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록(僞山錄)

2-1. 상당

通達無我法者 2008. 2. 15. 17:52
 

2. 상  당









1.

스님께서 상당(上堂)하여 말씀하셨다.

"도를 닦는 사람의 마음은 거짓없이 곧고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없으며, 허망한 마음씨도 없어야 한다. 듣고 보는 모든 일상에 굽음이 없어야 하며, 그렇다고 눈을 감거나 귀를 막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마음이 경계에 끄달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옛부터 모든 성인들은 단지 물든 세속사를 치유하는 측면에서 말씀하셨을 뿐이니, 허다한 나쁜 지견과 망상 습기가 없으면, 맑고 고요한 가을물처럼 청정할 것이다. 맑고 잔잔하여 아무 할일도 없고 막힐 것도 없으리니, 그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부르기도 하고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라고도 한다."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단박 깨친 사람도 더 닦을 것이 있읍니까?"

"참으로 근본을 체득한 이라면 닦는다느니 닦을 것이 없다느

니 하는 것이 관점을 달리하는 말〔兩頭語〕임을 깨닫는 그 순간 스스로 안다. 지금 처음 발심한 사람이 인연 따라 한 생각에 본래 이치를 깨달았으나 비롯함이 없는 여러 겁의 습기를 당장 없애지는 못하므로 그것을 깨끗이 없애기 위해서는 현재의 업과 의식의 흐름을 다 없애야 하는데, 이것을 닦는다 하는 것이지 따로 닦게 하는 이치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법을 듣고 진리를 깨치는데 깊고 묘한 진리를 들으면 마음이 저절로 밝아져서 미혹한 경계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그렇긴 하나 백천가지의 묘한 이치로 세상을 휩쓴다 할지라도 나아가 자리 잡고 옷을 풀고 앉아서 스스로 살 꾀를 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실제 진리의 경지에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만행을 닦는 가운데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만일 단도직입으로 깨달아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허망한 생각이 모두 녹아지면 참되고 항상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진리와 현실이 둘이 아닌 여여한 부처이다."

2.

등은봉(鄧隱峯)스님이 위산에 도착하자마자 큰방으로 들어가 상판(上板) 위에 의발(衣鉢)을 풀어 놓았다. 스님은 사숙(師叔)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먼저 예의를 갖추어 큰방으로 내려가 인사를 하려 했다. 은봉스님은 스님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벌렁 눕더니 자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은 이를 보고 방장실로 그냥 되돌아가 버렸고 은봉스님도 떠나버렸다. 조금 있다가 스님께서 시자에게 물으셨다.

"사숙님은 아직 계시느냐?"

"이미 떠나셨습니다."

"가실 때에 무슨 말씀이 없으시더냐?"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말씀이 없었다고 하지 말라. 그 소리가 우뢰와 같았느니라."


3.

운암 담성(雲巖曇晟:782~841)스님이 위산에 찾아왔을 때 스님께서 물으셨다.

"소문을 듣자니 스님(운암)은 약산 유엄(藥山惟儼:745~828)스님 회상에 살 때 사자를 데리고 놀았다고 하던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데리고 놀다가 그냥 둘 때도 있었는가?"

"데리고 놀고 싶으면 데리고 놀고, 그냥 두고 싶으면 그냥 두었습니다."

"그냥 둘 때는 사자가 어느 곳에 있던가?"

"그냥 두었지요. 그냥 두었습니다."

* 법창 의우(法昌倚遇:1005~1081)스님은 말하였다.

"훌륭한 사자였으나 머리만 있었지 꼬리는 없었다. 내가 당시에 위산스님이 `그냥 둘 때에는 사자가 어디에 있던가?'라고 묻는 것을 보았더라면 땅에 웅크린 금빛사자를 내보내 위산스님이 몸을


숨길 곳이 없게 하였으리라."

4.

스님께서 운암스님에게 물으셨다.

"보리(菩提)는 어디에 자리하는가?"

"무위(無爲)에 자리합니다."

운암스님이 똑같이 묻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빈 것에 자리한다."

또 도오 원지(道吾圓智:769~835)스님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앉으면 앉는 데 있고 누우면 눕는 데 있소. 그런데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는 사람이 있으니 무엇이겠소? 빨리 말하시오. 빨리 말해."

그대는 여기서 그만두었다.

5.

스님께서 운암스님에게 물으셨다.

"스님은 약산 유엄스님 회상에서 오랫동안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 약산스님의 거룩한 모습인가?"

"열반에 든 뒤에도 있습니다."

"열반의 뒤에 있는 것이 무엇인데?"

"물에도 젖지 않습니다."

운암스님이 스님에게 똑같이 물었다.

"백장스님의 거룩한 모습은 어떻습니까?"

"당당하고 밝다. 소리가 생기기 전이라 소리가 아니며 물질이 끝난 뒤라 물질도 아니니, 마치 무쇠소 등에 붙은 모기가 침을 꽂을 곳이 없는 것과 같다."

6.

위산스님이 도오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딜 갔다 오는 길이오?"

"환자를 보살피고 오는 길이요."

"몇 사람이나 병이 들었읍니까?"

"병든 사람도 있고, 병들지 않은 사람도 있었소."

"병들지 않은 사람은 지두타(智頭陀)가 아닙니까?"

"병이 들었거나 병들지 않았거나 양쪽 다 `그 일'과는 관계가 없으니, 빨리 말하시오. 빨리 말해."

"말을 한다 해도 그것과는 관계없소."

7.

덕산 선감(德山宣鑑:780~865)스님이 찾아와서 좌복을 끼고 법당에 올라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락가락하더니 방장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스님께서는 앉은 채로 뒤돌아보시지도 않자 덕산스님은 말하였다.

"아무도 없구나! 아무도 없어!"

그리고는 그냥 나가려고 했다.

* 설두 중현(雪重顯)스님이 착어(着語:本則 끝에 평을 붙여 자기의 宗眼을 표시하는 짧은 싯구)하였다. "속셈을 간파해 버렸군"


그러다 문앞에 와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그렇긴 해도 경솔해서는 안되지" 하고는 이윽고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들어가 인사를 하려 했다. 문지방을 들어서자마자 좌구(坐具)를 들고 "스님!"하니 스님이 불자(拂子)를 잡으려는데, 덕산스님은 별안간 "할"하고는 소맷자락을 날리며 그냥 나가버렸다.

* 설두스님은 "간파해 버렸군"하고 착어하였다.

그날 스님께서는 느지막하게 수좌(首座)에게 물으셨다.

"오늘 새로 찾아온 사람이 아직 있느냐?"

"그때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 나가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뒷날 높은 산봉우리에 초암(草庵)을 짓고 앉아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을 꾸짖고 호령하게 될 것이다."

* 설두스님은 "설상가상이군"하였고,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덕산스님은 남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놈 같고, 위산스님도 도적이 간 뒤에 활을 당겼다" 하였다.


8.

석상(石霜)스님이 위산에 이르러 미두(米頭:冶座 및에서 쌀을 관장하는 직책) 소임을 맡게 되었다. 하루는 키로 쌀을 까부르고 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시주물(施主物)을 흘려버리지 말게."

"흘려버리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땅에서 쌀 한 톨을 주어들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흘려버리지 않는다고 말하고서 이건 뭔가?"

석상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이 한 톨의 곡식을 가볍게 여기지 말게. 모든 곡식알이 다 이 한 알에서 나온다네."

"모든 곡식알이 이 한 알에서 나온다면, 이 한 알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스님께서는 크게 껄껄 웃으시며 방장실로 돌아갔다.


9.

협산 선회(夾山善會:805~881)스님이 위산에 머무르면서 전좌(冶座) 소임을 맡아 보았다. 스님께서 협산스님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나물을 먹지?"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은 봄입니다."

"공부 잘 하는구나."

"용이 봉황의 둥우리에서 잠을 잡니다."

10.

앙산 혜적(仰山慧寂:803~887)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위산스님은 등롱(燈籠:법당 앞에 세워둔 장엄구의 일종)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셨다.

"등롱이 아주 좋구먼."

"그저 `이것인' 것만은 아니지 않읍니까?"

"그 `이것'이라는 게 무엇인가?"

"아주 좋은 등롱 말입니다."

"과연 모르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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