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록(僞山錄)

2-4. 상당

通達無我法者 2008. 2. 15. 17:56
 

31.

스님이 졸고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문안을 드리자 스님께선 돌려 앉으시더니 벽을 향했다.

"스님, 어찌 그러십니까?"

하고 묻자 스님이 일어나시더니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그대가 해몽해 주게나."

앙산스님이 물 한 대야를 가지고 스님의 얼굴을 씻겨드렸다. 조금 있다가 향엄스님이 와서 문안을 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혜적이 나를 위해서 해몽을 해주었다네. 그러니 그대도 해몽을 해보게."

향엄스님이 차 한 잔을 다려다 바치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견해가 지혜제일의 사리불보다 더 훌륭하구나."

* 장산 근스님은 말하였다.

꿈 속에서 꿈 이야기를 하니

위산은 참으로 인정할 만하다

묘용(妙用)과 신통(神通)은

모름지기 두 사람에게 돌리게나

차를 올리고 세숫물 떠다드려

고금에 빛나도다

늙어져서 마음 외로우니

아이들을 가련하게 아끼네

납승의 문하에서

한 사람은 문 밖에 있고

한 사람은 문 안에 있는데

다시 한 사람 있어

이 넓은 세상에도 감출 수 없고

불안(佛眼)으로도 엿보지 못하네"

남당 원정스님은 말하였다.

무명초(無明草)를 헤쳐 본지풍광(本地風光) 바라보고

고봉(孤峯)에 홀로 잠자며

줄 없는 거문고 뜯고

남이 없는〔無生〕 곡조를 노래하네

위산, 앙산, 향엄이여!

마치 솥의 세 발과 같아라

중생을 만나 털끝만한 힘도 쓰지 않고

천백억 세계에 마음대로 분신(¿身)하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스님은 다만 불자(拂子)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 일이 있은 뒤 그 스님은 상시(常侍) 벼슬을 하는 왕경초(王敬初)거사를 만났는데 왕거사는 이렇게 물었다.

"위산스님께서는 요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 스님이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더니 왕거사가 또 말하였다.


"그 쪽 문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건〔色〕을 통해 마음을 밝히고 사물을 가지고 이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닐 것입니다. 스님은 속히 돌아가야 좋을 겁니다. 제가 감히 편지 한 장을 드릴 터이니 위산스님께 전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편지를 받아들고 되돌아가서 스님께 올렸다. 편지를 열어 보았더니, 일원상(一圓相)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날일자〔日〕가 써 있었는데 스님은 말씀하셨다.

"천리 밖에 나의 심중을 헤아리는 자가 있을 줄이야 뉘라서 알았으랴."

앙산스님이 뫼시고 있다가 그것에 대해 말하였다.

"비록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속인일 뿐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앙산스님이 즉시 일원상을 그리고 그 가운데 날일자〔日〕를 썼다가 발로 쓱쓱 문질러 버렸다. 그러자 스님은 크게 웃으셨다.

33.

스님이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여쭈었다.

"스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선사(先師)의 법도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한 끼니는 죽, 한 끼니는 밥을 먹었다고 하게."

"앞에 있는 그 사람이 그것을 긍정하지 않는다면 어찌합니까?"

"그대야말로 본색종장(本色宗翌)이로군."

앙산스님이 곧바로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이 소식을 잘못 들먹거리지 말게."

34.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종일토록 그대와 대화해서 무슨 일을 했을까?"

앙산스님이 공중에 한 획을 그리자, 스님께서는 "내가 아니었더라면 끝내 그대에게 속았을 걸세" 하셨다.

35.

앙산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수많은 경계가 한꺼번에 닥치면 어찌합니까?"

"푸른 것은 누런 것이 아니고, 긴 것은 짧은 것이 아니다. 모든 법은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므로 나의 일에는 관계하질 않는다."

앙산스님은 스님께 절을 올렸다.

36.

장을 담그면서 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소금물을 넣어야 할까?"

"저는 모르겠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알겠는데."


"소금물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모르겠습니다."

"네가 모른다면 나도 답변하지 않겠다."

그날 저녁에 스님께서 다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오늘의 인연을 그대는 어떻게 간직하려는가?"

"묻는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지금 그대에게 묻는다. 어쩔텐가?"

"귀는 어둡고 눈은 침침하여 듣고 보는 것이 분명하질 못합니다."

"그 누가 문답을 하더라도 그대의 이 말보다 뛰어나지는 못하리라."

앙산스님이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혜적아, 오늘은 아침 저녁으로 잃은 것이 적지 않구나."

37.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홀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하라. 다른 사람은 그대가 깨달은 깊이를 모르니, 그대는 실제로 이해한 바를 내게 보여다오."

"제가 보건대 이 자리에는 부처를 이루었다〔圓位〕할 것도 없으며 한 물건, 한 깨달음도 스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부처를 이루었다 할 것도 없는 자리는 원래 그대가 알음알이를 내는 자리로서 마음〔心〕과 경계〔境〕를 아직 여의치 못한 것이다."

"부처도 없는데 무슨 법이 있으며, 무엇으로 경계를 짓습니까?"

"조금 전에 그대가 그런 알음알이를 냈었지?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다 경계다 하는 것이 모두 있어 주관〔我〕과 객관〔我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라. 원래 그대에겐 알음알이가 있었는데 나에게 내놓을 알음알이가 없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대의 신위(信位)1)는 환히 나타났다고 인정하겠지만, 인위(人位)1)는 숨어 있느니라."

38.

스님께서 앙산스님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곧 손가락으로 땅에다 한 획을 긋자, 앙산스님은 손으로 목 아래에 한 획 긋고, 다시 자기 귀를 잡아 서너번 털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리셨다.

39.

스님께서 하루는 향엄스님과 앙산스님이 떡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때도 백장스님께서 이 도리를 직접 체득하셨다네."


앙산스님과 향엄스님이 서로 돌아보며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 말씀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 대답할 수 있지."

앙산스님이 말하였다.

"누굽니까?"

스님께서는 물빛소〔水牛〕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말하라, 말해 보아라."

그러자 앙산스님은 풀 한 묶음을 가져오고 향엄스님은 물 한 통을 가져와 물빛소 앞에 놓았다. 물빛소가 먹으려 하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렇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

두 스님이 함께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때는 밝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둡기도 하다."

40.

스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에게 정어(呈語)1)*를 해보라고 하시면서 "소리나 물질〔聲色〕 밖에서 나와 만나보자"고 하셨다.

이때에 유주(幽州)의 감홍(鑑弘)상좌가 정어하기를, "말씀 올리는 것이야 사양치 않지만 눈 없는 사람이 누굽니까?" 하자 스님께서는 긍정하지 않으셨다.

앙산스님은 세 차례 말씀을 올렸는데〔呈語〕, 첫째는 "본다 해도 소리나 물질〔聲色〕에 걸리고 보지 않는다 해도 걸립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미세하기는 새털 끝 같고 차가웁기는 한겨울의 서릿발과 같다"고 하셨다. 두번째는 "성색의 밖에서 누가 만나려고 합니까?"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방외(方外:세속을 떠나 도를 닦는)의 도리에 막힌 성문(聲聞)일 뿐이다" 하셨으며, 세번째는 "두 거울이 서로 비출 때 그 가운데 아무런 물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스님께서는 "이 말이 맞다" 하셨다.

앙산스님이 다시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백장 노스님의 처소에서 어떻게 정어하셨읍니까?"

"나는 백장스님의 처소에서 정어(呈語)하기를 `마치 수많은 밝은 거울이 상(像)을 비추면서 빛이 서로를 비추는 것처럼,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서로를 조금도 의지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앙산스님은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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