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성법스님

반야심경/성법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10. 5. 06:40

 

 

⊙ 물질에서 진리를 찾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법에서 수행방법으로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 수행방법에서 깨달음으로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야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증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무안이비설신의 無眼耳鼻舌身意

집착할 것 없는 뜻의 작용

현장역 반야심경에서는 '의意'의 작용이라 했습니다.

는 마음 , 알 자 와는 그 범주가 다릅니다. 식은 앞서 말씀드렸고, 심은 앞으로 설명 드려야하고, 지금은 '의'를 설명하겠습니다.

'의'意는 생각하다, 뜻하다, 이해하다라는 개념의 말입니다.
눈 귀 코 혀 촉감 등으로 느낀 바를 종합하여 받아들이거나, 그러한 대상이 없어도 상상하여 스스로 생각을 일으키는 작용을 말합니다. 신념이라는 것도 여기서 나옵니다.

여자가 공주병에 걸리는 것은 바로 이 의작용이 분수를 모르고 '오버'한 것입니다.
남자들의 경우
'내가 누군데'하며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도 이 의작용이 직권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거룩해 보이는 종교적 믿음의 시발도 실은 대부분의 경우 이 의작용에 의지합니다.
종교적 믿음의 근거를 처음부터 100% 확실하게 인지하여
'믿음'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분 다 어떤 계기와 실천, 그리고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다만 두 분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 분들이 1%에서 시작한 것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하면서 100%로 완성해 내신 분이라면, 우리는 100%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며 시작해서 1%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두 분은 오히려 당시로서는
종교성宗敎性과 같은 동기 유발의 요인보다는 기존 사상에 대한 '안티' 정신으로 세상을 바꿔놓으신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념과 믿음(꼭 종교적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이 얼마나 공허한지 말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많은 종류의 '믿음'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믿음들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서 읽는 조간신문이 배달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매일 아침에 출근하며 이용하는 지하철 1호선이 예고 없이 운행되지 않고, 점심시간에 음식을 주문했는데 이유 없이 배달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이 정도의 믿음에 대한 사소한 배반쯤이야 화를 참으며 하루를 넘기면 잊어버릴 수 있는 일들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믿고 또 그렇게 믿기를 종용 당해왔던 역사적
'믿음'과 종교적 '믿음'의 일부가 허구로 가득 찬 조작된 진실임을 알았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저는 고등학교 때의 일이라 아직도 그 당시 의심할 수 없는 '믿음'으로 가득 찼었던 몇 몇 역사적 일들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영화 실미도로 알려진 1971년 사건도 분명 국민들은 무장공비의 난동이라 믿었습니다. 중앙정부부장이었던 이후락 씨가 1972년 박정희대통령의 특사로(실은 밀사지만)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고, 곧이어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어린 나이였지만 앞으로 전쟁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나라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1979년 박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난 후에는 이제 독재 정권이 끝났으니 더 이상의 학생 데모는 구경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선출될 줄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고, 더욱이 친구 덕에 노태우 대통령이 탄생됐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후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이 차례로 대통령이 될 줄도 믿을 수 없었던 일이고, 더더욱 그들이 자신들 일생의 정적政敵이였으며, 역설적으로 그래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단초를 준 박정희보다는 독재 빼놓고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잘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도 믿기 힘든 일입니다.

국가단위를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도 '믿음'의 허망함은 여실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위안부는 없었다'라든지,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그들의 믿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미국의 이라크 침공시 분명히 했던 세계를 대상으로 한 부시의 미국적 '믿음' 즉, 대량살상 무기 운운과 인류 평화의 중대한 위협 운운을 지금 우리는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이러한 것이야 역사적 사실이고, 또 기록되는 문서가 있으니 그 당시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언젠가는 아니 몇 십 년 많아야 몇 백 년 후면 밝혀질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치, 경제에 대한 문제는 객관적 잣대가 통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들통날 날만 기다리는 역사적인 '믿음'이 종교적 '믿음'에도 적용된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종교도 인간이 하는 행위 중 하나인 까닭에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중세의 교회의 불미스럽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그 당시 교회의 수장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행했을까요? 교황의 성서 속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평신도의 믿음보다 더 영적靈的이라고 믿어야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달라이라마의 언행에 정치적 무엇인가가 내재되어 있다고 의심하면 불순한 생각일까요? 그의 말이면 무엇이든 불교의 큰 가르침이라는 '믿음'의 근거는 과연 있기나 한 걸까요? 교황청이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가 아니라고 공식 인정한 것이 불과 30여 년 전인1969년인데, 그렇다고 교황청에서 거의2000년 동안 거짓말을 해왔다고 믿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절에서 행하는 불사 중 '천불' , '만불' 봉안 불사佛事는 예배 대상으로서의 불상을 모시기 위함이 아니라, 단순히 법당을 짓는다고 공고하면 시주가 잘 안되고, 부처님을 봉안하며 이름을 새겨주어야 시주가 잘되기 때문에 법당을 짓고 절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한 방법임을 말하면 이 또한 불교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키는 것일까요?

신도들에게 솔직히 입장을 설명하고 순수하고 진정한 '믿음'에 의지하면 왜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편법을 써야만 하는지 승속을 막론하고 깊게 반성해야 할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임을 굳이 숨기지 않겠습니다.

가장 쉽고 확실한 복음福音의 전파, 다시 말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기독교를 가장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방법은 일단 '믿음'을 갖고 기도하는 모든 이에게 당신의 모습이나 예수의 모습, 혹은 천사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불교의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의 기도에는 관세음보살이 현현顯現한 적이 왜 한 번도 없을까요? 어이쿠, 너무 거창해졌습니다.

그러나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냉정히 의'意'해 봅시다. 이렇듯 사소한 일상에서 종교적 믿음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믿음'이 실은 인간 자신의 뜻일 수도 있고 또 인간 자신만의 헛된 망상일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종교적 탈을 쓴 위선보다 믿음을 져버린 '양심'이 더 종교적일 수 있습니다. 져버린다는 것은 초월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 의意의 작용으로 마음속으로 확신하고 있는 신념과 '믿음'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반야심경에서 공중(空中) 무의'無意'라 한 것입니다.

UN에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은 딱 한가지였다.
‘지금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량부족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면 정직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설문은 ‘엄청나게’ 실패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식량’이 뭔지 몰랐고, 서유럽에서는 ‘부족’이란 단어를 몰랐다. 동유럽에서는 ‘의견’의 뜻을 몰랐고, 중동에서는 ‘해결책’이 뭔지 몰랐다. 남미에서는 ‘부탁’이라는 걸 몰랐고, 아시아에서는 ‘정직한’이라는 뜻을 몰랐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다른 나라들’이라는게 뭔지 몰랐다.

※ 성법스님 저서'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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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6일 동영상 법문이 올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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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회원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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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이판사판]

[지난상영작] 옴 샨티 옴

[법 회 안 내]

운영자 성 법입니다.
회원들을 위한 『법회』를 공지합니다.

주 제

 42 장경(십바라밀)

장 소

 법성원(法性圓)  ☞ >약도<

일 자

 2008년 10월 1일 (1,3주 토요일)

시 간

 오후 3시부터 

교 재  >십지十地<

참석회원께서는 교재를 준비(인쇄)하여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되도록 이곳에 올려진
2008년도 동영상강의
시청하신 후 참석하시길 부탁 드립니다.
차(茶)와 다과 준비하기 위해 미리 신청을 받습니다.

>참가신청하기<

 

[법성원 소식]

위빠사나 강좌안내 (무위해공)

상설강좌

 매주 일요일 오후 1시부터

『총론 회원제』실시 안내
총론회원 : 한달에 1만원 이상씩 계좌자동이체(매월이체)를 하시면 됩니다.
동참하신 다음에 세존 사이트 편지함이나 e-메일로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시면
이미 제작된 CD를 보내드리며 '총론회원법석'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불교경전총론(http://www.sejon.or.kr) 세존 사이트를 널리 알려 
어두운 세상을 '화엄의 등불'이 밝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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