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서화(東語西話)

50. 출가자도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가 ?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20:48
50. 출가자도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가 ?


유가(儒家)의 경전에서 이르기를,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책임을 맡기고자 하면
반드시 그 사람의 심지(心圍)를 먼저 괴롭히고,
그 육신을 고통스럽게 하며,
그 몸뚱이를 주리게 한다" 고 하였다.
그러니 위없는 큰 깨달음에 대해서는 말로 표현해서 무엇 하겠는가!
어찌 큰 책임만이 있겠는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오랜 겁 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깨달음을 구하셨다.
이렇게 하느라고 오랜 겁이 지나 그동안 쌓인 뼈는 수미산처럼 높았고,
마신 우유만도 바다와 같았으니,
결국 몇번이나 몸뚱이와 생명이 뒤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이리하여
"나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위없는 대도(大道)를 아낄 뿐이다." 라는 말이 남게 되었다.

슬프다!
요즈음 도를 닦겠다는 자들은 그저 도를 닦는다는
그 자체로써 명분을 삼기는 한다.
그러나 그 하는 행동을 살펴보면 배고프지 않아도 밥 먹고,
피곤하지 않아도 침소로 향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제멋대로 시주물을 쓴다.
그러다가 더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망과 탄식이 마구 일어나며,
남이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귀를 막고 물러나 움추려버린다.
천하에 어찌 노력하지 않고 거두며 심지 않고 수확하는 것이 있겠는가?
생각해 보니, 선배들은 대근기를 갖추었으면서도
깨치지 못하거나 사무치지 못한 날에는
밥 짓고 절구질 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를 숨기고
아무리 천한 일일지라도 감히 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감히 방종하면서
스스로를 돌보려 하지 않는가!

옛날 관자(管子)는 제(齊)나라 임금에게 훈계하여 이르기를,
"임금의 몸으로서 편안하기를 바라는 것은 짐독(毒)을 가까이 하는
격입니다. 그것을 절대로 그리워해서는 안됩니다." 라고 했다.
나라의 임금이 되면 부귀와 편안함을 가까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더구나 수행하는 우리들은 생사대사를 뼈아프게 여겨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다.
그러니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것처럼 화급히 하더라도
오히려 시간이 없을텐데, 편안함에 안주해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관자가 말한 짐독은 그 피해가
한 생의 몸뚱이를 해치는데 지나지 않지만,
우리 선문(禪門)에서 말하는 짐독은 만겁의 혜명(慧命)을 해친다.
그러니 그 해로움은 서로 비교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