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서화(東語西話)

18. 법신의 참 뜻은 무엇인가 ?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17:41
18. 법신의 참 뜻은 무엇인가 ?


옛날에 동파(東坡:1036∼1101)거사가 여산(廬山)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시냇물 소리 그대로가 부처님 말씀인데
    산의 자태인들 어찌 청정법신 아니랴
    밤 사이의 팔만사천 게송
    뒷 날 어찌 다른 사람에게 전할꼬.

    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昭人.

이 시에 대해 어떤 선사는 말하기를,
"동파는 매 귀절에 <변시<便是)>와 <기비(豈非)>를 쓸데없이 덧붙였다.
 왜 곧바로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 말씀이고[溪聲廣長舌],
 산의 자태는 청정법신이다[山色淸淨身]'라고 하지 못했는가?" 고 힐난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시냇물 소리는 혀를 사용하지 않아도 낼 수 있고,
 산의 자태는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드러난다" 는 등등의 여러 가지 평을 했다.

이것에 대해 종합해서 말해 보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자랑하여
소동파의 치우친 견해를 초월한 듯이 말하기는 했지만,
모두가 이 싯귀의 뒷전에서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당시에 동파거사는 시냇물 소리와 산의 자태만이 장광설인 줄 알았을뿐,
나귀소리·말소리·거위울음소리·까치 우는 소리·
나아가 근심으로 탄식하는 소리·통곡하는 소리·
지옥 속의 창칼이 사람을 찌르는 등의 갖가지 악독한 신음소리가
모두 부처님 말씀인 줄은 몰랐다.
또 어찌 산의 자태 뿐이랴!
크게는 허공, 작게는 겨자씨에 이르기까지
법계의 안과 밖에 있는 모든 모습 있는 것으로서,
특이한 모양과 곱고·추하며 기이한 것과,
청·황(靑·黃)과, 장·단(長·短) 내지는 빙하·숯불·누린내·더러운 것과,
눈으로는 살피지 못할 정도의 갖가지 악한 물질 모두가 청정법신이다.
어찌 몸과 혀뿐이겠는가.
코로 들어가는 것도 다 부처님의 향기이며
입으로 씹는 것이 모두 법미(法味)이다.
6입(六入)과 12처(十二處)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법성이 혼융하여,
털끝만큼의 간격도 다른 것이 용납될 수 없다.
이를 두고
"한 모습으로 평등하여 진정(眞淨)한 무루(無庄)를 원만히 구족한

 삼매문(三昧門)이다" 라고 한다.
위로부터는 불조가 이 삼매에 의지하여 묽은 우유를 정제하여
수락(酪)을 만들었고, 흙을 변화시켜 금덩어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나타났다 숨었다, 오므렸다 폈다 등등의 끝없는 묘한 작용이
한결같이 모두 이 삼매문(三昧門)에서 흘러나왔다.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오직 이 일승만이 진실일 뿐 나머지 2승(二乘)은 진실이 아니니라" 고 했다.
바로 지금 하늘은 높고 땅은 낮고,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낮은 밝고 밤은 어두우며, 산은 위로 솟아 있고 바다는 옆으로 드리워져 있다.
이런 것들 모두 털끝만큼도 삼매문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이처럼 명백히 드러난 듯 하지만 구태의연하게
시냇물 소리와 산의 자태 가운데만 앉아 있는 줄을 어찌 알겠는가!
새우가 제아무리 뛰어본들 어찌 북두칠성 밖을 벗어나는가.

부상좌(孚上座)가 「열반경」을 강의하기를,
"법신은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네모나지도 둥글지도 않다.
 머무는 모습[住相]도 아니고 그렇다고 머물지 않는 모습[不住相]도 아니다.
 원만하게 10허[十虛]를 싸고 3제(三際)를 혼융하였다" 라고 했다.
이 때에 어떤 한 선사스님이 좌중에 있다가 헛소리라고 판단하여
코를 가리고 물러났다.
그러자 부상좌가 쫓아가서 묻기를,
"나는 법신을 설명하면서 아직 문의(文義)에 어긋난 적이 없었는데
 그대의 비웃음을 당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자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상좌가 배웠던 것을 모두 털어놓는다 해도
 법신의 그림자 정도를 겨우 말할 뿐입니다.
 만일 진실한 법에서 볼 때 상좌의 말은 법신과는 거리가 맙니다.
 그대는 법신과 상응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강학했던 것을 화두로 들고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히 앉아 있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부상좌는 그 가르침대로 꾸준히 했더니
갑자기 호각소리를 듣고 활연히 깨달았다.
그대는 말해 보라!
과연 늙은 소동파가 이와 같이 깨달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 도는 언설로써 얻을 수도 없고 알음알이로도 불가능하다.
빈틈없이 참구하여 깨닫기를 기약하면서,
경험적 지식〔見聞〕을 벗어나고 알음알이를 초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허망하게
시냇물 소리·산의 자태 따위의 알음알이를 끌어들인다면
깨달아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천하가 모두 깨달음의 문이다.
삼가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