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98칙 서원의 모두 틀림〔西院兩錯〕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4:23
 

 

 

제98칙 서원의 모두 틀림〔西院兩錯〕


(수시)

한여름 결제 동안 시끌시끌 이런말 저런말 하였으니, 하마터면 오호(五湖) 지방 스님들을 얽어매어 몽땅 거꾸러뜨릴 뻔하였다. 금강 보검이 애당초 부서졌으니 원래 그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네.

말해보라, 어떤 것이 금강 보검인가를. 눈썹을 치켜올리고 칼끝을 드러내보아라.


(본칙)

천평스님이 행각할 때 서원(西院)스님을 참방하여 여느 때처럼 말하였다.

“불법을 안다 말하지 말라. ‘그것’을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아도 없구나.”

-허물이 적지 않구나. 이놈이 옳기는 옳지만 신령한 거북이 꼬리를 끌고 있느데야 어찌하  랴.


하루는 서원스님이 멀리서 바라보고 그를 부르며 말하였다.

“종의 (從漪1) : 天平의 이름)야!”

-갈구리가 달린 작살로 찔러버렸군.


천평스님이 머리를 들자,

-당했군. 두 번 거듭된 공안이다.


“틀렸어”라고 서원스님이 말하였다.

-반드시 용광로 속에서 단련된 뒤에야 비로소 된다. 배를 자르고 심장을 긁어냈다. 삼요인  (三要印)이 열리니 붉은 점획〔朱點〕이 비좁고 주인과 손님을 나누려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


천평스님이 두세 걸음을 걸어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네. 이놈이 진흙수렁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구나.


서원스님은 또다시 “틀렸어”라고 말하였다.

-배를 자르고 심장을 긁어냈다. 사람들은 모두들 두 번 거듭된 공안이라고 말하나 이는 물  에다 물을 섞고 쇠에다 쇠를 섞는 격임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천평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여전히 귀결점을 모르는구나. 더더욱 찾을 수 없다.


서원스님은 말하였다.

“조금 전에 두 번 ‘틀렸어’라고 말하였는데 서원이 틀렸느냐, 상좌가 틀렸느냐?”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벼운 편인데 뒤에 쏜 화살이 깊이 박혔다.


“제〔從漪〕가 틀렸습니다.”

-턱뼈처럼 생긴 말 안장의 안골(鞍骨)을 죽은 아버지의 아래턱뼈로 잘못 알았다. 이와 같은 납승이라면 천사람 만사람을 쳐죽여도 무슨 죄가 있겠는가.


서원스님은 또다시 “틀렸어”라고 하였다.

-설상가상이다.


천평스님이 그만두려 하자,

-저울 눈금을 잘못 읽었구나. 과연 귀결점을 몰랐다. 너의 콧구멍이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겠다.


서원스님은 말하였다.

“우선 여기에 머물며 여름 결제를 지내면서 상좌와 함께 이 두 번 틀렸다는 것을 헤아려보도록 하자.”

-서원은 평소에 척추가 무쇠처럼 굳세었는데 당시엔 무엇 때문에 쫓아내버리지 않았을까?


천평스님은 그 당시 곧바로 떠나버렸다.

-납승처럼 보이기는 한다. 비슷하긴 해도 옳지는 않다.


그 뒤 사원(天平山)에 주석하면서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비렁뱅이가 묵은 빚을 생각하는군. 그래도 반드시 점검해야지.


“내가 처음 행각할 때 업풍(業風)에 끌려 사명장로(思明長老)의 처소에 찾아갔더니, 연이어  두 번이나 ‘틀렸어’라고 말한 뒤 나에게 그곳에 머물면서 여름 결제를 보내며 함께 헤아려보자고 하였다. 나는 그때는 틀렸다는 것을 몰랐지만 내가 그곳을 떠나 남방으로 떠날 때 비로소 틀려버린 것임을 알았다.”

-두 번 틀렸다고 한 것을 어찌하랴. 천 번 만 번 틀렸다. 이와 관계가 없는 것을 어찌하랴. 어줍잖게 근심하는 사람을 또 보겠구나.


(평창)

사명(思明)스님이 먼저 대각(大覺)스님을 참방하고 그 뒤 전(前) 보수(寶壽)스님의 법을 계승하였다. 하루는 “화성(化城 : 방편)을 짓밟아버릴때는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보수스님은 말하였다.

“날카로운 칼은 죽은 자를 베지 않는다.”

사명스님이 “벱니다”라고 말하자, 보수스님은 대뜸 후려쳤다. 사명스님이 열 번이나 “벱니다”라고 계속 말하자, 보수스님도 열 번 치면서 말하였다.

“이놈아, 무엇이 그처럼 다급하여 죽은 시체를 지키려다 뼈아픈 방망이에 얻어맞느냐?”

그리고는 큰 소리를 지르더니 나가버렸다.

그때 한 스님이 보수스님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대화했던 스님이 무슨 말을 했길래, 스님께서는 방편으로 제접하였습니까?”

보수스님은 또다시 후려친 후 이 스님을 내쫓아버렸다.

말해보라, 보수스님이 스님도 쫓아버렸는데, 그에게 옳고 그름을 말했어야 할까, 아니면 따로이 도리가 있었을까? 그 의도는 무엇일까? 그 뒤 이들은 다 함께 보수스님의 법을 계승하였다.

사명스님이 하루는 남원(南院)스님을 친견하자, 남원스님이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느냐?”

“허주(許州)에서 옵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강서(江西)에서 가져온 머리 깎는 칼〔剃刀〕을 스님께 드리겠습니다.”

“허주에서 왔다면 어떻게 강서의 체도(剃刀)가 있는가?”

사명스님이 남원스님의 손을 잡고 한 번 찌르자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시자야 받아라.”

사명스님이 소맷자락을 떨치면서 문득 떠나버리자,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아이구, 아이구!”

천평스님은 일찍이 진산주(進2)山主)를 참방한 바 있다. 그는 총림에 이르러 나복두선(蘿匐頭禪 : 무처럼 물렁한 재료로 만든 도장으로 멋대로 인가를 주고받은 선)을 참구하여 뱃속에 담아두고 이르는 곳마다 큰 소리로 “나는 선(禪)도 알고 도(道)도 안다”고 큰 소리를 쳤으며, 항상 “불법을 안다고 말하지 말라. ‘이것’을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아도 없다”고 하였으며, 구린내를 남에게 풍기면서 방자하고 경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든 부처님이 아직 세상에 출현하지 않고 조사가 서쪽에서 오지 않아, 문답이 없고 공안도 있지 않았던 그 이전에도 선과 도가 있었던가? 옛사람이 마지 못하여 기연에 따라 가르침을 베푸셨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를 공안이라 불렀다. 세존께서 꽃을 들어보이시자 가섭이 미소지었다. 뒤에 아난이 가섭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금란가사(金襴袈裟)를 전한 이외에 따로이 어떤 법을 전하였는지요?”

“아난아.”

아난이 “네”하고 대답하자, 가섭은 “문 앞의 찰간(刹竿)대를 거꾸러뜨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세존께서 꽃을 들어 보여주시지 않으시고, 아난이 묻기 이전에 어느 곳에서 공안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오로지 총림에서 오이에 새긴 도장으로 인가를 받고서 문득 “나는 불법의 오묘함을 알았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말한다. 천평스님이 바로 이와 같았다. 그러나 서원스님에게 연이어 두 차례 “틀렸다”는 질책을 당한 후엔 곧바로 두려워하고 밝히지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말한 것은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고 하나, 그러나 이는 참으로 서원스님이 두 번 “틀렸다”는 말을 귀착점을 모른 것이다. 여러분은 말해보라, 귀착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그러므로 “활구에서 참구해야지 사구에서 참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천평스님이 머리를 든 것은 (제일의제가 아닌) 이미 제이․제삼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서원이 “틀렸어”라고 말하자, 그는 분명한 의도를 알지 못하고 “나의 뱃속에 선(禪)이 있다”고 말하였으나 서원스님의 의도와는 관계없다. 다시 두 세 걸음을 걸어가자, 서원스님이 또다시 “틀렸어”라고 말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캄캄하였다.

천평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서원스님은 말하였다.

“조금 전에 두 번 ‘틀렸어’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서원스님이 틀렸느냐, 상좌가 틀렸느냐?”

“제가 틀렸습니다.”

좋아하시네, 전혀 관계가 없다. 이는 이미 제7․제8 차원에 떨어진 것이다. 서원스님은 말하였다.

“우선 여기에 머물러 여름이나 지내면서 상좌와 함께 이 두 번 틀렸다는 것을 헤아려 보자”고 했으나 천평스님은 당시 곧바로 떠나버렸는데, 이는 비슷하기는 해도 옳지는 않다. 그는 옳지 않다 말하지도 않고 쫓아버리지도 않았다. 비록 이와 같기는 하나 조금은 납승다운 기상이 있었다. 천평스님이 그 뒤 사원에 주석하면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행각할 때 업풍(業風)에 이끌려 사명스님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스님은 연거푸 두 차례나 ‘틀렸다’고 말한 후 다시 나를 붙잡으며 여름을 지내면서 나와 함께 헤아려보자고 하였다. 나는 그때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내가 그곳을 떠나 남방으로 갈 때 비로소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이놈(천평스님)이 말은 잘한다만 제7․제8 차원에 떨어져 헤아리고 있을 뿐, 그러나 전혀 관계가 없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 남방으로 갈 때 비로소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을 가지고 헤아리며 말한다.

“행각하지 않았을 때는 자연히 허다한 불법과 선도가 없었지만 행각을 할 때 총림에서 낯 뜨거운 기만을 당했었다. 행각하지 않을 때도 땅을 하늘이라 하고 산을 물이라 해서는 안된다. 이는 조그만치도 일삼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모두 이와 같은 세속〔流俗〕의 견해를 낸다면 무엇 때문에 모자 하나를 사 쓰고 관리인 체하지 않느냐? 그러나 대가(大家)가 지날 때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불법이란 이러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일’을 논한다면 어찌 많은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대가 만일 나는 아는데 그는 모른다고 말하면서 한 짐의 선(禪)을 짊어지고 천하를 두루 달리다가 눈밝은 사람에게 시험을 당하면 한 점도 써보지 못할 것이다. 설두스님은 이같이 송을 하였다.


(송)

선가들〔禪家流〕이여,

-먹통이군. 한 문서로 모든 죄상을 다스린다.


경솔하고 천박함을 좋아하여

-그래도 조금은 있구나.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는 사람들이 삼대처럼 수 없이 많다.


뱃속 가득히 참구하고서도 쓰지 못하네.

-그래도 쓸 곳은 있겠지. 모난 나뭇자루는 둥근 구멍에 들어가진 않는다. (설두)화상도 그와 함께 동참하시는군.


불쌍하고 가소롭다, 천평 늙은이여.

-천하의 납승이 뛰어도 벗어나지 못한다. 옆사람이 이맛살 찌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 그래도 남을 어리석게 만드는구나.

행각이 당초부터 후회스럽다 여겼더니

‘-행각하기 이전에 틀려버렸다. (이리 저리 행각하느라) 신발을 떨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한 붓으로 싹 지워버려라.


틀렸어, 틀렸어.

-이는 무엇일까? 설두는 이미 ‘틀렸어’라는 데 대한 말을 끝냈다.


서원스님의 맑은 바람이 단박에 녹아버렸네.

-서원이 어느 곳에 있느냐. 무엇인가? 서원이라 말하지 말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천하의 노스님도 반드시 삼천 리를 물러서야 한다. 이를 안다면 천하에 종횡한다 인정하리라.


(설두스님은) 다시 말한다.

“홀연히 어떤 납승이 나와서 ‘틀렸어’라고 말하였다.

-한 문서로 죄상을 몽땅 처리했군. 그래도 아직 조금 멀었다.


설두스님의 ‘틀렸어’라는 말은 천평스님의 틀린 것과 비교하면 어떤가?“

-서원이 다시 출현하였다. 죄상에 의거하여 판결하였다. 모조리 관계가 없다. 말해보라, 결  국 뭐냐!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틀렸다.


(평창)

“선가들이여, 경솔하고 천박함을 좋아하여 뱃속 가득히 참구하고서도 쓰지 못하네”라는 말은, 이놈(천평스님)이 알기는 했으나 쓰지 못하였다. 평소에 하늘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그(천평스님)는 조그만치 선을 알았다”고 말하나, 불꽃이 이글거리는 풀무 속에서 잠깐 녹여보면 결코 한 점도 쓸 수 없다.

오조(五祖)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참선은 유리병 속에서 떡가루를 찧듯하다. 결코 굴려보려 해도 되지 않으며, 흔들며 털어보아도 나오지 않고 툭 건드리면 바로 깨져버린다. 생동감 있는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면 터지지 않는 가죽 포대의 선〔皮殼漏子禪〕으로 참구하라. 이는 높은 산에서 굴려내려도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옛사람(風宂스님)은 말하였다. “설령 말하기 이전에 안다 해도 한 껍질 막힌 것이고 집착하여 매인 것이며, 언구에 정통한다해도 언제나 미친 견해를 면치 못하리라.”

“불쌍하고 가소롭다. 천평 늙은이여, 행각하는 꼴이 처음부터 가소롭더니”라는 말은 설두스님의 “그가 사람을 마주하여 말하지 못함을 불쌍히 여겼고, 한 뱃속의 선〔一肚皮禪〕을 알고서 조금이나마 구사해보려 했지만 되지 않았던 것이 가소롭다”고 한 것이다.

“틀렸어, 틀렸어”라고 했는데, 두 번 “틀렸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천평이 몰랐던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대답이 없었던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나, 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두 번의 “틀렸어”라는 말은 전광석화처럼 번뜩이는 것임을 참으로 몰랐다 하겠다. 이는 향상인의 경지이므로, 마치 칼을 잡고 사람을 베려거든 똑바로 목줄기를 잘라야만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만약 이 칼날 위에서 행할 수 있다면 바로 종횡무진 자재할 수 있다. 이 두 번의 “틀렸어”라는 말을 안다면, “서원의 맑은 바람이 단박에 녹아버렸다”는 뜻을 알 것이다.

설두스님이 상당의 법문에서 화두를 들어 거량을 끝마치고 짐짓 말하였다.

“틀렸어, 나는 여러분에게 묻겠노라. 설두스님이 여기에서 ‘틀렸어’라고 한 말이 천평스님이 틀렸다는 것과 비교해서 어떠한가?”

30년은 더 참구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