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88. 영선인(寧禪人)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5:00
 





88. 영선인(寧禪人)에게 주는 글



생사의 변화는 역시 큰 것이다. 납승이라면 보신, 화신불의 머리에 앉아 털끝만큼의 알음알이를 세우지 않은 채 그대로 투철히 벗어나야 한다. 만 년이 일념이고 일념이 만 년이어서 사사생생(死死生生) 생생사사(生生死死)를 한 덩어리로 만들어 털끝만큼도 기멸과 윤회를 보지 않아야 한다. 그 때문에 아무리 모든 성인이 나온다 해도 결국은 그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것뿐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 삼아 묻겠는데, 그 자체는 어떤 형체를 짓고 있느냐? 공겁(空劫) 이전도 '그것'으로 말미암아서 이루어졌고 화장(華藏)세계의 부당왕찰(浮幢王刹)이 다하고 미래가 다할 때까지 모두 '그것'을 의지해 생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상근기의 영리한 지혜라면 무시겁부터 내려오는 허망함과 물듦,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망정을 벗어버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맹렬히 살펴 곧바로 꿰뚫으리라. 의지하는 모든 견문각지(見問覺知)와 색성미촉(色聲味觸)을 마치 활활 타는 용광로에 한 점의 눈을 떨구듯, 곧바로 씻은 듯 깨끗하게 버린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진기한 보배를 그 가운데서 운반해 내오며, 가없는 훌륭한 모습이 그 가운데서 환하게 나타난다. 본래의 마음엔 애초에 너와 나, 옳고 그름, 이기고 짐, 좋음과 싫음이 없다. 이제 본래와 둘이 아니고 다를 것이 없는데 다시 무엇을 생사라 하겠으며, 무엇을 크고 작음이라 하겠는가. 그윽하고 우뚝히 고요하여 완전한 안온함을 얻어야만 원래부터 한번도 잃지 않았고 부족하지도 않았음을 알리라.



듣지도 못하였느냐. 석두스님이 약산스님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앉아 있는 게로군.”

“그냥 앉아 있다면 하는 거지요.”

“그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거냐?”

“모든 성인도 알지 못합니다.”

석두스님이 이리하여 게송을 지었다.



이제껏 함께 있어도 이름을 모르고

임운등등히 서로 함께 그렇게 갈 뿐이네

예로부터 훌륭한 사람들도 몰랐다는데

경홀한 범부가 어찌 밝히랴.



從來共住不知名 任運相將只?行

自古上賢尤不識 造次凡流豈可明



스승과 제자가 이렇게 실천한 모습을 살펴보라. 그 어찌 본분사라 하지 않겠느냐. 참당하여 묻기를 도모했다면 그분들을 추모하여 옛 가풍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만 자기가 행각하는 일을 결판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