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계관법(淨心誡觀法)

解 題 / 1. 題名

通達無我法者 2008. 3. 7. 11:07

 

 

 

解 題
解 題 . 0


1. 題名

『淨心誡觀法』의 題名에 대하여 도선율사는 釋名篇第一에서 "마음을 淸淨하게 함에 誡로서 觀하는 법"이라 하고 序宗篇第二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근본 주범은 재물과 색에 있다고 설하고 있다. 오염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깨달음과 自利利他의 첩경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는 自利行과 利他行이 있다. 自利行은 數息觀, 不淨觀, 慈悲觀 假緣生觀 假相觀 등 五停心觀과 七方便 등의 수행으로 戒·定·慧 三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리행에서의 수행은 직접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으로 자리행에 의한 淨心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이타행은 다르다. 이타행은 대승의 三學이다. 남을 통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행과 달리 다른 사람까지 그 범위가 넓기 때문에 廣大淨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리이타로 정심하는 방법이 바로 誡로서 觀하는 방법인 것이다.
誡는 자기 자신의 허와 실, 병과 약을 아는 警覺心으로서의 앎이며 이것이 수행하도록 하는 힘이 된다. 즉 誡는 善惡의 因果를 잘 알아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규제하는 것이며 수행의 길에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 三學의 戒와 그 의미가 같다. 따라서 戒·定·慧 三學이 禪이 되고 誡가 또한 禪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禪의 인식은 比量인 추리가 아니며 언어문자를 떠난 現量인 直觀이 되는 것으로 수행자의 직관을 말한다. 따라서 誡는 禪이고 선은 수행자의 현량인 觀이므로 "誡로 觀한다"라고 한 것이다.
이 때의 觀은 誡에 대한 앎을 실현시키는 것으로 定과 慧를 생장시키며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으로 계를 통하여 관하는 법을 말하는데 이것을 淨心誡觀法이라 하는 것이다. 이 법은 분명하고 不變하다는 뜻으로 誡로서 觀해야 하는 三十篇의 全貌[차례]를 알아듣기 쉽게 일러주는 것[曉示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이 『淨心誡觀法』의 題名에 담겨진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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