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후서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4:37
 

 

 

후서

 


무당의 후서

 

설두스님의 「송고백칙」은 총림에서 도를 배우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말씀이다.

이 책은 경전이나 논서에서 비유를 취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유가의 문장과 역사까지도 인용하여,

‘이 일’을 밝히셨다.

 

그러나 이는 안목을 갖추신 큰스님이 후학을 위하여 알맞게 설명하고 분석해주시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다.

원오 노스님께서 성도(成都)에 계실 때,

나와 여러 스님들이 그「송고백칙」에 대하여 스님께 법문을 청한 바 있었다.

그 후 원오스님은 협산(夾山)․도림(道林)에 계셨다.

 

다시 학인들을 위하여 법문을 해주셨으니,

스님께서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서 종강(宗綱)을 제창하셨다.

그때마다 말씀은 똑같지 않았지만 종지는 한가지였다.

 

문인들이 이를 기록하여 모은 지 20년이 지났다.

원오스님께서는 전혀 참견하시지 않으셨는데,

이 기록이 사방으로 전해지면서 때로는 그릇되거나 뒤섞이기도 하였다.

총림에서 이 말〔言〕을 가지고 평가하여 그 가르침〔道〕을 깊이 연구할 것이 없다고 하거나,

멋대로 개작한다면 이 책은 끝내 망가지게 될 것이다.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 전하는 바를 자세히 살펴주기 바라는 바이다.

 

선화(宣和) 을사(乙巳, 1125년) 늦은 봄 상순(上旬)의 휴일에 모인(牟人) 관우(關友) 무당(無黨)은 기록한다.


희릉의 후서


원오선사께서 설두스님의 「송고백칙」을 평창해주셨다.

아주 미묘한 것을 가려내고 깊고 그윽한 뜻을 드러내주시며,

여러 조사들의 솜씨를 드러내어 후학들의 마음의 근원을 열어주셨다.

참으로 미묘한 지혜가 맑게 뭉치고 신통한 솜씨가 가만히 움직였다 하겠다.

 

수정 같은 태양이 솟으니 현묘한 문빗장이 훤하고 둥그런 달이 뜨니 어두운 실내가 밝아진다.

어찌 옅은 지식으로 이렇게 할 수 있으리요.

뒷날 대혜선사가 학인들이 입실(入室)하여 하는 말들이 자못 괴이하다고 의심하였다.

그래서 잠깐 검사를 해보니 삿된 칼이 저절로 꺾어지고, 다시 한 번 족치니,

항복하여 말하기를 “저는 「벽암집」에 있는 말을 외운것이지 실은 제가 깨달은 게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후학들이 그 근본을 밝히지 못하고 그저 말 잘할 것을 헤아리므로 불을 질러 이 폐단에서 구하려 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든 것이나 이 책을 불지른 것이나 그 마음은 한가지이니 어찌 서로 다르겠는가?

우중(嵎中)의 장명원(張明遠)이 사본의 뒷부분〔後冊〕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설당(雪堂)의 간본(刊本)과 촉본(蜀本)을 구하여,

잘못된 곳을 교정하고 이 책을 간행하여 영원토록 유통되게 하였다.

근기가 뛰어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한 번 보자마자 본심을 단박에 깨치고 의심 없는 경지로 곧장 가게 하니, 어찌 적은 보탬이겠는가?


연우(延祐) 정사(丁巳, 1317년) 영불회일(迎佛會日)에

경산주지(徑山住持) 비구 희릉(希陵)은 절하고 글을 지어 후서를 한다.


정일의 후서

원오선사가 협산(夾山)에 계실 때 이 책을 만드시니,

(이것은) 뒷날의 온 천하 사람들에게 불조의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어찌 적은 보탬이겠는가?

묘희스님께서는 수행하는 사람들이 도(道)에 근본하지 않고 알음알이에 빠지는 것을 걱정하여 이것을 없앴다.

 

생각건대 그 부자지간(원오스님과 대혜스님)에 서로 모순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중(嵎中)의 장명원거사가 거듭 판을 찍어서 세상에 내니 과연 뭐라고 해야 할까?

이 문제는 이 책을 보는 사람 스스로 해결하시오.


대덕(大德) 임인(壬寅, 1302년) 중추(中秋)에

천동사(天童寺)에 사는 제7세 법손 비구 정일(淨日)은 두 손 모아 삼가 서하노라.


풍자진의 후서


유문(儒門)의 자공(子貢)은 동방의 성인(공자)에게 대단한 공헌이 있었다.

예컨대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잘 달린다.

러나 (공자가 걸으면 따라서 걷고, 공자가 뛰면 따라서 뛰지만,

공자가 먼지도 일으키지 않고 달리면) 뒤에 남아 눈이 휘둥그래질 뿐이라고 말했던 안자(顔子)와 같다. (공자는 “하늘이 어찌 말하리요”라 했는데) 우리 훌륭하신 스승 공자께서는 그 ‘말없는 하늘’에서 노니신 지가 오래되었다.

 

영취산의 모임에서 사부대중이 바다처럼 모였으나,

세존께서 꽃을 드신 깊은 뜻은 아무도몰랐고 가섭존자만이 미소지었다.

이는 우리 유학에,

(공자가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고 하자,

(증자만이) 그렇다고 했을 뿐 모두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했던 것과 같다.

 

단박에 사무치고 깨달아,

당시 증자가 (공자가 말한 ‘하나’라는 것은 정성스러움〔忠〕과 너그러움〔恕〕이라고 했는데) 정성스러움과 너그러움이라는 깊은 뜻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어찌 문인들만이 깊이 의심했겠으리요.

천 년이 지난 뒤에도 결코 ‘하나로 관통한다’(에서 그 하나가 무엇인지 몰라) 미혹의 구름을 걷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은 다르지만,

성도의 불과 원오선사가 협산 방장실에서 홀(笏)을 들고 설두스님의 「송고백칙」을 강의하였다.

그런데 수행하는 이들이 언구에 빠져 옛부터 내려오는 여러 조사들의 가르침을 저버릴까 걱정하여,

원오스님의 훌륭한 제자 대혜 종고상좌가 스승의 혀를 자르고 확 불을 지르니,

연기가 휘몰아치더니 모두 타버렸다.

 

생각컨대 가는 털 하나를 허공에 던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물방울 하나를 큰 계곡에 던지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옛날 덕산스님이 기름떡을 파는 노파의 앞에서 금강경소초를 모두 불질러 (재가) 싸늘하게 식어서 싹 없어졌던 것과 같다.

 

그러나 들에 놓은 불이 모두를 태워도 태우지 못하는 것이 있어,

봄바람이 불어오면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이,

꽃이 벽암에 떨어지니 양지 바른 언덕에 수놓은 듯하다.

과거 여러 겁을 지나 죽은 재에서 다시 소생하니 무엇이라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우중의 장명원거사가 그림자 없는 나무 위에 손수 심고 나서부터 허다한 말이 다시 생겨나니 전체가 잘못 드러났다.

반야는 설할 수 없건만 여러 하늘 신들이 꽃 비를 내리기까지에 이르렀다.

백칠 팔십 년 후에 납승들이 콧구멍〔鼻孔 : 근거 기반〕이 대뜸 뚫리니,

전에는 일찍이 맡아보지 못했던 기품 있는 향기이다.

하루아침에 물처럼 뿜어오르고 구름처럼 피어오르니, 팔만 사천 털 구멍에 모두 두루두루하다.

참으로 희유하고 대단히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거사의 두 아들이 마음의 병을 얻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근두경(勤竇經 : 원오 극근스님과 설두 중현스님이 지은 경전이라는 의미)’의 경판〔板〕을 대혜 종고상좌가 없앴으니,

거사는 그 타버린 재를 모아서는 안된다.

 

그래서 해와 달의 빛 때문에 이런 과보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거사는 그 이야기를 의심하여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생각하기를,

원오스님의 문인들이 모두가 다 대혜 종고상좌라 할지라도 벽암은 스스로 푸르니 어찌 말할 게 있겠는가?

 

종고상좌는 달을 보고 그것을 가리키던 손가락 끝에 매이지 않았다.

그러나 고불을 문책하여 독한 불꽃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찰간을 거꾸러트려 한 발의 활도 쏘지 않았다.

그러니 그는 결코 달을 알지 못한 자이다. 누가 장차 손가락 끝 가리키는 저 너머를 보아 그것(달)을 가리켜주랴.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종고상좌가 이 책을 불살라,

그것을 사귀(社鬼)에 맹세한 것이 매우 엄중하다.

거사의 두 아들의 병(의 원인)이 참으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종고상좌가 불태우려고 횃불을 들었을 때,

묵은 종이를 태우니 모두 붉어졌다.

무슨 연고로 밀실에 바람이 통했을 리가 있었겠는가?

원오스님의 목숨과 혀는 애초부터 타지 않은 다른 곳에 있었다.

 

별 하나가 흩어지니 달은 밝고 산은 쓸쓸해졌는데,

장명원거사가 이로부터 소식을 얻었다.

서촉에서 만든 비단 짜는 베틀을 하나 천연스럽게 얻어,

옛날의 꽃무늬를 의구하게 짜냈다.

 

생각컨대 주림신(主林神)이 가만히 땅으로 변하여,

가호가 지금에 이르른 것이다.

따져보니 역시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인연이다.

청량지(淸凉池) 위에 바늘과 겨자씨가 서로 만난 듯하다.

베껴 쓰고 남에게 연설한 공덕은 반드시 훌륭한 복덕이 될 것이다.

하물며 어찌 쇠나 돌에 새겨서 널리 유포시키는 것이야 말해서 무엇하리요.

 

거사의 두 아들의 마음의 병의 원인은 원래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쭙잖은 사람들이 망령되어 알음알이로 헤아린다.

거사가 눈 앞에서 충분히 말할 수 없는 재앙이나 복으로 말미암아 그들처럼 역시 알음알이로 헤아린다면,

이것도 역시 서로를 이끌어 볼 구덩이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찌 재앙을 면하리요.

 

「명험기(冥驗記)」에 패국(沛國)의 주씨(周氏)에게 세 아들이 있는데 모두 말 못하는 병에 걸렸다고 한다.

하루는 한 길손이 문을 지나다 말하기를,

“그대는 지난날의 허물을 살펴봄이 좋을 듯합니다”했다.

그 소리를 듣고 선뜻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어렸을 적에 제비 집에 있는 새끼 제비 세 마리를 발견하고,

그 어미가 없는 틈을 타 그 새끼 제비에게 가시 달린 열매〔蒺藜〕를 하나씩 먹였었다.

그러자 모두 죽어버렸다.

그 어미도 슬피 울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그것을 늘 스스로 후회하고 자신을 자책하던 바였다.

 

객이 말했다. “그대는 잘못을 알고 죄를 참회하니 죄는 이제 면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세 아들이 모두 말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거사의 두 아들이 풍병을 앓고 마음을 상하게 된 원인에도,

가히 참회할 만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반야를 말하는 자일지라도 남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수가 있다.

(돌이켜보면) 이 사람은 지난 세상의 죄의 업장으로 반드시 악도에 떨어져야 하지만,

금생에 남의 업신여김을 당하였기 때문에,

지난 세상의 죄의 업장이 당장에 없어지리라고 했다.

 

거사가 반성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먼 지난 세상에 지은 죄업도 반드시 당장에 사라질 것이요,

그대의 두 아들의 마음의 병도 반드시 주씨의 세 아들이 당장에 말을 했던 것처럼 (낫게 되는 것은) 의심할 것 없다.

 

세존께서 세상에서 설법하신 지 49년에 600함(函)의 말씀이 온 세상에 두루 감추어져 있다.

만약 종고상좌의 말을 따를 것 같으면,

만 년이 일념이니 다시 흔적을 두어서 무엇 하리요.

끝없이 초월〔向上〕하는 선림(禪林)의 한없이 많은 존숙들 중에 (다음과 같은) 두 구절이 있는데 참으로 적절하다.

 

마조스님이 말하기를 “너는 너대로 마음이 부처라고 해라.

나는 나대로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하리라”고 했다.

오늘 이후로 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그대는 다만 대답하기를,

“너는 너대로 종고상좌가 옳다고 하려면 해라,

나는 나대로 원오스님이 옳다고 하겠다라고 하시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얼굴을 태우고 4백 4병이 한꺼번에 생길까 걱정이오.”

(그러면 거사의 두 아들의 마음의 병은 장차 어찌되겠는가?)

옛사람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는가?

자식을 길러 봐야 비로소 부모의 은혜를 안다고 한 말이 있다.

 

거사가 불법을 배워 은혜를 알고 늘그막이 되어 참회하면,

뒷날 작가 선지식의 풀무에서 여섯 길이나 되는 금신(金身)을 뛰어넘게 되리라.

원오노사께서 눈썹을 치켜뜨고 소맷자락을 떨치고 가버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한 구절을 깨치면 말하리라.

‘불조에게는 서원이 있어 거듭 벌을 주지 않는다고.’

 

다른 집 자손들에게 재앙을 미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비록 이렇기는 하지만 무슨 관계가 있으리요.


연우(延祐) 정사(丁巳, 1317년) 칠월 보름,

해속노인(海粟老人) 풍자진(馮子振)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