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2. 죽을 날을 받아놓고 / 인 대방(因大方)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7:35
 

2. 죽을 날을 받아놓고 / 인 대방(因大方)스님


평강(平江) 정혜사(定慧寺)의 주지 인 대방(因大方)스님은 천태(天台) 사람으로 고림(古林淸茂)스님의 법제자이다.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활달자재하였으며 군수 주의경(周義卿)과 친분이 있었다. 대방스님이 절 일을 그만두고 영암사(靈岩寺) 화(華)노스님 방에 머물던 지정(至正) 무술년(1358) 9월 8일, 주의경이 공무가 있어 사찰을 찾아가 스님을 방문하자 대방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 달 14일에 이 산에서 죽을 것이니 그대는 나를 위하여 이 사실을 증명해 주오.”

주 군수는 장난이겠거니 생각하고 그러하겠노라고 답한 후 떠나갔는데 13일이 되자 게송을 주군수에게 지어 보냈다.


어제는 바위 앞에 땔감 주워 모아놓고

오늘 아침 이 허깨비 몸 한 줌 티끌 되리라

어진 그대에게 정성껏 말하노니

하늘에 구름 걷히면 한조각 달만 남겠지.

昨日巖前拾得薪  今朝幻質化爲塵

殷勤寄語賢候道  碧落雲收月一痕


주의경은 이 게송을 받고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날 밤 화(華)스님에게, “마른나무를 쌓아놓고 하나의 앉을자리 하나를 달라'고 청하자, 화스님은 “마른나무야 말씀대로 드리겠지만 좌대는 없다'고 하였다.

대방스님이 화스님이 앉아 있는 나무의자를 가리키면서, “그것만으로도 또한 넉넉하다'고 하자 화스님은 그의 말에 따라 의자를 주었다. 14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법당 위로 올라가 대중스님과 영결을 고하고 또다시 게송을 읊었다.


나의 전신은 본디 석교의 승려라

이 때문에 인간에게 사랑과 미움을 나누었지

사랑과 미움이 다한 때 온전한 바탕 드러나

무쇠 뱀이 불 속에서 얼음덩이를 씹는구나.

前身本是石橋僧  故向人間供肯憎

憎肯盡時全體現  鐵蛇火裡嚼寒氷


드디어 마른 나뭇가지를 소매 속에 넣고 나무더미 위로 올라가 앉은 후 스스로 불을 지펴 빨간 불길이 치솟아 올랐으나 그 불길 속에서도 태연히 향을 사르며 축원하였다.


신령한 싹은 음양의 종자에 속하지 않으니

그 뿌리는 원래 겁 밖에서 왔다오

이를 그만두고 몸소 설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불 속에다 옮겨 심을 수 있겠는가.

靈苗不屬陰陽種  根本元從劫外來

不是休居親說破  如何移向火中栽


스님은 화스님에게 염주를 건네주면서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이에 화염이 휩싸이는 곳마다 많은 사리가 나왔는데 주의경은 이 소식을 전해듣고 경탄해 마지않아 그를 위해 영암사에 사리탑을 세우고 시를 지어 그를 애도하였다.