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선문정로 / 오매일여寤寐一如

通達無我法者 2008. 2. 11. 09:25
선문정로(禪門正路)

오매일여寤寐一如

어떤 이들은, 소소영영한 영대지성靈臺智性이라는 것이 있어서 보고 듣고 하며 오온의 몸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한다 하니, 이런 견해를 가지고 선지식이 된 자는 크게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너에게 묻겠는데 만약 소소영영함을 너의 진실로 인정한다면 깊이 잠든 때에는 어째서 그 소소영영함이 없는가? 깊이 잠들었을 때 그것이 없다면 도적을 자식으로 잘못 안 것과 같으니 이는 생사근본인 망상연기妄想緣起이다. 「玄沙備 傳燈錄 十八」

아무리 크게 깨달아 지견이 높고 훌륭한 것 같아도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여전히 캄캄하면, 이는 망식妄識의 변동이지 실지로 깨달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반드시 한결같은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계를 뚫고 지나야만 바로 깨치게 된다.

담당 준湛堂準이 대혜 고大慧 에게 말하였다.
"고상좌여, 나의 선법을 그대가 한꺼번에 이해하여, 설법을 하라면 설법을 잘 하고, 염고 송고와 소참 보설 무엇이든 잘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대가 분명하게 생각할 때에는 선이 있으나 잠이 들기만 하면 어느새 없어져 버리니 그래 가지고서야 어찌 생각을 대적하겠느냐?"
대혜가 대답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의심하는 점입니다."「大慧 宗門武庫」

설법이나 그밖의 모든 일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들었을 때 캄캄하면 이는 전적으로 제육식 속에서의 사량분별인 알음알이나 사견이지 실지 깨달음은 아니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사람은 양심에 비추어 크게 반성하여야 한다.
오매일여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하고서 돈오 견성을 자부한다면 이는 자신을 그르치고 남까지 그르치는 커다란 허물로서, 수도하는 과정에서 무서운 병통이며 장애이다.

대혜가 원오에게 물었다.
"제가 생각하니, 이 몸이 이렇게 있다가도 잠만 들면 캄캄하여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물며 지수화풍이 흩어지는 사경死境에서 수많은 고통이 불길같이 일어나면 어찌해야 휘둘리지 않겠습니까?"
원오는 그저 손짓으로 그만두라는 시늉을 하면서, "망상 피우지 말게나. 망상 피우지 말어" 하고는 다시 "그대가 지금 말하는 이 많은 망상이 끊어질 때 저절로 오매일여의 경계에 도달하리라" 하였다.
처음 듣고는 믿겨지지 않다가 매일 스스로를 돌이켜보았다.
"잠들었을 때와 깨어 있을 때가 분명 두 갈래인데, 어찌 감히 입을 크게 벌려 선을 설법하리오. 오매일여라 하신 부처님 말씀이 망언이라면 내 병을 없앨 필요가 없겠지만, 부처님 말씀이 과연 중생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아직 그 경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뒷날,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온다는 설법을 듣고 홀연히 마음속에 막혔던 물건을 떨어 냈다. 거기서 바야흐로 잠잘 때가 깨어 있을 때와 같고, 깨어있을 때가 잠들었을 때와 같음을 알아서 오매일여라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다.
이 도리는 남에게 꺼내 보여줄 수 없다. 꿈속의 경계와도 같이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도리다.「大慧廣錄 二十九」

오매일여에는 몽중위夢中位와 숙면위熟眠位 두 가지가 있다. 꿈속에서도 일여한 몽중위는 제육의식의 영역으로서 교가敎家의 칠지에 해당하고, 꿈도 없는 깊은 잠에서도 일여한 숙면위는 제팔아뢰야식의 미세한 망상에 머물러 있는 팔지八地 이상의 자재보살들과 아뢰야식의 미세망상을 영원히 여읜, 진여가 항상한 부처지위를 말한다. 지금 대혜가 말한 것은 몽중일여이다.
오매일여를 믿지 않는 것은 대혜만의 병통이 아니라 수도하는 사람에게는 고금에 공통하는 병이다. 하나만 알거나 반만 이해한 사견으로 오매일여의 실지 경지를 부정하고 감히 입을 크게 열어 선을 말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대혜가 만일에 담당과 원오 같은 눈 밝은 종사*를 만나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면 뒷날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혜가 오매일여를 실제로 체득하고는 "자나깨나 한결같다는 부처님 말씀이 진실이요 거짓말이 아니다"고 찬탄하였으며, "그 은혜는 분골쇄신해도 다 갚을 수 없다"고 감격하였다.
수도하는 사람은 각자의 견해를 고집하지 말고 옛 부처와 옛 조사의 말씀을 표준 삼아 구경 무심지를 실제로 증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불조의 혜명을 영원히 단절할 것이다.

묘희는 일생동안 스스로를 긍정하지 않다가 만년에 원오스님 문하에 들어가자마자 화엄칠지에 올랐다.「大明高僧傳 六」
화엄칠지 보살의 지위는 너무 높아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누구든지 몽중일여가 되면 칠지위이다. 그러나 숙면일여인 멸진정滅盡定의 자재위自在位는 아니어서 여기에 한 겹의 큰 관문이 있으니 더 노력하여 기필코 뚫어야 한다.

상음想陰이 다 없어진 자는 평소에 꿈이 없어 자나 깨나 한결같다. 깨닫겠다는 생각(覺明)이 허공같이 비고 고요해져 더 이상 앞의 경계를 반연하는 거치른 망상의 그림자는 없다.「楞嚴經 十」

제육의식의 거치른 망상은 없어져도 제팔의 미세망상이 남았다. 오매일여는 몽중과 숙면에 다 통하니 몽중일여는 칠지, 숙면일여는 팔지 이상에 해당한다.

제칠지에 머무는 보살은 방편혜方便慧와 수승도殊勝道를 닦는다. 꼼짝않고 안주하여 한 생각도 쉬거나 버리지 않으니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나아가서는 잠들었을 때까지 잠시도 개장盖障과 상응하지 않는다.「華嚴經 三十七 十地品」

제칠지 무상정에서는 거치른 망상이 극복된다. 꿈속에서도 여여하여 어떤 장애도 받지 않는다.

제칠지에 있는 보살은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나아가 꿈꿀 때에도 개장을 멀리 떠난다.「十地經」

개장은 번뇌망상으로 생기는 수도상의 장애다. 보살이 제칠지에 이르러 비로소 몽중에 일여하니 도를 닦는 사람이 몽중일여가 되면 제칠지와 동등하다.

무상천無想天 무상정無想定 멸진정滅盡定 수면睡眠 민절悶絶, 이 다섯 가지 지위 중에 이생異生인 범부는 멸진정을 제외한 네 가지를 갖추고 있으며 성위聖位에서는 뒤의 세 가지만 있다. 그 중에 여래와 자재보살은 멸진정 하나만 있으니 수면과 민절이 없기 때문이다.「成唯識論 七」
무심 오위 중에 이생에 넷이 있다 함은 멸진정을 제외한 것이요, 성인 무리는 뒤의 셋 뿐이며, 부처와 팔지 이상 보살은 유독 멸진정만 있어서 수면과 민절이 없다. 이 두 가지는 악법이므로 현상적으로는 수면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없는 까닭이요, 즉 이승의 무학無學들도 민절이 있다.「宗鏡錄 五十五」

여기서 무심이라 함은 여래를 제외하고는 전부 가무심假無心을 말한다. 자재보살과 여래를 멸진정이라 하였는데 자재보살의 멸진정은 제육의식, 즉 육추만 소멸된 가무심이요, 여래의 멸진정은 제팔식, 즉 삼세까지 없어진 진짜 무심이다.
수면과 민절이 없다 함은 오매일여를 말함이다. 자재보살은 제팔의 무기무심無記無心에서 일여하고, 여래는 진여의 구경무심에서 일여한 바, 진정한 일여는 불지의 구경무심 뿐이다.

*눈밝은 종사/대혜 스님 당시에 큰스님 다섯 분이 계셨다. 곧 오조 법연선사 밑에 불안청원, 불감혜금, 불과극조의 삼불과 담당문준선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