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님

[제2장] 윤회와 인과를 믿어라

通達無我法者 2007. 5. 18. 15:42

 

제2장 복된 삶을 살기 위하여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의 받은 삶이 그것이다.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짓는 선악이 그것이다.

 


  윤회와 인과를 믿어라


  고해의 파도를 타고 출렁이는 중생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사바세계!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계, 잡된 인연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회잡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중생이기에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연한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한평생을 고해 속에서 헤매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왜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 것일까? 고해를 벗어나 복된 삶을 영위할 수는 없는 것인가?

  아니다. 누구나 행복이 충만된 삶을 누릴 수 있다. 행복만이 아니라, 영원과 자재로움과 맑은 삶을 얻는 비결도 있다. 실제로 부처님께서는 이 비결에 따라 가장 완벽한 해탈을 이루셨고, 한평생 동안 복된 삶을 이루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이제 그 많은 가르침 중 특별히 두 가지를 뽑아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 내일은 오늘의 상속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의 받은 삶이 그것이다.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짓는 선악이 그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상속이다.   전생은 금생의 과거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이다.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전생을 생각하고 내생을 바라보며 금생을 살아가는 이는 흔치 않다.

  왜 어제는 돌아볼 줄 알면서 전생은 묵살하고, 내일은 기약하면서도 내생은 잊고 사는 것일까? 그것은 전생과 내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지금 이 순간에 너무 집착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 이상 전생, 금생, 내생의 삼세윤회는 반드시 있다. 왜냐하면 삼세윤세는 인, 연, 업, 과의 넷으로 구성된 필연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인연업과   '인'은 씨앗이요 '연'은 연지, 곧 씨앗이 뿌려지는 밭이며, '업'은 밭에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볼 때까지 가꾸는 행위이다. 이렇게 인과 연과 업이 모이면 결과는 자연 '성'일 수밖에...

  씨가 좋고 밭이 좋고 농사를 잘 지었으면 복을 많이 받을 것이고, 나쁜 씨를 밭에 뿌리고 가꾸는 일을 게을리했다면 수확이 나쁜 것은 정한 이치이다. 심은 대로 거두고 지은 대로 받는 것이니, 선인선과 악인악과, 이것이 사바세계의 생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