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수행에 관한 용어해석
-경행-
참선을 하는 수행자가 좌선하다가 졸리는 것을 방지하거나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가볍게 걸으면서 닦는 수행 법. 선원에서는 50분 좌선 뒤 10분의 경행을 한다.
수행자들은 선원 내에서 천천히 걸으면서 좌선으로 굳어진 몸을 풀게 되는데, 이때에도 참선의 근본 과제인 화두(話頭)를 의심하여 철저히 점검하게 된다.
<좌선〉은 정(靜)의 상태에서 행하는 공부인데 대해, 〈경행>은 동(動)의 상태에서 행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행선(行禪)이라고도 한다. 경행의 방법은 두 손을 모아 쥐어 복부에 두며,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화두를 한번씩 염하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50분 동안 좌선한 뒤에 도 잡념이 일어나지 않거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경우에는 좌선으로 계속하게 된다
-관-
대상을 마음으로 주의 깊게 관찰하여 그 대상 자체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주시함으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관이라 한다. 관의 원어는 vipasana이다. 이것은 관찰, 통찰, 주시,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된다.
-결가부좌-
오른쪽 발등을 왼쪽 허벅지 위에 걸친 다음 왼쪽 발등을 오른쪽 하지와 허벅지 위에 올려 놓는다. 이때 두 발바닥은 하늘을 향하도록 하여 위에서 내려다볼 때 발바닥이 보이도록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를 말한다.
허리는 곧추세워 가슴을 열고 목은 바로 세워서 턱을 약간 당겨준다. 그러면 앉은 몸의 모양이 삼각뿔 형태가 된다. 양 무릎은 바닥에 닿도록 하며 정수리는 하늘을 향하게 해서 단전부위가 삼각뿔의 중심자리가 되게 한다. 곧 기운이 단전에 모이게끔 하는 것이다.
불상의 모습은 바로 결가부좌를 한 모습이다.
수행의 기본 자세 이나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약간 힘든 자세이다
-반가부좌-
결가부좌와 같으나 다만 다리를 모으는 방법만이 다르다.
왼쪽 발등을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놓는 자세인데 이때 오른쪽 발과 다리는 바짝 안쪽으로 당겨져 있어야 한다.
처음 수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결가부좌가 잘 맞지 앉는다. 무리하여 결가부좌를 해하려 하지말고 반가부좌로 수행을 시작한다.
-공안과 화두-
공안과 화두는 같은 의미로 쓰인다.
공안은 수행자의 깨우침을 유발하여 공안을 해결하여 단도직입적으로 진리를 깨우치기 위한 하나의 문제이다. 공안은 언어의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다. 몇 마디 말에 진리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안을 사용하여 수행하는 참선의 방법을 간화선 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실 때에 꽃 한송이를 들어 대중에 보일 때 가섭존자가 미소로서 대답함으로써 후일 거염화의 화두로 불리우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방하착-
말 그대로의 뜻은 손을 밑에 내린다는 뜻이다.
미 말은 원래 단순한 의미이지만 공안의 하나이다.
조주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묻기를
"한 물건도 가져 오지 않았는데 어찌합니까?" 했을 때
선사가 방하착 하라"하고 대답하자
다시 "이미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 놓으란 말입니까?"하였다.
그러자 선사가 "방하(내려 좋지 말고) 하지 말고 가지고 가거라" 했을 때 그 스님이 깨달았다고 한다.
-간화선과 묵조선-
간화선은 수행 방법에 공안 즉 화두를 참구하는 선 수행의 방법이며, 묵조선은 지관타좌(只觀打坐)의 좌선을 닦는 수행 법이다.
간화선은 수행의 철저한 실천을 한결같이 하기위해 의식활동의 강한 부정을 타파하는 공안을 사용하는 데에 반해 묵조선의 지관타좌란 말은 오직 생각이 없이 앉은 그대로 선정에 든다는 말이다. 강한 정신 적 전환 동기보다는 오직 마음을 쉬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려는 수행 법이다. 즉 끊임없이 사량분별하여 경계를 짓는 의식을 쉬게 하여 결국 본래의 마음에 도달하려는 수행 방법이다.
간화선이 공안을 해결하여 바로 깨침을 얻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데 반해, 묵조선은 고요히 앉아서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 보고 점차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지막 단계에 머무는 것을 요체로 한다
-조신-
조신이란 몸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자세를 말한다.
수행하는 데 편안하고 공부가 잘되는 자세가 가장 좋은 것이다.
대개의 수행 지침서가 좌선을 할 때의 자세를 들어 설명하나 입선(入禪), 행선(行禪), 와선(臥禪)때에도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좌선의 자세는 결가부좌이다. 불상의 앉은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수행할 때가 아니어도 자세를 바로 잡는 것이 심신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등을 굽히고 앉거나 걷는 사람보다, 몸을 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쾌활한 사람이 많은 것이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은 일체라는 것이다.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하여 육체적 조건을 바로 함으로써 심신일여의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앉아서 수행을 할 때는 다음의 7요소를 참고하여 조신에 마음을 둔다.
앉는 자세의 7요소
1. 결가부좌 또는 반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2. 허리는 바로 세우고 앉는다.
3. 수인을 맺어 자신의 배 앞으로 당겨 놓는다.
4. 어깨는 전후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반듯이 편다.
5. 목에 힘을 들이지 않고 머리를 똑바로 하는 것을 특히 주의한다.
6. 입은 가볍게 다물고, 혀의 끝을 입 천정에 가볍게 붙인다.
7. 눈은 감으면 안되고 반을 뜬 상태에서 자신의 상체길이 만큼의 전방의 한 점을 주시한 다.
-수식관-
수식관(數息觀)은 수행을 하면서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잡념을 가지거나,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이에게 권장을 하는 수행 법으로 다음의 세 가지 방식으로 하는데 다음의 출식관을 많이 한다.
1. 출입관 : 숨을 내 쉴 때에 하나 들이쉴 때에 둘... . 의 방법으로 열까지 센 후 다시 처음으 로 돌아와 다시 시작한다.
2. 출식관과 입식관 : 숨을 셀 때에 나가는 숨 또는 들어오는 숨만을 센다.
수식관(隨息觀)은 수를 세는 노력을 버리고, 즉 수에 대한 의식을 하지 않으면서 단지 숨의 출입에만 전심전력하여 관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수식관에 비해 일보 전진 한 수행법이다.
-조심-
조식과 조신이 몸의 외측을 중심으로 한다면 정신과 마음의 내측 적인 조절의 노력을 조심이라 한다. 수행에 있어서 조심이라는 독립적인 노력만이 존재할 수는 없고 조신과 조식 그리고 조심이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조심은 수행자의 마음에 나타나는 사념과 망상을 어떻게 조정하는가 이다.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오직 하나의 일에 마음을 향하여 다른 일에 마음이 쏠리지 않게 하는 상태이나, 어떤 수행자도 그 상태를 수행시간 내내 유지할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이 수행의 방향을 벗어나면 곧 그것을 인식하고 본래의 방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비사량과 불사량-
불사량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여기에 비해 비사량은 판단하지 않는 마음이다. 현재 자기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여 다른 것에 마음이 향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의 주관과 느낌으로 판단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수행의 목표인 무념무상, 무심, 삼매의 다른 표현이 바로 비사량이다.
-수인-
좌선을 할 때에 양 손을 위로 하여 겹친 다음 아랫 배에 당겨 놓은 후 양 손의 엄지 손가락을 가볍게 마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것을 수인을 맺는다고 하고 이 손 모양을 정인이라고 한다. 수인을 맺는 손의 모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 정의 의미는 선정 또는 삼매의 상태를 말한다. 수행이 올바로 되고 있을 때는 정인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숨쉬기-
1. 평소의 호흡상태 그대로 숨을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숨쉬는 것 이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숨을 쉬는 것에 전심전력한다. 이 상태를 식상(息想)이라고 한다.
2. 식상에 익숙하여 지면 숨을 의식적으로 가늘고 천천히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양을 평소의 호흡량 보다 약간 적게 하면 호흡이 면면이 이어져서 들 숨과 남 숨의 전환점에서 급격한 호흡의 바뀜이 일어나지 않아 숨의 파동이 없어진다.
3. 의식적으로 숨의 길이를 길게 하려고 숨의 전환점에서 숨을 멈추는 것을 피한다.
숨의 전환점에서 숨을 가두어 멈추는 것은 지식이라 하여 참선에서는 취하지 않는 방법이다.
4. 들이 쉰 숨이 항상 자신의 단전에까지 내려가 닫는다고 의념을 한다.
5. 언제나 들이 수리 때는 깊게, 그리고 내쉴 때는 길게 들숨과 날 숨이 같은 시간이 되도록 고르게 쉬어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숨의 길이 보다 약간 짧게 하면 이 숨의 상태를 유지 할 수 있다. 이것을 조식이라고 한다.
-조면-
잠은 고르게 자야 한다.
수면을 즐기는 자는 수행을 이룰 수 없다. 그렇다고 수면을 너무 절제하여도 공부에 지장이 된다. 수면부족은 의식부족의 원인이 된다.
수행이 깊어지면 자연히 수면시간이 단축되는 법이다.
저녁 수행을 오래 하고 늦게 일어날 생각하면 안 된다. 저녁 공부시간을 줄이더라도 아침 공부시간을 지키는 것이 좋다.
수면시간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좌선을 성실히 하면 저절로 수면에 끌려 다니지 않게 되고 용맹 정진을 할 수 있다.
-수행을 마칠 때-
수행을 마치고 나면 몸을 천천히 움직여서 평온하게 일어난다. 숨쉬기를 마치는 것을 인식하고 결코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먼저 수인(手印)을 풀어 무릎 위에 놓고 호흡을 크게 3,4회 토한 다음 몸을 좌우로 서서히 움직인다. 그리고 가부좌한 다리를 일으켜 세워 몸 자세를 편하게 하고 조용히 일어선다.
-만트라-
글자 그대로 진실한 말이란 뜻이다. 진언이란 이런 개념을 떠난 언어, 즉 중생의 언어가 아닌 진리의 참된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서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나 말이 아니라 소리를 말한다. 범어로는 만트라라고 하는데 찬가 또는 비밀한 말(密言)이란 뜻으로 번역하여 진언, 주문, 주(呪). 신주(神呪), 밀주(密呪), 명주(明呪)라고 한다.
소리에는 저마다 파장이 있어 나름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진언은 다른 소리와 달리 파장이 일정하여 사람의 의식을 한 곳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불경을 범어에서 한문으로 번역할 때 번역하지 않는 경우가 몇 가지 있었는데 진언도 그 중의 하나로 번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뜻이야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 소리까지 옮겨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진언은 개념을 떠난 말로 개념을 없애는 방편이 된다. 이런 이유로 진언은 번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진언수행은 불보살님들의 자비로운 약속과 성불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마음에 담는 공부 법이며, 불보살님께서 일러주시고 여러 조사들께서 확인해주신 진실한 소리를 외움으로써 스스로 그 경계에 이르려는 수행 법이다.
진언은 수행 중에 나타나는 장애를 소멸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진언을 한다고 해도 이런 장애가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언 수행으로 감추어져 있던 마장이 더욱 성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로지 진언을 믿어 의심하지 말고 더욱 일심으로 염송하면, 진언의 힘으로 능히 어떤 장애도 넘어서게 된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1. 사마타 : 고요와 평온을 의미한다. 즉 고도의 정신적 집중과 고요함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사마타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을 하므로써 얻어진다. 사마타로 정신이 흩어지고 산만함이 없어지고 한 곳에 집중하여 방황하지 않게 된다. 사마타의 마지막 경지는 8선정이나 사마타로 얻어지는 정신 집중은 깨달음은 아니다.
2. 위빠사나는 꿰뚫어 봄을 의미한다. 한자로는 통찰로 쓰여지는데 인식의 상(想)과 의식(識)은 이해를 하는 것이지 본질을 꿰뚫어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서 위빠사나의 통찰의 지혜와 다르다. 위빠사나의 수행은 몸과 마음의 수행으로 열반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사념처-
사념처는 사념주(四念住)라고도 하는데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첫 번째의 실천수행하는 방법이다. 염처(念處)는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의 네가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여 신(身)은 부정(不淨)이고, 수(受)는 괴로움이며, 심(心)은 항상하지 않고, 법(法)은 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관하여 상(常), 낙(樂), 아(我), 정(淨)의 네 가지 치우친 견해를 깨뜨리는 것이다.
1. 신념처(身念處) 몸 안팎의 움직임과 고요함에 대하여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멸하게 하는 것', '이 몸은 어디에 있거나 좋거나 밉거나 머리에서 발까지 온갖 더러운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하는 것' 등을 가리킨다.
2.수념처(受念處)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며 즐거운 감각을 깨닫는 줄을 알고,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곧 괴로운 감각을 깨달을 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달을 때에는 곧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닫는 줄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곧 삼수(三受)를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음식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여실하게 관찰하는 것이 수념처이다.
3. 심념처(心念處) 내심(內心), 외심(外心), 내외심(內外心)에 있어서 욕심이 있다면 욕심이 있다는 참뜻을 알고, 욕심이 없다면 없다는 참뜻을 알며, 성냄이 있고 성냄이 없는 것에 대한 참뜻을 알고, 어리석음이 있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에 대한 참뜻을 알며,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해탈하지 않은 마음의 참뜻을 알고 해탈할 마음이 있으면 해탈할 마음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4. 법념처(法念處) 눈을 통해 생기는 번뇌의 생멸에 대하여 여실하게 알고, 다섯가지 장애와 그 장애의 멸에 대한 여실한 관찰, 칠각지(七覺支)에 대한 관찰을 법답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념처를 수행하면 생로병사에서 벗어나거나 구경에 이르며 아라한과를 얻거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고 한다. 또 사념처의 두가지에 대해 그 체(體) 를 세 방면에서 관찰하는 것을 삼념주(三念住)라고 한다.
-공-
공사상(空思想)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 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다.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존재이며, 고정불변한 것이 없다. 사물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힌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며, 무아이기 때문에 공인 것이다. 이때의 공은 고락(苦樂)과 유무(有無)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中道)를 말한다.
공의 사상은 인간의 그릇된 입장을 파사(破邪)하여 현정(顯正)하는데 있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현상계에 집착하면 그것이 공이라는 것을 가르치며, 또 열반에 집착 하면 열반 또한 공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사람들이 집착하는 가지가지 대상이 본질적으로 공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일체가 공이라고 관하는 것을 공관(空觀)이라 한다. 공은 허무가 아니고 공을 관하는 것은 진실한 가치의 발견이므로, 진공(眞空) 그대로가 묘유(妙有)라는 것이다. 이것을 진공묘유라고 한다. 이에 반하여 공을 허무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악취공(惡取空)이라 한다
-방편-
접근하다', '도달하다'라는 의미로 방편을 사용하여 중생을 피안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근기에 따라 잠정적으로 마련한 수단으로 강을 건너는데 쓰이는 배에 비유된다.
모든 교설은 문자와 언어에 의해 나타낸다는 점에서 방편에 지나지 않는데, 그 중에서도 깨달음을 직접 설하여 진실한 의도를 나타낸 것을 진실한 가르침이라 하고, 진실로 인도하기 위해 상대에 따라 다양하게 보여 주는 것을 방편의 가르침이라 한다.
-다라니-
총지(總持), 능지(能持), 능차(能遮)라고도 불린다. 무변한 이치를 깨달아 알고 상실하지 않는 염혜력(念慧力)을 말한다. 또 일종의 기억술로서 하나의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다른 모든 일까지 연상하고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 기억술로서의 다라니의 형식이 송주(誦呪)와 유사하게 되었기 때문에 주(呪)와 혼동하여 주문을 모두 다라니라고도 하였다. 다만 일반적으로 장구로 된 것을 다라니, 몇 구절로 된 짧은 것을 진언(眞言), 한 두자로 된 것을 주(呪)라고 한다.
-만다라-
만다라는 우주 만물의 조화와 연관성 및 차별성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흔히 기하학적인 구조로 그려진 불보살의 그림(탱화 불화)을 만다라라고 부르는데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어느 하나도 무의미한 것은 없으며 각기 고유한 존재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상호연관 성을 갖는다는 것이 만다라의 세계관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주전체가 만다라이다.
-무명-
무명(無明:Avidya)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상태, 또는 진여(眞如)에 대하여 비진여(非眞如)를 말한다. 진여는 우주만유에 보편한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본체를 말한다. 진여는 우리의 사상개념으로 미칠 수 없는 진실한 경계, 즉 오직 성품을 증득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며, 거짓이 아닌 진실하다는 뜻과 변천하지 않는 여상(如常)하다는 뜻을 가진다.
무명은 무명번뇌라고도 하는데 이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어두워서 명료하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다고 간주하는 망상이 무명인 것이다. 즉 본래 있지 않은 생사를, 무명에 의해 있다고 봄으로써 고통이 생기므로 무명의 타파는 고통의 소멸을 가져온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염불수행-
염불이란 부처님의 명 호를 소리 내어 부르거나 상호를 관상하거나 공덕을 의념 하는 수행 법이다. 염불은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수행 법으로 가장대중적으로 행해지는 수행 법 중의 하나이다.
특히 정토불교에서는 염불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수행체계를 세워 발전시켰다. 정토신앙에 근거한 염불 외에도 독자적인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에 기반 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염불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염불이 불보살의 본원력에 의지하므로 타력신앙이라고 생각되지만 자력이 없는 타력은 결코 있을 수 없으므로 자력과 타력이 동시에 갖추어지는 수행이다. 염불의 염이 의념, 작의 등의 의식작용을 의미하듯이 생각이 소리와 결합되어 일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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