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중아함경(中阿含經)

중아함경 제 2 권

通達無我法者 2008. 1. 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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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제 2 권

 

 

  동진 계빈삼장 구담 승가제바 한역
  
1. 칠법품(七法品) 제 1 ②
  6) 선인왕경(善人往經) 제 6 [초 1 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선인(善人)이 가서 이르는 곳과 무여열반(無餘涅槃)1)에 대해 설명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위에서 말한 일곱 가지인가? 비구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我]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我所]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존재에 대한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無上息迹)2)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
  
1) 육체 등 생존의 제약에서 완전히 해탈한 상태를 말한다. 완전한 절대무(絶對無)의 경지로서 고뇌 없이 영원한 즐거움만 있는 열반.
2) 최상의 경지인 적정삼매(寂靜三昧)를 일컫는 말로서 열반(涅槃)을 의미한다. 일본 국역일체경에서는 무상(無上) 식(息) 적(迹) 세 가지가 모두 열반의 의미가 된다고 주석에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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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불붙은 밀 껍질이 조금 타다가 곧 꺼지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조그마한 만(慢)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下分結)3)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中般涅槃)4)을 얻는다. 이것을 첫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善人所往至處]이라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는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공중으로 튀어 날아오르다가, 곧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조그마한 만(慢)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두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고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공중으로 튀어 날아오르다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慢)은
  
3) 하분(下分)은 욕계(欲界)이며 결(結)은 번뇌이다. 삼계 중 가장 밑에 있는 욕계에서 중생들을 얽어매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 즉 욕탐(欲貪) 진에(瞋恚) 유신견(有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결(疑結)을 말한다.
4) 불환과(不還果)의 성자가 욕계(欲界)에서 색계(色界)로 태어나는 중유신(中有身)으로서 나한과(羅漢果)를 증득함으로써 반열반(般涅槃)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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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세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는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튀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땅에 떨어져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慢)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생반열반(生般涅槃)5)을 얻는다. 이것을 네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튀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조그마한 풀섶 위에 떨어져, 연기를 내거나 혹은 조금 타다가 소멸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행반열반(行般涅槃)6)을 얻는다. 이것을 다섯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니라.
  
5) 성문 4과(果) 중 제 3 의 불환과(不還果)를 5종 열반으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색계(色界)에 태어나 얼마 안 되어 반열반하는 것을 말한다.
6) 성문 4과 중 제 3의 불환과를 5종 열반으로 나눈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색계에 태어나 거기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쌓고 반열반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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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無上息迹)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튀어 공중으로 오르다가 많이 쌓인 땔감 위에 떨어져, 혹은 연기를 내거나 혹은 타다가 다 탄 뒤에는 소멸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7)을 얻는다. 이것을 여섯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튀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많이 쌓인 땔감 위에 떨어져, 혹은 연기를 내거나 혹은 타거나 탄 뒤에는 마을 성곽 산림(山林) 광야를 불사르고, 마을 성곽 산림 광야를 불사른 뒤에는 혹은 길이나 물이나 평지에 이르게 되어 소멸되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慢)이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상류(上流) 아가니타(阿迦膩 : 色究竟天)의 반열반8)을 얻는다. 이것을 일곱 번째 선인
  
7) 성문 4과 중 제 3의 불환과를 5종 열반으로 나눈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색계에 태어나 거기에서 수행하지 않아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반열반하는 것을 말한다.
8) 성문 4과 중 제 3의 불환과를 5종 열반으로 나눈 가운데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색계에 태어나 다시 차례로 위 하늘에 올라가서 마침내 색계의 가장 위에 있는 하늘인 색구경천(色究竟天) 또는 무색계의 최고 높은 하늘인 유정천(有頂天)에 태어나 거기에서 반열반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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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니라.
  어떤 것이 무여열반(無餘涅槃)인가?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無上息迹)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증득한 것이다. 내가 말하는 그 비구는 동방(東方)으로도 가지 않고, 서방 남방 북방과 4유(維) 상 하에도 가지 않으며, 곧 현재 세상에서 식적멸도(息迹滅度)할 것이다. 내가 앞에서 말한 일곱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과 무여열반은 이 때문에 일부러 말해준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선인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103자이다.]
  7) 세간복경(世間福經)9) 제 7 [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사미국(拘舍彌國)10)을 유행하실 적에 구사라(瞿沙羅)11) 동산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마하주나(摩訶周那)는 해질 무렵[晡時 : 3시 5시]에 연좌(宴坐 : 坐禪)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일을 하면 세간(世間)의 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9) 이 경은 『증일아함경 』 제35권 제40품인 「칠일품(七日品)」의 일곱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10) 또는 교상미(憍賞彌) 구섬미(拘睒彌)로 쓰기도 한다. 중인도(中印度) 옛 왕국의 이름이다.
11) 또는 구사라(瞿師羅) 구사라(瞿史羅)로 쓰기도 하며, 구사라 장자가 세존께 보시한 동산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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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얻을 수 있느니라. 주나여, 일곱 가지 세간의 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을 것이고 큰 과보를 얻을 것이며, 큰 명예를 얻을 것이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주나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族姓)의 남자나 여자가 비구들에게 방사(房舍)와 당각(堂閣)을 보시하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첫 번째 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한다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니라.
  주나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방사 안에서 사용하는 평상과 여러 가지 털로 된 자리와 또 침구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두 번째 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니라.
  주나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방사 안에서 사용되는 모든 새롭고 깨끗하고 묘한 의복을 베풀어 주는 것이다. 이것을 세 번째 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을 것이고 큰 과보를 얻을 것이며 큰 명예를 얻을 것이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니라.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방사 안에서 항상 비구들에게 아침에는 죽을 베풀어 주고 점심에는 밥을 베풀어 주며, 또 동산지기도 공급해 주어 부리게 하며, 혹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추울 때나 눈이 올 때에는 몸소 동산으로 나아가 보시를 더해 공양하며, 모든 비구들이 공양을 마친 뒤에는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춥거나 눈이 와도 의복이 젖을까 걱정하지 않게 하고, 밤낮으로 편안히 선정에 들어 생각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을 일곱 번째 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을 것이고 큰 과보를 얻을 것이며 큰 명예를 얻을 것이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니라.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이미 이 일곱 가지 세간의 복을 얻은 자는, 가거나 오거나 서거나 앉거나, 혹은 자거나 깨어 있거나, 낮이나 밤이나 복이 항상 생길 것이며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넓어질 것이다. 비유하면, 항가(恒伽 : 갠지스강)의 물이 처음에 샘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큰 바다로 들어갈 때 그 중간에 가면 갈수록 깊어지고 가면 갈수록 넓어지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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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으니라. 주나여, 이와 같이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로서 이미 이 일곱 가지 세간의 복을 얻은 자는 가거나 오거나, 서거나 앉거나, 혹은 자거나 깨거나, 낮이나 밤이나 그 복이 항상 생겨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넓어지느니라."
  그 때 존자 마하주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출세간(出世間)의 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있느니라. 주나여, 또한 일곱 가지 출세간의 복이 있으니 그대로만 한다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어느 곳에서 유행하신다는 말을 들으면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첫 번째 출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수 있느니라.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아무 곳에서 이리로 오시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면, 못내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두 번째 출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수 있느니라.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저쪽에서 이리로 왔다는 말을 듣고 못내 뛸 듯이 기뻐하면서, 청정한 마음으로 몸소 가서 뵙고 예경하고 공양하되 공양을 마치고는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서 세 가지 스스로 귀의하는[自歸] 법을 받고 금계(禁戒)를 받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일곱 번째 출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느니라.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만일 이 일곱 가지 세간복을 얻고 다시 이 일곱 가지 출세간의 복을 얻으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복과 그러한 복의 과(果)와 그러한 복의 갚음[報]이 있어 그 큰 복의 수는 한정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다. 주나여, 비유하면 염부주(閻浮洲)로부터 흘러나오는 다섯 개의 강이 있으니, 첫 번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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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가(恒伽)라 하고, 두 번째를 요우나(搖尤那)라 하며, 세 번째를 사로부(舍勞浮)라 하고, 네 번째를 아이라파제(阿夷羅婆提)라 하며, 다섯 번째를 마기(摩企)라 한다. 그 강들이 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갈 때 그 중간의 작은 냇물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나니, 그것을 되[升]나 섬[斛]으로 되려 해도 저 큰물의 수는 한정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주나여, 이와 같이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만일 이 일곱 가지 세간의 복을 얻고, 다시 이 일곱 가지 출세간의 복이 있으면 그 복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 복과 그 복의 과(果)와 그 복의 갚음[報]이 있어, 그 복의 수는 지을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는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항가(恒伽)의 강물은
  청정하고 건너기 쉽다.
  바다는 진귀한 보배가 많으며
  또한 모든 물의 왕이라네.
  
  마치 저 강물과 같이
  세상 사람이 공경하여 받들고
  모든 시냇물이 흘러 들어가듯
  다 인도하여 큰 바다로 들게 하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의복과 음식과
  상탑(床榻)과 요와
  온갖 좌구(坐具)를 보시하면
  
  무량한 복을 지은 까닭에
  장차 묘한 곳에 이르게 되리니
  마치 저 강물이 흘러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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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바다로 들어가는 것 같다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마하주나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세간복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993자이다.]
  8) 칠일경(七日經)12) 제 8 [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 舍離)13)를 유행하실 적에 내씨(氏 : 菴婆 波利)동산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을 즐겨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하고, 마땅히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언젠가는 비가 오지 않을 때가 있으리니, 비가 오지 않는 그 때에는 모든 나무와 온갖 곡식과 약나무들은 모두 말라서 꺾어지고 부서져 다 사라져서 항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마땅히 탐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마땅히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어느 때인가는 두 개의 해[日]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으리니, 두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모든 개울과 시냇물은 다 말라 없어져 항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
  
12) 이 경은 『증일아함경 』 제33권 제40품인 「칠일품(七日品)」의 첫 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며, 이역경(異譯經)으로는 송(宋)나라 법현(法賢)이 한역한 『살발다소리유날야경(薩鉢多酥哩踰捺野經) 』이 있다.
13) 비야리(毘耶離) 폐사리(吠舍離) 유야리(維耶離)라고 쓰기도 하며, 광엄성(廣嚴城)으로 의역한다. 중인도에 있던 나라로서 항하강을 사이에 두고 남방의 마갈타국과 대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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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마땅히 탐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이것은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 어느 때인가는 세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으리니, 세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모든 큰 강물은 다 말라 없어져 항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요, 마땅히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또 어느 때인가는 네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으리니, 네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모든 큰 샘의 근원인 염부주(閻浮洲)에서 흘러나오는 다섯 개의 강, 곧 첫째 항가(恒伽), 둘째 요우나(搖尤那), 셋째 사뢰부(舍牢浮), 넷째 아이라파제(阿夷羅婆提), 다섯째 마기(摩企)강의 근원이 되는 큰 샘이 모두 말라 다해 항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고,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요, 마땅히 조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또 어느 때인가는 다섯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으리니,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큰 바닷물은 1백 유연(由延 : 由旬)씩 감소되어 차츰 줄어 7백 유연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또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7백 유연쯤 줄었다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에는 1백 유연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큰 바닷물은 1다라(多羅)나무 높이만큼씩 감소되어 점점 줄어 7다라나무 높이에 이를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7다라나무 높이만큼 남았다가 차츰 줄어 1다라 나무 높이만큼 될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한 사람의 키만큼 감소하는데 점점 줄어 일곱 사람의 키를 합한 만큼의 높이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일곱 사람의 키를 합해놓은 만큼 남았다가 차츰 줄어 한 사람의 키만한 지경에 이를 것이다.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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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줄어, 목에 이르고 어깨에 이르고 허리에 이르고 허벅다리에 이르고 무릎에 이르고 복사뼈에 이르고, 때로는 바닷물은 다 말라 발가락마저 빠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좋아해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요, 마땅히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또 어느 때인가는 여섯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으리니, 여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須彌山王)이 다 연기[烟]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합해 하나의 연기가 된다. 비유하면 도자기 굽는 기술자가 처음 가마솥에 불을 땔 때 모든 가마에서 연기가 일어나다가 그것이 합해 하나의 연기가 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여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도 일체 대지와 수미산왕이 연기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합해 하나의 연기가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좋아해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요, 마땅히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또 어느 때인가는 일곱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으리니, 일곱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이 시뻘겋게 불이 붙어 한꺼번에 다 타서 그것이 합해서 하나의 불꽃이 된다. 이와 같이 일곱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은 시뻘겋게 불이 붙어 한꺼번에 다 타서 그것이 합해 하나의 불꽃이 되고 불꽃에 바람이 불어 범천(梵天)에까지 이른다. 이 때 황욱천(晃昱天 : 光音天)의 모든 하늘로서 처음 이 하늘에 난 자는, 세간의 성패(成敗)를 듣지 못했고 세간의 성패를 보지 못했으며 세간의 성패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큰 불을 보고는 모두 두려워하여 털이 곤두선다. 그래서 불이 여기까지 미치지나 않을까, 불이 여기까지 미치지나 않을까 하면서 두려워한다. 그 전부터 태어난 모든 하늘은 세간의 성패를 들었고 세간의 성패를 보았으며 세간의 성패를 알았기 때문에, 이 큰 불을 보고는 모든 하늘들을 위로하면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 불의 법[火法]은 그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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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것으로서 결국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일곱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수미산왕(須彌山王)은 1백 유연이나 무너져 흩어지고 모두 없어진다. 그렇게 2백 유연, 3백 유연, 나아가 7백 유연이나 무너져 흩어지고 모두 없어진다. 일곱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수미산왕과 이 대지는 불에 타고 무너져 소멸되어 그 재조차도 남는 것이 없다. 마치 소유(酥油)를 태우면 지글지글 끓어 다 녹아 연기나 불꽃조차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일곱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도 수미산왕과 이 대지는 타고 남은 재조차도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좋아해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요, 마땅히 조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수미산왕은 반드시 무너져 없어지리라'고 말하지만 누가 능히 그것을 믿겠는가? 오직 사제(四諦)를 본 자만이 믿을 뿐이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큰 바닷물은 반드시 다 말라 없어지리라'고 말하지만 누가 능히 그것을 믿겠는가? 오직 사제를 본 자만이 믿을 뿐이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일체의 대지는 반드시 다 타서 없어지리라'고 말하지만 누가 능히 그것을 믿겠는가? 오직 사제를 본 자만이 믿을 뿐이다.
  왜냐 하면 비구들아, 옛날에 선안(善眼)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사가 있었는데 그는 외도 선인(外道仙人)들의 종사(宗師)로서 욕애(欲愛)를 버려 여의고 여의족(如意足)을 얻었었다. 선안 대사에게는 한량없이 많은[限量百千] 제자들이 있었다. 선안 대사는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梵世法)14)을 설명했다. 선안 대사가 범세법을 설명해 주었을 때 제자들 중에 그 법을 구족히 받들어 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혹 사왕천(四王天)에 태어나기도 하고 삼십삼천(三十三天)에 태어나기도 하며, 혹은 험마천(摩天 : 夜摩天)에 태어나기도 하고 도솔타천(兜率哆天)에 태어나기도 하며, 화락천(化樂天)에 태어나기도 하고 타화락천(他化樂天)에 태어나기도
  
14) 함께 범천계(梵天界)에 머물러 수행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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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였다. 만일 선안 대사가 범세법을 설명해 주었을 때 모든 제자들이 그 법을 구족히 받들어 행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사범실(四梵室)15)을 닦아 탐욕을 버려 여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 때 선안 대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나는 마땅히 제자들과 함께 뒷세상에서는 같은 곳에 태어나지 않아야겠다. 그러려면 나는 이제 다시 증상자(增上慈)를 닦아야겠다. 증상자를 닦으면 목숨을 마치고 나서 황욱천(晃昱天)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선안 대사는 곧 뒷날에 다시 증상자를 닦았고, 증상자를 닦고 나서 목숨을 마친 뒤에 황욱천에 태어날 수 있었으니, 선안 대사와 모든 제자들은 도를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증득한 것이니라.
  여러 비구들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날에 선안 대사는 외도 선인의 종사(宗師)로서 욕애를 버려 여의고 여의족(如意足)을 얻었다. 너희들은 그를 다른 사람이라 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그가 바로 나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때 선안 대사라 이름했고 외도 선인의 종사로서 욕애을 버려 여의고 여의족을 얻었었다.
  나는 그 때 수많은 제자를 두었었다. 나는 그 때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을 설했는데, 내가 범세법을 설해 주었을 때 모든 제자들 중에서 그 법을 구족히 받들어 행하지 못한 자 있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혹 사왕천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삼십삼천에 태어나기도 하였으며, 혹은 험마천(摩天)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도솔타천에 태어나기도 하였으며, 혹은 화락천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타화락천(他化樂天)에 태어나기도 했었다. 내가 범세법을 설해 주었을 때 여러 제자들 중에 만일 법을 구족히 받들어 행한 자는 사범실(四梵室)을 닦고 욕애를 버려 여의어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태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때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마땅히 제자들과 함께 뒷세상에서는 같은 곳에 태어나지 않으리라. 그러러면 나는 이제 다시 증상자(增上慈)를 닦아야겠다. 증상자를 닦고 나서 목숨을 마치면 황욱천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15) 4범주(梵住)로 쓰기도 하며,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네 가지 관법을 닦아 범천에 태어나는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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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나는 그 뒤에 다시 증상자를 닦았고 증상자를 닦고 나서 목숨을 마친 뒤에 황욱천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 때 나와 모든 제자들은 도를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얻었느니라.
  나는 그 때 몸소 이 도를 수행하여 스스로를 요익하게 하였고, 또한 남을 요익하게 했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였다. 세상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했었다. 그러나 그 때의 설법은 최후의 경지[究竟]에 이르지 못했고, 최후의 백정(白淨)에 이르지도 못했으며, 최후의 범행에 이르지도 못했고, 최후의 범행(梵行)을 마치는 경지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때는 남 늙음 병듦 죽음 울음 걱정을 여의지 못했고, 또한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비구들아, 나는 이제 세상에 나와 여래(如來) 무소착(無所着) 등정각(等正覺) 명행성위(明行成爲)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도법어(道法御) 천인사(天人師) 불중우(佛衆祐)라는 호칭을 얻었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요익하게 하였고 또 남까지도 요익하게 하였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였고 세간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고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또 안온과 쾌락을 구한다. 나는 이제 설법하여 최후의 경지에 이르렀고 최후의 백정에 이르렀으며, 최후의 범행에 이르렀고 최후의 범행을 마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미 남 늙음 병듦 죽음 울음 걱정을 다 여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노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칠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701자이다.]
  9) 칠거경(七車經)16) 제 9 [초 1 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16) 이 경은 『증일아함경 』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等法品)」의 열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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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큰 비구 대중과 함께 여름 안거[夏坐]를 지내셨다. 존자 만자자(滿慈子)17)도 또한 자신의 고향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이 때 고향 마을의 모든 비구들도 여름 안거 석 달을 마친 다음 옷을 기워 수선하는 일을 마치고 발우를 가지고 고향 마을을 떠나 왕사성(王舍城)으로 향했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 왕사성에 이르러 그 곳에 있던 죽림정사에 머물렀다.
  이 때 시골의 여러 비구들은 세존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비구들아, 어디서 왔으며 어디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가?"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고향 마을에서 왔으며 고향 마을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습니다."
  "그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 중에서 누가 많은 비구들의 칭찬을 받는가? 즉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며[少欲知足] 남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칭송해 말하고, 제 자신이 한가롭게 머물고 또 남이 한가롭게 머무는 것을 칭송하여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精進)하고 남이 정진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직접 바른 생각을 하고 남이 바른 생각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一心)을 지키고 남이 일심 지키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남이 지혜로운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어 없애고 남이 번뇌가 다한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남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는 비구가 누구인가?"
  그 고향 마을의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만자자는 저 고향 마을에서 모든 비구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한가롭게 있고 한가롭게 있는 이를
  
17) 만원자(滿願子) 또는 만축자(滿祝子)라고도 하는데 부루나존자(富樓那尊者)를 번역하여 부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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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하고 정진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생각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을 지키고 일심을 지키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지혜로운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고 번뇌가 다 끊어진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이를 칭찬해 말합니다."
  이 때 존자 사리자(舍梨子)는 대중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존자 사리자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위에서와 같이 저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고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은 아주 대단하게 현자 만자자(滿慈子)를 칭찬하였다. 곧 그는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한가롭게 있고 한가롭게 있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하고 정진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생각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을 지키고 일심 지키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지혜로운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어 없애고 번뇌를 다 끊어 없앤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는구나.'
  존자 사리자는 다시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는 언제 저 현자 만자자와 한자리에 앉아 그 이치를 조금이라도 물어볼 수 있을까? 그는 혹 나의 질문을 들어주기나 할까?'
  그 때 세존께서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에 들어 계시다가 석 달을 지낸 뒤 옷을 기워 수선하고 발우를 들고 그 곳을 떠나 사위국으로 향하셨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 그 곳에 이르러 곧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 :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존자 사리자는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과 같이 왕사성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옷을 단속하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으로 향하였다. 점점 앞으로 나아가 사위국에 이르러 승림급고독원에 함께 머물렀다. 이 때 존자 만자자도 고향 마을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석 달을 지낸 뒤 옷을 기워 단속하고 발우를 들고 고향 마을을 떠나 사위국으로 향했다. 점점 앞으로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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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곳에 이르러, 그 또한 승림급고독원에 머물렀다. 존자 만자자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여래 앞에서 니사단(尼師檀)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았다.
  그 때 존자 사리자가 다른 비구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어느 분이 현자 만자자입니까?"
  비구들이 존자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예, 그 존자는 여래(如來)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얼굴은 하얗고 콧대가 앵무새 부리처럼 높은 사람이 바로 그 분입니다."
  그 때 존자 사리자는 만자자의 얼굴을 알아 보고 곧 기억했다. 존자 만자자는 그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옷과 발우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尼師檀)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안다숲[安陀林]의 경행(經行)하는 장소로 갔다. 존자 사리자도 또한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옷과 발우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안다숲의 경행하는 장소로 갔다.
  그 때 존자 만자자는 안다숲에 이르러 한 나무 밑에 니사단을 깔고 가부(加趺)를 맺고 앉았다. 존자 사리자도 또한 안다숲에 이르러 만자자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나무 밑에 니사단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았다. 존자 사리자는 해질 무렵[晡時]에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만자자에게 나아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으로 물러 앉아 곧 존자 만자자에게 물었다.
  "현자여, 그대는 사문 구담(瞿曇)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그대는 계행(戒行)을 깨끗하게 하려고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과 번뇌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道)이다 도가 아니다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을 잘 아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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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知見)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道跡)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아까 그대에게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하고 물었을 적에 그대는 곧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대에게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대는 곧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다 도가 아니다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대는 곧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마음으로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현자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증득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다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께서는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또 다시 물었다.
  "내가 아까 그대에게 '현자여,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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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현자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현자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현자의 대답에 무슨 뜻이 담겨져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현자여, 만일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존이신 사문 구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그것은 곧 유여(有餘)를 무여(無餘)라고 일컫는 것이요,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존이신 사문 구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그것은 유여를 무여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현자여, 만일 이 법을 떠나 세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곧 범부도 또한 마땅히 반열반(般涅槃)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범부도 또한 이 법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다만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얻고, 마음이 깨끗함으로써 견해의 깨끗함을 얻으며, 견해가 깨끗함으로써 의심과 번뇌가 깨끗해짐을 얻고, 의심과 번뇌가 깨끗함으로써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고,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으로써 세존이신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시는 것입니다.
  현자여, 다시 들으십시오. 옛날 구살라왕(拘薩羅王) 바사닉(波斯匿)이 사위국에 있었는데, 바계제(婆鷄帝)18)에 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방법을 써야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하루에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18) 또는 사계제(娑鷄帝) 파기다(婆祇多)라고 부르기도 하며 북구살라국의 도성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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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다시 '나는 이제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늘어놓아 두리라'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그는 곧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늘어놓아 두었습니다. 그는 일곱 수레를 벌여 둔 뒤에 사위국에서 나와 첫 번째 수레에 이르렀습니다. 첫 번째 수레를 타고 두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 번째 수레는 버렸습니다.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 수레는 버리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네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세 번째 수레는 버렸으며, 네 번째 수레를 타고 다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네 번째 수레는 버리고, 다섯 번째 수레를 타고 여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다섯 번째 수레는 버렸습니다. 또 여섯 번째 수레를 타고 일곱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 번째 수레는 버리고,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는 하루 걸음으로 바계제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바계제에서 볼 일을 다 마치고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왕의 정전(正殿)에 앉았습니다. 뭇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천왕(天王)께선 하룻동안에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왕이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다.'
  '어떻습니까? 첫 번째 수레를 타고 하룻동안에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아니다.'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나아가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아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구살라왕 바사닉은 뭇 신하들이 다시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왕이 뭇 신하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사위국왕이지만 바계제에 볼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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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방법을 써야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하루 사이에 갈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제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아 두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길 중간에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아 두었다.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아 둔 다음에 사위국에서 길을 떠나 첫 번째 수레에 이르렀다. 첫 번째 수레를 타고 두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 번째 수레는 버리고,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 수레는 버리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네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세 번째 수레는 버렸다. 네 번째 수레를 타고 다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네 번째 수레는 버리고, 다섯 번째 수레를 타고 여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다섯 번째 수레는 버렸다. 여섯 번째 수레를 타고 일곱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 번째 수레는 버리고,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는 하루 동안에 바계제까지 왔다.'
  현자여, 구살라왕 바사닉이 뭇 신하들의 물음에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와 같이 현자여,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짐을 얻고, 마음이 깨끗해짐으로써 견해의 깨끗해짐을 얻으며, 견해가 깨끗해짐으로써 의심의 번뇌를 없애 깨끗해짐을 얻고, 의심의 번뇌를 없애 깨끗해짐으로써 도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道跡)의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고,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으로써 세존께서는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존자 사리자가 존자 만자자에게 물었다.
  "현자여, 현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모든 범행인은 무엇이라고 현자를 일컫습니까?"
  존자 만자자가 대답했다.
  "현자여, 내 아버지19)의 호는 만(滿)이고, 내 어머니의 이름은 자(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인들은 나를 일컬어 만자자(滿慈子 : 만자의 아들)라
  
19) 고려대장경 원본에는 부(父)자가 없고 송본(宋本)에만 부(父)자가 있다. 여기 의미로 보아 부(父)자가 들어가는 것이 의미에 맞아서 송본을 따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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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부릅니다."
  존자 사리자가 찬탄하며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현자 만자자는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作]과 지변(智辯)과 총명(聰明)이 결정되었고,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조어(調御)를 성취하였습니다. 큰 변재(辯才)를 성취하였고 감로(甘露)의 깃대를 얻었으며, 감로의 세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니십니다. 현자에게 물으면 그 매우 깊은 뜻을 다 대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현자 만자자는 모든 범행인들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합니다. 그들은 현자 만자자를 만났으므로 수시로 가서 보고 수시로 예배합니다. 나도 이제 또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모든 범행인은 마땅히 옷을 정수리에 동여매고 현자 만자자를 머리 위에 이고 다니듯 공경하여 모심으로써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또한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존자 만자자가 존자 사리자에게 물었다.
  "현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모든 범행인들은 현자를 무엇이라 부릅니까?"
  "현자여, 나의 이름[字]은 우바제사(優波 舍)이고 내 어머니의 이름은 사리(舍梨)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인들은 나를 일컬어 사리자(舍梨子 : 사리의 아들)라고 부릅니다."
  존자 만자자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나는 지금 세존의 제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습니다. 두 번째의 높은 이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고, 법의 장수[法將 : 사리자를 찬탄해 부른 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으며, 법바퀴를 다시 굴리는 제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습니다. 내가 만일 존자 사리자를 알았다면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다시 당신의 심도 있는 논리에 대해서이겠습니까?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존자 사리자시여, 당신은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과 지변과 총명은 결정되었고,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조어를 성취하였고 큰 변재(辯才)를 얻었으며, 감로의 깃대를 얻었고 감로의 세계에 있으면서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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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니시는 분입니다. 존자께서는 매우 깊고 깊은 질문을 하셨기 때문에 사리자여, 모든 범행인들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존자 사리자를 만났으므로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이제 나도 또한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모든 범행인들은 마땅히 옷을 정수리에 감고 존자를 머리 위에 이고 다니듯 공경을 다해 모심으로 말미암아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또한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현인은 서로 칭찬해 말하고 다시 서로의 훌륭함을 칭찬해 마치고는,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이 칠거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508자이다.]
  10) 누진경(漏盡經)20) 제 10 [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적에 도읍인 검마슬담(劒磨瑟曇)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거나 봄으로써 모든 번뇌[漏]가 다하게 되나니, 알지 못해서도 안 되고 보지 못해서도 안 된다. 어떤 것을 알거나 봄으로써 모든 번뇌를 다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가? 바른 생각[正思惟]과 바르지 않은 생각[不正思惟]이 있다. 만일 바르지 않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欲漏)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有漏 : 生存에 집착하는 번뇌)와 무명루(無明漏 : 無智의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만일 바르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20) 이 경은 『증일아함경 』 제34권 제40품인 「칠일품」의 여섯 번째 소경과 내용이 동일하며, 이역경으로는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불설일체유섭수인경(佛說一切流攝守因經)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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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른 법을 듣지 못하고 참지식[眞知識 : 善知識]을 만나지 못하여,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길들여지지[調御]도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도 못하느니라.
  바르지 않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바르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른 법을 얻어 듣고 참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길들여지고 참다운 법을 알게 되느니라.
  바르지 않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바르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도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이미 알아,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생각해야 할 법만 곧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법만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지느니라.
  누(漏)와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끊는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유루(有漏)는 견해[見]를 좇아 끊고, 유루는 보호[護]를 좇아 끊으며, 유루는 떠남[離]을 좇아 끊고, 유루는 수용[用]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참음[忍]을 좇아 끊고, 유루는 없앰[除]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생각[思惟]을 좇아 끊는다.
  유루는 견해를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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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른 법을 듣지 못하고, 참지식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지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고,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곧 이러한 생각을 낸다.
  '나에게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과거의 세상이 없었는가? 나에게 무슨 원인으로 인해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어떠한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나에게 미래의 세상이 없을 것인가? 나에게 무슨 원인으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나에게 어떠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또 스스로 의심한다.
  '내 몸을 무엇이라 하는가? 이것은 무엇인가? 이제 이 중생들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장차는 어디로 갈 것인가? 본래 무슨 인연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장차는 무슨 인연으로 존재하게 될 것인가?'
  그는 이와 같이 바르지 않게 생각하여, 여섯 가지 견해[見]가 생겨나나니, 이 견해가 생김을 따라 나에 대하여 나[神]라는 것이 있다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나에 대하여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며, 이 견해가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라고 인식하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견해를 내며, 이 견해가 생겨 나가 아닌 것을 나라고 인식하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이것은 바로 나다라는 견해를 낸다. 이 나라는 것은 능히 말하고 능히 알고 능히 행동하며, 능히 행동하게 하고 능히 일어나게 하며, 가서 태어나는 곳마다 선악의 과보를 받는다. 그것은 결정코 어디로부터 온 곳도 없고, 꼭 있는 것도 아니며 꼭 있어야 할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것을 견해의 폐단이라고 하는데, 이런 견해에 흔들리고 이런 견해의 번뇌[見結]에 결박을 당한다.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이 때문에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른 법을 듣고 참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참다운 법을 알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사실 그대로 알아 마치면 3결(結)이 다 끊어지나니, 신견결(身見結)과 계취결(戒取結)과 의결(疑結)이 다 끊어진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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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결이 이미 다 끊어져서 사라지면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정각(正覺)에 나아가 마지막에는 7유(有)21)를 받고,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오가기를 마치면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만일 알지도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는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만일 알거나 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존재에 집착하는 번뇌는 견해[見]를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유루는 보호[護]를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눈으로 물질을 보고, 안근(眼根)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이다. 안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법을 알아 의근(意根)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요, 의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보호를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유루는 떠남[離]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사나운 코끼리를 보면 곧 마땅히 멀리 떠나가야 하며, 사나운 말 사나운 소 사나운 개 독사 험한 길 개천 구덩이 은밀한 곳 강 깊은 샘 산 바위 나쁜 스승 나쁜 벗 나쁜 이도(異道) 나쁜 마을 나쁜 처소를 보아도 꼭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범행을 닦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을 의심을 일으키게 하거든, 비구는 마땅히 나쁜 스승 나쁜 벗 나쁜 이도 나쁜 마을 나쁜 처소를 떠나야 한다. 만일 범행을 닦는 모든 이가 그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에게 의심을 일으키게 하거든, 마땅히 다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여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21) 여기에서 유(有)란 생사의 과보를 말한다. 또는 과보를 받을 원인[因]을 말하기도 하는데, 지옥유(地獄有) 방생유(旁生有) 아귀유(餓鬼有) 천유(天有) 인유(人有) 업유(業有) 중유(中有)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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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이 생길 것이요, 여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유루는 떠남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한다.
  유루는 씀[用]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비구가 의복을 입는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모기 등에 바람 비 추위 더움 때문이요, 부끄러움 때문이다. 만일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살찌기를 바라거나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몸을 오랫동안 보전하여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없애기 위해서요, 범행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며, 묵은 병을 고치고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오래 살고 안온하고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거처할 곳 방사(房舍) 평상 요 침구를 쓴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피로할 때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요,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기 위해서이다. 만일 약을 쓴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살찌고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병들고 괴로운 것을 없애기 위해서요, 목숨을 거두어 잡기 위해서이며, 안온하고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그것들을 쓰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그것을 쓰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씀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유루는 참음[忍]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는 정진하여 악하고 불선함을 끊고 선한 법을 닦기 때문에 항상 생각을 일으킴이 있고, 마음을 통일하여 정근하며, 몸 가죽 살 힘줄 뼈 피 골수가 다 마르도록 정진을 버리지 않고 구하던 바를 다 얻고서야 정진을 버린다. 비구는 또 마땅히 굶주림 목마름 추위 더위 모기 등에 파리 벼룩 이 따위를 견디고 참아내야 하고, 바람이나 햇볕의 핍박을 받고 욕설과 매질을 당해도 또한 능히 그것을 참으며, 몸이 온갖 병에 걸려 몹시 고통스럽거나 목숨이 끊어질 듯한 온갖 불쾌한 것들도 다 능히 견디고 참아내야 한다. 만일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참아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루는 참음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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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루는 없앰[除]을 좇아 끊는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에게 탐욕의 마음이 생겼을 때 그것을 끊어 없애거나 버려 여의지 못하거나, 성냄의 마음과 해치려는 마음이 생겼을 때 끊어 없애거나 버려 여의지 못할 경우, 만일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없애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루는 없앰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유루는 생각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첫 번째 염각지(念覺支)22)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면,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경지[出要法]로 나아간다. 택법각지(擇法覺支) 정진각지(精進覺支) 희각지(喜覺支) 식각지(息覺支) 정각지(定覺支)도 마찬가지이며, 또 일곱째 사각지(舍覺支)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면,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경지로 나아간다. 만일 생각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생각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사유를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비구로 하여금 유루에 대하여 견해를 좇아 끊을 것은 곧 견해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보호를 좇아 끊을 것은 곧 보호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떠남을 좇아 끊을 것은 곧 떠남으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씀을 좇아 끊을 것은 씀으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참음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참음으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없앰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없앰으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사유를 좇아 끊을 것은 곧 사유로써 끊게 한다면, 이것을 비구가 모든 누(漏)가 다 끊어지고 모든 맺힘[結]이 이미 풀려, 능히 바른 지혜로써 괴로움의 끝을 얻은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누진경에 수록되어 있는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621자이다. 『중아함경 』 제 2 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7,934자이고, 첫 번째 「칠법품」에 수록된 경문
  
22) 불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늘 잘 생각하여 정(定) 혜(慧)가 고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56 / 1738] 쪽
  의 글자 수는 모두 16,043자이다.]23)
23) 원문에서 밝히고 있는 글자 수의 합과 실제 소경의 글자 수를 합한 것과는 서로 차이가 많다. 2권의 총 글자수는 소경들을 합한 결과 7,926자인데 여기에서는 7,934자라고 하였고, 「칠법품」인 『중아함경 』 제 1 권과 제 2 권을 합하면 실제는 16,035자인데 여기에서는 16,043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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