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직설(眞心直說)

15. 참 마음이 가는 곳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7:47
 






15. 참 마음이 가는 곳



[질문] 참 마음을 통달치 못한 사람은 참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선악을 짓습니다.

선의 인을 짓기 때문에 좋은 세계에 나고 악의 인을 짓기 때문에 나쁜 세계에 들어가는데, 업에 따라 상을 받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심을 아는 사람은 망상이 모두 없어지고 진심에 계합하여 선악의 인이 없을 것이니, 그렇다면 죽은 뒤에 그 영은 어느 곳에 의탁합니까?



[대답] 의탁할 곳이 있는 것이 의탁할 곳이 없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여기지도 말고, 또 의탁할 곳이 없다는 말로써 인간이 갈 곳 없는 방랑자와 같다고 여기지도 말고,

귀신 무리에서 의지할 데 없는 무주고혼 같이도 여기지 말라.

특별히 이렇게 물어서 의탁할 곳이 있기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성품을 통달하면 그렇지 않나니, 일체중생들은 깨닫는 성품을 모르기 때문에 허망한 정과 사랑하는 생각으로 업을 짓고 인을 삼아 여섯갈래[六趣]에 태어나서 선과 악의 과보를 받는다.

가령 천상의 업을 지어서는 천상의 과보를 받아도 제가 마땅히 날 곳을 제하고는 수용하지 못한다.

다른 세계도 그와 같아서 그 업을 따르기 때문에 자기가 난 곳을 즐겁다 하고 나지 않은 곳을 즐겁지 않다 하며,

제가 난 곳을 자기가 의탁할 곳이라 하고 남이 난 곳을 남이 의탁할 곳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허망한 정이 있으면 허망한 인이 있고, 허망한 인이 있으면 허망한 과가 있으며,

허망한 과가 있으면 허멍한 의탁할 곳이 있고,

허망한 의탁할 곳이 있으면 피차가 갈라지며,

피차가 갈라지면 옳고 옳지 못함이 있다.



지금 진심을 알아서 생멸이 없는 깨닫는 성(性)에 계합하여 생멸이 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킨다.

묘한 본체는 진실하고 항상하여 본래 생멸이 없다.

묘한 작용은 인연을 따르므로 생멸이 있는 듯 하지만 본체에서 생긴 작용이라 작용이 곧 본체인데 거기서 무슨 생멸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달인(達人)은 본체를 증득 하였는데 생멸이 무슨 상관인가.

그것은 물과 같다.

즉 물은 젖는 성이 그 본체요 물결이 그 작용이니, 원래 생멸이 없는데 물결 속의 젖는 성품에 무슨 생멸이 있겠는가.

그러나 물결이 젖는 성품을 떠나서는 따로 없기 때문에 물결에도 생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말하기를 '온 대지가 승려의 한짝 바른 눈이면 온 대지기 하나의 절이라. 이것이 이치를 깨친 사람의 안신입명 할 곳이다'하였다.

이미 참 마음을 알았으므로 사생과 육도가 모두 사라지고, 산하대지가 모두 참 마음이라, 이 참 마음을 떠나 따로 의탁할 곳이 없다.

이미 삼계의 허망한 인이 없어졌으므로 반드시 육도의 허망한 과보도 없을 것이니, 허망한 과보가 없어졌는데 무슨 의탁할 곳을 말하겠는가.

또 따로 피차가 없으니 피차가 없다면 무슨 옳고 옳지않음이 있겠는가.



즉 시방세계는 오직 하나의 참마음이라 온몸으로 수용하므로 따로 의탁할 곳이 없고, 또 시현문(示現門-방편으로 나타내 보임) 가운데서 마음대로 가서 태어나더라도 아무 장애가 없다.

그러므로 전등록에서 온조상서가 규봉스님에게 묻기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수명이 다하면 어디에 의탁하는가?' 하니

규봉은 '일체중생이 모두 신령스러운 밝은 깨달음의 성을 갖추어 부처와 다름이 없으므로 만 일 그 성이 곧 법신임을 깨치면 본래 태어남이 없거늘 무슨 의탁할 곳이 있겠는가.

신령스러이 밝아 어둡지 않고 항상 분명히 알며 어디서 온 곳도 없고 어디로 갈 곳도 없다.

다만 비고 고요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삼고 허망한 생각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말아라.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저절로 그 없이 얽매지 못할 것이요, 혹 중음이 있더라도 향하는 곳마다 자유로와서 하늘과 인간에 마음대로 의탁할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곧 죽은 뒤에 참 마음이 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