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행록30/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9. 10. 16:30
 

행록 30

58-2 봉림과의 시문답(詩問答)

到鳳林하니

林問, 有事相借問得麽

師云, 何得剜肉作瘡

林云, 海月澄無影이어늘

游魚獨自迷로다

師云, 海月旣無影이어늘

游魚何得迷

鳳林云, 觀風知浪起하고

翫水野帆飄로다

師云, 孤輪獨照江山靜하니

自笑一聲天地驚이로다

임제스님이 봉림스님이 계신 곳에 이르자 봉림스님이 물었다.

“물어 볼 것이 있는데 괜찮겠는가?”

“무엇 때문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십니까?”

“바다에 비친 달이 너무나 밝아서 그림자가 하나도 없는데,

노니는 고기가 제 스스로 미혹할 뿐이다.”

“바다에 비친 달은 이미 그림자가 없는데, 노니는 고기가 미혹할 리 있겠습니까?”

“바람을 보아 물결이 이는 것을 알고, 물을 보고 작은 배에 돛을 올린다.”

“외로운 달이 홀로 비치어 강산은 고요한데, 혼자서 웃는 소리가 천지를 놀라게 하는군요.” 

 

강의 ; 노파의 말을 뒤로하고 결국 봉림스님을 만났다.

봉림스님은 시를 짓는 솜씨가 뛰어난 분이다.

물론 임제스님도 그에 걸 맞는 솜씨를 발휘한다.

눈이 밝은 사람들은 긁어서 부스럼 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또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만들어 올리는 것도 금기사항이다.

그런데 봉림스님이 긁어 부스럼 내는 짓을 하겠는가?

임제를 점검하기 위해서 그물을 던져보는 일이다.

“본분자리에는 밝고 밝은데 그대는 왜 길을 잃고 돌아다니는가?”

“밝고 밝은데 길을 잃고 돌아다닐 일이 있겠습니까?

누가 길을 잃었단 말입니까?”

이렇게 수작하여 멋진 시가 오고 간다.

“내 그대의 하는 꼴을 보고 하는 말이다. 내가 잘 못 볼 리 있겠는가?”

“잘 못 보았습니다. 나는 경우가 틀립니다.” 하면서 그 유명한 “고륜독조강산정 자소일성천지경(孤輪獨照江山靜 自笑一聲天地驚)” 이라는 구절을 내 놓는다. 하늘을 찌르는 자긍심을 나타낸 말이다.

그야말로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다.

어느 누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랴 마는.

살활자재와 대기대용이 하늘을 찌르는 본분종사의 시절과 기백이다.

마치 단기필마로 조조의 수천 군중 속을 종횡무진하면서 취모검(吹毛劍)을 휘둘러 무를 배어 넘기듯 하는 상산 조자룡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林云, 任將三寸輝天地

一句臨機試道看하라

師云, 路逢劍客須呈劍이요

不是詩人莫獻詩로다

鳳林便休하니

師乃有頌호대

大道絶同하야

任向西東이라

石火莫及이요

電光罔通이로다

“세 치 혀를 가지고 천지를 비추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나,

기틀에 맞는 한마디를 던져 보시게.”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칼을 바쳐야 하지만,

시인이 아니면 시를 말하지 마십시오.”

봉림스님이 거기서 그만두자 임제스님이 게송을 하였다.

“큰 도는 철저히 동일해서 동쪽과 서쪽을 마음대로 향함이라.

부싯돌의 불도 따라잡지 못하고 번갯불도 통하지 못하도다.”

 

강의 ; 봉림스님은 임제의 그 말에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는 “세치 혀를 가지고 마음대로 지껄이는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마는 제대로 살아 있는 한마디를 해보면 어떨까?”

이 말을 듣고 임제스님은 그의 시감(詩感)이 절정에 달했는지 천고에 빛나는 이런 말을 던진다.

“명검을 알아보는 검객을 만나면 칼을 바쳐라.

그리고 시인이 아니면 시를 논하지 말라 하였소[路逢劍客須呈劍 不是詩人莫獻詩].”

여기서 봉림스님은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임제스님은 내친김에 한껏 실력을 발휘한다.

마치 확인사살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큰 도는 철저히 동일해서 동쪽과 서쪽을 마음대로 향함이라.

부싯돌의 불도 따라잡지 못하고 번갯불도 통하지 못하도다.”

모든 시간에 다 있고, 모든 장소에 다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다 있는 도리다.

그러나 일천 부처님과 일만 조사들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광석화(電光石火)도 그 신속함에는 미칠 수 없다.

이 한 게송에 독자들은 눈을 뜰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