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스님

전강스님-달다..

通達無我法者 2007. 5. 9. 16:56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이것이 바로 만공 큰스님의 오도송이다.
인생의 무상함은 찰나다. 일체세간법은 꿈 같고, 환(幻) 같고, 그림자 같다. 이 몸으로 다행히 정법을 만났으니 생사해탈하는 이 참선법을 닦지 않으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또 알면서 닦지 않으면 더욱 어리석은 것이다.

금일 생사해탈정법을 배우는 대중들은 조금도 알음알이를 내지 말지어다.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다면 깨치기 쉬운 것이 곧 도(道)이다.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주인공인 본각(本覺)이 있다. 즉, 참선을 하여 얻는 방법이 있건만 모두 모르고 있는 것이다.


화두를 잡고 있으면 처음에는 사나운 소나 말처럼 마음대로 달아나고 망상 잡념이 더 생기고 또 해태심까지 생긴다. 그러나 퇴전을 하지 말고 계속하고 또 계속하여 용맹정진을 해가면 반드시 화두의 의심뭉치가 가슴 속에 꽉 차게 된다. 마치 늙은 쥐가 쌀궤를 파고 또 파면 반드시 그것을 뚫고 쌀을 먹게 되는 것과 같이 참선법도 또한 마찬가지다.
의심을 하고 또 의심을 하면 번뇌 망상의 파도가 아무리 거세지만 화두를 찾는 힘 앞에는 모두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하는 대중들은 해태심을 내지 말고 대신심(大信心)·대분지(大憤志)·대의정(大疑情)으로 화두만 잡고 매(昧)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언하대오하리라.

내가 23세 되던 해에 마곡사 아래 구암리에 계시는 혜봉 스님을 배방(拜訪)하고 묻기를 "조주무자의지(趙州無字意旨)는 천하 선지식이 반(半)도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반만 일러 주십시오."하니
혜봉 스님이 답하시되 "무(無)"
내가 또 묻되, "그것이 어찌 반이 될 수 있겠습니까?"하니
"그러면 수좌가 한번 일러보소." 하시면서 "어떻게 일렀으면 반이 되겠는고?"하셨다.
내가 답하되 "무(無)."
혜봉 스님께서 잠시 침묵하시더니 또 묻기를 "<거년(去年)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다. 거년엔 송곳 세울 땅이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도 없다.>라는 법문이 있는데 고인이 점검하기를 여래선(如來禪)밖에 안된다 하였으니 어떤 것이 조사선(祖師禪)인고?"하시었다.
내가 답하기를 "마름뿔이 뾰족해서 저와 같지 않습니다.(菱角尖尖不似他)" 하였다.

그때 혜봉 스님이 '아니다' 이 말 한마디만 해주셨으면 그 어른 밑에서 불을 때고 마당을 쓸며 시봉을 할지언정 세상 없어도 안 떠났을 것이다.
그때 "어떤 것이 조사선인고?" 물으셨을 때 "무(無)" 그렇게 일렀으면 파수공행(把手共行)하며 쾌히 인가를 해 주셨을텐데 이것 하나 그때 바로 못 이른 것이 참으로 원통하다. 내가 곧 죽게 되었으니 후래 학자를 위해서 이것을 바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선사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않고 다만 나를 위해 설파해 주지 않은 것을 중히 여긴다는 고인의 말씀이 있지만 이것은 조사선을 일러 놓은 것이지 설파가 아니다.
'무' 라고 한 그놈을 바로 봤는가? '무' 라고 했으니 무슨 '무' 인고? 만약 봤으면 일러 보아라. 그 놈을 여의고 이르면 눈 먼 놈이고, 중생 눈을 멀게 하며, 학다리를 잘라 버리고 오리다리를 잇는 것이다.
학자들이여! 확철대오한 뒤에 살펴볼지니라.

내가 24세 되던 해에 부산 선암사에 계신 혜월 스님을 배방하였다.
혜월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공적을 이르게" 내가 답하기를, "볼래야 볼 수 없고 안 볼래야 안 볼수 없습니다" 하였더니
또 묻기를, "공적영지의 영지를 일러라"
내가 답하기를,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고 볼래야 볼 수 없습니다" 하였더니,
다시 묻기를 "공적영지의 등지(等持)를 일러라" 하셨다.
내가 답하기를, "해는 서산에 지고 달은 동녘에 뜹니다(日落西山月出東)" 하니
혜월 스님께서 "아따야! 우리 조선에 참 큰 도인났다. 누가 공적영지등지를 이를 사람이 있겠느냐." 하시고 대찬을 하셨다.

같은 해에 대각사에 계신 용성 스님을 배방하였다.
용성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제일구냐? (如何是第一句)" 나는 높은 음성으로 "예?" 하니
용성 스님께서 또 묻기를, "여하시 제일구여?"
나는 박장대소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셨다.
내가 여쭙기를 "그러면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하였더니
용성 스님이 부르시기를 "영신아!"
"예."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용성 스님은 즉시 "제일구니라" 하셨다.
나는 또 박장대소 하였다.
용성 스님께서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하시기에,
나는 "그러면 전신구를 물어주십시오" 했더니
"어떤 것이 전신구인가?"
내가 답하되, "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하고 물러 나왔다.


수일 후에 용성 스님께서 대중에게 공포하시기를, "허! 내가 영신이에게 속았구나!" 하셨다.
이 말을 전하여 들은 만공 스님은 "속은 줄을 아니 과연 용성 스님일세" 라고 하셨다.

내가 24세 되던 어느 날, 금강산 지장암에 계신 한암 스님을 배방하였다.
한암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육조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자네는 어떻게 하였으면 인가를 받겠는고?" 하시었다.
나는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 나왔다.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 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 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 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 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에 대오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