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단련설(禪門鍛鍊說)

선문단련설(禪門鍛鍊說)

通達無我法者 2007. 2. 7. 13:38

선문단련설

                       회산계현 著 -연관 譯-

이런 좋은 책을 번역해주신 연관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禪法의 存亡이 바로 이 책에서 지적한 바대로 실행되느냐, 되지 않느냐
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은 가히 회산스님의 사자후로서, 오늘날의 조실스님들에게 내리는 준엄한 경책과도 같은 법문입니다. -향산
-





禪門鍛鍊說 自序

단련설을 손자(孫武子)에게 빗댄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정도(正道)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권도(權道)로써 군사를 다룬다』고 한 노자(老子)의 말도 이를 잘 뒷받침해 주듯이, 불법 중에 지위를 맡고 있는 자도 마찬가지로 총림(叢林)을 다스리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이 하고, 기법을 써서 참선대중(參禪大衆)을 단련시키기를 군사를 다루듯 해야 한다.
권도와 정도가 서로 연관관계에 놓여 있는 것은 변경할 수 없는 이치이다.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신 것은 병법(兵法)의 종조(宗祖)로서, 서천 28대와 동토(東土)의 6대 조사가 비록 불법의 이치를 밝히기는 했지만 암암리에 손자나 오자(吳子)와 통한다.
망아지(馬祖스님)가 천하를 밟아 죽인 것은 천자(天子)의 군대가 진영을 바꾼 것과 같다고 할 것이요, 그 후에 황벽, 임제, 목주, 운문, 분양, 자명, 동산, 원오 등의 조사들은 허실(虛實)과 살활(殺活)로써 순수하게 전략을 폈으며, 대혜에 이르러서는 죽비만을 잡고 크게 기습작전을 펼쳐 가장 많은 인재를 얻었던 것이다.
오가(五家-임제종, 조동, 위앙, 운문, 법안)가 법을 세워서 제각기 가풍을 세웠으니, 이는 병법이 엄정하여 도저히 파괴할 수 없는 격이었고, 병법이 완전했었다.
원나라로부터 명나라 중엽까지는 단련법이 피폐하여 찬 재와 고목(枯木) 같은 선(禪)으로 사람들을 생사의 구렁텅이에 빠뜨려 죽였다.
다행히 천동 오(密巖圓悟) 노인이 석자의 법검(法劍)을 빼들고 종문의 강토를 개척했으며, 삼봉 장 노인이 이를 이어 종지를 회복하여 다시 죽비를 들었다. 그리하여 단련법이 다시 행해져서 진(陣)을 함락하고 칼을 맞받아치면서 많은 용상(龍象)을 배출하였다.
영은사의 우리 스승님(具德화상)께서 다시 방편을 더하여 다방면으로 공격해 들어갔으니, 각양각색의 기묘한 계략을 번갈아 드러내어 병서(兵書)가 더욱 완비하게 되었다.
내가 전에 판수(板首)로 있을 적에 자못 그 방법을 깨달았고, 광산(여산 향로봉 유애사)에 거처를 정했다가 근래에는 운거산에 머물고 있는데, 맨주먹의 졸오(卒伍)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두찬(杜撰)임을 사양치 않고, 무리를 따라 행진하거나 치고 달아나며, 사로잡아 죽이는 방법을 처음으로 개발하여 일시에 큰 효과를 거두었다. 비록 전장에 임하여 고전을 겪기도 했으나 많은 포로를 사로잡아 개선가를 불렀던 것이다.
용병에 있어서 권도를 무시하는 부작용은 매우 심각하다. 이로 인하여 사람의 근기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근기가 날카롭거나 둔하거나를 막론하고 만약 단련법을 얻는다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낡은 방법에 집착하여 험준한 길에는 아예 손을 대려 하지 않으니, 비록 인재가 있더라도 그대로 내팽개치고 있어 슬프기 그지없었다.
그리하여 감히 감추어 두지 않고 ≪단련설≫을 저술하여 종문(宗門)에 유포하게 되었으나, 노사(老師)나 숙납(宿衲)들은 비록 이 글을 얻을지라도 필시 실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실행하지 않을 뿐이랴, 도리어 비웃을 것이다.
처음으로 곡록(曲 )에 앉는 자는, 그 몸이 강건하고 그 기백이 맹리할 것이므로, 이 병부(兵符)를 의지하여 더욱 부지런히 조련하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을 깨닫게 하여 대법(大法)의 장수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바라는 바는 삼현(三玄)의 창과 갑옷이 영원히 웅강하고, 오위(五位)의 깃발이 쓰러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를 알아줄 것과, 나를 허물할 것에 개의치 않는다. 비록 선문(禪門)의 손무자(孫武子)라해도 상관없다.
신축(1661) 정월 보름 雲居山 晦山僧 東吳의 願雲戒顯 적다.



禪門단련설

1. 굳게 서원을 세우고 고통을 참아야 한다.
무릇 장로인 자는 불조(佛祖)의 정위(正位)를 차지하였으니 반드시 불조의 가업을 이어가야 하고, 인천의 스승이 되었으니 응당 인천(人天)의 안목을 열어 주어야 한다.
인천의 안목이란 무엇인가? 불성이 바로 이것이다.
불조의 가업이란 무엇인가? 인재를 얻는 것이다.
장로가 되었으면서 중생에게 불성을 깨닫게 해주지 못한다면 이것은 이름을 도적질한 것이요, 정위를 차지했으면서 불조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다면 이는 지위를 훔진 것이다.
그러나 중생에게 불성을 깨닫게 해주려면 그 마음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중생의 마음을 자세히 헤아리고 살펴서 기지와 권모를 남김없이 발휘하지 않으면 중생의 불성을 깨닫게 하지 못한다.
불조를 위해서 인재를 양성하려면 그 몸이 괴로울 수밖에 없으니, 꾸준히 용맹스러우며 분발하고 힘써서 철저히 다루어 놓지 않으면 법문의 인재를 능히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장로는 반드시 먼저 큰 서원을 세운 후에 대기대용(大機大用)을 발휘하여야 한다.
서원이란 어떤 것인가? 처음으로 장로가 되었으면 반드시 용천(龍天)에 맹서하고 불조에 호소하되, 『만약 중생으로 하여금 불성을 깨닫게 할 수 있다면, 비록 살과 뼈를 갈고 정신을 피폐하게 하기를 마치 산을 깎아 길을 내듯이 하여 그 힘이 다하여 죽을지라도 그만 두지 않을 것이요, 만약 법문을 위하여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면, 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침식을 잊어서 마치 눈을 먹고, 털방석을 씹듯이 하여 그 고통을 무릅쓰면서 이런 일을 할지라도 결코 마다하지 않으리라』하는 것이다.
세간의 부모가 어진 자식을 얻고자 한다면 이에 앞서 덕을 닦고 선을 쌓으며 널리 숨은 덕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서 자식을 얻은 후에는 강보에 감싸고 어루만지면서 온 정성을 다해 돌보아주다가 차츰 성장한 무렵에는 스승을 맞이하여 예업(藝業)을 가르친다.
이렇게 수십년 동안 근고(勤苦)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인재를 얻게 되는 것이니, 그 마음씀이 역시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무신(武臣)이 변방에서 공명을 세우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몸을 잊어버려야 하고 골짜기에 내버려져야 하며 찬이슬을 무릅써야 하고 가시밭을 넘나들며, 무거운 갑옷을 입고 예리한 무기를 들며, 창과 방패를 베개하고, 깊이 불모의 땅에 들어가 몸소 전투를 치르며, 손톱이 갈라지고 피부가 터지며 온 몸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맞고서 만 번 죽었다가 한 번 살아난 후에야 비로소 조그마한 공명을 얻게 되는 것이니, 그 몸이 또한 괴롭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괴롭고 고통스러움이 이와 같으므로 당연히 사람들이 소문만 듣고도 달아나고 쳐다보기만 하고도 물러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금의 사람들이 끝내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꺼려하지 않았고, 불 속에 뛰어들면서도 사양치 않았던 것이니, 이 것은 도모하는 일이 크고 얻으려 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동시에 공을 이룸도 컸던 것이다.
더욱이 장로는 그의 도(道)가 삼계의 중생을 건지고 사생(四生)을 제도하며, 위로 불조를 위하여 혜명을 잇고, 아래로는 온 중생을 위하여 안목을 열어주는 데 있으니 이 얼마나 막중한 소임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노고에 인색한 것이 자식을 가르치고 무공을 세우는 것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노고에 인색하면 반드시 방안에 틀어박혀 팔짱을 끼고 선류(禪流)와 인연을 끊으며, 권위를 가지고 향락을 누리며 안일무사하게 지내면서 총림을 여관과 같이 여기고 참선대중을 원수 대하듯 하며, 겨울이나 여름의 안거법을 그저 헌 종이 취급하듯 할 것이다.
이런 자는 위로는 불조의 은혜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용천(龍天)에게도 낯을 들 면목이 없으며, 아래로 스승의 가르침을 등진 법의 죄인이 아니겠는가?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한 중생을 위하여 미진겁을 지나도록 한없는 고통을 겪더라도 끝내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하셨다.
오늘날 수십, 혹 수백 수천의 법을 받을 만한 참선대중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어찌 한 사람뿐이겠는가.
또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눈과 뼈와 살과 수족을 바친 것이 온 대지에 가득하고 수미산과 같이 쌓였더라도 결코 고통으로 인하여 큰마음을 퇴실치는 않는다』하셨다.
더욱이 참선대중을 단련하면서 몸이 피로하고 음식이 험하더라도, 눈과 살을 바치는 것에 비교하면 비록 십 백 천 만이라도 어찌 보살의 만 분의 일에나마 미칠수 있겠는가. 이미 이 문에 들어왔다면 누군들 선지식으로 행세하지 않으며, 이미 장로가 되었다면 누군들 불조로 자부하지 않으랴만, 그러한 지위에 처했다면 반드시 그러한 일을 해야 할 것이요, 그러한 이름을 얻었다면 반드시 그러한 내실에 충실해야 한다.
참선대중은 실로 장로가 성불할 수 있는 큰 밑천인 것이요, 단련법은 실로 모든 조사들이 사람을 얻을 수 있었던 큰 열쇠인 것이다.
단련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중생의 눈을 뜨게 하여 인재를 얻을 수 없고, 서원을 세우지 않으면 단련하는 일을 하면서도 고통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단련하는 방법을 밝히기 전에 먼저 굳게 서원을 세우게 한 것이니, 서원이 세워졌다면 근본이 올바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첫째, 서원을 굳게 세워야 한다'고 한 것이다.
2. 근기를 살펴 화두를 주어야 한다.
참선대중을 단련하려면 반드시 올바른 참구법을 일러주어야 하고, 엄한 수단을 쓰려면 먼저 근기를 살펴야 한다.
임제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기에 세가지의 근기로 나누어 처리한다. 어떤 때는 경계를 빼앗아 버리고, 어떤 때는 사람을 빼앗아 버리며, 어떤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아 버리기도 하며, 어떤 때는 아무 것도 빼앗지 않는다. 이것이 근기를 구별하는 중요한 요령이다』하였다.
당대(唐代)에는 선풍이 왕성하고 근기도 범상치 않았다. 그래서 훌륭한 종장들이 학인을 제접할 적에 누구나 전기대용(全機大用)으로 순식간에 목숨을 끊어버렸으며, 순전히 활기(活機)만을 사용하였고 자못 사법(死法)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송나라 이후부터 참선에 화두를 사용하여 사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말법에 이르러는 근기는 더욱 하열해지고 교지(巧智)는 더욱 깊어졌으며, 광란은 더욱 어지럽고 정혜는 더욱 얕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법을 주관하는 자가 참선대중으로 하여금 성품을 개척하고 생사를 벗어나게 하려면 부득불 사법을 사용치 않을 수 없었으니, 이는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올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비록 활법일지라도 모두 사법이 되고 마는 것이요, 능히 이를 바르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사법 중에서도 스스로 활법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활법이란 어떤 것인가? 근기를 잘 살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참선대중이 문에 들어오면, 먼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인재의 고하(高下)를 감정하고, 다음에는 갖가지 기략으로 학인의 근기의 깊고 얕음을 시험해야 하니, 빈주(賓主)를 세우고, 일문일답으로 끊임없이 혼란을 주어 그 지혜의 여부를 살피면 학인의 근기가 저절로 드러난다.
간혹 상상기(上上機)가 오면 사자의 발톱과 코끼리의 위엄으로, 금덩이도 던져보고 밤송이도 던져 보아서 관문을 투탈한 여부를 엿볼수 있으니, 칼자루는 스승에게 있다.
학인의 근기가 결정되었으면, 그 때 비로소 선당(禪堂)에 들어가게 한다.
선당에 들어간 후에는 곧바로 입실하게 하여 상, 중, 하의 근기에 따라 화두를 일러준다.
그가 이미 제방을 편력하여 오랫동안 화두를 참구했던 자인 경우에는, 완전히 빼어버리거나 혹은 바꾸어 주거나 혹은 바로 잡아주어, 비록 일을 일률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으나 화두가 올바르게 되어야만 기준[定盤星]이 확립되는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 화두를 사용하지 않고 덕산이나 임제스님과 같이 방(棒)이나 할(喝)로 학인을 제접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 기특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학인의 근기를 지나치게 높이 본 것으로 일률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 근기가 날카롭든 둔하든, 대중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다만 하나의 화두만을 사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 균등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이것은 학인의 근기를 너무 흔동하고 있는 것으로, 비록 참구한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 그 까닭을 말씀해 주십시오.
― 화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직절통쾌(直截痛快)하여 구차스럽지 않기는 하다. 그러나 옛사람의 경우에는 가능하다 하겠으나 요즘 사람들인 경우에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옛사람들은 근기가 뛰어나고 정혜의 힘이 강성하여 한번 훌륭한 스승이 방할로 제접하는 것을 경험하기만 하면 한번 믿음으로해서 영원히 깨달아 다시는 반복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사람들의 매우 깊은 교지(巧智)와 매우 어지러운 광란을, 화두를 사용하여 단단히 밀봉해 두거나 깊은 송곳으로 통렬히 찔러서 지정(智情)이 고갈하여 불현듯 형세를 일변하게 하지 않고, 격석화섬전광(擊石火閃電光)과 같은 한 수[一着]만으로 가풍을 삼는다면 비록 간혹 수긍하는 수가 있다 하더라도 다분히 그림자에 속할 뿐이어서 언구(言句)의 빗장이나 종사의 혈맥에 전혀 투탈하지 못하고 이것으로 깨달았다고 생각할 것이니, 이러한 일이 반복될 경우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고, 일률적으로 사�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황룡(黃龍慧南)노인이 회당(晦堂)에게 말하기를, 『만약 화두를 간(看)하게 하지 않고 온갖 다른 방법으로 찾아 스스로 보고 스스로 긍정하게 했더라면 내가 너를 그르치게 했을 것이다』하였으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의 화두만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평등하고 간단하여 간택하는 번거로움이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대중 가운데는 타고난 자질이 날카롭거나 둔한 이도 있고, 기질이 순수하거나 불순한 이도 있으며, 도를 믿는 마음이 얕고 깊은 이도 있고, 공부한지가 오래되었거나 혹은 잠깐동안인 자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모자를 사려는 자는 반드시 머리의 크기를 살펴야 하고, 연장의 자루를 박는 자는 구멍을 살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이다.
수식관(數息觀)을 해야 할 자에게 백골을 관하게 하거나, 백골관(白骨觀)을 해야 할 자에게 수식관을 하게 한다면, 비록 부처님 당시일지라도 과덕(果德)을 증득치 못할 것이다. 더욱이 요즘과 같은 말법에서랴.
대법(大法)에 밝은 자가 역량을 살펴 엄한 수단을 쓰고 임기응변을 알아 송곳질을 한다면, 세가지의 근기들이 모두 이익을 얻을 것이요, 만약 날카롭거나 둔하거나, 순수하거나 불순하거나, 얕거나 깊거나, 오래되었거나 신참인 자를 불문하고 한갓 하나의 화두만을 사용하여 학인을 꽁꽁 동여맨다면 땅에 금을 그어놓고 범위를 정하는 격이요, 말뚝에 못을 박고 노를 젓는 꼴이어서, 높은 곳에 있는 자는 애를 써도 내려가지 못할 것이요, 낮은 데 있는 자는 발돋움을 해도 닿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활법(活法)이 사법(死法)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대혜스님이 말하기를 『선지식이 대법에 밝지 못하여 그저 자신이 깨달은 곳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지시한다면 반드시 사람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하였으니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이 아니겠는가?
― 그렇다면 화두를 지적하여 준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야 하겠습니까?
― 역시 세가지 근기로 나누어 처리할 수밖에 없다. 처음 공부하는 자는 화두가 너무 어렵고 깊으면 필시 거부감을 일으킬 염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이 점을 참작하여 그 근본을 발휘케 하여야 한다.
기질이 뛰어난 자는 화두가 느슨하면 생각으로 따지기 쉬우므로, 반드시 만 길이나 되는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듯 하게 하여 일체 대상을 끊어버려야 한다.
예를 들면 만법귀일(萬法歸一)이나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나 사료소료(死了燒了) 따위와 목전일기일경(目前一機一境) 같은 것은 비록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가 모두 사용할 수 있으나, 특히 처음 공부하는 자에게 편리한 화두다.
그리고 남전의 삼불시(三不是)나 대혜의 죽비자(竹 子)나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모두 30방』이나 『이렇거나 이렇지 않거나 모두 틀렸다』 등은 비록 고하간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나, 특히 근기가 뛰어난 자에게 편리한 화두다.
또한 머리를 쳐들고 뿔을 단, 지견이 매우 웅강한 자가 있다. 이럴 경우에는 스승이 발톱을 매섭게 세워야 할 것이니, 어떤 때는 기묘한 희로(喜怒)로 그들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어떤 때는 까다로운 속임수로 그들의 기를 꺾어버려야 한다.
임제스님이 말씀하신 전체(全體)니 반신(半身)이니, 사자(獅子)니 상왕(象王)이니 한 것 등이 모두 이런 자들을 위하여 시설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스승의 작용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것으로서 말로써 전할 수 없다. 말하자면 화두는 비록 갖가지이지만 모두 윗쪽에서 묘하게 자물쇠를 잠궈버리는 것이다. 이미 자물쇠를 채워버렸으면 학인이 용심(用心)할 때에 문이 막혀버리고 길이 끊어질 것이요, 아래쪽에서 질문하는 곳도 그 의정을 발하는 것이 반드시 진실할 것이다. 의정이 이미 진실해지면 깨달음도 철저할 것이다.
동산(東山)이 말한 도둑 아비가 궤를 잠궈버리고서 아들에게 포위을 뚫고 달아나게 한 비유는 전할 수 없는 비밀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답어(答語)를 참구하게 해야 할 근기도 있으니, 마삼근(麻三斤)이나 간시궐(乾屎궐), 청주포삼(淸州布衫),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등이요, 기용(機用)을 참구하게 해야 할 근기인 경우는 『문에 들어오면 방망이로 때리고 문에 이르르면 할(喝)을 한다』거나, 목주(睦州)가 운문(雲門)을 제접한 일이나, 분양(汾陽)이 자명(慈明)을 제접한 일 따위이니, 가끔 대오(大悟)의 문을 열어준 것이어서 이도 역시 스승의 용처(用處)는 어떠한 가를 보여준 것일뿐 사법(死法)은 없었다.
간혹 스승이 선문의 깊은 이면 [關 ]을 알지 못하고서 그저 학인에게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인가?』나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나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인가?』따위 만을 참구하게 한다면 이것은 위에서 자물쇠를 채워놓지 않고서 되는대로 소리치는 격이다.
스승이 단단히 칼자루를 잡지 않으면 학인이 의정(疑情)을 발하는 것이 무력하여 썩은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어서 늙어 죽을 때까지라도 깨치지 못하리라. 참선하는 병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 어찌 애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을 그르치게 하는 가장 큰 허물은, 처음으로 선문에 들어와서 근본을 깨닫지 못한 자에게 남전참묘(南泉斬猫)나 백장야호(百丈野狐), 단하소불(丹霞燒佛), 여자출정(女子出定) 등의 화두를 참구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네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꼴이어서 세월만 허송할 뿐 어림없는 노릇이다. 이런 자를 엉터리라 해서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대중을 단련코자 한다면 자세히 근기를 살피고 화두를 간별하여 모두 맞게 하고 날카롭거나 둔한 이에게 적합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 입문에 있어서 가중 중요한 일인 것이다.
※격석화섬전광 : 돌을 맞부딪히는 데서 일어나는 불과 번개. 사세가 빠르고 맹렬한 것을 비유함.
여기서는 방,할의 수단으로 학인을 제접하는 것.
※사료소료 : 죽어서 한 줌의 재가 되면 너의 주인공은 어느 곳에 있는가?
※목전일기일경 : 기는 心機, 경은 밖의 경계. 선사의 자재한 마음작용이 미묘한 언동(눈깜작임, 눈을 치켜뜸 등등)이 되어 나타난 것.
※삼불시 : "강서의 마조스님은 마음이 부처라 하였으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마음도 부처도 물건도 아니니라."
※죽비자 : 대혜스님이 죽비를 들고 스님에게 말하였다.
"죽비하고 하면 저촉되고, 죽비라고 하지 않으면 등진다. 그러니 말할수도 없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빨리 말해 보라, 빨리 말해 보라"
"화상께서 죽비를 놓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님이 죽비를 내려 놓자 僧이 소매를 떨치며 나가버렸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시자야, 이 중이 하는 짓을 잘 기억해 두어라."
※임제스님 "도 닦는 이들이여, 선종의 견해로는 사활이 질서정연하다. 참학인은 매우 자세히 살펴야 한다. 주인과 손이 서로 만나 언론의 왕래가 있을 때, 어떤 때는 사물에 응하여 몸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전체로 작용하기도 하며, 혹은 방편으로 희로(喜怒)하기도 하고, 혹은 반신(半身)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사자를 타기도 하고 혹은 코끼리를 타기도 하며... 운운


3. 입실하여 다스려라.
이미 화두를 일러 주었으면 다음은 참구하게 한다.
그런데 참구하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화평한 것이요, 둘째는 맹렬한 것이다.
화평하게 참구하는 경우에는 학인이 깨닫기가 어렵고, 간혹 깨닫는다 하더라도 특출하기는 어렵다. 맹렬하게 참구하는 경우에는 학인이 깨닫기가 쉬워서 한 번 용광로에 들어가면 매우 특출한 인재가 배출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화평한 방법을 쓰면 과단성이 없고 느슨하여 단지 들뜬 마음을 억제하고 거친 생각을 쉬게할 뿐이어서 오래오래 익힐지라도 티없이 깨끗하기만 할 뿐 관문(關門)을 부수고 득의만면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깨닫기가 어렵다고 한 것이다.
또한 찬재에서 콩을 줍듯하는 자는 비록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으나 오히려 뻣뻣하게 죽은 자와 같아서 한번 수단이 혹독하고 험난한 가풍을 만나면 즉시 주저앉고 말 것이거든, 더욱이 큰 일을 겪거나 큰 소임을 맡으며 많은 대중을 거느리면서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특출하기는 어렵다고 한 것이다.
만약 인재를 얻고자 한다면 불현듯 절단해 버리고 활활 타는 불 속에서 몸을 뒤치며, 험준한 절벽 위에서 목숨을 던져서 좌절을 당하고 고초를 겪더라도 안연부동(晏然不動)하는 자의 경우에는 맹렬한 참구법이 아니면 안 된다. 맹렬법이 비록 훌륭한 것이기는 하지만 힘이 미치지 못할까 염려될 뿐이다.
시일을 앞당겨 다그쳐 공을 이루고자 한다면 7일간의 기한을 정하라.
7일간의 기한을 정하면 용맹하고 뛰어난 자는 배나 힘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겁이 많고 유약한 사람일지라도 한번 총림에 들어가서 기필코 죽을 각오를 하게 될 것이요 또한 몸과 목숨을 버릴 용기를 갖게 될 것이므로 7일간의 기한을 정하게 한 것이다.
만약 7일간의 기한을 정하고자 하면 우선 입실(入室)을 하게 한다. 입실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다.
장로가 이왕 단련하는 일로 목적을 삼았으면 마음씀이 돈독해야 하고 용의가 깊어야 하고 법을 세움이 준엄해야 하고 공력을 가함이 세밀해야 한다.
선당을 내려가고자 하면 먼저 학인의 이름과 용모, 그리고 각자의 본참화두를 알아본 후에야 단련을 가르칠 수 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 비록 한 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구순(九旬)을 지내더라도 전혀 낯선 사람과 같아서 소위 결제라는 것이 흥청대는 집안 꼴이 되고 말 것이니 대중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알았으나 그 사람의 본참화두를 알지 못하면, 장로가 선당(禪堂)에 들어가서 학인을 단련하려 하여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칼자루를 손에 들지 않았으면 이 때 선문의 낡은 격식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낡은 격식이라 하는가?
겨울이나 여름의 안거에 모든 일은 집사(執事)에게 맡겨버린다. 집사는 자신의 소임에만 충실하여, 앉아있을 때는 그들이 혼침하든 산란하든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걸어갈 때는 그들이 느릿하든 피곤해 하든 상관 않는다.
장로는 체면을 차리느라 집사가 종을 치고 정중히 청하지 않으면 승당에 오지 않는다. 어쩌다 관례를 깨고 대중을 위하는 자라 할지라도 간혹 하루나 이틀만에 승당에 내려오거나 어떤 때는 사흘이나 닷새, 귀찮아하는 자는 열흘이나 보름 심지어는 해제가 되도록 승당에 내려오지 않는 자도 있다.
장로가 승당에 내려오면 집사가 엄숙히 도열하고 있는 것은 마치 관청에 아전이 도열하고 있는 듯 하고, 참통(籤筒)을 들고 이름을 부르는 것은 관리가 출근을 점검하고 있는 듯 하다.
장로가 대중의 이름이나 얼굴도 모르고 또한 그들의 본참공안(本參公案)도 알지 못한 채, 부득불 한 질문을 던진다거나 한 공안을 들어서 그 책임을 모면하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격식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선석(禪席)을 경험한 자는 익숙한 길로 자유롭게 점검할 수 있는지라 장로가 승당에 이르지 않아도 의지가 분명하고 계략이 충실하다.
그런데 장로가 사로잡거나 죽이거나 살리는 강종(綱宗)의 수단을 사용하여 그의 의도를 찾아 그 소굴을 습격하지 않고 그저 매끄러운 응답이나 날쌘 말솜씨로 영리하다고 여기고, 하나의 질문을 하기만 하면 억지로 한두마디 말로 그의 허물을 감추려 하고 있으니, 이는 구참(久參)에게는 이익이 있을 것 같으나 실제로는 아무런 이익도 없다.
우둔하거나 처음으로 참구하는 자는 선서도 종래 읽어본 적이 없고, 혼침과 산란도 아직 없애지 못했으며, 화두도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장로가 승당에 내려오면 열에 아홉은 몸을 숨기거나 멀찌감치 서서 감히 가까이 오려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간혹 점검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본참공안을 물어서 살피지 않고 마치 나무꾼에게 중서당(中書堂)의 일을 묻는 것과 같이 하여, 일률적으로 한두대의 매를 때려 이를 모면하려 하고 있으니 이것은 신참(新參)에게는 무익한 중에 무익한 일이다.
이렇게 장로가 점검을 마치고 방장으로 돌아가면 대중은 망상 속에 들어앉아 있거나 썩은 물속에 침몰하고 그렇지 않으면 혼침이나 산란에 빠져 세월을 보내고 있을 따름이니, 올바른 공부길도 전혀 찾지 못하거든 하물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소위 낡은 격식인 것이다.
선지식이 이러한 낡은 수단으로 사람을 위한다면 자신은 편안하기는 하겠으나 대중은 광대겁의 업식을 어떻게 맑힐 수 있으며 지견을 어떻게 끊을 수 있으며, 의단을 어떻게 파하고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것들은 모두 그 사람을 알지 못하고 그 본참공안을 알지 못하는 허물이다. 만약 이런 것들을 알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입실하게 하여 학인을 철저히 분석하는 데 있다.
대개 사람의 근기는 한결같지 아니하여 참학(參學)하는 이들도 갖가지 차별이 있다. 비록 화두를 받았으나 어떤 이는 참구할 뜻이 없고, 어떤 이는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혹은 뜻은 있으나 의정을 일으키지 않으며, 어떤 이는 화두를 들기만 하면 망상에 휩싸이는 자도 있고, 또는 몇 년을 참구하였으나 어떤 것이 공부인지조차 모르는 자도 있다. 어떤 이는 경교(經敎)의 이치를 끌어다 화두에 맞추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저 화두를 빌려서 망상을 없애려는 자, 또는 무사갑(無事甲)에 스스로 몸을 숨기는 자, 혹은 억지로 대답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는 자, 어떤 이는 입을 다물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것으로 깨달음이라고 여기는 자도 있다.
이러한 많은 병통들은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이도 없고 안으로 진실한 의심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실할 때에 일일이 엄하게 다스리고 소탕하여 그들에게 붙은 것을 떼어주고 묶인 것을 제거하며 막힌 것을 틔우고 서툰 것을 연마하며 자신도 모른 채 묶여있는 밧줄을 끊어주고 깊이 든 병을 낫게 하며, 진실한 참구를 할 수 있도록 하면 수행의 길도 반드시 올바를 것이다.
만약 엄하게 다르려서 병통을 제거하지 않고, 분별없이 하나의 화두만을 주거나 사리에 맞지 않게 하나의 공안만을 준다면 학인이 올바르게 용심(用心)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삿된 것을 바로 잡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하며 어두운 것을 밝게 하고자 하지만, 온 몸에 퍼진 선병(禪病)을 도저히 고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는 학인이 입실할 때에 치밀하게 용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그 사람의 이름이나 용모를 알고 그 사람의 본참공안을 기억하며, 또한 능히 그 사람의 선병을 제거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되면, 단련하는 방법을 차츰 베풀 수 있는 것이다.
※타칠(打七) : 7일간의 기한을 정해놓고 용맹정진하는 수행방법. 참선인 경우는 禪七, 염불인 경우는 佛七, 관음주력인 경우는 觀音七이라 한다.
※본참공안 : 학인이 평소 참구하는 화두.
※강종 : 禪學의 이론적 체계
※중서당 : 궁중의 문서나 조서를 관장하는 곳
※무사갑 : 일없는 것으로 궁극을 삼는 邪見에 안주하는 것.


4. 승당에 내려가 일깨워 주는 법
이미 입실을 거쳐 학인을 철저히 분석하였으면 잘못된 길은 없다.
그러나 학인이 참구함에 있어서 마치 물살에 거슬러 배를 저어가듯 사람을 다그쳐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퇴타하는 경우는 많고 전진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또한 강가에 다달아 뛰어들 것을 부추기듯 사람을 종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우선 전진은 하겠으나 쉽게 물러설 것이다.
그러므로 승당에서의 일깨워 주는 법이 가장 절실한 것이다.
일깨워 주는 것은 3일이나 5일에 한 번씩 하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에 세 번씩 성실하게 일깨워 주어야 한다.
일깨워 주는 방법은 그사람의 근기나 성실성을 살펴서 완급에 맞게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꼭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 중 중요한 것을 말하면 대략 아래와 같은 네가지가 있다.
첫째, 뜻을 분명히 세우도록 한다.
둘째, 참구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셋째, 게으름을 경책한다.
넷째, 마병(魔病)을 막아준다.
다만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언설(言說)의 갈등을 자제하면서 도리를 설해야 하는 것이다.
뜻을 분명히 세우도록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세간의 예업(藝業)도 뜻을 세움이 분명치 않으면 몸으로 근고(勤苦)를 견디지 못하며, 근고를 견디지 못하면 반드시 그의 예술을 성취하지 못한다. 더욱이 정식(情識)을 끊고 심성을 밝히며, 생사를 벗어나 불조의 대도를 성취하려 함에서랴.
그러므로 참구하고자 함에 앞서 철석(鐵石)과 같은 마음을 세우고, 금강(金剛)과 같은 서원을 발함으로써 길잡이를 삼게 해야 한다. 차라리 뼈가 부서지고 살이 마를지언정 큰 일을 성취하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을 것이요,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조사관(祖師關)을 뚫지 않으면 쉬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생사를 벗어나고자 하는 견고한 서원을 갖추면 의정을 발함이 반드시 진실할 것이요, 이렇게 불조를 떠맡으려는 굳센 뜻을 지니면 참구함이 반드시 힘찰 것이다.
의정이 진실하고 참구함이 힘차면 어찌 구경의 확철대오(廓徹大悟)가 없을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이 참구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인가?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의심이 크면 깨달음도 크고 의심이 작으면 깨달음도 작다. 그리고 의침치 않으면 깨달음도 없다. 그러므로 의심이 극에 달하면 깨달음도 극에 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화두만 멍하게 지키게 하고 의정을 일으키게 하지 않는 자가 있다. 이것이 참선의 가장 큰 병통이다.
참선이란 비록 멋대로 분별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멍하게 화두만을 지키고 있어서도 안 된다.
화두를 지키고만 있으면 고목에 매어있는 짓일 따름이요, 썩은 물 속에 빠져 있는 격이며 칼 등을 가는 짓일 뿐이다.
만약 진실한 의정을 발기하여 기관을 운전하지 않으면 앉아서 평생에 이를 지라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학인이 이러한 길을 걷기를 좋아하며 공적에 빠질 것이요, 이렇게 오래하다 보면 정형화된 격식으로 즐거움을 삼아 마침내 깨달음이 있음을 믿지 않을 것이다.
또한 스승도 이러한 방법으로 학인을 가르치기를 즐겨하면 고목당선(枯木堂禪)으로 극칙을 삼고, 다른 스승의 가르침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비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이란 진정 그렇지 않은 줄을 어찌 알랴.
대개 생사심(生死心)이 간절하면 의심이 나게 마련이요, 의심을 발하면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장로는 대중이 정좌할 적에는 반드시 세상의 모든 인연을 털끝만치도 개의치 말고 화두 위의 비밀을 꾸준히 궁구(窮究)하되 더 궁구할 길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런 후에도 계교사량하지 말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밀고 나아가게 하고 밀고 나아가는 힘이 다하면 처음부터 또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오래하면 정식(情識)이 다하고 지견이 없어져서 쉽게 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좋은 참구법이다.
게으름을 경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태평선(太平禪)을 참구하는 자는 느슨하고 우물쭈물하여 마치 물이 바위를 뚫는 것과 같아 진취도 없지만 퇴보도 없다.
이렇게 하면 애써 참구하더라도 공부가 한덩이[打成一片]를 이루기 어렵고, 설사 한덩이를 이룬다 하더라도 잠깐일 뿐,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 이것은 누가 채찍질하여 분발시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맹리선(猛利禪)을 참구하는 자는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다만 참구할 때에 상근이지(上根利智)는 진취할 뿐 퇴보는 없겠으나, 중·하근기인 자는 한 번만 맹리하게 애쓰고 나면 근력이 권태하여 진취하기도 쉽지만 퇴보하기도 쉽다. 그러므로 반드시 장로가 틈틈히 채찍질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채찍질하는 방법은 차라리 긴박하게 할지언정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되며, 차라리 매섭게 할지언정 평탄하게 해서는 안 되며, 차라리 쇠를 끊듯 딱 잘라 말할지언정 친절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모질고 사나운 말로 아픈 곳을 찔러 주라! 혈기가 있는 자는 반드시 분발하여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마병을 막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처음으로 배우는 자는 성품이 천만 갈래로 광란하다. 그러므로 화두를 개시(開示)하여 반드시 위에서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두고 엄격히 다스림으로 해서 마음속의 삿된 생각이 엿볼 틈이 없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해서 학인은 도를 깨달을 뿐 마(魔)에 걸리지 않는다.
만일 스승이 근기를 살피지 않거나 화두를 지시해 줌에 있어서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두지 않고서 업식이 날뛰거나 생각이 광란한 대로 내버려 둔다면 낯익은 사람이나 익숙한 경계에 나도 모르게 치달려서 기이한 것을 보고 들으면 마음이 혼란해진다.
처음으로 참구하는 학인은 대응할 지혜로 없고 견제할 도력도 없어서 혹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며, 어떤 때는 기뻐하거나 슬퍼하기도 하여 돌연히 마사(魔事)가 발생한다.
마사가 발생함에 있어서 장로가 이를 치료할 적절한 방법을 모르면 그저 온 몸을 묶고 사정없이 매를 치는 방법을 사용하곤 하여 가끔은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소위 『비록 원인은 좋았으나 나쁜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는 격이다.
만약 장로가 정성을 다하여 지도하고 힘써 보호한다면 이러한 근심은 없을 것이다.
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여서 낱낱이 열거할 수는 없다. 다만 가장 범하기 쉬운 것은 기운으로 치달리는 것을 용맹으로 여기거나, 마음을 찬 재와 같이 하여 그저 앉아 있기만 하는 것으로 고요한 경계를 찾는 것이다. 이 두가지가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참선의 비결은 다만 진실하게 의심하는 데 있는 것이지 기운을 치달리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원(元)나라 이후로 삿된 스승들이 흔히 사람들에게 척량골을 굳게 세우고 이를 악물며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부릅뜨라고 가르쳐 왔다.
그렇게 안으로는 실제 진실한 의심이 없으면서 밖으로만 용맹한 듯하여 날로 무리한 기운이 가슴을 짓누르면 그런 형세는 반드시 심장에까지 미치어, 결국 고통을 호소하거나 피를 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더욱이 이와 같은 뻣뻣한 태도를 어찌 오랫동안 지탱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큰 병 중의 하나다.
다음은 마음을 찬 재와 같이 하여 그저 앉아있기만 하는 자도 역시 진실한 의심을 일으키지 않고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참구하여, 선상(禪床)에 오르면 오직 온갖 것을 물리쳐 일없는 것에만 돌리고, 생각이 일어나면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이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사대(四大)는 본래 없는 것이요,『만법이 모두 공했다』는 말을 오인하여 마음을 찬 재와 같이 하여 고요하여 흔들림이 없이 하는 것으로 공부의 극칙(極則)을 삼고, 걷는 선(禪)은 마음을 잃게 한다고 하여 한 걸음도 옮기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혈맥(血脈)이 통하지 않아서 부종(浮腫)이 생기기 쉽고, 화증(火症)도 빈발한다. 이러한 모든 증세를 없애려면 선지식이 피로를 싫어하지 말고 날마다 승당에 내려가서 부지런히 인도하여, 어떤 때는 굳은 신념을 갖게 하고 혹은 옳은 참구법을 일러주며,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게으름을 경책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그들의 식정(識情)을 끊고 지견을 자르며 그들의 그릇된 길을 바로잡아 주고, 병의 뿌리를 뽑아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마병의 여러 가지 증상이 발생할 길이 없을 것이니, 학인의 올바른 깨달음을 기대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사관 : 조사의 관문, 즉 화두(공안)
※생사심 : 생사를 두려워 하는 마음





5. 실제 단련법을 제시함
속담에 『범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범을 잡으랴』하는 말이 있다.
장로가 단련법을 쓰지 않으면 비록 용상(龍象)과 같은 학인이 있을 지라도 모두 쓸모없는 그릇이 되고 말 것이요, 수십 년이 지나더라도 한 사람의 깨달은 자도 얻지 못할 것이다.
비록 몇 사람의 깨달은 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마치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다가 우연히 글자가 만들어진 것과 같이, 결코 단련의 공은 아니다.
만약 단련법을 정확하게 알면 비록 중, 하의 근기일지라도 깨우칠 수 있으나 마치 능력있는 한 사람이 수십 인을 조련하는 것과 같다.
묘희(妙喜=大慧)는 53인을 단련하여 13인을 깨우쳤으며, 원오(圓悟)와 금산(金山)은 하루아침에 18인을 계도하였다.
이런 말을 듣고 믿지 않으려 할 지 모르나 고금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땅엔들 물이 없으랴만 땅을 파지 않으면 물을 얻을 수 없고, 어떤 나무나 돌엔들 불이 없으랴만 비비거나 치지 않으면 불을 찾을 수 없다.
중생이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는 것은, 마치 어느 땅 속에도 물이 있고 어떤 나무나 돌에도 불이 있는 것과 같다.
선지식의 미묘한 기용(機用)과 혹독한 수단으로 통하게 하고 파내고 비비고 쳐주는 인연이 아니고서, 통 밑이 빠져서 스스로 관문을 투탈하는 경지를 얻고자 한다면, 비록 상상기(上上機)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바라만 보고도 발길을 돌릴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단련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으로 인재를 단련하고자 한다면 장로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집사(執事)도 여간 고생이 아니다.
결재 중에 장로는 반드시 틈틈히 승당에 내려와서 대중과 함께 생활하여야 한다. 만약 그럴 수 없으면 자주 승당에서 대중과 같이 좌선하거나 경행하기도 하여야 한다.
단련하는 도구는 죽비가 적합하다. 죽비는 수산(首山)에게서 시작되어 대혜에게서 성행하였고, 삼봉(三峯)에게서 다시 흥하였다.
이것은 역대 노덕들이 납자를 단련하였던 도구로서 새로 만든 것은 아니다.
죽비의 길이는 5자, 넓이는 1자 정도로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약간씩 넓히거나 줄여도 상관없다. 모서리 부분은 죽여주어야 한다. 이렇게 사용해야만 편리하다.
주장자의 경우는 법을 펴거나 학인을 제접하는 경우에는 가능하겠으나 단련할 경우에는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설사 사용하더라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쇠붙이로 된 여의(如意)는 학인을 항복받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얼핏 실수하면 머리가 터지거나 골이 깨질 수 있다. 단련하는 물건은 아니다.
죽비를 사용할 경우에는 학인을 다루기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치기에도 적당하여 좌선할 때는 이것을 손에 들고 순행(巡行)하고 행선(行禪) 할 때는 무기로 쓴다.
삼판(三板)이 입선(入禪)을 알리면 장로는 반드시 앞서 말한 것과 같이하여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향이 반쯤 타면 인경(引磬)을 쳐서 대중이 경행하게 한다.
경행하는 법은 처음은 천천히 걷다가 차츰 갈수록 더욱 빠르게 하고, 장로도 자주 죽비를 잡고 대중을 따라 선회한다.
경행이 극도로 빨라졌을 때 병가(兵家)의 방법을 써서 불의의 습격으로 무방비한 틈을 공격한다.
어떤 때는 갑자기 멱살을 잡고 한마디 말을 다그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그 본참공안을 물으며, 그가 대답하는 말을 기다렸다가 다시 상대의 창을 뺏아 적을 죽여버리며, 그가 작전을 바꾸는 것을 틈타서 다시 송곳으로 깊이 찔러 넣는다.
기세가 거세어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때도 묘계(妙計)를 그쳐서는 안 되며, 결각라문처(結角羅紋處)에도 거듭 음식을 뺏아버리고 알곡이 잘 익은 농경지로 말을 내몰아 버린다.
어떤 때는 무기를 버리고 맨손을 사용하여 단병(短病)으로 접전하기도 하고, 혹은 이쪽을 치는 척 하면서 저쪽을 공격하여 사이길로 기습병을 보내기도 한다.
혹은 조용(照用)을 동시에 사용하여 활과 돌로 번갈아 공격하며, 혹은 방할(棒喝)을 한꺼번에 행하여 포(砲)와 노(弩)를 동시에 쏘아댄다.
공부가 아직 미진하면 천만 번이라도 두드려 단련시켜야 할 것이요, 작위하는 마음이 쉬지 않으면 백 번 놓아주었다가 백 번 사로잡듯, 학인의 광대겁(廣大劫) 동안의 정식(情識)의 그림자와 지견의 갈등을 잡아서 그 소굴을 불질러 버리고, 그 뿌리를 잘라 아예 몸을 숨길 근거를 없애버려야 한다.
점차 만 길 벼랑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지경에 이르러 한 방망이나 한 칼로 기회가 이른 자는 단박에 절단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법으로서 소위 『사지에 들어간 후에야 살아 남는 것』이 아니겠는가. 학인을 단련하는 것도 이와 같을 따름이다.
장로가 이렇게 대중을 단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으나 만일 이러한 방법을 터득하기만 하면 인재를 얻기는 매우 손쉬울 것이니 또한 기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일이란 어려움을 겪고서 성공하지 못한 이가 없고, 성공한 자로서 어려움을 겪지 않은 이는 없다.
범의 목에 요령을 떼어오고 용의 턱에서 구슬을 뺏으며 내지 적을 쳐부수고 그의 임금을 사로잡는 것은 모두 훌륭한 공을 세운 것이기도 하지만, 반면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험을 하고 남다른 방법을 쓰는 사람치고 비범하지 않은 자가 없으니 어찌 유독 법문(法門)에서만 그렇지 않겠는가.
천하의 선지식이 기존 법만을 고집하고 간편한 것만을 즐기며 선문(禪門)의 법식은 이와 같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이러한 말을 듣는자는 반드시 『이것은 엉터리다. 장로는 존귀한 자다. 어떻게 날마다 선당에 내려가서 납자와 함께 이마를 맞대고 이렇게 서로 치고 받는 짓을 하랴』하고 비방할 것이다.
나는 말한다. 이것은 작은 일만 알았지 큰 것은 모르는 격이다. 선문의 낡은 격식만을 답습하고 나의 단련법을 사용치 않으면 장로는 몸이 편안하고 체면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니 좋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한 평생 적막하여 한 사람의 인재도 얻지 못하면 불조의 혜명을 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중이 적막하고 후대가 끊어져서 아무도 돌아보는 이 없고 조정(祖庭)에 잡초만 무성할 것이니, 어디서 그러한 체면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선문의 기존 격식을 버리고 부지런히 나의 단련법을 의지하면 장로가 체면도 손상되는 듯 하고 몸도 피로할 것이니 고통스럽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승의 단련이 활발하고 인재가 분발하면 사승(師承)의 짐을 벗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혜명이 전해지고 법문이 광대하여 노년에 이를수록 더욱 몸이 편안하고 도가 융성할 것이니 어찌 이를 체면없는 짓이라고만 하랴!
이것으로써 저것과 비교해 보라. 과연 어떤 것이 득이고 실이며, 어떤 것이 낫고 못한가?
더욱이 야위고 건강한 것은 사람에게 있고, 길고 짧은 것은 운명이다.
그러니 장로가 조실(祖室)에 존귀하게 거(居)한다고 해서 그의 나이가 반드시 연장되는 것도 아니요, 학인을 단련하여 노고한다고 해서 꼭 그의 수명이 감소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눈을 들어 바라보면 망망하기만 하여 장로가 죽고나면 겨울을 견뎌내는 풀과 아름드리 나무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어찌 모두 단련법으로 해서 그렇다고 할 것인가!
그러므로 단련법을 쓰는 것은 지극히 빠르고 지극한 효과가 있으므로 내가 이를 『버드나무 잎을 쏘아 맞추는 화살, 신비(神臂)의 활』에 비유하는 것이다.
또한 미진한 것이 있다. 곧 책발하는 것과 전환하는 것과 관문을 부수는 등의 세가지 설은 아래에서 밝힐 것이다.
※여의 : 설법할 때나 의식을 집행할 때 쓰는 도구. 손모양으로 만들었다. 원래는 등긁개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삼판 : 소임이름. 西堂과 後堂, 板首를 말한다.
※인경 : 작은 식기 모양의 종으로 나무 자루가 달렸다.
※결각라문처 : 공부가 거의 완성된 상태. 角은 귀를 말하고 紋은 짐승의 무늬를 말한다.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자가 마지막에 귀를 그리고 몸뚱이의 무늬도 다 그린 상태이다.






6. 교묘하게 책발하라.
세상일은 순사(順事)를 이용하지만 유독 선문만은 역사(逆事)를 이용하며, 사람을 위하여 일을 처리할 적에는 순조로운 것을 기뻐하지만 학인을 단련할 적에는 장애되는 것을 기뻐한다.
장애되지 않으면 천하의 대선(大善)이라고 말할 수 없고 역사가 아니면 천하의 대순(大順)이라고 말할 수 없다.
천도에 비유하면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것은 화육(化育)하는 은혜로서 넓은 것이요, 번개가 치고 벼락이 때리는 것은 생성하는 덕으로서 큰 것이다.
단련함에 있어서 위엄을 쓰지 않으면 참선대중이 권태하여 책발할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선관을 뚫어 깨닫게 하지 못한다.
또한 책발함에 있어서 방편을 쓰지 않으면 엄숙한 규칙이 단지 낡은 법이 되고 말 것이니 역시 분발하여 앞으로 전진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단련법이란, 일은 갖가지로 변화하지만 기용(機用)이 매우 활발하여 사람들을 잘 깨우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걷거나 앉는 것을 지나치게 오래 할 것은 아니다. 너무 오래 앉으면 혼침이 일어나서 화두가 무력할 것이요, 너무 오래 걸으면 피곤해서 앉기만 하면 금방 혼침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선문의 관례대로라면 포행하거나 좌선하는 시간이 반드시 향 하나가 다 탈 때까지로 하지만, 나는 적절히 절충하여 짧은 향 하나가 다 탈 때까지로 하고 긴 것은 반쯤 탈 때까지로 한다.
앉아있는 시간이 향이 반쯤 탈 때까지로 하면 정참(靜參)이 반드시 정밀할 것이니 권태한 생각이 나면 좌복에서 일어나 걸어야 한다.
그리고 걷는 시간이 향이 반쯤 탈 때까지로 하면 동참(動參)이 반드시 맹렬할 것이니 발이 피로하면 가사를 벗고 쉬도록 한다.
그러나 7일간 용맹정진하다 시일이 오래되고 한밤중 쯤 되면 대중이 점차 권태하게 된다. 이럴 때는 장로가 따뜻한 말로 타이를 일이지 강권해서는 안되면, 웃는 낯으로 제접해야 하고 다그쳐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향판(香板)으로 경책하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적절히 하도록 한다.
이때 이들에게 기운을 솟게 하고 용맹을 부채질하고자 하면 특이한 한 방법이 있긴 하다. 즉 잔혹한 수단을 써서 큰 분노를 발하게 하는 것이다.
집이 떠나갈 정도로 꾸짖거나 마구 죽비로 후려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 앞에서 창피를 주는 말이나 도저히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이나 마음에 불을 지르는 따위의 말로 마구 꾸짖으면 대중의 혼침이나 권태가 즉시 사라질 것이다.
비유하자면 하늘이 흐리고 흙비가 내려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다가 번개가 한 번 때리면 껍질이 터지고 싹이 돋아 만물이 놀라 깨어나는 것과 같다.
또한 편안하고 안락하게 지내면서 깊은 골짜기나 구덩이를 만나면 아무도 이를 쉽게 뛰어 넘지 못한다. 그 때 대병(大兵)과 맹호가 뒤에서 몰아친다면 단박에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과 같다.
임제는 『어떤 때는 교묘하게 희로한다』 했으며 분양과 자명에 이르러 능숙하게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으니 소위『본실의 자식이 대를 잇는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선지식은 그 마음은 지극히 자비하고 그 작용은 지극히 혹독하여야 한다. 그래서 제불보살의 마음을 갖추어야 하는 동시에 아수라왕의 행을 행해야만 삼유(三有)의 큰 성을 흔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염족왕(無厭足王)과 승열바라문(勝熱)은 일찍이 개미 한 마리도 상하게 한적이 없었으나 무참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어서 형벌이 혹독하여 사람들이 무서워해 마지 않았다.
이러한 역용(逆用)을 아는 자라야만 가히 사람을 위하여 못이나 말뚝을 뽑으며 사슬이나 자물쇠를 부수듯 미망(迷妄)의 사견을 없애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도(善道)만 사수하고 있을 따름으로 자신도 구제할 수 없거든 하물며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겠는가.
대혜가 말하기를 『제방에서 선병(禪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이 중에 담당(湛堂) 선사보다 나은 이가 없다. 흔히 사람을 위할 때에 칼을 쓰는 것이 너무 느슨하다』했으며, 원오는 『손을 쓸 때는 반드시 매섭게 해야만 비로소 헛된 가르침이 되지 않는다. 신선의 비결은 자식과 아비 사이에도 전하지 못한다』하였다.
역대 선지식의 단련법이 대체로 이와 같았으니, 만약 이러한 책발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마치 말을 모는 자가 그저 말 구유 앞에 엎드려 있게 하고 채찍질을 가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적토마나 천리마 혹은 바람을 가르고 내달리는 천마라 할지라도 또한 소금 수레를 끌 수밖에 없을 것이니 어떻게 신마(神馬)의 용력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어떤 이가 물었다.
『그렇다면 요즘과 같이 밤을 꼬박 새우면서 정진하고 방선(放禪)을 하지 않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러한 방법이 매우 용맹한 것 같으나 실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 대개 참선이란 원래 도를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수마(睡魔)를 항복받자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단지 수마를 항복받자는 것이라면 화장(火場)에 들어가서 단련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니, 굳이 선사(禪社)에 들어갈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참으로 깨닫고자 하는 자라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한밤중에 방선하여 잠깐 자고 다음날 상쾌한 정신으로 진의(眞疑)를 일으켜 힘써 투탈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편을 알지 못하고 한사코 오래 앉아 있는 것만으로 능사를 삼는다면 사흘도 못되어 걸으면 안개 속을 헤매듯하고 앉아있으면 취한 듯 꿈꾸듯 할 것이다.
혼침이 심하면 태산으로 내리누르듯 하고 앉아 있으면 소위 『화두는 강물에 던져버렸다』 하는 꼴이 될 것이니, 어찌 심화(心華)를 발명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어찌 참선을 하지 못할 뿐이랴, 혼침 중에 어지러운 생각이 더하여 경계가 나타나거나 헛소리를 하며 귀신을 보게 되는 것이 이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방편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禪)』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경에서는 『삿된 스승의 허물일 뿐 중생들의 잘못은 아니다』하셨으니 어찌 믿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깊이 단련에 밝은 자는 방편을 알고 근기를 짐작하여 위에서 말한 허물을 멀리 버린 후에야 진정한 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향판 : 경책하는 도구로 재질은 떡갈나무로 한다. 길이는 90-100㎝, 폭은 4㎝ 정도가 보통이다.


7. 교묘하게 전환하라
깨닫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할 지 모르나 스승의 기봉(機鋒) 아래에서 투탈하는 것과 적막하게 촉발하는 것과는 그 공용(功用)이 판연히 다르다.
적막하게 참구하는 자는 근본적으로 침잠해 있어서 선지식이 매섭게 전환해줌을 얻지 못하면 10년, 20년이 되어도 깨닫지 못하는 지라, 은근히 핵심을 지적하거나 두 칼이 맞붙어 싸우는 경우에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한다.
스승의 방편 아래에서 투탈한 자는 분별심이 반드시 사라지고 의심의 뿌리가 다할 것이며 알음알이의 길이 끊어져서 어떤 험난한 방편 아래에서도 가는 데마다 더욱 힘을 얻고 칼놀림도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대의 선지식 중에서 오도에 대해 말하는 자는 반드시 기봉을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마조와 백장, 황벽, 임제로부터 분양, 자명, 동산, 원오, 대혜 등의 모든 노덕들이 모두 대기대용(大機大用)이 번개가 번쩍이듯 우레가 치듯 하여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었으니, 한번 내리치고 한번 밟고 한번 호되게 몰아붙이고 한번 법을 바꾸어 사용함으로 해서 목숨이 끊어지고 올바른 안목이 밝아져서 용상과 같은 무리들이 구름일 듯 하고 종문이 이렇게 번성케 되었던 것이다.
원대(元代) 이후에 이르러서는 과거 모든 조사스님들의 단련법을 행하지 않고 한사코 앉았기만 하는 냉선(冷禪)을 귀히 여겼다. 그리하여 찬 재나 고목과 같고 낡은 사당의 향로와 같으며 적막하고 동요하지 않는 것을 힘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도리어 모든 조사들의 기용을 비방하여 한 가문의 독특한 시설로만 여길 뿐이며, 오종의 강종(綱宗)을 배척하여 신기한 이름이나 모양을 보듯 하여 학자들을 묶어 두었으니 이로 인하여 종풍이 크게 파괴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뺏고 경계를 뺏으며 법을 뺏아버리는 임제의 칠사(七事)를 모르면 이를 이러쿵저러쿵 빈정대기 일쑤며, 암두(巖頭)의 활법을 모르면 반드시 그 장소에서 즉시 바꾸어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법이 이미 유실되어 버린지라 법을 청하는 자가 있으면 그저 죽은 화두를 일러주면서 그들에게 찬 재나 고목과 같이 앉아 있게 하여 이들을 고목당(枯木堂)으로 끌고 들어가서 말할 줄 모르는 선을 익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묘희가 꾸짖는 『묵조사선(默照邪禪)』이거늘 도리어 방안에서 비밀히 전수했다 하면서 지극한 보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명나라에 전해져서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선을 익히는 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 있는가와 그렇지 못한 가로 공부의 우열을 잣대질하게 되었고 『깨달음』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듯 국법을 어기듯 금기하게 되었고 이리하여 참선법은 완전히 자취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천동 오(天童 悟) 화상이 한 방망이로 그 문을 열고 대기용을 분발하였으며 삼봉 장(三峯 藏) 화상이 칠사(七事)로써 그 단련을 행하여 강종을 완성하였고, 나의 스승이신 영은 예(靈隱 禮) 화상께서 다시 오가의 오묘한 법으로써 다방면으로 변통하여 널리 여러 근기들을 제도하였다.
이리하여 요간(料揀)과 조용(照用)과 빈주(賓主)와 회환(回換) 등의 여러 가지 방편법이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어 종문의 일월이 찬연하게 중흥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개 참선이란 깨닫지 못하면 많은 병통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이는 앞길이 가로막혀 전진하지 못하는 자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털끝만한 망상도 끊지 못하는 자도 있으며, 혹은 화두만을 꼭 쥐고 의정을 일으키지 않는 자도 있고, 혹은 찬 재와 같이 침좌(沈坐)하여 그것을 본분으로 여기는 자도 있다.
어떤 자는 눈썹을 움찔하고 눈을 깜짝이는 것으로 완전히 들어보인 것이라고 여기는 자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일언반구(一言半句)에 집착하여 이것으로 깨달았다고 여기는 자도 있으며 혹은 공안을 천착하여 널리 통달했다고 여기는 자도 있고 혹은 강종을 사량계교하는 것으로 구경(究竟)을 삼는 자도 있다.
혹은 모든 것을 끊어버린 것으로 향상(向上)이라고 생각하는 자도 있고, 어떤 자는 기경(機竟)에 오르지 않는 것으로 빼어났다고 여기는 자도 있고 혹은 고금(古今)의 공안(公案)을 자질구레한 지절(枝節)로 여기거나, 혹은 최후의 관문을 억지로 사람을 끌어넣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러한 것들은 모두 스승의 가르침을 거치지 못했고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고 강종을 투탈하지 못함으로 해서 편벽된 지견이 이렇게 천차만별하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훌륭한 선지식은 병을 따라 약을 주고 구멍을 살펴보고 적당한 자루를 박는다. 마치 영인( 人)이 코끝에 붙은 흰 흙을 깎아낼 적에 도끼를 휘두를 적마다 바람이 일 듯 하는 것과 같고 포정( 丁)이 소를 잡을 적에 칼놀림에 따라 뼈와 살이 발라지는 것과 같이 일기(一機)와 일구(一句)로 능히 학인들로 하여금 사슬을 벗고 심안을 열게 한다. 이러한 법은 전환을 잘 사용하는 데 있다.
전환하는 법은 하나가 아니어서 <법전(法戰)의 전환>도 있고 혹은 <실중(室中)의 전환>, <전환의 전환>, <전환하지 않는 전환>이 있다.
법전의 전환이란, 대중 가운데서 다그쳐서 학인이 어떤 대답을 할 경우에 틈이 있거나 허물이 보이면 즉시 공격한다. 능히 반격해 오는 자에게는 다시 추격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요, 기봉(奇峰) 아래에서 죽는 자에게는 즉시 활인도(活人刀)를 보여서 벌떡 되살아나게 하여 학인으로 하여금 발붙일 여지가 없게 하면 목숨을 끊어주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중의 전환이란, 전진할 줄은 알지만 물러설 줄은 모르거나 혹은 머리는 말하지만 꼬리는 말할 줄 모르거나 또는 활을 쏠 줄은 알지만 단발에 그칠 뿐이거나 혹은 샘물이 구멍에서 나오더라도 단지 한 번에 그칠 뿐인 경우에 장로가 그들로 하여금 다시 묻게 하여 혹은 한마디 말을 대신하여 깨닫게 하거나 또한 한 글자를 고쳐서 확연하게 하여도 상관없다. 이것은 신선의 국수(國手)며 가장 기묘한 방편이라 할 것이다.
전환의 전환이란 『불성이 누군들 없으랴』 하면 고쳐 말하기를 『누군들 있는가』 하여 그 중이 깨달았으며, 『문에 들어오면 미륵을 만나고 문을 나서면 달마를 만난다』 한 것을 고쳐 말하기를 『문에 들어온들 무엇을 만나며, 문을 나선들 누구를 만난단 말인가』 하여 그 중이 깨달았으며, 『장씨는 붉고 이씨는 검네』 한 것과 『어제는 옳았으나 오늘은 틀렸네』 한 따위가 전환의 전환이다.
전환하지 않는 전환이란 『어떤 것이 조계의 한 방울 물입니까?』 하고 묻자 『이것이 조계의 한 방울 물이네』하고 대답한 것이나, 『병정동자(丙丁童子)가 와서 불을 찾는구나』 한 것이나, 『무(無)의 구름은 산마루에서 피어오르고 유(有)의 달은 강심에 떨어진다』 한 따위다. 이는 다만 일전어(一轉語)를 거듭 들어서 학인을 깨닫게 한 것으로서 이것은 전환법을 쓰지 않았으나 역시 전환인 것이다.
『선지식이 제법에 대하여 매미를 잡듯 하며, 구슬을 놀리듯 하여, 활을 쏘아 이를 맞추듯 하여, 이를 발하기만 하면 반드시 응하고 이를 사용하기만 하면 반드시 막힘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능히 강종을 사용하여 활기(活機)로써 학인을 제접하기 때문이다.
강종을 얻으면 요간(料揀)이 익숙하여 전환을 행할 수가 있다. 손이 정미하고 눈이 날쌔서 기미를 정확하게 가릴 수 있으니, 하늘과 땅을 바꾸어 놓고 뭇 별을 옮길 정도의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자라도 상관치 않고 향상현관(向上玄關)을 누구에게나 투탈케 할 수 있는 것이다.
본체선(本體禪)만을 소중히 여기고 강종을 알지 못하면 전인(前人)의 일기일경(一機一竟)이나 이렇게 저렇게 염롱(拈弄)하는 것에 아교 단지에 붙은 듯 꼭 집착하게 될 것이요, 장로는 방편을 쓸 도리가 없을 것이니 이는 약홍은선(藥汞銀禪)이라 거짓 닭 울음소리로 관문을 벗어날 수 있더라도 깨달음이 철저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참선대중을 단련하려는 자가 강종(綱宗)에 대하여 어찌 소홀할 수 있겠는가.
※칠사 : 장수가 활, 화살, 도, 검, 갑옷, 투구, 창 등 일곱가지 무기를 몸에 지니듯, 종사도 칠사를 가진다. 곧 살인도, 활인검, 脚踏實地, 向上關 子, 格外說話, 衲僧巴鼻, 探竿影草를 말한다.
※약홍은선 : 相似禪을 말함. 약홍은 수은을 말하는 것으로 은과 비슷하지만 쉽게 녹아버린다는 데서 유래.

8. 관문을 부수고 눈을 열어주어야 한다
전환법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겹겹의 관문을 부수고 학인의 안목을 열어주려면 매나 용의 눈일 뿐만 아니라 근기를 다루는 수단이 아니면 불가능하니 더욱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맞대면하여 충돌하려면 시기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니, 그 시기가 아니면 박랑(博浪)의 철추를 들어서는 안 되며 복병으로 격퇴하려면 험난한 곳이 적당하니, 험난한 곳이 아니면 마릉(馬陵)의 활을 쏘아서는 안 된다.
관문을 부수는 비결을 알고자 한다면 그 공은 모질게 몰아붙이는 데 있고 오묘한 이치는 전환하는 데 있으며, 그 힘은 인도하여 책발하는 데 있다.
인도하지 않으면 행로가 간혹 엇갈릴 수도 있고, 책발하지 않으면 불을 지름이 왕성치 못할 것이며, 모질게 몰아붙이지 않으면 심지(心智)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요, 전환하지 않으면 적정(賊情)이 무궁할 것이다.
이러한 네가지 법을 다하지 않고 학인을 단번에 깨닫게 하려는 것은 불을 지피기도 전에 밥을 찾는 격이요, 과일이 익기도 전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격이어서 비록 큰 명성을 얻고 있는 장로나 큰 그릇을 갗춘 학인이라도 근기와 교법이 적절하지 않으면 양자가 허사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단련에 익숙한 자는 마음이 세밀한 것을 꺼려하지 않으며, 공(功)이 번다한 것을 꺼려하지 않으며, 일이 주밀(綢密)한 것을 꺼려하지 않고 법이 완비한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장로가 대중과 같이 앉아서 오늘도 이와 같이 인도하고 내일도 이와 같이 책발한다면 행로가 반드시 올바르고 불길도 왕성할 것이다. 대중을 따라 경행하여 오늘도 이와 같이 다그치고 내일도 이와 같이 전환한다면 심지(心智)가 반드시 끊어지고 적정도 다할 것이다.
이렇게 왕성한 데다 왕성함을 더하고, 다한 데다 더욱 다한다면 소위 매나 용의 눈과 살활(殺活)의 칼을 잡아서 쓸 수 있을 것이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에 의기가 비록 강성하더라도 스승을 뵙고 법을 물은 지가 일천하여 활발하기만 하고 기가 죽지 않은 이에게는 반드시 살법(殺法)을 사용할 것이요, 구참이라고 자부하는 자가 공부른 비록 안정되었으나 찬 재와 같은 병이 들어 집착하기만 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활법(活法)을 사용하여야 한다.
살법을 써야 할 자에게 활법을 쓰면 얇은 곳을 혼자 타파하고서 그 선(禪)이 보잘 것 없다고 하면서 가끔 허공을 만지고 메아리를 잡는 것 보다 쉽게 여기기도 한다.
또한 활법을 써야할 자에게 살법을 쓰면 학인이 재가 되어 없어지듯 하여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말 것이니, 칼을 씌우고서 족쇄를 더 채우는 짓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자에게 살법을 써야 할 경우가 열에 아홉이라 한다면 활법을 써야 할 경우는 열에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살법은 쉬우나 활법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활을 겸하여 쓸 자가 있다. 이는 어떤 자인가 하면 머리를 치켜들고 뿔까지 달고 불조의 강골(剛骨)을 갖추었으며 용과 코끼리와 같은 자태에 기골이 옥과 같은 자이다. 이런 자가 오는 것을 보면 그물이 넓어야 하며 오랏줄이 커야 하며 함정이 치밀해야 하며 갈쿠리가 단단하여 뼈를 부수고 골수를 쳐야 하며, 백척간두에 몰아붙이고 큰 송곳으로 통렬히 박아버려야 하며 점차 천 길 벼랑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더라도 활시위를 힘껏 당겨 틈을 주지 마라. 막다른 길에서 도적을 만나더라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경우에는 다시 책발할 것도 전환할 것도 없이 바로 살활(殺活)의 성전(聖箭)으로 재빠르게 일격을 가하거나 절실한 언구로 정수리를 한번 찔러버리면 통밑이 저절로 빠져버리고 목숨이 즉시 끊어질 것이다.
이것은 도적을 만 길이나 되는 벼랑에까지 추격했으면서 끝까지 그만 두지 않는 것이요, 둥근 돌이 천 길이나 되는 산을 굴러가면서 멈추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며, 신의(神醫)의 금침이 눈동자를 찔러 금방 광명을 보게 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마조가 수료(水 )를 제접한 일이나, 목주가 운문을 제접한 일이나, 대우가 임제를 제접한 일이나, 암두가 설봉을 제접한 일이나, 선자(船子)가 협산(夾山)을 제접한 일이나, 분양이 자명을 제접한 일이나, 자명이 황룡을 제접한 일이나, 대혜가 교충과 서신을 제접한 일 등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외는 전등록이나 전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여러 조사스님들의 기용(機用)이 우레나 번개가 치듯, 용과 봉이 나르듯, 매섭고 기세도 드높고 고금을 눈부시게 비춘 것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늘 학인들로 하여금 그저 쉬고 쉬어서 사선(死禪)에 앉아있게 하고 식은 부뚜막을 지키게 하여, 의정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속에 깨닫기를 기다리게 하는 자를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고봉이 말하기를 『공부란 만 길이나 되는 벼랑에서 돌을 굴리듯 전혀 막힘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용심(用心)하여 7일 만에 깨닫지 못하면 내가 영원히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하였으니 어찌 학인들이 반드시 몇십 년씩 기한을 정하여 여름과 겨울을 보내고 포단을 뚫으며 공부의 소굴을 지키면서 침체에 빠진 것으로 극칙을 삼게 하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학인이 단련법을 만나지 못하면 죽을 애를 쓰고 정신을 허비해가면서 엉덩이가 썩도록 평생의 힘을 쏟더라도 투탈할 길이 없을 것이요, 스승이 단련법을 알지 못하면 세상을 안하무인과 같이 생각하고 제방을 삼킬듯한 기세가 있더라도 낡은 격식에 얽매여 이를 과감히 끊어버리지 못하여 수십 년 동안을 단련하면서도 한 사람의 인재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도하고 책발하여 근기를 제접할 줄 알기는 하지만 장로라는 체면 때문에 기꺼이 선당에 내려가지 못하며, 설사 선당에 내려가더라도 사치스럽게 안일하게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대중을 따라 경행하여 불시에 줄탁(줄啄))을 가하지 못하며 심지어 벼랑에서 끈이 끊어진 지경에 이르더라도 또한 관문을 부수고 목숨을 뺏아버리는 수단을 발휘하여 학인의 마음을 열고 안목을 꿰뚫어 주지 못하고서 천하에 인재가 없다고 탓하고만 있는 것이다.
과연 인재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인재는 있으나 단련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인가?
아! 천리마가 있으나 손양(孫陽)을 만나지 못하고, 아름드리 나무가 있더라도 훌륭한 장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그것들이 굽고 못쓰게 되는 경우를 어찌 이루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단련법을 알고서 깨달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으나, 단련법을 쓰지 않았고 다른 방법으로 학인을 단련하여 간혹 깨달은 적이 있다는 소문은 의심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속담에, 『동쪽 집은 불을 켰고 서쪽집은 어둡다』 하는 말이 있다. 자기의 집이 어둡다고 해서 온 천하의 등불과 횃불이 모두 꺼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관문을 부수고 안목을 열어주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지극히 어려운 일이나, 기이한 공력이나 특수한 작용을 알아두지 않을 수 없으니 여기 이 한 방법이 있다.
※박랑 : 장량이 역사를 시켜서 진시황을 저격한 곳.
※마릉 : 유명한 병법가인 손빈이 방연을 죽인 곳.


9. 강종(綱宗)을 연구하라
소위 올바른 선에는 근본이 있고 강종이 있다.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갑자기 강종만을 일삼는다면 지해(知解)가 많아서 깨달음의 문이 막힐 것이니, 필시 제창선(제창(提唱禪)으로 전락하여 올바른 깨달음을 잃게 될 것이다.
근본은 이미 깨달았으나 강종을 버린다면 헛된 그림자만을 좇거나 깡마르고 거친 풍격을 이루게 될 것이니 필시 막대기 선으로 전락하여 종지가 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한 강종은 있을 수 없고 깨닫고 난 후에 강종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 흐리멍텅한 것으로 종문을 삼는 자는 한갖 세존이 꽃을 드신 것이나 상나(商那)가 손가락을 든 것이나, 용수의 월륜(月輪)이나 가야(伽耶)가 거울을 쥔 것이나, 구지(俱 )의 일지와, 마조의 일답(一踏)과 설봉의 공과 화산(禾山)의 북과 황벽의 삼돈(三頓)과 비마(秘魔)의 갈퀴 따위만을 보고 종문의 대기대용은 단순명쾌하기가 이와 같고 고준하기가 이와 같으며 우뚝한 것이 이와 같다고 생각하면서 『이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보인 것이며, 문자를 세우지 않은 것이며 향상으로 보인 것이다』하고 말한다.
그리하여 강종이라는 말을 하면 지해(知解)라고 꾸짖으며, 실법(實法)이라고 지적하며 갈등의 끈이라고 나무라며 명상(名相)에 집착한 것이라고 배척한다.
아! 옳은 것 같으나 매우 잘못되었음을 누가 알랴.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신 것이 참으로 단순명쾌한 것이었거늘 무엇 때문에 또한 『나에게 정법안장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다』하였으며, 실상묘법의 미묘법문과 전법일게(傳法一偈)와 갖가지 언설을 설하셨겠는가.
조계의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것이 참으로 고준하거늘 무엇 때문에 오조는 또한 『역시 아직 견성하지 못했다』 하고 거듭 질문하여 『반드시 주함이 없이 그 마음을 써야 한다』하고 말한 데 이르러 크게 깨달을 수 있었는가!
임제가 세 번의 방망이를 맞고 대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질러 준 것은 참을 빼어난 일이었거늘 무엇 때문에 새로 칠사(七事)를 세워 후세를 혼란케 하였는가?
운문이 다리를 분지른 바람에 확연대오했거늘, 목주는 무엇 때문에 다시 설봉이 수행에 애쓰는 것을 보고 종인(宗印)을 주었는가? 이미 하나의 깨달음을 옳게 여겼다면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며 비밀히 전해준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동산이 운암의 무정설법(無情說法)에서 깨달았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보경삼매(寶鏡三昧)를 전했으며 군신(君臣), 편정(偏正), 공훈(功勳) 등 오위(五位)와 삼로(三路), 삼삼루(三渗漏) 등 갖가지 세밀한 법을 세웠는가?
그리고 위앙의 삼조(三照), 삼연등(三然燈)과 십구문(十九門)과 96원상과 법안의 십현육상(十玄六相) 등은 모두 깨달은 후에 건립한 것으로 이미 한 번 깨달았으면 그만이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이러한 지지하고 잡다한 것을 더하여 간단통쾌한 한 길을 파괴했으며 천만세에 학인의 지해를 열었겠는가? 여기에 대하여 반드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개 참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미리 단련법을 써서 근본을 알게 하는데 있으며 근본을 이미 알았으면 또한 이 근본[一著子] 중에 체가 있고 용이 있으며, 그 체에는 명암(明暗), 배면(背面), 좌우(左右), 두미(頭尾)가 있고, 그 용에는 살활(殺活), 금종(擒縱), 추부(推扶), 대닉(擡 )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기(對機)에 나아가서 말하면 군신(君臣), 부자(父子), 모자(母子), 빈주(賓主)가 있으며, 빈주에 나아가서 말하면 순성(順成), 쟁분(爭分), 암합(暗合), 호환(互換), 빈주가 없는 빈주가 있으며, 더 세밀히 분석하면 유구(有句), 무구(無句), 유구중유구(有句中有句), 유구중무구(有句中無句)와 쌍암(雙暗), 동생(同生), 동사(同死)가 있으며 더더욱 자세히 말하면 향상일기(向上一機)와 말후일구(末後一句)가 있는 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고인이 말한 『처음 관문에 다달았을 적에는 범성(凡聖)도 통하지 않는다』 한 것이 이 뜻이다.
임제도 이러한 입장에서 간단통쾌한 법 중에서 삼구(三句), 삼현(三玄), 삼요(三要)를 세워서 학인의 안목을 바르게 했으며, 사료간(四料揀), 사할(四喝), 사조용(四照用), 사빈주(四賓主)를 세웠으며, 삼종의 근기를 나우어 그 기용을 다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가(五家)가 법을 세움에 있어서도 각기 문과 정원이 있었고 문지방과 안방이 있었으니 높은 관문과 단단한 자물쇠는 백겹천겹이라 호랑이를 함정에 빠지게 하고 군사를 길을 잃게 하며 즉시 놓아주기도 하고 뺏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마치 태공의 음부경(陰符經)과 같아서 엿보기가 어렵고 각양각색의 진과 같아서 파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학인의 목숨과 지해를 끊어주기 어려우며,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학인의 망정(妄情)의 관문을 뚫고 정식(情識)의 자물쇠를 열지 못하며 법견을 녹이지 못하여 본시 그대로일 것이니 어찌 불조의 정법안장을 잇겠는가.
어떤 이가 물었다.
『선이 소중한 것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 명언(名言)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초연히 빼어난 점입니다. 지금 강종을 세우게 되면 명상(名相)이 분번(紛煩)하여 일정한 격식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니 이는 학인의 정식과 지견만 더하여 구할 만한 어떤 실제의 법이 있다고 여겨서 총명한 자는 반드시 천착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더욱 헤매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깨달은 자라면 어찌 이러한 따위를 소중히 여기겠습니까?』
조사께서 강종을 세우신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주인공선(主人公禪)은 정식이 없다고 말하면서 순전히 정식이며, 지견을 끊었다고 말하면서 순전히 지견이며, 구할만한 실법(實法)이 없다고 말하면서 일기일경(一機一境)을 인정하여 바로 실법에 떨어져 있다.
임제의 칠사나 오가(五家)의 종지는 미묘하고 은밀한 수단을 사용하여 이들을 낚고 찔렀으며, 요간(料揀)하고 깎아냄으로 해서 지견이 비로소 녹게 되고 정식이 파하게 되며, 실법이 없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만법을 궁진했으면서도 한 법도 남겨두지 않아야만 이것이 진정 통쾌한 법이요, 모든 문을 투탈해 다했으면서도 한 문에도 걸리지 않아야만 진정한 고준(高峻)이며, 대법 소법(大法小法)의 일체 강종을 철진(徹盡)했으면서 강종을 버려야만 진정한 빼어남이다. 어찌 노새를 매는 말뚝을 지키거나 꾸러미 끊어진 끈에 의지하며 꼬리없는 원숭이를 놀리는 것을 말하겠는가.
비유하자면 구주사해(九州四海)와 명산대천을 편력했으면서도 다시 집에 돌아와서는 도중의 자취를 모두 잊어버려야만 진정으로 집에 돌아온 것이요, 학문하는 자가 이유(二酉), 사고(四庫)의 책을 다 모으고 천록(天錄), 석거(石渠)의 장서를 다 읽었으면서도 가슴에 한 자도 남겨두지 않아야만 박통(博通)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만약 발검음을 일 보도 옮기지 않았으면서 사해와 천하를 두루 여행한 자를 무시하거나 비방하는 자나 눈은 잠시도 경사를 스친 적이 없으면서 아만심만 높아 천하의 독서자를 꾸짖는 자는 비록 삼척동자라도 전혀 상식에 벗어나는 짓임을 알 것이다.
근본만을 소중히 여기면서 강종을 의심하여 갈등이라 하거나 지견이라 하거나 실법이라 하는 자는 어찌 이런 자와 다르겠는가!
대개 강종을 부정하는 자는 자신의 종안(宗眼)이 분명치 못할 뿐만 아니라 학인을 가르칠 적에도 걸핏하면 칼을 만지기만 해도 손을 다치기 일쑤여서 경계에 당면하면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이 복잡하여 알기 어려운 경우에도 이를 살짝 바꿀 줄 모르며, 거짓말이나 속임수에도 이를 가릴 줄 모르며, 서로 상대하여 맞겨루더라도 이를 이길 방법도 없이 그저 감각(鑑覺)만을 믿고 극칙(極則)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이와 같은 법문의 낡은 틀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깨달은 후의 강종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보지 못했는가! 길상 실(吉祥 實)이 깨달은 후에 천의 회(天衣 懷) 가 이렇게 물었다.
『동산의 오위군신(五位君臣)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저에게는 한 위도 없습니다』
『이 녀석이 여전히 견처(見處)를 가지고 있구나. 종지를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는 다섯사람으로 하여금 일제히『실 상좌!』하고 부르게 하여 오지(奧旨)에 깊이 계합하게 하였다.
묘희가 말하기를 『금강 덩어리와 밤송이는 실로 삼키기도 어렵고 뚫기도 어렵다. 여기에 이르러서 바로 알았더라도 대법(大法)이 분명치 않으면 역시 어찌하지 못한다』했으며, 또『고인의 차별인연은 대법에 한 번 분명히 들어 일으키자마자 금방 깨닫는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누가 대법과 소법을 말하는 것을 보면 모질게 욕지거리를 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였다.
묘희는 무엇 때문에 온갖 말로 대법을 강조하였는가? 과연 묘희가 멋대로 지어낸 말일까? 아니면 요즘 사람들이 스스로 이르지 못했으면서 함부로 비판하는 것일까?
그러므로 학인이 근본이 이미 분명하면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힘써 노력하여 고인의 집안에 들어가기를 애써야 한다.
스승은 학인이 이미 근본을 꿰뚫었음을 보면 다시 날카로운 수단으로 통렬히 단련하여 힘써 강종의 안목을 투탈케 하여 피차간에 부질없이 전하고 잇는 짓을 그만 두면 정법안장을 영원히 유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감각 :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는 虛靈不思義한 心性을 말한다.


10. 행실을 엄정히 해야 한다
향상일로(向上一路)는 천성(千聖)도 전하지 못한다. 마치 큰 불덩이와 같으니 누가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 볼수 있으며 독을 발라 둔 북과 같으니 누가 능히 귀를 귀울여 들을 수 있겠는가.
근기가 번개불도다 날쌔더라도 이미 더딘 것이며 말이 떨어지자 마자 정통했더라도 오히려 광견(狂見)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일이건대 시시콜콜 행실을 따지며 부질없이 공훈(功勳)을 논하랴만 달마대사가 말하기를 『행(行)과 해(解)가 서로 합치되어야 조사라 한다』 했으며, 운거(雲居)는 『저쪽을 알고 나서 도로 이쪽을 향하여 걷는다』 했으며, 용천(湧泉)은 『해(解)를 본 자는 많으나 해(解)를 행하는 자는 만 명 중에 하나도 없다』 하였으니, 이를 미루어 예로부터 모든 조사들이 수행과 이해를 따로 나눈 적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겠다.
만약 수행은 있으나 이해가 없다면 행실은 정순하지만 계급에 지나지 않아서 비록 수행력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치복(痴福)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을 것이요, 이해는 있으나 수행이 없으면 견지는 탁월하더라도 오히려 판자를 지고 가는 격이어서 비록 깨달음은 있으나 모두 광혜(狂慧)에 속할 것이니, 하나는 눈은 있으나 발이 없는 격이요, 하나는 꼬리는 있으나 머리가 없는 격이어서 구경(究竟)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장로가 된 자는 그 임무가 인재를 단련하는 데 있으니 치우치는가 완전한가를 살피고, 머리인가 꼬리인가를 저울질하여 학인으로 하여금 처음과 끝을 완성하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에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학인이 도안이 열리지 못했으면 먼저 참구하여 그의 이해를 단련하게 하되 뼈를 깎고 골수를 빼듯, 통렬히 침을 놓아 수행은 우선 나중으로 미루게 할 것이니, 소위 『그대의 안목을 귀하게 여길 뿐이지, 그대의 행실은 말하지 않는다』 한 것과 같이 하라.
큰 일이 이미 분명해졌으면 곧 그의 올바른 행실로 수행을 단련케 하라.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발걸음이 삿되지 아니해야만 이해가 비로소 진실할 수 있는 것이니, 소위 『한 길의 말도 한 치의 행보다 못하다』 하는 뜻이다.
그러나 법을 주관하는 자가 강종의 안목을 써서 자세히 사람을 살피지 않고 한갓 수박 겉�기 식으로 인재를 가린다면 속선(俗禪) 중에 두가지 갈림길이 있게 된다.
주인공으로 선을 삼는 자는 행동과 동작을 주재하는 것으로 불조의 대기대용이라고 하면서 따를 것도 어길 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인 것, 이를 『작용이 성(性)이다』 하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흐리멍텅한 생각으로 인하여 습기가 자신도 모르게 인발하여 술마시고 고기 먹는 것을 상관치 않고 파계와 정계에 구애되지 않는 것이 대도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나무라면 『어리석은 자여, 어찌 불성이 둘이 있으랴』하고 말한다.
이런 자는 악업으로 마업(魔業)을 이룬 자라고 할 것이다.
공에 빠진 것으로 선을 삼는 자는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아무 것도 없고 텅빈 것으로 자신의 안심입명(安心立命)으로 여기면서, 부처도 조사도 없어서 모든 것이 공한 것, 이를 『향상의 실체』라고 부르는 것이다』하고 생각한다.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사견(邪見)이 틈을 타고 들어와서 마침내 다른 사람의 비방도 꺼려하지 않게 되고 죄와 복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안하무인의 거친 행동을 하게 된다.
누가 꾸짖으면 『못난 자여, 아직도 그런 것이 있는가?』한다.
이런 자는 무지선(無知禪)으로 인과를 무시하는 자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는 학인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또한 스승의 허물이다. 그가 강종으로 학인을 단련하지 않고 그저 그림자만을 취하여 서로 인정한다면 근기가 하열한 자는 삿된 지해(知解)를 내어 법문에 해를 입힐 것이다.
대개 스승의 가르침이 올바르면 학인의 수행과 이해도 올바를 수밖에 없어서 서로 전하는 것이 그릇으로 그릇을 전하듯 깊고 멀리까지 흘러갈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이 올바르지 못하면 학인의 수행과 이해도 사특할 수밖에 없어서 이런 것이 서로 잇고 가풍을 이루면 마치 오(烏)자나 언(焉)자가 마자가 되어 버리듯 오랫동안 유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인가?
도안에 통철했으면서도 또한 행실을 소중히 여긴다. 비록 장로이기는 하지만 매사를 대중과 같이 한다. 그의 몸은 청결하고 그의 뜻은 고상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이 늦어서야 잠들며 근고(勤苦)로 일생을 살아가신 선덕으로 모범을 삼아 금옥을 초개와 같이 여긴다. 도행이 안으로 충실하여 총림이 본받을 만하다. 이를 올바른 것이라고 부른다.
어떤 것이 올바르지 못한 스승의 가르침인가?
도안(道眼)이 소광(疏狂)하면서 마음으로 행실을 우습게 여긴다.
한 번 스승의 지위에 이르게 되면 모든 일을 대중과 같이 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이나 따뜻한 옷을 탐한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고 느긋하게 일어나며, 안일을 탐하는 것은 독술을 탐하는 것과 같다는 소리를 부질없는 소리라고 여기면서 집요하고 고집스럽다. 수행인을 비웃으니 아무도 따르려 하지 않는다. 이를 올바르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적부터 오늘날까지 불법이 흥성했던 것과 가장 훌륭한 수행인이 장로에게서 나왔으며 진종(眞宗)이 쇠퇴했던 것과 가장 방일한 수행인도 장로에게서 나왔던 것이다.
장로가 행실을 중히 하면 용천(龍天)이 돕고 사중(四衆)이 따라서 불법이 반드시 흥성하고 장로가 행덕을 버리면 이승에서는 사람들이 비웃고 저승에서는 귀신들이 꾸짖어서 불법이 반드시 망하게 된다.
대체로 장로의 삿된 행실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수행이 용렬한 자에 지나지 않으면서 거짓 기백으로 불법을 가장하여 불조를 꾸짖고 귀신을 호통치면서 함부로 임제나 덕산에 견주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범부의 지위에 처해 있으면서 인인(因人)으로써 과상(果上)을 사칭하여 불경과 불상을 태우거나 성현을 멸시하여 스스로 단하(丹霞)나 불조(佛照), 호포곤(皓布 )에 비기려 하며, 남전(南泉)이나 귀종(歸宗), 대수(大隨) 등 인천안목을 가진 스님들을 무시하여 함부로 살상하면서 『용상마저 짓밟겠다』 하며, 구마라집, 보지(寶誌), 포대(布袋), 제전(濟顚), 주선(酒仙), 현자( 子) 등의 방편으로 시현하신 스님들을 업신여기며 함부로 고기와 술을 마시면서 율의를 파괴한다.
그러나 옛 성인의 역행(逆行)은 옛성인의 현상(現相)이 있었으며, 불조의 파격은 불조의 출신(出身)이었음을 알지 못하였다.
비록 비단옷을 벗고 남루한 누더기를 걸쳤으나 사람의 안목을 바꾸어 주었고, 진흙속에 뛰어들어 흙탕물을 뒤집어 �으나 사람의 번뇌를 끊어 주었다. 성인을 숨기고 범부의 자태를 나타내어 때로는 신통을 보였고, 과덕을 증득했으면서 인행을 행하여 가끔 영이(靈異)함을 밝혔으니 어찌 어리석은 범부와 같이 전도되고 미혹한 적이 있었겠는가.
오늘날 법문의 책임을 맡은 자는 옛 성인과 같은 신통은 없으면서 한갓 그들의 자취만을 답습하고, 불조와 같은 영이(靈異)는 없으면서 그들의 탐욕만을 본받으려 하니 어찌 사자 몸속의 벌레나 여우의 종자로 스스로 마군에 떨어져서 사람의 올바른 믿음을 잃게 하고 법문을 파괴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장로가 잘못하여 제자가 본받게 되었고, 점차로 전해져서 마업을 이루게까지 된 것이다.
옛말에 『아비가 사람을 죽이면 자식도 반드시 따라한다』 하였다. 만약 깨달은 뒤에 깊이 강종에 들어가서 돈독히 행실을 숭앙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위산이 『공부하는 자가 비록 나름대로 이치를 돈오했더라도 여전히 현업유식(現業唯識)이 남아 있으니, 반드시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했으며, 회당(晦堂)은『내가 처음 입도(入道)했을 때는 매우 쉬운 일인 줄 믿었다가 물러가서 스스로 생각해보니 허물이 매우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힘써 3년을 노력하고서 비로소 모든 일이 이치와 같을 수 있게 되었다』 하였다.
그리고 조주는 40년 동안 잡용심을 하지 않았으며, 향림(香林)은 40년만에 한덩어리를 이루었고, 용천(涌泉)은 40년 동안에도 여전히 치달리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모두 깨달은 후의 일이었다.
선덕이 역행과 순행이 대인의 경계임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으나 행실을 힘써 늙도록 게으르지 않았던 것은 법을 아는 자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납자를ㄹ 단련하여 후인의 표방이 되고 법문의 본보기가 되게 하려면 수행과 이해를 엄정히 하는 일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출신 : 남을 위해 몸을 버린다는 뜻


11. 학업을 연마하여야 한다.
대도는 언어에 있지 않으나 언어가 아니면 도를 밝힐 수 없고, 불법은 배우는 데 있지 않으나 배우지 않으면 법을 밝히지 못한다.
진정으로 생사를 위하는 자가 명상(名相)을 버리고 자신을 다그치며 힘써 참구하지 않고 의학(義學)만은 쫓거나 근본을 버리고 지말만을 추구한다면 총명으로는 업식을 대적할 수 없거늘 박학으로 어찌 고륜(苦輪)을 면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학문의 도는 높고 넓어서 끝이 없고 오묘하고 깊어서 다할 수 없는지라, 선비가 머리가 희도록 육경(六經)을 공부하여도 오히려 성취하지 못했음을 아쉬워 하거든 더욱이 손톱이 닳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출세의 도를 구하는 자이겠는가.
그러나 종교를 통하여 고금을 분석하며 강종을 밝히고 기용을 알아서 후인들의 안목이 되고 인천의 스승이 되려 한다면 학문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학문에는 내학(內學)과 외학(外學)이 있다.
내학이란 어떤 것인가? 용궁에 가득하고 해장에 넘치며 인도와 우리나라의 것과 중국어와 천칠백칙의 갖가지 언설갈등인 출세간의 일체 저술이 이것이다.
외학이란 어떤 것인가? 삼황오제의 전적과 구삭(九索)과 시서(詩書)와 육예(六藝)와 진체(津逮)의 장서와 국문(國門)과 명산의 영원한 가치가 있는 저작과 춘추사학과 제자백가인 세간의 일체 전적이 이것이다.
내학이 아니면 본업을 알 수 없으니 세상에 나와 어떻게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며, 외학이 아니면 유술(儒術)을 들을 수 없으니 세간에 나아가서 중생에 응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선류(禪流)는 텅비어 배우지 않고 암둔하여 무지한 것이 본분이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불조의 심수(心髓)를 밝힐 수 있으며, 천하 승속의 준걸한 이를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어떤 이가『향상일착(向上一着)은 이름과 언어가 멀리 끊어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의 밖에 따로 전한다』 하셨고, 육조는『제불의 묘리는 문자와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했으며, 약산은 법을 설하지 않으면서『경은 경사가 있고, 논이라면 논사가 있다. 어찌 산승을 탓하랴』 하였습니다. 지금 사람들에게 학업을 연마하여 굳이 명구를 익히게 하고 경사를 알고 문필을 익히며 단황(丹黃)이나 만지작거리게 하여 선문을 문자로 바꾸어 버리고 선종(先宗)을 파괴하는 것은 필시 이로부터 비롯될 것입니다』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참학(參學)이라는 말은 조사들께서 세우신 것으로서 여기에는 순서가 있다. 비록 학문만을 중히 하고 참구를 버려서도 안될 것이지만 참구하기만 하고 학문을 폐해서도 안 된다.
지금 근본이 분명치 않고 의단을 파하지 못했으면 날카롭든 둔하든 어떤 근기를 막론하고 누구나 반드시 힘써 참구하여야 한다.
참구할 때는 명언(名言)과 지견을 여지없이 끊어버려서 사방에 문이 없으나 철산(鐵山)을 가로질러 뚫고 나아가듯 해야 하며, 이마 위에 칼을 걸어두고 피가 범천에 까지 뿌려지도록 하여야 한다.
한 글자라도 남겨두면 잡독이 심장에 파고들 듯 할 것이요, 눈안에 가루가 들어가듯 할 것이니 학문을 말할 수 있겠는가?
참구하여 깨달으면 새매가 유리병을 깨고 날아가듯 하여 하늘과 땅을 뒤덮어 허공을 치며 소리할 것이요, 소리와 빛깔을 투탈하여 고목에 용이 울부짖듯 할 것이니 여러 조사의 언구(言句)는 이 무슨 그릇이 울리는 소리며 삼승(三乘)의 교의는 이 무슨 나귀를 매는 말뚝같은 것인가!
덕산이 대오한 후 『어떤 교묘한 언변이라도 털 한 올을 허공 속에 놓아둔 듯 하고, 세상의 어떤 귀한 직위라도 한 방울의 물을 바다에 던져둔 것과 같다』하였다.
만약 명언(名言)을 한 쪽으로 밀쳐두고 한 번 크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길을 찾지 않았다면 이와 같이 확철하고 이와 같이 기특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학문을 중히 하고 참구를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의단을 파하고 근본이 분명해진 후에는 열반심(涅槃心)은 쉽게 알 수 있으나 차별지(差別智)는 알기가 쉽지 않다.
이는 고인도 말씀하신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열반심 중에는 무궁하게 미세한 것이 있고, 차별심 안에는 무한한 변화가 있어서 여러 조사스님들의 기연(機緣)은 고리를 잇대어 꿴 쇠사슬과 같고, 오가(五家)의 종지는 방안의 병부(兵符)와 같다. 그래서 말과 뜻에 칼을 감추고 있어서 금이나 옥으로 갈아도 드러나지 않고 유무(有無)가 뒤엉켜 있어서 거미줄이나 개미의 발자국만큼이라도 그 실마리를 알기 어려우니, 어찌 겨우 분명하고 확실한 한 조각을 얻은 것으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연구하고 애써야 할 것은 학문이다!
더욱이 장로가 아니라면 모르거니와 기왕 이러한 지위에 있고자 한다면 질의문답에 있어서 당연히 사중(四衆)에게 게송언구나 징염별대(徵拈別代) 등의 법어를 일러주어야 하며, 당연히 학인들에게 잘못을 지적하여 고쳐주고 막힌 곳을 뚫어주어야 한다.
이것은 아무렇게나 하여 책임을 때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한 삼장(三藏)의 방대한 문장은 그 뜻이 하늘처럼 드넓고, 오부(五部)의 계법(戒法)은 그 율이 바다와 같이 방대하여, 함 속에 가득하고 시렁 위에 쌓여 있다.
어찌 이것들을 높은 다락에 밀쳐두고 멍청한 것만으로 선이라 일컬으며, 자진하여 맹인이 되어 아무 것도 모르는 것만으로 중생을 속이랴.
법문의 전적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고 세상을 다스리는 언어에도 온통 캄캄하여 누가 종교에 대해 물으면 이리저리 둘러맞추기 일쑤고, 전장(典章)에 대해서 물으면 낯이 붉어지고 말이 막힌다. 입을 열면 야간(野干)의 소리를 하고, 혀를 놀리면 아양(啞羊)의 추태를 부린다.
그리하여 가사와 불자를 들고 곡록에 걸터앉은 채 자칭 도인이라고 하면서 여염집 아낙네들을 속이며 『나는 아무 종 아무 파의 법을 이었다』고 말하나 어찌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예기(禮記)에 『말은 흔적이 없으나 행을 보면 멀지 않다』하였다. 그러므로 납자를 단련하면서 한 법에만 얽매인다면 학인이 그의 능력을 다할 수 없고, 인재를 도야하면서 내용과 형식을 겸하지 않으면 법문이 그 작용을 얻지 못한다.
맹인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는 것과 같이 전혀 근본을 알지 못하는 자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근본이 비록 올바르다 하더라도 뻣뻣하기만 하고 형식이 없는 자는 혼자만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중생을 이롭게 하려면 부족하며, 깨진 그릇은 그릇이 아닌 것과 같이 인품이 고상치 않는 자는 말할 필요도 없겠거니와 인품이 비록 고상하다 하더라도 안으로 절제가 있기만 하고 밖으로 학문을 게을리 하는 자는 자신의 수행만이라면 가능하겠으나 다른 사람을 부축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비록 학인의 자질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스승의 단련이 철저하지 못한 허물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편견인 것은 육조는 문자를 알지 못했다는 것으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학인이 고금의 일을 약간 알려 하는 것을 보면 집을 버리고 달아나는 놈이라고 꾸짖으며 덕산의 『붙은 것을 떼어주는 것일 뿐이다』한 말을 실법(實法)이라고 여기면서 도반이 조금 경교를 연구하는 것을 보면 남의 보물을 헤아리고 바닷가에서 모래를 세는 짓이라고 비웃으며, 늙도록 그저 앉았기만 하고 귀신 굴속에 몸을 파묻는 것으로 진법(眞法)이라고 여기면서 다른 선지식의 저술을 보면 지해종도(知解宗徒)라고 매도한다.
이로 인하여 천동·설두·영명·불인·명교·각범·묘희·중봉과 연삼생(璉三生), 천만권(泉萬卷) 같은 이를 문자 선지식이라고 깎아내리니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마명과 용수는 어찌 일찍이 논을 지은 적이 없이 선법(禪法)만을 전하여 서천의 조사가 되었겠으며, 육조는 비록 문자를 알지 못하였으나 법을 설함에 구름이 일 듯 하여 금장옥구(金章玉句) 마다 만세의 법칙으로 숭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핑계하여 후인으로 하여금 전혀 학문을 폐하게 하고 심지어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게 한다면 참으로 한탄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아! 천지에 문장이나 학문이 깊고 넓은 이나 기이하고 특출한 재능을 갖춘 이가 비록 드물다고는 하지만 위대한 용상 대중 중에서 불조를 그 뼈로 하면서 아름다운 시문을 그 살로 한 이들이 법문 중에 역시 끊어지지 않았으니 근기가 중, 하인 자라도 잘 단련하기만 하면 역시 통달할 수 있는 것이다.
선지식의 위대한 점은 재목을 잘 단련하는 데 있으니 먼저 깨달음의 문을 단련하고 다음은 학업을 연마하여 근본과 외형이 있게 하고, 덕과 학문이 있게 하여 종교를 선양하고 쇠퇴한 흐름에도 의연하게 한다면 법문이 무궁하여 부처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12. 재능이 있는 이를 선발하여 단련하라
명교 숭(明敎 崇)이 말하기를
『존귀한 것은 도만한 것이 없고, 아름다운 것은 덕만한 것이 없다. 도와 덕은 세간, 출세간의 큰 보물로서 재주로써 이를 이루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재주가 있으면서 덕이 없는 것보다 덕이 있고 재주가 없는 것이 더 낫다』 하였다.
세간법도 그렇거니와 하물며 불조를 바라고 생사를 벗어나며 신명(神明)을 단련하여 적멸에 돌아가려는 자는 배워야 할 일이 어떤 일이기에 재능을 갖고 논하겠는가.
그러나 둔한 것에 안주하고 순박한 것을 지키면서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한갓 변변찮은 살림만 꾸려간다면 일신을 편히 하는 것으로는 충분할지 모르나 총림을 주관하고 납자를 가르치며 법문의 막중한 소임을 떠맡으며 불조의 높은 깃발을 세우려 한다면 우수한 재능이 있는 이거나 소질이 있는 이를 선택하여 단련하지 않는다면 어찌 능히 소임을 감당하고 법문을 빛내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총림을 꾸려가는데 있어서는 아무 재능이 없는 이도 곤란하지만 너무 재능만을 믿고 우쭐대는 자도 못쓴다.
자기의 재능은 믿는 자를 들이게 되면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므로 그의 재능을 인정하더라도 그의 덕도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불조의 문중은 세속과 같이 사람을 쓸 수 없다. 설사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부리는 품행이 나쁜 자거나 얼렁뚱땅하게 실속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길들이기에 따라서는 훌륭한 재목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어려운 일은 조물주의 사람을 만드신 조화라고 해야 할는지 완전한 재능을 갖춘 이는 적고 치우친 재능을 가진 자는 많으며 재능과 덕을 함께 갖춘 자는 적고 겸하지 않는 이는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진실성과 중후함과 언행과 배우기를 좋아함과 수행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살펴보면 그의 덕이 대중을 감복시킬 만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천거하여 일을 맡겼을 경우에, 마음이 진퇴양란이거나 우왕좌왕하여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면 그러한 단점은 재주요 덕은 아니다.
그의 재주가 민첩하고 과감하며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자를 살펴보면 그러한 재주는 충분히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직책을 맡겨 보아서 어진 이와 재능이 있는 이를 질투하거나 대중을 교란하며 갖은 간악한 짓을 부린다면 그의 부족한 점은 덕이요 재주는 아니다.
장로가 누군들 덕을 소중히 하지 않으랴만 실제의 일도 다스리지 않을 수 없고, 누군들 인재를 아끼지 않으랴만 일을 그르치는 자는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소중히 해야 할 자는 도가 있는 자로서 이런 자들을 도야하고 탁마한다면 강직하거나 유순한 자들을 모두 효과적으로 쓸 수 있고, 날카롭거나 둔한 자라도 쓸모없는 재목감은 아무도 없으므로 이런 자를 선택해 단련하여 일을 맡겨야 한다.
일에는 크고 작은 것과 안과 밖의 일이 있으며, 좌우(左右)와 문무(文武)의 일이 있으니 총림을 주관하는 자는 이러한 것들에 하나도 모자라서는 안 된다.
백장도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청규를 세움에 있어서 먼저 상소임(上所任) 10가지를 정하고, 다음에 하소임(下所任)을 두었던 것이다. 이는 조정에서 사람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별이 나열한 듯하고 바둑돌이 널려있듯 하며, 실올이 짜진 듯하고 새끼가 꼬아진 듯하여 머리와 눈이 서로 돕고 손발이 서로 맞는다면 총림이 정돈되고 법도가 행해질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재질은 우수하고 부족한 자가 있고, 기량은 좁고 넓은 자가 있으니 그의 능력이나 그릇에 따라 부린다면 인재를 적절히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림은 사람의 근기를 도야하고 기질을 변화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에 또한 그냥 그대로 버려둘 수는 없다. 반드시 충분한 단련으로 그들의 허물을 시정하여 대중을 엄히 하여야 하며, 그들의 나태함을 꾸짖어 다른 이를 징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상과 벌이 분면하여야만 유능한 인재가 배출될 것이다.
이것은 총림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의 대강(大綱)으로서 결코 함부로 처리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 중 특히 두각이 영이(英異)하고 근본강종이 분명하여 법문의 종자가 될 가망이 있는 자는 뽑아서 단련시키되 더욱 엄격히 해야 할 것이요 소홀히 하거나 팽개쳐 두어서는 안된다.
동서(東序)는 낮은 소임으로부터 올라간다.
곧 열중(悅衆)은 풍송(諷誦)을 주관하고, 직세(直歲)는 중무(衆務)를 맡아한다.
전좌(典座)는 음식을 주관하고, 지고(知庫)는 회계를 맡으며, 부사(副寺)는 총리를 도와주고, 유나(維那)는 당규(堂規)를 바로 잡는다. 감원(監院)과 도사(覩寺)는 사중의 일을 총괄케 한다. 그러나 잠시라도 단련을 그치면 분란이 생겨서 반드시 피폐하게 되고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다.
서서(西序)는 힘든 소임으로부터 올라간다. 곧 시자는 장로를 가까이 모시면서 향을 사루거나 의발을 챙겨드리거나 탕약을 시봉하며, 기록과 서장(書狀)은 모두 대중의 학습을 편리하게 도와 준다. 지객(知客)은 손님을 맞이하고, 지욕(知浴)은 대중의 목욕을 됫바라지 하며, 지장(知藏)은 경함(經函)을 관장한다. 서기는 문묵(文墨)을 담당한다.
당 중의 판수(板首)는 당주(堂主)와 후당(後堂)이요, 더 올라가면 서당(西堂)과 수좌(首座)다. 이렇게 사판수(四板首)의 소임을 맡은 자는 불법의 모범이 되어 장로를 보좌하여 대중을 단련하고 사방에서 오는 학인을 제접한다. 이렇게 되어야만 일이 비로소 완비하게 된다.
고인이 말하기를 『복잡하여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맡겨보지 않으면 날카로운 근기를 구별할 수 없으니, 비록 재능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집사(執事)를 경험해 보지 않으면 어떻게 덕기(德器)를 도야하며 지능(智能)을 넓히고 모으랴』 하였다.
얼렁뚱땅 마음 내키는대로 하는 자거나, 자신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남을 시기하는 자에게 총림을 맡기면 어찌 일을 망치고 결렬되지 않겠는가!
더욱이 고래의 선지식이 인재를 연마하려 할 적에는 총림의 소임을 겪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위산고불은 백장이 전좌를 시켰고, 설봉은 덕산이 반두(飯頭)를 맡겼으며, 내지 양기와 자보는 고사(庫司), 앙산과 설두는 지객, 운봉는 화주(化主), 오주는 마두(磨頭), 묘희는 동사(東司), 백령은 지욕, 원통은 지중, 회석은 감수(監修)를 맡았으며, 권직세(權直歲), 광통두(匡桶頭)라는 이도 있었고, 동산의 향등(香燈), 대백의 지수(知隨), 육침의 하판(下板)이 대개 고행을 우선한 것으로서 모두 그릇을 기르고 재질을 단련하며 바탕을 바로잡고 신체를 튼튼히 하여 그들로 하여금 중요한 임무를 맡아 먼 곳에까지 이르러 법문의 초석이 되게 하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어떤 일을 부여하면서 항상 여러 가지의 직책을 주지 않고 반드시 수좌나 서당의 직책을 맡겼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왕 법문을 짊어지고 가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납자를 단련할 수 있어야만 사방에서 오는 학인에게 이익을 줄 수 있고, 총림을 주관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여러 사람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다 하여 혜명을 잇는 것은 아니다.
만약 판수(板首)일 때에 엄한 수단으로 단련하여 발톱을 날카롭게 해두지 않으면 병불(秉拂)에 천거되더라도 성광(聲光)이 빛이 흐리게 된다.
갑자기 이러한 지위를 차지하여 이러한 법을 행하면 변통에 대응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아! 근세의 법문을 보면 단련을 가르치지 않고 사람을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하여 납자가 문에 들어서면 그저 적당히 일을 맡기기가 일쑤다.
다시 말하면 집사를 맡기되 자질을 따르지 않고 함부로 소임을 맡기면서 총림이면 어디서나 누구는 시자를 맡았고 누구는 지객을 맡았으며, 아무개는 요원(寮元)과 직세를 맡았고 내지 아무개는 선중(禪衆)을 맡았다고 하면서 결국 전사(典司)를 시켜서 복잡하게 뒤얽힌 일을 시험하거나, 판수에 천거하여 발톱을 더욱 날카롭게 하여 재능을 단련하고 명성을 축적하게 하지 않는다. 이런 짓은 볼품없는 것인 줄 알면서 싼 맛에 샀다가 돈을 더 들이는 격이요, 형편없는 것인 줄 알면서 헛된 이름에 얽매인 짓으로서 비단 천하의 중생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속여서 법문이 쇠퇴하더라도 다시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을 본받겠는가.
자로로 수월하게 된 불조가 없었으며 무능한 장로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장로는 인천의 스승이 되고 용상과 같은 대중을 거느리며 영재의 모범이요 문무의 저울이다. 그럴려면 반드시 도덕이 있어야만 남을 가르칠 수 있고, 또한 재능이 있어야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비록 재능과 지혜를 감추어 어리석은 듯 하더라도 일단 대임을 맡으면 가로 세로로 살을 발라내어 눈에 완전한 소가 없으니, 어찌 스승이 인재를 단련하면서 재능이 있는 자를 가려서 단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초학자를 단련하여 안목을 열어주고자 한다면 혹독한 방법으로 단련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구참(久參)을 단련하여 그릇을 이루려고 한다면 가려서 단련하는 것보다 정미한 방법이 없다.
이러한 방법 외에 영현(英賢)이 배출되어 조정(祖庭)을 밟아버리기를 기대한다면 요행히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속담에 『백성을 가르치지 않은 것은 바로 백성을 버리는 것이다』 하였다. 통곡하고 탄식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점이다.
※동사 : 변소청소하는 소임
※지수 : 큰스님의 시봉
※병불 : 장로를 대신하여 拂子를 들고 대중에게 설법하는 소임. 四板首가 맡는다.


13. 신중히 전하라
단련에 관한 이야기는 이상으로 마친다.
그러나 시종이 원만하려면 전법(傳法)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만약 불성이 있는 이면 누구라도 단련을 받을 수 있고, 단련을 받으면 누구라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하여 반드시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인은 『상근이지(上根利智) 여야만 비로소 선을 참구할 수 있다』 하였으나, 내가 일찍이 이 말이 옳지 않다고 배척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용광로는 무쇠를 녹이는 곳이요, 양의(良醫)는 병든 이를 치료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련할 줄을 모르면 비록 상근일지라도 폐기(廢器)가 되고 만다. 더욱이 이보다 못한 자랴.
단련에 익숙하면 비록 무쇠나 병든 자라도 능히 훌륭한 재목감으로 만들 수 있다. 하물며 이보다 나은 자랴.
마음이 있는 이는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고 성품이 있는 이는 누구라도 깨달을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선지식의 유능한 단련 솜씨에 있다. 그리하여 때를 긁어내고 광택을 연마하여 때가 다하면 광명이 나타난다. 마치 거울을 닦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요즘 단련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것을 탓하지 않고 중, 하근기여서 참선할 분수가 못된다고만 한탄한다.
이것이 만고에 미련한 생각이며 내가 통분을 금치 못하는 점이다.
그러나 한번 깨닫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이 법을 전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만 알았지 둘은 모르는 생각이다.
제자가 이 법을 전해받을 만한 이는 반드시 도안(道眼)이 종조(宗祖)를 계승할 만하고 행덕(行德)이 인천의 모범이 될 만하며, 학식이 후학을 깨우쳐 인도할 만하고 발톱이 납자를 사로잡을 만한 자여야 한다. 그런 후에 세상에 나가 세상을 교화하게 하는 책임을 부여할 수 있다. 마치 도장을 찍음에 도장의 문양이 꼭같은 듯이 되어야만 법문이 허락되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법시대에 완전한 재능을 갖춘 자를 얻기 어렵고 훤출한 그릇을 이룬 자를 찾기 어려우며 또한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야만 심행(心行)을 익숙히 알 수 있다.
그러니 비록 종조를 초월하는 훤출한 안목은 못되더라도 또한 네모진 바탕에 둥근 뚜겅이기까지는 아니라면 다소의 재간이 있어서 법도에 모범이 되기에 가까운 자라면 이것이 가능하다 하겠으나 장로가 되고 선지식이 될 수는 없다.
또한 도안이 밝고 인품이 고상하며 불조의 강골을 갖추고 성미가 대쪽같아서 남의 곡식을 해치지 않은 이어야만 될 것이요 용렬한 자나 삿된 자는 절대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 불법이 쇠퇴해진 것을 이루 다 말할 수는 없다. 법을 주관하는 자를 보면 한갓 사법(死法)에만 안주하여 애써 단련하지 않으려 하니 깨달은 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깨달은 자를 찾기 어렵고 법문이 단절될까 염려된다고 하여 조그만 지견을 갖춘 자라도 발견하면 즉시 법을 전하고 있으니 이렇게 하는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근본만 귀히 여기고 강종은 소중히 여기지 않음으로해서 사람을 잡아서 바꾸어 주는 수단이 없이 하나의 막대기 같은 선(禪)만으로 원칙을 삼는다. 그리하야 입이 매끄러운 자는 모두 관문을 뚫고 통과하고 그외 다른 이는 세밀한 단련을 내버려두고 묻지 않는다. 이렇게 멍청한 문에서는 전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둘째는 장로가 비록 그릇을 갖춘 자를 선택하고자 하나 죽비 아래에서 인재를 배출하지도 못했고 또한 적막한 채로 체념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외부의 낯선 자가 조그마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이 자가 법수(法數)에 적당하지 못한 줄은 분명히 알지만 이를 트집잡을 처지도 못되며, 어쩌다 한 사람을 선택했더라도 그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떠나버린다. 그러니 전법이 범람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말하고자 한다.
차라리 쉬운 것은 깨닫는 일인데도 도리어 거북털이나 토끼뿔처럼 어렵게 생각하고 어렵게 여겨야 할 것은 전하는 일인데도 법명을 짓거나 계를 받듯 쉽게 생각한다. 어찌 매우 뒤바뀐 일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조계의 정맥이 근원이 깊고 지류가 길며, 열조의 혜명이 올바르게 전하고 받기를 원한다면 법을 전함에 있어서 꼭 부촉할 이에게 부촉하고 신중히 하고 거듭 신중히 하여 성벽과 같이 튼튼하고 태산과 같이 엄준하게 하여 그림자를 보고 메아리를 들은 자가 한번 전하고 다시 전함으로 해서 불법이 점차 붕괴되어 혼란에 빠지게 하지 않으면 법문이 망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그렇다면 선배 존숙들과 같이 관문을 굳게 지키고 죽을 때까지 한 사람에게도 법을 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선지식이 그 시대의 풍속에 격분하여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다 정도가 지나친 것으로 만부득이 그렇게 했으나 역시 중도는 아니다.
불조의 혜명을 대대로 잇고 의법(依法)을 전하여 천만세에 광명종자를 뿌려두어야 할 것이니 함부로 법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옳지 않은 일이지만 어찌 결국 단절되는 것이 옳다고 하겠는가.
세존과 서천의 열조들은 언제나 법을 전할 때 반드시 입이 쓰도록 『후래에까지 전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라』 하고 말한 것을 보지 못했는가?
다만 그 사이에 어떤 이는 법을 전한 사람이 있기도 하고 혹은 없기도 했으며, 혹은 많기도 하고 적기도 했으며, 제각기 정해진 분수가 있었으니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닌 만큼 정당한 것을 소중히 여겼을 뿐이었다.
마조는 84인의 선지식을 배출하여 각각 종주(宗主)가 되었으나 부당한 그릇이 없었고 후래에 인재가 극성했다고 할 만한 이로는 운문, 동산, 법안, 분양, 황룡 남, 진정 문, 동산, 원오, 묘희 같은 이가 있었다.
특히 묘희가 법을 전한 이는 세보에 90여인을 열거하고 있으나 일찍이 아무도 함부로 전했다고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발을 한 사람에게만 전한 분으로는 풍혈, 양기, 백운, 응암, 밀암 같은 이들로서 비록 외롭게 제사를 받기는 했으나 충분히 집안을 잘 꾸려갈 수 있었으니 이도 역시 단절되는 것으로 고상히 여겼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반드시 단절한 것만을 고상히 여겼다면 사조(四祖)는 무엇 때문에 여부로부터 멀리 우두에게까지 갔을 것이며, 남악은 무엇 때문에 벽돌을 갈았을 것이며, 선자(船子)는 무엇 때문에 배를 뒤집었을 것이며, 풍혈은 무엇 때문에 통곡했을 것이며, 대양(大陽)은 무엇 때문에 정상(頂相)과 가죽신과 장삼을 부산(浮山)에게 주면서 법기를 찾아보게 했겠는가.
다만 선지식의 행사(行事)는 어떤 때는 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키기도 하였으며 혹은 부족한 것을 보완하기도 하여 때를 따라 시설하여 각기 고심하였던 것이니 함부로 논할 일이 아니다.
시절이 흥성할 때는 불조가 배출되고 용상이 모여서 지혜가 스승을 능가하는 이도 있었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지견이 스승과 비슷한 자도 있어서 광대한 가문에 한 사람도 법기가 아닌 자가 없었던 것이니 비록 수십, 수백인에게 법을 전하더라도 많은 것이 아니어서 법을 열어야 할 경우에 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시절이 쇠퇴할 때는 스승도 분별하는 안목이 흐리고 학인도 헛된 이름을 탐하여 몇 사람에게 법을 전하더라도 한 사람도 당기(當機)가 없었으며, 수십 인에게 전하더라도 한 사람도 올바른 출세자는 없었던 것이니 양의 바탕에 범의 가죽을 쓰고 피차에 속였을 뿐이어서 한 사람에게 전하더라도 역시 거짓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올바른 선지식은 차라리 전법을 단절하여 고고(孤高)를 주창하여 부족한 것을 보완했던 것이니 꼭 보완해야 할 경우에 어쩔 수 없이 보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개 법을 열었던 선지식은 쉬운 처지에 있었고 보완했던 선지식은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그러므로 쉬운 것은 쉬운대로 공이 있었고 어려운 것은 어려운대로 이익이 있었다.
보완한 선지식은 비록 법을 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역경에 굴하지 않는 우뚝한 기둥이었을 뿐더러 도안을 갖추어 백세에까지 광명이 찬연하였다. 이를 법이 끊어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함부로 법을 남발하는 문중은 비록 많은 이에게 법을 전했다 하더라도 한낮에 오이밭에 물을 대는 격이어서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얼마 가지 않아서 쇠퇴하고 말 것을 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강종을 알고 단련을 알면 첫걸음에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요, 깨달은 후에도 방심하지 말고 신중히 전한다면 언제나 법문이 빛날 것이다.
강종을 무시하고 단련을 소홀히 하면 법을 전함에 있어 처음부터 잘못되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지나치게 신중히 하면 또한 단절하는 근심이 있을 것이니 모두 법문의 복이 아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올바른 선지식은 불조를 위하여 도둑떼 속에 들어가 사람을 구해야 하며 인천을 위하여 안목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니, 차라리 신중히 할지언정 외람되지 않으며 차라리 작을망정 진실하게 하고, 많으면서도 거짓되지 않아서 잡초가 곡식과 혼란되지 않게 하면 혜명이 반드시 영원하고 창성(昌盛)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입이 쓰도록 힘써 단련법을 밝혔고 끝에 가서 전법을 신중히 할 것을 부탁하며 말후에 한마디 덧불이는 바이다.
강종을 소중히 하고 단련을 부지런히 하며 신중히 전하라!
이 세 가지는 아직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서 실행하기에 쉽지 않은 법이다.
재삼 이를 강조하면 반드시 금기시 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안(正眼)이 유통하고 후손이 힘을 얻고자 한다면 방법은 이 것뿐이다.
속담에『꼭 해야 할 일은 혀가 잘리는 것을 꺼려하지 말라』하였고, 공자는『나를 알아줄 것도 춘추(春秋)요, 나를 험담할 것도 춘추다』하였다.
나는 우선 이 말을 남겨 납자들에게 전하노라.
천백 세 후에라도 다시 자운(子雲)이 태어난다면 반드시 자운을 알아줄 것이다.
※자운 : 한나라 사람으로 굴원을 사모하여 '反離騷'를 지어 굴원이 빠져 죽은 岷山의 강물에 던져 굴원을 弔喪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