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록(楊岐錄)

감변(勘辯)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0:08

 

 

 

감변(勘辯)

 

1.

하루는 연삼생(璉三生)이 찾아오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차가운 바람 매섭고 붉은 낙엽 허공에 나부끼는데 조실(祖室)

의 고상한 무리여, 아침에 어디를 떠나왔느냐?"

"공양을 하고서 남원(南源)을 떠나왔습니다."

"발 밑의 한마디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연삼생이 좌구를 한 번 집어던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뿐이냐, 다른 것이 더 있느냐?"

연삼생이 몸을 빼는 시늉을 하자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하

셨다.

2.

신참승 두 사람이 찾아오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봄비가 잠깐 그쳤으나 흙탕물은 마르질 않았다. 행각하는 고상

한 사람이여, 무슨 말을 하려느냐?"

한 스님이 말하였다.

"지난날 옛 사찰을 떠났다가 오늘에야 스님의 얼굴을 뵈옵니

다."

"어디서 이런 첫마디를 외워왔느냐?"

"스님께선 다행히도 대인이십니다."

"발 밑의 한마디를 무어라고 하겠느냐?"

그 스님이 좌구를 한 번 내려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향을 사르며 공양해야겠구나."

"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군요."

스님께서 좌구를 들고 말씀하셨다.

"두번째 행각승이여, 이것을 무어라고 부르겠느냐?"

"총림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만나기 어렵지.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3.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낙엽은 바람에 떨어지는데 아침에 어디를 떠나 왔느냐?"

"공양을 하고 남원을 떠나 왔습니다."

"발 밑의 한마디를 무어라고 하겠느냐?"

"근심있는 사람은 근심있는 사람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르지 제방을 위해서 드러낼[擧楊]뿐이다."

"이 무슨 마음이십니까?"

"내 찬탄은 듣지 못한다."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4.

하루는 신참승 몇 사람이 찾아와 만난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이미 완벽하게 진을 쳐놓았는데 솜씨좋은 장수는 어째 나와서

나와 붙어보지 않느냐."

한 스님이 좌구 하나를 던지자 스님께서 "솜씨좋은 장수로구나"

하셨다.

그 스님이 다시 좌구 하나를 던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좌구, 두 좌구, 구래서 어쩌겠다는거냐?"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께서 등지고 돌아섰다. 그 스님

이 또 좌구 하나를 던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내 말이 어디에 있느냐?"

"여기에 있습니다."

"30년 뒤에 스스로 깨닫을 것이다. 나는 그대 손아귀에 있으니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스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여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신정(神鼎)에 있었습니다."

"그대가 신정에서 왔다는 것은 벌써 알고 있었네만 다시는 감히

묻지 않겠네."

스님께서 다음날 법을 묻는 자리[參]에서 말씀하셨다.

"어제는 신참 몇이서 찾아와 내게 좌구를 세 번이나 던졌는데

깨달은 곳은 있는 듯도 하였다."

그리고는 앞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낭패를 본 곳은 여러분이 다 알겠지만 신참이 이긴 곳을

여러분은 아느냐? 알았다면 나와서 내게 기상을 토해 볼 일이요,

모른다면 눈 밝은 사람 앞에서 잘못 들먹이지 말라."

5.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만법은 본래 한가하지만 사람 스스로가

시끄러울 뿐이다" 하고는 주장자를 세워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

다.

"대중들이여, 촛불을 잘 보아라. 눈 밝은 사람 앞에서 이 이야

기를 잘못 들먹이지 말아라."

6.

스님께서 손비부(孫比部)를 방문하였을 때, 그는 마침 공사(公

事)를 판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손비부가 말하였다.

"변변찮은 관리가 나라의 일에 끄달려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비부의 원력이 크고 깊어서 많은 중생을 이익으로 구제하

심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재상의 몸으로 응하여 나타나시니

자비와 원력 크고도 깊어라.

사람을 위해 거듭 지적한 곳

방망이 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應現宰官身 廣弘悲願深

爲人重指處 棒下血霖霖

비부는 게송을 듣고 느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작은 청사로

돌아가 앉아서 되물었다.

"변변찮은 관리는 매일 재계하고 채소만 먹습니다만 그렇게 하

면 성인들에게 부합합니까?"

스님께서는 게송을 지어 주었다.

손비부, 손비부여

술과 고기로 장과 밥통을 더럽히지 않았네

시중드는 종이며 처자를 모두 돌아보지 않으니

석가노인은 누가 만들었나

손비부, 손비부여

孫比部孫比部 不將酒肉汚腸

侍僕妻兒渾不顧 釋迦老子是蘭誰做

孫比部孫比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