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91. 영상인(英上人)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5:03
 





91. 영상인(英上人)에게 주는 글



도의 현묘함은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쉽다 하였는데, 이 말은 진실하다 하겠다. 그 근원을 통달하지 못한 자는 말한다. “이는 지극히 깊고 그윽하여 공겁 이전, 혼돈(混沌)이 나뉘지 않고 천지가 성립하기 전에 있었다. 아득하고 황홀하여 궁구하지 못하며 따져 묻지를 못한다. 오직 성인만이 깨달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말은 알아도 그 참뜻은 모르는데 어떻게 이 일을 말로 하겠는가”라고. 이는 사람마다 자기에게 원만히 이루어져 매일 작용하는 가운데서 적나라하게 모든 일에 다 관계되고 어디에나 두루하여, 아무리 어두운 곳도 밝히지 않음이 없으며 한시라도 작용하지 않음이 없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다만 오랫동안 등지고 치달린 지 오래되어, 억지로 가지와 마디를 내고 스스로를 믿으려 하지 않고 한결같이 밖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에 찾을수록 더욱 멀어진다.



그러므로 달마스님은 서쪽에서 와서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고만 하였을 뿐이다. 이 마음이 바로 평상하여 하릴없는 마음이다.

천기(天機)는 스스로 펼쳐져 있어서 구속과 집착이 없고 주착함이 없이 천지와 덕이 같고, 일월은 합당히 밝으며 귀신과 길흉을 같이 하여, 털끝만큼도 알음알이의 가시를 용납하지 않으니, 오직 호탕하고 크게 통달하여, 무심하여 함이 없고 하릴없는 데 계합하였다.



만약 털끝이나 겨자씨만큼이라도 주관과 객관, 나와 남을 구별하면 즉시 막혀서 영원히 뚫지 못하리라. 이는 이른바 “무명(無明)의 참 성품이 부처의 성품이며, 허깨비같이 부질없는 몸이 바로 법신이다”한 것이다. 가령 무명의 껍데기 속에서 참된 성품을 증득한다면 밥숟갈 드는 사이에 무명 그대로를 한꺼번에 발휘하게 되며, 또 허깨비 같은 부질없는 몸 그대로가 빛나게 사무치리라.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무명의 부질없는 몸속에서 인위적으로 견해를 세우는 것인데, 그러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이미 이 정체를 꿰뚫고 나면 무명의 부질없는 몸 밖에 따로 밝혀낼 것이 없다. 일체의 모든 존재와 산하대지와 명암색공(明暗色空)과 4성6범(四聖六凡)이 모두 바깥 물건이 아니다. 진실하게 살피기만 하면 하루 종일 온 세상 어디에도 밖이 없으니, 어느 곳인들 자기의 몸과 마음을 놓아버릴 처소가 아니랴.



듣지도 못하였느냐. “번뇌[塵勞]의 친구가 바로 여래의 종자이니 몸의 실상과 부처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고 했던 옛분의 말씀을. 그런 뒤에 세간법과 불법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무심하게 밥 먹고 옷 입는 것이 바로 대기대용이 된다.



그렇다면 방과 할을 하는 등 모든 작위와 기연, 경계 일들을 어찌 의심하랴. 만약 이것을 통달하면 바로 자기 자신 속에서 지극히 쉽고 간단한 도의 묘(妙)와 한량없는 법문이 일시에 열린다.



그리하여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 수승하고 오묘한 과보를 성취하리니,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