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서화(東語西話)

12. 불법에 깊고 얕음이 있는가 ?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16:59
12. 불법에 깊고 얕음이 있는가 ?


고창(高昌)땅에서 살던 한 장자(長者)는 평소에 도를 닦을 뜻이 있었다.
귀한 벼슬에 올라서도 성내거나 노한 얼굴을 전혀 보이질 않았다.
하루는 그 장자가 내게 말하였다.

"불법(佛法)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곧 얕음과 깊음이 있읍니다.
 그 심오한 것에 대해서는 속인(俗人)이 본래 알 수 없겠으나,
 얕은 것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박식하게 듣고 익숙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이 듣고 보았던 것과는 서로 달라서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불법은 광대하여 온 세계에 두루 들어 있어서
 부처와 조사라 해도 이것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도의 깊고 얕음에 대해 말하십니까?"

그러자 그 장로가 말했다.

"심식(心識)의 참 뜻과, 경관(境觀)의 차별과,
 깨달은 이치의 잘잘못과, 계를 잘 지키고 못 지키고 등이
 모두 불법의 심오함입니다.
 가령 세간의 재물은 독사보다 해로워 선근(善根)을 손상시키고
 괴로움의 근본을 자라게 한다고 말한 것은 불법의 얕은 것입니다.
 최초에 입도(入道)하면서부터 여러 스님들의 문전을 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이처럼 가르치지 않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세간의 재물을 생각하면 하찮게 보아왔습니다.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자가 문앞에 와서 재물을 달라고 할 때,
 인색하게 아끼고 지나치게 아끼고 탐내는 감정이 눈 앞에 엇갈렸습니다.
 이것은 재물을 축적하는 것이 자기에게 금지되었다고 해서
 남도 재물을 갖지 못하게 하는 심보일 것입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대에게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번뇌를 보시하는 것이므로, 재물을 주지 않는 것이
 그대를 독사의 구덩이에서 구해주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어느모로 생각해 봐도 끝내 비루하고 인색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나는 이로 인해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가 평일에 듣고 이해했던 것은 거짓 마음이었으며,
인색하게 아꼈던 것이 그의 솔직한 감정이었던 것이다.
진솔한 감정은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다.
마음의 밑바닥에 들어 있어 통철히 깨달아
그 밑바닥을 털끝만큼의 찌꺼기도 없이 뒤집어버리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다시 눈 앞에 나타난다.
비록 갖가지로 오묘하게 이해했다고 해도,
이것은 신을 신고 그 위를 긁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덧없는 생사(生死)를 생각하는 것은 참된 마음이며,
들뜬 알음알이로 이리저리 꿰어 맞추는 것은 잘못된 알음알이이다.
이것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