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103. 제자들에게 내린 훈시 / 자항 박 (慈航 朴) 선사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7:01
 

103. 제자들에게 내린 훈시 / 자항 박 (慈航 朴) 선사



자항박 (慈航了朴:임제종 황룡파) 선사는 복주 (福州) 사람이다. 명문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홀연히 허깨비같은 뜬 세상이 싫어 몸을 빼내 출가하였다. 선사가 계를 받을 때 몸과 마음

이 공중에 뜬 것처럼 가볍고 편안해지니 계를 내리는 스님이ꡐ그대는 참으로 가장 높은 묘

계 〔上品妙戒〕 를 얻었다ꡑ고 하였다. 이때부터 종신토록 매우 엄하게 계를 지켰다.

20년 동안 천동사 (天童寺) 에 주지하면서 하루도 대중과 따로 공양을 한 일이 없고 병에

걸렸을 때도 이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스스로는 몹시 검소하게 지냈으나 대중들에게는 지

극히 넉넉하게 대했다. 선사에게 제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창고 소임 〔知庫〕 을 맡아보다

가 일을 끝내고 돌아와 선사에게 절하고 말하였다.

ꡒ제가 힘을 다해 경영해서 돈을 굴려 배나 이득을 보았는데 감히 제 것으로 하지 않고 절

재산으로 넣으려 합니다."

그러자 선사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ꡒ네가 벌어들인 것은 의롭지 못한 수단으로 얻은 것이며, 절 재산은 깨끗한 재산이다. 어찌

의롭지 못한 너의 물건을 받아들이겠느냐."

그리하여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그 스님을 쫓아내버렸다.

선사는 동자승이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으면 그들을 모두 사미들의 거처 〔沙邇寮〕 에

보내 계단 (戒檀) 에 올라가 계를 받는 의식절차부터 익히게 하고 유교경 (遺敎脛) 을 외우

게 하고 나서야 구족계를 주었다. 구족계를 받으면 모두 새로 계받은 이들의 거처 (新戒寮)

에 들여 보내 승복 세벌과 발우 하나를 받아 지니도록 하고, 밤이면 좌구를 펴고 오조가사

를 덮고 자게 하였다. 그리고는 계경 (戒脛)  잘 외우는 스님 하나를 청해 그들에게 계경을

가르치도록 하여 통달하여 외울 때가 되면 비로소 선방에서 참구하는 것을 허락하고 이삼년

하안거를 지내고 나야 비로소 절 일을 맡아보도록 하였다. 제방에 행각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사는 언제나 미간에 기쁜 기색을 보이며 기꺼워 하였다. 그리고는 필요한 물건들

을 챙겨서 길을 독촉해 보냈다.

한번은 그의 문도들에게 이렇게 훈계하였다.

ꡒ예전에는 스님이 되려하면 조정에서 시험을 치루어 도첩을 얻게 하였다. 그래서 발심해서

승려가 된 사람들이 모두 영특하고 수행이 높았으며 부처가 되겠다고 서원을 세운 사람들이

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법이 엷어져서 이름만 있지 알맹이는 없어졌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

람이면 승복을 입고 돈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부처를 팔아 이득을 본다. 탐욕스런 위선자

들이 많이 나와 못하는 일 없이 나쁜 짓을 하다가 하루 아침에 승려의 무리에 끼어들게 되

었다. 그들은 스스로 평생 쓸 만큼이 다 마련되었다고 생각하여 다시는 사욕을 극복하는 수

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인과를 무시해버리고 세월을 허송하며 신도들의 시주만 부질없

이 없앤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출가의 본뜻 〔正因〕 을 잊고 불법의 인과를 모르며, 3승

12분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체법이 모두 공한 이치를 통달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하고 깨치지 못한 것을 깨쳤다하여 귀족이나 권세가에게 아

첨하면서 세상일에만 신경쓴다. 법을 위하는 마음이나 몸가짐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로지 탐

욕과 성내는 마음으로 허물만 짓는다. 이러한 무리들이 우리 법에 들어와 불법을 무너뜨리

니 매우 해로운 일이다. 부처님 말씀에, 사자의 몸 속에 있는 벌레가 사자의 살을 파먹는 것

과 같아서 외도나 천마가 불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너희들은 이미 바른 생각

으로 출가하였고 바른 생각으로 승려가 되었으니 반드시 마도를 멀리 떠나 불도의 계를 지

키고 따라야 한다. 만일 도를 통한 사람이라면 도무지 그런 데다 마음을 쓰지는 않을 것이

다.

그대들은 오랜 겁부터 지금까지 심식 (心識) 이 어둡고 전도되었으니 어찌하랴. 처음 승려가

되었을 때부터 세벌 법복과 발우 하나와 갖가지 계율로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으

니 어찌 도에 들어갈 수가 있겠느냐. 마치 성질이 거친 코끼리나 말은 길을 들일 수 없다가

갖가지 모진 고통을 주면 비로소 길이 들어 엎드리는 것과 같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

면 뒷날 3악도의 고통이 겹칠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무시 (無示介:1080~1148) 선사의 회중에 있을 때 새벽이면 언제나 선사에게 법을 물

었다. 선사가 스님네들에게 훈계하면 나도 꼭 가서 들었는데, 입이 쓰도록 대중을 위하는 말

씀을 듣자면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이 흘렀다. 무시선사의 문하에 들어와 그가 해주는 법문

을 듣고 그가 하는 일을 보면 절집에서 늙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진땀이 나며 기가 죽는다.

그것은 아마도 이 노스님이 평생을 진실하게 지내온 데다가 수행과 설법이 모두 높은 경지

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선사는 40여 년을 때가 아니면 밥을 먹지 않았고 옷과 발우를

쌓아두지 않았으며 몸을 지키는 세세한 행동까지도 모두 계율을 따랐다. 그랬기 때문에 선

사가 가서 주지하는 곳은 소리를 지르거나 얼굴빛을 움직이지 않고도 자연히 법석이 조용하

고 엄숙하여 제방에서는 그를 「철면 (鐵面) '이라고 불렀다. 너희들은 불제자가 되었으니

분발심을 내서 옛분을 흠모하고, 그분들의 말씀대로 수행을 세워 비열하고 저속한 곳에 떨

어지지 말아야 한다.

무시선사가 언제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불법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방편으로 그

대들을 가르쳐 마음을 다스려 도를 닦게 하지 못하고 뒷날 그대들이 무지로 해서 죄를 짓게

되면 이 노승도 그대들과 함께 고통받는 일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그대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니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나의 허물이 아니다. 듣지 못했느냐?

양 (良) 선사란 사람은 정주 (紛州)  사람으로 양기 (楊岐方會) 선사의 회하에 있었던 큰스

님이다. 이 분에게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계율을 범해서 죽을 무렵에 악도에 떨어지게 되었

다. 그의 어머니가 꿈을 꾸었는데 아들이 스승에게 한을 품고 하는 말이 모든 것이 스승께

서 나에게 선행을 하도록 이끌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었다. 그의 어머니가 꿈꾼 이야기를 양선사에게 알렸으나 그는 믿지 않았다.

당시 용도각 (龍圖閣) 의 덕점 (德占)  서희 (徐禧) 가 평민으로 있을 때였는데 양선사를 찾

아가 법을 묻곤 하였다. 그가 잠깐 꿈을 꾸니 어느 관청에 들어갔는데 무기를 든 병졸들이

양쪽에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뜰 아래 양선사가 앉아 있고 졸개귀신들이 방아

공이로 그의 등을 때리는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온통 진동하였다. 다시보니 그의 제자가

결박을 당하고 목칼을 쓴 채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덕점이 문지기에게 스님이 무

슨 죄를 지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ꡐ늙은 사람은 젊은 사람의 스승인데 스승이 평소에 제자를 잘못 가르쳐서 마음대로 파계하

도록 내버려 두었으므로 스승의 죄가 특히 무거운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살아서 받는 과보

이지만 7일 뒤에 제자와 함께 무간지옥에 떨어지면 그땐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서희가 꿈에서 깨어나 양선사에게 까닭을 물어 보았더니 양선사는, 이 며칠 동안 등허리가

마치 무엇으로 두드려 맞는 것처럼 아픈데 약을 써도 낫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과연

7일 만에 죽었다. 이에 서희는 주먹만한 큰 글씨로 분녕 (寶寧) 지방 모든 절 벽에다가 이

사실을 써 붙였다." 「소희간광효초선사방우천동행당벽 (紹熙間光孝超禪師榜于天童行堂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