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붓다의수행법·위빠사나·묘원법사

붓다의수행법/위빠사나/3

通達無我法者 2010. 12. 19. 20:14

 

 

2010년 5월 9일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부처님의 핵심적 가르침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 상호 의존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다른 하나는 사성제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원래 불만족인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이 있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열반이 있으며,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8정도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괴로움이 있다는 세속과

괴로움을 해결하는 출세간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핵심적 교리는

부처님이 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원래 세상에 있는 것이지만,

모르고 있는 진리를 부처님께서 찾아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이런 진리는 부처님이 말씀하셔서 진리가 아니고, 

가장 고귀한 진리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부터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념처경의 서언의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다싸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다싸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다싸


이 빨리어 예경문을 우리말로 옮겨보겠습니다.

존귀한 분, 공양 받아 마땅한 분,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께 귀의합니다.

존귀한 분, 공양 받아 마땅한 분,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께 귀의합니다.

존귀한 분, 공양 받아 마땅한 분,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께 귀의합니다.


대념처경


서언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한 때 부처님께서는 꾸르스 지방의 깜마사담마라는 상업 도시에 머무셨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습니다.

비구들은 “네, 세존이시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중생을 정화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게 하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올바른 길에 도달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다.

이것이 바로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며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그는 느낌에서 느낌을 알아차리며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그는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며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그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며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이상이 부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불교도들은 경전을 읽을 때나, 예불을 올릴 때나,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과 승단인 상카에 경의를 표현하는 뜻으로

빨리 게송을 세 번씩 암송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승 삼보에 대한 예경입니다.


대념처경의 처음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시작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져 있는 모든 경전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나’라는 말은 부처님의 첫째 사촌인 아난다 존자를 지칭합니다.

아난다 존자는 25년간 부처님을 개인적으로 시중하셨습니다.

그분은 부처님과 동갑이고, 부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알려졌습니다.


부처님께 45년간 가르침을 펴는 동안

처음 20년간은 전적으로 부처님을 시중하는 비구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한 비구가, 다른 때는 다른 비구가 시중을 들었습니다.

21년째부터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을 전적으로 시중들게 되었습니다.


아난다 존자에게 이 자리가 주어진 배경이 재미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신지 21년째 되는 해에

시중을 들 비구가 필요하다고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이 시자가 되려고 애썼으나

부처님께서 그들을 거부하셨습니다.


상가회의에서 비구들이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께 봉사하기를 권고하자 아난다 존자가 말했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내가 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그분이 나에게 요청하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요청하지 않으시면 나는 나서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처님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시자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어떤 조건 아래에서만 그 자리를 맡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가 말한 여덟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처음에 네 가지 거부하는 조건입니다.

그리고 다른 네 가지 원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난다가 시자가 될 때

이런 여덟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시자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네 가지 거부하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부처님께서는 내가 시자라는 이유로

부처님께서 받은 어떤 가사도 주지 말 것을 요청했습니다.

둘째, 시자라는 이유로

부처님께서 받으신 좋은 음식을 그에게 주지 말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셋째, 부처님의 향기로운 방에 머물게 하거나

독방을 갖도록 하지 말 것을 요청했습니다.

넷째,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공양을 같이 하고자 할 때

아난다 존자는 그 초대에 포함하지 말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것들이 거부하는 네 가지 조건입니다.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과 그러한 관계로 어떻게든 물질적인 혜택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네 가지 원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어떤 초대도 수락할 권리를 가지며,

아난다 존자가 초대를 수락하면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초대받으신 장소로 가셔야만합니다.

둘째, 멀리서 온 신심 있는 불자가 오면 어느 때나 부처님께 데려오도록 허락되어야 합니다.

셋째,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부처님께 제기하도록 허락되어야 합니다.

만약 아난다 존자가 어떤 것이건 의구심을 가지면

부처님께 가서 의구심을 없애주기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께는 아난다 존자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시도록 항상 개방되어 있으셔야한 것입니다.

넷째,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가 없을 때 하신 법문을 그에게 반복하셔야 합니다. 

이 마지막 사항이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라는 말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모든 조건을 승낙하셨고,

아난다 존자는 이 조건하에서 부처님의 개인 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 존자가 없을 때 하신 법문을

어떤 것이든 항상 아난다 존자에게 반복하여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서 펴신 모든 법문과 가르침을 전부 알았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역대의 25분의 모든 부처님들은 반드시 뛰어난 기억력을 소유한 수행자를 시자로 두고 있습니다.

전법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는 들었다’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실을 말한다는 엄숙한 선언입니다.

이는 아난다 존자의 이야기가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후대에 만들어진 경전에서도 똑같이

‘이렇게 나는 들었다’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아난다 존자의 말이 아니고,

일반적인 관용어로 사용된 것이라고 아셔야 합니다.


첫 번째 아비담마 책의 주석서에 쓰인 법집론 주석서라는 책에서

아난다 존자에 대한 칭송의 말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야말로 넓은 경험을 가지고,

삼장인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장, 율장, 논장을 공부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곤충과 꽃을 수집하듯이 쉽게 일만 오천 절,

또는 육천 피트 길이의 글을 서서 배우고 암송하고 설법할 수 있었습니다.

즉, 한 번 서있는 동안 그분은 배우고 암송하고 또는 설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이 그분께서 행한 해설의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부처님 외에 누구도 가르칠 수 없었고, 또는 가르침으로 명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존자께서는 경전 원문의 낱말들 하나하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석서에서는 아난다 존자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빠르고 예리한 지성을 갖추었습니다.

부처님만이 아난다 존자를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3개월 째 되는 때에

첫 번째 불교의 결집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부처님께 들었던 가르침을 여러 비구들에게 알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뒤 수제자인 마하 까삿빠 존자는 결집을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참여할 500명의 아라한을 뽑았습니다.

그 결집에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 모아졌고 주의 깊게 면밀히 검토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이 결집에서 인정되어 모아졌고 일제히 조화롭게 암송을 했습니다.

조화롭게 암송한다는 것은 그 가르침이 부처님의 금구를 통한 말씀이라고 결집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되었음을 뜻합니다.


그 당시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써두는 것이 아니라 암송하는 방법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가르침들이 암송으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묶음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구분은 바구니로 구분한 것입니다.

이것을 위나야의 바구니, 즉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할 계율을 다룬 것이며,

다른 구분은 숫따의 바구니 즉 법문부의 바구니인 경장과

아비담마의 바구니는 논장으로 즉 높은 가르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념처경은 법문부에 속합니다.

이렇게 기록되고 모여진 부처님의 가르침들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신지 약 500년쯤 되던 때에 스리랑카에서

야자수 잎에 써지기까지 입을 통해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해졌습니다.


여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글로 써서 전할 때는 글을 잘못 쓰기 때문에,

오자(誤字)가 나서 뜻이 왜곡될 수가 있는데,

구전으로 암송해서 전할 경우에는

그 뜻이 더 완벽하게 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첫 번째 불교인 결집대회에서

마하 까삿빠 존자가 부처님 가르침의 사실 여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고,

이에 두 존자가 이들 질문에 응답했습니다.


비구와 비구니들을 위한 계율을 다룬 율장에 대하여는 우빨리 존자가 답변하였습니다.

경전에 대해서는 아난다 존자가 응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신 법문은 이렇게 모두 84000경입니다.


1차 경전 결집대회는 가섭존자가 주재하였는데

아라한이 500명이 모여서 부처님 말씀을 정리했습니다.


이때 아난다 존자는 수다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그는 경행을 하고 새벽에 이르러 피곤해져서 자리에 누울 때

아라한이 되어 다음날 경전결집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출처: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