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중아함경(中阿含經)

중아함경 제 47 권

通達無我法者 2008. 1. 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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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제 47 권

 

 

  동진 계빈삼장 구담 승가제바 한역
  
14. 심품 제 3 ③
  178) 엽사경(獵師經) 제 7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1)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냥꾼은 사슴에게 먹이를 줄 때 이렇게 마음먹지는 않는다.
  '사슴을 살찌우고 빛깔을 아름답게 하며 힘이 세지게 하고 즐겁게 오래 살게 해 주리라.'
  사냥꾼은 사슴에게 먹이를 줄 때에는 이런 마음으로 먹이를 준다.
  '오직 먹이를 가까이 하게 하여 먹게 한 뒤에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게 하리라. 방심하고 나면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를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첫 번째 사슴떼는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고, 방심한 뒤에는 곧 사냥꾼과 그 권속을 따른다. 그리하여 그 첫 번째 사슴떼는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 사슴떼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 첫 번째 사슴떼는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었다.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게 되었고, 방심하게 된 뒤에는 곧 사냥꾼과 그 권속을 따르고 있다. 이와 같이 되어 저 첫 번째 사슴떼는
  
1) 송 원 명 3본에는 이 부분의 가란다(迦蘭哆)가 모두 가란타(迦蘭陀)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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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먹지 말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일 없는 곳[無事處 : 숲]에서 풀이나 먹고 물이나 마시는 게 낫지 않을까?'
  두 번째 사슴떼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버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아무 일이 없는 곳[無事處]을 의지하여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살았다.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풀과 물이 없어져 몸이 극히 여위어지고, 기력마저 쇠하자,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랐다. 이렇게 그 두 번째 사슴떼들도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세 번째 사슴떼도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첫 번째 두 번째 사슴떼들은 모두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 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방심하지 않으면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세 번째 사슴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았으며, 방심하지 않아서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셋째 사슴떼들은 참으로 기이하며 교활하고 꾀가 많구나. 너무도 교활하고 꾀가 많구나. 왜냐 하면 내가 주는 먹이를 먹는데도 그들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길고 둥근 그물을 만들어 곧 저 세 번째 사슴떼들이 의지하여 사는 곳에 쳐서 저들을 잡으리라.'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길고 둥근 그물을 만들어 세 번째 사슴떼들이 의지하여 사는 곳에 둘러 치고 그들을 잡았다. 이렇게 그 세 번째 사슴떼들도 또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저 네 번째 사슴떼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슴떼들은 모두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제 저 사냥꾼과 그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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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곳에 가서 살자. 그 곳을 의지하여 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방심하지 않으면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네 번째 사슴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그 곳을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게 되었으며, 방심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네 번째 사슴떼들은 참으로 기이하고 용감하구나. 기이하고 용맹스럽기가 으뜸이구나. 우리가 저들을 쫓더라도 분명 그들을 잡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다른 사슴들만 두렵고 놀라게 해서 흩어지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저 네 번째 사슴떼들에게 그물 치는 일은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그물 치기를 포기하였다. 이리하여 저 네 번째 사슴떼들은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게 되었다.
  비구들이아, 내가 이런 비유를 들어 말한 것은 그 뜻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내가 그것을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그 뜻을 관찰하여 보라. 저 사냥꾼이 주는 먹이란 5욕(欲)의 공덕(功德)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즉 눈이 빛깔을 지각(知覺)하고, 귀가 소리를 지각하며, 코가 냄새를 지각하고, 혀가 맛을 지각하며, 몸이 촉감을 지각하는 것이다. 사냥꾼의 먹이란 마땅히 이 오욕의 공덕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냥꾼이란 악마의 왕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요, 사냥꾼의 권속이란 악마의 권속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며, 사슴떼들이란 사문과 범지(梵志)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첫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마왕이 주는 먹이, 곧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 하여 먹는다. 그들은 그것을 가까이하여 먹은 뒤 곧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게 되며, 방심하게 된 뒤에는 곧 마왕과 그 권속을 따르게 된다. 이와 같이 첫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저 첫 번째 사슴떼들이 사냥꾼의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 곧 교만하고 방심하게 되며, 방심한 뒤에는 사냥꾼과 그 권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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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고, 이렇게 하여 첫 번째 사슴떼들이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저 첫 번째 사문과 범지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두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첫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마왕이 주는 먹이, 곧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었다.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게 되었고, 방심한 뒤에는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르게 되었다. 이리하여 저 첫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이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에서 살면서 과일이나 나무 뿌리를 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저 두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에서 과일과 나무 뿌리를 먹고 살았다.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과일과 나무 뿌리가 없어지자 몸이 극히 여위고 기력도 쇠하였다. 기력이 쇠하자, 곧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의 해탈[慧解脫]이 쇠퇴해졌고,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이 쇠퇴해진 뒤에는 곧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랐다. 이렇게 저 두 번째 사문과 범지도 또한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는 마치 저 두 번째 사슴떼들의 경우와 같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첫 번째 사슴떼들은 사냥꾼의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었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였으며, 방심한 뒤에는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랐다. 이렇게 저 첫 번째 사슴떼들은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의 먹이를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에서 살면서, 풀이나 먹고 물이나 마시는 게 낫지 않을까?'
  저 두 번째 사슴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의 먹이를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에서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살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풀과 물이 다해 몸이 극히 여위고 기력이 쇠하자, 곧 사냥꾼과 그 권속을 따랐다. 이렇게 저 두 번째 사슴떼들도 또한 사냥꾼과 그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저 두 번째 사문과 범지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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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세 번째 사문과 범지는 또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첫 번째 두 번째 사문과 범지는 모두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마왕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방심하지 않으면 마왕과 마왕의 권속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세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마왕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게 되었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아서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소견[有見]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견[無見]의 두 가지 견해를 받아 가졌다. 그들은 이 두 가지 견해를 받아 가졌기 때문에 곧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랐다. 이렇게 저 셋째 사문과 바라문도 또한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는 마치 저 세 번째 사슴떼들과 같다. 그들도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사슴떼들 모두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사냥꾼의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으면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세 번째 사슴떼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사냥꾼의 먹이를 가까이 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게 되었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세 번째 사슴떼들은 참으로 기이하며 교활하고 꾀가 많다. 너무도 교활하고 꾀가 많구나. 왜냐 하면 내 먹이를 먹는데도 그것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길고 둥근 그물을 만들어 곧 저 세 번째 사슴떼들이 의지하여 머무는 곳에 쳐서 그들을 잡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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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길고 둥근 그물을 쳐서 그들을 잡았다. 이렇게 세 번째 사슴떼들도 또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의지한다'는 것은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소견[有見]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머무른다'는 것은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견[無見]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저 세 번째 사문과 범지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저 네 번째 사문과 범지들도 또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문과 범지들 모두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무르자. 그 곳에 의지하여 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고, 방심하지 않으면,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네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마왕과 그 권속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그 곳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았으며, 방심하지 않아서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이렇게 저 네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곧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났다.
  이는 마치 저 네 번째 사슴떼들의 경우와 같다. 그들도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슴떼들 모두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저 사냥꾼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살자. 그 곳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방심하지 않으면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네 번째 사슴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그 곳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 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았으며, 방심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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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네 번째 사슴떼들은 참으로 기이하고 용맹하구나. 기이하고 용맹스럽기가 으뜸이구나. 우리가 저들을 쫓더라도 분명 그들을 잡지 못할 것이요, 오히려 다른 사슴들만 두려워하고 놀라서 흩어지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저 네 번째 사슴떼들에게는 그물 치기를 포기하리라.'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그물 치기를 포기하였다. 이렇게 저 네 번째 사슴떼들은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났느니라. 저 네 번째 사문과 범지들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비구들아, 마땅히 이러한 것을 배워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고 머물러라. 그러면 어떤 것이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들이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 4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또 어떤 것이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들이 자애로운 마음[慈心]으로 1방(方)을 두루 채워 성취하여 노닐고, 이와 같이 2 3 4방과 4유(維) 상 하 일체를 두루 채우는 것이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맺힘[結]도 없고 원망[怨]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諍]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워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슬픈 마음[悲心] 기쁜 마음[喜心]도 마찬가지이며 평정한 마음[捨心]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모든 세간을 두루 채워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이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며,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또 어떤 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지나 생각[想]과 앎[知]이 사라진 몸의 촉감[身觸]을 성취하여 노닐고, 모든 번뇌가 다한 지혜[漏盡智]로 보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비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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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곳에 의지하고 머물러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엽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396자이다.]
  179) 오지물주경(五支物主經) 제 8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에 오지(五支)라는 물주(物主)2)가 이른 아침에 사위성을 나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을 뵈옵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길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오지 물주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고요히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뵈옵거나 여러 높은 비구를 뵈옵는 것은 우선 그만두자. 나는 이제 차라리 한 그루 사라(娑邏)나무가 있는 말리(末利)라는 이교도의 동산으로 가리라.'
  이에 오지 물주는 비도(比道)3)로 가서 유희하여 좋아하여, 건두아리(巾頭阿梨)숲 부근에 있는 한 그루 사라나무가 있는 말리 이교도의 동산으로 나아갔다. 그 때 사라나무가 있는 말리 이교도의 동산에는 문기자(文祁子)4)라는 어떤 이교도 사문이 그 곳의 큰 종주가 되어 여러 사람의 스승으로서 존경을 받으면서, 이교도 5백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그 시끄러운 무리 가운데서 높은 소리로 떠들어대면서 몇 가지 축생론(畜生論)에 대하여 연설하였다. 그것은 이른바 왕론(王論) 적론(賊論) 투쟁론(鬪諍論) 음식론(飮食論) 의복론(衣被論) 부인론(婦人論) 동녀론(童女論) 음녀론(淫女論) 세간론(世間論) 사도론(邪道論) 해중론(海中論) 등이었다. 이와 같이 여러 대중들과 함께 여러 가지 축생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2) 팔리어로는 thapati이고 장인(匠人) 또는 건축가(建築家)라는 뜻이다.
3) 송 원 2본에는 차도(此道)로 되어 있다.
4) 팔리어로는 ma ik putt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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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교도의 사문 문기자는 멀리서 오지 물주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분부하였다.
  "너희들은 조용히 하라. 떠들지 말고 스스로 조심하라. 저기 사문 구담의 제자 오지 물주가 온다. 이 사위국에 살고 있는 사문 구담의 재가 제자 중에 저 오지 물주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왜냐 하면 저 사람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것을 찬양한다. 만일 그가 이 대중들의 조용한 모습을 본다면 아마 다가올 것이다."
  그 때 이교도 사문 문기자는 대중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자기도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에 오지 물주는 이교도 사문 문기자에게로 가서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이교도 사문 문기자가 말하였다.
  "물주야, 만일 누군가 네 가지 일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善行) 중에 제일선(第一善)을 성취한 무상사(無上士)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고 시설한다. 어떤 것이 넷인가? 몸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삿된 생활을 하지 않고, 나쁜 생각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물주야, 만일 누군가 이 네 가지를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善行) 중에 제일선(第一善)을 성취한 무상사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고 시설하리라."
  오지 물주는 이교도 사문 문기자의 말을 듣고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은 채,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제 부처님께 나아가 그가 한 말을 말씀드리고 그 뜻을 여쭈어 보리라.'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교도 사문 문기자와 나눈 이야기를 모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나서 곧 말씀하셨다.
  "물주야, 만일 이교도 사문 문기자의 말과 같다면, 사지의 뼈마디가 부드럽고 연한 어린 아이가 똑바로 누워 잠을 자더라도 또한 선행 중에 제일선을 성취한 무상사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 할 것이다. 물주야, 어린아이는 아직 몸이라는 생각도 없는 자인데 하물며 몸으로 나쁜 업을 짓겠느냐? 아이는 그저 몸을 움직일 뿐이다. 물주야, 어린아이는 아직 입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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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나쁜 말을 하겠느냐? 오직 울 뿐이다. 물주야, 어린아이는 아직 생활이라는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삿된 생활을 하겠느냐? 오직 끙끙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다. 물주야, 어린아이는 아직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나쁜 기억이 있겠느냐? 오직 어머니의 젖만 기억할 뿐이다. 물주야, 만일 이교도 사문 문기자의 말과 같다면, 이러한 어린아이도 선행 중에 제일의 선행을 성취한 무상사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주야, 만일 누가 다음의 네 가지 일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 중에 제일의 선행을 성취하였다고 말하리라. 그러나 무상사는 아니요, 제일의 진리를 얻은 것도 아니며, 또한 정직한 사문도 아니라고 시설한다. 어떤 것이 넷인가? 몸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삿된 직업을 가지지 않고, 나쁜 생각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물주야, 만일 누군가 이 네 가지 일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 중에 제일의 선행을 성취하였다고 하리라. 그러나 무상사는 아니요, 제일의 진리를 얻은 것도 아니며, 또한 정직한 사문도 아니라고 시설한다. 물주야, 몸의 업[身業]과 입의 업[口業]을 나는 계(戒)라고 시설한다. 그리고 물주야, 나는 기억[念]은 마음이 소유하는 것이고, 마음과 서로 따르는 것이라고 시설한다.
  물주야, 나는 말하나니, 마땅히 착하지 않은 계[不善戒]를 알아야 하고, 마땅히 착하지 않은 계가 어디서 생기는 것인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착하지 않은 계가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성현의 제자들이 어떻게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애는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야, 나는 말하나니, 마땅히 착한 계[善戒]를 알아야 하고, 마땅히 착한 계가 어디서 생기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착한 계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성현의 제자들이 어떻게 착한 계를 없애는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야, 나는 말하나니, 마땅히 착하지 않은 기억[不善念]을 알아야 하고, 마땅히 착하지 않은 기억이 어디서 생기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착하지 않은 기억이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지 알아
 
[1347 / 1738] 쪽
  야 하며, 마땅히 성현의 제자들이 어떻게 착하지 않은 생각을 없애는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야, 나는 말하나니, 마땅히 착한 기억[善念]을 알아야 하고, 마땅히 착한 기억이 어디서 생기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착한 기억이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성현의 제자들이 어떻게 착한 기억을 없애는지를 알아야 하느니라.
  물주야,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계[不善戒]인가? 착하지 않은 몸의 행과 착하지 않은 입과 뜻의 행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계라고 한다. 물주야, 이 착하지 않은 계는 어디서 생기는가? 내가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해 주리라. 마땅히 그것은 마음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왜 마음에서 생긴다고 하는가? 만일 마음에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있으면, 이런 마음에서 그 착하지 않은 계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주야, 착하지 않은 계(戒)는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몸의 착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몸의 착한 업을 닦으며, 입과 뜻의 착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입과 뜻의 착한 업을 닦나니, 이것이 착하지 않은 계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자신의 몸[內身]을 몸으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覺]과 마음[心]과 법(法)을 감각과 마음과 법으로 관찰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행하여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애느니라.
  물주야, 어떤 것이 착한 계[善戒]인가? 착한 몸의 업과 착한 입과 뜻의 업이니, 이것을 착한 계라고 한다. 물주야, 이 착한 계는 어디서 생기는가? 내가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해 주리라. 그것은 마음에서 생기는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왜 마음에서 생긴다고 하는가?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으면, 이런 마음에서 착한 계가 생기는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물주야, 착한 계는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가? 만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계를 행하되 계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 착한 계는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진다.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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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떻게 착한 계를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자신의 몸을 몸으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감각과 마음과 법으로 관찰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행하여 착한 계를 없애느니라.
  물주야,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기억[不善念]인가? 탐욕의 기억[欲念]과 성냄의 기억[恚念]과 해침의 기억[害念]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기억이라 한다. 물주야, 착하지 않은 기억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내가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해 주리라. 그것은 생각[想]에서 생기는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왜 생각에서 생긴다고 하는가? 나는 말하나니, 생각에는 많은 종류 한량없는 종류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는 혹 탐욕스러운 생각 혹은 성내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도 있다. 물주야, 중생은 탐욕 세계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기억을 일으켜 탐욕의 세계[欲界]와 서로 호응한다. 만일 이런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기억을 일으켜 탐욕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물주야, 중생은 성냄과 해침 세계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기억을 내어 성냄과 해침의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만일 이런 기억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생각을 일으켜 성냄과 해침의 세계와 서로 호응하나니, 이 착하지 않은 생각은 이런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느니라.
  물주야, 착하지 않은 기억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여기에서 착하지 않은 기억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진다.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착하지 않은 기억을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자신의 몸을 몸으로 관찰하고, 감각과 마음과 법을 감각과 마음과 법으로 관찰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행하여 착하지 않은 기억을 없애느니라.
  물주야, 어떤 것이 착한 기억[善念]인가? 탐욕이 없는 기억[無欲念] 성냄이 없는 기억[無恚念] 해침이 없는 기억[無害念]이니, 이것을 착한 기억이라고 한다. 물주야, 착한 기억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내가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해 주리라. 그것은 생각[想]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왜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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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생긴다고 하는가? 나는 말하나니, 생각에는 많은 종류 한량없는 종류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는 혹 탐욕이 없는 생각[無欲想] 성냄이 없는 생각[無恚想] 해침이 없는 생각[無害想]도 있다. 물주야, 중생은 탐욕 세계의 생각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착한 생각을 내어 탐욕이 없는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만일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한 기억을 일으켜 탐욕이 없는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물주야, 중생은 성냄과 해침이 없는 세계를 말미암아 착한 기억을 일으켜 성냄과 해침이 없는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만일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한 기억을 일으켜 성냄과 해침이 없는 세계와 서로 호응하나니, 이런 착한 기억은 이런 생각[想]으로 말미암아 생기느니라.
  물주야, 착한 기억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가? 만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 기억[念] 청정(淸淨)이 있는 제 4 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여기에서 착한 기억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진다.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착한 기억을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자신의 몸을 몸으로 관찰하고, 나아가 느낌[覺 : 受]과 마음[心]과 법(法)을 감각과 마음과 법으로 관찰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행하여 착한 기억을 없애느니라.
  물주야,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지혜로써 착하지 않은 계[不善戒]를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하지 않은 계가 어디서 생기는지 사실 그대로 알며, 지혜로써 관찰하여 착하지 않은 계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앤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혹 지혜로써 착한 계[善戒]를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한 계가 생기는 곳을 사실 그대로 알며, 지혜로써 관찰하여 착한 계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착한 계를 없앤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혹 지혜로써 착하지 않은 기억[不善念]을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하지 않은 기억이 생기는 곳을 사실 그대로 알며, 지혜로써 관찰하여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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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은 기억이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착하지 않은 기억을 없앤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혹 지혜로써 착한 기억[善念]을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한 기억이 생기는 곳을 사실 그대로 알며, 지혜로써 관찰하여 착한 기억이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착한 기억을 없앤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왜냐 하면 바른 소견[正見]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뜻[正志]이 생기고, 바른 뜻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말[正語]이 생기며, 바른 말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행동[正業]이 생기고, 바른 행동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생활이 생기며, 바른 생활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방편[正方便]이 생기고, 바른 방편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기억[正念]이 생기며, 바른 기억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선정[正定]이 생긴다. 성현의 제자들 마음이 이렇게 확고해지면 곧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해탈하게 되느니라.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바로 마음이 해탈하면, 곧 '일체의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나니, 이것을 두고 길을 본 유학(有學)이 8지(支)를 성취하고,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10지(支)5)를 성취한 것이라 하느니라.
  물주야, 무엇을 길을 본 유학(有學)이 성취하는 8지라 하는가? 이른바 유학의 바른 소견과 나아가 유학의 바른 선정이니, 이것을 길을 본 유학이 성취하는 8지라 한다. 물주야, 무엇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성취하는 10지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학의 바른 소견과 나아가 무학의 바른 지혜이니, 이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성취하는 10지(支)라고 한다. 물주야, 만일 누군가 이 10지를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 중 제일의 선행을 성취하고, 무상사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 시설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오지 물주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5) 8정도에 정지(正智)와 정해탈(正解脫)을 더해 10지(支)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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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오지물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178자이다.]
  180) 구담미경(瞿曇彌經)6) 제 9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기수(釋羇瘦)를 유행하실 적에 가비라위(加 羅衛)7)의 니구류(尼拘類)나무 동산에 계셨다. 그 때 마하파라사발제구담미(摩訶簸邏闍鉢提瞿曇彌)8)는 금실로 지은 옷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금실로 지은 황금색 새 옷은 제가 세존을 위해 손수 만든 것입니다. 원컨대 저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구담미여, 이 옷을 가져다 비구들에게 보시하시오. 비구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곧 내게 공양하는 것이고 또한 대중에게 공양하는 것입니다."
  대생주(大生主) 구담미는 재삼 되풀이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금실로 짠 이 황금색 새 옷은 제가 세존을 위해 손수 만든 것입니다. 원컨대 저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도 또한 재삼 되풀이해 말씀하셨다.
  "구담미여, 이 옷을 가져다 비구들에게 보시하십시오. 비구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곧 내게 공양하고 또한 대중에게 공양하는 것입니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세존 뒤에 서서 불자(拂子)를 들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이에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대생주 구담미는 세존에게 은혜가 많습니다. 세존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세존을 젖 먹여 길렀나이다."
  
6) 이 경의 이역본으로 송(宋) 시대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분별보시경(佛說分別布施經) 』이 있다.
7) 팔리어로는 Kapilavathu이고 가비라위(加毘羅衛)로 음역하기도 한다. 부처님 탄생지이다.
8) 팔리어로 Mah paj pati이고 부처님의 이모이다. 대생주(大生主) 혹은 대애도(大愛道)로 의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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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대생주 구담미는 진실로 내게 은혜를 많이 베풀었다. 내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젖을 먹여 나를 길러 주었다. 그러나 아난아, 나도 또한 대생주 구담미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왜냐 하면 대생주 구담미는 나로 인해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 스스로 귀의하게 되어, 3존(尊)9) 과 괴로움[苦] 괴로움의 발생[習] 괴로움의 소멸[滅] 괴로움의 소멸[道]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믿음 계 많은 지식 보시 지혜를 성취하였으며, 살생을 멀리해 끊고, 도둑질 사음 거짓말과 술을 멀리해 끊었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남을 인해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 스스로 귀의하게 되어, 3존과 괴로움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믿음 계 많은 지식 보시 지혜를 성취하며, 살생을 멀리해 끊고, 도둑질 사음 거짓말과 술을 멀리해 끊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그에게 한평생 동안 음식 의복 평상 탕약과 그 밖에 많은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공양한다 하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이다.
  또 아난아, 보시의 대상이 되는 대중[施衆]10)에 일곱 부류가 있고, 열 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十四私施]가 있다. 그런 보시를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증득할 것이며,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을 것이다. 아난아, 큰 복이 있고 큰 결과가 있으며, 큰 공덕이 있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게 하는 일곱 부류의 대중에게 하는 보시란 무엇인가? 믿음이 있는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부처님을 비롯해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보시하면, 이것을 첫 번째 대중에게 하는 보시라 하니, 그것은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를 받는다. 또 믿음이 있는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지 오래지 않아 2부중에게 보시하는 것, 비구대중에게 보시하는 것, 비구니대중에게 보시하는 것, 비구들의 동산
  
9) 3보(寶)라고도 하며 불(佛) 법(法) 승(僧)을 말한다.
10) 팔리본에는 보시의 대상이 되는 일곱 가지 부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①부처님 재세시의 2부중 ②부처님 멸 도 후 2부중 ③비구 승단 ④비구니 승단 ⑤특정한 비구 비구니 ⑥일정한 숫자의 비구대중 ⑦일정한 숫자의 비구니대중에게 보 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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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들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대중 가운데 이러한 비구가 오면 그에게 보시하리라' 하는 것이다. 다시 비구니들의 방에 들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대중 가운데 이러한 비구니가 오면 그들에게 보시하리라'고 하면 이것을 다섯 번째 대중에게 하는 보시라고 하나니, 큰 복을 얻고 큰 결과를 얻으며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으리라.
  아난아, 미래에는 유명한 종족 출신으로, 정진하지 않으면서 가사를 입는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정진하지 않지만, 대중을 의지하기 때문에, 대중을 인연하기 때문에, 대중을 높이기 때문에, 대중을 말미암기 때문에 정진하지 않는 그에게 보시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때의 그 시주는 한량없고 셀 수 없으며 계산할 수 없는 복을 얻고, 착함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물며 현재 비구가 행할 일을 성취하거나 버릴 일을 성취하고 행할 일과 버릴 일을 다 성취하며, 소박하고 정직함을 성취하거나 부드럽고 유연함을 성취하거나 소박함과 정직함과 부드럽고 유연함을 다 성취하며, 인욕을 성취하거나 즐거움을 성취하거나 인욕과 즐거움을 다 성취하며, 서로 호응함을 성취하거나 기강(紀綱)을 성취하거나 서로 호응함과 기강 세움을 다 성취하며, 위엄 있는 거동을 성취하거나 유행하며 노닒을 성취하거나 위엄 있는 거동과 유행하며 노닒을 다 성취하며, 믿음을 성취하거나 계를 성취하거나 많은 지식을 성취하거나 보시를 성취하거나 지혜를 성취하고, 믿음 계 많은 지식 보시와 지혜를 다 성취함이겠는가? 이것을 일곱 부류의 대중에게 하는 보시라 하나니,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일곱 부류의 대중에게 보시를 행하면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을 얻고 큰 과보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큰 복을 얻고 큰 결과를 얻으며,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는 열 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인가? 어떤 믿음이 있는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에게 보시하고, 연각에게 보시하며, 아라하에게 보시하고, 아라하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아나함에게 보시하고, 아나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사다함에게 보시하고, 사다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수다원에게 보시하고, 수다원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모든 욕심을 떠난 외도 선인(仙人)11)에게 보시하고, 정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며, 정진하지 않
  
11) 탐욕의 더러움을 벗어난 이교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원문은 '이욕외선인(離欲外仙人)'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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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이에게 보시하고,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아난아,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복을 얻고, 정진하지 않는 이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복을 얻고, 정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복을 얻고, 모든 욕심을 떠난 외도 선인에게 보시하면 억백천 배의 복을 얻게 되며, 수다원을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고, 수다원을 얻은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사다함을 향하는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고, 사다함을 얻은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아나함을 향하는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고, 아나함을 얻은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아라하를 향하는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고, 아라하를 얻은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연각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 하물며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 보시함이겠는가? 이 열 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는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으리라.
  다시 아난아, 네 가지 보시와 세 가지 깨끗한 보시[三淨施]가 있다. 어떤 것을 넷이라 하는가?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이 깨끗하지 못하며, 혹 어떤 보시는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이 깨끗하지 못하며,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하며,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다.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주는 사람은 정진하여 묘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
  그러나 받는 사람은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
  이런 보시를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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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보시가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주는 사람은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
  그러나 받는 사람은 정진하고 묘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
  이런 보시를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주는 사람도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
  그리고 받는 사람도 또한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
  이런 보시를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한 것인가? 주는 사람도 정진하여 묘한 법을 행하고,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
  그리고 받는 사람도 또한 정진하고 묘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
  이런 보시를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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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정진하는 사람이 정진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해 기쁜 마음 얻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있다 믿으면
  이는 주는 이가 깨끗한 보시니라.
  
  정진하지 않는 이가 정진하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하지 않아 기쁜 마음 없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믿지 않으면
  이는 받는 이가 깨끗한 보시니라.
  
  게으른 사람이 정진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치 않아 기쁜 마음 없으며
  업과 또 그 과보 믿지 않으면
  이런 보시 크고 넓은 과보 없으리.
  
  정진하는 이가 정진하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하여 기쁜 마음 얻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있다 믿으면
  이런 보시 크고 넓은 과보 있으리.
  
  종들과 가난하고 궁한 이에게
  제 것 갈라 보시하고 또 기뻐하면서
  업을 믿고 또한 과보 있다 믿으면
  이런 보시 훌륭하다고 사람들 칭찬하네.
  
  바르게 몸과 입을 잘 보호하고
  손을 펴 법으로 물건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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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심 없이 욕심을 떠난 이에게 보시하면
  이런 재물 보시가 제일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구담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20자이다.]
  181) 다계경(多界經)12) 제 10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혼자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서 편안히 앉아 깊이 사유(思惟)하다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두려움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은 다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이에 존자 아난이 해질 무렵이 되어 편안하고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편안한 곳에서 편안히 앉아 깊이 사유하다가 마음속으로 '모든 두려움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모든 두려움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아난아, 마치 갈대 무더기나 풀 무더기에서 불이 일어나 누각과 집을 태우는 것처럼 아난아, 그와 같이
  
12)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송(宋) 시대 법현(法賢)이 한역한 『불설사품법분경(佛說四品法門經)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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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두려움은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느니라.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도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느니라.
  아난아, 과거에 만일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겼던 것이지, 지혜에서 생겼던 것이 아니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에서 생겼던 것이지 지혜에서 생겼던 것이 아니다. 아난아, 미래에 만일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길 것이요,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길 것이요,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난아, 현재에 있는 모든 두려움도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요, 지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도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요, 지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난아, 이것을 어리석음에는 두려움이 있고, 지혜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어리석음에는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있고, 지혜에는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모든 두려움 사고 재앙 걱정 및 슬픔은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지 지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니라."
  이에 존자 아난은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계(界)를 알지 못하고, 처(處)13)를 알지 못하며, 인연을 알지 못하고, 옳은 것[是處]과 옳지 않은 것[非處]을 알지 못한다면 아난아, 이런 비구는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자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지혜로우며 어리석지 않은 비구입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계를 알고, 처를 알고, 인연을 알며, 옳은 것과
  
13) 처(處, yatana)는 곧 12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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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지 않은 것을 안다면 아난아, 이런 비구는 지혜로우며 어리석지 않은 자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지혜로우며 어리석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계(界)14)를 아는 비구입니까?"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18계(界)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안계(眼界) 색계(色界) 안식계(眼識界)와 이계(耳界) 성계(聲界) 이식계(耳識界)와 비계(鼻界) 향계(香界) 비식계(鼻識界)와 설계(舌界) 미계(味界) 설식계(舌識界)와 신계(身界) 촉계(觸界) 신촉계(身觸界)와 의계(意界) 법계(法界) 의식계(意識界)를 아느니라. 아난아, 이 18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또 아난아,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땅의 경계[地界] 물의 경계[水界] 불의 경계[火界] 바람의 경계[風界] 허공의 경계[空界] 의식의 경계[識界]이다. 아난아, 이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탐욕의 경계[欲界] 성냄의 경계[恚界] 해침의 경계[害界] 탐욕이 없는 경계[無欲界] 성냄이 없는 경계[無恚界] 해침이 없는 경계[無害界]이다. 아난아, 이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즐거움의 경계[樂界] 괴로움의 경계[苦界] 기쁨의 경계[喜界] 근심의 경계[憂界] 평정의 경계[捨界] 무명의 경계[無明界]이다. 아난아, 이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4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느낌의 경계[覺界] 생각의 경계[想界] 지어감의 경계[行界] 의식의 경계[識界]이다. 아난아, 이 4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색계(色界) 무색계(無色
  
14) 범어로는 Dh tu이고 결부(結付)의 뜻을 가진 Dh 에서 나온 말이다. 요소(要素) 기초(基礎) 층(層)이라는 뜻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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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界) 멸계(滅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과거의 경계[過去界] 미래의 경계[未來界] 현재의 경계[現在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묘한 경계[妙界], 묘하지 않은 경계[不妙界], 중간의 경계[中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착한 경계[善界] 착하지 않은 경계[不善界] 무기(無記)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유학(有學)의 경계 무학(無學)의 경계 유학도 무학도 아닌 경계[非學非無學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2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유루계(有漏界)와 무루계(無漏界)이다. 아난아, 이 2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2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유위계(有爲界)와 무위계(無爲界)이다. 아난아, 이 2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이상의 62계(界)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알면 이러한 비구를 계를 아는 비구라고 하느니라."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계를 아는 비구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처(處)를 아는 비구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12처(處)를 보아 사실 그대로 아나니, 곧 안처(眼處) 색처(色處) 이처(耳處) 성처(聲處) 비처(鼻處) 향처(香處) 설처(舌處) 미처(味處) 신처(身處) 촉처(觸處) 의처(意處) 법처(法處)이다. 아난아, 이 12처를 보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이런 비구는 처를 아는 비구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처를 아는 비구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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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因緣)을 아는 비구입니까?"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인연과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을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이것을 인하여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함을 안다. 이른바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行)이 있고, 나아가 생(生)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으며, 만일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나아가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사라진다고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이런 비구는 인연을 아는 비구이니라."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인연을 아는 비구입니다. 어떤 비구가 그렇지 않은 것을 아는 비구입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그런 것은 그렇다고 보아 진실 그대로 알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그렇지 않다고 보아 진실 그대로 안다. 아난아, 만일 한 세상에 두 전륜왕이 있어 아울러 다스린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고, 만일 한 세상에는 한 전륜왕만이 있어 혼자 다스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한 세상에 두 여래가 있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고, 만일 한 세상에는 한 여래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일부러 부모를 해치고 아라하를 죽이며, 성현들을 쳐부수고 부처님에게 악한 마음을 품으며, 여래에게 피를 흘리게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일부러 부모를 해치고 아라하를 죽이며, 성현들을 쳐부수고 부처님에게 악한 마음을 품으며 여래에게 피를 흘리게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일부러 계를 범하고 계를 버리며 도를 그만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일부러 계를 범하고 계를 버리며, 도를 그만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이 마음을 버리고 밖을 향하여 높은 것을 구하고 복밭을 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이 마음을 버리고 밖을 향하여 높은 것을 구하고 복밭을 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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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다른 사문 범지를 좇아 '여러분, 보아야 할 것은 보고, 알아야 할 것은 아시오'라고 말하더라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다른 사문 범지를 좇아 '여러분, 보아야 할 것은 보고, 알아야 할 것은 아시오'라고 말하더라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좋고 나쁨을 점치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점을 믿고 길흉을 묻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다른 사문 범지를 좇아, 좋고 나쁨을 점치는 점쟁이와 서로 어울려 괴로움이 있고 번거로움이 있다고 보며 이것은 진실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다른 사문 범지를 좇아, 좋고 나쁨을 점치는 점쟁이와 서로 어울려 괴로움이 있고 번거로움이 있다고 보며 이것은 진실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심한 괴로움, 너무도 심한 괴로움을 일으켜 사랑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못하며, 생각하지도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하며, 나아가 목숨을 끊으려 하고, 이 마음을 버리고 다시 밖을 향해 구해 '혹 어떤 사문 범지가 한 구절의 주문이나 두 구절 세 구절 네 구절 많은 구절 백천 구절의 주문을 가지고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여, 거기서 괴로움의 발생[苦習]과 괴로움에서 나아갈 길[苦趣]과 갖가지 괴로움의 다함[苦盡]을 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이 마음을 버리고 다시 밖을 향해 구하여 '혹 어떤 사문 범지가 한 구절의 주문이나 두 구절 세 구절 네 구절 많은 구절 백천 구절의 주문을 가지고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여, 거기서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에서 나아갈 길과 갖가지 괴로움의 다함을 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8유(有)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8유(有)를 받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몸으로 악한 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한 행을 저질러서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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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몸으로 악한 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한 행을 저질러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있어서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있고,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으로 악한 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한 행을 저지르고도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아난아, 만일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질러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蓋)15)를 끊지 않고서 마음이 바르게 4념처(念處)를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지 않고, 또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지 않고서 7각의(覺意)를 닦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고, 또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고서 7각의를 닦으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지 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지 않고, 또 7각의를 닦지 않고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고, 또 7각의를
  
15) 탐욕(貪欲) 진에(瞋恚) 수면(睡眠) 도거(掉擧) 의(疑) 다섯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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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닦고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지 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지 못하고, 7각의를 닦지 않고, 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괴로움의 끝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고, 7각의를 닦고, 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고서 괴로움의 끝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이런 비구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아는 비구이니라."
  존자 아난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아는 비구입니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은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합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다계(多界) 법계 감로계 다고(多鼓) 법고 감로고 법경(法鏡)인 4품(品)16)을 받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경을 일컬어 다계경(多界經)이라 이름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다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236자이다. 『중아함경 』 제47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8,330자이고, 「심품」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21,022자이다.]17)
  
  
  
16) 여기서 4품은 앞에서 지적한 계(界) 처(處) 연기(緣起) 처비처(處非處)를 가리킨다.
17) 제45권에서 제47권까지 「심품」의 경문 글자 수는 실제 20,022자인데 여기에서는 21,022자로 기록되어 있어 실제 숫자 보다 1,000자가 많다. 그것은 제46권에서 1,000자의 차이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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