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106. 살터를 꿈속에서 미리보다 / 천동 각 (天童 覺) 선사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7:05
 

106. 살터를 꿈속에서 미리보다 / 천동 각 (天童 覺) 선사



굉지 각 (宏智正覺:1091~1157) 선사는 습주 (鈒州) 사람이다. 행각을 나서기 전에 미리 천

동사 (天童寺) 의 경관을 꿈꾸고는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ꡒ우거진 솔밭 길, 깊숙한 문에 갔을 때는 희미한 달, 바야흐로 황혼이었네."

건염 (建炎:1127~1130)  연간에 장노사 (長蘆寺)  주지를 그만두고 보타암 (寶陀巖) 의 진

헐 (眞歇淸了) 선사를 찾아가는 길에 천동사에 도착해 보니 그 경관이 꿈에서 본 것과 똑같

았다. 그리하여 관청에서 천동사 주지를 맡아 달라고 간곡히 청했으나 굳게 거절하였는데,

뒤에 납자들이 어깨를 비빌 정도로 법좌를 찾아오자 힘써 받아들였다. 30년을 주지하면서

불법을 전하는 일 밖에도 살림살이를 새로 잘 갖추어 항상 천여 명의 대중이 살았다. 공양

거리와 필수품이 넉넉하여 가장 부자 절이 되니 납자들은 편안하게 도에만 힘쓸 수 있었다.

선사가 한번은 대중을 위해 걸식을 나갔다. 오월 (吳越) 지방 사람들은 그의 교화를 독실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돈과 베 등의 시주가 구하지 않아도 모여드니 선사가 여러 시주에게 말

하였다.

ꡒ내가 시주를 받는 것은 그대들의 인색한 마음을 깨주려 함이니 나에게만 시주할 것이 아

니라 뒷날 작은 절에서 스님이 찾아오면 거기에 시주하기 바란다. 혹은 궁핍한 절을 보거나

노약자 등 딱한 백성을 보거든 옷과 돈을 시주하여 그들을 기쁘게 해 주어라." 선사는 물건

을 쌓아두는 일이 없었고 쓰다가 떨어지면 그대로 지냈다.

철괴 (哲魁) 라는 습주 (鈒州) 스님이 있었는데 꼿꼿한 사람이었다. 고향이 어디라고 말하지

않고 선사의 회하에 묻혀 지냈는데, 1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가 굉지선사의 고향사람

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굉지선사는 기쁘게 찾아가서, 고향사람인데 너무 인정을 끊고

지내는 것이 아니냐며 그를 방장실로 불러들이려 하였다. 그러자 철괴스님은 사양하며 ꡒ내

일도 아직 가리지 못했는데 어찌 고향 예법을 논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하고는 주장자를

끌고 떠나버리니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그는 그길로 예전에 진헐스님이 살던 보타암을 찾

아가 좌선을 하며 지냈다. 한달 남짓 지나 임종하게 되자 대중을 불러 설법을 하고는 세상

을 떠났는데, 다비를 하니 사리가 무수히 나왔다. 「설총지기사 (雪 誌其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