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하게 졸고 있다
텅 빈 절에 해는 기우는데
무릎을 안고 앉아 한가하게 졸고 있다.
소슬바람에 놀라 깨어보니
서리 맞은 낙엽이 뜰에 가득하네.
斜陽空寺裏 抱膝打閑眠 蕭蕭警覺了 霜葉滿階前
사양공사리 포슬타한면 소소경각료 상엽만계전
- 경허집
풍전등화처럼 한국불교의 명맥이 거의 끊어지려는 시기에 걸출한 선승이 있어서 다시 그 불길을 되살려 놓았다. 그래서 오늘의 불교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가 유명한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이다. 이 시는 경허 스님의 시다.
좌선을 하다보면 조는 일이 태반이다. 하지만 좌선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조는 것도 성성한 공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오래 묵은 선객들은 잘 존다. 해가 기우는 텅 빈 절에 홀로 있다. 선객이 하는 일이라고는 좌선이지만 그 좌선도 조는 것이 전부다. 일체 속된 일은 없다. 한참 졸다 소슬바람에 놀라 깨어보니 뜰에 서리 맞은 낙엽이 가득하다. 한가하고 간결하고 상큼한 선미(禪味)가 느껴지는 시다. 한편 경허 스님 당시의, 하루 종일 사람 하나 오지 않는 산골 암자의 한적한 정경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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