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성전(佛敎聖典)

십이처(十二處)

通達無我法者 2008. 8. 23. 20:51

 

 

인간 존재를 파악하는 불교의 기본입장은 제97문에서 설명한 오온설이다. 오온이 인간을 구성하는 골격이며, 이는 더 나아가 정신계와 물질계로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세계의 기반이 된다. 말하자면 인간을 포함한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오온설이다. 왜냐하면 현상의 모든 존재가 오온 중의 물질적 부분인 색온(色蘊)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것이 정신적 부분인 나머지 사온을 통해 인간에게 인식될 때만이 실재하는 것으로서 간주되기 때문이다. 불교는 이러한 현상세계의 모습을 십이처(十二處)로써 설명한다.

누군가가 부처님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하는데, 그 모든 것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에 부처님은 대답했다. '모든 것이란 열두 가지에 포섭되는 것이니 눈과 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마음과 법(法)이다.' 흔히 일체라고도 표현되는 모든 것이란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로서 쓰이고 있다. 우주 전체가 따지고 보면 열두 가지에서 나왔으며, 그 원인을 규명하면 열두 가지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열두 가지를 십이처(十二處)라고도 하고 십이입(十二入)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처 또는 입이라고 번역되는 말의 어원은 확실치 않지만,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 문' 또는 '도달의 문'이라고 이해된다. 이렇게 하여 십이처설이 성립되는데, 십이처설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이며 우주의 모든 존재에 대한 일종의 분류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적 세계관으로서는 너무 소박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여기에 간직되어 있는 사상적 배경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섯 쌍을 이루고 있는 십이처는 각기 인식기관과 인식대상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眼耳鼻舌身意)이라는 인식기관을 6근(六根)이라 한다. 인간 밖의 외부세계에는 이들에 각각 상응하는 대상이 있다. 그래서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色聲香味觸法)이라는 여섯 대상을 6경(六境)이라 한다. 말하자면 눈이 있으므로 세상에는 색깔이 있음을 알 수 있고, 귀가 있으므로 세상에는 소리가 있음을 알 수 있고, 코가 있으므로 세상에는 냄새나 향기가 있음을 알 수 있고, 혀가 있으므로 세상에는 맛을 지닌 존재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몸이 있으므로 촉감으로써 사물의 존재를 파악할 수가 있으며, 마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의 법칙, 진리, 진실 등을 알 수가 있다. 또 색, 소리 등의 세계는 인간의 눈, 귀 등이 없으면 그것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이처럼 외부세계의 모든 존재는 인간의 의식을 통해서만 그 존재의 여부가 파악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것은 일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이 현실세계의 중심을 이룬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명한 것이다. 십이처설에서 인식의 주체가 되고 있는 여섯 감각기관, 즉 6근은 그대로 인간존재를 나타내고, 인식의 객체가 되고 있는 여섯 대상, 즉 6경은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종교에서는 인간의 인식범위를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가 실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러한 초월적인 존재가 종교적인 수행을 통해서도 끝내 인간에게 스스로 입증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런 것의 실재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그러한 문제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잘 대변하고 있다.

'탁월한 온갖 지혜를 갖춘 브라만으로서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그들이 믿는 최고의 신을 본 적이 있는가? 만일 본 일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런 신을 믿고 받든다면,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본 일도 없고, 이름도 거처도 모른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

이렇듯 불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파악하고, 객체적 대상의 특질을 법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6근 중의 맨 끝을 포괄적으로 마음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의지(意志)라는 뜻이 강하다. 의지라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능동적인 힘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의지의 대상인 현상세계의 법(法)은 '필연성을 지닌 것'을 가리킨다. 이를 자연법칙이라고 보아도 되고 진리 또는 진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인위적으로 그 질서를 깨뜨릴 수 없는 자연환경이다. 이렇게 의지와 법이 십이처설에서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인간이 의지적 작용을 가하면 필연적인 반응을 보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기존의 종교가 신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있음에 반하여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려는 것이며,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세계가 개조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려는 것이라 하겠다. 제83문에서 설명한 업의 논리도 이와 관련하여 이해할 때, 자기 창조 나아가 세계창조라는 그 본래의 취의를 재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각 개인이 보다 더 많이 그리고 넓게 깊게 보고 느끼고 이해하며 노력할 때, 그가 직면하고 활동할 세계의 폭은 그만큼 넓어진다는 사실이 자명한 진리로서 이해된다.

〔참고문헌〕『불교학개론』(→ 문 1), pp. 52∼53.
고익진,『현대한국불교의 방향』(→ 문 8), pp. 136∼137.
안성두, 주민황 공역,『인도불교사상사』(민족사, 1988), p. 117.

 

출처 : 조계사 : http://www.ijogyes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