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서화(東語西話)

19. 달마의 직지법문(直指法門)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17:49
19. 달마의 직지법문(直指法門)


달마스님은 곧바로 가리키어 문자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6조 혜능스님은 말하기를,
"곧바로 가리켰다고 말하더라도 벌써 옆길로 샌 것이다" 고 했다.
그러니 어찌 화두를 들고
의심덩어리를 일으켜 공부를 하며 마음 깨치기를 기다리겠는가!
이렇게 한다면 선덕(先德)을 비방하고 고인을 욕되게 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6조 스님으로부터 3대(代)를 지나서 백장(百丈;720∼814)스님이 출현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를 대지선사(大智禪師)라 불렀다.
스님께서는 선림청규(禪林淸規)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멀리는 율장(律藏)에 바탕을 두고 승려생활의 예법을 정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넓은 강당과 넓은 평상을 배치하여
삼백 내지 오백 명의 대중들이 늠름히 모여 앉아서,
육체는 고목처럼 꼼짝 않고 마음은 불꺼진 재처럼 고요히 흔적 없게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을 두고 앉아서 참구한다고 한다.
그러니 그대는 `곧바로 지적한 것도 잘못이다' 고 비방하였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중에서도 잘못된 것이다.
선림청규(禪林淸規)에 의하면 처음 출가하면 시자료(侍者寮)에 있으면서,
아침에는 예불하고 저녁에는 교육을 받아 견문(見聞)을 넓히고
깊 이 연구하게 하였다.
그런 뒤에는 장경각의 열쇠를 관장하게 하여 갖가지 교리를 섭렵케 하였다.
또한 유서(儒書)를 박식하게 연구하고,
다른 학문도 통달할만큼 공부하여, 나란히 좌석을 잡아 설법하게 하였다.
그런 뒤에 시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스승이 되게 하였다.
스승들은 의발(衣鉢)을 부촉하여 믿음을 표시했고,
제자들은 향을 준비하여 법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5종(五宗)으로 파가 나누어진 다음부터는 도를 전수하고 받을 때
세밀한 지도와 여러 견해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곧바로 지적한 도라면 과연 이럴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분들이 문자를 수립하지 않고 그대로 가리키는 도리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시기가 성인이 태어났던 때와 벌써 한없이 멀어졌고
인심 역시 날로 퇴보하여
사람들이 도를 체득하겠다는 바른 생각이 견고하지 못했고,
또한 경계를 구분하는 알음알이만 날로 더해가는 것을 보고는
마지못해 펴신 방편이다.
백장스님이 총림을 건립하지 않았을 때에는
스님들은 모두 때묻은 초의(草衣)를 입고
깊은 산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도(道)로 향하였다.
백장스님 대에 이르자
그 때의 스님들은 벌써 늙고 병드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총림을 건립하여 늙고 병드는 것을 위안하고,
조사의 도를 보완하게 하였다.
가령 이 때에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바로 지적한다'는 그 말마저도 없어져
지금 들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근래에 공리공론만 일삼는 무리들은
사람들이 바로 지적하지 않고 우회한다고 따진다.
이것은 우회하는 것이 바로 가리키는 달마의 선법을 선양하는 방편임을
제대로 보지 못한 때문이다.
또 그러한 책망이 옳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는 그 마음을 반성할 줄 모른다면,
이것은 자신이 벌써 우회하여 굽은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 때문일까?
달마의 경우 곧바로 가리킨 도를 전하느라 묵묵히 9년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결코 다른 사람에게
곧바로 가리키는 도를 믿지 않는다고 책망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바로 가리키는 직지(直指)의 도가 일월처럼 빛나지만,
앞에서 말한 우회하고 굽은 것 때문에
그 가르침이 털끝만큼도 잘못된 점은 없다.
마음이 진실하면 이치는 자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림의 달마와 같이 곧바로 가리키는 도(道)에 의거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직지(直指)의 요체를 저버리고,
또한 말로는 달마스님이 얘기한
"밖으로는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의 조급함 없이
장벽처럼 수행을 해야만 도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하신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러면서도 "외부의 반연을 물리쳐 끊어버려 거기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안으로 마음을 억제해서 다스려야 한다" 고 한다.
이것을 어찌 곧바로 가리킨 종지(宗指)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갖고 오랫 동안을 수행하여
직지의 세계로 깨달아 들어가려고 한다.
지금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는 목적은 정(情)을 소멸하고 식(識)을 뒤바꿔서,
공(功)·용(用)을 둘 다 잊고 직지의 세계로 그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라는 것에
더 무슨 의혹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