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133. 무엇이 참다운 지혜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4:51
 

무엇이 참다운 지혜

 

40-4-133  問 何等是眞智慧. 答 言無變異相 如衆生無變異相 眞智慧亦無變異. 又 問云 何是衆生相. 答 假名字畢竟離 是衆生相 如是相則無變異 乃至 如虛空無變異相 一切諸法 亦無變異相. 云何無變異. 以無二故 亦無無二 方成眞智. 但云無有二 非是有無二.



문 : 무엇이 참다운 지혜입니까.


답 : 달리 변할 모습이 없음을 말하니, 마치 중생이 달리 변할 모습이 없듯 참다운 지혜도 또한 달리 변할 모습이 없다.


문 : 어떤 것이 중생의 모습입니까.


답 : 임시 방편인 명자에서 필경에 벗어난 것이 중생의 본래 모습이니, 이와 같은 모습은 달리 변할 모습이 없다. 이것은 마치 허공이 달리 변할 모습이 없듯 일체 모든 법도 또한 달리 변할 모습이 없는 것이다.

어째서 달리 변할 모습이 없다 하는가. 두 가지 모습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두 가지 모습이 없다 할 것도 없어야 바야흐로 참다운 지혜를 이룬 것이다.

이것은 단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분별이 없음을 말하니, 유(有)나 무(無)의 두 가지를 상대하여 말한 것이 아니다.

如華嚴經 頌云 常於諸法不作二 亦復不作於不二 於二不二並皆離 知其悉是語言道. 是知 一切言語 皆從覺觀而生. 纔有覺觀 便形紋綵 發萌芽於境上 起兆朕於心中. 心境對治 便爲質礙. 若入宗鏡 自絶言思 妙旨潛通 了無所得. 又 若一切修行 趣佛乘人 但先得旨之後 方可以佛知見治諸餘習.



이것은 ꡔ화엄경ꡕ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내용과 같다.


   언제나 모든 법이 둘이 아니니

   또 다시 같다라는 생각도 없다

   같거나 다르다는 분별 벗어나

   일체의 언어 방편 알게 되도다.


이로써 일체 언어가 모두 이리저리 사량 분별하여 살핀 데서 생겨나는 것임을 알 것이다. 분별이 있자마자 문득 어떤 형태와 색깔이 드러나고, 그 경계에서 번뇌의 싹이 터 마음 가운데에 어떤 조짐이 일어난다. 이 마음과 경계가 상대하여 서로 영향을 끼치는 게 바로 장애가 되는 것이다.

만약 종경에 들어간다면 스스로 언어와 사량을 끊고 현묘한 종지가 은근하게 통하여 얻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일체의 모든 수행이 최고의 가르침에 나아가는데 두는 사람이라면 다만 이 뜻을 얻은 뒤에라야, 바야흐로 부처님의 지견(知見)으로 모든 나머지 습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以正定水 瑩淨禪支 用多聞慧 助生觀力 乃至 習誦熏修 萬行嚴飾. 若未入宗鏡 不了自心 縱多聞習誦 俱不成就.



왜냐하면 이것은 올바른 삼매를 가지고 방편으로 쓰이는 여러 가지 선정을 갈고 닦는 것이며, 법문을 많이 들은 지혜를 사용하여 올바르게 선정의 관()하는 힘이 생겨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부지런히 경전을 익히고 독송하며 마음을 훈습하여 닦아 나가는 온갖 수행을 장엄하는 것이다.

만약 종경에 들어가지 않으면 자기 마음을 요지(了知)하지 못할 것이니, 설사 법문을 많이 듣고 수지독송하여 경전을 익히더라도 모든 부처님의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