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1

通達無我法者 2010. 12. 25. 20:31

 

 

 

 

2009년 12월 14일


안녕하십니까?

사단법인 상좌 불교 한국 명상원의 묘원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함께 부처님의 위대하신 가르침인

12연기와 위빠사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12연기는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사상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이 12연기법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이데올로기,

그것을 초월하는 최고의 지혜로 밝혀져 있습니다.


저희가 오늘부터 공부할 12연기와 위빠사나에 대한 내용은

미얀마의 모곡 사야도의 12연기 법문집을 바탕으로 공부해 보겠습니다.


이 교재는 ‘도서출판 행복한 숲’에서 발행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내용의 교재입니다.


그러면 먼저 이교재의 서문을 써주신 아가마하 빤디따라는

우 티틸라 사야도의 말씀부터 들어보시겠습니다.

 

이 우 티틸라 사야도께서는 매우 뛰어난 스승이신데,

모곡 사야도의 12연기 법문집에 12연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함축적 내용을 요약해주셨습니다.


티틸라 사야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연기는 한 인간의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을 분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정신과 물질이고,

이 정신과 물질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생성하고 소멸하는가를

원인과 결과로 아는 것이 연기의 법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12연기를 공부하면

첫째 수행자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바른 길을 가게 됩니다.

둘째로는 일반적으로 개아, 남자, 여자로 불리는 다양한 육체적 정신적 현상들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어떤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에 의해서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셋째, 태어남과 죽음은 조건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넷째, 이 조건들이 제거되면 모든 고통이 사라집니다.

다섯째, 고제(苦諦)와 집제(集諦)를 일반적인 순서로,

그리고 집제(集諦)와 멸제(滅諦)를 역(逆)으로 하여 그 철학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연기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누구나 익혀야 할 핵심적 요소입니다.


철학은 지식이지만 수행은 지혜입니다.

지식은 사유하는 것이지만 지혜는 통찰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끊을 수 없지만 지혜는 끊는 효과가 있습니다.

12연기 공부를 하면 지혜가 나서 모든 번뇌를 끊는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할 12연기는 불교의 핵심적 사상입니다.

불교는 심리학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분석합니다.

이러한 분석의 목적은 치유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불교는 그 특성상 다른 모든 종교 및 철학과 구별이 됩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비로 시작해서 지혜로 완성 됩니다.


불교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해탈의 방식은 다른 모든 종교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이들 종교들은 일반적으로 “신에게 귀의하라. 신에게 기도하고,

너 자신을 신에게 바쳐라. 또 신과 하나가 되어라”라고 가르칩니다.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는

모두 ‘신’이라는 개념에 근거를 둔 가르침을 폅니다.

이들 종교들은 인간이 신을 믿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참되고 유용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들 종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관용과 순수

그리고 성스러움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붓다께서는 해탈을 향한 첫 발걸음으로서

신을 경배하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용과 순수 그

리고 성스러움이 가득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교가 다른 모든 종교와 구별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무아(無我)라는 사상입니다.

무아는 자아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아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마음은 있지만

나의 마음이 아니고 단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소유할 수 있는 나는 없으며, 조건에 의해 생멸하는 마음만 있습니다.

또 항상 하는 마음이 아니고, 항상 생멸하는 마음으로,

이 마음이 나의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이 불교의 핵심사상입니다.


유대 철학에 의하면 몸속에 머무르는 한 개체가 있어서 인간의 행위를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고 항상(恒常)하는 것으로서 죽어서도 어디엔가 변함없이 존재하여

심판의 날이 되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믿습니다.


자아(自我)는 영원하며 육체 안에 거주하는 분리 가능한 존재라는 견해는

모든 인도의 사상, 학파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현대 유럽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모든 것은 유동적이고,

변화하는 상태일 뿐이고,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에 몸뿐만이 아니고

마음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위 인간을 이루고 있는 정신과 물질 이외에

어디에도 영원불멸의 영혼 또는 자아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과 기운들,

즉 빨리어로는 마하부따(Mahā-Bhūtas.)라고 하는

사대(四大)의 근본 요소들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정신은 자아가 아니고,

물질은 지수화풍이라는 사대의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이해하셔야합니다.


우리들의 몸이 사대라는 요소로 구성되어있는데,

이 사대(四大)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상호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대와 수대, 화대, 풍대는 하나의 요소로서 항상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모든 형태의 물질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사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은 어떠한 비율로 섞여 있든지 간에 이들 사대가 결합된 것으로 이해하셔야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들 결합물인 물질들은 사대가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결합됨에 따라

각기 다른 외형과 모양, 형태로 마음에 인지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한 존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정신은 본질적으로 의식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을  ‘생각’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각은 단순한 생리학적 기능이 아니라,  

마치 전기와 같은 어떤 종류의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생각과 이들 생각의 흐름은 네 가지 종류의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물질적 요소와 또 정신적요소로 드러난 것들이

바로 존재의 근본적 유동의 상태인 생각의 힘을 현시화 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상좌 불교에서는 심(心), 의(意), 식(識) 이렇게 세 가지로 구별합니다.

그러니까 정신을 마음이라고 하는데, 이 마음은 심(心)이라고 표현되기도 하고,

의(意)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식(識), 아는 마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는 본문에 들어가서 심도 있게 여러분들과 함께 다루어보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관한 부처님의 분석을 따르면,

마음은 네 가지 정신적인 무더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이라는 무더기와 정신이라는 무더기는 네 가지로 구별되는데,

첫째는 모든 종류의 감각 혹은 느낌을 말하는 느낌의 무더기들이 있습니다.

둘째는 감각대상을 인지하거나, 혹은 감각에 대한 기억, 표상, imagination을 말하는

상온(想蘊)이라는 무더기가 있습니다. 

셋째는 성향과 능력을 포함한 50가지의 정신적 요소들인

행온(行蘊)이라는 무더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상 세 가지 것들의 근본 요소인 식(識)이라고 하는

아는 마음의 무더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식이라는 아는 마음과 수상행이라는 마음의 작용이

크게는 정신으로 불리어집니다.


이렇듯 소위 존재는 오온으로서, 항상 변하며,

연속적인 두 순간에 결코 동일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의 결합물입니다.


이들 오온(五蘊) 중에 자아 또는 영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자아 또는 영혼이라고 할 것인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들 오온과는 별도로

자아라고 불릴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존재의 세 가지 근본의 특성인

무아의 특성, 즉 영구불변하는 자아 혹은 영혼이 없다는 사실에 접하게 됩니다.

바로 이 무아의 법칙이야말로 불교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불교의 가장 위대한 사상이고, 또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내용입니다.


만일 수레에서 바퀴와 축, 바닥과 측면, 채와 기타 모든 부분을 빼버린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들 각 부분들이 결합해서 수레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오온이 결합하여 하나의 존재가 됩니다.

이런 존재는 육체적 정신적인 변화의 상태에 따라 구별되는 것으로,

그 종류와 형태, 모양에 따라 수많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생명의 궁극적인 근원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주요한 견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한한 과거 속에 시원(始原). 그 시원이 있고,

시원 또는 제1원인은 창조주라고 하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는 생명은 시원이 없으며,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는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제1원인이라는 시원은 알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생명은 시원이 있고, 그 시원은 창조주라는 첫 번째 견해를 취한다면,

이 창조주 자신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의 존재는 어떤 법칙에 의해 조건 지어지거나 지배받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어떠한 선행하는 원인 혹은 창조주 없이 저절로 존재할 수 있었다면,

이 세계나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창조주 혹은 선행하는 원인 없이도

평등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교재를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다음에는 마찬가지로 생명의 시원에 대한 다른 견해에 대해서 공부를

함께 하시도록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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