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63칙 남전의 고양이를 벰〔南泉斬猫〕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0:33
 

 

 

제63칙 남전의 고양이를 벰〔南泉斬猫〕


(수시)

생각〔意路〕으로도 이르지 못하니 반드시 끊임이 없어야 하고, 말이나 설명으로도 미치지 못하

니 대뜸 깨쳐야 한다. 번개가 치고 별똥이 튀는 듯하며, 폭포를 쏟아붓고 산악을 뒤집는 것같다.

대중 가운데 이를 아는 사람이 없느냐? 거량해보리라.


(본칙)

하루는 동서 양편 승당에서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자,

-이는 오늘에 시끄러운 일이 아니다 (늘 그랬었다). 또 한바탕 잘못을 저지르는구나.


남전스님이 이를 보고서 마침내 고양이를 잡으며 말하였다.

-바른 법령을 시행하여 모든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네. 이 늙은이가 용과 뱀을 구별해내는 솜

  씨가 있었구나.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아이고 아까워라. 기회를 놓치는구나. 한 무더기 먹통들을 어디에 쓰랴? 엉터리 선객들이 삼대   처럼, 좁쌀처럼 수없이 많구나.

남전스님이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통쾌하고 통쾌하다.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남전마저도) 모두 쓸데없는 짓거리하는 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도적이 떠난 뒤 활을 당기는구나. 벌써 한 단계 낮은 제이제로다. 거량하기에    앞서 쳤어야 했다.


(평창)

종사구나! 저 한 번은 움직이고 한 번은 쉬고, 한 번은 나아가고 한 번은 들어갔다 한 것을 보아

라. 그 대의가 무엇인지를 말해보라.

고양이를 베어버렸다는 이 화두를 천하 총림에서는 많이들 알음알이로 헤아리고 있다. 어떤 사람

은 “베어버린 것에 (대의가) 있다”고 하나 모두가 전혀 관계가 없다.

그가 고양이를 들지 않았을 때에도 곳곳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 하겠느냐? 이는 옛사람(남전스

님)에게 하늘과 땅을 구별하는 안목이 있었고, 하늘과 땅을 구별하는 칼이 있었음을 몰랐던 것이

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결국은 고양이를 누가 베어버렸을까? 남전스님의 경우, 고양이를 들고서 “말

할 수 있다면 베지 않겠다”하였는데, 그 당시 혹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면 남전스님이 베었을까,

베지않았을까? 그러므로 “올바른 법령을 시행하여 모든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네”라 말했던 것

이다.

하늘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살펴보라, 누가 그 경지에 있는 사람인가를. 실은 애초부터 원래 벨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 화두 또한 베느냐, 베지 않느냐에 있지 않다. 이 일을 확연히 알아야 한다. 이처럼 분명하다.

생각의 티끌〔情塵〕이니 의견(意見)으로써 찾을 수 없다. 만약 생각의 티끌이나 의견으로 찾는다

면 남전스님을 저버릴 것이다.

창을 마주한 칼날 위에서 살핀다면, 있다 해도 옳고 없다 해도 옳으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해도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말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하였다. 요즈음 사

람들은 변과 통은 모르고서 오로지 말만 가지고 따진다.

남전스님이 이처럼 들어보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당장에 무슨 대답을 하도록 하는 데 있지 않

다. 오직 스스로가 깨닫고서 제각기 스스로 작용하고 스스로 알게 하려는 데 있다. 만일 이처럼 이해하지 못한다면 끝내 (본뜻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설두스님은 대뜸 다음과 같이 송을 하였다.


(송)

양편 승당엔 모두가 엉터리 선객들.

-몸소 한말씀 하셨군. 한마디로 말을 다해 버렸군. 죄상에 의거하여 판결했다.


자욱한 티끌만을 일으킬 뿐 어찌할 줄 모르는구나.

-그가 어떻게 종결짓는가를 살펴보라. 그대로 드러난 공안이다. 그래도 약간은 있었구나.


다행히도 남전스님이 법령을 거행하여

-(원오스님은) 불자(拂子)를 들고 말한다. 이것과 비슷하군. 남전스님은 아직 좀 모자란다. 좋은    금강왕보검을 진흙을 자르는데 쓰고 있다.


단칼에 두 동강 내어 한 쪽〔偏頗1) : 두동강 내는 쪽〕을 택했네.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혹시 어떤 사람이 칼을 어루만지면 그가 어떻게 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냥 용서해줘서는 안된다. (원오스님은) 쳤다.


(평창)

“양편 승당엔 모두가 엉터리 선객들”이라는 것은, 설두스님은 이 언구에 떨어지지 않았고 하인

이 나귀나 말의 앞뒤에 끌려다니듯이 예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까드러내고 몸을 피하여 문득 “자

욱한 티끌만 일으킬 뿐 어찌할 줄을 모른다”고 한 것이다. 설두스님은 남전스님고 함께 손을 잡고

가면서 한 구절로 송을 끝마쳤다.

양편 승당의 수좌들은 쉴 곳이 없어 가는 곳마다 오로지 자욱한 망상의 티끌을 일으키면서도 어

찌하지 못하였는데, 다행히도 남전스님이 그들에게 이 공안을 재판하여 준 덕분에 말끔히 다 수습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앞으로 가지니 마을도 없고 뒤로 가자니 주막도 없는 것처럼 이러지

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데야 어찌하겠는가.

그러므로 “남전스님이 바른 법령을 거행한 덕분에, 단칼로 두동강 내어 한 쪽을 택했네”라고 하

였다. 서슴없이 단칼로 두동강을 내어 어느 쪽으로 기울든 상관치 않았다는데, 말해보라, 남전스님

이 어떠한 법령에 의거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