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록(懶翁錄)

28. 왕사 (王師) 로 봉숭 (封崇) 되는 날 설법하다 신해년 8월 26일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5:37

 

 

 

28. 왕사 (王師) 로 봉숭 (封崇) 되는 날 설법하다 신해년 8월 26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불자를 들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 산승의 깊고 깊은 뜻을 아는가. 그저 이대로 흩어져버린다 해도 그것은 많은 일을 만드는 것인데, 거기다가 이 산승이 입을 열어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기를 기다린다면 흰 구름이 만 리에 뻗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는 기연에 투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니,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뜻을 잃고 글귀에 얽매이는 이는 어둡다. 또한 마음으로 헤아리면 곧 어긋나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나며, 헤아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 물에 잠긴 돌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사 문하에서는 길에서 갑자기 만나면 그대들이 몸을 돌릴 곳이 없고 영(令) 을 받들어 행하면 그대들이 입을 열 곳이 없으며, 한 걸음 떼려면 은산철벽 (銀山鐵璧) 이요, 눈으로 바라보면 전광석화 (電光石火) 인 것이다. 3세의 부처님도 나와서는 그저 벼랑만 바라보고 물러섰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나왔다가는 그저 항복하고 몸을 감추었다.
만일 쇠로 된 사람이라면 무심코 몸을 날려 허공을 스쳐 바로 남산의 자라코 독사를 만나고, 동해의 잉어와 섬주 (曳州) 의 무쇠소 〔鐵牛〕 *를 삼킬 것이며 가주 (圈州) 의 대상 (大像) *을 넘어뜨릴 것이니, 3계도 그를 얽맬 수 없고 천 분 성인도 그를 가두어둘 수 없다. 지금까지의 천차만별이 당장 그대로 칠통팔달이 되어, 하나하나가 다 완전하고 낱낱이 다 밝고 묘해질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임금님의 은혜와 부처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주장자를 들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 주장자 밑의 잔소리 〔註脚〕 를 들으라" 하고 내던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