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은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법이다. 간화선 수행의 목적은 깨달아 생사를 해탈하여 영원한 행복을 실현하는 데 있다. 예부터 재가자로서 간화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록을 보면 방거사龐居士를 비롯해 벼슬살이했던 백낙천, 배휴, 소동파 같은 이들이 모두 깨달음을 얻은 재가자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설浮雪 거사 같은 분이 재가자로 깨달음을 얻은 대표적인 분이다. 『설봉어록』을 보고 깨달은 청평거사 이자현은 춘천 소양강변 오봉산에 문수원(文殊院, 청평사)을 세우고 이곳에서 좌선 수행을 지도하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에 간화선이 소개되고 진각 선사나 보우 선사, 나옹 선사가 활동하던 시절에 그 분들의 문하에서 간화선을 참구하고 법을 청하는 재가자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방거사(?~808)는 마조 선사의 재가 제자로 성은 방龐씨이고 이름이 온蘊이다. 거사는 원래 큰 부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거사는 “집문서 땅문서는 물론 집에 있는 온갖 보석들을 동정호洞庭湖에 버리겠다”고 부인과 딸 앞에서 선언했다. 그러자 딸이 묻는다.
“아버님,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버리시려 합니까?”
“재산은 탐욕을 부른다. 그러니 재산이 원수가 아니겠느냐. 진정한 보시는 탐욕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 딸이 되묻는다.
“재산을 주는 것이 탐욕을 주는 것입니까?”
“그렇다. 나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까 망설였다만 나에게 원수가 된 재산을 남에게 널길 수는 없다.”
이렇게 해서 방거사는 재산을 모두 호수에 버리고 난 뒤 고대광실과 같은 집에서 나와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집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대나무를 베어 조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거사는 청빈한 정신으로 탐욕과 잡념을 멀리하고 수행하여 마조 선사를 만나 깨닫고 이렇게 그 경지를 노래했다.
시방에서 함께 모여들어
저마다 무위법을 배우네.
이곳은 부처를 뽑는 곳이니
마음이 텅 비면 급제해서 돌아가리.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배휴(裴休 791~870) 거사는 절도사 지위에까지 오른 고위 관료로 규봉 종밀 선사에게 화엄과 선을 배우고 끝내는 황벽 선사 밑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황벽 선사의 말씀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뒷날 『전심법요(傳心法要)』와 『완릉록(宛陵錄)』이라는 어록을 발간하였다. 거사가 자신의 서문까지 넣어 정성껏 이 어록들을 간행하였기에 황벽 선사의 선법이 오늘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배휴 거사가 깨달은 기연을 소개한다.
한때 황벽 선사는 대안정사大安精舍에서 이름을 감추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배휴 거사가 이 절을 찾아와 부처님께 참배한 뒤 벽화를 감상하다가 문득 주지 스님에게 물었다.
“저 그림은 누구의 초상입니까?”
“고승의 초상입니다.”
“영정은 여기 있는데 고승은 어디 있습니까?”
주지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다시 배휴가 물었다.
“이 절에 참선하는 스님이 없습니까?”
“요즘 어느 스님이 와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참선하는 스님인 듯합니다.”
거사는 그 스님을 보자 한 눈에 비범함을 알아보고는 말했다.
“영정이 여기 있는데 고승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을 받자 황벽 선사는 크게 소리쳤다.
“배휴!”
거사가 엉겁결에 “예”하고 대답하자 황벽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 순간 거사는 마음 법의 참된 도리를 깨닫고 감격에 겨워 말했다.
“스님께서는 참으로 선지식입니다. 이토록 분명하게 사람들을 이끄시거늘 어찌하여 몸을 숨기고 계십니까?”
이렇게 배휴 거사는 황벽 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깨닫게 된다. 거사가 아침저녁으로 스님을 찾아뵙고 도를 물어 기록한 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전심법요』와 『완릉록』이다.
대혜 선사의 『서장』을 비롯하여 여러 어록에는 간화선을 실참한 많은 재가자들이 등장한다. 『서장』에서는 장구성, 유보학, 진국태 부인 등이 깨달음을 얻었거나 그 직전까지 이른 재가자들로 언급되고 있다. 이 가운데 진국태 부인은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이렇게 스님께 전한다.
광겁 이래로 밝히지 못한 일이 확연히 앞에 드러났습니다. 이는 남에게 얻은 것이 아닌지라 비로소 법의 기쁨과 선의 즐거움이 세간의 쾌락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대혜 선사는 “너무 기뻐서 며칠 동안 침식을 잊었다”고 했다. 진국태 부인은 아들을 재상의 지위에 오르게 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화두를 들고 참선 정진했다. 그리하여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렇듯 화두를 통한 깨달음은 출·재가를 구별하지 않으며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 선법 속에는 모든 것이 차별없이 회통되어 있다. 모든 중생들은 본래 부처인 까닭에 본래 소식을 알리는 기연을 접하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설浮雪 거사 같은 분이 재가자로 깨달음을 얻은 대표적인 분이다. 『설봉어록』을 보고 깨달은 청평거사 이자현은 춘천 소양강변 오봉산에 문수원(文殊院, 청평사)을 세우고 이곳에서 좌선 수행을 지도하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에 간화선이 소개되고 진각 선사나 보우 선사, 나옹 선사가 활동하던 시절에 그 분들의 문하에서 간화선을 참구하고 법을 청하는 재가자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방거사(?~808)는 마조 선사의 재가 제자로 성은 방龐씨이고 이름이 온蘊이다. 거사는 원래 큰 부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거사는 “집문서 땅문서는 물론 집에 있는 온갖 보석들을 동정호洞庭湖에 버리겠다”고 부인과 딸 앞에서 선언했다. 그러자 딸이 묻는다.
“아버님,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버리시려 합니까?”
“재산은 탐욕을 부른다. 그러니 재산이 원수가 아니겠느냐. 진정한 보시는 탐욕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 딸이 되묻는다.
“재산을 주는 것이 탐욕을 주는 것입니까?”
“그렇다. 나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까 망설였다만 나에게 원수가 된 재산을 남에게 널길 수는 없다.”
이렇게 해서 방거사는 재산을 모두 호수에 버리고 난 뒤 고대광실과 같은 집에서 나와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집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대나무를 베어 조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거사는 청빈한 정신으로 탐욕과 잡념을 멀리하고 수행하여 마조 선사를 만나 깨닫고 이렇게 그 경지를 노래했다.
시방에서 함께 모여들어
저마다 무위법을 배우네.
이곳은 부처를 뽑는 곳이니
마음이 텅 비면 급제해서 돌아가리.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배휴(裴休 791~870) 거사는 절도사 지위에까지 오른 고위 관료로 규봉 종밀 선사에게 화엄과 선을 배우고 끝내는 황벽 선사 밑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황벽 선사의 말씀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뒷날 『전심법요(傳心法要)』와 『완릉록(宛陵錄)』이라는 어록을 발간하였다. 거사가 자신의 서문까지 넣어 정성껏 이 어록들을 간행하였기에 황벽 선사의 선법이 오늘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배휴 거사가 깨달은 기연을 소개한다.
한때 황벽 선사는 대안정사大安精舍에서 이름을 감추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배휴 거사가 이 절을 찾아와 부처님께 참배한 뒤 벽화를 감상하다가 문득 주지 스님에게 물었다.
“저 그림은 누구의 초상입니까?”
“고승의 초상입니다.”
“영정은 여기 있는데 고승은 어디 있습니까?”
주지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다시 배휴가 물었다.
“이 절에 참선하는 스님이 없습니까?”
“요즘 어느 스님이 와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참선하는 스님인 듯합니다.”
거사는 그 스님을 보자 한 눈에 비범함을 알아보고는 말했다.
“영정이 여기 있는데 고승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을 받자 황벽 선사는 크게 소리쳤다.
“배휴!”
거사가 엉겁결에 “예”하고 대답하자 황벽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 순간 거사는 마음 법의 참된 도리를 깨닫고 감격에 겨워 말했다.
“스님께서는 참으로 선지식입니다. 이토록 분명하게 사람들을 이끄시거늘 어찌하여 몸을 숨기고 계십니까?”
이렇게 배휴 거사는 황벽 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깨닫게 된다. 거사가 아침저녁으로 스님을 찾아뵙고 도를 물어 기록한 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전심법요』와 『완릉록』이다.
대혜 선사의 『서장』을 비롯하여 여러 어록에는 간화선을 실참한 많은 재가자들이 등장한다. 『서장』에서는 장구성, 유보학, 진국태 부인 등이 깨달음을 얻었거나 그 직전까지 이른 재가자들로 언급되고 있다. 이 가운데 진국태 부인은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이렇게 스님께 전한다.
광겁 이래로 밝히지 못한 일이 확연히 앞에 드러났습니다. 이는 남에게 얻은 것이 아닌지라 비로소 법의 기쁨과 선의 즐거움이 세간의 쾌락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대혜 선사는 “너무 기뻐서 며칠 동안 침식을 잊었다”고 했다. 진국태 부인은 아들을 재상의 지위에 오르게 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화두를 들고 참선 정진했다. 그리하여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렇듯 화두를 통한 깨달음은 출·재가를 구별하지 않으며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 선법 속에는 모든 것이 차별없이 회통되어 있다. 모든 중생들은 본래 부처인 까닭에 본래 소식을 알리는 기연을 접하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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