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11 도인이 가니 총림이 시들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6:50
11  도인이 가니 총림이 시들다  진정 극문(眞淨克文)스님 / 1025∼1102 
 

 1. 진정 극문(眞淨克文)스님은 가장 오랫동안 황룡(黃龍)스님을 모셨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남의 스승이 되기를 사절하였다가 뒤에 동산(洞山)스님의 청을 받고 가는 길에 서산(西山)을 지나게 되어 향성 경순(香城景順)스님을 찾아뵈니 경순스님이 그를 놀리며 시를 한 수 지어 주었다.

지난날 제갈량은 은자라 불리웠지만
유비의 삼고초려에 와룡을 내려왔네
송화가루가 봄기운에 만발하려면
그 뿌리 바위 깊이 묻혀야 하리
諸昔年稱隱者
芽廬堅請出山來
松華若也春力
根在深巖也著開粘 淑
그러자 진정스님은 고개 숙이고 물러났다. 『순어록(順語錄)』

2. 진정스님이 구봉 희광(九峯希廣)스님을 오봉사(五峯寺)의 주지로 천거하니, 대중은 그가 거칠고 졸렬하여 세간을 감화시킬 만한 그릇이 못된다고들 하였다. 그러나 희광스님이 주지가 되어서는 자기를 다스리는 데에는 엄정하고 대중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니, 오래지 않아서 절의 모든 폐단이 제대로 시정되었다. 납자들이 오가며 다투어 전하니 진정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그토록 쉽게 남을 비방하고 칭찬하는가. 내가 매번 보니, 총림에서 멋대로 논의하기를 어느 장로(長老)는 도를 실천하여 대중을 편안하게 한다 하고, 어느 장로는 일용품을 사사로이 쓰지 않고 대중과 고락을 같이 한다고들 한다.
선지식이라 불리워 한 절의 주지가 되면 도를 실천하여 대중을 편안하게 하고 일용품을 사사로이 쓰지 않고 대중과 고락을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다시 무슨 말할 거리가 되겠는가. 그것은 사대부가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는, 나는 뇌물을 받지 않았으며 백성을 어지럽히지 않았노라고 내세우는 것과 같다. 뇌물을 받지 않고 백성을 어지럽히지 않음이 어찌 분수 밖의 일이겠는가." 『산당소참(山堂小參)』

3. 진정스님이 귀종사(歸宗寺)에 머물 때, 해마다 화주(化主)가 써서 바치는 조목에 베와 비단이 구름같이 쌓여 있었는데, 스님은 이를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탄식하였다.
"이것은 모두 신심 있는 신도의 피와 땀이니 나에게 도덕이 없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무엇으로 이것을 감당하겠는가." 『이상로일섭기(李商老日涉記)』

4. 말법시대에는 절개와 의리가 있는 비구가 드물다. 그들의 고상한 이야기나 폭넓고 트인 의론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은 그들에게 미칠 수 없다는 생각이 내게도 든다. 그러나 밥 한 그릇의 이익을 놓고는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듯하다가 끝에 가서는 그것을 차지하며, 처음에는 헐뜯다가 뒤에는 칭찬한다. 그들이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을 살펴보니, 이욕(利欲)에 현혹되지 않고서 중정(中正)에 입각하여 사실을 숨기지 않는 자가 적었다. 『벽기(璧記)』

5. 비구의 법도는 물건을 수용(受用)함에 있어서 많고 넉넉히 해서는 안된다. 넉넉하고 많으면 넘쳐 흘러버린다. 마음에 맞는 일이라도 많이 계획해서는 안되니 많은 계획은 끝내 실패하기 때문이다. 완성이 있으려면 반드시 파괴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황룡스님을 보니, 세상을 교화하는 40년 동안에 모든 일에서 한번도 안색이나 예의·글재주 따위로 당시의 납자들을 억지로 얽어매지는 않았다. 확고한 견지(見地)를 가지고서 진실을 실천하는 자만이 평범한 도로써 제자들을 성취시킬 수 있다. 스님이 고인의 격식을 진실하게 체득한 점은 어디에도 비교할 만한 자가 드물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내가 대중 앞에 서면 스님을 본받으라 가르친다. 『일섭기(日涉記)』

6. 진정스님이 건강(建康) 보령사(保寧寺)에 머물 때, 서왕(舒王)이 재(齋) 때에 흰 명주를 바쳤다. 스님은 시자에게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비단입니다"하니, 스님이 다시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하자 "가사를 지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스님은 입고 있던 베가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늘 이렇게 입어 왔지만 보는 사람이 천하다고 하지 않더라."
하고는, 즉시 그 비단을 창고로 보내어 그것을 팔아서 대중에게 공양하라 일렀다. 스님이 옷 따위에 신경쓰지 않음이 이러하였다. 『일섭기(日涉記)』

7. 진정스님이 서왕(舒王)에게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옳은 것은 힘써 실천하고, 잘못된 것은 기어코 그만두어야 한다. 또한 일의 쉽고 어려움 때문에 자기 뜻을 바꿔서도 안된다. 당장 어렵다 하여 고개를 저으며 내버려 둔다면 뒷날이 오늘보다 더 어렵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일섭기(日涉記)』

8. 진정스님은 어느 지방에서 도 있는 인재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매우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 담당 문준(湛堂文準:1061∼1115)스님이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만물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 일단 몸을 갖게 되면 죽고 썩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무엇 때문에 그토록 상심합니까?"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불교가 일어나는 것은 도 있는 사람 덕분인데 지금 모두 죽어가니, 총림의 쇠퇴를 이로써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섭기(日涉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