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직설(眞心直說)

8. 참마음을 닦는 네 가지 위의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7:17
 








8. 참마음을 닦는 네 가지 위의



[질문] 앞에서 망심 쉬는 법을 말씀하셨는데. 다만 앉아서만 익힙니까?

아니면 다니거나 섰거나 할 때도 통하는 것입니까?



[대답] 여러 경과 논에서 앉아서 익히는 법을 많이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이루기 쉽기 때문이며, 다니거나 섰을 때에도 통한다 하였으니 오래오래 익혀야 차츰 익혀지지 때문이다.

<기신론>에 말하기를 '만일 선정(止)을 닦는 사람이 고요한 곳에서 단정히 앉아 뜻을 바로 할 때에는 호흡에도 의지하지 않고 몸에도 의지하지 않고 공(空)에도 의지하지 않고 땅, 물, 불, 바람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보고 듣고 깨닫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망심이 일어나면 일어나자 곧 버리며, 버린다는 생각까지 버려야 한다.

 

그것은 모든 법은 본래 생각이 없어 생각 생각에 나지도 않고 생각 생각에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기 대문이다. 또 마음을 따라 밖으로 대상을 생각한 뒤에 마음으로 마음을 버리지 못 할 것이요,

만일 마음이 흩어지거든 곧 거두어 들여 바른 생각에 머무르게 할 것이니, 그, 바른 생각이란 오직 마음뿐으로서 바깥대상이 없으며,

또 그 마음도 자기모양이 없어 생각 생각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가고 오고 나아가고 물러가며, 온갖 분별동작을 하더라도 언제나 항상 방편을 생각해서 분수에 따라 관찰해서 오래 익히어 순일하게 익어지면 그 마음이 머믈게 될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차츰 용맹해져서, 그것을 따라 진여삼매(眞如三昧)에 들어가서 번뇌를 깊이 굴복시키며 신심이 늘어나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빨리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의혹하고 믿지 않으며, 비방하고 죄가 중하고, 업장이 두텁고 교만하여 게으른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한다'하였느니 여기에 의하면 네 가지 자세를 통하는 것이다.



<원각경>에 말하기를 '다니는 것도 선정이요, 앉아 있는 것도 선정이며,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고 고요할 때에도 본체는 언제나 태연하다'하니 이 말에 의하여도 역시 네 가지 자세에 통하는 것이다.

총괄해서 그 공부를 말한다면 앉아서도 마음을 쉬기 어렵거늘 하물며 다니고 멈추는 등에서 어찌 능히 도에 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부의 작용이 완전히 익숙한 사람이라면 천성인이 나타나더라고 꼼짝도 하지 않고, 만 가지 요망한 마귀가 있더라도 돌아보지도 않거늘 어찌 다니고 멈추고 앉는 가운데서 공부하지 못하겠는가 ?



마치 어떤 사람이 원수를 갚으려 하여도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항상 잊지 못하며, 또 누구를 사랑하는 데도 그와 같다.

그런데 더구나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일은 유심(有心)의 일로서 그 유심의 가운데서도 오히려 이룰 수 있거늘 지금 이 공부는 무심의 일이니, 어찌 사의(四儀) 가운데서 항상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의심하겠는가?

다만 믿지 않고 행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요, 만일 행하고 믿으면 네 가지 위의 가운데서 도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