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종문무고 / 도둑 집안에서 도둑을 만드는 비방

通達無我法者 2008. 2. 13. 21:44

종문무고

1. 도둑 집안에서 도둑을 만드는 비방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
오조법연스님이 하루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여기 나의 선은 무엇과 같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도둑 집안에서 도둑을 만드는 것과 같다.
도둑의 집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하루는 ‘아버님이 늙으신 뒤엔 우리 식구를 어떻게 보살펴야 할까. 일이라는 것을 배워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아버지에게 말하자 그의 아버지는 좋은 생각이라며 칭찬해 주었다. 그래서 하루는 밤에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어느 큰집에 가서 담장에 구멍을 뚫고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아버지는 궤짝을 열고 아들에게 그 속으로 들어가 옷과 돈을 가지고 나오라 하고서 그가 들어가자 궤짝문을 닫고는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그러고는 일부러 대청 마루를 두들겨 그 집안 사람들이 놀라 깨게 하고서 자기는 먼저 담구멍을 찾아 도망쳐 버렸다. 그 집 사람들은 곧 달려나와 불을 밝혀 살펴보고는 도적이 들어왔다가 이미 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편 그 아이는 궤짝 속에 갖혀서 ‘우리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였을까’ 하며 걱정에 빠져 있다가 문득 좋은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궤짝 속에서 쥐가 갉아먹는 소리를 내니 그 집에서는 하인을 보내 등불을 켜고 궤짝을 열어젖혔다. 궤짝이 열리는 순간 도적 아이는 불쑥 튀어올라 등불을 끄고는 하인을 밀치고 밖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그 집 사람들이 곧 뒤쫓아왔다. 가는 길에 그 아이는 갑자기 우물 하나를 발견하고서 큰 돌을 그 속으로 떨어뜨렸고, 사람들이 우물속을 기웃거리며 도둑을 찾고 있을 때 곧장 집으로 도망쳐 왔다.
집에 온 아이는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하였는지 까닭을 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면서, 어떻게 해서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모든 일을 낱낱이 이야기해 주자,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렇게 했으면 다 된 거라고 하였다.“

2. 귀신을 천도하다
담당 문준선사
늑담복심(潭福深)스님은 하동河東사람이며 진정眞淨스님의 법제자이다. 그의 휘하에 오시자悟侍者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연히 지객실에 있다가 장작 불꽃을 휘젓는 스님을 보고 갑자기 깨친 바가 있었다. 그가 곧장 방장실로 올라가 깨친 바를 알렸더니 스님은 그를 내쫓아 버렸다. 그 뒤로 정신을 잃고 연수당延壽堂 동편 변소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그런 뒤로 밤이 되면 늘 장경각이나 지객실, 변소에 나타나 짚신을 옮겨놓거나 물병을 건네주거나 하여 온 대중을 괴롭혔다.
담당湛堂스님이 절강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돌아와 수좌가 되었는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깊은 밤중에 일부러 연수당 동쪽 변소에 들어갔다. 그때 벽위에 걸린 등불이 희미해지더니 갑자기 꺼져 버리고 옷을 벗으려 하자 오시자가 물병을 가지고 왔다. 이에 담당스님은 아직은 필요가 없으니 옷을 벗을 때까지 기다리라 하고 옷을 벗은 뒤에 물병을 받아 놓았다. 그러고는 오시자가 목을 매어 죽은 곳에서 용변을 보니, 잠쉬 뒤에 또다시 똥닦는 막대를 가져왔다. 그가 변소를 나가려 할 때 담당스님이 병을 가지고가라고 불러세웠다. 오시자가 병을 받자마자 그를 붙잡아 손을 더듬어 보니 흐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단단한 것 같기도 하였다. 담당선사가 그에게 물었다.
“네가 오시자냐? 네가 그때에 지객실에 있다가 장작 불꽃을 휘젓는 스님을 보고 깨달았다는 바로 그 사람이냐? 참선하고 도를 배우는 일이란 오로지 생명의 본원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기 위함이다. 그러나 네가 장경전에서 단端수좌의 짚신을 옮겨놓은 일이 어찌 네가 그때에 깨달은 그것이 아니겠느냐? 또 네가 지객실에서 목침을 옮겨놓은 일이 어찌 네가 그때에 깨달은 그것이 아니겠느냐? 밤마다 이곳에 있다가 사람들에게 물병을 건네주는 것이 어찌 네가 그 때에 깨달은 그것이 아니겠느냐? 무슨 까닭에 갈 곳을 모르며, 어쩌자고 여기서 대중들을 괴롭히기만 하느냐? 내가 내일 대중들에게 권유하여 너를 위해 경전을 읽도록 하고 돈을 모아 죽을 마련하여 천도할 터이니, 너는 특별히 생사를 벗어나기를 구하고 이곳에 머물지 말라.”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힘껏 밀쳐 버렸더니 마치 기왓장과 돌탑이 무너지듯 와르르하는 소리가 났다. 그 뒤로 그의 자취가 끊겼지만, 담당스님의 한쪽 팔꿈치는 얼음처럼 차가워져 보름쯤 지나서야 회복되었다. 이는 귀신의 음기陰氣가 사람의 몸에 닿아 차가운 기운이 침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3. 참선할 마음이 있는 사람을 거두다
섭현귀성葉縣歸省 선사
섭현귀성화상은 성격이 독하고 담담하여 납자들이 어려워하였다. 부산법원(浮山法遠; 운문종)스님과 천의의회(天衣義懷; 운문종) 스님이 대중으로 있을 때 특별히 그를 찾아갔는데, 때마침 눈보라가 치는 차가운 날씨였다. 귀성화상은 그들을 욕하여 쫓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객승의 숙소까지 찾아와 찬물을 끼얹어 옷을 흠뻑 적셔 놓았다. 이에 다른 스님들은 모두 성을 내어 떠나갔지만, 법원스님과 의회스님만은 좌복을 정돈해 놓고 옷을 단정히 하고 다시 객사체에 앉아 있으려니 귀성스님이 또 찾아와 꾸짖었다.
“끝까지 떠나지 않는다면 나는 너희를 때리겠다.”
법원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말하였다.
“저희 두 사람은 스님의 선을 배우려고 수천 리 길을 찾아왔는데 어찌 물 한 바가지를 끼얹었다고 떠나가겠습니까? 설령 때려 죽인다고 해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귀성스님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너희 두 사람은 참선을 시킬 터이니 물러가서 방부를 들여라.”
이어서 법원스님에게 전좌典座소임을 맡아보게 하였다.
대중들이 그 메마른 생활을 힘들어 하고 있던 차에 귀성스님이 우연히 장원莊園으로 나갔다. 법원스님은 몰래 자물통 열쇠를 훔쳐내어 기름과 국수를 가져다가 오미죽五味粥을 만들었는데, 죽이 익을 무렵에 귀성스님이 갑자기 승당으로 돌아왔다. 죽을 다 먹은 뒤에 승당 밖에 앉아 전좌를 불러오라 명하자, 법원스님이 와서 먼저 말하였다.
“사실은 기름과 국수를 꺼내다가 죽을 끓였으니, 스님께서 벌을 내려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귀성스님은 그에게 훔쳐낸 물건의 값을 계산하라 하고 그의 의발衣鉢로 값을 쳐서 환수한 다음, 몽둥이로 삼십 대를 때리고 절에서 쫓아내 버렸다. 법원스님은 저자에 숙소를 마련하고 도반을 통하여 용서를 빌었지만 귀성스님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 살기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대중을 따라 입실만이라도 허락해 주십사 하고 또다시 간청하였지만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귀성스님이 거리에 나간 차에 여관 앞에 혼자 서 있는 법원 스님을 보고서, “이곳은 절의 사랑방이다. 네가 여기에서 오래 머물렀는데 자리세는 냈느냐?” 하고 그가 갚지 못한 돈을 계산하여 추징하도록 했다. 법원스님은 조금도 난색을 보이지 않고 저자에서 탁발하여 돈으로 바꾸어 갚았다.
귀성스님이 어느 날 또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법원스님이 탁발해 가지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는, 대중에게 “법원은 참으로 참선에 뜻이 있는 사람이다” 하고서 마침내 그를 불러들였다.

4. 세 종류의 스님
원통법수圓通法秀 선사
대혜스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원통법수선사가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서 말하였다.
‘눈이 내릴 때면 세 종류의 승려가 있다. 가장 우수한 승려는 승당 안에서 좌선을 하고, 중간쯤 되는 승려는 먹을 것을 갈아 뭇을 들고 시를 지으며, 가장 못난 승려는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고 떠든다.’ 내가 정미년(1127) 겨울 호구사虎丘寺에 있을 때 내 눈으로 이 세 종류의 중들을 똑똑히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선배 스님들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5. 주지하는 일
불감혜근佛鑑慧懃선사
불감혜근스님이 처음 서주西州 태평사太平寺에 주지해 달라는 청을 받고 오조五祖스님께 하직 인사를 하니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절의 주지는 자기를 위해 네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세력을 다 부려서는 안 되며, 둘째는 복을 다 누려서는 안 되며, 셋째는 규율을 다 시행해서는 안 되며, 넷째는 좋은 말을 다 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좋은 말을 모두 다 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쉽게 여기며, 규율을 다 시행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번거롭게 여길 것이다. 또 복을 다 누리면 반드시 인연이 외로워지며 세력을다 부리면 반드시 재화가 닥치게 된다.”
불감선사는 재배를 올리고 말씀을 가슴깊이 되새기며 물러났다. 그 뒤 불감선사가 영원(靈源惟淸)선사에게 하직 인사를 하자 영원선사가 말하였다.
“주지란 마땅히 주장자, 보따리, 삿갓을 방장실 벽 위에 걸어놓았다가 납자처럼 가볍게 떠나는 것이 좋다.”

6. 술, 고기로 부모님 제사를 모시다.
분양 무덕(汾陽無德)선사
분양 무덕선사가 하루는 대중에게 말하였다.
“간밤 꿈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와서 술과 고기, 그리고 종이돈(紙錢:망자천도때 쓰는 가짜 종이돈)을 찾으시더라. 그래서 속가의 풍속대로 제사를 받들어야겠다.”
그러고는 창고(庫堂)에서 이 일에 쓸 물건을 마련하여 위패를 모시고 세속에서처럼 술잔과 고기를 올리고 종이돈을 불살랐다.
제사를 마친 뒤 지사(知事:절의 사무를 맡는 소임)와 두수(頭首:선원대중의지휘를 맡는 소임)을 불러 모아 소반에 남아있는 음식을 나누어 주니 지사들은 이를 마다하였다. 결국 무덕스님 혼자서 가운데 앉아 태연하게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대중들은 술, 고기 먹는 중을 어떻게 스승으로 삼을 수 있겠냐며 걸망을 메고 떠나고 자명(慈明 : 石霜楚圓), 대우大愚 천대도(泉大道 : 芭蕉谷泉)등 예닐곱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무덕스님은 그 이튿날 법당에 올라 설법하였다.
“수많은 잡귀신 떼를 한상의 술, 고기와 두 뭉치 종이돈으로 모조리 쫓아 보냈다. ‘법화경’에도 ‘이 대중 속에는 가지와 잎은 없고 진짜 열매만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종문무고」는 송나라 대혜(大慧 宗杲:1089~1163)스님의 제자들이 스님 생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모아서 펴낸 어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