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宗門武庫)

74. 장무진거사의 약전 (略傳)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09:25
 

74. 장무진거사의 약전 (略傳)



승상 장무진 (張無盡) 은 19세에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는 도중에 상씨 (相氏)  성을 가진 사람 집에 묵게 되었다. 상씨 집에서는 전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내일 정승을 맞으라고 일러 주기에 첫새벽부터 방을 깨끗이 치워두고 기다렸다. 해질녘이 되어서야 누런 도복 (道服) 을 입은 가난한 선비가 찾아왔는데 그가 곧 장무진이었다.

상씨는 예의를 갖추어 맞이한 후 그에게 물었다.

ꡒ서생 〔秀才〕 은 어디로 가는 길이오?ꡓ

장무진이 사실대로 말하자 상씨가 말하였다.

ꡒ서생이 아직 부인을 맞지 않았다면 내 딸을 그대에게 보내 집청소하는 일이나 받들게 하겠소.ꡓ

무진이 사양하였으나 상씨는 이번 걸음에 급제를 하지 못한다 해도 이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그후 과연 급제하여 그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처음 주부 (主簿:문서․장부 담당관) 로 임명되었는데 사찰에 들어가 잘 정돈된 장경과 범협 (梵夾:작은 불교 문서들) 을 보고, 우리 공자의 가르침이 오랑캐의 책만큼도 사람들의 숭앙을 받지 못하는구나 하고 불쾌히 여겼다.

밤새껏 서원 (書院) 에 앉아 먹을 갈고 붓을 빨면서 종이 위에 기대어 긴 한숨을 쉬며 야반 삼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자 부인 상씨가 남편을 부르며 말하였다.

ꡒ나리께서는 밤이 깊은데 어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까?ꡓ

무진이 조금 전에 느낀 것을 말하고서 ꡐ무불론 (無佛論)ꡑ을 지으려 한다고 하니 상씨가 응수하였다.

ꡒ이미 부처가 없다 〔無佛〕 해놓고 무슨 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ꡐ유불론 (有佛論) ꡑ을 지어야 옳겠습니다.ꡒ

무진은 그 말을 의아해 하다가 결국은 그만 두었다. 그가 동료의 집을 방문했을 때 불감 (佛鑑)  앞에 놓인 경전을 보고서 무슨 책이냐고 물으니「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脛) 」이라고 하였다. 그는 손에 닿는대로 책을 펼쳐 보다가 ꡒ이 병은 지대 (地大) 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대를 떠난 것도 아니다ꡓ는 구절에서 이렇게 감탄하였다.

ꡒ오랑캐의 말도 이럴 수 있는가!ꡓ

그리고는 이 책이 몇 권이나 되느냐고 물으니 동료는 세 권인데 빌려가도 좋다고 하였다. 집에 돌아와 그 책을 읽고 있는데 부인 상씨가 물었다.

ꡒ무슨 책을 보십니까?ꡓ

ꡒ유마힐이 설법한 경이요.ꡓ

ꡒ이 경을 숙독한 후 ꡐ무불론 (無佛論)ꡑ을 지으십시요.ꡒ

무진은 두려워하면서 부인의 말을 남다르게 생각하였다. 이를 계기로 불법에 깊은 신심이 생겼고 조사의 도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후일 강서 (江西)  조운사 (曹運使) 가 되어 조사들의 법석을 두루 참방하면서 맨 먼저 동림사의 조각 총 (照覺常總:昭覺常總) 선사를 찾아뵈었다. 상총선사는 그의 경지를 따져보아 자기와 부합되자 마침내 그를 인가하면서 말하였다.

ꡒ나에게 법을 얻은 제자가 하나 있는데 옥계사 (玉溪寺)  주지 자고경 (慈古鏡:紹慈) 선사이다. 그도 함께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다.ꡓ

그후 무진은 다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다스리다가 분령 (分寧) 지방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의 여러 선사들이 마중나왔으나 무진은 그곳에 도착하자 먼저 옥계사의 소자 (紹慈) 선사에게 예의를 표하고 그 다음에 여러 절의 선사와 인사한 뒤 맨 마지막으로 도솔 종열 (兜率從悅) 선사를 방문하였다.

종열선사는 왜소한 사람이었으나 장무진은 일찍이 공덕장 (德莊) 에게 말을 들었으므로 그를 만나자 곧 이렇게 말하였다.

ꡒ스님께서는 문장에 능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ꡓ

종열선사는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ꡒ조운사는 한쪽 눈 〔一隻眼〕 을 잃었소. 나는 임제 (臨濟) 의 9대손인데 조운사와 마주 앉아 문장을 논한다는 것은 마치 조운사가 나와 마주앉아 선을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ꡓ

그러나 장무진이 그의 말을 수긍하지 않고 어거지로 손가락을 꼽으며, 이렇게 해서 9대가 되는거냐고 하면서 또다시 물었다.

ꡒ옥계사는 여기에서 얼마나 됩니까?ꡓ

ꡒ30리.ꡓ

ꡒ도솔사는요?ꡓ

종열선사는 소리를 지르면서 5리 된다고 하였다.

무진은 이날 밤에 도솔사에 갔다. 그 전날 밤 종열선사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해를 손에 움켜잡는 꿈을 꾸었는데 이 이야기를 수좌에게 전하면서 말하였다.

ꡒ태양 〔日輪〕 이란 움직이며 돈다는 뜻이다. 듣자하니 장 (張) 조운사가 머지않아 이곳을 지나간다 하니 내가 그를 만나 큰 송곳으로 찔러 줄 것이다. 만일 그가 수긍하여 머리를 돌린다 〔回顧〕면 우리 불문에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ꡓ

수좌가 말하였다.

ꡒ요즘의 벼슬아치들이란 떠받들어 주는 데에 익숙한 사람들인데 혹시 잘못되어 엉뚱한 일이 생겨날까 두렵습니다.ꡓ

ꡒ골치거리를 우리 절에서 물리치기만 하면 되니, 별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ꡓ

무진거사가 종열선사와 이야기하던 차에 동림사 상총선사를 칭찬하였으나 종열선사가 그를 수긍하지 않자 절 뒤의 의폭헌 (擬瀑軒) 에 시를 써 붙였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여산에서 낙처 (落處) 를 찾지 않고

코끼리왕의 코가 하늘까지 닿았네.

不向山尋落處  象王鼻孔漫遼天



이 시의 뜻은 동림선사를 인정하지 않음을 비난한 것이다. 무진이 슬슬 종문의 일에 대하여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종열선사가 말하였다.

ꡒ오늘 조운사를 모시고 인사하였습니다. 피곤하실 터이니 편히 주무십시오.ꡓ

밤이 깊어지자 종열선사는 다시 일어나 무진거사를 찾아와 종문의 일을 논하였다. 향을 사르고 시방제불을 청하여 증명해주십사 하고는 말하였다.

ꡒ동림스님이 이미 조운사를 인가했다고 하는데 조운사께서는 불조의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나는 곳이 있습니까?ꡓ

ꡒ있소.ꡓ

ꡒ무슨 말에 의심이 납니까?ꡓ

ꡒ향엄 (香嚴:?~898) 의 독각송 (獨脚頌) *과 덕산 (德山) 의 탁발 (托鉢) 인연*입니다.ꡓ

ꡒ여기에 의심이 있다면 그 나머지에도 어찌 의심이 없겠소. 말후구 (末後句) 란 있는 것인지 없는지나 말해보시오.ꡓ

ꡒ있소.ꡓ

종열선사는 크게 웃고 방장실로 돌아와 문을 닫아버렸다.

무진은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오경 (五更) 에 침상에서 내려오면서 책상을 걷어차 버렸는데 갑자기 느낀 바 있어 송을 지었다.



북도 치지 않고 종도 치지 않았는데 발우 들고 돌아오니

암두 (?~886) 스님 한 말씀 우뢰같았네

과연 3년밖에 못 살았으니

이는 그에게서 수기받은 것이 아니겠나.

鼓寂鍾沈托鉢回  巖頭一拶語如雷

果然祇得三年活  莫是遭他受記來



드디어 방장실의 문을 두들기며 말하였다.

ꡒ내가 도적을 잡았습니다!ꡓ

종열스님이 말했다.

ꡒ장물은 어디에 있느냐?ꡓ

무진이 말을 못하자 종열선사가 말하였다.

ꡒ조운사는 가시오. 내일 다시 봅시다.ꡓ

그 이튿날 무진이 간밤에 지은 송을 종열선사에게 바치자 선사는 무진에게 말하였다.

ꡒ참선을 하여도 명근 (命根) 이 끊어지지 않은 채 말을 따라 이해를 내면 그렇게 말하게 되는 법이다. 깊이 깨치기는 했지만 지극히 미세한 곳에 이르러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울 안으로 떨어지게 한다.ꡓ

종열선사는 그 후 송을 지어 무진의 깨침을 증명해 주었다.



한가히 걷는 발길

걸음걸음 모두 그럴 뿐

비록 성색 속에 살아도

어찌 ꡐ유무ꡑ에 얽매이겠나



한마음은 차이가 없고

만법 또한 다르지 않으니

바탕과 쓰임을 나누지 말고

곱고 거침을 가리지 말라



막힘없이 기변에 응하고

얽매임 없이 사물에 응하니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 다하여

범인, 성인이 구분 없네



누가 얻고 누가 잃었으며

무엇을 가까이 하고 무엇을 멀리하랴

머리 뽑아 꼬리 만들고

가득찬 것을 비었다고 하네



마구니 경계에서 몸을 뒤집고

삿된 길에서 발길을 바꾸되

역순이 아님을 분명히 알면

공부를 할 것이 없으리.

等閑行處  步步皆如

寥居聲色  寧滯有無



一心靡異  萬法非殊

休分體用  莫擇精麤



臨機不礙  應物不拘

是非情盡  凡聖皆除



誰得誰失  何親何疎

拈頭作尾  指實爲虛



凶身魔界  轉脚邪塗

了非逆順  不鮎工夫



무진거사는 종열선사를 맞이하여 건창 (建昌) 에 이르는 동안 낱낱이 살펴보고 게송 열 수를 지어 그 일을 서술하였는데 종열선사도 열 수의 송을 지어 답하였다. 때는 원우 (元祐)  8년 (1093)  8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