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84칙 유마의 침묵〔維摩黙然〕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3:44
 

 

 

제84칙 유마의 침묵〔維摩黙然〕


(수시)

옳다고 말하여도 옳다고 할 만한 것이 없고, 그릇되었다고 말하여도 그릇되었다고 말할 만한 게 없다. 옳고 그름을 이미 버리고 잘잘못을 모두 다 잊었으니, 말끔히 훌훌 벗고 아무것도 없이 맑기만 하다.

말해보라, 면전(面前)과 배후(背後)는 무엇인가를. 어느 납승이 나와서 말하기를 “면전이란 불전(佛殿)과 삼문(三門)이며, 배후란 침당(寢堂)과 방장실이다”라고 하였다. 말해보라, 스님에게 안목이 있다고 할까, 없다고 할까? 만일 이 스님을 감별할 수 있다면 옛사람을 친견했다고 인정하리라.


(본칙)

유마힐(維摩詰)이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물었다.

-이 놈이 지나치게 한바탕 떠벌리는구나. 입 닥쳐라.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그것은 무엇인가?”

-알면서도 괜히 그러네.


“제 생각으로는

-무슨 말을 하느냐? 끝내 알지 못하는군. 형틀을 지고 자백서를 내놓네.

  스스로 상투를 끌고 관청에 가 자수하는군.


일체의 법에

-무엇을 일체법이라 하느냐?


보여줌도 없고 알려줌도 없으며,

-다른 사람은 속여도 (유마에게는 안되지).


모든 물음과 답변을 떠난 그것이

-무슨 말을 하느냐?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가합니다.”

-들어가서 무얼 하려고? 수많은 말을 해서 뭐하려고?


이에 문수사리보살이 유마힐거사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각자의 설명이 끝났습니다. 인자(仁者)께서 말씀하셔야겠습니다. 무엇이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이 한 물음은 금속여래(金粟如來)라도 말하지 못한다. 설령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라 해도   입을 열지 못하리라. 창 끝을 뒤로 돌려서 한 사람은 찔러 죽였다. 지금 한 방 맞은 화살은  마치 상대를 쏘았던 것과 똑같다.

설두스님은 말한다.

“유마야, 무슨 말을 하겠느냐?”

-쯧쯧! 모든 화살이 가슴으로 모여들었다. 그를 대신하여 이러쿵저러쿵 주절거리는군.


다시 말한다.

“속셈을 감파해버렸다.”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그래도 설두스님은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긴 꼴이다. 그처럼 대중을 위해 힘을 다하였으나 재앙이 제 집에서 나오는 데야 어찌하겠는가.  말해보라. 설두스님은 핵심을 알았을까? 꿈꾸냐? 꿈속에서 안 것인데 무슨 속셈을 감파해   버렸다 말하느냐? 준험하다. 황금빛 사자라도 찾지 못한다.


(평창)

유마힐이 여러 대보살들에게 각기 둘이 아닌 법문을 말하게 하였다. 때에 서른두 보살이 모두 나누어보는 견해〔二見〕인 유위(有爲)․무위(無爲)와, 진(眞)․속(俗) 이제(二諦)를 합일시켜 이를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 하였는데, 뒤이어 문수보살에게 이를 묻자, 문수보살은 “제 생각으로는 일체의 법에 말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 보여줌도 없고 알려줌도 없으며, 모든 물음과 답변을 떠난 그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서른 두 보살은 말로써 말을 버렸다. 그러나 문수보살은 말이 없는 것 〔無言〕으로 말을 버려 일시에 털어버려 아무것도 필요치 않는 것으로,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감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는 신령한 거북이 꼬리를 끄는 것과 같아 자취를 쓸어버린다는 게 그만 또 다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처럼, 뒤에 여전히 자취가 남아 있음〔餘蹤跡〕을 모른 것이다.

이에 문수보살은 유마힐에게 되물었다. “저희들은 각자의 설명이 끝났습니다. 인자(仁者)께서 말씀하셔야겠습니다. 무엇이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유마힐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만일 살아 있는 놈이라면 썩은 물 속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며, 만약 이러한 생각을 낸다면 미친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는 것과 같은 격이다.

설두스님 또한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며〔身久〕, 설명하지 않고서 묵묵히 의자에 기대어 앉은 채 있다가 다급하게 “유마야, 무슨 말을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설두스님이 이처럼 말한 것은 유마거사를 이해한 것일까? 꿈꾸냐? 꿈속의 알음알이로다.

유마거사는 고불(古佛)이다. 권속도 있어 부처님을 도와 가르침을 펴기도 하였다. 그는 불가사의한 변재를 갖추었으며, 불가사의의 경계도 있었으며 불가사의의 신통묘용도 있었다.

방장실(사방 10척짜리 방)에다 3만 2천 사자보좌(獅子寶座)와 8만 대중을 수용하였지만 방장실은 넓지도 좁지도 않았었다. 말해보라, 어떠한 도리일까? 이를 가지고 신통묘용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못 이해해서는 안된다. 둘이 아닌 법문이었다면 (32보살과) 함께 얻고 함께 깨쳐야만이 바야흐로 서로가 함께 알 수 있었을 터인데, 다만 그저 문수보살만이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설두스님의 질책을 면할수 있었을까? 설두스님이 이처럼 말한 것은 이 두 사람과 만나려고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유마야, 무슨 말을 하겠느냐”하고서, 다시 “속셈을 감파해버렸다”고 말하였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감파한 곳이 어디인가를. 이는 잘잘못에도 관계없고, 시비에도 상관하지 않는다. 마치 만 길 벼랑 위에서 목숨을 버리고 뛰어넘을 수 있다면 유마거사를 친견하였다고 인정하겠지만, 버리지 못한다면 울타리에 뿔이 걸려 어쩌지 못하는 염소와 같을 것이다.

설두스님은 일찍이 목숨을 버린 사람이었기에 다음과 같이 송하였다.


(송)

쯧쯧! 유마 늙은이,

-그에게 쯧쯧해서 무엇 하려고 아침에 3천 번, 저녁에 8백 번을 매질하리라. 쯧쯧한다고 해도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30방망이를 때려야 하리라.


중생을 불쌍히 여기느라 부질없이 괴로워한다.

-그를 불쌍히 여겨 무엇 하려고? 스스로 금강왕 보검이 있는데 중생들을 위해 부질없이 무명(無明)을 기르는구나. 고생만 하고 공로는 없다.


비야리(毘耶離) 성에 병으로 누워

-누구 때문에 병을 앓을까? 모든 사람에게 누를 끼치는구나.


온몸이 너무나 깡말랐다.

-병은 그만두고 무엇 때문에 입을 합죽이처럼 다물고 말도 못 하는가? 밥을 먹으려 해도   먹지 못하고 토하려 해도 토하지 못한다.


칠불조사(七佛祖師 : 문수보살)가 찾아오니

-손님이 찾아오면 맞이해야 하고 도적이 찾아오면 후려쳐야 한다. 큰 떼거리를 만들어 찾아오는군. 그래도 꼭 작가라야 될 것이다.


방을 자주 쓸고서

-아직도 이런 (쓸어야 한다는 마음의) 자취가 남아 있구나. 원래 귀신 굴 속에서 살림살이  를 하였구나.


둘이 아닌 법문〔不二法門〕을 묻자

-말할 만한 게 있었다면 그에게 말을 들었을 것이다.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설두)스님은 끝내 보지 못하는군.


얼른 몸을 뒤로 기대는군.

-아이고, 아이고. 무슨 말을 하느냐.


뒤로 기대지 않음이여,

-죽음 속에서 살아났군. 아직도 목숨이 남아 있다.


황금빛 사자를 찾을 곳이 없어라.

-쯧쯧! 보았느냐. 아이고, 아이고…….


(평창)

설두스님이 “쯧쯧! 유마 늙은이”라고 하였는데, 처음에 ‘쯧쯧’한 것은 왜 그랬을까?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으로 그 자리에서 탁 끊어버리려고 그랬던 것이다. 아침에 3천 번, 저녁에 8백 번을 쳐야 할 것이다.

범어(梵語)의 유마힐(維摩詰)이란 이곳의 말로는 무구칭(無垢稱), 또는 정명(淨名)이다. 그는 과거 금속여래(金粟如來)였다.

왜 듣지 못하였느냐, 어느 스님이 운거 도간(雲居道簡) 스님에게 물었던 것을.

“금속여래였다면 무엇 때문에 석가여래의 회상에서 법을 들었습니까?”

“그는 나와 남을 가리지 않았다.”

완전히 해탈한 사람은 부처를 이루었거나 못 이루었거나 이에 얽매이지 않으니, 그가 수행을 하여 불도를 이루려고 힘썼다고 이해했다면 이는 더더욱 관계가 없는 말이다. 「원각경」의 “윤회의 마음으로 윤회의 견해를 내어 여래의 대적멸의 바다〔大寂滅海〕에 들어가려 한다면 끝내 이르지 못하리라”고 했고, 영가(永嘉)스님은 “때로는 옳기도 하고 때로는 그릇되기도 하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역행(逆行)과 순행(順行)은 하늘도 헤아리지 못한다”고 했다. 순행을 하면 불과로 나아가고, 역행을 하면 중생의 경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연수(延壽)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설령 여러분이 점차적으로 갈고 닦아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해도 그대의 생각대로 따라서는 안된다. 끝내는 무루성신(無漏聖身)을 중득하여야 비로소 역행․순행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느라 부질없이 괴로워한다”고 하였다. 「유마경」에서는 “중생에게 병이 있기에 나에게도 병이 있다”고 하였는데, 괴로워한다면 자비가 끊긴 것이다.

“비야리 성에 병으로 누워 있다”는 것은, 유마거사가 비야리성에서 병을 앓았다는 것이다. 당나라 때 왕 현책(王玄策)이 서역에 사신으로 가는 길에 그의 처소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침내 그의 방을 수판(手板 : 관리가 임금에게 보고할 때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의 일종)으로 가로․세로로 길이를 재보니 열 개의 홀(笏)의 길이였다. 이로 인해서 방장(方丈)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온몸이 너무나 깡말랐다”는 것은 몸이 아팠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설법을 하기를 “이 몸은 덧없고 강함도 없으며, 힘도 없고 견고함도 없이 재빨리 썩는 존재이므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 괴로움과 오뇌 때문에 온갖 병이 모여들어 5음(五陰)․18계(十八界)․6입(六入)이 함께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칠불조사(七佛祖師)가 찾아왔다”는 것은, 문수보살이 7불의 조사이기 때문이다. 세존의 명으로 그에게 문병을 한 것이다. “방을 자주 쓸었다”는 것은, 방장실내에 있는 물건을 모두 없애고 걸상 하나만을 남겨두고서, 문수보살이 이르러 둘이 아닌 법문을 묻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이 불이법문을 묻자 당시에 유마힐거사는 어른 몸을 뒤로 기대고 입을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즈음 선객들은 “대답이 없었던 것이 바로 몸을 뒤로 기댄 것이라”고 하지만 저울 눈금을 잘못 읽지 말라.

설두스님은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만 길 벼랑에 올라가서 말하기를 “몸을 뒤로 기대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치며 올린 것이고 한편으로는 깎아내린 것이다. 그에게 이와 같은 빈틈없는 수단이 있었기에 곧 영롱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앞의 본칙에서 염(拈)한 “유마야,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데에 대해서 송한 것이다.

“황금빛 사자를 찾을 곳이 없다”는 것은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러하다. 유마 늙은이를 보았느냐? 산하 대지와 초목 총림이 모두 황금빛 사자로 변한다 해도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