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75. 빗자루를 외우며 깨침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5:53

 

 

 

 어느 스님이 나에게 물었다.

   “예컨대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라고 물으면,

어느 사람은 ‘떨어지지 않는다’ 하고 어느 사람은 ‘어둡지 않다’ 합니다.    

또한 ‘무엇이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천수천안〔大悲千手眼〕입니까?’ 라고 물으면,

누구는 ‘자기 온몸〔通身〕이 다 천수천안’ 이라 답하고,

들은 말이 있는 사람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그것은 어디에나 두루한 몸〔徧身〕이다’ 합니다.   

 

또 누가 ‘무엇이 부처입니까?’ 라고 물으면 어느 사람은 ‘악취나는 고기덩이에 쉬파리가 몰려든다’ 하고 들은 말이 있는 사람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처입은 당나귀 등뼈에 쉬파리가 우글거린다’ 합니다.   

 

또한 누군가 ‘영초(影草) 삼아 질문 하나를 던질 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물으면,

어느 사람은 ‘하필(何必)이면...’ 이라 하고,

들은 말이 있는 사람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不必〕해야하지 않을까?’ 하였읍니다.

 

   여러 노스님들의 이러한 설법을 무엇으로 우열을 구분하고 근본 종지를 알 수 있습니까?   

그분들은 법에 대해 막힘이 없이 모든 언어를 가릴 것 없이 손 가는 대로 들어올린 경우입니까?  

아니면 그 모두가 문답을 저울질하여 한 푼 한 치 비교하는 것으로써 기연에 임하여 곧바로 분별해내는 경우입니까?  

아니면 그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같고 다름을 구별할 게 없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제가 일찌기 의심을 품어오던 알 수 없는 점입니다.“

 

   “나는 그대의 의심을 풀어줄 수가 없다.   

그러나 내 듣기에는 세존께서 이 세상에 계시던 때 어느 한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성품이 워낙 우둔하여 기억력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초추(苕帚 : 빗자루)’ 라는 두 글자만을 외우도록 하였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두 글자만을 외웠지만 ‘초(苕)’자를 읽다보면 ‘추(帚)’자를 잊어버리고 ‘추’자를 읽다보면 ‘초’자를 잊어버렸다.    

그러나 매일 스스로 자신을 꾸짖고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어느틈엔가 마침내 ‘초추’ 라고 외울 수 있었다.    

 

이에 크게 깨치어 막힘 없는 언변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대가 ‘초추’ 두 글자를 외우는 것처럼만 한다면 옛 큰스님께서 대자대비하신 까닭에 만물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에 그 스님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