만들어낸 표상(表象)에 불과하며, 외계의 실재가 마음에 영사(映寫)되어 표상이 형성된 것이 아니고 마음 스스로가 표상을 만들어낸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사물을 먼저 표상하는 마음은 그 구조가 단층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복합적인 형태인 심층심리학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마음에 관한 인식구조를 검토하여 보면, 먼저 소승불교에서는 마음의 체성(體性)은 하나라고 하면서 마음[心]이 곧 의(意)이며, 의는 또한 식(識)으로서 이들은 이름만 다를 뿐, 그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창문이 여섯 개가 달린 우리 안에 한 마리의 원숭이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것을 사람들이 잘못 보고 우리 안에는 여섯 마리의 원숭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원숭이는 한 마리 뿐이라는 것[六窓一猿]으로써,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 등의 전오식(前五識), 즉 우리 몸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는 인식의 뿌리나 그 기저에 놓여 있는 의식(意識), 즉 제6 의식과는 그 본성이 다른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하나로써 같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승불교의 사상은 대승불교시대에 오면 심의식 등의 작용과 역할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체성도 따라서 별개라는 이른바 심식체별(心識體別)설을 주장하게 되고, 소승의 6식체일(六識體一)설이 번뇌의 발생 등에 관하여 설명이 부족한 점과 함께, 마음의 활동에 있어서도 앞 생각이 뒷 생각의 의지처가 된다고 하여 이를 의근(意根)이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도 의식불명이나 숙면 등의 경우 심식이 단절되었을 때에는 이에 관한 문제점을 보완해 주기 위해서도 제6 의식 보다도 더 심세하고 고정적인 어떤 주체들이 필요한 데서 제8식(諸八識)설에 달하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팔식설에 대한 설명이 곧 심의식에 관한 분석이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해 고찰하여 보면, 먼저 우리의 마음은 여덟 가지의 심층적인 구조, 즉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하여 눈ㆍ코 등 우리 몸의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아는 인식과, 제6 의식이라고 하여 객관적인 사물을 인식하는 의식과, 제7 말나식(末那識)이라고 하여 자기 내의 자아의식 및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여 모든 인식들의 출발점이 되는 선험적인 의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좀더 자세하게 살펴 보면, 안식ㆍ이식ㆍ비식 등 5식은 우리 몸의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인 눈ㆍ귀ㆍ코ㆍ입 등이 중심이 되어 인식활동을 할 적에 각각의 감각기관의 뿌리[根]에 의지하게 되는데, 이렇게 눈ㆍ귀ㆍ코 등이 의지하는 기관을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이라고 하며, 이들 인식기관들의 대상[境]도 각각 달라서 물질[色]과 소리[聲]와 냄새[香]와 맛[味]과 감촉[觸] 등이기 때문에 이들을 일컬어서 색경(色境)ㆍ성경(聲境)ㆍ향경(香境)ㆍ미경(味境) 및 촉경(觸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감각기관인 눈을 통하여 물질을 분별했을 때에는 이를 안식(眼識)이라고 하며, 내지는 몸의 감촉을 통하여 인지하였을 때는 이를 신식(身識) 등으로 표현하여 우리의 몸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 즉 오근(五根)과 이들 인식기관들이 분별하여 인지하는 다섯 가지의 식, 즉 오식(五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5식들은 다른 식들에 비하여 그 인식활동이 비교적 단순하고 품성도 얕기 때문에 한 이념으로 통칭하여 전오식(前五識)이라고 부르며, 이들이 대상을 인식할 때에는 어떠한 사려분별(思慮分別)도 요하지 않고 오직 눈 앞에 있는 대상 그대로만을 직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감각기관들 중에 한 가지라도 오염이 되었다든지 손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그 분야만큼은 직감이 아닌 추리나 억측 등을 통해서 대강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6 의식에 관한 것을 살펴 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의식이란 객관화된 의식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눈이 안근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를 안식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이는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함으로 의식(意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오식과 이 제6 의식은 각각의 근(根)에 따라서 그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이를 수근득명(隨根得名)이라고 한다.

  이 의식은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의식과 같은 말로써 그 의지처를 살펴 보면 이의 감각기관의 뿌리인 의근과 우리의 본성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제8 아뢰야식이고, 대상은 법경(法境), 즉 이 세상의 유형ㆍ무형의 모든 것[一切諸法]이기 때문에 이를 또한 일체경식(一切境識)이라고도 한다. 이 식은 전오식과 항상 같이 활동하면서 그 기저에서 대상을 사려분별 내지는 추념을 통하여 인식하며, 전오식의 직관적인 감각에 의하여 얻어진 주관과 객관이 아직 분리되기 전의 무분별한 대상을 주관심의 분별을 통해서 비로소 대상인식으로 객관화하는 작업이 곧 이 의식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의식은 전오식과는 달리 두 가지의 경우에 일어나는데, 그 첫째는 전오식과 함께 인식활동을 할 때가 있고, 두 번째는 의식 단독으로 일어나서 인식활동을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전오식과 함께 일어날 때에는 같은 대상을 5식과 동시 분별하는 것을 말하며, 단독으로 인식활동 할 경우에는 전오식과 앞에서 같이 인식활동을 한 뒤에 이를 홀로 상기하거나 선정(禪定) 중에서, 그리고 잡념을 일으키거나 꿈을 꿀 때 등은 의식 혼자서 우리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는 별도로 활동하는 때를 말한다.

  아무튼 우리가 인식활동을 할 때에 전오식 중의 한 두 가지는 어떤 결함이 있더라도 그런대로 대충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 의식이 수반되지 않는 인식, 즉 아무리 전오식이 활발하게 인식활동을 한다고 해도 의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 인식은 성립될 수가 없으며, 그 결과에 있어 희로애락심이나 어떤 뿌듯한 감정 내지는 후회하는 마음 등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 제6 의식은 우리가 인식활동을 할 때에 반드시 필요하며, 과거의 일을 회상하거나 어떤 상황을 비교, 추리할 때에도 이의 활동은 필수불가결한 심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승불교에서는 전오식, 즉 우리 몸과 이 의식의 정신활동만 가지고도 능히 모든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여 6식설까지만 주장했던 것인데, 이 의식은 곤한 잠[熟眠]이나 기절(氣絶)했을 때, 그리고 잠념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無想天]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선정의 상태[無想定] 및 번뇌망상이 없어진 경지[滅盡定] 등 다섯 가지의 무심(無心)의 상태에서는 단절되어서 일어나지 않으므로, 한 생명을 영원히 지속시켜 주면서도 불변하는 어떤 것이 상정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사상에서 설하는 아뢰야식설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제7 말나식(末那識 ; manas)은 의식과 같이 때때로 단절이 있으면 이는 근(根)으로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제6 의식의 의지처인 의근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어떤 견고한 심식이 존재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 우리 중생들의 망념인 근본번뇌 등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를 살펴 볼 때에도 근본이 되는 심성(心性)보다는 얕고 의식보다는 강한 어떤 것을 상정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을 말나식, 즉 자아의식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제6 의식인 대상인식 자체가 발생하기 위해서도 이를 이미 분별해서 인식하고자 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 이러한 것을 자아의식인 말라식이라고 한 것이다.

  이 자아의식에 의해서 비로소 대상과 인식주체인 자아가 성립하게 되며, 여기에서 대상과 맞선 주체로서 나에 대한 집착심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집착심으로 말미암아 자연히 구속력이 가해짐으로 유식사상에서는 이를 청정하지 못한 식,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는 식 등이라는 의미에서 염오식(染汚識)이라고도 하며, 경전상에서도 이미 이에 관한 논중들이 있어서 주목된다. 즉 입능가경(入楞伽經)의 교설에 의하면, “장식(藏識)을 이름하여 심(心)이라 하고, 사량성(四量性)의 것을 의(意)라고 하며, 능히 모든 대상의 모습을 식별하는 것을 식(識)이라고 한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무엇인가를 살펴서 헤아리는 성질인 사량성의 것은 장식인 제8 아뢰야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상을 식별하는 제6 의식도 아니므로 이것을 제7 말나식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겨서 이의 연원을 여기에서 찾으며, 또한 해탈경(解脫經)에서도, “오염된 자아의식[意]는 항상 갖가지의 미혹들과 발생과 소멸을 함께 하는데, 만약에 해탈하면 이러한 여러 가지의 미혹은 마땅히 없어진다”라고 교설되어 있는 것 등으로 보아서, 이미 경전에서도 말라식이라고는 안했지만 이에 가까운 뜻으로 서술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내용들이 후세에 무착과 세친 등에 의하여 정립된 것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소승불교인들은 비교적 지혜가 천박하기 때문에 이 말나식과 제8 아뢰야식에 관한 것을 설하지 않았다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 내용이 심오한 이 심식은 네 가지의 근본번뇌인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및 아애(我愛) 등과 함께 하며, 항상 무엇인가를 살펴서 분별하는 것[恒審思量]이 그 특성으로 되어 있다. 즉 전오식은 연하는 바의 대상이 바로 눈 앞에 있지[現在前] 않으면 대상을 대면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살피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한 과거를 회상한다든지 아니면 두루두루 분별해서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심세성(審細性)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오식은 항심성(恒審性)이 결여된 것이며, 제6 의식은 분별하는 힘이 섬세하기는 하나 숙면(熟眠)일 때와 기절 및 선정 등에 든 오위무심(五位無心)의 경우에는 그 작용이 단절되어서 항상(恒常)의 뜻이 결여된 것이요, 제8 아뢰야식은 어느 식 보다도 항상 존속하는 성질은 있으나 무엇을 자세하게 살피는 이른바 심세성이 없으므로 오직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성질인 항심사량성(恒審思量性)을 모두 갖춘 심식은 제7 말나식 뿐이란 것이다.

  우리들이 업에 따라 육도윤회하면서 함께 하는 이 말라식은 그 의지처가 중생의 본성으로 여겨지는 제8 아뢰야식이며, 대상은 견분(見分), 즉 주관심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식은 근본식인 아뢰야식을 의지처로 하면서 항상 네 가지의 근본번뇌와 함께 함은 물론이고, 제8식의 견분을 대할 때마다 이 견분 자체를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자아의 실체라고 세심하게 집착하는 것을 그 자성으로 삼으며, 이와 같이 주관심에 집착하는 것이 곧 말나식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활동하면 거기에는 인식이 일어나고, 인식이 일어나면 거기에는 주관심이 작용했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연유로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man’이 말나식의 범어인 man(as)에서 왔다는 것도 이 식의 특성을 잘 말해주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고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유식사상에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게 되고, 또한 이에 관한 이론과 해명이 유식사상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 ; Ālaya-Vijñāna)에 관한 내용이다. 말하자면 이 아뢰야식사상은 유식교학에 있어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분야로써 이에 관한 고찰이 무엇보다도 강조된다고 하겠다.

  먼저 이 제8 아뢰야식설이 성립하게 된 연원을 살펴 보면, 부파불교나 소승불교에서도 마음을 영원히 유지시켜주면서 업력까지도 보존해 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탐구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로 먼저 대중부(大衆部)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상정하여 근본식(根本識)이라고 하였으며, 상좌부(上座部)와 설가부(說仮部)에서는 이를 유분식(有分識), 즉 과거와 현재 및 미래 등의 삼세에 걸쳐서 생존의 원인이 되는 식을 이렇게 표현했고, 독자부(犢子部)에서는 보특가라(補特伽羅 ; Pudgala)라고 하여 중생들은 번뇌와 업의 결과로 자주 육취(六趣)에 왕래한다[數取趣]고 하여 이를 불변의 식체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리고 화지부(化地部)에서는 궁생사온(窮生死蘊)이라고 하여 우리 중생의 생사의 맨 끝단계인 금강유정(金剛喩定)에까지 상속되어서 수전(隨轉)되는 근본식으로써 제6식 보다 더 미세한 심식을 주장했고, 경량부(經量部)에서도 끝없는 옛적부터 단절되지 않고 같은 종류로 계속해서 상속된다는 미세한 세의식(細意識)을 내세웠는데, 그 성류(性類)가 일정하기 때문에 또한 이를 일미온(一味蘊)이라고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들의 개념이 발전하여 후세에 아뢰야식설로 정리가 된 것인데, 이 아뢰야식은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상존해 있으면서 변함이 없으며, 그 흐름은 일생 동안 끊어지지 않고 미래의 생존에까지 계속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범부 중생들이 어떤 행위나 행동을 하는 한 그것은 대개 선업이나 악업을 짓게 되어 있어서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때에 아뢰야식이 모든 업력의 귀의처로 사용되어서 그 안에 마음의 종자들을 간직하고 있다가 그에 알맞는 환경이나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그에 부응되는 세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 현상계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여 만들어진 세계는 어떤 창조주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며, 단지 각 개인이 평소에 지은 선ㆍ악업의 결과로 그렇게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들은 처음부터 업을 짓지 않아서 마음 속에 선ㆍ악업의 종자를 함유하고 있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중생들은 우선 집착심과 무지 등으로 그 마음이 먼저 선점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업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을 정화시켜 주는 종교적인 실천덕목이 수행인데, 이것을 유식학에서는 유가(瑜伽)라고 하여 완전한 인격자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중생이 인식활동을 하면 업을 지을 수밖에 없고, 업을 지었으면 이를 수용하는 아뢰야식이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아뢰야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이 심식을 아뢰야(Ālaya)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 의미가 무엇을 “저장하고 있다”든지 혹은 “간직하고 있다”는 등으로 해석되어서 이를 한역으로는 장(藏)ㆍ저장소(貯藏所) 내지는 가(家) 등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만약 이를 Alaya라고 쓸 때에는 이를 A + laya로 세분하여 해석하는데, 이 때에 A는 무(無 ; not)의 뜻이고, laya는 “없어졌다”든지 “다 되었다”는 등으로 해석하여 이를 몰(沒)ㆍ실(失) 내지는 멸진(滅盡)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든지간에 이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간추리면 아뢰야란 우리 중생들이 업을 지으면 그 업의 세력은 어디에 가지 않고 바로 자신의 마음 속에 간직된다는 뜻에서 이와 같이 부른 것이다.

  그 성질을 살핌에 있어서는 보통 열 가지로 자세하게 세분하여 고찰하지만, 여기에서는 이를 자상(自相)ㆍ인상(因相) 및 과상(果相) 등의 세 가지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제8 아뢰야식의 자상(自相)이란 이 심식이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정신의 체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살펴 보는 부분으로써, 아뢰야식은 세 가지의 장식(藏識)의 뜻[賴耶 三藏義]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식은 모든 잡념법의 종자들을 능히 간직해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능장(能藏)이라고 하며, 또한 모든 마음의 종자가 함장될 바의 처소가 되므로 소장(所藏)의 능력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아뢰야식은 무엇보다도 집장(執藏)의 뜻이 강한데, 이는 제7 말라식이 항상 이 식의 견분(見分), 즉 주관심을 빗대어서 그것이 자아의 실체인양 집착하는 것과 같이 제8 아뢰야식이 제7식에게 수동적으로 집장 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아뢰야식이 집장의 뜻이 잠재해 있는 기간과 그에 따른 경지를 수행단계에 따라서 세 가지로 나눈 것을 보면, 첫째로 제7지 이전의 보살들은 제8식에 의지하여 안정을 희구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아직도 아집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이를 가리켜서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라고 하며, 이 때의 제8식을 특히 ālaya라고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제8지 이상 10지까지의 보살도 선악업에 의한 과보가 아직도 상속되어서 받고 있으므로 이를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라고 하며, 이 때의 제8식을 Vipaka(異熟)라고 한다. 세 번째로는 최후의 지위인 부처님의 경지에까지도 제8식 중에는 종자를 간직하고 있는데, 대개 중생들은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등의 모든 종자를 함께 가지고 있으나 부처님은 무루의 종자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라고 하며, 이 때의 제8식을 ādāna(執持)라고 한다. 말하자면 유식사상[특히 중국의 법상종]에서는 부처님의 경지에서도 제8 아뢰야식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안에 지혜의 종자만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며, 이 아뢰야식을 범부는 물론이고 성인의 경지에서도 존재하는 불멸의 실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식의 인상(因相)이란 모든 마음의 종자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잃어 버리지 않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써 이 식은 인연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중생의 몸을 받고 또한 그 몸과 정신을 부단히 변화시키고 유지시켜주는 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숙(異熟)이라고 하며, 이것에 의하여 7식과 6근이 생기고, 출생 후에도 이에 의하여 생활하게 되는 인간의 바탕이 되는 식이므로 근본식(根本識)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과상(果相)이란 전생의 업력에 의하여 초래되는 과보를 말하는데, 그 과보는 업력을 보존하고 있는 아뢰야식 내의 종자로부터 힘을 빌려야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이 식이 업력에 의하여 금생의 몸과 다른 몸을 내생에 변화시켜 받는다는 의미에서 이를 이숙식(異熟識)이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상과 같은 8식설에 의하여 우리의 심식을 고찰해 보았지만 이와 같은 견해는 유상유식론(有相唯識論)의 입장이고, 중관학파와 제휴된 무상(無相)유식론에서는 제8식까지 설정하는 것을 부정하고 최고의 절대지로서 제9 아말라식(阿摩羅識 ; Ama ­la-Vijñāna), 즉 무구식(無垢識) 내지는 백정식(白淨識)을 주장하여 그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법상종에서는 부처님의 경지[相續執持位]에서도 집지(執持 ; Ādāna)라는 심식의 활동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불지(佛地)의 경지가 아니고 제7 말나식의 활동이며[지론종ㆍ섭론종 및 천태종 등의 주장], 저들의 오성각별설(五姓各別說)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법상종이 제8식까지만 주장하는 것은 만약에 법성(法性), 진성(眞性), 진여(眞如) 및 여래장(如來藏) 등과 같은 개념의 제9식에서 이 현상계가 발생되었다면, 그것은 진리의 체성상 이치에 맞지 않는다[眞如凝然說]고 하면서 제8식 내의 청정분(淸淨分)을 제9식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심왕법의 일반적인 정의 

  

  이 현상계의 모든 존재를 분류하는 방법에 있어서 구사론 등의 소승계통의 경론에서는 어떤 존재가 먼저 있고 난 후에 우리의 인식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법상생기(法相生起)의 순서에 따라서 색법을 맨 앞에 놓지만, 해심밀경과 유가사지론 등의 법상관계의 대승경론에서는 이와 반대로 우리의 마음이 먼저 있고 난 후에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유식소변(唯識所變)의 순서에 따라서 마음의 법인 심왕법을 앞에 놓고 있다. 

  그러면 이 마음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유식교학의 근본목적이다.

  우선 초기경전인 아함경에서는 이 마음을 일컬어서 심(心)이나 의(意) 및 식(識)이라고 혼용하고 있으면서 정의하기를, “마음과 의식과 알음알이는 그 이름만 다를 뿐 체성은 하나로서 같다”[心意識三者 名異體一]고 했으며, 설일체유부에서는 이와 같은 무차별의와 함께 유차별의도 주장하였던 것이다. 즉, ① 각각 그 명칭이 다르고[名卽差別], ② 활동시기가 다르며[世卽差別 ; 過去名意 未來名心 現在名識], ③ 의미를 시설하는 항목이 다르고[施設差別 ; 界中名心 處中名意 蘊中名識], ④ 뜻이 다르며[義有差別 ; 心種族義 意生門義 識積聚議], ⑤ 업용(業用)이 다른 것[業有差別 ; 遠行心業 前行意業 續生識業 ― 滋長心業 思量意業 分別識業] 등에 의하여 본다면 후대로 갈수록 이들 사이에는 차별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 것이다.   

  한편 유식교학에서는 이 마음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면, 그 체성에 있어서는 8종이 있다고 하였으며, 이 8종의 식(識)을 통틀어서 심(心)이라고 할 때와 제8식만을 심(心), 제7식을 의(意), 전(前)6식을 식(識)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여기에서도 이를 분리해서 살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실차난타(實叉難陀)역의 입능가경(入楞伽經) 제6 게품(偈品)에 의하면, “장식(藏識)을 심(心)이라 하고, 사량(思量)을 의(意)라고 하며, 능히 모든 대상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식(識)이라 한다.”[藏識說名心 思量以爲意 能了諸境界 是則名爲識]고 했으며, 유가사지론 제63권에서는, “다시 이 가운데 모든 식을 이름하여 심, 의, 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가장 뛰어난 기능만을 취해서 부른다면 아뢰야식을 심이라 하고, 말나식을 의라고 하며, 여타의 다른 것들은 식이라고 한다.”[復次此中諸識 皆名心意識 若就最勝 阿賴耶名心 末那名意 --- 餘識名識]고 정의했다. 또한 성유식론 제5권에서는, “모든 종자를 적집(積集)했다가 현행을 일으키는 집기성(集起性)이 강한 것을 심이라 하고, 사량성의 것을 의라고 하며, 대상을 잘 요별하는 것은 식이라고 한다.”[集起名心 思量名意 了別名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8식이 체일(體一)인가 체별(體別)인가 하는 문제는 일부의 주장도 있지만 호법(護法)계통에서는 8식 체별설을 그 정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8식들을 전5식부터 고찰하여 제6 의식과 제7 말나식 및 제8 아뢰야식 등의 순서로 살펴 보는 것이 보통인데, 이에 앞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를 고찰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3) 현실의 관찰 


  불교학에 있어서 그 교의(敎義)의 전개는 온갖 신이나 초월적인 원리와 같은 어떤 절대적인 개념들에 의하여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인식할 수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현실세계는 어떠한 구조와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찰하여 보면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살필 수 있다.

        

① 4대종설(四大種說) ;  이 현상계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인식하려는 방법으로서                          모든 것을 굳고 단단한 것[지대(地大)]과 물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수대(水大)]과 열을 가지고 있는 것[화대(火大)]                           및 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풍대(風大)] 등 네 가지의 것으                          로 나누어서 고찰하는데, 여기에서 대종(大種)이란 그 본                          체(本體)와 형상(形相)과 작용(作用) 등이 모두 광대(廣大)                          하여 색계(色界)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므로 이와 같이                          부른다. 이를 또한 4대요소설이라고도 한다.


② 5온설(五蘊說) ;  현실세계를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과의 상호작용으로                         인식하려는 방법이 5온설(五蘊說)로서 물질적인 것을 색온(色                       蘊)이라 하고, 이 색온을 인식하려는 네 가지의 정신적인 영                       역으로서 느끼고[受], 생각하고[想], 작용하고[行], 식별하는                        [識] 등의 4온의 활동을 통하여 파악하는 경향을 말한다.

                    

③ 12처설(十二處說) ;  순수하게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현상계를 파악하려고 할                          때는 12처(十二處)설을 도입한다. 여기서 처(處)란 “들어간                         다”는 뜻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 12가지 속에 포함                         되는 것 외에 더 이상의 것은 없다는 것이다. 12가지란 6                         가지의 인식기관[六根]인 눈[眼]․귀[耳]․코[鼻]․혀[舌]․                         몸[身]․의지[意]와 그 6가지의 인식대상[六境]인 물질[                            色]․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법[法]을 말한                         다.


④ 18계설(十八界說) ;  이 설은 12처설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한 것으로서 우리의                        인식주체인 6근이 그 대상인 6경을 인식할 때에 안근 등의                        근은 기능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활동하는데, 이를테면 눈                        으로 보는 활동을 하는 것을 안식(眼識)이라 하고, 귀로 듣                        는 것을 이식(耳識)이라고 하며, 내지는 의지를 가지고 일체                        의 법을 헤아리는 것을 의식(意識)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눈, 귀, 코 등의 인식활동인 6식(識)을 12처에 합한 것을 18                        계라고 한다.

       

  따라서 불교계에서 이 현상계를 관찰할 때에는 4대요소설과 같이 그 근본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를 고찰하는 방법도 있지만, 5온․12처․18계설과 같이 다분히 각 개인의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이를 관찰하는 방법이 보다 더 구체화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식이라는 것은 지금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 당사자 외에 궁극적으로 다른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은 개인의 인식여하에 달려 있다는 뜻을 강력히 내포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각자가 인식하고 있는 5온․12처․18계를 현상계를 분류하는 3가지의 과목[三科]이라고 하며, 이들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총체적으로 또한 ‘일체’(一切)라는 말로 표현한다.[三科恒現在]


  


                                12처 및 18계설


        ․六 根                 ․六 境                 ․六 識

    (主體․認識器官)         (客體․認識對象)              (認識)

          眼根                    色境                     眼識

          耳根                    聲境                     耳識  (小乘)

          鼻根                    香境                     鼻識    六

          舌根                    味境                     舌識    識

          身根                    觸境                     身識    體

          意根                    法境                     意識    一

                12處                                             (大乘)

                             18界                                  八

                                                                   識

                    ․第八識의 見分(主觀)        第七 末那識        體

                    ․所緣 三境                                     異

                      (種子, 有根身, 器世間)        (依 支)

                                                 

                                                 第八 阿賴耶識





    (4) 전5식(前五識)

 

                             󰊱 안 식(眼 識)

 

  ① 이 안식은 안근(眼根)에 의지하여[隨根得名] 식을 일으켜서 대상을 취하는[發      識取境] 인식작용을 함으로 안식이라고 한다. 마치 두 손이 서로 마주쳐서 소리      를 내는 것처럼 눈과 물질이 인연하여 안식을 일으킨다.[釋名]

  ② 이 식의 소연경(所緣境), 즉 인식의 대상은 청(靑), 황(黃), 적(赤), 백(白) 등       네 가지의 색이다.[所緣]

  ③ 안식은 종자로부터 생겨나는데, 그 종자는 별종소생(別種所生)이다.[假實]

  ④ 이 식은 선, 악, 무기(無記 ; 非善非惡)의 세 가지의 성질에 다 통한다.[性類]  

  ⑤ 욕계(欲界), 색계(色界) 및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 중에서 욕계와 색계       가운데의 초선(初禪)까지가 이 안식의 활동한계이다.[界繫]

  ⑥ 이 식이 의지하는 데는 네 가지가 있으니, 안근과 제6 의식과 제7 말나식과       제8 아뢰야식이다.[所依]

  ⑦ 우리들이 대상을 인식할 때에 그 지식판단의 진부(眞否)를 가리는 세 가지의      규범에 삼량(三量 ; 現量, 比量, 非量)이 있는데, 안식은 현량지(現量知)에만 속      한다.[三量]

  ⑧ 안식과 상응하는 심리작용을 보면, 촉(觸) 등의 5변행심소(五遍行心所), 욕(欲)      등 5별경(五別境)심소, 신(信) 등 11선(十一善)심소, 탐(貪) 등 번뇌(煩惱)심소       중의 3, 도거(掉擧) 등 8대수혹(八大隨惑)심소 및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의 2      중수혹(二中隨惑)심소 등 총 34심소와 상응하나 이들과 동시에 상응하는 것은      아니다.[心所相應]


 

                            󰊲 이 식(耳 識)


  ① 그 이름을 해석하면 이근(耳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키므로 이식(耳識)

    이라고 한다.

  ② 인식의 대상은 소리[聲]이다.

    기타 6문은 모두 안식의 경우와 비슷하다.



                             󰊳 비 식(鼻 識)


  ① 이름을 해석하면 비근(鼻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키므로 비식(鼻識)이      라고 한다.

  ② 그 대상은 냄새[香]이다.

  ③ 이 비식은 욕계, 색계 및 무색계의 삼계 중에서 욕계에서만 활동하지 위의 두      세계에서는 인식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머지는 앞의 두 식과 비슷한 활동을 한다.



                             󰊴 설 식(舌 識)


  ① 그 이름을 해석하면 설근(舌根)에 의지하여 인식활동을 하므로 설식(舌識)이라      고 한다.

  ② 인식의 대상은 맛[味]이다.

    그 나머지는 앞의 식들과 비슷하다.

                             󰊵 신 식(身 識)


  ① 이름을 해석하면 신근(身根)에 의지하여 식의 작용을 일으키므로 신식(身識)이      라고 한다.

  ② 그 대상은 감촉[觸]이다.

  ③ 그 활동의 범위는 삼계 중에서 욕계와 색계의 초선(初禪)까지 이 식이 미친다      고 한다.

    나머지는 앞의 여러 식들과 그 활동이 유사하다.


  이상과 같이 이 5식들은 그 작용이 유사한 까닭에 이것을 일괄적으로 한데 모아 전5식(前五識)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바로 눈 앞에 있는[現在前] 대상을 어떠한 사유분별(思惟分別)도 요구함이 없이 오직 대상 그대로만을 식별하기 때문에 이것을 현량지(現量知) 또는 자성분별(自性分別)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5식만으로는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번뇌를 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즉 그 이유를 들어보면,

  ① 번뇌를 끊으려면 필히 공상작의(共相作意 ; 제6 意識)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       인데, 전오식은 오로지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기 때문에 번뇌를 끊는 것이 불가      능하다는 것이다.(了自相故)

  ② 만약에 마음 안의 활동[內門]이 아니면 능히 번뇌를 끊을 수가 없는데, 전오식      은 밖으로만 활동[外門轉]하기 때문이다.(外門轉故)

  ③ 번뇌를 끊으려면 마음의 안정[禪定] 상태에서만 가능한데, 전오식은 오직 산심      (散心)이어서 등인력(等引力 ; 定) 등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無等引故)

  ④ 무엇을 헤아릴 수 있거나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등의 분별력이 없으면 능히      번뇌를 끊을 수가 없는데, 전오식은 그러한 분별력이 없다.(無分別故)

  ⑤ 어떤 대상을 알려는 의지의 유무에 따라서 마음의 활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안      일어나기도 하는데, 전오식은 이러한 마음의 활동과는 관계없이 오직 대상만을      직관하기 때문이다.(隨境故)

  ⑥ 번뇌를 끊는 지혜는 널리 일체의 일들을 연취함으로써 가능한 것인데, 안식은      물질만을 연취하고, 내지 신식은 촉경만을 연취할 뿐이기 때문에 그 대상이 한      정되어 있어서 번뇌를 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所緣少故)




                                 외문전(外門轉)       전5식(前五識)

  심식(心識)이 활동하는 방향                          제6식(第六識 ; 內外門轉)

                                 내문전(內門轉)        7, 8식(七, 八識)


  그런데 만일 생각을 오로지 하여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6근(六根)과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6경(六境)을 잘 지킨다면, 끝내 악도에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눈으로 모양을 보매 어떤 것은 아름답다 하고, 어떤 것은 추하다고 여겨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좋아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싫어하는 것이 일반 범부들이다. 이, 비, 설, 신 및 의도 마찬가지이니, 이는 여섯 종류의 각기 다른 짐승들이 행동하는 것과 같다. 이를테면 사람이 새끼줄로 개와 원숭이, 물고기 등을 묶어서 한 곳에 매어 놓았다면, 이 때에 개는 빨리 마을에 갔으면 할 것이고, 원숭이는 숲 속으로, 물고기는 물 속으로 갔으면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여섯 짐승들의 성질이 각각 다르므로 사람들이 이들을 붙잡아 한 곳에 묶어서 동서남북으로 이동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옛 보금자리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6근도 이 같이 각각 주관하는 것이 다른 데다가 그 작용이 다르므로 대상 또한 달라서 좋은 것도 있고 싫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비구들은 이 6정(六情)을 한 곳에 잘 매어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정진하여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게 한다면, 악마 파순도 침입할 수가 없어서 온갖 선한 공덕을 남김없이 완성할 것이다.[增一阿含經 권제32 ; 大正藏 2․723․下~724․上]

  그러므로 선남자야, 깨달음에는 모습이 없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관찰할 수가 없는 것이니라. 어째서 모습이 없으며, 관찰할 수가 없는 것인가 하면 안식(眼識)이 인식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모습이 없는 것이며, 안식이 그의 대상인 색(色)에 대해서 분별하지 않으므로 관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식(耳識)이 활동하지 않으므로 모습이 없는 것이며, 그 대상인 소리[聲]에 대해서 분별하지 않으므로 인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및 의식(意識)도 이와 같다. 이렇게 모습이 없고, 관찰할 수가 없는 것은 성자(聖者)의 경지인 바, 이것이 삼계(三界)를 초월해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범부로서는 능히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니라.[守護國界主陀羅尼經 권제4 ; 大正藏 19․539․下]





    (5) 제6 의식(意識)


󰇴 개 요

  일반적인 의미로는 각성(覺醒)하여 정신이 든 상태에서 사물을 깨닫는 일체의  의식작용을 말한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자아에 의하여 지각되고 있는 정신적인 내용물을 가리키고, 이에 지각되지 않는 것은 무의식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안식과 이식 등의 전5식이 그 대상인 물질이나 소리 등만을 인식함에 반하여, 이는 대상을 총괄적으로 판단분별하는 심적인 작용을 의식이라고 한다.

  전5식의 단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대상에 관한 내외의 구분이 이 의식의 활동과 함께 일어난다. 즉 직관적인 주객미분의 전5식이 대상을 인식하는 현량(現量)일 경우에는 대상에 안팎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이와 동시에 일어나는 의식이 허망하게 분별을 일으켜서 안팎이라는 이념을 만든다는 것이다(現量證時 不執爲外 後意分別 妄生外思 ; 成唯識論 권제5). 이와 같이 분별상에서 성립되는 외적대상에 관한 인식을 의식이라고 한다.

  이를 좀더 자세하게 나누어서 살펴 보면,

   1)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키므로 의식(意識 ; 意之識)이라고 한      다(隨根得名).

   2) 그 소연(所緣)의 대상은 법경(法境 ; 法處), 즉 유위, 무위의 일체제법이다(一      切境識).

   3) 종자의 가실(假實)을 논한다면 별종소생(別種所生)이다. 

   4) 그 성류(性類)는 선․악․무기 삼성(三性)에 다 통한다.

   5) 계계(界繫)를 논한다면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다 통한다.

   6) 소의처(所依處)를 살펴 보면 의근(意根 ; 第七識)과 제8식의 상분(相分)에 의      지한다.

   7) 삼량문(三量門)에서 본다면 이는 삼량(現量, 比量, 非量)에 다 통한다.

   8) 심소법과의 상응관계를 본다면 일체의 심소와 모두 상응한다. 그렇지만 꼭 동      시에 상응하는 것은 아니다.

   9) 일반적으로 전5식, 제6 의식, 제7 말나식 및 제8 아뢰야식과 같이 이들을 식       (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경계에 대하여 식별하는 작용이 수승하므로 그      렇게 부른다.

  10) 이 제6 의식은 바깥 경계를 요별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고, 이것이 동시에 이      식이 활동하는 활동[行相]이다(了境爲性相). 사려분별이라는 정신작용이 이 식      의 작용이다.

  11) 말나식[意根]에 의거해서 아뢰야식의 상분을 대상인 법(法)으로 집착하는 것      이 이 식이므로 객관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12) 극수면(極睡眠)이나 민절(悶絶), 그리고 무상천(無想天), 무상정(無想定) 및 멸      진정(滅盡定)의 5위 무심(無心) 때에는 단절되어서 일어나지 않는다.

  13) 이 식이 일어나는 데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의식의 발생


                                 同緣意識

                   五俱意識

                                 不同緣意識

    (1) 意識                                     五後意識

                                 獨散意識

                   獨頭意識                      獨起意識

                                 定中意識



                                               ※ 金東華著, 唯識哲學, p.65.

                                              全觀應譯, 唯識論解說, p.353.

                                              吳亨根著, 唯識學入門, pp.57~64.

                                              望月辭典, pp.113~114.



                                 五同緣意識

                   五俱意識

                                 不同緣意識

    (2) 意識

                                 五後意識

                   不俱意識                    定中意識

                                 獨頭意識      獨散意識

                                               夢中意識


                                           ※ 深浦正文著, 唯識學硏究, p.312.

                                              全明星譯, 唯識綱要, p.94.

                                              鄭柄朝譯, 佛敎의 深層心理, p.99





󰇵 오 심(五心)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에 차례로 일어나는 다섯 가지의 마음을 말한다.

 

  1) 솔이심(率爾心) ; 처음 대상에 접촉하는 찰나적인 마음.

  2) 심구심(尋求心) ; 대상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추구하는 마음.

  3) 결정심(決定心) ; 대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마음.

  4) 염정심(染淨心) ; 대상을 인식하고 난 후에 원한(怨恨)이 있는 것에는 좋지                         않는 감정[苦受]을, 친숙한 것에는 좋은 감정[樂受]을, 이러한                       두 감정이 없는 것에는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즉 사심(捨                       心)을 내는 것을 말한다.

  5) 등류심(等流心) ;  이와 같이 좋지 않는 마음[染心]과 좋은 마음[淨心]이 시시                       각각으로 상속되어서, 그 사람의 앞서의 마음과 같이 계속하                       여 유전되는 마음.

                    “瑜伽論說 率爾等五心中 前三定無記”(成唯識論述記 권제5ㆍ末)

 



󰇶 삼분별(三分別)

 

   ․대상을 식별하는 세 가지의 정신작용을 가리킨다.

   ․분별이란 식별과 요별의 뜻으로서 우리의 인식능력을 말한다.

   ․마음 속의 알음알이로 인식하는 작용의 세 가지를 말한다.


  1) 자성분별(自性分別) ;  임운분별(任運分別), 자성사유(自性思惟)라고도 하며, 현                           재전(現在前)한 모든 대상의 자상을 직관적(直觀的)으                             로 그대로 인식하는 것 ― 전5식과 제8 아뢰야식

  2) 수념분별(隨念分別) ; 수억사유(隨憶思惟)라고도 하며, 과거에 일찍이 경험한                            일이 있는 대상을 다시 추념억상(追念憶想)하는 것

                                               ― 제6 의식

  3) 계탁분별(計度分別) ; 추탁분별(推度分別), 분별사유(分別思惟)라고도 하며, 과                          현미(過現未) 3세에 걸쳐서 현견(現見)되지 않은 대상을                           독단적으로 상기(想起)하여 이것을 계탁추량(計度推量)하                          는 작용                  ― 제6 의식과 제7 말나식




󰇷 삼량설(三量說)


    양(量)이란 양지(量知)의 뜻으로써 삼량이란 인식대상을 인식할 때에 나타나는    세 가지의 판단의 종류를 말한다.

    우리의 주관심이 대상을 인식할 때에 그 인식적 판단이 모두 옳지는 않는데,     왜 옳지 않는가 하는 판단의 종류를 셋으로 나눈 것이다.


    1) 현량(現量) ; 무분별지(無分別知)가 현전(現前)의 대상을 연(緣)할 때에 명언                    (名言) 등에 의한 제분별(諸分別)을 떠나서 대상의 자상을 있는                    그대로 직각(直覺)하는 인식작용을 말한다. 또는 직관적으로 대                    상을 인식하는 것으로서 주관심이 직접 대상의 자상에 계합(契                    合)하는 것을 말한다.

                         ― 전5식 및 이와 동시에 일어나는 의식, 자증분(自證分)

    2) 비량(比量) ; 비교양탁지(比較量度知)의 뜻으로서 미란(迷亂)하지 않는 심식                    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 대상을 비량분별(比量分別)하여 대                    상의 자상을 정확하게 얻지 못하는 인식작용을 말한다.

                    유추(類推)와 추리로써 대상을 인식하는 것인데, 비량지(比量                    知)는 현량연(現量緣), 즉 현재전(現在前)의 인식대상만을 소연                     (所緣)한다. 즉 현재전하는 대상이 없이는 일어나지 못하는 작용                    이 있다.

                                                   ― (例) 먼 산의 연기 ⇒ 불

    3) 비량(非量) ; 산란한 심식이 대상이 현전할 때나 불현전(不現前)한 때를 막                    론하고 이를 소연으로 할 때에, 오직 착각으로 분별하여 대상의                    자상을 진실로 얻지 못하는 것으로서 잘못된 현량[似現量]이나                    비량[似比量]을 말한다.

                                         ― (例) 착각, 환상. 먼산의 안개 ⇒ 불


                 * 의식이 전5식과 함께 일어나서 어떤 것을 크다, 작다, 둥글다,                    모나다 등으로 분별할 때에 이 경우 맞는 것은 비량(比量)이고,                    틀리는 것은 비량(非量)이라고 한다.



                (三分別)                (諸識)                  (三量)

      

                自性分別          五八識(五八은 唯現)            現量

                隨念分別          第六識(第六은 通三)            比量

                計度分別          第七識(第七은 唯非)            非量





※ 전6식의 인식과정 중에 나타나는 두 가지의 연(緣)


    1) 자상연(自相緣) ; 대상의 자체 그대로를 연취(緣取)하는 것을 말한다[直觀].

                       언설미급(言說未及)의 형상을 연취할 때에 가능하다.

                       (例) 화(火) - 연성(煙性), 수(水) - 습성(濕性), 냉성(冷性).

                       자상을 연취하는 것은 전5식만이 한다[現量緣].

    2) 공상연(共相緣) ; 대상 자체상에 가립된 여러 가지의 명언(名言) 등을 연취                        하는 것을 말한다[比量緣].

                       별도로 실체가 없는 대상을 가리켜서 공상연이라고 한다.

                       자상과 공상연을 아울러서 연취하는 것이 제6 의식의 특징                        이다.

                                          (例) 병(甁), 총림(叢林), 건물(建物) 등


    (6) 제7 말나식(末那識)


  어떤 대상을 중립적인 견지에서 인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식도 그 바탕을 고찰  해 보면 선악업의 의지작용과 결합된 자아의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즉 대상화한 의식의 근저에 작용하고 있는 식은 선악업의 활동과 번뇌의 감정 등으로 물들어 있는 주관적인 의식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말나식이라고 한다.

  이 식이 제8식을 의지처로 하면서 아치(我癡), 아견(我見), 아만(我慢) 및 아애(我愛) 등 4종류의 번뇌와 함께 하고 제8식의 견분을 연취하되, 이를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아의 실체라고 심세(審細)하게 사량집착하는 것을 그 자성으로 삼고, 또 이와 같이 집착하는 것이 곧 이 식의 활동[行相]이다.

  이 식에 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1) manas(末那 ; 意, 思量)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제6 의식과는 그 이름은        같으나 실체는 다른 것[同名異體]을 말한다.

    2) 이 식의 특성 중의 한 가지는 항상 마음 속으로 무엇인가를 살펴서 분별하       는 것[恒審思量]인데 비하여, 다른 식은 그렇지 않다. 즉 전5식은 연취하는 바       의 대상이 현재전하지 않으면 그것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살피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한 수념(隨念)과 계탁분별(計度分別)을 할 수 없으므로 심세성       (審細性)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5식은 ‘항심’(恒審)의 뜻이 결여된       것이며, 제6 의식은 분별하는 것이 심세하기는 하나 5위 무심 때에는 그 작용       이 단절되므로 항상의 뜻이 결여되는 것이요, 제8 아뢰야식은 항상 존속되는       성질은 있으나 심세의 작용이 없으므로, 오직 이 말나식만이 ‘항심사량’(恒心思       量)의 특성이 있는 것이다.

    3) 종자의 가실을 논한다면 별종소생이다.

    4) 이 식의 성류(性類)를 말하면 오직 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이다. 왜냐하면 이       식은 항상 아(我)와 법(法)에 집착하여 마음을 은폐하고 성도(聖道)를 장애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용이 미세하고, 염오이기는 하나 악성은 아니다.

    5) 그 계계(界繫)를 논한다면 욕계․색계․무색계에 다 통한다.

    6) 그 소의(所依)를 논한다면 제8식을 의지처로 한다.

    7) 삼량을 논한다면 이 식의 작용은 오직 비량(非量)이다.

    8) 소연경(所緣境)을 논한다면 제8 아뢰야식의 견분(見分)을 그 대상으로 한다.

    9) 심소법과의 상응관계를 알아 보면 이 식은 변행심소의 5가지와 번뇌의 4가       지, 대수혹의 8가지 및 별경 중의 혜(慧) 등 18심소와 동시에 상응한다.

   10) 아집의 근본[恒審思量, 思量爲性相, 思量執着]이 되는 식이다.

    11) 무시이래로 간단없이 일류(一類)로 상속하면서 존재한다(제8식도 같음).

    12) 그러나 만약에 무루위(無漏位) 오르면 이 제7식은 현행되지 않는다. 즉 이       식은 아라한(阿羅漢)과 멸진정(滅盡定)과 출세도(出世道) 등 이른바 무루지(無       漏智)가 현전할 때의 3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阿羅漢滅定 出世道無有).

    13) 당체득명(當體得名)이다(소의근에 의하지 않고 그 식 자체에서 이름을 따온       것임).

    14) 제8 아뢰야식의 현행의 결과인 견분(見分)을 자아로 집착한 것이 말나식이       므로 이 식은 주관의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15) 소승인은 비교적 지혜가 천박함으로 제7ㆍ8식을 설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16) 초기불교에서 소승불교 및 용수(龍樹) 때까지도 이 식의 존재를 모르고 있       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식은 경전 상에서 이미 2가지로 그 교설의 내용이 증명되고[二敎證], 이치적으로 보아서도 6가지[六理證]로 그 존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먼저 경전상에서의 2가지의 교증을 보면, 첫째로 입능가경(入楞伽經)에서 이르기를,


    장식(藏識)은 이를 마음[心]이라 이름하고, 사량성(四量性)은 의(意)라고 하며,     능히 모든 대상을 요별하는 것은 식이라고 한다(藏識說名心 思量性名意 能了諸境    相 是說名爲識).


라는 내용에서 제7 말나식의 존재가 이미 설해졌던 것이며, 둘째로는 해탈경(解脫經)에서도 말하기를,

 

    염오(染汚)의 의(意)는 항상 모든 번뇌와 함께 생멸하는데, 만약에 제혹(諸惑)을    해탈하면 그 의는 과거에도 없고 또한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染汚意恒時 諸惑俱    生滅 若解脫諸惑 非曾非當有).


라고 한 내용 등으로 미루어 볼 때에 반드시 제7식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식이 존재해야 할 6가지의 이치[六理證]를 보면, 첫째로 성유식론(成唯識論 권제5)에 의하면,


    탐진치(貪瞋癡) 등의 근본법뇌와 상응하고, 일체 범부의 마음 속에서 항상 일어    나서 간단없이 상속되면서도 전6식과 상응하는 무명[獨行不共無明]과는 다른 공    통되지 않는 무명을 항행불공무명[恒行不共無明]이라고 하는데, 이는 진실을 가리    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만약에 이 식[말나식]이 없다면 저 항행불공무명도 무의    미하므로 이 식은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契經說 不共無明微細恒行 覆蔽眞實 若無    此識 彼應非有].


  둘째로 역시 성유식론(권제5)에 보면,


    눈[眼]이 물질을 연취해서 안식(眼識)을 일으키고, 내지 의(意 ; 제7식)가 법을    연해서 의식(意識 ; 제6식)을 일으킨다. 그런데 만약 이 말나식이 없다면 의근(意    根)이 없어서 제6 의식까지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契經說 眼色爲緣     生眼識 廣說乃至 意(第七識)法爲緣 生於意識(第六識) 若無此識 彼意(根)非有]


                                  〔이하의 이증(理證)에 관한 내용은, 金東華著,

                                    「唯識哲學』(寶蓮閣 간행), pp.81~84 참조〕





    (7)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 ; 靜海)


󰇴 개  요

  1) alaya-vijnāna ; a(not ; 無) + laya(滅盡 ; 沒失) + vijñāna(識)

     ālaya-   〃   ; ālaya(家 ;  藏 ; 貯藏所) + vijñāna(識)

     Hima(雪) + ālaya(藏) ; 山

  2) 제8식의 소의처(所依處)는 제7 말나식이다.

  3) 소연경(所緣境)을 말한다면 심종자(心種子)와 5근(五根 ; 有根身)과 기세계(器      世界 ; 現象界)이다.

  4) 만법생기(萬法生起)의 근본식(根本識)이다(身內의 自我). 능히 색심 등 제법의       종자를 함장해서 유루무루(有漏無漏)의 일체만법으로 변현된다.

  5) 아뢰야라는 이름은 유루법이 현행하는 사이, 즉 아집이 있는 위치까지만 존재     하는 것이지, 아집이 발생하지 않는 성인위(聖人位)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없     어진다(阿羅漢位捨 ; 眞如與無明乃一法之異名 如水與氷 氷之自性爲水 無明之自     性爲眞如也).

  6) 누구나 다 각자의 아뢰야식으로부터 변현된 세계 가운데 머물러 살고 있다.

  7) 무명이 진여에 훈부(薰附)되어 아뢰야식을 낳고, 이 아뢰야식에 의하여 만법이      생긴다.

  8) ādāna(執持, 取得, 相續)식과 이 제8식이 같다고 유식가들은 여긴다(그렇지만       地論宗, 攝論宗 및 天台宗 등의 舊譯에서는 ādāna식을 제7식의 別名으로 여김).

     중국의 지론종에서는 제8 아뢰야식을 순정무구(純淨無垢)한 진식(眞識)으로 보      았으며, 섭론종에서는 이를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 법상종(法相宗)에서는      망식(妄識) 등으로 각각 간주했다. 


 


󰇵 연원사상(淵源思想)


     부파불교나 소승불교에서도 마음의 주체를 영원히 유지시켜주면서 업력까지도     보존해 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탐구하게 되었는데(제6 의식은 평상시에는 별문     제가 없지만 어떤 불의의 사고나 극한 상황, 즉 숙면(熟眠)이나 기절(氣絶) 때      등에는 생명의 주체로써 문제가 됨),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은 사상들이 여러 부파     들 사이에서 주장되었다.


  1) 대중부(大衆部) ; 모든 인식의 근본이 되는 것을 설정해 놓고 이를 근본식(根                      本識)이라고 했다.

  2) 상좌부(上座部), 설가부(說假部) ; 유분식(有分識)이라고 하여 삼세에 걸쳐서                       생존의 원인이 되는 식(제8식에 해당됨)을 가정하여 이를 유                      분식이라고 했다.

  3) 독자부(犢子部) ; 보특가라(補特伽羅 ; pudgala), 즉 삭취취(數取趣)라고 하여                       중생들은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자주 6도(六道 ; 六                      趣)에 왕래하는데, 그 원인은 중생들에게 이 보특가라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 화지부(化地部) ; 궁생사온(窮生死蘊), 즉 생사의 궁극인 금강유정(金剛喩定)에                       까지 상속되어 수전(隨轉)되는 근본온(根本蘊)으로서 제6 의                       식 보다 더 미세한 식을 말한다.

  5) 경량부(經量部) ; 세의식(細意識), 즉 끝없는 옛적부터 단절되지 않고 동일한                        성류로 계속해서 상속되는 미세한 심식을 일컬으며, 그 성향                       에 따라서 이를 일미온(一味蘊)이라고도 했다.


등이 그것인데, 이와 같은 사상들이 연원이 되어서 후에 아뢰야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 십문해석(十門解釋)


  1. 자상문(自相門) ; 아뢰야식 자체의 성질을 말한다.


      ☆ 뢰야 삼장의(賴耶 三藏義)

              1) 능장의(能藏義 ; 持種義) ;  일체 잡염법(雜染法 ; 善, 惡, 無記)의                                            종자를 모두 이 아뢰야식 가운데에 함                                            장보존(含藏保存)하는 것을 말한다.

              2) 소장의(所藏義 ; 受薰義) ;  이 식이 일체법을 간직할 바의 처소                                            (處所)가 되는 것.

              3) 집장의(執藏義 ; 我愛所執義) ; 제7 말나식은 무시이래로 제8식                                             의 견분(見分) - 거울의 그림자(影像),                                            즉 객관의 사물이 인식되기 전에 인식                                            에 적합하도록 주관에 나타나는 영상                                            인 상분(相分 ; 그림자)을 인식하는 것                                            - 을 향하여, 그것이 아(我)의 실재적                                            (實在的)인 주체라고 집착하나니, 이                                             식이 이와 같이 제7식에게 집장(執藏)                                            되는 것을 집장의(執藏義)라고 한다.

                                          (이 때 제7식은 능집장(能執藏)이고,                                             제8식은 소집장(所執藏)임)


                          제8 아뢰야식, 즉 장(藏)의 본의는 집장의이다. 왜냐하                          면 아뢰야식의 입명(立名)의 본래의 뜻은 유루법이 현행                          하는 사이 곧 아집이 있는 위치까지의 사이에서만 존재하                          는 것이지, 아집이 없는 성인위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자연히 없어지기 때문이다.


  2. 과상문(果相門) ; 제8 아뢰야식은 우리가 전생에 지었던 선업 또는 악업의 과                      보를 받은 총보(總報)의 주체로서 이 식을 이제 이숙식(異熟                       識)이라고 하는 까닭은 인(因)에 대한 과(果)를 이름함이다. 즉                      이 식을 초감(招感)할 인은 반드시 강성(强盛)한 선업이나 악                      업이기를 요구한다. 이 선업이나 악업의 인이 이류이숙(異類而                      熟)한 결과의 뜻에서 이것을 이숙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果                      는 因과 별류).

                  ㆍ因是善惡 果是無記.


  3. 인상문(因相門) ; 인상(因相)이라 함은 제8 아뢰야식에는 유위나 무위, 유루나                      무루 및 색심 등 일체제법의 종자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뜻으                      로써 이를 일체종식(一切種識)이라고도 한다.

                     유위, 무위 등 일체제법의 모든 종자는 이 아뢰야식에 함장                      되어 부실(不失)하게 보존되다가 그 종자가 현행할 연(緣)을                       만나면 비로소 과(果)로써 나타나는 것으로, 이와 같이 제식                       (諸識)의 종자를 집지(執持)하고서 잃어버리지 않는 능력은 다                      른 식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이 아뢰야식만의 특                      질인 까닭에 이를 이름하여 일체종식(一切種識)이라고 하는                       것이다.     


  4. 소연문(所緣門)과 5. 행상문(行相門)

        소연(所緣)이란 함은 아뢰야식의 인식대상을 말한다.

        행상(行相)이라 함은 인식주체가 인식활동을 하는 실태를 말한다.

        이 아뢰야식이 대상으로 하는 소연 삼경(三境)은 다음과 같다.


                      집수(執受)   󰠏󰠏󰠏󰠏󰠏󰠏󰠏󰠏󰠏󰠏󰠏 종자(種子)

         삼경(三境)                             5근(五根 ; 有根身)

                      처(處)     󰠏󰠏󰠏󰠏󰠏󰠏󰠏󰠏󰠏󰠏󰠏󰠏  기세간(器世間)


      행상문에서 “了謂了別 卽是行相”이라고 한 바와 같이 요별작용 내지는 식별      작용, 즉 인식활동을 하는 상태를 행상이라고 한다.

      소연문과 행상문을 관련시켜서 말한다면, 제8식은 종자와 5근과 기세간의 세      가지 경계를 대상으로 하고, 또 이것만을 인식한다고 할 수 있다.


  6. 수구문(受俱門) ;  수(受)라고 하는 것은 외계를 영납(領納)함을 뜻하는 것으로                      서 감각적인 작용을 말한다.(五受 ; 苦, 樂, 憂, 喜, 捨)

                      외계와의 접촉을 통하여 쾌락과 고통 등을 받는 것을 수                        (受)라고 한다.

                    (前五識 ; 身受,  第六 意識 ; 心受,  第七識과 第八識 ; 捨受)


  7. 상응문(相應門) ;  오직 5변행(五遍行)의 심소와만이 상응한다.

                      변행이라 함은 이 부류의 심소법은 어느 식, 어느 곳을 불                       문하고 항상 상응구기(相應俱記)하기 때문에 변행이라고 한                       다.


  8. 삼성문(三性門) ;  이 제8 아뢰야식은 이숙무기성(異熟無記性)이다.


  9. 인과비유문(因果譬喩門) ; 제8 아뢰야식은 무시이래로 제법의 종자를 함장하고                              는 무한한 시간을 향하여 상속되는 것이다. 즉 그 종                              자는 전멸후생(前滅後生), 과생인멸(果生因滅)하고, 부                              단불상(不斷不常)하면서 간단없이 일류(一類)로 유전                              되는 것인데, 그러한 현상을 비유하면 마치 폭포수(瀑                              布水)가 전멸후생하면서 끊임없이 한 가지로 흐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恒轉如瀑流, 種子生種子).


  10. 복단위차문(伏斷位次門) ; 이 아뢰야식은 그 실체가 상주불변하는 것도 아니                               고, 그렇다고 외도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없는 것                               도 아니다.

                               이 아뢰야식에 함장되어 있는 종자는 시시각각으                               로 변화변천하고 전멸후생하면서 자기를 개조하고                                향상시켜 나간다.

                               만약 아뢰야식 중에 잡염법의 종자만이 일정하게                               항상 상속된다면 범부의 생활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유루 제잡염법(諸雜染法)의 종자를 근절시키는 것,                                즉 잡염법의 종자를 훈부(熏附)시키는 원동력은 아                                집인데, 이 아집만 제거된다면, 아뢰야식에 함장되                                는 제법의 종자는 자연히 공허하게 될 것이다.

                               이를 단사문(斷捨門)이라고 하는데, 복단(伏斷)이                                란 번뇌를 강복(降伏)받았다는 뜻이다[번뇌를 제복                                (制伏)하여 한 동안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복                                혹(伏惑)이라 하고, 번뇌를 아주 끊어버려서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단혹(斷惑)이라고                                한다].             

                               사(捨)란 아뢰야식이라는 이름을 버렸다는 의미로                                써 유식 삼십송에, “阿羅漢位捨”라고 한 내용이 그                                것이다.

                               범성(凡聖)을 막론하고 제8식의 체를 구유(俱有)한                                것은 동일하다(此心平等 本無凡聖). 그러나 수행의                                계위에 따라서 제8식의 명칭이 다르다. 즉 아뢰야                                식이라는 것은 아집의 현행이 있는 자에게 한하여                                붙여진 식명(識名)으로써 만약 아라한의 위치에 오                                르면 아뢰야식이라는 이름은 버려진다는 것이다.


                  ※ 阿羅漢(arhan) ; 應供, 不生, 離惡.

                    “阿羅漢位에서 方究竟捨니라.”(成唯識論 권3)

                    “謂諸聖者가 斷諸煩惱障하여 究竟盡時에 名阿羅漢이니라.”(〃)





󰇷 삼상문(三相門)

      제8 아뢰야식을 설명할 때에 자상(自相)과 인상(因相) 및 과상(果相)의 세 가      지로 간략하게 논하는 것을 말한다.


  1. 자상(自相) ; 제8식이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정신의 체성이라는 것을 강                  조하여 이를 아뢰야식이라 하고, 그 기능에 따라서 세 가지로 나                  눌 수 있다[賴耶 三藏義].


   능장(能藏) ; 일체의 종자[一切種子 ; 雜染法의 種子]를 함장보존(含藏保存)한 것                을 말한다.

   소장(所藏) ; 일체종자식이 함장될 바의 처소가 되는 것을 일컫는다.

   집장(執藏) ; 제7 말나식은 항상 이 식의 견분(見分)을 빗대어서 그것이 자아                  의 실체라고 집착하나니, 이 식이 이와 같이 제7식에게 수동적으로                집장 당하는 것을 집장의라고 한다.

 


         ※ 아뢰야식이 집장의 뜻이 있는 기간과 경지

                      등을 수행의 단계에 따라서 세 가지로 나눈다.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 ; 제7지(第七地) 이전의 보살들은 제8식에 의지                                    하여 안정을 희구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이는                                    아집이 현행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제8지                                   이상의 보살이 되어야만 아집을 끊을 수 있다고                                   함). 이 때에 제8식을 alaya라고 한다.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  제8지 이상 10지까지의 보살도 아직 선악업의 과보가                             상속되고 있는 기간이므로, 이 때의 제8식을 vipaka(異                            熟)라고 한다.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 ;  구경의 불지(佛地)에까지 제8식 중에 종자를 집지(執持)                            하는데, 중생들은 유루나 무루의 제종자를 함께 가지고                            있으나 부처는 무루의 종자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                            이 때의 제8식을 ādāna(執持)라고 한다.


  2. 인상(因相) ;  이 아뢰야식은 인연에 따라 여러 가지로 중생의 몸을 받고, 또한                  그 몸과 정신을 부단히 변화시키고 유지할 수 있는 체성을 가지                   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숙(異熟)이라고 한다. 아뢰야식은 인간을                   최초로 태어나게 하는 생체이며, 근원이다. 이것에 의하여 7식과 6                  근이 생기며, 출생 후에도 이 아뢰야식에 의해 생활하게 되고, 인                  간의 근본이 되는 식이므로 이를 근본식(根本識)이라고 한다.

                  일체제법의 종자를 집지하고 있으면서 부실(不失)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일체종식(一切種識)이라고 한다.


                 인능변(因能變) ;  업인(業因)은 능히 변천한다는 의미로써 과보                                    에 대한 변화를 말한다.

                                    (例) ; 4유(四有 ; 死有, 中有, 生有, 本有) 등

                 과능변(果能變) ;   아뢰야식은 전생의 업력을 보존하고, 현세에                                    서 업의 도움을 받아 몸과 마음이 형성되는 과                                    정을 말한다. 이는 종자에서 생긴 8식을 일컫                                    는다.


  3. 과상(果相) ;  이는 전생의 업력에 의하여 초래되는 과보를 말하는데, 그 과보                  는 업력을 보존한 아뢰야식 내의 종자로부터 힘을 빌려야 나타난                  다는 것이다. 즉 아뢰야식은 업력에 의하여 금생의 몸과 다른 몸                  을 내생에 변화시켜서 받는다는 의미에서 이를 이숙식(異熟識)이                  라고 한 것이다.

                “因是善惡 果是無記”(이 식을 초감할 원인은 반드시 강성한 선악                  업이어야 하나 결과는 무기라는 것)



 ※ 이숙에는 업과(業果)와 부단(不斷)과 변삼계(遍三界)의 세 가지 뜻이 있음.


 ⑴ 업과(業果) ; 아뢰야식이 중심이 되어 전생의 업력에 따라서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

 ⑵ 부단(不斷) ; 아뢰야식의 체성은 언제까지나 유지, 상속되어 영원히 단절되지                  않기 때문에 3계 6도(三界六道)를 윤회케 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⑶ 변삼계(遍三界) ; 욕계, 색계, 무색계 등 3계를 두루 윤회하면서 업력에 따라서                     새로운 과보를 받는 심식은 오직 이 아뢰야식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제8식과 구심(舊心)에 관한 여러 명칭


  1. 제8 아뢰야식의 중명(衆名)(大正藏 66ㆍ218ㆍ中~219ㆍ上)

     ⑴ 無沒識, ⑵ 本識, ⑶ 宅識, ⑷ 藏識, ⑸ 種識, ⑹ 無垢識, ⑺ 執持識, ⑻ 緣        識, ⑼ 顯識, ⑽ 現識, ⑾ 轉識, ⑿ 心識, ⒀ 依識, ⒁ 異熟識, ⒂ 識識, ⒃ 根識,       ⒄ 生識, ⒅ 有識.


  2. 구심(舊心)에 관한 17명칭(上同, 219ㆍ上)

     ⑴ 阿梨耶識, ⑵ 阿陀那識, ⑶ 窮生死蘊識, ⑷ 了別識, ⑸ 質多識, ⑹ 意識, ⑺       第一識, ⑻ 第八識, ⑼ 種子識, ⑽ 緣識, ⑾ 根本識, ⑿ 有分識, ⒀ 果報識, ⒁        智相識, ⒂ 眞相識, ⒃ 藏識, ⒄ 現識.




  󰇹 종자론(種子論)


  1. 종 자

    1) 씨앗, 2) 인상(印象), 3) 습기(習氣), 4) 본식(本識), 즉 아뢰야식을 소의처로     하고 실체와 실용을 갖추어 일체제법 전현(轉現)의 친인연이 되는 것을 말한다.

      “此中何法名爲種子 謂本識中 親生自果 功能差別”

                                           (成唯識論 권제2 ; 大正藏 31․8ㆍ上)

      “然諸種子 唯依世俗 說爲實有 不同眞如”(勝義諦上에서는 假有)


  2. 종자의 본유(本有)ㆍ신훈(新熏)ㆍ합생설(合生說)

    有義는 種子에 各有二類니라. 一者는 本有니, 謂無始來로 異熟識中에 法爾而有     하여 生蘊處界하는 功能差別이니라. 二者는 始起니, 謂無始來로 數數現行하여 熏     習而有니라.(成唯識論 권제2)


    1) 본유종자(本有種子) ; 무시이래로 제8 아뢰야식의 자체 중에 공능세력(功能                            勢力)을 갖추고 있다는 것(先天的인 고유의 종자)을 말                            한다. 본성주종(本性住種 ; 法爾種子) 󰠏󰠏󰠏󰠏 護月

    2) 신훈종자(新熏種子) ; 제법이 현행할 때에 7전식(七轉識)이 작용에 의해서                             제8식의 자체 중에 낳아서 저 현행의 기분들을 훈습한                            다는 것이다. 이 때에 훈습된 기분을 습기라고 한다.

                                 습소성종(習所成種) 󰠏󰠏󰠏󰠏 難陀, 勝軍

    3) 본신합생설[本新(新舊)合生說] ; 우리의 마음 속에 종자가 생긴 원인을 파악                            해 보면, 개체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어떤 특질                            과 후세에 살아 가면서 업에 의하여 습득되어지는 두                             가지 것의 총체라는 주장이다. 󰠏󰠏󰠏󰠏 護法


  3. 종자의 여섯 가지 뜻[六義](成唯識論 권제2 ; 大正藏 31ㆍ9ㆍ中)

    1) 찰나멸의(刹那滅義) ; 염념멸(念念滅)이라고도 하며, 시간적으로 찰나찰나에                             생멸하는 것이어야 종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무위(無爲)나 진여 등의 상주법(常住法)은 이러한 의                             미에서 종자가 될 수 없다(無常法이어야 함)고 한다.

    2) 과구유의(果俱有義) ; 종자[因]와 현행[果]은 동시에 구유(俱有)한다[同時因                              果].

                            화합동처(和合同處)의 원리가 적용된다.

                            이시인과(異時因果)는 이미 없어진 것이 남아 있다가                             다시 소생하는 것이 되어서 대승불교의 교리에 어긋                              난다고 한다.

    3) 항수전의(恒隨轉義) ;  종자는 항상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한 가지의 성류로                              상속한다[種子生種子]는 것이다.

                           이생미멸(已生未滅)의 인종자로써 7전식(七轉識)이나                              색법 등의 제법은 종자가 될 수 없다(斷續이 있기 때                             문이다).

    4) 성결정의(性決定義) ;  종자는 인과가 상응하고, 공능이 차별한 것이다(善因                             善果 惡因惡果).

    5) 대중연의(待衆緣義) ;  여러 가지의 인연[衆緣 ; 作意, 根, 境 등]이 화합할                              때에 비로소 현행된다[種子生現行].

                             한 원인만으로는 결과를 초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得餘緣爲因].

    6) 인자과의(引自果義) ;  좋은 물심(物心)이 좋은 물심을 낳지 나쁜 물심을 낳                             지 않는다는 것(心法 ― 心法, 色法 ― 色法)이다.



  󰇺 무상유식론(無相唯識論)과 유상유식론(有相唯識論)


    1. 무상유식론[無相(形象)唯識論(派)] ― 德慧 ― 安慧 ― 眞諦 ― 元曉

      1) 최고실재인 절대지(絶對知)를 주장(마음은 水晶과 같은 존재라고 함)한다.

      2) 제8 아뢰야식 보다 더 근원적이라는 제9 아마라식(阿摩羅識)을 세운다.

      3) 마음 자체는 대상의 모습을 지니지 않는다고 한다[마음과 모든 것은 찰나          생멸적인 존재].

      4) 인간 인식의 허망성(虛妄性)과 일률적이지 못함을 강조한다.

      5) 형상이 없는 진여의 세계에 도달코자 한다.

      6) 경식구민설(境識俱泯說), 즉 우리들의 인식에 있어서 주관과 객관이 함께          모두 허망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7) 이러한 개념들이 나중에 중관학파(中觀學派)와 결합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유상유식론[有相(形象)唯識論(派)] ― 陳那 ― 無性 ― 護法 ― 戒賢 ― 玄奘

      1) 제8 아뢰야식을 실유의 식체(識體)로 간주한다.

      2) 마음 자체가 대상의 모습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3) 절대지를 얻어도 아뢰야식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가운데에 있          는 번뇌의 잠재력이 근절될 뿐이므로 절대지에서도 분별력이 있다는 것이          다.

      4) 진여로부터 현상계가 전개된다는 것을 부정한다[眞如凝然說 ; 無爲無作用          說].

      5) 후에 경량부(經量部)와 합류하여 경량유가파(經量瑜伽派)를 형성하였다.






                    󰊳 심소유법(心所有法)

 


  유식사상에서는 심왕법(心王法)이라고 하여 인식주체인 여덟 가지의 마음과 이에 상응해서 일어나는 갖가지의 심리작용, 즉 작은 마음[細心]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작은 마음을 가리켜서 심왕소유법(心王所有法)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심왕법에 소유된 법이라는 뜻으로써 그 작용이 미세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붙여진 것인데, 이들은 독자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고 언제나 심왕법과 함께 상응해서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논전에서 이를 정의하기를,


    항상 마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마음과 더불어 상응하며, 마음에 얽매어 있기 때    문에 심왕에 소속된 법이라고 한다. 마치 자기에게 소유된 물건을 내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고 해서, 인식주체인 마음과는 상응하는 시간에 있어서나 의지하는 인식기관이나 대상 등에 있어서 그 하는 일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가지의 법이 전혀 같은 인식활동을 하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즉 논전에서 이르기를,


    대상에 대해서 인식주체인 마음은 오직 총상(總相)만을 취하고, 그에 따른 심리    작용, 즉 심소유법은 별상(別相)을 취해서 마음이 하는 일을 돕기 때문에 심왕에    따른 법이라고 한 것이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에 선생이 먼저 대체적인 윤곽을    그리고 나면, 뒤에 제자가 그 위에 자세하게 색칠하는 것과 역할이 같다.


고 하여, 심왕법인 마음이 대상의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고 나면 그 바탕 위에 세심한 부분들을 인식하는 것이 심왕소유의 법이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심소유법, 즉 잔 마음에는 어떠한 종류가 있으며, 그 활동은 어떠한가 하면, 먼저 ① 변행(遍行)심소라고 하여 언제나 마음의 주체인 심왕법과 함께 일어나서 인식활동을 하는 심소법들이 있는데, 이에는 감촉[觸]과 의지[作意]와 감정[受]과 상상력[想]과 생각[思] 등의 다섯 가지 심리작용들이 항상 마음에 동반되어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② 이어서 별경(別境)심소라고 하여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欲]과 선정[定]에 드는 것 등 다섯 가지의 심소법은 그 대상을 취해서 하고자 하는 일이 심왕법과 같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부르는 것이며, ③ 선(善)심소란 선량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심리작용으로써 이에는 무엇을 믿는 마음[信] 등 11가지가 있고, ④ 번뇌(煩惱)심소라는 것은 좋지 않는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근본번뇌를 가리키는데, 여기에도 탐욕[貪] 등 6가지가 있다. ⑤ 수번뇌(隨煩惱)심소란 근본번뇌에 따라서 일어나는 심리작용으로써 분노심[忿]을 내는 것 등 20가지가 여기에 속하며, ⑥ 부정(不定)심소란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밖의 다른 심소로서 후회[悔]와 수면[眠], 거친 마음의 활동[尋] 및 미세한 마음의 활동[伺] 등 이 4가지를 포함해서 총 51심소법을 유식교학에서는 들고 있다.

  이와 같은 심소법들이 인식주체인 마음과 여러 가지로 활동하면서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것들의 대강을 보면, 먼저 전5식 등 제8식(諸八識)의 인식주체에 관한 기능에 관해서는 4분설(四分說)이 설해지고 있으며, 인식대상에 관해서는 3류경설(三類境說)이 가해져서 인식의 대상 역시 마음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유심설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현상계에 관한 설명으로는 3자성설(三自性說)이 전개되고, 본체계에 관해서는 이를 본질면에서 고찰한 3무자성설(三無自性說)이 설해져서 그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는데, 이렇게 제현상에 관해서만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인식주체인 제8식이 대상을 인식할 때에는 대상을 대상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는 4연설(四緣說)과 자상(自相)ㆍ공상연(共相緣) 등이 매개체의 역할을 해서 이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을 인식하여 나타난 것이 현상인데, 이 때에도 5심설(五心說)과 3량(三量) 및 3분별설(三分別說) 등의 심리작용들이 작용해서 현상계를 형성했다는 것으로써 이러한 제학설들에 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고찰하려는 것은 인식주체가 대상을 인식하려고 할 때에 여기에는 4연설과 함께 자상ㆍ공상연이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 가운데서 자상ㆍ공상연을 살펴 보면, 대상 자체 그대로를 어떤 사려분별 없이 취하는 것으로써 물 같은 것은 그 습한 성질이나 냉성을, 불 같으면 타는 성질이나 뜨거움 등을 직감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자상연(自相緣)이라 하고, 공상연(共相緣)이란 대상 자체상에 일시적으로 붙여진 여러 가지의 이름이나 기능 및 모양 등에 의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성향을 말한다.

  그리고 대상 자체도 그냥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 여기에도 세 가지의 성질이 있다. 즉 이것을 3류경설이라고 하는데, 주관이 대상으로 하는 객관의 종류와 그 성질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우선 ① 성경(性境)이란 능동적인 주관심이 접촉하는 바의 대상을 오류 없이 인식하는 것이고, 5관(五官)에 의해서 비추어 온 것을 5식(五識)이 이를 대상으로 하여 인식하는 객관세계로써 대상을 대상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일컫는다. ② 독영경(獨影境)이란 주관심이 단독으로 나타낸 환상과 같은 것으로써 눈병 난 사람의 눈 앞에 보이는 헛물체나 거북이에게는 털이 없는데 털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토끼에게 뿔이 없는데 있다고 여기는 것 등 대상의 본질이 아니고, 능동적인 주관심에 의하여 조작된 영상만이 나타난 대상을 말하며, ③ 대질경(帶質境)이란 성경과 독경경의 중간적인 존재로써 양쪽의 성질을 다 겸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이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해질녘에 길을 가다가 새끼[繩]를 뱀으로 착각해서 얻는 대상 등을 말한다. 이 때에 새끼줄이라는 본질은 있으나 주관심이 잘못 인식한 뱀은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경우의 대상을 대질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3류경설은 객관론으로써 주관심을 떠난 실재로서의 객관이 아니라 주관심의 분별에 의한 객관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상을 인식하고 나서 자기 나름대로 나타낸 현상계를 3자성설(三自性說)이라고 하는데, 이를 경전에서 설명한 것을 보면,


    내가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모든 것들의 실상에 관해서 설하리니, 이에는 간    략히 세 가지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면, ①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의 것    이요, ② 의타기상(依他起相)의 것이며, ③ 원성실성(圓成實性)의 것이 그것이니     라.


고 한 것이다. 이는 현상계를 그 성립의 성질에 따라서 세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써 모든 존재의 본성이나 사물이 존재하는 상태를 유(有)ㆍ무(無) 내지는 실상이 아닌 거짓적인 존재[仮實]라는 관점에서 고찰한 것을 말한다. 그 내용을 살펴 보면, ① 변계소집상이란 새끼를 뱀으로 보듯이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에 범부들의 미망한 소견으로 말미암아 실체가 없는 것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잘못 알아서 생겨난 일체의 것들을 말한다. ② 의타기상이란 새끼를 뱀으로 잘못 보았지만 새끼 자체도 본래부터 의연하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볏짚이나 마(麻)가 일시적으로 필요에 따라서 사람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 상태로써, 이와 같이 현상계의 모든 것은 서로 다른 인연에 의하여 탄생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다. ③ 원성실성상은 현상계의 본체를 말하는 것으로써 진여(眞如) 내지는 진실과 같은 원리적인 개념의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3자성설에 비하여 모든 사물을 공성(空性)의 입장에서 분류하여 본체계를 살펴 본 3무자성설(三無自性說)이 또한 설해지고 있다. 이를 경전에서 그 내용을 찾아 보면,

    승의생보살아, 마땅히 알지어다. 나는 세 가지의 무자성에 의지하여 비밀스러운    의미로 일체 모든 것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상무자성(相無    自性과 생무자성(生無自性) 및 승의무자성(勝義無自性)이니라.

고 한 것이 그것으로써, ① 상무자성이란 앞의 3종자성 중에서 변계소집성의 것은 본래 미정(迷情) 앞에 나타난 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써 일정한 어떤 모양의 것이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며, 새끼를 잘못 보아 뱀으로 여겼지만 뱀 그 자체도 자성이 없는 것 따위를 말한다. 다음으로 ② 생무자성이란 여러 가지의 인연에 의하여 성립된 의타기성의 존재는 일시적으로 가현(假現)된 모양에 불과하여 실제적으로는 무엇이 생성된 것이 아니라는 설로써, 새끼는 짚과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실체가 본래 없었던 것과 같다는 이치이다. 마지막으로 ③ 원성실성은 진여나 진리 등이 원만하게 오래도록 상주하는 것과 같이 만유의 근원은 원만하게 성립된 진실한 존재이므로 본래부터 아무런 모양이나 생김도 없음을 일컫는 것으로써, 짚에서 새끼와 뱀의 모습을 인정키 어려운 것과 같다.

  다음으로 고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식주체인 주관심 자체에 관한 내용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주관심이 대상을 인식할 때에 현상계의 모든 것은 오직 식(識)으로부터 변현된 것에 불과하다는 도리를 아주 극명하게 살피는 방법으로써 일종의 의식작용의 단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먼저 ① 상분(相分)이라고 하여 우리는 바로 객관의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마음 속에서 그 그림자를 그리고 난 후에 이를 인식하는데, 이 때에 그림자를 가리켜서 상분[客觀]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 속에 나타내어진 대상을 지칭하는 것으로써 능동적인 마음과 그 대상인 본질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영상(影像)을 일러서 상분이라고 한다. ② 견분(見分)이란 마음이 인식활동을 할 때에 상분을 변현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는 작용체가 생기는 것으로써 상분에 상대하는 인식주체를 견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견분은 주관심으로써 저울의 추(錘)와 같으며, 대상을 인식하기 위하여 거울에 그림자를 나타낸 경우를 가리킨다. ③ 자증분(自證分)은 견분의 깊은 곳에는 주관 중의 주관심이 있어서 인식작용을 감시하는데, 이 때의 마음을 가리켜서 자증분 또는 자체분(自體分)이라고 하며, 견분을 통각적으로 증지하는 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기능들을 예를 들어서 말하면 자증분은 소의 머리나 새싹과 같은 형태이며, 상분과 견분은 여기에 난 두 개의 뿔과 떡잎 중에서 양쪽의 두 잎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 ④ 증자증분(證自證分)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의 작용은 자체분의 인식작용을 다시 증명해 주는 주관심이기 때문에 이를 제3중(第三重)의 인식작용이라고도 하며, 자체분과는 서로 인증하는 성질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주관심이 몇 번에 걸쳐서 심층적으로 인식활동을 검증하는 동안에 대개는 범부들의 무지와 집착심 때문에 대상을 대상 그대로 보는 지혜의 안목 없이,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헤아린다든지 아니면 추리나 억측 등에 의하여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심리적인 과정이나 양상을 볼 것 같으면 우선 5심설(五心說)을 들 수가 있다.

  5심설이란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에 차례로 일어나는 다섯 가지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먼저 ① 솔이심(率爾心)이란 인식주체가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 처음에 접촉하는 순간적인 마음으로서 이 때는 그저 대상과 접촉만 되었지 어떤 인식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어 다음 단계에 일어나는 것은, ② 심구심(尋求心)으로써 대상을 일순간 대면한 후로 그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하여 알려고 하는 2차적인 마음을 가리킨다. ③ 결정심(決定心)이란 대상이 무엇인가를 추구한 마음 다음에 일어나서 대상을 거의 인식한 마음으로써, 이 때까지는 대상에 대한 어떤 감정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직관한 경우를 말한다. 이어서 일어나는 ④ 염정심(染淨心)이란 드디어 대상에 대한 분별심이 일어난 것으로써, 만약에 대상을 식별하고 난 후에 그것에 대해서 그 전부터 원망과 한이 서린 것 등에는 고수(苦受), 즉 좋지 않는 마음을 내고, 친숙하고 잘 아는 것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 즉 낙수(樂受)를 내며, 이러한 두 가지의 감정이 아닌 것에는 그저 그런 감정인 사수(捨受), 즉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를 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⑤ 등류심(等流心)에서는 염정심에서 일어난 좋지 않는 마음과 좋은 마음이 이전의 마음과 같이 시시각각으로 상속되어서 한 세력으로 계속해서 흐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들이 계속되는 한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할 수도 있고, 또한 업을 지어서 6도윤회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설의 교훈이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인식과정 중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정신작용을 보면, 이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는 자성분별(自性分別)이라고 하여 현재 눈 앞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써, 이러한 정신작용은 전5식과 제8 아뢰야식이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수념분별(隨念分別)로써 과거에 일찍이 경험한 일이 있는 대상을 다시 기억해서 인식하는 정신작용으로써, 이는 제6 의식만의 활동이고, 셋째로 계탁분별(計度分別)은 이를 분별사유(分別思惟)라고도 하는데, 현재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는 대상을 독단적으로 과거ㆍ현재ㆍ미래에 걸쳐서 추측하여 분별하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말하자면 쓸데 없는 망상 등을 피우는 것으로써 이는 제6 의식도 하지만 주로 자주하는 것은 제7 말나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3분별설 못지 않게 인식과정 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또다른 이론은 3량설(三量說)인데, 여기서 양(量)이란 양지(量知)의 뜻으로써 인식대상을 인식할 때에 이를 헤아려서 인식한다는 의미로, 이에도 역시 세 가지의 작용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주관심이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에 그 인식적 판단은 모두가 옳지 않는데, 왜 그런가 하면 직관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정확하지 못한 대상을 경험이나 자의적으로 헤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먼저 ① 현량(現量)이란 분별심을 내지 않은 마음이 눈 앞에 놓여 있는 대상을 접촉할 때에 그 대상에게 주어진 이름이나 정보 등에 의한 인식을 떠나서 대상의 자상을 있는 그대로 직작(直覺)하는 인식작용으로써, 이를테면 주관심이 직접 대상의 자상에 합쳐진 상태를 말한다. 이와 같은 인식활동은 전5식과 제8 아뢰야식이 하며, 이와 동시에 일어나는 의식이나 자증분(自證分)도 여기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② 비량(比量)이란 맑은 정신을 가지고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 대상을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 등을 활용하여 분별하지만, 그러나 대상의 자상을 역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인식활동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에는 어디까지나 유추와 추리 등의 사고력이 동반되었기 때문으로써 대상도 명확치 않지만 현재 눈 앞에 대상이 있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먼 산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면 그 밑에는 불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같은 인식활동을 가리킨다. 끝으로 ③ 비량(比量)이란 산만하고 안정되지 못한 마음이 대상이 눈 앞에 있을 때나 있지 않는 경우를 막론하고 이들을 착각으로 분별하기 때문에 대상의 자상을 진실로 얻지 못하는 잘못된 비량(比量)을 말하다. 다시 말하자면 의식이 전5식과 함께 일어나서 어떤 것을 대소(大小), 방원(方圓)이라고 분별해서 알았을 때에 맞는 경우는 비량(非量)이고, 맞지 않는 경우는 이것을 비량(比量)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먼 산에서 안개가 피어 오르는데 이를 연기로 착각하여 그 밑에는 불이 있을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심왕소유법의 활동을 간추려서 말하면,

    1) 심왕소유법이라는 것은 심왕법에 소유된 것, 즉 우리들 정신 주체인 심왕법       에 따른 부작용(副作用 ; 心理作用)을 말한다.

       “恒依心起 與心相應 繫屬於心 故名心所 如屬我物 立我所名”(成唯識論 권제5)

    2) 심소유법의 존재는 심왕법과 상응하여 현기(現起)하는데 있다. 즉 이 심소법       은 심왕법과 더불어 일어나는 시간이 동일하고[時同 ; 同一 刹那], 의지하는        바의 근(根)이 같으면[依同 ; 同一 所依根], 또한 대상이 유사하고[所緣等 ;          “同一所緣 不同一行相” ; 瑜伽論 권제1), 그 체성이 비슷하기[事等 ; 體等 ; 심       왕법의 체가 하나면 심소의 체도 하나가 일어남) 때문에 ‘상응’(相應)이라고 한       다.

 

    3) 심왕법이 대상의 총상(總相), 즉 대체적인 윤곽만을 연취하는데 비하여, 심소       법은 이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 별상(別相), 즉 부분적인 것까지도 연취하       는 것이 심소법의 작용이다.

     “心於所緣 唯取總相 心所於彼 亦取別相 助成心事 得心所名 如畵師資 作模塡        彩” ; 成唯識論 권제5).


                       심왕(心王)       총상(總相 ; 體相)

      능연심(能緣心)                                         소연경(所緣境)   

                       심소(心所)       별상(別相 ; 義相)


    4) 그 종류에 있어서는 소승불교의 구사론 같은 데서는 46심소법을 논하고, 성       실론(成實論)에서는 49법을 주장하고 있으며, 대승불교의 유가사지론(瑜伽師地       論)에서는 53법을,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에서는 55법을 열       거하고,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과 오온론(五蘊論), 백법론(百法論) 및 성유식       론 등에서는 51심소법을 논정(論定)하고 있어서 각기 다르다.




  (2) 인식활동과 관련설

 

󰇴 3자성설(三自性說)

      현상계를 그 성립의 성질에 따라서 세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유(有)의 관점에서 일체제법을 그 성질상으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오위백법의 실상을 관찰키 위한 의도에서 성립된 이론이다.

      모든 존재의 본성이나 사물이 존재하는 상태를 공의(空義 ; 無), 유의(有義),      중도의(中道義)라는 세 가지의 관점에서 분류한 것을 말한다.


    1)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사물을 인식할 때에 범부의 미망(迷妄)한 소견으                                로 말미암아 실체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잘못                                 알아서 나타나는 일체의 사물을 가리킨다.

                                         (어느 석양의 길에서 본 새끼줄 ⇒ 뱀)

    2) 의타기성(依他起性) ;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른 인연에 의하여 생긴                            상호의존성의 존재물이라는 것이다.(諸法의 體性)

                                                            (짚, 麻 ⇒ 새끼줄)

    3) 원성실성(圓成實性) ; 현상계의 원리나 본체로서 원만하게 이루어진 진실된                            것, 즉 진리와 진여성 등의 것를 말한다.(諸法의 實性)




󰇵 3무자성설(三無自性說)

      모든 사물의 본체계를 설명한 것이다.

      일체제법을 공의 관점에서 분류한 이론이다.

 

    1) 상무자성(相無自性) ; 3종자성의 것 중에서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것은                             미정(迷情) 앞에 나타난 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새                             끼를 잘못 보아 뱀으로 여겼지만 뱀 그 자체도 자성은                             없다는 것)으로서, 모든 존재의 모습은 그 자체의 형상                             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천하여 무수하다는                              의미에서 고정된 모양은 없다고 정의하는 이론이다.

    2) 생무자성(生無自性) ; 여러 인연에 의하여 성립된 의타기성(依他起性)의 것                             은 일시적으로 가현(假現)된 모양에 불과하여 그 실성                             (實性)이 없다는 것(새끼는 짚과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진 것이므로 실체가 없는 것)으로서, 본래 어떤 것이든                             지 항존성, 독립성 등을 가지고 생성된 것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3) 승의무성(勝義無性) ;  진여나 진리는 원만하고 불변하게 상주하는 것이며,                              만유의 근본원리는 원성실성(圓成實性)한 절대적인 것                             이므로 아무런 모양이나 색깔도 없음을 말한 것(짚에                             서 새끼와 뱀의 모양을 인정키 어려운 것)으로서, 본래                             사물의 근본 바탕을 말한다. 




󰇶 4분설(四分說 ― 四分三類 唯識半學 ―)

      인식 주체에 관한 심층분석학적인 이론이다.

      능연심(能緣心)의 작용, 즉 주관체의 심리상태를 구명한 것이다.

      인식하는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서 고찰한 것이다.

      현상계의 일체만법이 오직 식으로부터 전변(轉變)된 것이라는 도리를 논명한       이론이다.


    1) 상분(相分) ;  우리의 마음 안에 변현된 경계를 일컫는다.

                    우리가 대상을 인식할 때에 바로 객관인 사물을 인식하는 것                     이 아니고, 인식대상을 일단 마음에 그리고 난 후에 이를 인식           ↑      하는 것이다. 이 때에 그려진 그림자를 상분(相分 ; 客觀)이라                       고 한다.

                    능연심(能緣心)과 소연경(所緣境)인 대상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영상(影像)을 일러서 상분이라고 한다.

    2) 견분(見分) ;  상분에 대하는 인식주체를 견분(見分 ; 主觀 ; 저울의 錘)이라                      고 한다.

                     마음이 활동할 적에 상분을 변현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           ↑        는 작용이 생기는데(거울에 그리자를 나타낸 것), 이 때에 작                       용에 해당되는 것이 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 상분과 견분의 2분만을 火辨, 親勝, 難陀 등이 주장)

    3) 자증분(自證分) ;  견분[主觀心]의 깊은 곳에는 주관 중의 주관심이 있어서                          인식작용을 감시하는데, 이 때의 마음을 자증분(自證分)이                         라고 한다.

         ↑ ↓          우리 마음이 일어났을 적에 이를 통각적(統覺的)으로 증                         지(證知)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이것을 자체분(自體分)이라고도 하며, 견분을 증명하는                           또 다른 마음의 한 갈래를 말한다[우두(牛頭), 태아(太芽)                          와 같음. 소의 양 뿔과 새싹의 양 잎은 상분과 견분의 2                          분].

                        (安慧는 이 자증분 하나만을 주장하고, 陳那는 이제까지의                          세 가지 모두가 일어나야만 올바른 인식이 일어난다고 주                          장함).

                        “變謂識體 轉似二分 相見俱依自證起故 依斯二分 施設我                           法”(成唯識論 권제1 ; 大正藏 31ㆍ1ㆍ上~中)

    4) 증자증분(證自證分) ;  자증분의 인식작용을 증명하는 또 다른 주관심을 말                             한다.

                             자증분과는 서로 증지(證知)하는 작용이 있다.

                             제3중(第三重)의 인식작용이라고도 한다.

                             (護法은 위의 네 가지를 모두 주장함)


                         ※ 종합적으로 이러한 주장들을 가리켜서 안(安), 난(難),                             진(陣), 호(護)의 “1, 2, 3, 4”라고 한다.

                           “三藏云 安慧唯立一自證分 火辨親勝唯立相見 此除彼三                             除師共釋 護法親光唯立四分 且依共許 陳那三分 第三分                             內攝第四故”(韓國佛敎全書 3ㆍ489ㆍ下~490ㆍ上)




󰇷 3류경설(三類境說)

      우리가 인식하는 객관에 관하여 상세하게 살핀 이론이다.

      4분설 중에서 상분(相分)에 관해서만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인식주관의 소연경(所緣境)인 객관의 종류와 그 성질을 논명한 것이다.

      경계, 즉 인식대상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어서 고찰한 것이다.

      인식대상을 그 성질로 보아 셋으로 나눈 것.


    1) 성경(性境) ;  능연(能緣)인 주관심이 소연(所緣)인 대상을 오류 없이 인식하                    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관과 다른 종자에서 발생하나 주관심의 선악에 좌우되                    지 않고 계계(界繫)를 달리해서 인식되는 진실한 대상을 말한다.

                    인식대상으로서의 실재성(實在性 ; 本質)을 가진 것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인 5관(五官 ; 根)에 의하여 비추어 오는 것을                    5식(五識)이 대상으로하여 인식하는 객관세계를 말한다.

                    인식대상을 대상 그대로 사려분별 없이 인식하는 것을 말한                     다.

                    제8 아뢰야식의 상분을 성경(性境)이라고 한다.

    2) 독영경(獨影境) ;  인식대상이 견분의 분별력에 의하여 잘못된 영상(影像)이                         나타나는 것(龜毛, 兎角 등)을 말한다.

                        인식대상의 본질이 아니고, 능연인 주관심에 의하여 여환                         허가(如幻虛假)한 영상만이 독기(獨起)하는 경계(눈병 난                          사람의 앞에 보이는 경계)를 말한다.

                        우리들의 인식대상은 대상이나 그 실제성을 소유하지 못                         한 대상[幻覺 등]을 가리킨다.

                         주관심이 단독으로 현출(現出 ; 제6 의식의 단독활동)한                         환영(幻影) 등이다.


    3) 대질경(帶質境) ;  견분의 분별력에 의하여 본질과 계합(契合)하지 않는 영                         상을 반연(攀緣)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性境)과 독영경(獨影境)과의 중간적인 존재이다.

                         본질을 휴대(携帶)하고 있으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대                         상을 말한다.    

                         제7식이 제8식의 견분을 연취하여 이를 ‘아’다 ‘법’이다라                         고 상분(相分)을 일으키는 것[獨影]을 가리킨다.

                         성경과 독영경의 양 쪽의 성질[本質과 幻覺]을 다 겸유                         하고 있는 대상을 말한다.

                         제6 의식이 과거를 추상해서 인식할 때에 나타나는 대상                         (例 ; 새끼를 뱀으로 잘못 보는 것. 새끼인 본질은 있으나                         주관심이 잘못 인식한 뱀은 帶質境에 속한다)을 말한다.




※인식활동과 관련설


(認識主體) (認識客體)

前五識등

第八識 ∘四緣說(諸識)        ∘五心說

       ∘自相․共相緣(前六識)∘三類境說∘三量說∘三自性說∘三無性說

                                       ∘三分別說

∘四分說


전오식(신)

제육의식                 제팔아뢰야식

제칠말나식                종자생종자

심 제팔아뢰야식           (잠재의식)

(심․종자․인상)


                           ※ 唯心偈(60권 華嚴經 권제10)

                              “心如工畵師 畵種種五陰 一切世間中 無法而不造 如                                 心佛亦爾 如佛衆生然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 三國遺事

                              “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龕墳不二(觸髏不二)”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이 법은 물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정신적인 것도 아니어서 이들과 서로 상응하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이를 비색비심불상응행법(非色非心不相應行法)이라고 하면서도 오히려 실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종류의 법은 심왕법과 심왕소유의 법 및 색법과 서로 상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불상응(不相應)이란 불상사(不相似)와 같은 의미로서 색법은 변화와 질애(質碍)의 것이고, 심왕법과 심소유법은 외계의 사물을 보고 이를 생각하는 마음인 이른바 연려(緣慮)적인 것으로서 불상응행법은 이러한 색이나 심법과 불상사하기 때문에 불상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行)이란 항상 변화하여 생멸한다는 의미에서 천류(遷流)라고도 한다.

  소승에서는 이 불상응행법을 법체실유의 입장에서 역시 실유하는 불멸법이라고 주장하나 유식학에서는 마음과 그 심리작용 및 색법상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가립(假立)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불상응행법은 물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도 아닌[非色非心] 존재로써 색,     심, 심소의 작용상에 일시적으로 그 이름을 세운 것[삼분위상(三分位上)의 가립     적인 존재]을 말한다.

           ― 득(得), 명근(命根), 중동분(衆同分), 시(時), 수(數), 방(方) 등 24종                 [구사론에서는 14종만을 주장]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 몇 가지                만을 소개하여 보면,

                (1) 득(得)이란 포획(捕獲), 성취(成就) 내지는 불실(不失) 등의 의                    미로서 우리 중생들의 몸 가운데에 물질이나 마음 등 모든 것                     을 성취할 때에 그 성취의 작용에 ‘득’(得)이라는 명칭을 가립                     하는 것을 말한다.

                (2) 명근(命根)이란 생명을 머물러 유지시켜주는 것[住持]을 말하                    는 것으로서 곧 제8식을 일으킬 친인연의 종자가 앞 세대의 업                    력에 의하여 약간의 시간을 갖은 유정신으로 하여금 지속되는                     세력을 갖게 하나니, 이 세력에 의하여 약간의 나아갈 시간이                     제8식의 현행을 상속케 하여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주지결정(住                    持決定)하는 세력을 명근이라 한다.

                (3) 중동분(衆同分)이란 서로 비슷한 점을 말하는 것으로서 인생은                    인생끼리 상사(相似)한 바가 있고, 축생은 축생끼리 상사한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인생의 중동분이 있고, 축생은 축                    생의 중동분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4) 시(時)란 유위(有爲) 제법이 인과상속하여 단절되지 않는 분위                    에 가립된 것을 말한다. 시간이 실존해서 유위법이 생멸을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 유위법이 생멸을 계속함에 의하여 시간을 일                    시적으로 가립한 것이다[時無別體 依法而立].

                (5) 수(數)란 모든 것을 헤아린다는 의미로서 유위의 제법 하나하                    나의 차별에 가립된 것을 말한다.

                (6) 방(方)이란 처소를 나눈 뜻이니, 동서남북과 상하 등으로서 유                    위법의 인과가 상속하는 데는 어떠한 위치를 요하기 때문에 그                    위치의 구별에 의하여 이를 가립한 것이다[入無堂內 出無外].      2) 이 법은 색, 심, 심소와도 상응하지 않고, 또한 불상사(不相似)한 까닭에 불상     응행법(不相應行法)이라고 한다.

  3) 오직 제6 의식 소연의 경계로써 가사법(假似法)이라고 한다[無體假立의 존재].


  



3. 무위법


    이 현상계에서 생멸변화하는 유위법을 여의고서 독립적으로 자존하거나 항존불     멸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존재의 법성(法性)을 말하는 것으로써 일체 유위법의 소의처가 된다.

    유위법은 사상(事相)이요, 무위법은 이체(理體)로써 이에는 불생(不生), 불멸(不     滅), 무작용(無作用), 상주불멸(常住不滅), 평등(平等), 무차별(無差別) 등의 성질     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허망하지 않고 진실한 것이며, 쉽게 변이하지 않아 여상(如常)한 것이므     로 이를 또한 진여라고 한다.

    이는 부동(不動), 상수멸(想受滅), 허공(虛空) 및 택멸(擇滅) 등과는 이름만 다를     뿐 그 의미는 같다[異名同義].


    1) 허공(虛空) ;  허공은 무애로써 자성으로 삼나니, 장애가 없기 때문에 색이                      이 가운데서 자유자재로 활동한다(俱舍論 권1).

                     다른 것에 의하여 장애되지도 않고, 또 다른 것을 장애하지                     도 않으면서 오히려 일체만유를 능히 포용하여 자유자재케 하                     는 상주불변하는 공간적인 실체를 허공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성향이 마치 진리나 진여와 같기 때문에 허공을 이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2) 택멸(擇滅) ;  택멸(擇滅)은 이계(離繫)로써 자성으로 삼나니, 모든 유위법                      이 계박(繫縛)을 멀리하여 해탈을 증득하면 그를 이름하여 택                     멸(擇滅)이라고 한다(俱舍論 권2).   

                     택(擇)이란 간택(簡擇)의 뜻으로써 무루의 지혜력을 말하는                      것이며, 멸(滅)이란 적멸(寂滅)의 뜻으로써 일체번뇌의 계박을                     여읜 열반의 상태를 말한다.

                     유선무루(唯善無漏)의 상주법을 가리킨다.

                     이는 한 마디로 간택력(簡擇力) 소득(所得)의 멸(滅)을 말한                     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에 이를 지혜의 힘에 의하여 없애서                      속박을 벗어났으므로 이계(離繫)라고도 한다.

    3) 비택멸(非擇滅) ;  본래부터 자성청정(自性淸淨)한 것을 말한다.

                        현상계의 유위법은 그 연이 결여되어 있을 적에는 불생                          (不生)하게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그대로 영원하                         게 되는데, 이 경우에 진리와 같이 그 성향이 항구불멸하                         므로 이를 진여의 세계에 귀속시키는 것이다[不生했으므로                         不滅하는 法].

                        무루지(無漏智)인 지혜력[擇力]에 의한 적멸(寂滅)이 아니                         다.

                        일체의 법은 원래 현재에 생기되기 전에는 모두가 미래위                         에 잡란(雜亂)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인데, 그것이 현재위에                         생기하는 데는 여러 가지의 생연(生緣)을 얻어서 비로소                          가능하며, 생기해서는 잠시 머물고는 즉시로 과거로 낙사                         (落射)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때에 생연을 못만난 법은 그                         대로 오랫도록 미래위에 머물 것이므로 이러한 것은 우리                         의 지혜조차도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이를 비택멸이라고                         한다.  

             현재에 생겨날 미래 잡란성(雜亂性)의 것으로써 만약에              그것이 생연을 얻지 못할 때는 그 불생(不生)한 법은 영구             히 미래위에 머물러서 현재전(現在前)할 수가 없으니, 이              러한 법을 가리켜서 연이 결여된 불생법(不生法)이라고 하             거나 필경의 불생법이라고 한다[例 ; 안식이 적색만을 주             시하고 있을 때는 기타의 청(靑), 황(黃) 등의 색은 영원히             현재에 나타나지 못하고 과거로 낙사(落射)되어버린다는              것].

             “常境은 無相이고, 常智는 無緣이다”(天台四敎儀)

     4) 부동(不動) ;  마음이 산란한 상태를 벗어나서 오직 평등심, 즉 사심(捨心)                      에 머물러 있기 때문[安定]에 이를 부동[不動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진리의 세계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를                       무위법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5) 상수멸(想受滅) ;  법집을 일으키는 제7식까지를 없앤 성자(聖者)가 상수                            (想受) 곧 외계의 사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受), 그 위                          에 상상(想像)을 더하는 정신작용과 고락 등을 느끼는 마                          음을 없앨 때에 나타나는 진여와 같은 경지를 말한다. 

    6) 진여(眞如) ;  진(眞)이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여(如)는 여                     상(如常)으로써 변화하지 않는 것을 나타냈다. 말하자면 이 진                     실은 어느 곳에서나 항상 그 본성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를                     진여라고 하는데, 이는 담연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다(眞謂眞實 顯非虛妄 如謂如常 表無變易 謂此眞實 於一切位                      常如其性 故曰眞如 卽是湛然 不虛妄義 ; 成唯識論 권제9).





                         4. 수행론



    󰇴 개 요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분이신 부처님은 그 깨달으신 진리의 말씀도 위대하지만, 남다른 자제력과 실천력으로 모법을 보이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종교라는 것은 그에 따른 교의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행ㆍ실천하는 것은 종교인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리하여 불가(佛家)에서도 이러한 것을 장려하기 위히여 이르기를, “만약에 아는 것[解]만이 있고 실천이 없으면 머리만 무겁고, 실천[行]만 있고 아는 것이 없으면 맹신에 빠지기 쉽다”고 함으로써, 건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해행합일(解行合一)할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의 행동은 마치 마차의 양쪽 바퀴와 같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다[行智具備 如車二輪].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들을 염두에 두고서 일선 선각자들은 여러 가지의 이론적인 내용과 실천덕목 등을 역설했는데, 그것을 보면, 첫째로 향상일구문(向上一句門)으로써 화두 등을 참구하여 견성성불하고 전미개오하는 등의 선(禪)을 통한 수행을 권장하며, 둘째는 염불왕생문(念佛往生門)으로써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등을 칭념하여 극락정토인 서방세계에 왕생코자 하거나 심적인 구제를 받고자 하는 것이고, 셋째는 의교수행문(依敎修行門)으로써 이는 부처님께서 교설하신 경률(經律) 등에 의거하여 그 이념을 일상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는 해행합일의 경지를 말하며, 마지막으로 넷째는 즉신성불문(卽身成佛門)이니, 이를테면 비밀다라니 등을 독송하여 대일여래가 소지하고 있는 위력으로 업장이 소멸되면, 이 몸이 바로 불덕(佛德)을 지녀서 그 자리에서 즉시에 성불할 수 있다는 수행문 등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면 앞의 세 가지 수행문은 현교(顯敎)계통의 방법을 말하는데, 이 가운데서도 세 번째의 의교수행문이 바로 유가유식(瑜伽唯識)불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수행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네 번째의 것은 밀교(密敎)의 수행문이지만, 어느 것이나 그 방법은 비록 다를지라도 궁극적인 목적인 성불하려는 의도는 같기 때문에 우열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만일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직 교의의 습득이나 전달에만 치중되어 있었다면, 이는 뿌리가 없는 나무와도 같아서 오래 지속하지를 못하고 쉽게 고사되었거나 변형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점들을 일찍부터 염려한 나머지 초기불교에서는 심성본정(心性本淨)설에 의거하여 객진번뇌나 잡념 등을 제거하는 좌선법과 삼십 칠 조도품(三十七助道品) 등의 수행이 유행하였으며, 부파불교 중의 대중부 계통에서는 부처님을 초인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존재로 여기는 반면에 상좌부 중에서도 특히 설일체유부에서는 이를 인간적이요, 현실적인 존재로 인식하면서 방편위(方便位), 견도위(見道位), 수도위(修道位) 및 무학위(無學位) 등 네 가지의 수행법에서 이를 닦는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한편 소승불교에서는 최고의 목표인 아라한(阿羅漢)이 되기 위하여 4향(向) 4과(果)를 닦는 것을 그들의 최대목표로 삼았으며, 대승불교에서는 이들 방법이 보다 다양해져서 참선이나 염불, 삼매, 유가 등을 닦아 깨달은 사람, 즉 불타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유가행파(瑜伽行派)에서는 어떤 내용을 가지고 실천에 임하였는가 하면, 유가(瑜伽 ; Yoga)에 관한 체험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것이 유식사상(唯識思想)이기 때문에 유가와 유식은 서로 필연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유가라는 말은 처음으로 이 학파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고, 인도에서 일찍부터 수행자들이 행하던 정신통일을 위한 실수법(實修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즉 원래 Yoga란 말[馬]에 멍에(Yoke)를 씌우듯이 여러 가지의 것들을 잘 짜맞추어서 완성한다는 뜻으로써 여기에서는 산만한 정신을 한 군데로 모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특수한 수행법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기원전 3ㆍ4세기경에 성립된 우파니샤드(Upaniṣad) 때부터라고 한다. 따라서 불교인 뿐만이 아니고 힌두교의 제파에서도 마음을 그 소연(所緣)에 안주시키는 이 요가를 해탈획득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유가사(瑜伽師 ; Yogācāra)라고 하는데, 이는 Yoga의 실천[行; Ācāra]이나 선정(禪定)의 수행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한역불전에서는 이를 수행, 수습행, 적정수행, 상응행, 관행 등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또한 범어의 특색으로써 요가의 실천자도 이와 같은 말로 나타내는데 소유복합어적인 용법에서 이 의미는 Yogin과 뜻이 비슷하며, 유가사는 이 용법의 역례(譯例)로 수행자, 여실행자, 관행자, 수관행자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유가사들은 일찍부터 불교계에서 당시의 번쇄철학과는 관계 없이 오로지 수행의 요체만을 설한 달마다라선경(達磨多羅禪經)이나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등을 아비달마시대에 저술하여 사용하였으며, 수행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시기나 장소를 막론하고 자신에게서 지혜의 내재와 함께 깨달을 가능성 등을 확신하는 마음가짐을 무엇 보다도 중요시했었다. 그리하여 원시불교의 경전에서는 비구들이 닦아야 할 요체로써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이 설해지는 가운데서도 외계의 대상에 향하는 감각을 제어하여 마음의 활동을 가라앉히는 지심(止心 ; Ṣamatha)과 고요한 마음에 그 대상의 영상을 뚜렷이 비추어주는 관찰(觀察 ; Vipaṡyanā) 등이 수행에 있어서 강조되었는데, 이것은 각각 삼학 중에서 정(定)과 혜(慧)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예는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에서도 그 성립이 늦은 부분일수록 요가에 관한 내용이 자주 나타나고 있는데, 조용히 앉아서 호흡을 조절하거나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과 같은 실수법에 관한 구체적인 서술이 보이고 있다. 즉 그 제6권에 수록된 유명한 종교시 바가바드 기타의 한 절을 인용해 보면,

 

    실수자(實修者 ; 요가행자)는 마을을 떠난 곳에서 홀로 심신을 제어해서 원망을    버리고 소유를 여의어서 자기를 수련해야 한다. 청정한 장소에서 스스로를 위해    …… 의력(意力)을 한 곳에 모아 마음과 감각의 활동을 제어하고 자기를 정화하    기 위해서 요가를 행해야 할 것이다.

    의향에 따라서 일어난 일체의 욕망을 남김 없이 버린 뒤에 감각의 덩어리를 사    고기관에 의해 골고루 통제하고, 견고하게 간직된 이성에 의해서 점차 편안함을    가져올 사고기관을 자기에게 전념하게 해서 어떤 것도 사념해서는 안된다.

 

라는 등으로 기술하고 있어서 철학적인 요가, 명상적인 요가, 자기에 관한 요가, 심술(心術)에 관한 요가, 기타 요가와의 합성어가 마하바라타의 철학적인 장(章)에서 많이 나타나며, 또한 양손을 위로 든 채, 한쪽 발로 장시간 계속해서 서 있는 부류의 고행도 요가로 간주되고, 요가의 설천에 의해서 얻어지는 여러 가지의 초자연력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들이 점차로 발전하여 대승불교시대에 오면 이에 관한 내용들이 체계적으로 정립되면서 유가와 유식이 점차로 분리되는 경향을 보인다. 말하자면 유가는 이론이 없는 실천을 말하고, 유식은 이를 논리적으로 정리한 교학사상을 가리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사이에 항상 이러한 이원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흔히는 혼용되어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즉 영상문(影像門)의 유식설에 있어서 유가선정(瑜伽禪定)의 수행을 닦은 경우에 마음 가운데에 여러 가지의 영상이 떠오르지만, 그것은 마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마음 밖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모든 것은 단지 마음의 표상(表象 ; Vijñapti : 識) 뿐이므로 이것을 유식(唯識 ; Vijñapti-mātra)이라 부르고, 대상[境]은 실재하지 않으므로 무경(無境)이라고 한다.

  이것은 선정의 체험에서 발상된 것이지만 선정의 경우에만 한한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인식활동 일반이 유식이며, 따라서 대상은 모두가 마음 가운데의 영상이라는 것으로서 유식설의 이론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인식활동 일반에 있어서도 이 사고방식은 선정의 체험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의 마음은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 혹은 깨달음에 도달한 마음으로서 아뢰야식의 관념이 미망한 마음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사실과 그 의의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단계를 거치면 유가는 유가대로의 바탕 위에서 그 자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에 관한 원리를 전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지관(止觀)에 의하여 유가행을 정리한 내용을 보면 해심밀경(解深密經)의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에서 기술하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비발사나(Vipaṡyanā ; 觀察)은 삼마타(Ṣamatha ; 止心)가 행    하는 바의 영상이며, 저와 이 마음은 마땅히 다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다름이 없다고 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저 영상은 오직 이    식(識)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나는 식의 소연(所緣)은 오직 식의 나타    난 바라고 설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저 소행(所行)의 영상이 이 마음과 다름이 없다면 어째서 이    마음이 도리어 이 마음을 본다고 합니까?

    선남자여, 이 가운데는 소법(少法)이 능히 소법을 본다는 것은 있지 않다. 그러    나 이 마음이 이와 같이 일어날 때에 이와 같은 영상의 나타남이 있느니라. 선남    자여, 잘 닦아진 청정한 거울의 표면에 의해서 형상을 연하여 본래의 형상을 보    고서 내가 지금 영상을 보았다고 말하고, 또 형상을 떠나서 따로 소행의 영상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유정의 자정이 머물러서 색(色) 등 마음 소행의 영상과    연한다면, 저와 이 마음은 또한 다름이 없습니까?

    선남자여, 또한 다름이 없다. 그러나 뭇 어리석은 사람들은 전도된 깨달음으로    말미암아서 모든 영상에서 여실하게 오직 이것은 식이라고 알지 못하고 전도된     해석을 하느니라.


고 해서 삼마타와 비살사나에 의하여 유가행을 정리하고 있지만, 삼마타는 무영상의 삼매, 비발사나는 유영상의 삼매에 있다고 설하고, 또한 비발사나는 심상(心相 ; Cittanimitta), 즉 마음의 움직임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의 대상을 짓는 것, 삼마타는 무간심(無間心 ; Ānantaryacitta), 즉 대상과 직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와 관의 쌍운에 의하여 지관의 대상이 되는 영상은 유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스스로 진여를 작의하는 것을 심일경성(心一境性)의 작의(作意) 곧 마음이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경지라고 한다. 이것이 유식성(唯識性)에로의 오입(悟入)으로서 유가행의 중핵이 된다.

  이와 같이 해심밀경의 분별유가품은 대승 유가행의 실천으로써 유식관법을 처음으로 표명한 경전으로 유명하다. 이렇게까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인도의 일부 사상가들과 소승불교도 중에서도 북인도의 유부계(有部系)가 정신통일을 위한 실수법으로서 유가를 실천해 왔기 때문이며, 그 후 이 사람들이 점차로 유가에서 얻은 체험 등을 중심으로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상당한 수준의 수행체계를 갖춘 전형적인 학파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만족치 않고 더욱 이를 발전시켜서 대승불교시대에 와서는 이에 관한 전문적인 논서까지 나올 정도로 성행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니, 그러한 구체적인 태도는 일찍이 유가사들이 용수의 대승적인 선관(禪觀), 즉 공성설(空性說) 등을 수용하여 보살지(菩薩地)를 성립시키고, 이러한 교의를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에서 받아 들여서 마침내 무착의 섭대승론(攝大乘論)에서 그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재래의 유가사들은 성문지(聲聞地)를 완성시켰는데, 이는 앞에서 살펴 본 해심밀경 중의 분별유가품으로 그 자리를 옮겨서 주요사상으로 기술되고 있다.

  이렇게 대승불교의 경전상에서 유가행에 관한 내용을 검토하다 보면, 마지막으로 섭렵하게 되는 전거가 바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 Yogācārabhūmi)이다. 여기에서는 우리 중생들이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실천과정을 17단계[地]로 나누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보살들이 수습의 정도에 따라서 거치는 10지의 단계가 10지경(十地經 ; 화엄경에 편입되어 10지품이 됨)에 잘 설명되어 있지만, 유가사지론에서는 이러한 보살 뿐만이 아니라 독각(獨覺)과 성문(聲聞) 내지는 일반인들의 수행경험까지도 포함해서 실천체계를 조직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방대한 논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논서는 유가에서 설하는 보살지가 대승불교사상을 망라하고 있다는 이른바 일곱 가지의 성질[七大性], 즉 법(法)과 발심(發心), 승해(勝解), 증상의락(增上意樂), 자량(資糧), 시(時) 및 원증(圓證) 등과 상응하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사상이 반야의 발취(發趣)대승이나 화엄의 보살 10지에 관한 설상(說相)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삼승에 두루 통한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유가사지론에 설해지고 있는 실천법을 알아 보면, 우선 지관법의 수행에 의하여 치유될 수 있는 다섯 가지의 번뇌, 즉 5개[五蓋ㆍ五障 ; 탐욕(貪慾)ㆍ진에(瞋恚)ㆍ도거(掉擧)ㆍ혼침(惛沈)ㆍ의심(疑心)] 중에서 탐욕과 진에와 도거를 없애려면 먼저 9종의 수행으로 마음을 안주시키고 난 후에 지(止)에 대치되는 것을 버리며, 혼침과 의심을 없애는 방법으로는 6종으로 일을 분석하여 이치대로 마음을 닦아 관법에 대치되는 것을 버리면 능히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9종의 수행법, 즉 마음이 선정에 머무는 9가지의 경우란 어떤 것인가 하면, ① 내주(內住)란 외부에 있는 일체 대상을 소섭하여 묶어두어 산란치 않는 것을 말하고, ② 등주(等住)란 전 단계에서 아직도 미세한 번뇌를 소멸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보다 안정시켜서 청정한 상태가 지속되도록 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어 ③ 안주(安住)란 마음이 비록 평등하게 머문다고 할지라도 외부의 산란함으로 말미암아서 생각을 잃어버릴 수 있으므로 이를 마음 속에 평온하게 두는 것을 말하고, ④ 근주(近住)란 이 같이 머문 마음이 자주 뜻을 지어 먼 밖에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이를 이렇게 부르며, ⑤ 조순(調順)이란 마음이 여러 가지 내외의 형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진리에 순응해서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조순이라고 하며, ⑥ 적정(寂靜)이란 수번뇌 등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흔들지 않는 것을 말하고, ⑦ 최극적정(最極寂靜)이란 실념(失念)이 발생하여 심사(尋伺)와 수번뇌 등이 단절되거나 추방되므로 해서 가장 적정한 경지를 맛볼 수 있음을 가리키고, ⑧ 전주일취(專注一趣)의 단계란 수행을 많이 하여 지관과 지혜가 동시에 나타나는 선정을 가리키고, 끝으로 ⑨ 등지(等持)란 선정을 많이 닦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수행 없이도 산란함 등이 없어져서 마음이 항상 고르게 유지되므로 이와 같이 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논서에서 설명되고 있는 좌선법에 관하여 알아 보면, 좌선은 다섯 가지의 인연을 바르게 관찰하기 위하여 실시된다는 것으로써, ① 몸을 잘 수습하여 마음이 상쾌해지면 이와 같은 위의(威儀)가 최상이기 때문이며, ② 이러한 좌선법은 오래 지속이 되더라도 몸이 급히 피로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고, ③ 이 좌선법은 독특하여 외도 등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며, ④ 이 법은 모습이 근엄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신뢰를 낳게 하고, ⑤ 이는 부처와 그 제자들이 모두 이를 인정했기 때문에 현성들도 칭찬하는 수행법이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이익은 좌선법에 의하여 습득되지만, 그것을 실시할 때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마치 흙 속에서 생금을 도련(陶鍊)하는 심정으로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① 우선 더러움을 없애는 단련이요, ② 이어서 거두어들이는 단계요, 마지막으로 ③ 이를 알맞고 부드럽게 다루어서 생금만이 남게 하는 단계를 차례로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유식사상에 있어서의 유가행의 실천은 궁극적으로 중생이 가지고 있는 번뇌장과 소지장을 단멸하려는 보살도의 수행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 수행도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유식사상 등도 사실은 그 이념을 주의 깊게 고찰하여 보면 바로 우리 각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상용하고 있는 유식소변(唯識所變)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법을 유식관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유위무위(有爲無爲)의 일체제법상의 자상(自相)을 세 가지[三種自性]로 나누어서 밝힐 때에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것은 본래 허무한 것이라고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이를 점차로 다섯 번에 걸쳐서 거듭되는 관법으로 닦아 마침내 인식주체상의 형상까지도 환상과 같은 것이므로 이를 버리고서 오직 우리의 본성만을 그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오중유식관(五重唯識觀)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좀더 자세하게 설하면, 처음의 견허존실(遣虛存實) 유식관에서는 무위의 세계를 포함한 일체의 현상세계[五位百法]는 그 속성을 보면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의타기성(依他起性) 및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세 가지 성질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에서 의타기성의 것과 원성실성의 것은 진실한 것이므로 이를 존치(存置)하고, 변계소집의 것은 우리 범부들의 감정상의 소산이어서 허무한 것[情有理無]이므로 이를 제견(除遣)해아 함을 관하는 유식관을 말한다.

  다음으로 사람유순(捨濫留純) 유식관은 제1중(第一重)의 유식관에서 변계소집성의 것은 허망한 감정의 소산이기 때문에 이를 버리고 의타기성의 사물과 원성실성의 이치는 모두가 우리의 인식을 여의지 못한 진실한 것이므로 취했는데, 여기에서는 우리들이 잘못 인식하면 마음 밖에 사물이 별도로 있는 것으로 남혼(濫混)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버리고서[捨離] 순수한 마음만[唯識]을 유존(留存)시키는 관법을 말한다.

  세 번째는 제2중(第二重)의 유식관에서 내심의 순수함만을 취했으나 여기서는 더 나아가서 그 내심 중에서도 견분(見分 ; 主觀心)과 상분(相分 ; 客觀)은 능변의 본체인 자체분(自體分 ; 主觀 중의 主觀心)이 변한 바로써 지말적인 작용에 불과함으로 이를 수섭(收攝)하여 본체에 귀입(歸入)시키는 안목으로 마음을 관찰하라는 섭말귀본(攝末歸本) 유식관을 내세우고 있으며, 네 번째는 위의 제3중(第三重)의 유식관에서 마음의 근본체인 자체분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지말적인 것은 본체에 귀결시켰으나 이 자체분 중에도 심리작용인 심소법(心所法)은 그 세력이 은열(隱劣)함으로 수승한 심왕법(心王法)만을 대상으로 하여 한층 더 심오한 관법을 하여야만 올바른 수행이 된다는 의미에서 은열현승(隱劣顯勝) 유식관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제4중(第四重)의 유식관에서 심왕법의 세력은 어떠한 심소의 그것 보다도 뛰어남으로 이를 중심으로 관법을 행하여야 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심왕법도 자세하게 그 내면을 고찰해 보면 상용(相用)과 체성(體性)으로 구분되어 있으므로 순수한 유식관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상용을 버리고서 체성만을 증득하여 이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상증성(遣相證性) 유식관을 끝으로 주장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유식소변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관법의 대상으로 삼음에 있어서 보다 얕은 안목에서부터 점차로 깊은 곳에 이르는 점입심관(漸入深觀)의 수행법을 채택하여 5중(五重)으로 설한 것이 이 유식관이다.

  그렇지만 이상과 같이 유가유식학파에서 거론하고 있는 식론(識論) 등은 그 파명(派名)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두 전미개오를 위한 실천도인 유가행의 관심 하에서 설해져 공성(空性)에의 실현을 본래의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면 안되지만,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식론은 지식의 구조나 그 성립유래 및 작용의 장(場)으로써 일반 세간에 관계되는 것이지 식론 그것에서 직접으로 공성에의 오입(悟入)을 설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유식이론과 이를 실천하는 수행, 즉 유가행과의 사이에는 실제적으로 많은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서 이에 관한 대책이 주목되는 것이다.



   󰇵 수행의 단계


  1. 범부위(凡夫位)


★외범위(外凡位) ; 불교교리에 약간의 지혜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단계를 말한다.

    1) 소승 ; 3현위(三賢位) ; ⑴ 5정심(五停心) : ① 부정관(不淨觀), ② 자비관                                                       (慈悲觀), ③ 인연관(因緣觀),                                                    ④ 계분별관(界分別觀), ⑤수                                                     식관(數息觀)                                              ⑵ 별상념주위(別相念住位) : 身, 受, 心, 法(四                                                                念住).

                              ⑶ 총상념주위(總相念住位) : 사념주를 총괄해서                                                             관(觀)함.

    2) 대승 ; 10신위(十信位)

                

   

★내범위(內凡位) ; 불교교리에 약간의 지혜가 있는 사람의 단계를 말한다.

    1) 소승 ; 4선근위(四善根位 ; 5위중 加行位)

    2) 대승 ; 7방편위[七方便位 ; 四善根位(順決擇分) + 三賢位(順解脫分) : 十住,                                                         十行, 十廻向(三十心)〕    2. 성자위(聖者位)

    1) 소승 ; 4향4과(四向四果)

    2) 대승 ; 10지(十地)〔⑴ 初地 ; 歡喜地, 見道(性)位, 通達位〕

     * 무루의 지혜가 일어나는 위치이다.



       * 4선근위(四善根位)


    유식계위의 5위중 가행위에 해당되는 위치를 말한다.

    설일체유부 등에서 처음으로 무루의 지혜가 생겨서 4제(四諦)의 이치를 명확하    게 보는 자리를 견도라고 하는데, 견도에 들어가기 직전의 위치를 4선근위라고     한다.

    이 위치에서 닦는 유루의 선근은 무루의 성도(聖道), 즉 결택(決擇)의 일부가     된다.

    견도를 이끌어 들이는[順益] 작용이 있으므로 순결택분(順決擇分)이라고 한다.

    이 자리를 내범위(內凡位)라고 하며, 대승에서는 이 위치와 3현위(三賢位)를 합    쳐서 7방편위(七方便位)라고 한다.


    ⑴ 난위(煖位) ;  견도의 무루혜(無漏慧)인 불을 가까이 하여 그 앞에서 불을                      쪼임으로써 유루 중에서 선근(善根)이 나타나는 위치를 말한다.

                     대상에게 부여된 갖가지 명칭 등은 단지 가정에 지나지 않는                     다고 이해하는 단계이다.

    ⑵ 정위(頂位) ;   불안정한 선근 가운데서 최상의 선근이 일어나는 제일 높은                     위치인데, 이 위치에서부터 선근이 부단한다고 한다.

                     명칭에 대응되는 대상은 환상과 같아서 실체가 없다고 이해                     하는 위치이다.

    ⑶ 인위(忍位) ;   선근이 확정되어서 움직이지 않는 위치를 말한다.

                     외계 대상에 관한 집착과 객체에의 집착을 완전히 벗어난 위                      치를 말한다[마음에만 안주하는 것 ⇒ 주관].

    ⑷ 세제일법위(世第一法位) ; 세간, 즉 유루법의 세계 중에서 최상의 선근을 일                                어나는 위치를 말한다.

                                이 단계의 다음은 성자의 경지인 십지(十地) 중                                의 초지(初地 ; 歡喜地, 通達位)에 들어간다.

                                인식대상을 파악하는 마음도 또한 비실제적인 것                                이라는 이치를 체득하는 위치를 말한다[주객의 두                                집착을 떠남].


                               ※ “四善根位 煖終不斷善 頂必至涅槃 忍不墮惡道                                     世第一離生”(俱舍ㆍ婆娑論頌)

               



    󰇶 5성각별설(五姓各別說)


  우리 인간세계의 현실을 자세하게 고찰하여 보면, 일체 유정이 다 평등치 않다는 견해[有爲種子差別說]로써 3승은 진실이고, 1승은 방편이라는 설을 내세우며, 무시이래로 법이자연(法爾自然)하여 5종성(五種姓)이 있으니, 이는 아뢰야식 중에 간직되어 있는 무루종자(無漏種子)의 유무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설이다[無爲無作用說 ; 眞如凝然說].

 

    1) 보살종성(菩薩種姓) ; 수행을 하면 불과(佛果)를 증득할 수 있는 종성(種性)                            을 말한다.

    2) 독각종성(獨覺種姓) ; 벽지불과(辟支佛果 ; 緣覺)을 증득할 수 있는 종성을                             말한다.

    3) 성문종성(聲聞種姓) ;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할 수 있는 종성을 가리킨                            다.

    4) 부정종성(不定種姓) ;  2승을 걸쳐서 대승에 전향하여 불과를 증득할 수 있                            지만,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는 종성을 말한다.

    5) 무성종성(無性種姓) ;  3승 등의 무루지(無漏智)를 일으키지 못하여 3계윤회                            (三界輪廻)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무불성종성(無佛性                            種姓)을 가리킨다.


                          ※ 단선천제(斷善闡提 ; lcchantika : 斷善, 信不具足)

                             대비천제(大悲闡提 ; 菩薩闡提라고도 함)


    

  󰇷 전식득지설(轉識得智說)


  유식사상에서도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간직하고 있는 모든 알음알이를 버리든지 아니면 이를 전환해서 지혜를 얻는 작업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수행을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한다.

  그 구체적인 것은 우리들이 제8식(諸八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이에 걸맞는 지혜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1) 성소작지(成所作智) ; 유루의 전5식을 전회(轉廻)하여 얻는 무루지(無漏                                 智)로써 모든 중생들을 돕는데 필요한 온갖 변화와                               동작 등을 두루 갖추어 성취완성했으므로 이와 같이                              부른다.

                             전5식이 무루종자를 의지하여 전환(轉換)하여 얻은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부른다.

    2) 묘관찰지(妙觀察智) ;  제6 의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로써 일체의 대상을                              장애없이 관찰하고, 자재(自在)하게 설법하여 온갖 의                             심을 끊었으므로 이와 같이 일컫는다.

                             보살의 초지(初地)에서 얻어져 묘각(妙覺)을 관찰하                             는 지혜를 말한다.

    3) 평등성지(平等性智) ;  제7 말나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로써 자타와 피차가                             평등함을 깨달아서 대자비와 상응하는 평등한 성품의                             지혜가 얻어지는 것을 말한다.

                             여래의 구경지(究竟地)에 이르러서 아집 등이 무아                             로 변화되어 자타가 평등함을 나타내는 지혜를 말한                              다.

    4) 대원경지(大圓鏡智) ;  유루의 제8 아뢰야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로써 맑은                             거울에 물건을 비친 것처럼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나                             타나므로 이와 같이 부른다[圓滿하고 분명한 지혜].

                             대원경지와 무구식(無垢識), 즉 청정식(淸淨識)은 동                             시에 일어난다[大圓無垢同時發].

                         ※ “心不起 猶如鏡面 能照萬像 心起 猶如鏡背 卽不能照”

 


    󰇸 오중유식관(五重唯識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유식소변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관법의 대상으로 삼음에 있어서 보다 얕은 안목에서부터 점차로 깊은 곳에 이르는 점입심관(漸入深觀)의 수행법을 채택하여 5중(五重)으로 설한 유식관법을 말한다.

  유식사상에 있어서의 유가행의 실천은 궁극적으로 중생이 가지고 있는 번뇌장과소지장을 단멸하려는 보살도의 수행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 수행도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유식사상 등도 사실은 그 이념을 주의 깊게 고찰하여 보면 바로 우리 각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상용하고 있는 유식소변(唯識所變)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법을 유식관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유위무위의 일체제법상의 자상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밝힐 때도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것은 본래 허무한 것이라고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이를 점차로 다섯 번에 걸쳐서 거듭되는 관법으로 닦아 마침내 인식 주체상의 형상까지도 환상과 같은 것이므로 이를 버리고서 오직 우리의 본성만을 그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강조한 수행법이라고 하겠다. 


      ①견허존실(遣虛存實) 유식관

  무위의 세계를 포함한 일체의 현상세계[五位百法]는 그 속성을 보면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의타기성(依他起性) 및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세 가지 성질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에서 의타기성의 것과 원성실성의 것은 진실한 것이므로 이를 존치(存置)하고, 변계소집의 것은 우리 범부들의 감정상의 소산이어서 허무한 것[情有理無]이므로 이를 제견(除遣)해야 한다는 것을 관하는 유식관을 말한다. 


      ②사람유순(捨濫留純) 유식관

  제1중(第一重)의 유식관에서 변계소집성의 것은 허망한 감정의 소산이기 때문에 이를 버리고 의타기성의 사물과 원성실성의 이치는 모두가 우리의 인식을 여의지 못한 진실한 것이므로 취했는데, 여기에서는 우리들이 잘못 인식하면 마음 밖에 사물이 별도로 있는 것으로 남혼(濫混)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버리고서[捨離] 순수한 마음만[唯識]을 유존(留存)시켜야 한다는 관법을 말한다.


      ③섭말귀본(攝末歸本) 유식관

  제2중(第二重)의 유식관에서 내심의 순수함만을 취했으나 여기서는 더 나아가서 그 내심 중에서도 견분(見分 ; 主觀心)과 상분(相分 ; 客觀)은 능변의 본체인 자체분(自體分 ; 主觀중의 主觀心)이 변한 것인 바, 이는 지말적인 작용에 불과함으로 이 자체분을 수섭(收攝)하여 본체에 귀입시키는 안목으로 마음을 관찰하라는 섭말귀본(攝末歸本) 유식관을 내세우는 것이 이 단계의 관법이다.

  

      ④은열현승(隱劣顯勝) 유식관

  제3중(第三重)의 유식관에서 마음의 근본체인 자체분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지말적인 것은 본체에 귀결시켰으나 이 자체분 중에도 심리작용인 심소법(心所法)은 그 세력이 은열(隱劣)함으로 수승한 심왕법만을 대상으로 하여 한층더 심오한 관법을 하여야만 올바른 수행이 된다는 의미에서 이를 은열현승(隱劣顯勝)의 유식관이라고 한다.


      ⑤견상증성(遣相證性) 유식관

  제4중(第四重)의 유식관에서 심왕법의 세력은 어떠한 심소의 그것 보다도 뛰어남으로 이를 중심으로 관법을 행하여야 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심왕법도 자세하게 그 내면을 고찰해 보면 상용(常用)과 체성으로 구분되어 있으므로 순수한 유식관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상용을 버리고서 체성만을 증득하여 이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상증성(遣相證性)의 유식관을 주장하는 것이 이 관법이다.

   



    󰇹 5위설(五位說)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수도의 다섯 단계를 말한다.


    1) 자량위(資糧位) ;  부처님의 교법을 깊이 신해하고 대승의 순해탈분(順解脫                         分 ; 30心, 3賢位)을 닦는 단계를 말한다.

                         깨달음의 기초가 되는 복덕과 지혜를 쌓기 위하여 출발                         하는 단계를 말한다.

    2) 가행위(加行位) ;  점차로 능취와 소취를 없애고 진실한 견해를 일으켜서 대                         승의 순결택분(順決擇分 ; 4善根位, 4加行位)을 닦는 단계                         를 말한다.

    3) 통달위(通達位) ;  대상이 있는 그대로 모든 존재의 성상(性相)을 통달한 보                         살들이 머무는 바의 위치[見道, 初地, 聖者位 ; 法界直證의                         경지]를 가리킨다.

    4) 수습위(修習位) ; 소견의 이치[通達位]와 같이 자주자주 이를 수습하여                               나머지의 장애를 없애려는 보살들의 수도를 말한다.

                         끊임없는 수도와 무분별지(無分別智)에 의하여 아뢰야식                          중에 있는 번뇌장(煩惱藏)과 주객체의 잠재력(潛在力)을                           함께 단절하고, 의지할 바를 전환하여 불지(佛地)인 무분                          별지를 직증(直證)하는 단계(二地 ⇒ 十地)를 말한다.

    5) 구경위(究竟位) ;  최상의 정등보리(正等菩提)에 머무는 경지를 말한다. 


<부록>  

                 유식 삼십송과 그 해설




   서 분(序分)

         稽首唯識性        유식의 성품과, 부처님과 보살과 같은

         滿分淸淨者        청정한 성인에게 머리 숙여 절하옵나니,

         我今釋彼說        제가 지금 세친 보살의 이 30송을 해설해서

         利樂諸有情        모든 중생들을 다 이익 되게 하렵니다.

   

   정종분(正宗分)

     (1) 由假說我法        자아와 법체를 가설함으로 말미암아

        有種種相轉         갖가지 모양의 전전함이 있으니

        彼依識所變         저는 의식의 변화에 의지하나니라.

        此能變唯三         이 능변식에는 오직 세 가지가 있으니


     (2) 謂異熟思量        이숙식과 사량식과

        及了別境識         요별경식을 말한다.

        初阿賴耶識         처음은 아뢰야식이며,

        異熟一切種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

   

     (3) 不可知執受        이는 가히 알 수 없는 심종자와 유근신과

         處了常與觸        기세간을 요별하며, 항상 감촉과

         作意受想思        의지와 감정과 상상력과 생각과

         相應唯捨受        상응하며, 오직 불고불락수이니라.

   

     (4) 是無覆無記        이는 무부무기성이고,

         觸等亦如是        감촉 등도 또한 그러하니라.

         恒轉如瀑流        항상 유전함이 마치 폭포수의 흐름과 같으나

         阿羅漢位捨        아라한의 위치에서는 버려지느니라.

   

     (5) 次第二能變        다음은 제2 능변식인데,

        是識名末那         이 식은 말나라고 이름하니라.

        依彼轉緣彼         이는 아뢰야에 의지하여 유전하고, 저를 반연하며,

        思量爲性相         사량함을 그 자성과 행상으로 삼는다.

   

     (6) 四煩惱常俱        네 가지의 번뇌와 항상 같이 하는데,

         爲我癡我見        이는 아치와 아견과

         並我愛我慢        아애와 아만을 말한다.

         及餘觸等俱        또한 감촉 등과도 같이 하며,

   

     (7) 有覆無記攝        유부무기성에 소섭된다.

         隨所生所繫        이는 아뢰야식이 생긴 바에 따라서 그에 속박된다.

         阿羅漢滅定        아라한과 멸진정과

         出世道無有        출세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8) 次第三能變        다음으로 제3 능변식에는

         次別有六種        차별이 6종이 있으며,

         了境爲性相        경계를 요별하는 것으로 그 자성과 행상으로 삼고,

         善不善俱非        선성과 악성 및 무기에 다 통한다.

   

     (9) 此心所遍行        이 심소는 변행과

         別境善煩惱        별경과 선과 번뇌와

         隨煩惱不定        수번뇌와 부정 등 6위 심소이며,

         皆三受相應        모두 세 가지의 감각작용과 상응하나니라.

  

    (10) 初遍行觸等        처음의 변행심소는 감촉 등이요,

         次別境謂欲        다음의 별경심소에는 욕구와

         勝解念定慧        승해와 기억과 선정과 지혜를 말하나

         所緣事不同        인식대상은 같지 않다.

  

    (11) 善謂信慙愧        선심소는 믿음과 뉘우침과 부끄러움과

         無貪等三根        무탐 등 세 가지 선근과

         勤安不放逸        근면과 경안과 불방일과

         行捨及不害        행사 및 불해를 말한다.

  

    (12) 煩惱謂貪瞋        번뇌심소는 탐욕과 성냄과

         痴慢疑惡見        어리석음과 자만과 의심과 악견을 말한다.

         隨煩惱謂忿        수번뇌심소는 분노와

         恨覆惱嫉慳        원한과 덮음과 고뇌와 질투와 인색함과

     

    (13) 誑諂與害憍        거짓과 아첨과 방해와 교만함과

         無慙及無愧        무참과 무괴와

         掉擧與惛沈        도거와 혼침과

         不信並懈怠        불신과 해태와

   

    (14) 放逸及失念        방일과 실념과

         散亂不正知        산란과 부정지이니라.

         不定謂悔眠        부정심소는 뉘우침과 수면과

         尋伺二各二        심구와 사찰인데, 각각 염오와 청정 둘에 통한다.

  

    (15) 依止根本識        근본식에 의지하며,

         五識隨緣現        5식과는 인연에 따라서 나타나는데

         或俱或不俱        어느 때는 같이 하나 어느 때는 같이 하지 않음이

         如濤波依水        마치 파도가 물에 의지함과 같다.

  

    (16) 意識常現起        의식은 항상 나타나지만

         除生無想天        무상천과

         及無心二定        무상정과 멸진정의 2정과

         睡眠與悶絶        극수면과 민절 때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17) 是諸識轉變        이 모든 의식들이 전변하여

         分別所分別        분별하고 분별되는 바

         由此彼皆無        이 때문에 저 실성은 다 없는 것이다.

         故一切唯識        그러므로 일체는 유식이라고 한다.

  


    (18) 由一切種識        일체종자식이

         如是如是變        이와 같이 전변하고,

         以展轉力故        이러한 전전력 때문에

         彼彼分別生        저와 저의 분별이 생겨나느니라.

  

    (19) 由諸業習氣        모든 업의 습기와

         二取習氣俱        능취와 소취의 습기가 함께 함으로 말미암아

         前異熟旣盡        앞의 이숙식이 다하면

         復生餘異熟        다시 다른 이숙식이 생겨나느니라.

   

    (20) 由彼彼遍計        저와 저의 변계로 말미암아

         遍計種種物        갖가지의 것이 변계되나니

         此遍計所執        이 변계소집성의 것은

         自性無所有        자성이 없는 것이다.

  

    (21) 依他起自性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의 자성은

         分別緣所生        분별을 인연으로 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圓成實於彼        원성실성은 저 변계소집성에서

         常遠離前性        항상 멀리 여읜 성품이니

  

    (22) 故此與依他        이것과 의타기성은

         非異非不異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如無常等性        마치 무상 등의 성품과 같나니라.

         非不見此彼        이 원성실을 알지 못하면 저 의타기도 알 수 없다.

  

    (23) 卽依此三性        이 세 가지의 자성에 의지하여

         立彼三無性        저 세 가지의 무자성이 건립된다.

         故佛密意說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밀의로써

         一切法無性        일체법은 모두 자성이 없다고 설하시느니라.

  

    (24) 初卽相無性        처음의 것에서는 형상은 자성이 없다는 것이고,

         次無自然性        다음에서는 자연성이 없다는 것이며.

         後由遠離前        나중은 앞에서

         所執我法性        집착한 자아와 법에서 멀리 떠난 바의 실성이니라.

   

    (25) 此諸法勝義        이 모든 법의 승의이며,

         亦卽是眞如        또한 진여이다.

         常如其性故        항상하고 평등함이 그 성품이므로

         卽唯識實性        이는 곧 유식의 진실한 성품되느니라.

  

    (26) 乃至未起識        혹 의식을 일으켜서

         求住唯識性        유식의 성품에 머물지 못하면

         於二取睡眠        능취와 소취의 수면을

         猶未能伏滅        능히 복멸하지 못한 것과 같느니라.

  

    (27) 現前立少物        바로 눈 앞에 작은 것을 건립하여

         謂是唯識性        이를 유식의 실성이라고 한다면

         以有所得故        얻어지는 바가 있기 때문에

         非實住唯識        진실로 유식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28) 若時於所緣        어느 때에 경계에서

         智都無所得        지혜가 전혀 얻는 바가 없다면

         爾時住唯識        그 때에 유식성에 머무는 것이 되나니

         離二取相故        능취와 소취의 형상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29) 無得不思議        이는 증득할 수 없고, 불가사의하며,

         時出世間智        세간의 지혜를 벗어난 것이니라.

         捨二麤重故        두 가지의 추중한 번뇌를 없앴기 때문에

         便證得轉依        곧 열반을 증득한 것이다.

  

    (30) 此卽無漏界        이것이 곧 무루의 세계이며,

         不思議善常        불가사의며, 선이며, 상주이며,

         安樂解脫身        안락이며, 해탈신이며,

         大牟尼名法        대모니라는 법신이니라.

     


   유통분(流通分)

     已依聖敎及定理        앞에서 성스러운 가르침과 정리에 의지하여

     分別唯識性相義        유식의 자성과 행상의 뜻을 분별하였나이다.

     所獲功德施群生        얻는 바의 공덕을 모든 중생들에게 베푸노니

     願共速登無上覺        모두 속히 최상의 정각에 오르기를 원하옵나이다.


              

불교교리의 발달과정


                                                  <문 헌>

     1) 초기불교                            * 북전(한역)

                         ․4아함(Āgama ; 傳, 敎)경 및                                                                         제종의 율장(십송율, 사분율 등)

                                            * 남전

                                              ․5니가야(nikāya ; 部, 類)

                                              ․비나야(vinaya ; 調伏, 戒律)


     2) 부파불교                              ․18부론

                                              ․부집이론(部執異論)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3) 소승불교                    ․발지신론(發智身論)․6족론(六足論) ⇒ 7론

                     ․아비달마발지대비바사론(阿毘達磨發智大毘婆沙論)<200권>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綱要書>

                            ∘실유사상(實有思想)을 주장 ; ①삼세실유(三世實有)

                                                         ②법체항유(法體恒有)

                             ※ 그 이유 ; ① 성취․불성취론(成就․不成就論)

                                          ② 작용론(作用論)


     4) 대승불교


      ∘공사상(空思想)(초기 대승)                ․반야경류(般若經類)

        [용수(龍樹) ; 불멸 후 600년경]           * 중관사상(中觀思想)

                                                  ① 일체개공(一切皆空)

                                                  ② 팔부중도(八不中道)


      ∘유식사상(唯識思想)(중기 대승)               ․해심밀경(解深密經)

      [무착(無着)과 세친(世親) ; 불멸 후 900년경]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성유식론(成唯識論)


      ∘밀교사상(密敎思想)(후기 대승)            ․대일경(大日經) 둥 밀교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