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록(雲門錄)

실중어요(室中語要) - 93

通達無我法者 2008. 3. 14. 16:43
 
 
93.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감히 그대들 가운데 물결을 거슬리는 파도가 있기를 바라진 않겠다. 그저 물결
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진 자도 만나보기 어렵구나."
 이어서 스님은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양수(良遂)스님이 처음 마곡(麻谷)스님을 참례하였을 때 마곡스님은 그가 오는
것을 보더니 갑자기 풀을 매러 가버렸다. 양수스님이 풀 매는 곳까지 찾아갔더니
마곡스님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방장실로 되돌아가 문을 닫아버렸다. 양수
스님은 연 사흘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사흘째 가서 문을 두드렸더니 마곡스님
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양수스님은 '스님은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스님께 찾
아와 절하지 않았더라면 경론(經論)에 일생을 속아 지낼 뻔 하였습니다'고 하였
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물결을 거슬리는 파도이더니 이제 물결을 따라주는 마음에 들었구나. 그것은
또한 거슬리고 따라주는 양쪽을 다 놓아주는 경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씀하셨다.
 "마곡스님이 '누구냐'고 물은 것과 양수스님이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한 것은
마곡스님과 만난 순간 알고 타파한 경계는 아니다. 또 '스님께서 찾아와 절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경론에 속아 지낼 뻔 했습니다' 한 것도 사람을 속인 곳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뒤 양수스님은 서울로 돌아갔다가 황제와 좌우가(左右街:승려의 관직)를
하직하였는데, 대사와 대덕들이 재삼 머물기를 권하여 차를 마시게 된 자리에
서 말하기를, '여러분이 아는 것은 이 양수가 모조리 알지만 양수가 아는 경계
를 여러분은 모른다' 하였다. 자, 무엇이 양수만이 안다 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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