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16. 드디어 동토(東土)에 도착하다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5:47

 

 

드디어 동토(東土)에 도착하다

동쪽 땅 해돋는 곳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몸을 움직이며 기지개 폈다
맑고 신선한 공기를
아랫배 깊숙이 들이마셨다

의식을 잃은 달마의 귓가에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달마의 숨결은 파도의 리듬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바다의 물결은 달의 인력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파도친다. 이것을 일컬어 우주의 리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주의 리듬과 사람의 숨결이 하나가 되면 생명력이 샘솟는 법이다. 사람을 소우주(小宇宙)라고 말하는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달마는 몸을 움직여 보았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발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으로 이곳 저곳을 더듬어 보았다. 비로소 자기 몸이 나무판에 밧줄로 묶여 있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나무판이 바위 틈에 끼여 있어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순간 달마는 그가 살아날 수 있게 된 연유를 알 수 있었다. 만약 나무판이 바위에 단단히 끼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바다 속에서 헤어날 수 없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달마의 얼굴은 그 순간 기쁨의 눈물로 얼룩졌다. 그의 가슴은 희망으로 고동쳤다. 밤바다의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달마는 냉정을 되찾았다. 천축을 떠나온 지 3년이 되었는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만약 바다 깊은 곳이라면 암초가 있을 리 없을 텐데 나무판이 암초에 걸렸다면 뭍에서 멀지는 않다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달마는 꿈에도 그리던 동녘 땅이 금시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달마는 우선 새우잠을 청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동쪽 하늘이 밝아 왔다. 바위 위에 반사된 햇살이 달마의 얼굴을 비췄다. 고요한 파도 소리가 평화로움을 한껏 느끼게 했다.

“어제까지 그렇게 포악하던 바다가 이처럼 조용하고 온순할 수도 있다니.”달마는 입 속으로 뇌까렸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기지개를 폈다. 맑고 신선한 공기를 아랫배 깊숙이 들이마셨다. 바다의 찬 바람에 뼛속까지 시렸던 몸이 호흡과 함께 차츰 온기를 되찾았다.

달마는 벌떡 일어났다. 멀리 육지가 보였다. 동녘 땅 진단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동토! 진단!”
달마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바위 위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그는 눈대중으로 육지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이삼십 리는 족히 될 것 같았다. 비록 비전(秘傳)의 경공(輕功)을 익힌 달마였지만 그런 거리를 날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육지까지 갈 일을 생각하니 다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달마의 머리 속에 문득 몸을 묶었던 나무판과 밧줄이 떠올랐다. 그는 밧줄을 수습하고 바위 틈에서 나무판을 빼냈다. 그리고 나무판 위에 비스듬히 누워 보았다. 아쉬운 대로 배 대신 쓸 심산이었다.

달마는 몸을 나무판에 묶고 두 손을 노 삼아 해안까지 저어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조수(潮水)가 육지를 향해 밀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달마는 서둘러 몸을 바다에 맡겼다. 파도가 쏜살같이 해안으로 굴러가고 달마의 배도 덩달아 밀려갔다.

“성공이다!”
달마는 기쁜 나머지 허공을 향해 크게 고함을 질렀다. 조수는 점점 불어나고 나무판에 실린 달마의 눈에도 육지가 점점 가까이 들어왔다. 해질 무렵이 되자 육지는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불과 1리(里) 정도의 거리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풍향(風向)이 바뀌면서 조류가 썰물이 되기 시작했다. 달마를 실은 나무판은 걷잡을 수 없이 다시 바다 가운데로 밀렸다. 두 손을 노 삼아 힘껏 저어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달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죽을 힘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부처님의 자비가 어찌 달마를 그대로 방치하겠는가. 달마의 나무판은 ‘꽝’ 소리와 함께 썰물로 물이 빠지면서 수면 밖으로 드러난 암초 위에 실렸다.

달마는 머리가 아찔했으나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혔다. 겹겹이 쌓인 피로 때문인지 달마는 눈을 뜨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 버렸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잠 속에 빠졌는지 모른다.

서늘한 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 걸 느끼면서 달마는 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뿌연 하늘엔 몇 조각 구름이 걸려 있었다. 찬란한 아침 해가 지평선 너머에서 떠올랐다. 바위에 서서 해돋이를 바라보면서 달마는 감개가 무량했다. 동쪽 땅 해 돋는 곳이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해안가에 펼쳐진 광경은 모두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바닷가 모래는 햇빛을 받아 금싸라기처럼 반짝였다. 한 무리의 기러기 떼가 일(一)자 형태로 날아오더니 그의 머리 위에서 인(人)자 대열로 바꾸며 자태를 뽐냈다. 멀리 푸른 들판이 보이고 그 뒤의 산들은 위용을 자랑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달마는 모든 것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고 해안가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흰 구름이 깔려 있는 듯싶은 한쪽 구석에서 ‘음메-’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은 틀림없는 양의 울음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달마는 깜짝 놀랐다. 문득 스승 반야다라가 읊은 게송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보면 물을 건너고 또다시 양을 만난다(路行跨水復逢羊)”는 게송대로 지금 물을 건너 양을 만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곳이 바로 스승이 말한 불연(佛緣)의 땅, 동쪽의 진단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달마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 곳이 바로 동토였다. 광동 해안의 ‘하구로(下九路)’라는 곳이다. 훗날 ‘서래초지(西來初地)’ 즉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최초로 도착한 땅이라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역사의 기록에는 이 날이 양무제(梁武帝) 보통(普通) 7년 즉 단기 2859년, 서기로는 526년 음력 9월 27일이라고 쓰여 있다.
태양은 점점 솟아올랐다. 남쪽의 작렬하는 햇빛은 물에 젖은 달마의 가사를 말려 주었다. 달마의 마음과 몸은 드디어 햇빛과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달마의 내면 세계에선 무한한 힘이 샘솟았다. 달마는 불과 1리 안팎의 거리를 돌파하기 위해 바다 속에 뛰어들었다. 달마에게 이 정도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3년 동안이나 바닷길에서 천신만고를 거듭한 달마는 마침내 뭍을 밟는데 성공했다. 그의 굳은 믿음과 불굴의 정신 그리고 스승에 대한 의리와 강한 의지가 꿈에도 그리던 동쪽 땅에 다다르게 한 것이다. 두 다리로 밟고 선 땅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어 달마는 힘주어 발을 굴렀다. 그는 새삼스럽게 자세를 가다듬고 바로 섰다. 갑자기 보다 성숙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성공의 희열 속에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진제(眞諦)를 새삼스럽게 곱씹었다.

달마는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잠시 고개를 돌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만경창파는 아스라이 바다의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지난날의 바다의 어두움과 두려움은 그 소리에 실려 달마의 귓가에서 희망으로 승화되었다.

태양은 더욱 높이 솟아올랐다. 달마는 양 떼를 방목하는 풀밭에 도착했다. 풀밭 한가운데엔 큰 바위가 있었다. 바위 위엔 채찍을 든 노인이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달마는 황급히 앞으로 다가갔다. 합장을 하면서 공손히 예를 표했다.

“노인장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요?”
노인은 똑바로 달마를 쳐다보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달마는 눈에 웃음을 머금고 노인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노인의 얼굴엔 잔주름이 깊이 패어 있었다. 입은 옷은 남루했지만 스님의 행색이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맨발을 하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엔 놀라움과 의심하는 기색이 확연했다.

달마는 노인의 그런 태도가 당연하다고 여겼다. 게다가 자기가 한 말조차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마는 손을 들어 가슴에 얹은 다음 손가락으로 ‘하늘(天)’을 가리키고 ‘바다’(海)를 가리켰다. 이어서 땅(地)을 가리키고 양(羊)을 가리켰다. ‘노행과수복봉양(路行跨水復逢羊)’이라는 게송을 떠올린 달마는 이 곳이 그 인연의 곳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자기의 신분이 승려이며 천축에서 바다를 건너 이 곳에 왔고 양을 키우는 노인장을 만나 반갑다는 뜻을 열심히 몸놀림으로 전달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그의 손짓 발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손으로 양 떼를 가리키는 것에서 노인은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노인은 그가 탁발을 하기 위해 양성(羊城)이라고 불리는 광주(廣州)로 가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 듯싶었다. 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달마를 자기가 앉아 있는 바위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달마가 옆에 앉자 종려나무 잎사귀로 싼 것을 건네 주었다. 달마는 의아하게 여기며 종려나무 잎사귀를 벗겨 보았다. 그 순간 맑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 속엔 참깨까지 뿌려져 있는 주먹밥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음식을 가리키면서 연신 그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 ‘어서 드시오. 비록 맛은 없는 것이지만 어서 드시오’하는 뜻인 것 같았다. 달마는 곡기를 입에 대 본지 오래였다. 사양하지 않고 주먹밥을 먹기 시작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 속에 가득 찼다.

달마가 주먹밥을 다 먹기를 기다린 노인은 천천히 일어섰다. 채찍으로 땅을 가리키고 양 떼를 가리키고는 남쪽 방향을 가리키면서 그 곳으로 가라는 시늉을 했다. 달마는 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새 알아차렸다. 심지어는 노인의 몸놀림에서 해가 서쪽으로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까지도 읽어 냈다.

달마는 노인에게 정중한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주먹밥을 준 데 대해서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는 노인이 가리켜 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과연 석양이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질 무렵 달마는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는 ‘수(穗)’라고 불리기도 하고 ‘양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옛 전설에 따르면 다섯 명의 신선이 벼 이삭을 들고 오색빛의 양을 타고 이 곳에 나타나 풍요로운 고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고사(故事)에 따르면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속했던 이 곳은 당시의 재상 고고(高固)의 고향으로 다섯 마리 양이 벼 이삭을 물고 고고의 집 정원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것을 길조(吉兆)로 여긴 고고는 임금에게 아뢰어 이 곳 지명을 양성으로 명명(命名)했다고 한다. 그 뒤 이런 전설과 고사를 기리기 위해 광주의 주 청사 안엔 다섯 명의 신선과 다섯 마리의 양 그림이 벽화로 그려졌다. 이로 말미암아 이 곳의 이름은 ‘수’ 또는 ‘양성’으로 널리 퍼지게 됐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