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禪要)

제이십사편

通達無我法者 2008. 2. 18. 17:46

대중에게 보이는 말씀 (제이십사편)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대중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또한 보았느냐.

사람 사람이 눈속에 눈동자가 있는지라 이 눈먼 놈이 아니니 결정코 보았을 것이다.

주장자로써 세워 한번 내려쳐서 말씀하시기를 또한 들었느냐.

사람사람이 가죽주머니 안에 피가 있는 지라 죽은 놈이 아니니 결정코 들었을 것이다.

이미 보고 이미 들었을진대 이것이 무엇인고 주장자로써 원을 그려보이시고

주장자를 들어 옆으로 보이시고 보고 듣는 것을 아직 그만두고

다만 저 눈, 귀, 코, 혀, 몸, 뜻이 갖추어지기 전과 소리와 물질이 드러나지 않았을 즈음에

듣는 바가 없는 들음과 보는 바가 없이 봄은 정히 이러한 때에 필경 무엇으로써 증험하는고.

 

주장자로써 원상을 그려보이고 주장자를 세워 보이시고

내가 이제 너희로 더불어 이일을 보림 하노니 마침내 헛되지 않으리라.

주장자로써 일원상을 그려 보이시고

그안에 사각을 그려 보이시고 삼십년후에 간절히 망령되이 소식을 잘못 통함을 꺼릴지어다.

주장자를 의지하고 자리에서 내리시다.

 

만일 이 일을 의논할진대 다만 공부하는 사람이 분명히 간절한 마음이 있음을 요구할지니

겨우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참된 의심이 문득 일어나리라.

참된 의심이 일어날 때에 점차로 닦아 들어가는 소승교나 대승교의 원돈문에 속하지 않고

당장에 문득 능히 번뇌 망상을 한꺼번에 쉬어서 혼침과 산란이 물리쳐 없어지며

한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서 앞생각 뒤생각이 끊어지리니,

 

겨우 이러한 시절에 이르면 문을 일어서 호왁에 떨어짐을 틀림없이 취하려니와

만일 이 화두 의심이 간절하지 못하여 참된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진대

비록 네가 앉아서 방석을 백천만개를 뚫어서 떨어지게 하더라도

번뇌 망상의 업식에 의지하여 해가 한나절인 밝은 낮에

한밤중 삼경에 쳐야 하는 종을 치게 되리라.

 

번뇌가 일어나는 그 자리가 본래 마음을 여의지 않고

본래 마음도 다시 도리어 번뇌 망상이 일어남이니

바로 모름지기 거친 번뇌를 둘 다 항복받고 사람과 법이라는 관념을 다 항복받아야

출가하여 참선하는 스님의 문중에 비로소 말을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격이 있으리라.

 

대중들아 이미 큰 번뇌와 미세한 번뇌를 둘 다 항복받고

사람과 법의 일체관념을 초월하였을진대 한가지 말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다시 누구인고?

속히 이르고 속히 일러보아라.

만일 이 일을 의논할진대 마치 만길이나 되는 높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이하여

한걸음 한걸음을 끌어 산의 정상에 이르되

오직 두어 걸음이 절벽에서 더 이상 더듬거나 밝을 데가 끊어짐과 같음이니,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이 한낱 순수한 강철로 쳐 만든 사람이라야

목숨을 버리고 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돌아보며 왼쪽으로 돌아보며

보아 오고 보아 감에 화두 타파하고야 말겠다는 기약을 세워서

비록 천번을 태어나고 만겁을 지내는 것과 만가지 어려움,

천가지 번뇌와 장애를 만나더라도 화두를 의심하는 이 마음

화두를 의심하는 이 뜻은 더욱 굳어지고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더욱 강하려니와

만일에 화두를 의심하는 것이 진실하지 못한

되어가는 대로 행동하는 무리일진대

어찌 절벽의 벼랑을 바라보고 물러가는 것에 그칠 뿐이리오.

틀림없이 바람소리만 듣고도 물러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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