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잡아함경(雜阿含經)

잡아함경 제21권

通達無我法者 2007. 12. 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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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제21권
  
   송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559. 가마경(迦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파라리불투로국(波羅利弗妬路國)에 계셨고, 존자 아난(阿難)과 존자 가마(迦摩)도 파라리불투로국 계림정사(鷄林精舍)에 있었다.
  그 때 존자 가마는 존자 아난의 처소에 찾아가, 서로 문안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아,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신기합니다. 존자 아난이여, 눈[眼]이 있고 빛깔[色]이 있으며, 귀[耳]가 있고 소리[聲]가 있으며, 코[鼻]가 있고 냄새[香]가 있으며, 혀[舌]가 있고 맛[味]이 있으며, 몸[身]이 있고 감촉[觸]이 있으며, 뜻[意]이 있고 법(法)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비구는 이런 법들이 있어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존자 아난이여, 그 비구는 생각[想]이 있으면서 지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지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존자 아난이 가마 비구에게 말했다.
  생각이 있는 사람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데 하물며 생각이 없는 사람이겠습니까?
  존자 아난이여, 어떤 것을 존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있으면서도 지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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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자 아난이 가마 비구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가 욕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멀리 여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에 완전하게 머물면, 이런 비구는 생각이 있지만 법이 있어도 지각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제2선·제3선·제4선·공입처(空入處)·식입처(識入處)·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에 완전하게 머물면, 이런 비구는 생각이 있지만 법이 있어도 지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법이 있어도 지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비구가 모든 생각들을 기억하여 담아두지 않으면, 무상심삼매(無想心三昧)를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물게 되는데, 이것을 비구가 존재하는 법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라 합니다.
  존자 가마 비구가 다시 물었다.
  만일 비구가 무상심삼매에서 들뜨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머물거나 머물러 해탈한다면, 세존께서는 그것을 무엇의 결과요 무엇의 공덕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존자 아난이 가마 비구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가 무상심삼매에서 들뜨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머물거나 머물러 해탈한다면, 세존께서는 그것을 지혜의 결과요 지혜의 공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의 논의를 마치고 함께 기뻐하면서, 각각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0. 탁량경(度量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존자 아난이 비구들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記說]1), 나
  
1) 과위(果位)를 얻거나 얻을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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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마땅히 '훌륭하다'고 위로하고 인사하거나, 또는 네 가지 도를 요구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좌선하여 잘 머무는 마음[善住心]·집중하여 머무는 마음[局住心], 이와 같이 머무는 마음을 써서 마음을 항복 받고 지관(止觀)을 닦으며, 한마음으로 정신 통일하여 분별하고, 법을 헤아려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모든 번뇌[使]를 끊을 수 있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 나는 곧 이와 같이 '훌륭하다'고 위로하거나 또는 이것을 요구하리니, 이것을 첫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합니다.
  '비구나 비구니가 바르게 앉아 사유하여 법을 선택하고, 잘 머무는 마음·집중하여 머무는 마음, 이와 같이 머무는 마음을 헤아려 마음을 항복 받고 지관(止觀)을 닦으며, 한마음으로 정신 통일하여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물면 모든 번뇌를 여의게 된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이 '훌륭하다'고 위로하거나 또는 이것을 요구하리니, 이것을 두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합니다.
  '비구나 비구니가 들뜨고 어지러운 마음에 붙들리면 마음을 항복 받아 앉고, 잘 머무는 마음·집중하여 머무는 마음, 이와 같이 머무는 마음에 바르게 앉아 마음을 항복 받고 지관을 닦으며, 한마음으로 정신 통일하여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무르면 곧 모든 번뇌를 끊게 된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 나는 곧 이와 같이 '훌륭하다'고 위로하거나, 또는 이것을 요구하리니, 이것을 세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합니다.
  '비구나 비구니가 지(止)와 관(觀)을 화합해 함께 행하고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무르면 곧 모든 번뇌를 끊게 된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 나는 곧 이와 같이 '훌륭하다'고 위로하고 가르치거나 또는 이것을 요구하리니, 이것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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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561. 바라문경(婆羅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고,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존자 아난의 처소로 찾아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아 존자 아난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사문 구담(瞿曇) 밑에서 범행(梵行)2)을 닦습니까?
  존자 아난이 바라문에게 말했다.
  끊기 위해서입니다.
  존자는 무엇을 끊으려 하십니까?
  탐애[愛]를 끊으려 합니다.
  존자 아난이여, 무엇을 의지해 탐애를 끊을 수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의욕[欲]3)을 의지해 탐애를 끊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그러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은 끝이 있으니,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 아난이여, 어떤 것이 끝이 있어서,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내게 대답하십시오. 바라문이여,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먼저 오려는 의욕이 있어서 정사에 온 것입니까?
  
2) 팔리어로는 brahmacariya라고 함. 바라문들은 음행(淫行)을 끊고 자(慈)·비(悲)·희(喜)·사(捨)의 하늘에 태어나기 위한 네 가지 청정한 행을 행하는 것을 범행이라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음행을 끊고, 탐욕을 여의며, 잘못을 여의어 청정한 것을 범행이라 하는데 열반에 이르기 위한 다섯 가지 행(行) 가운데 하나임.
3) 여기서 '욕(欲)'은 희망(希望)·발심(發心)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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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아난이여.
  그와 같다면 바라문이여, 정사에 이르고 나서는 그 의욕이 쉬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그리고 저는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이 정사에 왔습니다.
  이미 이 정사에 오고 나서는 그 노력과 준비와 계획은 쉬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이 다시 바라문에게 말했다.
  그와 같이 바라문이여, 여래(如來)·응공(應供)·등정각(等正覺)께서는 알고 보신 것으로 네 가지 여의족(如意足)4)을 말씀하시어, 일승(一乘)의 도로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괴로움과 번민을 없애며, 근심과 슬픔을 끊게 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욕정(欲定)으로 끊기를 수행해 성취하는 여의족[欲定斷行成就如意足]과 정진정(精進定)·심정(心定)·사유정(思惟定)으로 끊기를 수행해 성취하는 여의족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제자는 욕정으로 끊기를 수행해 성취하는 여의족을 닦아, 욕심 여읨에 의해, 욕심 없음에 의해, 생사를 벗어남[出要]에 의해, 멸함에 의해, 평정함[捨]으로 향하면, 나아가서는 탐애를 끊게 되고, 탐애가 이미 끊어지면 그 의욕도 또한 쉬게 됩니다. 정진정·심정·사유정으로 끊기를 수행해 성취하기를 닦아, 욕심을 여읨에 의해, 욕심 없음에 의해, 생사를 벗어남에 의해, 멸함에 의해, 평정함으로 향하면, 나아가서는 탐애가 다하게 되고, 탐애가 이미 다하면 사유도 곧 쉬게 됩니다. 바라문이여, 당신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이것이 끝이 아닙니까?
  바라문이 말했다.
  존자 아난이여, 그것은 곧 끝이요, 끝 아님이 아닙니다.
  그 때 바라문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4) 네 가지 선정에 바탕을 둔 삼매와 그 의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신통의 기초를 말한다. 네 가지 선정이란 욕정(欲定)·정진정(精進定)·심정(心定)·사유정(思惟定)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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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 구사라경(瞿師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는데,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구사라(瞿師羅) 장자는 존자 아난의 처소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어떤 이를 세상에서 법을 설하는 사람이라 하고, 어떤 것을 세상에서 잘 향하는 것[向]이라 하며, 어떤 것을 세상에서 잘 도달한 것[到]이라 합니까?
  존자 아난이 구사라 장자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 당신에게 묻겠으니 마음대로 대답하십시오. 장자여,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만일 어떤 이가 법을 설하여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다면, 세상에서 법을 설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여, 만일 어떤 이가 법을 설하여, 능히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다면, 그는 세상에서 법을 설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만일 세상에서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 데로 향한다면, 그것을 세상에서 잘 향하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만일 세상에서 이미 탐욕·성냄·어리석음을 항복 받았다면, 그것을 잘 도달한 것이라 하겠습니까, 아니라 하겠습니까?.
  존자 아난이여, 만일 탐욕을 항복 받아 이미 남김 없이 끊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이미 남김 없이 끊었다면, 그것을 잘 도달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장자여, 내가 시험삼아 당신에게 물은 것에 대해 당신은 곧 나에게 진실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그 이치가 그러하니 마땅히 받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구사라 장자는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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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니건경(尼揵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국(毘舍離國) 미후지(獼猴池) 가에 있는 중각강당(重閣講堂)에 계셨는데,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니건(尼揵)5)의 제자 무외 리차(無畏離車)6)와 아기비(阿耆毘)의 제자 총명동자(聰明童子) 리차가 존자 아난의 처소로 함께 찾아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무외 리차가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우리 스승 니건자(尼揵子)는 불타는 법[熾然法]을 끄고 청정하고 뛰어나시어, 제자들을 위해 이러한 도를 설하셨으니, '숙명(宿命:前生)의 업은 고행(苦行)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다 없애고, 몸의 업[身業]을 짓지 않음으로써 연결다리를 끊어 미래 세상에서는 모든 번뇌가 다시는 없고 모든 업이 아주 다하며, 업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이 아주 다하고 온갖 고통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고통을 완전히 벗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이 뜻은 무엇입니까?
  존자 아난이 리차에게 말했다.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는 방법과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근심과 슬픔을 여의며, 고통과 번민을 벗어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기 위해 세 가지를 설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러한 거룩한 제자는 깨끗한 계에 머물러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7)
  
5) 팔리어로는 Niga ha라고 함. 계박(繫縛)을 여읜다는 뜻으로 사람의 이름임.
6) 팔리어로는 Abhaya Licchavi라고 함. 리차(離車)의 이름으로, 리차는 중인도 비사리국 찰제리(刹帝利) 종족의 이름임.
7) 팔리어로는 p timokkha이며, 한역하여 별별해탈(別別解脫) 혹은 별해탈계(別解脫戒)라고도 함. 그릇되고 잘못됨에서 따로따로 해탈한다는 뜻. 즉 계행(戒行)을 지켜 능히 따로따로 몸과 입의 잘못을 방지함으로써 점차로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게 된다. 승단 가운데 비구·비구니라면 마땅히 지속적으로 지켜야 할 계율의 근본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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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고 위의(威儀)를 구족하며, 모든 죄를 믿어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이렇게 받아 지니고서 깨끗한 계를 구족하면 전생의 업[宿業]이 점점 없어져 현세에서 불타는 법[熾法]을 여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바른 법을 얻게 되어, 통달하고 밝게 보고 관찰하여 지혜로써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리차 장자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며,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통과 번민을 없애며, 근심과 슬픔을 벗어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리차여, 이와 같이 깨끗한 계를 구족하고 욕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내지)……제4선(禪)에 구족하게 머물면,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불타는 법을 여의고……(내지)……참다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삼매정수(三昧正受)가 있어,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跡聖諦]를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마음을 구족하여 업을 다시 짓지 않으면, 전생의 업이 점점 끊어져 현세에서 바른 법을 얻어 모든 불타는 법을 여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통달하고 밝게 보아 스스로 깨닫는 지혜가 생깁니다.
  리차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며,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통과 번민을 여의고 근심과 슬픔을 없애 참다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세 번째로 설하신 것입니다.
  그 때 니건의 제자 리차 무외는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아기비 제자 리차 총명은 리차 무외에게 거듭 말했다.
  이상하구려. 무외여, 왜 잠자코 있소? 여래·응공·등정각의 말씀과, 알고 보신 바와 좋은 설법을 듣고도 왜 기뻐하지 않소?
  리차 무외가 대답하였다.
  나는 그 이치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잠자코 있었을 뿐이오. 세존이신 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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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담의 설법을 듣고 누군들 기뻐하지 않겠소? 만일 누군가 구담의 설법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의롭지 못하고 이익이 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오.
  그 때 니건 제자 리차 무외와 아기비 제자 총명은 부처님 설법과 존자 아난의 말을 거듭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4. 비구니경(比丘尼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는데,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어떤 비구니가 존자 아난의 처소에서 지내며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고는 사람을 보내 존자 아난에게 이런 말을 전하게 하였다.
  제가 몸에 병이 들어 앓고 있습니다. 존자께서 가엾게 여기시어 살펴봐 주십시오.
  존자 아난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그 비구니의 처소로 갔다. 그 비구니는 멀리서 존자 아난이 오는 것을 보고 벌거벗은 채 평상 위에 누워 있었다. 존자 아난은 멀리서 그 비구니의 몸을 보고 곧 모든 감각기관[根]을 추스리고 몸을 돌려 등진 채 서 있었다. 그 비구니는 존자 아난이 모든 감각기관을 추스리고 몸을 돌려 등진 채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만 부끄러워[慚愧], 일어나 옷을 입고 자리를 펴고, 존자 아난을 나가 맞아들여 앉기를 청하고,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서 있었다.
  그 때 존자 아난이 그를 위해 설법하였다.
  누이여, 이 따위 몸이라는 것은 더러운 음식으로 자라났고 교만으로 자라났으며, 탐애로 자라났고 음욕으로 자라난 것이오. 누이여, 더러운 음식을 의지해 마땅히 더러운 음식을 끊어야만 하고, 교만을 의지해 교만을 끊어야만 하며, 탐애와 음욕을 의지해 탐애와 음욕8)을 끊어야만 하오.
  
8)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단지 애욕(愛欲)으로만 되어 있으나, 이것은 앞서 기술한 탐애와 음욕의 줄임말로 보여 앞 내용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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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이여, '더러운 음식을 의지해 더러운 음식을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음식에 대해 분수를 헤아리고 생각하면서 먹되, 좋아하여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한 생각이 없으며,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고 예쁘게 꾸미겠다는 생각 없이,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요, 살아가기 위해서요, 굶주리고 목마른 병을 고치기 위해서요, 범행(梵行)을 거두어 닦기 위해서이니, 과거의 모든 감정을 없애고 모든 새 감정을 생기지 않게 해, 숭상하고 익혀 증대시켜 나가야 합니다. 혹은 노력하거나, 안락하거나, 접촉하거나 하는 데 있어서도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는 것이오. 비유하면 마치 상인이 소유(酥油:타락 기름)를 그 수레에 칠할 때, 물들어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한 생각이 없으며,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고 예쁘게 꾸미겠다는 생각 없이, 다만 싣고 운반하기 위해서인 것과 같소.
  또 마치 옴병[瘡病]을 앓는 사람이 소유를 바를 때, 집착하여 좋아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한 생각이 없으며, 갈고 닦아내겠다는 생각이 없고 예쁘게 꾸미겠다는 생각 없이, 다만 옴병을 고치기 위해서인 것과 같소.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는 분수를 헤아려 먹되, 물들어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한 생각이 없으며,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고 예쁘게 꾸미겠다는 생각 없이, 다만 살아가기 위해서요, 굶주리고 목마름을 고치기 위해서요, 범행을 거두어 닦기 위해서이니, 과거의 모든 감정을 떠나고 모든 새 감정을 일으키지 않게 해 혹은 노력하거나, 안락하거나, 죄 없이 접촉함에 있어서도 안온하게 머물러야 하는 것이오. 누이여, 이것이 이른바 '음식을 의지해 음식을 끊는다'는 것이오.
  '교만을 의지해 교만을 끊는다'고 했는데 어떤 것을 교만을 의지해 교만을 끊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아무 존자와 아무 존자 제자는 모든 번뇌[有漏]가 다하여, 번뇌 없이 심해탈(心解脫)·혜해탈(慧解脫)하고, 현세에서 스스로 자신이 증득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안다'는 말을 들으면, '저 거룩한 제자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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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안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어째서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지 못할까?'라고 생각하게 되오. 그러면 그는 그 때 곧 모든 번뇌를 끊고……(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오. 누이여, 이것이 이른바 '교만을 의지해 교만을 끊는다'는 것이오.
  누이여, '탐애를 의지해 탐애를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아무 존자와 아무 존자 제자는 모든 번뇌를 다하여……(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들은 어째서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했는가?……(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지 못하는가?'라고 하는데, 그는 그 때 모든 번뇌를 끊고……(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오. 누이여, 이것이 이른바 '탐애를 의지해 탐애를 끊는다'는 것이오. 누이여, 행하는 바가 없으면 음욕과 화합하는 다리[橋樑]도 끊어지는 것이오.
  존자 아난이 이렇게 설법하자, 그 비구니는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 비구니는 법을 보아 법을 얻고 법을 깨달아 법에 들어갔으며, 의심을 벗어나, 남을 의지하지 않고도 바른 법과 율에서 마음에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존자 아난의 발에 예배하고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합니다. 어리석고 착하지 못해 어쩌다 이와 같은 씻지 못할 종류의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제 존자 아난이 계신 곳에서, 스스로 잘못을 보고 스스로 잘못을 알아 고백하고 참회하오니 가엾게 여겨 주십시오.
  존자 아난이 비구니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 진실로 스스로 죄를 보고 스스로 죄를 알았구려. 어리석고 착하지 못해 짝할 수 없는 죄를 지었음을 그대는 스스로 알았고, 그대는 이제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서 잘못을 뉘우쳤으니, 미래 세상에서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것이오. 나는 이제 가엾게 여겨 그대의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들이겠소. 그리고 그대로 하여금 착한 법이 더욱 자라나 끝내 물러나거나 멸하지 않게 하겠소. 왜냐하면, 만일 스스로 죄를 보고 스스로 죄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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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능히 잘못을 참회하는 사람은 미래 세상에서 구족계를 얻고, 착한 법이 더욱 자라나 끝내 물러나거나 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존자 아난은 이렇게 그 비구니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5. 바두경(婆頭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교지(橋池)9)족 땅에 계시면서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존자 아난과 함께 바두촌[婆頭聚落] 국경 북쪽에 있는 신서림(身恕林)으로 가셨다.
  그 때 바두촌의 여러 소년들은 존자 아난이 교지 땅에서 그 마을을 유행하다가, 바두촌 북쪽에 있는 신서림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후 그들은 서로를 불러모았고 존자 아난의 처소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존자 아난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그러자 그 때 존자 아난이 여러 소년들에게 말했다.
  제종(帝種)10)들이여,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네 가지 청정함을 말씀하셨으니, 계의 청정[戒淸淨]·마음의 청정[心淸淨]·견해의 청정[見淸淨]·해탈의 청정[解脫淸淨]이다.
  어떤 것을 계의 청정이라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계, 즉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에 머물러 계가 차츰 자라고 위의(威儀)를 구족하여 조그마한 죄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내며, 학계(學界)를 받아 지닌다. 계가 몸에 완전히 배지 않은[不滿] 사람은 완전히 배게 하고, 이미 완전히 밴 사람은 그대로 지속시켜 정진방편(精進方便)으로 뛰어나고자 하며, 용맹하게 꾸준히
  
9) 팔리어로는 Ko iya라고 하며, 종족 이름임.
10)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제종(帝種)' 혹은 '고종(苦種)'이 혼용되어 나타나고 있으나, 팔리본에는 일괄적으로 Vyagghapajja[호로(虎路)에 머무는 자]로 되어 있어 '제(帝)'자를 '호(虎)'자로 해석하고 있다. 팔리본 내용을 참고로 할 경우, '호종'은 바두(婆頭)촌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외에 송·원·명 3본에는 이 글자가 모두 '고(苦)'자로 되어 있다.
[816 / 2145] 쪽
  힘써 모든 몸과 마음의 법을 감당하고 늘 능히 받아들인다. 이것을 계가 청정하여 끊는 것[戒淨斷]11)이라 한다.
  고종(苦種)이여, 어떤 것을 마음이 청정하여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욕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내지)……제4선에 구족하게 머문다. 그리고 선정이 몸에 완전히 배지 않은 사람은 선정이 몸에 완전하게 배게 하고, 이미 완전히 밴 사람은 그대로 지속시켜 정진하고자 하며 나아가 항상 받아들인다. 이것을 마음이 청정하여 끊는 것[心淨斷]이라 한다.
  고종이여, 어떤 것을 견해가 청정하여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大師]의 설법을 듣되, 이러이러하다고 설법하면 곧 이러이러함에 들어가 사실 그대로 바르게 관찰하고, 이러이러한 기쁨을 얻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을 따르게 된다. 다시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지는 못했으나, 다른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범행자로부터 존중할 만한 범행자의 이러이러하다는 설법을 들으면 곧 이러이러함에 들어가 사실 그대로 관찰하고, 이러이러하다고 관찰하고는 그 법에서 기쁨을 얻고 따라 기뻐하며 바른 법을 믿는다.
  다시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의 설법도 듣지 못하고 또한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범행자의 말도 듣지 못하더라도, 이전에 들어 받아 지녔던 것을 거듭 외우고는 이전에 들어 받아 지녔던 것은 이러이러하다고 거듭 외우고 나서는 이러이러하다는 그 법에 들어가며, 나아가 바른 법을 믿는다.
  다시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의 설법도 듣지 못하고,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범행자의 말도 듣지 못하며, 또 이전에 들어 받아 지녔던 것을 거듭 외워 익힐 수가 없더라도, 이전에 들었던 법을 남을 위해 널리 설명하고, 이전에 들었던 법은 이러이러하다고 남을 위해 널리 설명하고서는 이러이러하다는 그 법에 들어가 바른 지혜로 관찰하며, 나아가 바른 법을 믿는다.
  
11)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계정단(戒淨斷)'으로 되어 있으나, 앞 내용에 대한 부연설명이라면 '계청정(戒淸淨)'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문장 내용도 '청정'이 '정단(淨斷)'으로 대치되었고, 송·원·명 3본에도 '정단'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를 따라 해석하였다.
[817 / 2145] 쪽
  다시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의 설법도 듣지 못하고,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범행자의 말도 듣지 못하며, 또 이전에 받아 지녔던 것을 거듭 외워 익힐 수도 없으며, 이전에 들었던 법을 남을 위해 널리 설명할 수도 없더라도, 이전에 들었던 법을 혼자 고요한 곳에서 생각하고 관찰하고,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하고 관찰하고는 이러이러하다는 바른 법에 들어가며, 나아가 바른 법을 믿는다.
  이와 같이 남에게서 듣고서 안으로 바르게 생각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바른 소견을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바른 소견은 더욱 넓힌다는 것이요, 또 이것이 계가 몸에 아직 배지 않은 사람은 배게 하고, 이미 밴 사람은 그대로 거두어 받아들이며, 정진방편으로 항상 거두어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견해가 청정하여 끊는 것[見淨斷]이라 한다.
  고종이여, 어떤 것을 해탈함이 청정하여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탐하는 마음에 욕망이 없어 해탈하고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에 욕망이 없어 해탈한다. 이와 같이 해탈이 아직 배지 않은 사람은 배게 하고, 이미 밴 사람은 그대로 거두어 받아들이며, 정진하여 항상 거두어 받아들이려 한다. 이것을 해탈함이 청정하여 끊는 것[解脫淨斷]이라 한다. 고종이여.
  존자 아난이 이 법을 설하자, 바두촌의 여러 소년들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66. 나가달다경(那伽達多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菴羅)부락 암라림(菴羅林)12)에서 많은 상좌 비구(上座比丘)13) 들과 함께 계셨다.
  
12) 암바라녀(菴婆羅女)가 보시한 동산숲을 말함.
13) 상좌(上座)에 앉은 사람이라는 뜻. 승려에 대한 2인칭의 경어. 장로. 교단 중에서 수행을 쌓은 지도적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말함. 덕(德)이 뛰어난 수행승으로서 대덕(大德)·존자(尊者)·구수(具壽) 등은 그에 대한 경칭. 10년 이상 수행을 쌓은 승려의 호칭. 일반적으로 수행승의 경칭으로도 쓰여짐.
[818 / 2145] 쪽
  그 때 질다라(質多羅)14) 장자가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찾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 여러 상좌 비구들은 질다라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하였고,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나가달다(那伽達多) 비구의 방으로 찾아가 나가달다 비구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서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 나가달다 비구는 질다라 장자에게 물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푸른 틀에 흰 천을 덮고
   한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여
   결박을 여의고 관찰하며 오는 자
   흐름을 끊어 다시는 얽매이지 않네.
  
  장자여, 이 게송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질다라 장자가 말했다.
  존자 나가달다여,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질다라 장자가 존자 나가달다에게 말했다.
  존자여, 잠깐만 조용히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지금 그 뜻을 사유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잠깐동안 잠자코 생각한 뒤에, 존자 나가달다에게 말했다.
  '푸르다'는 것은 계를 말함이요, '흰 덮개'는 해탈을 말하며, '한 바퀴'란 몸에 대한 생각[身念]이요, '구른다'는 것은 굴러 나아간다는 뜻이며, '수레'란 지관(止觀)을 말합니다. 여의는 '결박[結]'에 세 가지 결박이 있으니, 이른바 탐욕·성냄·어리석음입니다. 저 아라한은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고
  
14) 팔리어로는 Citta이며, 부처님 재가(在家) 제자 가운데 지혜 제일인 인물임.
[819 / 2145] 쪽
  이미 멸하고 이미 알아서, 마치 다라(多羅)나무 밑동을 베어내면 다시는 생기지 않듯 그 근본을 이미 끊어 미래 세상에서도 멸해15) 일어나지 않는 법이게 합니다. '관찰한다'는 것은 본다는 뜻이요, '오는 자[來]'란 그 사람을 가리키며, '흐름을 끊었다'는 것은 애욕으로 나고 죽음에 흐르는데, 저 아라한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고 이미 알아, 마치 다라 나무 밑동을 베어내면 다시는 생기지 않듯 그 근본을 끊어 미래 세상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 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세 가지 얽맴[縛]인 탐욕의 얾맴·성냄의 얽맴·어리석음의 얾맴에서, 저 아라한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고 이미 끊고 이미 알아, 마치 다라 나무 밑동을 베어내면 다시는 생기지 않듯 그 근본을 끊어 미래 세상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 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존자 나가달다여, 세존께서는 이런 게송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푸른 틀에 흰 천을 덮고
   한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여
   결박을 여의고 관찰하며 오는 자
   흐름을 끊어 다시는 얽매이지 않네.
  
  이렇게 세존께서 말씀하신 게송을 나는 이미 분별하였습니다.
  존자 나가달다가 질다라 장자에게 물었다.
  이 이치를 당신은 이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까?
  들은 적이 없습니다.
  존자 나가달다가 말했다.
  장자여, 당신은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 매우 깊은 부처님 법에서 성현의 지혜의 눈을 얻어 들어가셨군요.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존자 나가달다의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
  
15)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멸(滅)'자로 되어 있으나, 명본(明本)에 의거하면 '성(成)'자로 되어 있고, 이후 본문의 반복되는 문장에도 '성'자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성'자의 오기(誤記)인 듯하다.
[820 / 2145] 쪽
  고 떠나갔다.
  
  
567. 나가달다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 부락 암라림(菴羅林)의 정사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 여러 상좌 비구들은 질다라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하였고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존자 나가달다 비구의 처소에도 찾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존자 나가달다가 질다라 장자에게 말했다.
  무량심삼매(無量心三昧)·무상심삼매(無相心三昧)·무소유심삼매(無所有心三昧)·공심삼매(空心三昧)16)가 있는데, 어떻습니까? 장자여, 이 법은 여러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입니까? 뜻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입니까?
  질다라 장자가 존자 나가달다에게 물었다.
  이 여러 가지 삼매는 세존의 말씀입니까, 존자께서 자의적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존자 나가달다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질다라 장자가 존자 나가달다에게 말했다.
  제가 잠시만 이 뜻을 사유하게 해주십시오. 그런 다음에 대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잠깐 사유한 뒤에 존자 나가달다에게 말했다.
  
16) 팔리본에는 앞의 각 삼매들이 해탈로 되어 있다.
[821 / 2145] 쪽
  어떤 법은 여러 가지 뜻과 여러 가지 이름과 여러 가지 맛이 있으며, 어떤 법은 뜻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맛이 있습니다.
  다시 장자에게 물었다.
  어떤 법에 여러 가지 뜻과 여러 가지 이름과 여러 가지 맛이 있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무량(無量)삼매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마음이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원망도 없고 미움도 없고 성냄도 없어, 너그럽고 넓고 중후한 마음으로 한량없이 닦아 익히고 두루 인연해 일방(一方)에 충만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2방·3방·4방·상하의 일체 세간에 마음이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원망도 없고 미움도 없고 성냄도 없어, 너그럽고 넓고 중후한 마음으로 한량없이 닦아 익혀 모든 곳에 충만하게 하고, 일체 세간에 두루 인연해 머뭅니다. 이것을 무량삼매라 합니다.
  어떤 것이 무상(無相)삼매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일체 모양을 생각하지 않아서 무상심삼매를 몸으로 증득합니다. 이것을 무상심삼매라 합니다.
  어떤 것이 무소유심(無所有心)삼매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일체 한량없는 식입처(識入處)를 건너, 소유함 없이 소유함 없는 마음에 머뭅니다. 이것을 무소유심삼매라 합니다.
  어떤 것이 공(空)삼매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세상이 공한 것을 세상은 공하다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공함에 항상 머물러 변함 없이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을 공심(空心)삼매라 합니다. 이것이 법에 여러 가지 뜻과 여러 가지 이름과 여러 가지 맛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장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법이 뜻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맛이 있다는 것입니까?
  존자여, 이른바 탐욕은 한량이 있으나 만일 다툼이 없으면, 이것은 가장 한량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탐욕은 모양[相]이 있고 성냄과 어리석음도 모양이 있으나 만일 다툼이 없으면, 이것은 모양이 없는 것입니다. 탐욕은 곧 소유요 성냄과 어리석음도 소유이나 만일 다툼이 없으면, 곧 소유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다툼이 없으면 공하여 탐욕에 대해 공하고 성냄과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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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대해 공하여, 공함에 항상 머물러 변함 없이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면, 이것을 법이 뜻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맛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존자 나가달다가 물었다.
  어떻습니까? 장자여, 당신은 이러한 이치를 이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까?
  존자여,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다시 장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 매우 깊은 부처님 법에서 현재에 성현의 지혜의 눈을 얻어 들어가게 되었군요.
  질다라 장자는 존자 나가달다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68. 가마경(伽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부락 암라림에서, 여러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예배한 뒤에, 다시 존자 가마(伽摩) 비구의 처소에도 찾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존자 가마 비구에게 물었다.
  이른바 행(行)이란 무엇을 행이라 이름합니까?
  가마 비구가 말했다.
  행이란 곧 세 가지 행을 말하나니, 몸의 행[身行]·입의 행[口行]·뜻의 행[意行]입니다.
  어떤 것이 몸의 행이고, 어떤 것이 입의 행이며, 어떤 것이 뜻의 행입니까?
  장자여, 날숨[出息]·들숨[入息]을 몸의 행이라 하고, 각(覺)과 관(觀)이 있는 것을 입의 행이라 하며, 생각[想]과 의도[思]를 뜻의 행이라 합니다.
  어찌하여 날숨·들숨을 몸의 행이라 하고, 각이 있고 관이 있는 것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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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행이라 하며, 생각과 의도를 뜻의 행이라 합니까?
  장자여, 날숨·들숨은 곧 몸의 법으로서 몸을 의지하고 몸에 속해 있고 몸을 의지해 활동합니다. 그러므로 날숨·들숨을 몸의 행이라 합니다. 각이 있고 관이 있기 때문에 곧 입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각이 있고 관이 있는 것을 곧 입의 행이라 합니다. 생각과 의도는 곧 뜻의 행으로서 마음을 의지하고 마음에 속해 있고 마음을 의지해 활동합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의도는 곧 뜻의 행이라 합니다.
  존자여, 각과 관이 이미 입의 말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 각과 관을 입의 행이라 하고, 생각과 의도는 곧 심수법(心數法)으로서 마음을 의지하고 마음에 속해 있고 마음을 의지해 활동합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의도를 뜻의 행이라 합니다.
  존자여, 그러면 몇 가지 법이 있어
  
   만일 사람이 그 몸을 버릴 때
   그 몸은 송장이 되어 땅에 눕고
   다시 그것을 무덤에다 버리면
   마음 없어 마치 나무나 돌과 같다네.
  
  라고 합니까?
  장자여,
  
   목숨과 더운 기운 또 의식은
   몸을 버릴 때 함께 버려지기에
   그 몸을 저 무덤에다 버리면
   마음 없어 마치 나무나 돌과 같다네.
  
  라고 합니다.
  존자여, 만일 죽는 것과 멸진정수(滅盡正受)에 드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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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과 더운 기운을 버리면 모든 근(根)은 다 허물어져 몸과 목숨은 갈라지게 되나니, 이것을 죽음이라 합니다. 멸진정(滅盡定)17)이란 몸·입·뜻의 행만 멸하는 것으로서, 수명을 버리지 않고 더운 기운도 여의지 않으며, 모든 근도 허물어지지 않아 몸과 목숨이 서로 붙어 있습니다. 이것이 곧 목숨이 끝나는 것과 멸진정수에 드는 것과의 차별적인 모습입니다.
  존자여, 어떻게 멸진정수에 듭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 든다고 해도 '나는 멸진정수에 든다. 나는 장차 멸진정수에 들 것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먼저 이와 같이 어떤 점점 감소시키는[息] 방편을 써서, 그 먼저 방편대로 향해 정수에 드는 것입니다.
  존자여, 멸진정수에 들 때 어떤 법이 먼저 멸합니까? 몸의 행입니까, 입의 행입니까, 뜻의 행입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 드는 사람은 먼저 입의 행이 멸하고, 다음엔 몸의 행, 다음엔 뜻의 행이 멸합니다.
  존자여, 어떻게 멸진정수에서 나옵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서 나오려는 사람도 '나는 지금 정수에서 나간다. 나는 장차 정수에서 나갈 것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먼저 마음으로 방편을 정해 그 먼저 마음대로 일어납니다.
  존자여, 멸진정수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어떤 법이 먼저 일어납니까? 몸의 행입니까, 입의 행입니까, 뜻의 행입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뜻의 행이 먼저 일어나고, 다음엔 몸의 행이 일어나며, 다음엔 입의 행이 일어납니다.
  존자여, 멸진정수에 드는 사람은, 어디로 따라 나아가고 흘러들며 실려갑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 드는 사람은, 여읨[離]으로 따라 나아가고 여읨으로 흘러들고 여읨으로 실려가며, 벗어남[出]으로 따라 나아가고 벗어남으로 흘
  
17)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고도 함. 구차제정(九次第定)에서 최고경지로서 이 선정에 들어간 사람은 이미 감수[受]작용과 생각[想]의 두 가지 심소(心所)가 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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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들고 벗어남으로 실려가며, 열반(涅槃)으로 따라 나아가고 벗어남으로 흘러들며 벗어남으로 실려갑니다.
  존자여, 멸진정수에 머물 때는 몇 가지 감촉[觸]을 느끼게 됩니까?
  장자여, 움직이지 않는 감촉, 모양이 없는 감촉, 소유함이 없는 감촉입니다.
  존자여, 멸진정수에 들 때는 몇 가지 법을 써야 합니까?
  장자여, 그것을 먼저 물었어야 할 것인데 왜 이제야 묻습니까? 그러나 마땅히 당신을 위해 말해 주겠습니다. 비구여, 멸진정수에 들려는 사람은 두 가지 법을 써야 하나니, 곧 지(止)와 관(觀)입니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존자 가마의 말을 듣고,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69. 이서달다경(梨犀達多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부락 암라림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여러 상좌 비구들은 질다라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열 손가락을 모아 합장하고, 여러 상좌들에게 청하였다.
  여러 존자들이시여, 저의 변변찮은 음식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그 때 여러 상좌들은 잠자코 그 청을 받아주었다. 그러자 그 장자는 여러 상좌들이 잠자코 그 청을 수락한 줄 알고, 발에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는 자기 집에 돌아가 갖가지 음식을 마련하고 자리를 깔고, 이른 아침에 사람을 보내 때가 되었음을 알리게 했다.
  그 때 여러 상좌들은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장자 집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장자는 상좌들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아뢰었
[826 / 2145] 쪽
  다.
  이른바 여러 가지 경계[界]란 어떤 것을 여러 가지 경계라 합니까?
  그 때 상좌들은 잠자코 있었고 이렇게 하기를 두세 번 되풀이하였다.
  그 때 존자 이서달다(梨犀達多)18)가 대중의 아랫자리에 있다가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말했다.
  여러 존자들이시여, 제가 저 장자의 물음에 대답하고 싶습니다.
  상좌들은 좋다고 대답하였다.
  장자 질다라는 곧 물었다.
  존자여, 이른바 여러 가지 경계[界]란 어떤 것을 여러 가지 경계라고 합니까?
  이서달다가 대답하였다.
  장자여, 안계(眼界)가 다르고 색계(色界)가 다르고 안식계(眼識界)가 다르며, 이계(耳界)가 다르고 성계(聲界)가 다르고 이식계(耳識界)가 다르며, 비계(鼻界)가 다르고 향계(香界)가 다르고 비식계(鼻識界)가 다르며, 설계(舌界)가 다르고 미계(味界)가 다르고 설식계(舌識界)가 다르며, 신계(身界)가 다르고 촉계(觸界)가 다르고 신식계(身識界)가 다르며, 의계(意界)가 다르고 법계(法界)가 다르고 의식계(意識界)가 다릅니다. 이와 같이 장자여, 이것을 여러 가지 경계라 합니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갖가지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공양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식사를 마친 뒤에 손을 씻고 양치하고 발우를 씻었다. 질다라 장자는 낮은 평상 하나를 펴고 상좌들 앞에 앉아 법을 경청하였다. 그 때 여러 상좌들은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여러 상좌들은 도중에서 이서달다에게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셨습니다. 이서달다 비구여, 당신은 진실로 민첩하게 일을 잘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다른 때라 해도 당신은 마땅히 늘 항상 그
  
18) 팔리어로는 lsidatta라고 함. 또는 음사하여 예서달다(隷犀達多)·이사달다(尼師達多)라고도 하며, 의역하여 선수(仙授) 혹은 선시(仙施)라고도 함. 존자의 이름임.
[827 / 2145] 쪽
  렇게 대답하셔야 합니다.
  그 때 여러 상좌들은 이서달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570. 이서달다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부락 암라림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여러 상좌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여러 상좌들에게 말했다.
  세상의 여러 견해들은 혹은 내가 있다[有我]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중생을 말하며, 혹은 수명을 말하고, 혹은 세상의 길흉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습니까? 존자들이시여, 이 여러 가지 다른 견해들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고, 무엇이 원인[集]이며, 어디서 생겼고, 무엇이 변한 것입니까?
  그 때 여러 상좌(上座)들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세 번을 물었으나 세 번 다 잠자코 있었다. 그 때 하좌(下座) 비구인 이서달다가 상좌들에게 말했다.
  제가 저 장자의 물음에 대답하고 싶습니다.
  여러 상좌들이 말했다.
  잘 대답할 수 있으면 대답하시오.
  그 때 장자는 곧 이서달다에게 물었다.
  존자시여, 무릇 세상의 견해들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고, 무엇이 원인이며, 어디서 생겼고, 무엇이 변한 것입니까?
  존자 이서달다가 대답하였다.
  장자여, 무릇 세상의 견해들은 혹은 내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중생을 말하며, 혹은 수명을 말하고, 혹은 세상의 길흉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견해들은 모두 신견(身見)을 근본으로 하고, 신견이 원인이며, 신견에서 생긴 것이요, 신견이 변한 것입니다.
  존자시여, 무엇을 신견이라 합니까?
[828 / 2145] 쪽
  장자여,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은 곧 나[我]다, 색은 나와 다르다, 색 안에 내가 있다, 내 안에 색이 있다'고 보고, 수(受)·상(想)·행(行)도 마찬가지며, '식(識)은 곧 나다, 식은 나와 다르다, 내 안에 식이 있다, 식 안에 내가 있다'고 봅니다. 장자여, 이것을 신견이라 합니다.
  존자시여, 어떻게 하면 그 신견이 없어지겠습니까?
  장자여, 이른바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은 곧 나다'고 보지 않고, '색은 나와 다르다'고도 보지 않으며, '내 안에 색이 있다'거나 '색 안에 내가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수(受)·상(想)·행(行)도 마찬가지며, '식(識)은 곧 나다'고 보지 않고, '식은 나와 다르다'고도 보지 않으며, '내 안에 식이 있다'거나 '식 안에 내가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이것을 신견이 없어진 것이라 합니다.
  존자시여, 당신의 아버지 이름은 무엇이며,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장자여, 저는 장자의 뒷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질다라 장자는 존자 이서달다에게 말했다.
  저와 존자 우리 둘의 아버지는 본래부터 좋은 친구였습니까?
  그랬습니다, 장자여.
  질다라 장자가 이서달다에게 말했다.
  존자시여, 만일 이 암라림에 머무신다면, 제가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의복·음식과 질병에 따른 탕약을 공양하겠습니다.
  존자 이서달다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였다.
  그 때 존자 이서달다는 질다라 장자의 청을 받았으나 그 공양이 장애가 되어 오랫동안 세존의 처소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 때 여러 상좌 비구들은 질다라 장자를 위해 여러 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하였고,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질다라 장자는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71. 마하가경(摩訶迦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829 / 2145] 쪽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부락 암라림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여러 상좌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아뢰었다.
  여러 존자들께서 목장에서 제 공양을 받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때 여러 상좌들은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였고, 질다라 장자는 여러 상좌들이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인 줄을 알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밤새도록 갖가지 음식을 장만하였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자리를 펴고 사람을 보내어, 여러 상좌들에게 때가 되었음을 알리게 했다.
  여러 상좌들은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목장에 있는 질다라 장자의 집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손수 여러 가지 음식을 공양하였다. 공양을 마친 뒤에 발우를 씻고 손을 씻고 양치질을 마치자, 질다라 장자는 낮은 평상 하나를 깔고 상좌들 앞에 앉아 법을 들었다. 그 때 여러 상좌들은 질다라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하였고,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는데, 질다라 장자도 그 뒤를 따랐다. 여러 상좌들은 소락(酥酪)과 꿀을 배불리 먹은 데다 늦은 봄 더운 때라, 길을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 때 마하가(摩訶迦)라는 하좌(下座) 비구가 여러 상좌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너무 덥습니다. 제가 구름과 비와 실바람을 일으키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 상좌들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 때 마하가가 곧 삼매에 들어 그와 같이 정수(正受)의 신통을 발휘하자, 바로 구름이 일고 보슬비가 내리며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4방에서 불어왔다. 정사의 문에 도착하자 존자 마하가가 여러 상좌들에게 말했다.
  이젠 그만두어도 될까요?
  그만두어도 좋소.
  그 때 존자 마하가가 곧 신통을 그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830 / 2145] 쪽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제일 하좌 비구도 이런 큰 신통력을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중좌(中座)나 상좌(上座)이겠는가?'
  그리고는 곧 여러 상좌들 발에 예배하고 마하가 비구를 따라 그가 있는 방으로 가서, 존자 마하가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말했다.
  존자여, 저는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존자의 신통변화[神足現化]를 보고 싶습니다.
  존자 마하가가 말했다.
  장자는 무서울 테니 보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세 번을 청하였으나 세 번 다 허락하지 않았다. 장자는 그래도 거듭해서 존자의 신통변화 보기를 청하였다.
  존자 마하가가 장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잠깐 밖에 나가 마른 나무를 가져다 쌓은 뒤에 담요 한 장을 그 위에 덮으시오.
  질다라 장자는 곧 지시대로 밖으로 나가, 섶을 모아 더미를 만들어 놓고 와서, 존자 마하가에게 말했다.
  섶을 쌓아 더미를 만들고 담요로 그 위를 덮었습니다.
  그 때 존자 마하가가 곧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자물쇠 구멍으로 불꽃을 내보내어, 불이 섶을 태워 섶 더미가 다 탔으나 오직 흰 담요만은 타지 않았다. 그리고 장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존자시여, 진실로 신기한 일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 방일(放逸)하지 않은 것이 근본이 되고, 방일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며, 방일하지 않은 데서 생긴 것이요, 방일하지 않은 것이 변한 것으로서,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여, 이것이나 그 밖의 다른 공덕도, 모두 다 방일하지 않은 것이 근본이 되고, 방일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며, 방일하지 않은 데서 생기고, 방일하지 않은 것이 변한 것으로서,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그 밖의 다른 도품법(道品法)을 얻는
[831 / 2145] 쪽
  것입니다.
  질다라 장자가 존자 마하가에게 말했다.
  언제나 이 숲에 머물러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마땅히 목숨이 다하도록 의복·음식과 병에 따른 탕약을 공양하겠습니다.
  그러나 존자 마하가는 가봐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질다라 장자는 설법을 듣고는 따라 기뻐하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존자 마하가는 공양의 이익이 장애가 되어 죄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난 뒤로, 끝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572. 계경(繫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림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많은 상좌 비구들은 식당에 모여 이렇게 논의하였다.
  여러 존자들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른바 눈이 색(色)을 얽어매는 것입니까, 색이 눈을 얽어매는 것입니까? 이와 같이 귀와 소리·코와 냄새·혀와 맛·몸과 감촉도 마찬가지며, 뜻과 법에 있어서 뜻이 법을 얽어매는 것입니까, 법이 뜻을 얽어매는 것입니까?
  그 때 질다라 장자는 볼 일이 있어 정사를 지나다가, 여러 상좌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나아가 여러 상좌들 발에 예배하였고, 발에 예배하고 나서 물었다.
  존자들께서는 식당에 모여 어떤 법에 대해 의논하고 계셨습니까?
  여러 상좌들이 대답하였다.
  장자여, 우리는 오늘 이 식당에 모여 이런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색(色)을 얽어매는 것인가, 색이 눈을 얽어매는 것인가? 이와 같이 귀와 소리·코와 냄새·혀와 맛·몸과 감촉과 마찬가지며, 뜻과 법에 있어서도 뜻이 법을 얽어매는 것인가, 법이 뜻을 얽어매는 것인가?'
  장자가 물었다.
[832 / 2145] 쪽
  여러 존자들께서는 이 이치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였습니까?
  장자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장자가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말했다.
  제 생각 같아서는 눈이 색을 얽어매는 것도 아니요, 색이 눈을 얽어매는 것도 아니며,……(내지)……뜻이 법을 얽어매는 것도 아니요, 법이 뜻을 얽어매는 것도 아닙니다. 그 중간에 욕탐(欲貪)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에 얽매이는 것이니, 비유하면 검고 흰 두 마리의 소에게 하나의 멍에를 씌워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검은 소가 흰 소를 얽어맨 것인가, 흰 소가 검은 소를 얽어맨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을 바른 물음이라고 하겠습니까?
  장자여, 그것은 바른 물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검은 소가 흰 소를 얽어맨 것도 아니요, 흰 소가 검은 소를 얽어맨 것도 아니고, 그 멍에가 바로 그들을 얽어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자들이시여, 눈이 색을 얽어맨 것도 아니요, 색이 눈을 얽어맨 것도 아니며,……(내지)……뜻이 법을 얽어맨 것도 아니요, 법이 뜻을 얽어맨 것도 아닙니다. 그 중간에 있는 욕탐이 바로 그것을 얽어맨 것입니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여러 상좌들의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73. 아기비가경(阿耆毘迦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림에 계셨다.
  그 때 질다라 장자의 옛 집안 친구인 어떤 아기비가(阿耆毘迦) 외도가 질다라 장자에게 찾아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섰다.
  질다라 장자가 아기비가 외도에게 물었다.
  당신은 출가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장자여, 나는 출가한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833 / 2145] 쪽
  질다라 장자가 물었다.
  당신이 출가한 지 20년이나 지났다면, 인간을 뛰어넘는 법[過人法]19)과 궁극적 지견(知見)과 안락하게 머묾을 얻었습니까?
  장자여, 내가 비록 출가한 지 20년이나 지났다고는 하지만, 인간을 뛰어넘는 법과 궁극적 지견과 안락하게 머묾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직 벌거벗은 몸으로, 삭발하고 걸식하면서 인간 세상을 유행하며 흙 속을 뒹굴 뿐입니다.
  질다라 장자가 말했다.
  그것은 법(法)과 율(律)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쁜 지식으로서 번뇌를 벗어나는 법[出要法]도 아니요, 바른 깨달음이라 말할 수도 없으며, 찬탄할 것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저 부질없이 출가했다는 이름으로 20년을 지내면서 벌거벗은 몸으로 삭발하고 걸식하며 인간 세상을 유행하고 재[灰] 속에서 뒹굴었을 뿐입니다.
  아기비가가 질다라 장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사문 구담의 제자가 된 지 지금 얼마나 되었습니까?
  저는 세존의 제자가 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질다라 장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사문 구담 제자가 된 지 20년이 지났다면, 당신은 인간을 뛰어넘는 법과 훌륭하고 궁극적인 지견(知見)을 얻었습니까?
  질다라 장자가 대답했다.
  당신은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질다라 장자는 결코 다시는 어머니 태로 말미암아 생을 받지 않을 것이요, 또 무덤을 보태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혈기(血氣)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니, 세존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하분결(下分結)에 있어서 끊지 못한 번뇌[結]를 한 가지도 볼 수 없습니다. 만일 한 가지 번뇌라도 끊지 못한 것이 있다면, 장차 다시 돌아와 이 세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 때 아기비가는 슬피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다 옷으로 얼
  
19) 팔리어로는 uttari-manussa-dhamma이며, 열 가지 선업도(善業道, dasa-kusala- path )를 말함.
 
[834 / 2145] 쪽
  굴을 훔치면서 질다라 장자에게 말했다.
  제가 지금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신이 만일 바른 법과 율에 출가한다면, 저는 마땅히 당신께 의복과 발우 따위의 몸에 필요한 도구들을 공급하겠습니다.
  아기비가는 잠깐 생각한 뒤에 질다라 장자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당신을 따르리니 내게 할 일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그 아기비가를 데리고 여러 상좌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여러 상좌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이 아기비가는 바로 제 옛 집안 친구인데, 지금 출가하여 비구가 되고자 합니다. 원컨대 여러 상좌들께서 출가시켜 제도해 주신다면, 제가 마땅히 의복과 발우 따위의 모든 도구를 공급하겠습니다.
  그러자 여러 상좌들은 곧 출가시켜, 수염과 머리를 깎이고 가사를 입혔다. 그는 출가하고 나서 생각하였다.
  '선남자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출가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도를 배우는 까닭은 범행을 깨끗이 닦아 아라한(阿羅漢)이 되기 위해서이다.'
  
  
574. 니건경(尼揵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부락 암라림에서 여러 상좌(上座)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니건약제자(尼揵若提子)20) 는 5백 권속들과 함께 암라림으로 와서, 질다라 장자를 꾀어 제자로 삼으려 하였다. 질다라 장자는 니건약제자가
  
20) 팔리어로는 Nigan ha N taputta이며, 한역하여 니건타약제자(尼乾陀若提子)라고도 함. Jaina교(敎)의 개조(開祖), 혹은 중흥조(中興祖)라고도 하며, 육사외도(六師外道) 가운데 한 인물. 경전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 부처님께서 그를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고 한다.
[835 / 2145] 쪽
  5백 권속들을 거느리고 암라림으로 와서, 자기를 꾀어 제자로 삼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곧 그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를 마치고 제각기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니건약제자가 질다라 장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사문 구담이 무각무관(無覺無觀)삼매를 증득했다고 믿습니까?
  질다라 장자가 대답하였다.
  그를 믿기 때문에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장자여, 당신은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순박하고 곧으며, 순박하고 곧은 데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장자여, 만일 각(覺)과 관(觀)을 쉴 수 있다면 노끈으로 바람을 잡아맬 수도 있을 것이요, 만일 각과 관을 쉴 수 있다면 한줌의 흙으로 항하[恒水]의 흐름을 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늘 앎[知]과 봄[見]을 일으킵니다.
  질다라 장자가 니건약제자에게 물었다.
  믿음이 앞에 있는 것입니까, 지혜가 앞에 있는 것입니까? 믿음과 지혜는 어느 것이 앞서는 것이며, 어느 것이 훌륭한 것입니까?
  니건약제자가 대답하였다.
  믿음이 마땅히 앞에 있고, 그 뒤에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지혜를 서로 비교하면 지혜가 더 훌륭한 것입니다.
  질다라 장자가 니건약제자에게 말했다.
  저는 이미 각과 관이 쉬게 됨을 구해 얻고 나서, 안으로 깨끗한 한 마음이 되어 무각무관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갖춘 제2선에 구족하게 머뭅니다. 저는 낮에도 이 삼매에 머물고, 밤에도 이 삼매에 머물며, 밤이 새도록 언제나 이 삼매에 머뭅니다. 이미 이러한 지혜가 있는데, 세존에 대한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아첨하고 거짓되고 곧지 않으며, 곧지 않은 데서 태어난 사람이군요.
  당신은 아까는 나를,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순박하고 곧으며, 순박하고 곧은 데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하더니, 지금은 어째서 아첨하고 거짓되고 곧지 않으며, 곧지 않은 데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만일 당신이 먼저한 말이 진실이라면 뒤의 말은 거짓이요, 뒤의 말이 진실이라면 먼저
[836 / 2145] 쪽
  한 말은 거짓일 것입니다. 당신은 아까 '나는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늘 앎[知]과 봄[見]을 낸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앞뒤의 조그마한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을 뛰어넘는 법을 알며, 또 앎과 봄과 안락하게 머무는 일을 알겠습니까?
  장자가 다시 니건약제자에게 물었다.
  한 가지 물음·한 가지 해설·한 가지 주장에서부터 나아가 열 가지 물음·열 가지 해설·열 가지 주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만일 한 가지 물음·한 가지 해설·한 가지 주장에서부터 나아가 열 가지 물음·열 가지 해설·열 가지 주장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꾈 수 있다고 이 암라림에 와서 나를 꾀려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니건약제자는 숨이 막혀 머리를 내저었고, 팔짱을 끼고 나가서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갔다.
  
  
575. 병상경(病相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부락 암라림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병이 들어 여러 친족들에게 에워싸여 있었는데, 많은 하늘들이 장자의 처소에 내려와 말했다.
  장자여, 그대가 장차 발원하기만 한다면 전륜왕(轉輪王)21)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질다라 장자가 여러 하늘들에게 말했다.
  만일 전륜왕이 된다고 해도 그것 역시 무상(無常)한 것이요, 괴로움[苦]이며, 공(空)이요, 무아(無我)인 것이다.
  그 때 장자의 친족들이 장자에게 말했다.
  
21) 팔리어로는 cakkavattin라고 하며, 인도 종교 가운데 전통적 행위인 인덕(仁德)·10선(善) 등을 행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정법(正法)으로만 전세계를 통치하는 이상적 제왕을 가리킴.
[837 / 2145] 쪽
  그대는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라.
  질다라 장자가 친족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왜 나를 보고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라'고 하였습니까?
  그대가 '무상(無常)한 것이요, 괴로움[苦]이며, 공(空)이요, 무아(無我)인 것이다'라고 이런 말을 했기 때문에 그대에게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라'라고 말한 것이다.
  여러 하늘 사람들이 내 처소에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장차 발원하기만 한다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요, 발원을 따라 과보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기에, 내가 '그 전륜왕도 또한 무상한 것이요, 괴로움이며, 공(空)이요, 무아인 것이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 여러 친족들이 질다라 장자에게 말했다.
  전륜왕에게는 무엇이 있기에 그 하늘들이 그대에게 발원하여 구하라고 시켰는가?
  전륜왕은 바른 법으로 다스려 교화합니다. 하늘들은 이러한 복과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와서 내게 발원하여 그것을 구하라고 시킨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잘 생각해 보아라.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친족들이여, 제가 지금 잘 생각해보니 저는 다시는 어머니 태로 말미암아 생을 받지 않을 것이요, 또 무덤을 보태지도 않을 것이며, 다시는 혈기(血氣)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니, 세존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하분결(下分結)을 저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고, 제가 끊지 못한 번뇌는 한 가지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만일 번뇌를 끊지 못했다면 이 세상에 도로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부좌(加趺坐)를 맺고서 바른 생각으로 여럿 앞에서 게송으로 말했다.
  
  의복과 음식을 쌓고 또 쌓아
  온갖 어려움에서 널리 벗어나고자
  훌륭한 복전에 보시 행하여
  이러한 다섯 가지 힘을 심는 것
[838 / 2145] 쪽
  이러한 뜻을 이루기 위해
  속인으로서 집에 살면서
  나는 이런 이익 모두 다 얻고
  온갖 어려움 이미 벗어났다네.
  
  세상에서 들어 익힌 것
  여러 가지 어려운 일 멀리 여의고
  삶의 즐거움 어렵다는 것 알아
  등정각(等正覺)을 따르고
  
  계 가진 이에게 공양 올리며
  여러 범행(梵行) 잘 닦았나니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나
  성문이나 성자[牟尼]들
  
  이러한 뛰어난 지견 가진 이
  그 모든 훌륭한 분들에게
  언제나 대장부의 보시 행하면
  마침내 큰 과보 얻으리.
  
  갖가지 많은 보시 꾸준히 행하고
  모든 훌륭한 복전에 보시 행하면
  이 세상에서 목숨 마치고
  저 천상에 변화해 태어난 뒤에
  다섯 가지 향락을 두루 갖추고
  마음은 한량없이 즐거우리니
  
  이러한 묘한 과보 얻음은
  아끼는 마음 없기 때문이라서
[839 / 2145] 쪽
  어디고 태어나는 그 곳마다
  일찍이 즐겁지 않은 곳 없으리.
  
  질다라 장자는 이 게송을 말하고는 이내 목숨을 마쳐 불번열천(不煩熱天)에 태어났다.
  그 때 질다라 장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여기에 머물지 말고 당장 저 염부제(閻浮提)로 가서 여러 상좌(上座) 비구들께 예배해야겠다.'
  그리고 마치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만큼의 짧은 시간에 하늘의 신통력으로 암라림으로 내려가 몸에서 하늘의 광명을 뿜어내어 암라림을 두루 비추었다. 그 때 어떤 비구가 밤에 일어나 방밖으로 나가 한데를 거닐다가, 훌륭한 광명이 숲을 두루 비추는 것을 보고, 곧 게송으로 말했다.
  
   어떤 오묘한 하늘이
   저 허공에 머물러 있는 걸까?
   마치 저 순금산(純金山)이나
   염부단(閻浮檀)의 깨끗한 빛 같네.
  
  질다라 천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저 천상과 인간의 왕인
  구담께서 아들이라 일컬었던
  이 암라림 속의
  질다라 장자 그 사람이네.
  
  깨끗한 계를 갖춤으로써
  생각을 잡아매어 스스로 적정해져
  해탈한 몸을 완전히 갖추었고
  지혜의 몸도 또한 그러했다네.
[840 / 2145] 쪽
  나는 법을 알기에 여기 왔나니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하네.
  장차 저곳에서 열반하리니
  이 법은 법이 그러한 것이네.
  
  질다라 천자는 게송을 말하고 나서 곧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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