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69칙 남전의 일원상〔南泉圓相〕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0:52
 

 

 

제69칙 남전의 일원상〔南泉圓相〕


(수시)

말 한마디도 붙일 수 없는 조사의 심인장(心印狀)은 무쇠소〔鐵牛〕처럼 생긴 기봉이다. 가시덤

불을 뚫고 나온 납승은 이글거리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雪〕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평지

에서 종횡으로 관통하는 것은 그만두고, 어떠한 수단이나 방편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떠한가?

거량해보리라.


(본칙)

남전(南泉)․귀종(歸宗)․마곡(麻谷)스님이 함께 혜충국사(慧忠國師)를 예방하러 가는 도중에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하였는데, 무슨 기특한 일이 있었는고? 그

래도 분명하게 가려내야지.


남전스님이 땅에 일원상(一圓相)을 그려놓고 말하였다.

“말하면 가겠다.”

-바람도 없는데 괜히 물건을 일으켰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알도록 해야 한다. 육지에 침몰한 배  를 건져내었군. 시험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분명하게 가려낼 수 있으랴!


귀종스님이 일원상 가운데 앉자,

-한 사람이 (장단을 맞추어) 바라를 쳤다. 길 같은 길을 가는 사람만이 알 것이다.


마곡스님은 여인처럼 다소곳이 절하는 시늉을 하니,

-한 사람이 북을 치니 모두 세(남전․귀종․마곡) 스님이 됐다.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네.”

-반쯤 길을 가다가 빠져나와야 제대로 된 사람이다. 한 마당 좋은 곡조로다. 작가로군. 작가이다.


귀종스님은 말하였다.

“이 무슨 수작이냐!”

-다행히도 알았구나. 당시에 한 차례 따귀를 쳤어야 했다. 멍청한 놈이구나.

 

(평창)

당시 마조(馬祖)스님은 강서(江西)지방에서, 석두(石頭)스님은 호상(湖湘)에서, 혜충국사(慧忠國師)

는 장안(長安)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는데, 그들은 모두 육조(六祖)스님을 친견하였다. 그때 남방의

뛰어난 사람들은 모두가 입실(入室)을 원하였으며 그렇지 못하면 이를 수치로 여겼던 것이다. 이

세 노스님이 혜충국사를 예방하러 가는 도중에 한바탕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남전스님이 말하

였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네.”

이미 낱낱이 말해버렸는데 무엇 때문에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였을까? 말해보라, 옛사람의 뜻은

무엇이었는가를. 당시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다”라고 말했을 때 따귀를 후려쳐서 그가 무슨 재주

를 부리나를 살펴보았어야 했다. 만고에 떨치는 강종(綱宗)은 불과 솜씨〔機要〕일 뿐이다. 그러므

로 자명(慈明)스님은 “잡아들이고자 하는가? 주변에 있으니 헤쳐보라”고 하였다. 이는 한 번 건드

리면 딱 튕겨나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호로병을 누르는 것처럼 자유자재하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긍정하는 말은 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은 꼼짝달싹 못 하는 자리에 이르

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쐐기와 못을 뽑아버리듯 해야 한다는 점을 모른 것이다. 그대들이 이를

분별의 마음으로 이해한다면 전혀 관계가 없다.

옛사람은 몸을 잘 비꼈기 때문에 여기에 이르러 정말 마지 못해 이처럼 하였던 것이니, 모름지기

죽임〔殺〕도 있고 살림〔活〕도 있는 것이다. 살펴보면 그들 한 사람은 원상(圓相) 속에 앉아 있

고, 한 사람은 여인처럼 절하는 시늉을 하였는데 매우 잘한 일들이다.

남전스님이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다”고 하자, 귀종스님은 “이 무슨 수작이냐”고 하였다. 이 멍청

한 놈이 또 이처럼 하였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말한 본래의 뜻은 남전스님을 시험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남전스님은 평소에 “이를

여여(如如)라고 부른다 하여도 벌써 빗나가버렸다”고 말하였다.

남전․귀종․마곡스님은 한 집안 사람이다. 한 번 사로잡고 한 번 놓아주며〔一擒一縱〕한 번 죽

이고, 한 번 살리는〔一殺一活〕데 참으로 기특하였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유기(由基)가 화살로 원숭이를 쏘니

-눈앞에 있는 이 한 길에 직면하여 어느 누가 감히 앞으로 나아가랴. 곳곳마다 오묘함을 얻었다.

화살을 쏘기 이전에 벌써 적중해버렸다.


나무를 끼고 도는 화살 왜 그리도 곧은지,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감히 이처럼 할 수 있으랴. 동서남북 온 천하가 한가풍이로다. 이미 빙   돌아간 지 오래이다.


천사람 만사람 가운데

-삼대처럼, 좁쌀처럼 많다. 여우 같은 정령 떼거리이나 남전스님을 어찌하겠는가?


어느 누가 일찍이 적중시켰을까?

-한 사람은커녕 반 사람도 없다. 이들(위의 세 명) 말고는 아무도 없다. 한 사람도 쓸 만한 놈이

없다.


서로를 부르며 말하였다. “돌아가련다, 돌아가련다.”

-진흙덩이를 주무르는 놈들아! 되돌아오는 것만 못하리라. 아직 조금 멀었다.


조계로(曹溪路)에는 안가겠다.”

-큰 고생하는구나. 아마 이는 조계의 문하객은 아니렷다. 낮은 곳이야 평탄하게 할 여유가 있겠

지만 높고 높은 곳은 쳐다볼 수도 없다.


설두스님은 다시 말한다.

“조계로는 평탄한데 무엇 때문에 안가느냐?”

-남전스님만이 반쯤 길을 가다가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설두스님도 중간에서 빠져나왔구나. 좋은

일도 아예 일삼음이 없는 것만은 못하다. 설두스님도 이런 병통을 근심하였다.


(평창)

“유기(由基)가 화살로 원숭이를 쏘니, 나무를 끼고 도는 화살 왜 그리도 곧은지”라고 하였다. 유

기는 초(楚)나라 때 사람이다. 성은 양(養), 이름은 숙(叔), 자(字)는 유기(由基)이다. 마침 장왕〔楚

莊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한 마리 흰 원숭이를 발견하고 사람에게 쏘게 하였으나 원숭이가 날아

가는 화살을 잡아 희롱하니,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쏘게 하였으나 맞히는 사람이 없었다. 마

침내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활 잘 쏘는 사람을) 묻자 많은 신하들이 “유기가 활을 잘 쏜다”고 아

뢰어 드디어 그에게 활을 쏘게 하였다. 유기가 활을 당기려 하자 원숭이는 나무를 껴안고 슬피 울

부짖었으며, 화살을 쏠 즈음에 이르자 나무를 끼고 돌면서 피하였으나, 화살도 나무를 끼고 돌면

서 원숭이를 적중시켰다. 이는 귀신 같은 활잡이〔神箭〕였다.

그런데 설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왜 그리도 곧은지”라고 말하였을까? 완전히 곧았더라면 적중하

지 못했을 것이다. 화살은 빙글빙글 나무를 끼고 돌았는데, 무엇 때문에 “왜 그리도 곧은지”라고

말하였을까? 설두스님은 비유를 참으로 잘 하였다. 이일은 「춘추전(春秋傳)」에 나온다. 어느 사

람은 “나무를 끼고 돈 것이 일원상(一圓相)이다”고 말하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말의 종지를 알지

못하였고, 완전히 곧은 곳도 모른 것이다. 세 늙은이는 길은 달랐으나 귀결점은 같았으며, 한 가지

법도로 일제히 크게 곧았었다.

그들이 갔던 곳을 알면 종횡무진하면서도 마음을 떠나지 않고 마치 모든 시냇물이 바다로 흘러

가는 듯하리라. 그러므로 남전스님이 “그렇다면 떠나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납승이 바른 눈〔正眼〕으로 엿본다면 이는 망상분별일 뿐이다. 따라서 만약 그것을 망상분별이

라 말한다면 이야말로 망상분별이 아니다. 나의 스승 오조(五祖)스님께서는 “그들 세 사람은 혜거

삼매(慧炬三昧)였으며, 장엄왕삼매(莊嚴王三昧)였다”고 하셨다.

그러나 여인처럼 절을 하는 시늉을 했으나, 끝내 여인의 절로 알지 않았으며, 원사을 그렸으나

원상으로 알지 않았다. 이미 이처럼 알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알아야 할까?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천사람 만사람 가운데 어느 누가 일찍이 적중시켰을까”라고 하였는데, 몇 사람이나 백발백중을

할 수 있었을까?

“서로를 부르며 ‘돌아가련다, 돌아가련다’”라고 한 것은 남전스님이 말한 “그렇다면 떠나가지 않

겠다”는 말을 노래한 것이다. 남전스님은 그리하여 떠나가지 않았으므로 “조계로에 가지 않겠다”

고 하였는데, 이는 가시덤불을 없애버린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만두지 못하고 다시 “조계로는 평탄하게 무엇 때문에 안가느냐?”고 말하였다. 조

계로 가는 길은 티끌과 자취가 끊겨서 적나라하며 말끔하여, 평탄하고 유연한데 무엇 때문에 오르

는 것을 그만두었을까? 각자 스스로가 발밑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